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우 2020-11-20

성자 예수님은 성경적 효의 모범을 보였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처럼 효를 실천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에게는 구세주이시지만, 하나님 아버지 편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한 효자였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십계명 중 부모 공경 계명을 인용하며 바르게 가르쳤다(마 15:4~9, 막 7: 6~14 등). 효자 예수님의 부모 공경(효) 실천 모범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최성규 ‘효신학개론’ 참조). 1. 제5계명의 절대성 : 예수님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을 포함한 율법에 대한 자세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는 말씀 속에 잘 함축돼 있다. 2. 성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효의 모범을 보임 (1)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빌 2:6-8).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신적 위엄을 스스로 버리고 인성을 취함으로 성부하나님께 순종하시는 효의 모본을 보였다. (2)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아버지의 교훈을 인간에게 증거하셨다(요 7:16-17).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녔다. 그러므로 십자가 죽음 앞에서 인간과 동일한 고통 속에서 성부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서 성부 하나님께 대한 어떠한 원망도 없이 모든 것을 아버지께 위탁하고 인간구원의 위대한 사역을 위해 순종으로써 죽음을 맞았다(눅 22:42). 3.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 (1) 예수님은 어린 시절부터 목수였던 아버지 요셉을 도움으로써 효를 실천했다. (2) 예수께서는 가나의 혼인잔치 집에서 모친의 소원에 대한 효를 실천했고(요 2:1-12), 십자가 죽음 앞에서 아들의 죽음에 따른 고통과 허전함을 생각한 예수께서는 제자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도록 부탁했다(요 19:27). 이기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성경적 효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효를 생각하면 무슨 효인들 못할 게 없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이며, 효의 에너지이다. 효는 인간 행복을 위한 사랑의 명령이다. 예수님처럼 성경의 효를 실천하고 가르치자. 효가 살면 가정·교회·나라도 산다.

김양규 2020-11-19

우린 흔히 한약이라 하면 보약만 생각한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한약이라 하면 보약(補藥)인 줄만 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약에는 보약뿐 아니라 사약(瀉藥)도 있다. 여기서 사약이라고 하면 죽을 사(死)자가 아니라 ‘깎을 사’, ‘쏟을 사’를 의미한다. 보약은 허할 때 쓰는 약이요, 사약은 실할 때 몸을 깎는 약이다. 보약과 사약을 논하려면 먼저 ‘허증’과 ‘실증’을 알아야 한다. 한의학의 용어 중에 허증(虛症)과 실증(實症)이 있다. ‘허증’이란 허약하다는 말로 ‘원기가 부족한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원기가 부족할 때는 원기를 돕는 약을 쓴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보약이다. 간심비폐신(肝心脾肺腎)의 오장 중에 어느 곳의 원기가 부족한지 그 환부를 알아내어 처방을 한다. 보약이라고 다 같은 보약이 아니다. 병증에 따라 어느 부위를 보하는지 모두 다르다. 기가 허한 사람에게는 ‘사군자탕’, 혈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사물탕’을 쓰는데 기와 혈이 모두 부족한 사람에게는 ‘사군자’에다 ‘사물탕’ 즉 ‘팔물탕’을 쓴다. 팔물탕에 두어 가지를 더 넣으면 ‘십전대보탕’이 되고, 여기에 녹용을 가미하면 ‘녹용대보탕’이 된다. 한방의 보약개념은 이렇다. 반면에 실증도 있다. ‘실증’이란 원기가 강하다는 뜻이 아니라 사기(邪氣) 즉 병 기운이 가득한 것을 말한다. 그래서 사기가 가득할 때는 사기를 깎는 약을 쓴다. 그게 바로 사약이다. 사약이란 원기를 보하는 것이 아니라 사기, 즉 병 기운을 쳐내는 치료약을 말한다. 감기를 예로 들자면 감기 초기에는 열이 나고 온몸이 아프며 기침과 함께 콧물이 흐른다. 이때는 사기 즉 병 기운이 가득한 때이다. 이 경우 감기 치료를 위해 깎는 약인 사약을 쓴다. 사약은 오래 쓰지 않는다. 2-3일 정도면 끝난다. 하지만 감기가 오래도록 낫지 않고 별다른 증상 없이 잔기침만 나고 자꾸 피로해진다면 이때는 사약보다 보약을 쓸 때다. 즉 감기를 치는 약만 써서는 안 되고 원기를 북돋우는 약을 복용해야 한다. 이렇게 할 경우 원기가 회복돼 남아있는 감기기운을 퇴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허리가 아플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 실증일 때는 어혈과 담을 푸는 사약만을 쓴다. 하지만 오랜 기간 낫지 않아 허증에 빠지면 보약을 처방해야 한다. 원기를 도와주지 않으면 사약만으론 치료가 안 되기 때문이다. 모든 병이 다 같은 원리다. 깎는 약을 써야 할 때인가, 보약을 써야 할 때인가를 잘 감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잘 하는 의사를 ‘명의’라고 한다. 한 마디로 허증과 실증을 가려내 보법과 사법을 적절히 해야 병이 치료가 된다. 오늘날은 옛날처럼 먹을 걸 먹지 못해 영양실조로 오는 허증보다는 너무 많이 먹고, 피우고, 마셔서 오는 실증이 많다. 그래서 사실 실증을 치료하는 사약이 더 필요한 시대다. 약물요법 외에도 사법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다이어트라든지 헬스는 모두 사법이다. 몸속에 가득찬 독소를 빼내는 요법이다. 이처럼 요즘은 바야흐로 사법의 시대다. 우리 몸은 허할 때는 원기를 보하고, 실할 때는 사기를 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육신도 이럴진대 영은 어떨까. 영에도 허증과 실증이 있다. 영의 허증은 어떤 것인가?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 성분에서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온전한 성령의 열매가 못된다. 성령의 열매는 아홉 가지가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아홉 가지 성분이 골고루 깃들었을 때 비로소 열리는 아름다운 하나의 열매이기 때 문이다. 허증은 이들 중 어느 것이 부족한 상태이다. 어느 것이 부족한지 아는 진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을 강화·보충해줘야 한다. 그게 영혼의 보약을 써는 보법이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두 손을 벌린다. 영적 보약 처방을 기도하는 것이다. 영의 실증은 또 어떤 것인가. 실증은 영적인 무거운 짐이다. 제거해야 할 무거운 죄, 그 지고 있는 죄의 짐을 말한다. 실증의 치료엔 사법을 쓴다고 했다. 쳐내고 꺾어내고 잘라내고 떨쳐버리는 치료다. 그때 우리는 성령 안에서 새로운 다짐과 결심, 고백의 기도를 드린다. 이때 하게 되는 기도는 ‘주옵소서’가 아니라 ‘하겠습니다’라는 의지의 기도가 된다. 영혼이 살아야 육체가 산다. 살리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마 6:31~32)의 문제가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이방인들은 거기서 생명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르다. 하나님의 나라, 그분의 의에 생명을 건다. 거기에 모든 것이 있음을 아는 까닭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리스도인들은 영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다루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이영훈 위임목사 2020-11-15

요즘 어느 신문, 어느 방송을 봐도 감사를 고백할만한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귀에 들리는 소식들은 우리를 두렵고, 우울하고, 분노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이야기들뿐이다. 벌써 10개월 넘게 지속되는 코로나19로 전 세계 약 5,000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사망자도 약 130만 명이나 생겨났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년 하반기로 예상되는 백신과 치료제 보급이 이뤄질 때까지 현재의 확산세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신체적, 경제적 피해를 당했다. 연쇄 작용으로 사회 분위기가 어두워지며 심리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급증했다. 그렇다고 사회 다른 분야에서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일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빈부의 격차는 오히려 심해지고, 정치권의 권력 다툼도 여전하다. 북한의 도발은 끊이지 않는데다 최근 몇 년간 급격히 상승한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서민들의 신음이 깊어져만 가고 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감사할 일이 없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감사할 것을 요구하신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씀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감사에있다. 그런데 주변에 고난만이 가득한 상황 속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이러한 요구는 부당하고 무리한 것처럼 생각된다. 우리는 감사가 어떠한 사건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만약 감사가 일종의 감정이라면 우리는 모든 일에 대해서, 특히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일들에 대해서 감사할 수 없다. ‘감정’으로서 고난에 대해 감사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평판을 의식한 거짓된 모습일 것이다. 감사는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다. 좋은 일이 다가올 때나, 어려운 일이 다가올 때나 감사의 태도를 가진 사람은 감사로 그 일에 반응한다. 그러한 면에서 우리에게 훌륭한 감사의 모범을 보여준 사람들이 있다. 바로 400년 전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청교도들이다. 그들이 마주해야 했던 삶의 자리엔 분명 지금 우리가 마주한 어떠한 고난에도 비교하기 어려운무겁고 힘겨운 고난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낯선 환경 속에서 질병과 굶주림 그리고 원주민과 야생 동물의 위협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무려 44명의 사람들이 추위와 기아로 사망했다. 그들의 눈앞에서 사랑하는 자녀들, 부모,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음 해 곡식을 뿌려 수확한 뒤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그들이 감사한 것은 단지 수확물에 대한 것만 아니었을 것이다. 농사일에 서투르고 노동력이 부족했던 그들이 거둔 수확은 감사하기엔 너무 적었다. 그들은 여전히 굶주렸으며, 혹독한 추위가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허락된 모든 시간과 상황을 선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믿음 때문이다. 감사의 태도는 모든 일이 합력해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에서부터 나온다. 오늘날 고난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할 뛰어난 정책이나, 새로운 기술, 막대한 지원이 아니라 400년 전 선조들이 소유했던 감사의 태도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에서 고난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고난 가운데 매몰돼 원망과 불평 가운데 살지 말자.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감사의 태도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만이 빛 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정용구 선교사 2020-11-12

코로나로 인해 많은 변화가 찾아 온 2020년이 어느덧 서서히 겨울로 진입하고 있다. 매년 이때쯤은 서서히 한해를 마감하고 내년을 계획하는구상들을 시작하는 시기다. 올해는 코로나의 장기화로 내년을 계획하는 것이 불투명한 시기가 됐다. 이러한 시대를 살고 있는 선교사들도 내년을 계획하는 일이 쉽지 않다. 선교지로 가는 항공편이 조금씩 열리지만, 선교지의 생활이 안정권으로 자리를 잡기에는 위험부담과 변수가 많은 시기다. 이에 필요한 일들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선 지금까지 자신의 사역에 대한 정리의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의 사역들, 관계된 사람들, 기도편지, 사역사진, 후원해 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인사,자신의 사역지에 대한 연구 자료 등을 시간적 여유를 두고 정리를 해 보는 것이다. 정리를 통해 자신과 사역들을 돌아보고, 더욱 분명한 계획을 세우는 디딤돌이 될 수 있는 귀한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코로나 시대의 특징으로 사람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집안 장식에 관련된 인터넷 홈페이지나, 핸드폰 어플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심지어 TV 프로그램에서는 ‘집을 정리 정돈해 주는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시청률이 서서히 높아진다. 실제로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은 정리정돈이 안된 연예인들의 집을 ‘집 정리 전문팀’이 방문해서 집안과 살림들을 살핀 뒤에 제3자의 입장에서 산뜻하게 정리를 해 준다는 내용의 프로그램이다. 이 ‘신박하다’라는 뜻은 ‘이틀 밤을 머물다’라는 원래의 뜻보다도 ‘새롭고 놀랍다’란 뜻을 지닌 신기하면서도 참신한 경우에 사용되는 ‘신조어’가 됐다. 실제로 정리된 자신의 집을 보면서 집 주인들은 감탄사를 이어간다. 이 프로그램은 제3자가 이전에 보지 못했던 공간을 보거나 더 새롭게 정리를 잘 할 수 있다는 취 지를 가지고 있다.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많은 사역으로 인해 정말 제대로 자신의 삶을 정리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여러 선교사역 가운데 꾸려진 짐이나, 선교용품들, 계속적으로 누적되는 스케줄로 인해 후속 조치를 못한 많은 일들이 널려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코로나 기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자신과 가족을 돌아보고, 무엇보다 영적으로 주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얼마 전 KWMA에서 선교사 자녀들을 위해 제작된 방송에서 “코로나로 힘든 것도 많았지만, 너무 바쁘던 아빠가 쉼을 가져서 좋다”라는 선교사 자녀의 이야기가 뇌리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 불투명해진 코로나 이후의 사역에 대해서 성급하게 뭔가 쫓기듯이 계획하기보다는, 오히려 이 기간을 차분하게 자신의 삶과 선교사역을 돌아보고 정리하기를 기대한다. 이는 선교사만이 아니라 후원교회와 파송단체도마찬가지다. 그동안 제대로 선교사를 잘 후원했는지, 파송한 선교사를 위한 지원과 동역을 제대로 했는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재점검해야 한다. 선교에 대한 신박한 정리를 통해서도 이전에 보지 못한 선교자원이 발견되고, 선교 동력도 발견될 수도 있다는 기대해 본다.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가 길어지는 의외의 상황에서 많은 ‘정답’들이 나올 수 있다.

김양규 2020-11-11

사람의 수명은 정해진 것일까. 질병에 걸리는 것과 건강은 운명이나 숙명일까? 아니면 자기하기 나름일까?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하나님의 섭리로 푼다. 하지만 신의 뜻이라는게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모른다는 말과 같다. 사람의 죽음의 원인으로는 ‘생활습관’ 50%, ‘생활환경’ 25%, ‘사고’ 5%이며 ‘유전’이나 ‘체질적인 이유’는 20%를 차지한다. 다시 말해 20%만 선천적인 이유이며 후천적으로 자기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당하는 것이 무려 80%라는 뜻이다. 평소에 환경이나 습관을 조심해서 관리하면 당하지 않을 수도 있는 죽음을 애매하게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기도 하다. 죽음뿐 아니라 병도 그렇다. 병에 잘 걸리는 체질에 대해 선천적인 이유를 말하지만 그것도 사실 불과 20%에 불과하다. 어느 사람이든 그 가계에 이런저런 유전적인 소인이 없는, 완벽히 건강한 집안이 어디 있을까? ‘격세유전’이라고 해서 한 세대로 뛰어 넘어 유전되는 것도 있는데 그것까지 포함하면 우리 모두에게는 모든 병에 걸릴 DNA는 항상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의 노력과 관리 때문으로 봐야 한다.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나쁜 음식, 독한 음식을 먹으면 몸속에 그대로 쌓여 병이 된다. 좋은 음식, 맑고 깨끗한 음식을 먹으면 몸이 또 건강하게 된다. 지금 당장은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일정한 임계의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몸으로 드러나게 된다. 평소에 운동을 하고 몸 관리를 하는 사람은 그게 다 몸으로 드러나서 병치레를 하지 않으며 건강을 유지할 수 있지만 평소에 이런저런 무리수를 두는 사람은 때가 되면 다 몸으로 나타나서 결국 그 값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다. 성격이나 혈액형도 2대 8의 원리가 타당하다.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수 있는 비율은 20%, 후천적인 교육이나 자기계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은 80%다. 유전적이거나 또는 체질적인 연약함은 후천적인 자기계발과 학습으로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평소에 성결의 훈련을 하는 사람과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 맺히는 열매가 다르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성경말씀이 바로 그런 것 아닐까. 임상을 하면서 내린 결론은 사람의 질병이나 수명은 성품에 갇힌다는 것이다. 건강관리와 수명관리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말이 맞다. 성격이 느긋하고 부드러운 사람은 대체로 오래 살고, 늦게까지 건강을 유지한다. 2대 8의 원리에서 당연 8이 중요한데 그건 곧 생활습관과 환경이다. 생활습관과 환경을 바꾸면 지금보다 훨씬 건강해지고 오래 살 확률이 80%는 더 된다. 성경에 보면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말씀이 많이 나온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도 염려, 걱정, 근심하는 시간에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하면 어떨까. 신령한 그리스도인은 근심과 걱정을 기도로 대신하기에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지만 믿음이 적은 이는 기도 대신에 근심과 걱정, 염려와 불안, 긴장으로 이어진다. 감사와 기쁨이 없다. 결국 구조의 문제이다. 구조가 바뀌어야 기능이 좋아지는데, 구조를 고치지 않고 기능만 기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의학에서는 우리의 몸이 기와 혈로 이뤄져 있다고 본다. 기(氣)는 원기 즉 생명력이고, 혈은 피를 포함한 모든 수분이다. 기는 항상 가볍게 팽팽 잘 돌아야 건강하고, 혈은 항상 맑고 깨끗해야 건강한 법이다. 그래서 건강한 생활습관과 환경은 기를 가볍게 하고, 혈을 맑게 하는데 주안점 을 둔다. 기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는 기가 가벼운 음식을 먹고, 그러한 생각과 말은 물론 그러한 감정을 가져야 한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용서하고 용서받는 것만큼 기를 가볍게 하는 일은 없다.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큼 기가 가볍게 되는 일은 없다. 혈을 맑게 하려면 약 알칼리성의 음식을 담백한 상태로 적게 먹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네 입맛을 자극하는 것은 모두 설탕, 소금, 기름기가 많이 들어가 있다. 이런 음식들은 맛은 있지만, 피를 탁하게 만들어 만병의 원인이 된다. 아무리 기가 가벼워도 혈이 맑지 못하면 허탕이다. 중년 이후의 사람들에게는 피 때문에 생기는 병이 많다. 피가 탁해져 생기는 병들은 곧바로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심근경색, 뇌경색, 당뇨, 고혈압, 동맥경화증등은 사실상 모두 피와 관련된 질병들이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다. 성전을 성전답게 건사하기 위해 우리는 신령한 연습을 해야 한다. 성경은 그것을 ‘거룩’이라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건강’이라 말한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 의하면 ‘살리는 것은 영’이다. 영이 살아야 육이 산다. 영이 죽으면 육도 죽는다. 영적으로 거룩하고 깨끗해지면 그 영혼이 거하는 집인 몸은 자연히 깨끗하고 건강해진다. 건강도 연습과 훈련을 해야 한다. 디모데전서에 있듯이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 육체의 연습과 경건의 연습을 많이 함으로 건강연습도 함께 이뤄가는 멋진그리스도인들이 됐으면 참 좋겠다.

김시우 2020-11-11

최근에 ‘성경적 효’에 대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성경적 효’란 성경말씀으로 돌아가서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성경의 말씀 실천이 결여된 것이 큰 약점이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등에서처럼 성경은 말씀순종, 사랑실천을 강조한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는 행함을 등한시했다. 야고보서 2장 26절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증거 한다. 이신칭의의 교리를 선포하는 로마서도 12장부터는 구원받은 성도가 일상적인 삶에서의 방향성에 대해 다룬다. 그러나 최근 사회에서 행함이 없는 기독교인들을 보고 오히려 교회를 걱정한다. 이때에 의식 있는 기독인들이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해법을 찾아 실천해야 한다. 목회 신학자인 바클레이는 현대의 위기는 신학적이나 철학적인 문제가 아닌 도덕의 문제, 윤리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교회가 늘어나고 목사와 성도의 숫자는 많은데도 비난을 받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교회에서 시대에 맞게 바로 가르치지 못하거나, 예수사랑과 사랑실천을 좀 더 체계화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목사들의 설교가 ‘기도와 믿음’의 중요성 총론만 외치고, 구체적 행함의 각론 제시가 없다. 하나님의 도덕법인 십계명 즉 대신(對神)계명과 대인(對人)계명을 바로 가르치고 지키지 못한 연고다. 성경은 ‘명령’과 ‘약속’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분의 약속을 믿는 것이 바로 성경적 효이다. 성산효대학원대학교 설립자 최성규 목사는 성경 속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7대 실천’항목으로 구체화했다. 1.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김, 2. 부모·어른·스승공경, 3. 어린이·청소년·제자사랑, 4. 가족사랑, 5. 나라사랑, 6. 자연사랑·환경보호, 7. 이웃사랑·인류봉사. 이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모범을 보이신 것이다. 이제 각 가정의 (조)부모와, 교회의 목회자들이 성경7효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와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칭송을 받아 개인이 잘되고 장수하고(엡 6:2-3) 교회도 부흥(행 2:47)될 것이다.

권득칠 총장 2020-11-10

지금으로부터 503년 전,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1483∼1546)는 비텐베르크 성 교회게시판에 ‘95개의 논제’를 ‘면죄부의 효력에 대한 해명을 위하여’라는 부제와 함께 붙였다. 면죄부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었던 로마 가톨릭교회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진리를 향한 투쟁의 과정 속에서 루터는 복음의 본질을 가리고 있는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의 권위주의, 교권의 남용 등을 폭로했다. 이러한 루터의 외침은 마침내 중세의 암흑을 깨뜨리고 복음·인간성 회복을 향한 근대라는 역사의 새 차원을 열었다. 우리는 이것을 ‘종교개혁’이라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역사적 사건인 종교개혁이 실로 루터라는 하나의 인격 속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루터는 인격의 근원을 믿음으로 표현했다. 바로 ‘믿음 없이는 인격도 없다’는 것이며, 이 인격(신앙인격)에서 자유가 나온다는 말이다. 오늘도 독일 사람의 약 3분의 2가 루터의 사상으로 살고 있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의 선진복지국가들도 루터의 사상 속에서 그들의 복지를 발견했다. 기타 서양의 모든 개신교 국가들이 루터로부터 반항 정신(프로테스탄트 정신)을 배웠다. 그러면 루터의 종교개혁 근본원리는 무엇일까? 첫째는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것은 오직 신앙만으로 된다는 것이다. 사실 종교의 본질은 신(하나님)과의 내면적 관계요, 외적인 제도나 의식은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교회의 제도나 의식이 하나님과의 내적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방해가 될 때는 일체를 배제해야 한다. 특히 사제의 직분은 신분이 아니라 기능을 수행하는 권한이요 능력이기에, 본래적일 수 없고 누구나 사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루터가 선언한 소위 ‘만인 사제론(만인제사장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 교회는 목회자들은 물론 평신도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제사장(사제적) 역할을 감당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오늘날 루터의 만인사제론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만인사제론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실천적 과제로서 평신도들의 사명을 깨닫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는 루터의 종교개혁의 근본원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과 생활의 절대규범으로 믿는 성서주의다. 이것은 교회의 전승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전통주의와 대립한다. 성서야말로 신앙의 중심이 되는 하나님의 은총과 신앙의 내용이 되는 하나님의 진리를 계시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루터는 언제나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로잡혀 있다’고 했다. 루터의 생애와 종교개혁의 비밀은 바로 이 자유 속에 있었다. 그리고 이 자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양심 속에서만 가능했다. 이 두 가지 원리에 의해 신자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중재자로서 사제를 필요로 하는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의 제도와 대립하고, 금욕과 도덕을 권장하는 수도원을 부정하게 된다. 루터의 대표작으로서, 종교개혁 3대 논문 가운데 하나인 ‘그리스도인의 자유’(1520)에서는 그리스도인이 ‘구원의 현실’로서 ‘믿음 안에서 누리는 자유’에 대한 루터의 외침을 소개한다.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이웃을 위해서 산다. 믿음으로는 그리스도와 같이, 사랑으로는 이웃과 같이 사는 것이다. 그는 믿음을 통해 자기를 넘어서 하나님께 도달하고, 사랑을 통하여 자기를 바쳐서 이웃과 같이 있다.”

신동식 목사 2020-11-09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 많은 이들의 정의가 있습니다. 아마도 사람 수만큼 될 것입니다. 예수 믿음을 하나로 정의하기에는 무리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믿음에는 공통적인 고백과 확신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 고백과 확신입니다. 이러한 확신과 고백이 없다면 믿음은 소유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믿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하나님은 내 편’이라는 확신은 분명해집니다. 수많은 사람이 믿음을 말하고 정의를 내리지만, 그 골자는 같습니다. 하나님께 내 편이 되신다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창조주이시고 구속주이신 하나님께서 내 편인데 이 땅에서 무엇이 두렵고, 부럽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확신이 무너질 때 세상은 무섭게 보이고 부럽게 다가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 다양한 자기편을 만들어 냅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끈끈함은 자기편이라는 의식에 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가족은 내 편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가족은 화목합니다. 이것은 부부 사이에도 동일합니다. 부부가 가장 행복할 때는 적어도 배우자는 자기편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입니다. 세상에 실패해도 적어도 배우자는 자신을 지켜주고 함께 한다는 믿음이 있을 때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도, 부부도 불행할 때는 자기편이라는 확신이 무너질 때입니다. 그러면 함께 사는 것이 지옥이 됩니다. 자기편을 만드는 일에 열심을 내는 이유는 사람이 가진 연약함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홀로 사는 것이 주는 외로움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함께 사는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영광을 가지셨기 때문에 사람도 함께 사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은 자신과 함께하는 사람과 살았습니다. 함께 삶으로 외로움을 이겨내고, 부족함을 채워주었습니다. 자신과 함께 사는 사람이 영원한 배필 즉 자기편임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놀랍고 위대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사랑도 사라지고, 능력도 사라졌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들어온 죄는 함께 사는 사람이 자기편인지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처절함은 가인과 아벨의 관계에 나타났습니다. 아벨을 죽인 가인은 아벨이 자기편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없어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사람의 죄악은 반복적으로 재생산됐습니다. 노아 시대는 하나님이 사람을 보시고 후회했습니다. 그래서 홍수로 심판했습니다. 하지만 노아라는 그루터기는 남겨놓았습니다. 하지만 바벨의 사람들이 또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로 인해 열국으로 흩어지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타락한 세상에서는 자기편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됐습니다. 그리고 죽는 그 순간까지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돈이 결부되면 서로 믿지 않습니다. 형제는 어떻겠습니까? 세상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잠시 동안 자신의 편이 돼줄 사람을 찾습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돈이 함께 합니다. 맘몬의 힘으로 자기편을 만듭니다. 맘몬이 힘을 발휘할 때까지 관계는 유지됩니다. 하지만 돈이 힘을 잃으면 부모도 자식을 버립니다. 자식이 부모를 버립니다. 형제지간에 싸움이 나고 서로 돌아보지 않습니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도 인격적인 관계가 지속되는 것이 힘이 듭니다. 돈이라는 권력이 없으면 관계가 지속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세상입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이러한 현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누구도 영원한 내 편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도 죄가 살아있는 한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영원한 내 편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내 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 됐을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것도 끝까지 변함없이 사랑하셨습니다. 그 징표가 바로 십자가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입니다. 세상은 다 변해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십니다. 항상 신실하십니다. 다윗은 시편 27편 10절에서 ‘부모가 나를 버려도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신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부모도 나를 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을 내 편이라는 고백을 성경은 ‘우리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하나님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 하나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은 우리 하나님에 대한 확신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확신할 때 세상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창조주가 우리 하나님이신데 피조 세계를 의지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믿을 때 세상에서 다가오는 고난과 어려움과 아픔도 기꺼이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입니다. 이 믿음으로 오늘을 이기고 내일을 맞이합시다.

김시우 2020-11-05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인천순복음교회 최성규 목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김과 말씀 순종(출 20;12. 신 5;16, 딤전 5:4)에 의한 학문적 업적과 건의로 지난 2007년 8월3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여야 반대표 없이 ‘효행 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세계 최초로 제정 공포됐다. 이 법률 제 9조에 의하면 “효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자녀들의 효 의식 고취를 위하여 10월을 효의 달로 정한다”라고 돼 있다. 성경의 효에 입각해 기독교의 원형인 사랑실천운동을 바탕으로 설립된 성산효도대학원대학교의 벽면에는 매년 10월이 되면 하나님의 계명인 부모공경 즉 효를 실천·장려하고자 ‘10월은 효의 달’ 대형 벽걸이를 게시한다. 이를 통해 성경적 하모니(시편 133:1-3) 효 문화 창달에 힘쓰고 있다. 지난 10월 29일에는 전국에서 아들 손자 증 손자 4대, 3대 가족이 함께 거주하면서 서로 사랑하고 공경하는 효행실천으로 온 가족이 화합을 이뤄 ‘범국민하모니운동’에 모범이 돼 온 가족을 선정해 성산하모니가족 대상 시상식을 가진 바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물론 더욱이 한국교회에서 십계명의 제5계명에 근거한 ‘부모 공경’ 즉 효에 대한 법의 존재에 대해서, 또 지난 10월이 효의 달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여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더군다나 오늘날 ‘효’를 말하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효를 ‘유교의 전유물’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부모공경 즉 효는 가장 성경적인 것이요. 가장 한국적이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온 세상에 가르쳐 지키게 함은 물론 보편화해야 할 정신이요. 문화이다. 죄 많은 세상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 대속제물과 화목제물로 오신 성자 예수님은 지고지순의 효자로 성부 하나님 아버지와 육신의 부모에게 효의 모범을 보이셨다. 사도바울도 강조한 대로 효복이 약속돼 있는 첫 계명(엡 6:1-3)인 효를 오늘날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먼저 가정과 교회에서 가르치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효(HYO)의 정신을 근원으로 하는하모니(세대간의 조화, Hamony of Young and Old)의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면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아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실 것’(행 2;47)이다.

정용구 선교사 2020-11-04

코로나의 위기 가운데 선교사들을 통해 여러 소식들이 들려온다. 그런데 코로나가 아닌 뜻밖의 사고로 어려움을 당한 선교사 가정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더욱 철렁하고 가라앉는다. 얼마 전에도 선교지에서 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은 선교사 자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상태를 보니 위중한데, 워낙 오지이기에 현지 병원에서는 기본적인 진단만 하고 지켜보자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해왔다. 선교지에서도 응급상태가 되면 현지 의료체제가 빈약하거나 진료 방식이 달라서 위급상황일 경우에는 한국의 119로 전화를 걸어서 응급의료 전문의에게 전화 상담을 한 경험이 있다. 이번의 경우에도 선교사와 119를 연결해 응급 상태에 대한 위기관리를 하도록 선교사에게 소방청의 재외동포 응급의료팀과 연결해 진단받도록 했다. 결국 위중한 상태와 응급 상태이기에 초기 대처를 신속하게 하기 위해서는 선교지에서 에어 앰뷸런스(Air Ambulance) 긴급후송 시스템을 이용해 제일 가까운 이웃 국가로 이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료상담을 받고 긴급 후송을 진행하게 됐다. 하지만 넘어야 될 벽이 생겼다. 국가 간에 응급 환자를 위한 후송에는 ‘에어 앰뷸런스’ 시스템을사용해야 되지만 그 금액이 상당히 고가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비행기 내부에 의료시스템이 탑재돼 있고, 환자의 응급 상태를 치료하거나 의료 조치를 취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탑승한다. 1시간 정도 에어 앰뷸런스 이용 시 보통 한화 2,000만 원, 세 시간 정도의 경우는 6,000만 원이 소요된다. 경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비행기 좌석을 6석 정도를 구매해 침대칸으로 만들고, 의료진을 함께 태우게 된다. 국제단체나 대기업에서는 이러한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에어 앰뷸런스 회사에 멤버십 비용을 보험금처럼 지급하고, 위급한 상태가 되면 에어 앰뷸런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대비한다. 혹시나 정부의 지원 시스템 여부를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했으나, 에어 앰뷸런스는 워낙 고비용이라 아직 국민을 위한 에어 앰뷸런스 시스템 지원이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2009년 당시 선교계에서는 테러와 여러 위기를 경험하면서, 몇몇 선교단체가 연합해 고위험군 지역에 사는 선교사들만이라도 이런 시스템을 준비해 위기의 시간을 대비하자는 논의와 세미나도 가졌다. 그러나 그 비용부담 때문에 더 발전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작은 금액이라도 선교사의 위기관리를 위한 특별 기금을 준비하는 일이다. 일부 기업에서도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이렇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에어 앰뷸런스 회사도 이런 응급 환자 후송은 흔치않다. 따라서 고비용의 멤버십 가입비가 부담된다면 응급의료비를 후원교회, 선교단체, 선교사가 비축해 놓으면 어렵고 힘들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 시대에는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보호자가 함께 있어야 되지만, 국가 간 자가격리 규정에 따라 환자 곁을 지키지 못하는 이중삼중의 어려움이 발생한다. 이럴 경우 현지 한인 선교 사회, 한인회, 한인교회, 대사관의 긴밀한 협력체계가 큰 힘이 된다. 이번 계기를 통해 체계화하는 시간이 되고, 어렵고 힘든 선교지의 선교사들을 위한 안전관리 시스템을 좀 더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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