유사라 편성PD 2020-03-17

마치 지구에도 다른 행성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빙하가 떠다니는 바다로 가득한 섬으로 놀라운 풍경들을 볼 수 있는 곳, 바로 얼음의 땅 그린란드이다. 북대서양 물결 위 화산과 빙하가 빚은 날 선 절벽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페로제도, 뜨거운 화산 속에 핀 얼음꽃, 아이슬란드까지. 다가갈수록 설레고 볼수록 짜릿한 북대서양의 섬 기행을 떠나보자. 북대서양 빙하 섬 첫 번째 목적지는 바로 그린란드다. 우리나라에는 직항이 없어서 핀란드와 아이슬란드를 경유해서 갈 수 있다. 녹색을 의미하는 ‘그린란드’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온통 하 얀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있는 지역이다. 그린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으로 90%가 빙하로 이뤄져 있다. 전 국토의 3분의 2가 북극권에 속해있는 그린란드는 한반도의 10배나 되는 큰 면적임에도, 이곳에서 살고 있는 인구는 약 5만 명에 불과하다. ‘빙산’이라는 의미의 일루리삿은 그린란드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이름처럼 언제나 유빙을 볼 수 있는 해변을 끼고 형성됐다. 그린란드 내륙은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춥고 척박하기 때문 에 주민들 대부분은 서남부 해안에 마을을 형성해 살고 있다. 목축업이 쉽지 않은 그린란드에서는 허가받은 사람들에 한해 고래사냥을 허용하고 있다. 그린란드는 남극 다음으로 지구에서 가장 많은 빙산이 생성되는 곳이다. 과거 타이타닉호를 침몰시킨 빙산도 이곳에서 떠내려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린란드의 빙상은 평균 1,500m에서 3,000m까지 그 크기도 다양하다. 하지만 수면위로 보이는 것보다 물속에 잠겨 있는 빙산이 훨씬 크다. 그린란드 사람들에게 유일한 생존수단인 바다에서의 사냥모습은 3월 24일(화) 오후 2시 30분에 시청할 수 있다.

유사라 편성PD 2020-03-16

인천공항에서 30여 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야 만날 수 있는 아프리카 중남부의 잠비아. 세계 3대 폭포인 ‘빅토리아 폭포’를 품은 잠비아는 남한의 약 8배나 큰 국토를 지닌 나라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잠비아 대다수 국민들은 농사나 목축업에 종사하는데 여전히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잠비아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8살 소년 피니어스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뒤 할아버지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아흔이 넘는 증조부모와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피니어스는 너무 배가 고파서 땅 아래에 있는 쥐라도 잡아먹고 싶을 정도로 힘든 삶을 살고 있다. 맨발로 가시밭길을 걸어 나무를 주워 와 증조할아버지와 함께 괭이자루 만드는 일을 한다. 괭이자루 만드는 일은 피니어스 가족의 유일한 생계수단이다. 괭이자루를 만들려면 꽤나 질긴 나무껍질을 벗겨내야 한다. 하지만 이 작업은 8살 아이에게는 너무나 힘들다. 이렇게 괭이자루를 만들어 팔아 얻는 한 달 수입은 불과 우리 돈 1,000원 남짓. 상처투성이인 손일지라도 피니어스가 도끼를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이다. 잠비아의 또 다른 마을에 살고 있는 13살 소년 림포. 한쪽 시력을 잃은 림포는 연로한 할머니와 젖먹이 막내를 돌보는 엄마, 그리고 다섯 명의 어린 동생들을 책임지는 한 가족의 가장이다. 버겁고 고된날들의 연속임에도 림포는 한 번도 현실을 원망하지 않았다.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잠비아에는 살기 위해 거친 광야로 매몰차게 내몰리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아프리카 잠비아 소년 피니어스와 림포의 이야기는 3월 21일(토) 오전 8시에 방영된다.

유사라 편성PD 2020-03-11

GOODTV 대표 상담 프로그램인 <노크토크> 23회 방송에서는 인간관계에서 서로 간의 오해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낸 사연을 들어본다. 고향에서 마을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환경살리기본부’라는 단체의 핵심임원을 맡아 열심히 살아왔던 사연자. 하지만 정부와 함께 민간단체 폐기물 단속을 하는 과정에서 평소 친분 관계에 있던 이웃의 사업장이 폐기물 단속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다. 사연자의 이름이 경찰 관계자들 사이에서 거론되면서, 고향 사람들은 사연자가 해당 사업장을 신고했다는 오해를 하고 있었다. 이웃들의 오해로 인해 사연자는 고향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지내야 했다. 사연자는 “이후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한없이 괴롭다”는 하소연을 보냈다. 지방사회의 특성상 혈연과 친분 관계가 깊어 이 상황을 견디기가 힘들었다는 사연자의 고민처럼, 살아가면서 이런 억울한 오해들을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시편 22편은 다윗의 억울함, 속상함, 수치심, 분노, 두려움, 불안의 감정을 복합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내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 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1절). 사연자의 상담과 관련해 패널들은 힘들고 어려운 마음은 하나님서 아시고 계심을 상기시킨다. 이럴 때 다윗처럼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보는 것은 어떨까? 원치 않는 오해와 갈등으로 인해 마음에 어려움이 있는 분들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이야기는 3월 16일(월) 밤 9시50분에 GOODTV 채널에서 만나볼 수있다.

차진환 기자2020-03-08

합동, 한국기독교순교사적지 제1호 지정 단일교회 최다 순교자…대부분 수장당해 천국소망으로 원수를 용서하는 모습 보여 전라남도 영광군 염산면의 설도항, 잔잔하게 물결치는 서해안에 맞닿은 곳. 부두에는 한적한 배 몇 척이 놓여 있고 그곳을 바라보는 기념탑이 우뚝 솟아있다. 70년 전 한국전쟁당시 전남 영광군에서는 194명의 기독교인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북한군을 비롯한 공산 세력에 맞서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했다. 기념탑 뒷길로 조금 걸어가다 보면 낮은 언덕 위에 세워진 교회가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가 한국기독교순교사적지 1호로 지정한 염산교회다. 염산교회 성도들은 당시 이 길을 따라 설도항 앞바다에서 수장당했다. 단일 교회로서는 가장 많은 인원 77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국 기독교 最多 순교자 발생 교회 전남 영광 염산면은 남로당 김삼룡의 주 활동 무대였고 전쟁 전부터 그를 추종하던 세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공산당의 유격대가 들어와 후방 교란작전을 펼치면서 염산면 내 이념 갈등은 극에 달했다. 한국전쟁 당시 염산교회는 77명의 순교자를 낳았다. 전교인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숫자다. 10월 3일부터 이듬해 1월 6일까지 약 3개월의 시간을 거쳐 순교했다. 피난 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성도들은 교회를 지켰다. 대부분의 순교자들은 새끼줄로 엮은 돌을 매단 채 교회 앞 바닷가로 끌려가 수장 당했다. 돌이나 몽둥이질에 목숨을 잃었고 죽창에 찔려 생매장을 당하면서도 가해자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염산교회 순교의 현장은 잔혹했지만 성도들은 돌아갈 천국을 가슴에 품고 담대히 순교자의 길을 걸었다. ▲염산교회 성도들은 한국전쟁 당시 염산군에 주둔한 공산군과 추종 세력에 의해 77명의 성도가 순교했다. 대다수의 성도는 무거운 돌을 목에 매단 채 수장당했다.ⓒ데일리굿뉴스 목 베여 순교당한 어린 자매들 당시 담임이던 김방호 목사를 비롯해 염산교회 성도들은 죽음 앞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부임 후 석달 만에 전쟁을 맞닥뜨린 김 목사는 미군 스파이로 몰리며 지역 공산 세력에게 끌려갔다. 8명의 식구와 함께 몽둥이질을 당하며 순교했다. 공산당 세력에게 교회와 집을 빼앗기고 죽음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교회와 성도를 지키겠단 일념 하나로 순교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일반 성도와 28명의 어린 주일학교 학생들의 순교도 이어졌다. 노병재 집사와 그의 3형제 가족 22명은하루아침에 수장당했다. 노 집사는 바다에 빠져서도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 길 되나니> 찬양하며생을 마쳤다. 故 박귀덕 권사의 네 딸은 예수 믿는 집의 자식이란이유로 모두 수장 당했다. 첫째 옥자(15)는 막내 미자(3)를 업고 나머지 동생들에게 “울지 마라, 우리는 지금 천국 가고 있단다. 천국 가니까 울지 마라”며 위로했다. 죽음 앞에서도 당당한 모습에 약이 오른 좌익 세력의 한 남자가 옥자와 미자의 목을 베어 바다로 던졌다는 것이 당시 목격자의 증언이다. 김조남(11) 어린이는 집에 들이닥친 공산당 무리에게‘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어디 있냐’며 ‘말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김 군은 “나는 어디 계신지 몰라요. 그리고 나는 예수 믿으니까 천국 갈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공산당은 김 군의 입을 찢어 죽였다.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한 천국소망 과반의 성도가 목숨을 잃고 예배당이 전소되자 교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순교자들의 신앙은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여전히 살아 이어지고 있었다. 김방호 목사의 둘째 아들인 김익 전도사는 가족이 순교할 당시 처가에 있다가 유일하게 목숨을 건졌다. 김전도사는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은 아픔에도 1951년 4월 염산교회에 4대 교역자로 부임했다. 당시 목격자에 따르면 김 전도사는 첫 예배에서 ‘온가족이 죽임을 당한 곳이기에 생각하기도 싫지만 나는 이곳에 내 부모 형제들의 원수를 갚으러 왔다. 가해자 들을 예수 믿게 해서 천국 가게 하는 것. 참된 원수 갚는 일이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2년 동안 순교자들과 공산 세력을 추종했던 주민들의 화합을 위해 헌신했다. 김 전도사는 결국 시력을 잃었고 여러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주민들과 성도들은 그를 일컬어 ‘사랑의 사도’라고 불렀다. 염산교회 성도들은 좌우 이념의 갈등과 예수를 믿는단 이유 하나로 죽어야 했다. 김 전도사는‘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몸소 실천해가며 복음을 염산 지역에 심었다. 염산교회 임준석 담임목사는 “두 번 다시 이런 일이반복되면 안 된다”며 “우리가 순교자들이 가졌던 순교자의 천국 신앙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진환 기자2020-02-27

영광, 전쟁 전중후 좌우 이념 대립 극심 전쟁 2달內 전교인 생매장·수장당해 순교자들의 피…지역 복음화로 꽃피워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 민족상잔의 비극 속에서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건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한국교회가 이 땅에 뿌리 내릴 수 있었던 것도 전쟁 속에서 믿음을 지키며 끝까지 신앙을 키워온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라남도 영광군 염산면에 소재한 야월교회는 한국전쟁이 있던 해 전교인 순교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겪게 된다. 세계 어느 곳을 찾아봐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전교인이 희생당한 경우는 찾기 힘들다. 죽음 앞 순교자의 믿음은 소금처럼 반짝였다 77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반짝이는 염전이 펼쳐진다. 전남 영광군 염산면은 ‘소금밭 천지’라고 불린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알고 보면 70년 전한국전쟁 당시 염산면 지역 교인들의 피가 뿌려진 곳이다. 야월교회는 1908년 4월 유진벨 선교사와 염산면 야월리 지역 교인들로 인해 세워졌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갖은 핍박 속에서도 성도들은 신앙을 잘 지켜나갔다. 한국전쟁이 시작되면서 전쟁의 피바람이 영광을 덮쳤다. 북한 공산군의 일개 부대가후방 교란작전을 펼쳤고남로당 김삼룡의 부대는 지역 주민들을 포섭하기 시작했다. 영광군 지역은 이념 갈등이 가장 치열한 곳이었다. 군인뿐만 아니라 주민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심했다. 야월교회 성도들은 1950년 9월 말부터 11월초까지 약 두 달 동안 교인 모두가 순교하게 된다. 5명은 목에 돌을 멘 채로 수장을 당하고 나머지 60명은 생매장당했다. 1km 정도 떨어진 ‘큰북재’란 곳으로 끌려가 자신이 묻히게 될 땅을 파야만 했다. 끌려간 가족들은 굴비 엮듯이 엮여 생매장을 당했다. 살아 나오려는 사람들은 죽창으로 찔러 죽였다. 당시 9살 어린아이던 최종한 장로(80)는 끔찍했던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최 장로는 “그때 우리 가정이 예수를 믿지 않고 유교 사상이 투철했기 때문에 우리 아버님이 인민군에 끌려가 인민재판 후 죽지 않고 살았다”며 “6.25 전쟁을 생각만 하면 아직도 끔직하다”고 회상했다. 예수 믿어 망한 동네…다시 신앙의 꽃 피우다 순교 이후 야월도에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 한명도 남지 않게 된다. 전 교인이 목숨을 잃게 되자 마을에는 ‘예수를 믿고 망한 동네’란 인식이퍼졌다. 교회를 찾는 이들의 발걸음도 뚝 끊겼다. 살아남은 교인도 없었기 때문에 순교 당시의 흔적을 더듬어 가기도 어려웠다. 담당 교역자가 부재중인 가운데 인근 염산교회 청년들이 건너와 아이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지만 쉽지 않았다. 예수 믿다가 온 가족을 다죽일 셈이냐는 어른들의 구박에 아이들은 교회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1988년 배길양 목사가 부임하고 나서야 38년전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쫓게 됐다.배 목사는 순교자들의 명단을 확정하기 위해 면사무소를 찾아갔다가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을 알게 된다. 순교자들이 40년이 다 돼가도 사망신고가 되지 않은 채 서류상 살아있는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교회가 전소되고 일가족이 몰살당하다 보니까 누구 한 사람 사망신고를 해줄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야월교회 순교자들의 피는 헛되지 않았다. 현재 야월도에는 280여 세대가 있는데 그 중 100여 세대가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약 35%의 지역 복음화가 이뤄졌다. 순교한 야월교회 모든 성도들은 염산의 명물 소금처럼 이 지역에 녹아 들어 복음의 터를 닦았다. 순교자들의 신앙과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독교인순교기념관에는 ‘맞잡은 손’이란 조형물이 있다. 순교의 아픈 상처를 담은 손과 하나님의 손이 만나 용서와 화해로 나아간단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야월교회 심재태 담임목사는 “순교자들이 보여줬던 순교신앙을 되새겨야 할 때”라며 “그때 당시순교자들의 신앙을 돌아봄으로써 우리 신앙의 성숙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신규 기자2020-02-26

한국전쟁 발발 ‘70년’ 한반도 평화통일 희년돼야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지 5년, 해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의 적막함을 찢는 포성을 시작으로 38선 이북의 북한군이 남으로 내려왔다. 해방 이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그어진 군사분계선 38선으로 인해 반도의 허리는 잘렸고 이데올로기의 논쟁으로 남한사회는 혼란 그 자체였다. 개전 후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점령당했고, 한 달여 만에 낙동강 남서부 일부지역을 제외한 남한 지역의 90% 이상, 인구로는 92%가 북의 수중에 넘어갔다. 그러나 유엔연합군의 참전으로 시행된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1950. 9. 15)의 성공으로 국토 회복과 통일을 눈앞에서 보는 듯 했다. 하지만 11월 25일과 26일에 중공군의 막대한 병력을 동반한 인해전술로 후퇴해 휴전선 인근에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뤄지기까지 동족상잔은 계속됐다. 이 전쟁으로 수많은 피난민과 이산가족을 양산시켰다. 한국교회의 피해도 결코 적지 않았다. 장로교의 경우 파괴된 교회당만도 467개, 완전 소실된 교회당도 152개나 됐다. 또 장로교 177명, 감리교 44명, 성결교 11명 등의 지도자들이 납치됐다. 수많은 성도들도 공산군의 총칼에 순교 당했다. 대표적으로 전남 영광군의 염산교회에서는 77명의 성도들이 희생됐다. 구약 레위기 25장 8~10절에서 하나님은 ‘희년’을 언급하셨다. 애굽에서의 해방을 기념해 7년마다 시행되는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후 50년째 되는 날에 모든 자들에게 빚을 탕감하고 노예를 해방시켰다. 한복협 명예회장인 김명혁 목사는 “한국전쟁이 우리 민족의 가슴 픈 역사이지만 한국교회에 있어서 매우 귀중한 사건이었다”면서 “피난처 부산에서 회개운동이 일어났다. 이제 한국교회는 전쟁이 재발되지 않도록 민족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이 이뤄지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회는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인 올해를 ‘남북평화통일의 희년’으로 선포하고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로 마음을 모아야 할 때다.

유사라 편성PD 2020-02-19

주일이면 교회에 출석해 예배를 드려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몸이 아프거나 혹은 개인들의 사정으로 인해 교회 출석을 못해 주일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요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로 인해 교회에서 2·3차 감염자들이 생기게 되면서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기가 신중해진 시기이다. 이처럼 직접 교회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싶지만 그러한 형편이 되지 못하는 성도들을 위해GOODTV는 주일 편성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비록 교회에서 성도들을 직접 만나고 함께 예배를 드릴 수는 없지만 GOODTV와 함께 은혜로운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예배실황’을 편성한 것이다. 이 예배실황은 아침 6시 2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연속으로 방영된다. 먼저 오전 6시 20분 만나교회(담임 김병삼 목사)의 예배실황중계를 시작으로 7시 20분 분당우리교회(담임 이찬수 목사), 8 시 10분 꿈의교회(담임 김학중 목사), 9시 여의도순복음교회 주일 2부 예배 생중계(담임 이영훈 목사), 10시 광림교회(담임 김정석 목사), 11시 오륜교회(담임 김은호 목사), 12시 사랑의교회(담임 오정현 목사), 오후 1시 여의도순복음교회 주일 4부 예배 생중계(조용기 원로목사)로 방송된다. 각 예배실황마다 50분에서 60분 편성으로 교회의 실제 예배 시작부터 설교 끝까지 시청할 수 있다. 특히 오전 9시와 오후 1시에 편성돼 있는 프로그램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주일예배 생중계다. 실제 교회에 출석한 성도들과 동일하게 실시간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그 외에도 오후 3시 부산 수영로교회(담임 이규현 목사), 오후 4시 새에덴교회(담임 소강석 목사)의 예배실황도 준비돼 있다. 주일예배 실황은 GOODTV 어플을 통해서도 생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유사라 편성PD 2020-01-30

아이들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꼭 닮은 성악가이자 지휘자 박성민 씨. 베트남 고아들에게 노래로 삶의 희망을 제시하고 이끌어가는 ‘미러클합창단’을 창단한 장본인이다. “내 뜻인 것 같았지만 돌아보니 모두 주님의 인도하심이었다”고 고백하는 주님의 참된 일꾼인 박성민 씨의 신앙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영국 유학 중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현재 베트남 하노이에 거주하고 있는 박 씨는 결혼을 계획하고 고민하던 중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신앙인으로서 보다 의미 있는 비전을 품게 됐다. 이를 위해 한국보다는 베트남에서 사역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아예 베트남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박 씨는 당초 한국에 있을 때 다녔던 교회에서 탈북민을 섬기는 사역을 감당했다. 경제적 목적보다 이들을 위해 사랑으로 보듬는 사역에 매진했다. 이를 계기로 ‘성공 여부는 하나님께 달린 것 이고, 옳은 일이면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베트남에 정착한 후 1년 만인 2013년 ‘미러클합창단’을 창단하게 됐다. 하나님께서 합창단으로 사람을 보내주신 덕분에 15명으로 시작한 합창단원이 현재 80명으로 4배 이상 늘어날 만큼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합창단의 운영은 모두 후원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 씨가 베트남에서의 사역성과와 관련해 공로상을 받아도, 후원은 크게 늘어나지 않아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어려움은 창단 초기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어려운 아이들을 향한 사랑의 도움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다. 박 씨의 사역에서 과연 우리도 이렇게 그리스도의 향기 나는 크리스천의 삶을 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박성민 씨의 간증은 2월 5일(수) 오전 9시 10분에 방영된다.

유사라 편성PD 2020-01-16

온 몸으로 우리에게 웃음을 주었던 건강한 ‘몸짱 개그우먼’ 김혜선. 그 웃음 뒤엔 그녀의 말 못할 눈물이 가려져 있었다. 어느 날 돌연 TV에서 사라졌던 그녀는 몇 해만에 다시 돌 아왔는데 더 씩씩하고 강해진 모습이었다. 그녀를 변화시킨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었다. 신앙의 힘으로 다시 무대에 선 김혜선은 “세상을 이길 가장 강한 방패를 얻었다”고 고백한다. 그녀의 인생을 바꿔 놓은 신앙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어느 날 훌쩍 독일로 떠난 김혜선은 지난 2018년 11월 독일인 스테판 지겔 씨와 결혼해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유학 중에 남편을 만났고 결혼 전까지는 한국과 독일을 오고 가는 장거리 연애를 이어왔다. 지난 2011년 개그맨 공채로 데뷔해 <개그콘서트>의 ‘최종병기 그녀’로 사람들에게 이름을 날린 그녀는 인기를 얻었고 꿈을 이뤘지만 그녀의 내면은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김혜선은 원래 ‘최종병기 그녀’같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도 아니고, 원래 운동도 싫어했던 굉장히 여성스러운 성격에가까웠다. 단지 일을 하기위해 만든 캐릭터와 실제의 본인의 성격이 자꾸 부딪히게 되다 보니 어느새 우울증에 시달리게 됐던 것이다. 너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친구가 독일로 놀러오라고 초청했다. 친구의 그 한 마디에 하루아침에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무작정 독일로 떠난 그녀. 독일에 가서도 방 안에만 있다가 친구들을 따라 교회에 나가기시작했다. 어느 날 새벽기도 중에 누군가 다정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때부터 신앙의 훈련을 단단히 받았던 것 같다고 고백한다. 본인의 옆에 늘 ‘천군마마’가 있다고말하는 개그우먼 김혜선의 은혜로운 간증은 1월 22일(수) 오전 9시 10분에 방송된다.

유사라 편성PD 2020-01-15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땅과 그 안에 숨겨진 보석 같은 풍경, 다가설수록 신비로운 이스라엘의 겨울로 떠나보자.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스라엘은 우리나라 경상도 크기에 불과한 작은 나라다. 이스라엘의 도시들 가운데 ‘베들레헴’은 사시사철 많은 여행객들이 찾아오지만 특히 겨울에는 유독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성경에 예수님이 태어난 마을로 기록된 곳이기 때문이다. 베들레헴에는 ‘스타 거리’가 있다. 이곳은 큰 별이 동방박사들을 예수님의 탄생 장소까지 인도했던 거리로 알려져 있다. 베들레헴에는 기독교 최대의 성지인 ‘예수 탄생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2000년 전 아기 예수가 태어났다는 허름한 마구간 자리에 들어서 있다. 건물이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성지 중 옛 모습을 간직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라고 한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매우 비좁아 몸을 숙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어 이 문을 ‘겸손의 문’ 이라고 부른다. 당초 4~5세기 비잔틴 시대에는 매우 높은 문이었다. 하지만 십자군 시대에 아치형 문으로 줄어들었고, 오스만 터키 때에는 더 낮은 문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교회의 안전을 위해 말을 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입구를 줄여버린 것이다. 이 교회 안에는 작은 동굴이 마련돼 있다.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들려 하룻밤 묵었다는 마구간을 나타낸 것이다. 그 동굴 안에는 작은 별 하나가 바닥에 새겨져 있는데 바로 예수가 태어났다는 자리로 알려진 지점이다. 거리거리마다 당시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고 성경의 이야기를 직접 볼 수 있는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1월 20일(월) 오후 2시 20분 GOODTV 채널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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