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교수2018-01-19

한국교회의 모습 또 다시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새로운 시간들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게 된다.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좀 더 충실하고 헌신하는 모습으로 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한 해가 지나서 연말이 되면 올해도 역시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에 실망하기 일쑤다. 이것은 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의지가 약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우리가 세우는 계획이 대부분 아주 거창하거나 또는 아주 막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 한해는 종교개혁 5백 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계획을 세웠지만, 한국교회의 현실은 더 철저한 개혁을 필요로 하는 모습으로 마감되었다. 재작년 말에 발표된 인구센서스 결과에서 개신교가 신도 수 면에서 우리나라 1위 종교에 등극하여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지난 1년 간 교계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면 1위 종교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급기야 연말에 있었던 한 대형교회의 세습 소식은 성탄절에조차 기뻐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밑 교계 분위기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종교개혁 5백 주년에 한국교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자괴적인 평가도 잇달았다. 말로는 개혁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전혀 변하지 않는, 아니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올해는 보다 실현가능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면 좋겠다. 막연하게 개혁이나 개선이라고 하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개혁되어야 하고 개선되어야 하는지를 정하는 것이다. 교회마다 정하는 새해 표어도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담으면 좋겠다. 막연하게 기도를 열심히 하고, 말씀을 열심히 읽는 것보다는 기도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고 힘쓸 수 있는 방법, 말씀을 잘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이웃 사랑에 대해서도 보다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강구하고 1년 동안 전력을 다할 수 있도록 세심한 계획을 짜면 좋을 것이다. 새해에 품어보는 소망 새해에는 한국교회가 보다 공동체적인 모습을 회복하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개교회들이 스스로 공동체라고 강조하며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보려고 애쓰고 있지만, 개교회 수준을 벗어나서 보면 다른 교회들은 형제 교회, 가족 교회가 아니라 경쟁 상대가 되어 버린다. 어떠한 중앙집권적인 권력에도 의지하지 않고 각 교회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는 종교개혁의 전통은 개교회의 이기주의로 왜곡되어 버렸다. 다른 교회는 어떻게 되든 우리 교회만 부흥하면 된다는 인식이 기독교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공동체라는 말은 개교회 안에서만 통용될 뿐 전체 한국 교회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는 다른 종교 단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교회들이 있다. 교구제로 되어 있는 성당은 물론이고 전국의 사찰 수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교회들이 있다. 이 교회들이 연합하고 협력을 한다면 이전 역사에서 한국 교회가 감당하였던 큰 일들을 행할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 개신교는 구 질서를 혁파하고 새로운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교회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다시 세우는 데 크게 일조하였다. 그래서 당시에 교회에 다닌다는 것은 매우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교회들마다 서로 경쟁하며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다른 모든 것보다도 교회의 성장이 모든 가치를 압도하고 있다. 사회학에서는 개인의 합리성이 집단의 합리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말을 한다. 개인에게는 합리적인 행위가 전체 집단에는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큰 재난 상황에서는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안전부터 확보하는 것이 합리적인 행위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서 움직인다면 무질서로 인해 결국 전체 집단을 커다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교계에서도 각 교회들이 개교회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움직이게 되면 전체 한국교회는 지금보다도 더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교회들은 더 어려운 형편에 있는 이웃 교회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신학에서 말하는 공교회성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변화는 주변부에서 사회 운동의 측면에서 볼 때, 변혁의 움직임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회 구성의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인 변방에서 일어나기 쉽다.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는 중심부에서는 변화의 움직임에 둔감하고 문제의식도 약하기 때문에 변혁의 주체가 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교회를 갱신하기 위한 대안의 가능성은 그 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교계 주변부에 위치한 이들에게 있다. 제도권에서 개혁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제도권 밖의 움직임이 더 거세질 것이고 여기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주도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은 곳에서부터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가야 한다. 중세의 사막 교부나 수도원 운동과 같이 교권으로부터 벗어난 이들이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갔던 것처럼 한국 교계에서도 새로운 바람을 필요로 한다.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불확실한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다. 요즘과 같은 탈현대적 변화가 일어나는 상황에서는 중심부의 거창한 사명 선언이나 전략적 기획보다는 주변 지역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그들에게 일어나는 실제적인 변화에 주목하면서 지도자와 구성원이 함께 자기들 나름대로의 대안을 마련해가는 ‘아래로부터’(bottom up)의 운동이 적실성을 가질 것이다. 풀뿌리의 다양한 주체들이 자기들만의 삶과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기보다 우리 스스로 한국교회의 개혁 주체로 서야 한다. 그리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과 협력하고 연합해야 한다. 새해에는 이렇게 변두리의 밑뿌리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가 한국 교회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여주봉 목사2018-01-18

지난 몇 번에 걸쳐서 성경적인 사역 방법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하나님과 동행할 때 우리는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 삶 속에서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이루어진다. 이번 달부터는 십자가 복음의 유업에 대해서 나누고자 한다. 이사야 하반부, 그 중에서도 이사야 54-66장에는 신약에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유업들이 예언되어 있다. 내가 이 부분을 나누고자 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오늘날 이 유업들을 한국교회 가운데 회복시키시는 일을 하고 계시다고 확실히 믿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결코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돌이키면 이 놀라운 유업들이 주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섬기는 포도나무교회/새물결선교회 안에서 그리고 포도나무교회/새물결선교회를 통해서 그 놀라운 유업들을 부분적이나마 전반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이사야 하반부에 나타난 신약의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유업. 이사야 선지자는 서기전 8세기에 활동했던 선지자였다. 이사야 1:1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유다 왕 웃시야 왕의 치세 말기부터 히스기야 왕에 이르기까지 약 60년간(B.C. 740-680년경) 활동한 선지자였다. 그렇지만, 이사야 하반부, 즉 이사야 40-66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 이사야 하반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 가 망하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 있는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실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 그래서 이사야 하반부의 전체 주제를 회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 가지 종류의 약속. 이사야 하반부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회복시키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그것과 함께 다른 두 가지 종류의 약속을 더 주신다. 이사야 하반부에 나오는 세 가지 종류의 약속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의 회복. 2. 예수님을 통한 인류의 구속. 3. 신약의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유업. 가장 먼저 하나님은 이사야 하반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회복시키실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 이사야 하반부의 맨 처음부터 그것이 명백하다. 이사야 40:1-2은 가장 먼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실 것을 말씀하신 구절이다. 하나님은 “위로하라”는 말을 두 번씩이나 반복하심으로써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을 강조하신다. 동시에 이사야 하반부에는 보다 근본적으로 고난의 종으로 오실 메시아를 통한 인류의 구속에 관한 약속들이 들어 있다. 사실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회복이다(사 49:5-6). 이사야 하반부에는 신약이 없이도 예수님을 통한 구속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에 관한 예언이 들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사야 하반부를 “제5복음서”, “구약의 복음”, “고대인을 위한 복음” “구약의 신약” 등으로 부른다.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들도 있다. 성경은 구약이 39권, 신약이 27권, 총 66권이다. 그런데 이사야서는 전반부가 39장, 구약의 신약이라고 할 수 있는 하반부가 27장, 총 66장이다. 신약에는 복음서가 4권인데, 이사야 하반부에는 고난의 종으로 오실 메시아에 관한 예언인 종의 노래가 네 개 있다. 신약은 침(세)례 요한으로부터 시작해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끝나는데, 이사야 하반부 역시 침(세)례 요한에 대한 예언으로부터 시작해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끝난다. 끝으로 이사야 하반부에는 신약의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 있다. 우리가 여기서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그것들이 교회 가운데 회복되어야 할 절실한 필요 가운데 있다. 그런데 나는 언급한대로 하나님께서 오늘날 한국교회 가운데 바로 그 일을 하고 계신다고 믿는다. 세 가지 종류의 종. 이사야 하반부에 나오는, 신약의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유업은 이사야 하반부에 나오는 세 종류의 종의 정체를 살펴보면 더 확실하게 잘 볼 수 있다. 이사야 하반부에서 어떤 때는 종이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이라고 나온다. 다른 때는 이스라엘이 아닌 것으로 나온다. 또 어떤 때는 종이 단수로 나오고, 또 다른 때는 복수로 나온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사야 하반부에는 세 종류의 종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세 종류의 종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해하기 더 쉽다. 닉키 검블 박사도 그의 책 『부흥의 본질』(서로사랑)에서 그렇게 잘 정리하고 있다. 먼저 이사야 하반부에서 종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 이사야 하반부 여러 곳에서 구체적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사 41:8, 44:1, 2, 45:4 등). 이스라엘은 불충한 종이었다. 이사야 하반부에는 무엇보다 고난 받는 하나님의 종으로 오실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담고 있다. 그 종은 메시아인 예수님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이사야 하반부에는 고난 받는 하나님의 종에 관한 종의 노래가 네 개 나온다고 이해한다. 그 네 구절은 사 42:1-4(또는 42:1-7 혹은 42:1-9), 49:1-6(또는 49:1-7 혹은 49:1-13), 50:4-9(또는 50:4-11), 52:13-53:12이다. 그런데 이사야 하반부는 고난 받는 하나님의 종으로 오실 메시아를 이스라엘의 완성자, 대표자, 혹은 온전한 이스라엘로 이해한다. 그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한 구절이 이사야 49:3이다.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이 구절은 종의 노래 중의 하나로서, 여기의 “너”는 메시아를 가리킨다. 그런데 성경은 메시아를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메시아라는 말이 아니라, 메시아가 온전한 이스라엘 혹은 이스라엘의 대표자 내지는 완성자라는 말이다. 그래서 위 그림에서 꼭짓점을 메시아인 예수님으로 표시했다. 이런 점을 두고 어떤 학자들은 이스라엘이 예수님에게로 흡수된다(merge)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사야 하반부에 보면 또 한 종류의 종이 나온다. 그들은 이스라엘도 아니고,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복수의 형태로 나온다. 이사야 53장 이후로 종은 더 이상 단수의 형태로 나오지 않는다(63:17, 65:8-9, 13-15, 66:14 등 참조). The NIV Study Bible(Zondervan Publishing House)의 편집자들은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은 “주님께 대한 신실한 자들인 참된 신자들이다. 그들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포함한다(사 56:6-8을 보라). 그들은 한 편으로 그 종(사 53:10)의 ‘후손들’이다.” 그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무리인 신약의 교회이다. 그래서 한 예를 들어, 이사야 54장은 하나님께서 신약의 교회에게 주신 하나님의 유업이다. 이사야 54장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이 나온다. 그러면서 이사야 54장은 그것이 하나님의 종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유업이라고 말한다(사 54:17). 그런데 여기의 종들이 바로 신약의 교회를 가리킨다. 이처럼 이사야 하반부에 보면, 특히 이사야 54-66장에 보면 신약의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유업이 나온다.

신동식 목사2018-01-09

시편이 아름다운 것은 첫 시작에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으로 시작되는 시편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시편의 문을 열 때마다 자부심이 생기고 힘이 납니다. 내 자신이 복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종종 우리는 삶을 비관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려고 살았나, 이러려고 교회 다녔나, 이러려고 애들 키웠나, 이러려고 회사에 충성했나….' 다양한 이유로 삶에 대해 속상해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존감이 엄청나게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면 우울함이 스멀스멀 식도를 타고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러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자신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편기자는 그러한 나를 향해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충격적이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합니다. 내가 정말 복 있는 사람인가? 이것이 무슨 복 있는 사람의 모습인가? 그러나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그리스도인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입니다. 즉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복을 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죽은 자가 무슨 말이 있으며, 꿈틀거리는 몸짓이 있습니까? 차디찬 존재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따듯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소리를 지를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복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인 되도록 우리의 죄를 도말하여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동에서 서가 먼 것처럼' 없애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우리에게 죄가 주인 노릇 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은 바로 성자 하나님이 성육하셔서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죄가 전가됐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됨으로 우리가 구원 받은 자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은혜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잘 나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기준에 맞아서 의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기준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고, 은혜로 사는 자입니다. 거룩함이 은혜입니다. 은혜가 없이는 거룩함으로 살 수 없습니다. 거룩함이 구원이 아닙니다. 의롭게 된 자가 거룩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회심하지 않은 자와 같은 상태에 이를 수도 있지만 의롭게 된 자는 하나님께서 다시금 일으켜 세워서 영광의 자리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이며 삶의 시작입니다. 이 사실에 대한 고백이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지키고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합니다. 그리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의인의 복을 가진 사람이며, 그것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이제 죄로 인하여 우울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비로소 겉사람은 후폐하지만 속사람이 날마다 새롭게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복 있는 사람의 자존감입니다. 복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다시금 자신을 보시기 바랍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미소가 나오지 않습니까? 이길 힘이 조금씩 생기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믿음의 지체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것을 볼 것입니다. 의인의 복을 즐기기 바랍니다. 샬롬!

김명전 대표이사2018-01-05

2018년, 한국경제 성장률이 3% 선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국민소득(GNI) 2만 달러 시대를 졸업하고 3만 달러 진입의 원년이 확실하다. 2006년 2만 달러 진입 이후 12년 만에 3만 달러 시대 개막이다. 명실상부하게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다. 인구 5천만 명 이상의 국가로서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진입하면 실질적인 선진국으로 분류한다. 세계 보편적 기준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서 26개 국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인구 5천만 이상이며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인 나라는 전 세계에 6개 나라 밖에 없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이다. 한국이 7번째로 등극하는 셈이다. 한국이 선진 7대국에 올라서는 것은 세계사적인 의미와 기록을 보유하는 사건이다. 선진국(Advanced country)을 분류하는 객관적이고 명료한 기준은 없다. 편의상 주로 1인당 국민소득(GNI)과 국민총생산(GDP)을 지표로 활용한다. 대한민국의 3만 달러 진입은 특별하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일어선 세계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사례다. 6.25전쟁이 끝난 1953년 한국의 국민소득은 67 달러였다. 당시 북한은 135 달러였다. 한국을 원조해 주었던 이웃 나라 필리핀은 299 달러로 두 배 이상 높은 소득수준이었다.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6대 선진국은 산업화의 선두 국가이자 제국주의 강대국이다. 세계 곳곳의 자원을 선점하고 있었다. 출발선부터 한국과는 달랐다. 한국은 정반대의 처지다. 자원 빈국이자 식민지배와 전쟁의 참화를 이겨낸 세계사 초유의 일이다. GNI 3만 달러 진입, 기회이자 위기다. 기회라면 이 탄력을 바탕으로 5년 내 GNI 4만 달러 진입이다. GNI 4만 달러는 한 마디로 균형과 조화의 견고한 토대를 갖춘 선진국을 상징한다. 미국, 영국, 일본 등이 4만 달러 진입에 평균 5, 6년이 걸렸다. 반면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3개국은 그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장애물을 넘지 못했다. 산업과 기업 구조조정, 정부 규제개혁의 실패다. 이로 인해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을 잃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생산성의 추락도 막지 못했다. 한국이 3만 달러 시대로 가는 지금 풀고 있지 못한 숙제와 같다. 여기에 한국만의 힘으로 풀기 어려운 난제가 하나 더 있다. 북핵으로 인해 고조되고 있는 전쟁의 위기다. 전쟁은 65년 성과를 잿더미로 만든다. 영국 리서치기관 캐피털이코노믹스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최소한 전세계 GDP의 약 1%가 급감할 것”으로 예상했다. 동시에 “한국 GDP의 50%, 약 7000억 달러가 사라진다.” 더 큰 충격은 한국이 글로벌 제조공급망(supply chains)에 긴밀하게 통합되어 있어 글로벌 교역체제가 붕괴되는 것이다. 세계적인 대재앙이다. 한국이 전쟁의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의 기반 위에 통일로 나아간다면 미래는 명료하다. 세계 최고의 일류국가 선진국으로 우뚝설 것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말처럼 한국 사회의 각 부문이 '조화 또는 균형(Congruence Principle)'을 이루면서 안정된 발전 가도를 달리게 될 것이다. 3만 달러 시대의 위기, 교만과 포퓰리즘을 경계한다.

김성윤 교수2018-01-01

데이터와 사회 변화 '나는 데이터다. 고로 존재한다.' 인간을 보조하는 기계가 점차 인간을 대체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데이터가 있다. 제4차 산업혁명도 모든 동작에 대한 데이터가 있기에 가능했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미디어 랩 설립자인 니콜라스 네그로폰테(Nicholas Negroponte)는 1995년 저서 <디지털이다(Being digital)>에서 아톰(물질)의 세계가 비트 세계 즉 물질이 아닌 정보가 중요한 가치를 지닌 세계로 전환되는 걸 막을 수 없다고 했다. 그의 27년 전 예언이 현실로 구현되는 것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사회가 도래하면서 오랫동안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 왔던 인류의 사회관계는 급속히 변화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인간은 자기 편리를 위해 만든 기계와의 경쟁에서 하루하루가 다르게 밀리고 있다. 이미 일하는 방식을 바꾸게 만들었으며 일자리마저 상당 부분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에게 잠식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데이터가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은 기계가 생각하며 생산하는 단계로 진화했다. 인간이 지구상의 다른 생물 종들과 다른 진화의 길을 걷게 된 걸 설명하는 개념의 하나가 ‘호모파베르’(Homo Faber)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술을 힘의 하나로 분류하고, 앙리 루이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의 창조적 진화론으로 인간은 도구를 만들어 쓰는 존재 '호모파베르'로 표현됐다. 이것이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이다. 불을 사용하고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고 돌칼과 돌도끼를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도구의 발전은 인류의 문명과 함께했 왔다. 따라서 도구의 역사는 곧 인류 문명의 역사다. 현실의 삶을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한, 문명의 도구를 더 나은 도구로 만들기 위한 생각과 시도는 끊임없이 지속됐다. 이를 통해 인류는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무수한 도구를 만들고 또 개선 시키고 혁신시켜왔다. 그리고 기록으로 남겼다. 괴물이 된 데이터 이제 그 기록에 의한 혁신이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각광을 받고 있다. 바로 데이터다. 데이터에 기반을 둔 혁신으로 도구와 도구, 사람과 도구를 연결하는 초연결 사회를 열어가고 있다. 이런 사회를 통틀어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은 인간 사회의 모든 관계를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인류가 만들고 애지중지하며 사용해온 기존의 도구들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마저 바꾸고 있다. 사람과 도구,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방식마저 바꾸고 있다. 사물 인터넷은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물, 사람과 사회, 사물과 사물간의 관계방식 자체를 획기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알파고 제로에서 보고 왓슨 의사에서 보았듯이, ‘인간을 능가하는 인공지능’ 또한 제4차 산업 혁명에서 연유되고 있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기계와 대화를 할 수 있는가 하면 제품생산명령을 사람에게 말하듯 기계에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제4차 산업혁명은 통신과 전기, 컴퓨터 등 특정한 영역에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게 아니라 모든 영역에 적용된다. 이를 초연결, 초지능이라고 한다. 기존의 모든 기술과 제품 속으로 기술이 들어가게 됐다. 일례로 자율주행 자동차,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가상현실, 생활환경 유해인자관리, 마이크로 그리드 등을 비롯한 첨단기기들은 데이터화되어 첨단기술로 구현되고 있다. 지금은 거의 일반화된 기술이지만 일본의 변기 제조업체 토토는 2010년에 소변을 분석해 당뇨 등 건강 상태를 체크해서 의료진에 자동 전송하는 기능의 스마트 변기를 개발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삼성 갤럭시8 정도의 스마트폰만으로도 혈당, 혈압, 하루의 운동량, 당뇨를 비롯한 스트레스 지수까지 체크할 수 있다. 이처럼 기계가 요리하고 먹고 배설하고 놀며 건강을 비롯한 일상의 기본적인 것마저 획기적으로 바꾸고 있다. 데이터 기반의 미래주인 미래학자들은 머지않아 기계가 “너는 나를 창조했지만 주인은 나야”라고 큰 소리 칠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이 기술을 개발하고 기계를 만들었지만 인공지능은 스스로 학습하면서 불가사리처럼 모든 걸 먹어치우는 포식자가 되고 있다. 그러면서 제4차 산업혁명의 룰에 맞출 것을 요구하는데, 이를 거부할 수 없는 게 현실이 되고 있다. 만약 거부하고 고집을 부리며 과거 방식을 답습하려 한다면 생존 자체가 위협 받을 수밖에 없다. 마치 1818년에 발표된 메리 셸리의 과학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괴물이 자신의 창조자를 협박하며 “넌 나를 만들었지만 네 주인은 나야. 어서 복종해”라고 울부짖은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은행과 카드사 등 각종 금융기관에 기록된 개인별 정보는 물론이고 스마트폰과 각종 센서 등의 도구를 통해 개인들의 미세한 자료까지 수집해서 데이터로 쌓아 인간을 구속시키고 있다. 지난 1년간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고 누구와 놀았는지는 카드 내역서에 고스란히 찍혀있고,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하면 네비게이션에 모든 것이 그대로 기록돼 있다. 우리 일상의 모든 것을 데이터는 기억하고 있다. 정작 주인은 잊어버린 자기 행위를 데이터는 영원히 기억하면서 주인의 활동이나 생활의 모든 면을 들여다본다. 실제로 교통카드 이용 내역만 보아도 내가 이동한 시각과 위치가 오차 없이 정확하게 기록돼 있다. 더욱이 인터넷과 컴퓨터는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은 기억과 함께 기존의 다양한 장벽을 허물고 세상 모든 정보와 사람을 연결시키면서 또 다른 지식을 창출해 낸다. 이 놀라운 세계에 어떻게 대응할까 하는 것은 정부의 기술정책과 인간의 사고 즉 발상의 전환에 달려있다.

한정국 선교사2017-12-20

2030년을 향한 한국선교의 마스터 플랜이 험난한 고비를 넘기고 전반전을 마친 가운데,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향후 3년(2018~2020)은 또 다른 비상을 꿈꾸고 전열을 재정비할 때입니다. 선교사 증감은 고원(Plateau) 현상을 보일 것입니다만 그 후 10년은 예측을 불허합니다. 기대하기는 2030년까지 재도약입니다만 양적 성장이 꺾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교회 성쇠가 그것을 예고하기 때문입니다. 은퇴는 없다 10년 전 한국선교계는 은퇴 없이 선교지에서 사역하다 현지 한국선교사 묘지에 묻힐 각오를 결의한 바 있습니다. 물론 65세가 되면 리더십을 이양하고, 한국을 수시로 방문할 수 있습니다만 한국교회의 숙원인 세계선교를 위한 마지막 등불이 되고자 한 것입니다. 올해 65살을 넘은 필자도 KWMA 사무총장을 내려놓고, 한국과 선교지를 오가며 전세계한인선교기구의 전략적 분담사역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파송교회도 은퇴제도를 없애고, 선교사가 계속 사역하기를 원한다면 소정의 금액을 계속 지원하겠다는 결의로 이어졌습니다. 신체의 건강 일부가 조금씩 쇠퇴하더라도, 사역에는 무리 없이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작년까지는 선교지 중 오지를 찾아다니며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으니 후회도 없건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눈앞에 선합니다. 선교기구여 연대하라 한국에 KWMA가 있듯이 미국에는 KWMC(미주한인세계선교협의회), KIMNET(미주한인교회선교동원), KAMA(미국한인선교협의회), 그리고 KWMF(세계한인선교사회), 중동한인선교협의회, 필리핀한인선교협의회 등이 있습니다. 또한 한국선교지도자포럼, 설악, 방콕, 마닐라, 다문화사역포럼, 이민사역포럼 그리고 이슬람 사역 파트너십 등이 있고, 각종 네트워크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선교네트워크, 인도선교네트워크, 서아프리카선교Net, 서/동유럽선교네트워크, 인도차이나선교Net 등이 한인선교기구로 활동 중입니다. 이들이 연대하는 데는 전략적 분담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지난 3년간 KWMA는 수많은 토론을 거쳐 KAMSA(전세계한인선교기구연대)를 탄생시켰고, 부족한 필자가 코디네이터로 섬기고 있습니다. 옥상옥 관계를 피해 수평적으로 잇다 보니 더디게 진행되는 듯 하지만, 서로 간의 의견 조절이 잘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지역별 코디가 자발적으로 참여를 확대해가고 있습니다. 이 연대 사역 개념은 랄프 윈터(Ralph Winter) 박사가 2002년 암스테르담 국제회의에서 제안한 것으로, 한인선교기구간 연대가 잘되면 각 국가별로 활성화될 아주 전략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적인 성장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2년간 우리는 한국선교의 질적 성숙이 바른 길임을 표방하고, 선교전방을 향한 한국교회의 역할에 집중해 왔습니다. 두 번의 5개년 개발계획의 실천평가를 보면 확실히 선교의 전분야에서 질적인 성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지는 2030년까지 계속 강조돼야 하며, 이것이 한국선교의 미래를 좌우할 것으로 봅니다. 선교사 파송 수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고 기존 선교사역의 효율화와 함께 신임 선교사의 질적 준비 강화에 힘쓰고자 합니다. 한국교회 지원이 어려울수록 한국선교사들은 체질을 좀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그 일례로 한국교회 선교비 의존을 줄이고, 현지에서 양육하는 양들의 젖을 먹는 방안입니다. 목자는 양들을 사랑하기에 그 젖을 먹을 때 목양일념을 더 강화할 수 있으며 양들도 건강해집니다. 한국선교사들의 주된 사역은 교회개척이고, 목양하는 선교사들도 제일 많기에 이 방법이 적절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단지 많은 선교사들의 경우 현지 전도자와 목사를 고용하는 방법이 많기에 다소 조정이 필요하지만 이것이 목회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일본에서는 많은 호응이 있습니다. 브라질, 나이지리아 등 교회가 강한 나라에서는 아주 현실적인 방법일 수 있습니다. 선교적 교회, 이제는 달라져야 필자는 한국교회가 진정 선교적 교회가 된다면 엄청난 이 사회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지혜가 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선교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그의 마음과 시각을 갖는다면 하늘의 지혜도 깨달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간 선교적 교회의 모습이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는 데 치우쳐 왔다면, 이제 우리 곁을 찾아온 땅 끝의 미전도종족 나그네(노동자, 며느리, 유학생, 비즈니스맨)들을 바로 이곳에서 만나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나아가 선교적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적 시각과 마음을 소유한 교회로서 이 세상에 등불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선교적 교회가 한국교회의 미래상일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한국교회가 어려운 현실을 뛰어넘어 선교에 전력투구함으로써 세계선교의 역사적 기록을 남긴다면 우리 모두의 수고는 세계 교회사 속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김명전 대표이사2017-12-15

세계의 유통산업이 혁명적 진화단계에 돌입해 있다. 백화점업계 1위 롯데가 2015년 이후 새 사업장을 내지 않고 있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역시 국내 백화점 시장은 한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한다. 매출액에서 확인된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최근 5년 동안 매출 총액은 29조 원대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대형마트도 더 이상 매장을 확장하지 않는다. 이마트는 사업을 시작한 이래 올해 처음으로 매장 숫자가 줄었다. 147개에서 145개로 두 곳이 문을 닫았다. 홈플러스도 매장 증설 계획이 없다. 국내 대형마트 3곳을 모두 합해도 지난해부터 매장 증설은 사실상 정지 상태다. 반면 온라인은 폭풍 성장이다. 2012년 20조 원대에 진입한 이후 2016년 말 기준 65조 7천 억원으로 뛰었다. 이 같은 유통산업 트렌드 변화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백화점을 비롯한 대형마트 전성시대의 마감이다. 지금은 온라인 유통이 대세다.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인터넷 세상이 가져온 전자상거래의 발달은 어디까지일까? 중국 최대의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송년 세일 '광군제'에서 3분 1초 만에 약 1조 7천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루 매출액이 약 28조 3천 억 원이다. 지난해 국내 백화점 1년 매출 29조 9천억 원과 맞먹는 규모다. 이는 전자상거래 기술의 발달로 가능했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전자상거래 방식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조만간 새로운 거래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디지털 정보기술(IT) 기반 위에 데이터기술(DT)과 인공지능(AI), IoT 등 신기술이 가세하며 상상 이상의 유통혁명이 진행 중이다. 유통산업의 기술혁명 퍼레이드라 할 수 있다. 기술혁명의 물결은 파도로 바뀌었다. 유통기업이 정보와 데이터 자산을 활용해 제품의 개발과 생산에 직접 나서는 방식이다. 다양한 Social 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다. 예를 들면 11월11일, 빼빼로데이에 맞춘 제품 개발이 사례다. 최근 1년간 1000만 개 이상의 게시글과 댓글을 분석해 소비자들의 입맛을 분석하고 제품의 소재에 대한 선호도 등 변화의 트랜드를 반영해 만들었다. 결과는 성공이다. 기술의 결합은 유통의 인프라에도 도입되고 있다. 3N(No Cash, No Card, No Phone) 결재 시스템이다. 매장에 입장할 때 입구에서 지문을 입력시킨다. 쇼핑이 끝나고 퇴장할 때 다시 지문을 입력시키면 결재가 완료된다. 스마트쇼핑에 스마트 편의점, 인공지능 쇼핑어드바이저 등장 등 지각변동이다. 유통산업의 밸류체인, 판매방식이 밑바닥부터 다시 구축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유통산업은 기회다. 한국 유통산업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우리나라 200대 유통기업의 매출액을 모두 합쳐도 미국의 코스트코 하나보다 적다. 그 이유는 거미줄 규제에 있다. 일본과 유럽 등 선진국들은 대형점포의 입점 제한을 풀고 있다. 미국은 아예 유통산업과 관련한 규제가 없다. 우리의 산업환경이 선진국과 같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현재와 같은 일률적 규제로는 답이 없다. 규제의 방향은 글로벌 경쟁구조에서 유통산업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로 잡아야 한다. 한국형 아마존과 알리바바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방탄소년단' 같은 한류 미사일을 엔진으로 쓸 수 있는 창조의 힘이 있다. 발목을 잡지만 않는다면....

여주봉 목사2017-12-13

우리는 몇 번에 걸쳐서 성경이 말하는 사역을 살펴보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사역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사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면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보이신다. 3.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온 삶으로 그 일에 동참한다. 4.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일을 성취하신다. 5.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한다. 우리는 지난번에 4번의 일부를 살펴보았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우리의 온 삶으로 그 일에 동참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를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그 중 하나는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길로만 성취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목적을 알려주시고, “이제 너희가 열심히 잘 해보아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을 보라, 기드온을 부르신 하나님을 보라.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목적 뿐 아니라, 그 일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도 알리셨다. 예수님께서 동일한 종류의 환자들을 고치실 때에도 어떤 때는 각기 다른 방법들을 사용하신 점에서도 나는 그 점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동참하셨기 때문이다(요 5:19-20).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보고, 그 일에 동참해야 할 뿐 아니라, 그 일을 성취하는데 방법에 있어서도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아무리 하나님의 목적을 보고 동참했더라도 그 방법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 자기 방법대로 하면 그것은 인본주의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방법을 뒷받침하지 않으신다. 만약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목적을 보이셨는데도 하나님의 길이 보이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찾으면서 기다려야 한다. 수년 전에 아시아선교센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필리핀 현지 목회자들을 통해서 보이셨다. 새물결선교회와 포도나무교회는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분별하고 헌금을 시작했다. 부지는 구입되었다. 그런데 10억이 넘는 건축 비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 당시 포도나무교회도 주차장 등을 위해 몇 십억의 돈이 필요한 상태였다. 연말에 쉬기 위해 기도원에 가 있는데, 그 일은 선교회 일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큰 금액을 헌금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 보여졌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100만 원을 한 구좌로 하는 천사를(1004 구좌) 모집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동시에 하나님은 오늘날 성도들이 본 교회에서 아무리 많은 헌금을 한다 할지라도, 그 일을 위해 100만 원 한 구좌 헌금하는 것은 자세의 문제이지 더 이상 경제적인 문제는 아닐 것임을 분명하게 보이셨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나에게 보이시는 순간, 내 마음 속에는 이제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로부터 불과 며칠 후 새물결선교회가 주최한 한 컨퍼런스가 열리고 있었는데, 나는 카메라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이 말을 녹화했다가 나중에 저에게 보여주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 때부터 14개월 만에 천사가 다 채워졌다. 나는 국내외에서 통장으로 동참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운 경외심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 어떤 분은 나도 전혀 모르는 분인데, 5천만 원을 보내오기도 했다. 하나님은 그 외 다른 일들은 우리 힘으로 전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른 방법을 통해서 역사하셨다. 다른 하나는 환경은 하나님의 때에 대한 전령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관련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환경을 움직이신다는 것이다. 환경은 하나님의 때에 대한 전령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영성을 인도하는 사람 중 하나인 달라스 윌라드 박사도 그의 책 『하나님의 음성』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있어서 감동과 성경과 환경의 삼박자가 항상 맞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도나무교회가 분당에 있을 때의 일이다. 개척한 지 3년 쯤 되었을 때 하나님은 지체들 중 여러 사람들에게 교회가 입주해 있던 건물의 지하를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감동을 기도 중에 주셨다. 그 당시 포도나무교회는 아직 재정적으로 자립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우리는 모여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했다. 그리고 그 지하를 소유하고 있던 건설회사에 연락을 했다. 그 회사는 우리에게 총 분양 가격이 7~8억 원이었는데, 현찰로 3억만 달라고 했다. 우리는 헌금을 시작했다. 약 천만 원 남짓 헌금이 모아졌다. 그러나 그 뒤로 더 이상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우리는 기다렸다. 그 동안 모아놓은 그 건축헌금도 월세로 다 나가버렸다. 1년 쯤 지났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다시 그 지하에 대해서 감동을 주시기 시작하셨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그 지하를 포도나무교회가 아닌 새물결선교회 소유로 사라는 감동을 나에게 주셨다. 나는 그것을 교회에 나누었고,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모으고, 다시 헌금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일이 있고 난 바로 얼마 후, 교회가 입주해 있던 건물의 일층에 있던 공인중계사에서 두 분이 나를 찾아왔다. 오자마자 그들은 나에게 교회가 지하로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 고객이 그 건물 3층 전체를 사달라고 그 공인중계사에게 요청했고, 소유주들은 모두 팔기로 동의했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를 지하로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 지하를 소유하고 있던 건설회사를 찾아가 금액에 대한 협상을 마치고 나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그들이 협상하고 돌아온 가격은 2억 원이었다. 순식간에 1억 원이 떨어져 나간 버린 것이다. 결국 우리는 그 건물은 1억 8천 6백만 원에 구입했다. 요셉의 경우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와 같이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환경을 움직이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도 환경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직 때가 안 된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을 더 찾으면서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움직이시지 않는데 앞서 가면 낭패를 본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서 경험하고, 하나님은 뜻은 이루어진다.

이인현 GOODTV 문화예술전문위원2017-12-11

마틴 루터는 오직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가톨릭교회의 부패를 청산하고자 1517년 10월 31일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부조리한 관행에 맞서는 내용이 담긴 95개의 반박문을 발표하기 이른다. 가톨릭 교회 입장에선 단지 한 대학교 교수의 반박문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이 로마 가톨릭 교회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터라 그의 반박문은 삽시간에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그 결과, 루터의 종교개혁은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전체에 엄청난 파장을 가져왔다. 자신의 죄를 면제받기 위해 신도들은 성유물 앞에서 정성스레 기도를 올렸고, 또한 성유물의 기증을 통해 그들의 죄의 구원은 가능해졌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과의 믿음을 통해 올바른 관계가 형성되며, 오직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루터는 이러한 행동들을 미신적인 우상숭배라 여겼다. 루터의 종교개혁 후, 우상숭배로 여겨진 많은 그림과 조각상들은 처분의 대상이 되었고, 더 이상 성모 마리아와 성인상을 회화와 조각으로 제작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루터가 미술을 적대시한 건 아니었다. 루터가 원했던 건 모든 사람이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음이 적힌 판화나 성경의 내용을 모티브로 한 그림들은 선교활동의 도구가 되었으며, 종교개혁 후 널리 확산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라틴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루터는 성서를 만들 당시 오직 글만이 아닌 123개의 판화를 삽입함으로써 글자를 읽을 수 없는 신도들도 판화와 그림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로마 가톨릭 교회에 보관되어 있는 그림과 조각상을 파괴하기보다는 이들 작품이 가진 의미와 내용을 이해하려 하였으며 오직 하나님을 위한 자신의 신념과 부합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조건회 목사(예능교회)2017-12-11

심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인간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단 10퍼센트만이 사실이고, 나머지 90퍼센트는 사건에 대한 반응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일에 있어서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되고, 부정적으로 반응하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 지도자인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워싱턴시를 지나가시다가 한 흑인 청소부 청년이 욕설을 있는 대로 퍼붓고 짜증을 부리면서 청소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그 곁에 다가가서 청년의 등을 두드리며 "여보게, 자네는 하나님이 자네에게 맡기신 지구의 한 모퉁이를 쓸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는 없는가? 청소를 할 때 베토벤이 음악을 작곡하듯, 미켈란젤로가 조각을 하듯, 괴테가 작품을 쓰듯, 그렇게 하나님의 일을 하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에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큰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10퍼센트의 부정적 사실을 90퍼센트의 긍정적 반응을 통해서 다 뒤집는 사람들입니다. 세계적인 명설교자인 로버트 슐러가 연말에 어느 탄광을 방문했습니다. 광원들의 얼굴은 땀과 탄가루로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로버트 슐러는 눈만 반짝이는 광원들이 불쌍하게 여겨져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날마다 이 굴속에서 석탄을 캐는 단조로운 일을 하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그러자 한 광원이 석탄 덩어리 하나를 집어 들고 명랑하게 말했다. "제가 캐는 이 석탄이 빛이 되고, 동력이 되고 열이 되어 가정과 공장, 사회와 국가를 움직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일이 얼마나 보람 있고 즐거운지 모릅니다." 여러분,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행복과 불행이 환경에 의한 것이라고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행복과 불행은 주관적인 체험이지 결코 환경에 의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 부귀공명을 다 누리며 사는 사람이라도 속으로는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보기에는 말할 수 없이 처참한 환경에 있으면서도 충만한 기쁨을 안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Pain is enebitable but misery is optioned" 즉 우리말로 해석하면 “고통은 피할 수 없어도 비참함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다가오는 문제는 피할 길이 없어도 문제 때문에 비참해지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린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환경이 가져다주는 것만은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어디까지나 행복을 누리는 사람의 마음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어떤 문제가 우리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하더라도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행복한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안용준 목사2017-12-08

루터성경(Lutherbibel)의 미학적 특징 루터의 종교개혁 예술의 형성은 다양한 신학과 사상들이 함께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있어 쉽게 이해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루터의 예술사상의 배경에 어느 특정한 단일 사상가나 신학이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는 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종교개혁 예술의 역동성을 제공한 것은 루터를 포함한 당시의 개혁자들의 한결같은 외침, 즉 성경으로 돌아가자 또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사상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루터성경의 미학적 기초를 이루는 종교개혁 당시 르네상스 미술론의 배경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여기에는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72)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두 인물이 있었다. 알베르티는 자연을 조화의 관계로 이해하고 미의 특성을 '규범(Canon)'에 두고 올바른 비율을 강조함으로써, 순수한 수학적 탐구를 의미하는 비율을 통해 자연을 연구했다. 레오나르도는 자연을 경험과 원리의 장으로 이해했고, 자연 현상의 과학적인 정보, 인간의 기능과 육체, 인간의 감정에 관한 심리적 표현, 사물과 동물의 특징, 대기와 빛에 관한 연구에 몰두했다. 그에 있어서, 미술은 과학(Scientia)이었다. 그러나 수학적·기하학적 질서(ordo geometricus)에 의한 과학으로서의 미술은 응용과학에 의지한 미술은 아니다. 왜냐하면 가르치고 배우면 되는 학문과는 달리, 예술은 자연이 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과학으로서의 미술 세계는 근본적으로 도덕과 문화를 가진 인간 세계(molti morali costumi)이다. 과학으로서의 미술은 다름 아닌 정신적 연구(discorso mentale)이다. 그 결과 레오나르도와 알베르티는 미의 형식적 기초 개념을 가시적으로 보이는 자연의 질서와 원리 안에 숨겨진 아름다운 비례에서 찾았다. 놀랍게도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는 이러한 아름다운 비례의 원리의 기초 위에 미와 진리, 예술과 과학, 하나님과 세계, 신앙과 지식,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을 이상적으로 발전시켜나갔다. 그는 비례의 수학적 추구를 정신의 형식 속에서 추구하되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통찰했던 것이다. 종교개혁 기간 동안 비텐베르크에서 시작된 크라나흐의 작업은 성례전과 설교 중심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림들, 최후의 만찬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 등 교회의 새로운 교훈으로 남을 만한 중요한 주제를 다루었다. 크라나흐는 무엇보다 창조와 타락의 모습에 항상 열려 있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율법과 은총’(Gesetz und Gnade)이라는 주제로 접근하였다. 이 주제는 루터가 성경에서 새롭게 발견해낸 메시지, 즉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루터에게서 이 ‘율법과 은총’의 관계는 상반관계(gegeneinander)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율법이 심판의 메시지라면 은총인 복음은 용서와 회복과 구원이다. 율법은 인간에게 요구하고 심판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말씀으로 여기서 인간이 자신의 가능성을 벗어버리고 은총을 구할 때 복음을 맞이하게 된다. 즉 인간이 자신의 행위의 한계성을 인지하고 복음에 대한 확신, 즉 믿음으로 회복될 때 의롭다 함을 인정받게 된다.

신동식 목사2017-12-06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특권을 가진 자라고 말했습니다(벧후 1:4).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만이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영광을 영원히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일입니까? 우리의 가진 것의 유무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선물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다는 생각만 해도 흥분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흥분과 감사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5-11). 베드로 사도는 믿음과 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우애와 사랑을 공급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없는 자는 앞을 못 보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일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의 아름다움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를 살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게을리 하거나 무시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은 가려지고 교회는 허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의 영광은 모든 관계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계는 위로는 하나님, 옆으로는 이웃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들은 이웃과의 관계가 영화롭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성도의 자랑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우선 상대방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관계는 서로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무시하면 그 관계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상대방에 대해 이중적인 말과 행동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말에 뒤통수 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앞에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비웃고 돌아가서 비방하는 말을 하는 모습입니다. 여기에는 결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의 모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는 상대방을 향해 정직해야 합니다. 관계는 신뢰가 생명인데 신뢰는 정직성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만날 때도 정직해야 하지만 헤어질 때도 정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관계는 슬픈 결말을 갖게 됩니다. 네 번째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예의는 말과 행위에 있어서 배려가 있습니다. 종종 무례한 말과 행동이 나오면 심장이 움츠러듭니다. 그러면 다음부터는 경계하게 됩니다. 다섯 번째로 상대방과의 대화에 있어서 비밀을 지켜줘야 합니다. 믿고 이야기했는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다거나 혹은 빌미를 잡아서 흉을 본다면 그 관계는 파탄이 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상대방에 대한 흑심이 없어야 합니다. 이 말은 필요에 의해 만나고 필요가 없으면 버리는 태도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필요에 의해 만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주목적이 된다면 관계가 지속될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흑심은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하지 못합니다. 일곱째, 물질적인 도구를 사용해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계가 유지되면 반드시 투자 대비 산출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준 만큼 받지 못하면 비난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정치적 관계이지 인격적 관계는 아닙니다. 물질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입니다. 관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고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며 인격적인 삶을 영위하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모습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한정국 선교사2017-12-05

히말라야에 대한 관심 세계의 지붕이라고 할 수 있는 히말라야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중국의 서부와 남부 그리고 북인도를 가르며 아프가니스탄을 지나 중앙아시아 키르키즈스탄과 타자키스탄의 파미르 고원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여러 민족이 살고 있다. 특히 선교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대상은 티벳 민족으로 중국의 캄티넷, 암도티벳족 등으로 분화되어 살아가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들의 종교가 흥미로운데 라싸를 중심으로 하는 라마불교를 믿는 사람들이다. 달라이 라마를 살아있는 부처로 믿으며, 동영상에서 보는 오체투지(두 팔과 두 다리 그리고 머리)로 라싸를 향한 순례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중국정부로부터 핍박을 받은 달라이 라마가 독립을 이루기 위해 미국 등을 방문할 때 미 정부는 인권운동 차원에서 그를 극진히 대접하고, 그의 특이한 설법에 할리우드 배우들이 관심을 갖기도 하였다. 결국 유명 배우 리처드 기어는 추종자 중의 한 명이 됐다. 라마불교란? 불교의 지파 중에서 인도 북서쪽으로 전래된 불교가 현지 토착 애니미즘인 본교와 혼합되어 이루어진 일종의 밀교(비밀의 종교)다. 그들만의 비밀스런 신앙의 비결이 있다고 믿어, 불경 일부가 쓰인 문서를 둥근 원통에 집어넣고 이를 손으로 한 번 돌리면 일독을 한 것과 같다고 믿는다. 아마 마니차(원통)를 돌리는 것을 독자들도 뉴스 등을 통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산 위 또는 고개 위에 돌을 쌓아놓고 불경이 기록된 오색 깃발을 휘날리기도 한다. 그 경귀가 바람에 실려 자신의 소원이 성취되고 바람 따라 불도의 도리가 전파된다고 믿기도 한다. 이들은 '활불'이라고 믿는 라마를 중심으로 종교와 정치, 문화, 사회가 결합된 아주 폐쇄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을 향한 기독교 선교 너무나 오랫동안 은둔의 민족이었고, 접근이 힘든 지역에 살아왔기에 그들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30년이 채 안 된다. 중국의 철의 장막이 걷히면서, 몽골 땅이 개방되면서 한인 선교사들이 그들에게까지 나가게 되었다. 1990년대 초 몽골에서 복음을 전하던 한국선교사들이 몽골족의 신앙이 라마불교인 것을 알게 된다. 한국의 대승불교에 익숙한 선교사들은 라마불교가 전통적 소승 · 대승불교와 다른 점을 발견하고 이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중국 동쪽에서 주로 사역하던 선교사들은 서진을 하면서 신장과 청해성 그리고 사천성 등에 넓게 분포된 티벳족을 만나면서 그들이 사는 고지대 3,500M까지 나가게 되었다.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그들의 신앙 태도에 고전도 많이 했다. 중국교회도 예루살렘을 향한 서진 선교를 추구하다가 제일 먼저 부딪힌 민족이 티벳이었다. 지난 10월 제주도에서 티벳 및 히말라야 지역(네팔과 부탄, 북인도 포함)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과 전략가들이 3박 4일간 포럼을 가졌다. 사역 보고를 통해, 이들을 향한 사역이 쉽지 않았으나 복음의 능력은 그 어려움을 뚫고 계속 전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샤머니즘적 불교와 라마 불교의 유사성 한국의 불교가 구분상 대승불교에 속하지만 토착적인 민속신앙과 혼합된 점에서 라마불교와 그 유사성이 있다. 필자는 샤머니즘 불교 가정에서 태어났고 거듭날 때까지 그 영향력 속에 자라왔기에, 라마불교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어색한 느낌이 없었고 많은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사상이 라마불교들에게 오체투지 예배법을 가능케 한 것이다. 일천 번의 예불제도가 그들의 정성 어린 예배법과 유사한 점도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인처럼 아주 종교적이다. 한국인이 뒤늦게 기독교를 전래 받아 급속한 복음화와 선교 대국이 되었다면, 히말라야벨트에 사는 라마불교도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이 저 북방 얼음산 민족에게 복음을 전달할 그날을 꿈꿔본다. 또한 이들에게 가장 적합한 선교사도 한인선교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왜 한국선교인가? 히말라야벨트에서 쓰이는 모든 언어 즉 티벳어, 몽골어, 힌디어, 네팔어, 부탄어 그리고 타직과 키르키즈 언어는 한국어와 같은 언어 족속군에 속해 있어 어순이 같거나 단어의 유사성도 많다. 그리고 혈통적으로도 아기 엉덩이에 푸른 반점이 있는 몽골리안 계통이기도 하다. 그래서 생김새도 비슷하고 많은 문화 유사성도 발견된다. 어린아이들의 노는 공기놀이, 팽이치기, 제기차기 등이 비슷하다. 따라서 한국 선교사들은 그들에게 친근한 이웃으로 받아들여지고, 언어도 쉽고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으니 대화도 훨씬 부드럽게 이어진다. 더구나 한국의 경제발전과 K-POP 등의 한국 대중문화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한국을 배우고 싶어 한다. 지난 수천 년간 가장 소외되었던 그들에게 한국교회는 정말 반가운 이웃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몸과 사랑을 통해 전달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들이 새로운 마케도니아인처럼 우리에게 손짓하고 있다. ‘어서 와서 우리를 도와주세요.’

정재영 교수2017-12-04

소형 교회의 현실 현재 우리나라에는 6만 개 이상의 교회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교회들의 사정은 규모에 따라 매우 다르다. 비교적 편리한 시설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춘 중대형 교회들은 상대적으로 현상유지에 큰 어려움이 없으나 재정 자립이 어려운 작은 교회들은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고 1년에 수천 개 교회가 문을 닫는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중대형 교회들만으로 교세를 유지할 수는 없다. 건강한 작은 교회들이 활발하게 신앙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전체 교계를 선순환 구조로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교계에 있는 크고 작은 교회들이 서로에게 건강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생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필자가 책임을 맡고 있는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설 <21세기교회연구소>와 <한국교회탐구센터>는 교인 수 100명 이하의 소형 교회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소형교회의 실태와 목회자의 인식을 조사하였다. 이번 조사를 통해 밝혀진 소형 교회의 현실은 예상대로 매우 어려운 형편이었다. 방문조사의 특성상 비교적 형편이 나은 교회들이 표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예산은 가장 많은 39.3%가 차지한 5천만 원 미만을 포함하여 1억 원 미만이 64.5%로 다수를 차지하였고, 미자립교회는 42.7%에 달했다. 특히 교회 설립 3년 이하의 교회들의 66.7%가 미자립이라고 응답하여 대부분의 교회들이 미자립 상태에서 개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교회 역사와 자립 비율이 비례하였는데 교회 설립 후 3년 유지가 쉽지 않다는 교계의 통설로 미루어볼 때 3년 안에 자립하지 못하면 그만큼 지속가능성이 줄어든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자립 교회 중 40.9%는 외부의 재정 지원이 없다고 하였고, 지원이 있는 경우에도 32.7%가 줄고 있다고 응답하여 미자립 교회의 존립이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여겨진다. 재정지원을 받지 않아도 되는 시기에 대해서 미자립 교회의 57.7%가 예측하기 어렵다고 응답하였고, 미자립 교회의 54.5%가 현 상태로 교회가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한 적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전체 응답자 중에는 47.1%가 현 상태로 교회가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한 적이 있다고 하였는데 응답자의 3분의 1(31.0%)은 앞으로 4년도 장담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교회 존립 고비 예상 기간의 평균은 4.9년이라고 하였는데, 특히 미자립 교회의 27.3%는 1~2년이 고비라고 응답하여 더 어려운 형편임을 나타냈다. 이 역시, 이번 조사가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교회들이 표집된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소형교회들이 훨씬 더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목회에 대한 어려움 이번 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47.1%가 목회자의 영적 고갈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여 소형 교회 목회자들의 영적 상태도 우려스러운 상황임을 보여주었다. 이에 대하여 40대, 부임 목사에게서 응답률이 높았는데, 자립 여부와는 큰 상관이 없어서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차이는 목회관에 따른 차이였는데 교회성장을 추구하는 목회자들은 영적 고갈 경험이 23.2%였는데 반해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목회자들은 59.1%로 3배 가까이 많았다. 영적 고갈과 함께, 소형 교회 목회자들은 3분의 1(29.6%)가량이 목회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는데 이 역시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목회자들이 성장을 추구하는 목회자들에 비해 2배 가까이 많았다.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목회자들은 현 상태에서 교회 유지 가능성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더 많이 걱정한 것으로 나타나 교회 성장을 추구하는 목회자들보다 더 큰 혼란과 갈등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전체의 34.5%는 다른 교회에 부임하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이에 대하여 젊을수록 응답률이 높았고, 읍면 지역, 그리고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교회 목회자들에게서 응답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시골 지역에서 높은 이유는 교회 자체보다는 시골 지역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도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개척 교회나 작은 교회 담임 목회자가 큰 교회 부목사로 들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큰 교회로 옮기고 싶다는 희망뿐만 아니라 작은 교회의 담임 목회에 대한 부담이 작용했을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목회에 대한 만족도는 만족한다는 응답이 73.3%로 결코 낮지 않게 나온 것이다. 특히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목회자들이 상대적으로 만족도가 더 높았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결과이다. 만족하는 이유에 대해 ‘목회가 하나님의 소명이므로‘가 47.0%로 가장 많았는데 교회 성장을 추구하는 목회자는 이 대답이 35.6%인데 반해 ’교회 성장이 돼서‘가 24.4%로 높았다. 이에 반해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목회자는 ’교회 성장이 돼서‘는 1.9%로 매우 적었으나, ’목회가 하나님의 소명이므로‘가 51.9%로 훨씬 높아 대조를 이루었다.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목회자는 영적 고갈이나 목회 포기 등 더 큰 갈등과 혼란을 경험하고 있으나 이것을 소명으로 승화시킴으로써 목회에 대한 만족도는 더 높은 것으로 해석된다. 작은 교회가 희망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소형 교회 목회자들이 작은 교회의 의미와 가능성에 대해서 매우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은 교회가 성숙한 교인 양육에 더 좋다는 견해에 대해 동의율이 80.1%로 높게 나왔다. 이에 대하여 자립 여부에서는 차이가 없었는데, 50명 이상의 교회 목회자들에게서 더 높게 나온 것은 교인 수가 50명만 넘으면 작은 교회의 장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작은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서 역할을 더 잘 할 수 있다는 견해와 작은 교회가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더 잘 할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각각 85.4%와 85.9%로 더 높은 동의율을 나타내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이 작은 교회의 의미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작은 교회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29.1%만 동의하였다. 소형 교회 목회자로서의 자기 인식과 관련하여, 열등감을 느낀다는 응답은 38.8%로 매우 낮았으며 작은 교회를 목회 실패로 보는 주변의 인식이 부담스럽다는 응답도 41.3%로 낮게 나와 작은 교회 목회자들의 자존감이 비교적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하여 성장을 추구하는 목회자들은 열등감을 느낀다는 응답이 60%에 달해 높게 나온 반면에,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목회자들은 두 항목 모두 평균보다 낮은 동의율을 나타내 자기 인식이 더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앞에서 살펴본 목회에 대한 갈등은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이고, 목회에 대해서는 더 만족하고 있고 자존감도 더 뛰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 교회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소형 교회의 특성과 장점을 잘 이해하고 작은 교회의 정신을 추구하는 목회가 중요하다. 작은 교회로서의 열패감을 딛고 작은 교회로서의 성서적 가치와 존엄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작은 교회 정신을 추구하는 교회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작은 교회가 갖는 여러 가지 강점에도 불구하고 자원이나 인력이 부족하다는 제약이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뜻을 같이 하는 작은 교회들이 연계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작은 교회 문화를 형성하고 확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작은 교회 정신이 몇몇 교회의 작은 몸부림으로 그칠 것이 하니라 하나의 존재 양식으로 그리고 하나의 교회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이 정신을 확대 재생산해야 한다. 그리하여 ‘양극화’라는 교회 쏠림 현상으로 큰 교회는 더욱 성장하고 작은 교회는 고사 상태로 내몰리고 있는 한국 교계에서 새로운 대안 문화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정기 목사2017-11-30

우리나라는 장관이나 고위공직자가 되려면 국회 인사 청문회를 통해 검증을 받아야 한다. 청문회를 통해 개인정보가 다 공개된다. 감춰져 있던 각종 비리들이 다 드러난다. 탈세, 자녀병역면제,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등…만약, 공직에 추천되지 않았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망신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청문회 제도는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생방송을 통해서 인민재판식으로 공개하면서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청문회에서 힐난하게 잘못을 지적하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과연 저들은 깨끗할까 의문이 생긴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일을 맡기실 때 필요한 검증과정을 거치게 하신다. 작은 일에 충성했는지, 정직하고 진실했는지, 자기 이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였는지 검증하신다. 그리고 큰 일을 맡기신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직전에 검증을 받으셨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비둘기 같은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다. 그리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3:22>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증거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광야에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성령충만할 때 시험받으셨다. 그런데 왜 성령께서 예수님을 이끌고 마귀에게 시험을 받게 하셨는지 의아심이 생긴다.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양면성을 함께 볼 수 있어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시험에도 양면성이 있다. 사단이 주는 시험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험이 있다. 이 양면성을 우리는 테스트(Test)와 템테이션(Temptation) 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테스트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좋은 의도가 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험의 목적은 마침내 복을 주시려는 것이다. “시험하고 낮추사 마침내 복을 주려하심었느니라”<신8:16>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우리를 골탕 먹이고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유익되게 하려고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내가 고난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으니 고난당한 후에는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했다. 야고보도“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욥도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템테이션은‘유혹’이다. 마귀가 주는 시험이다. 아주 그럴 듯 하고, 아주 매력적이고, 혹 하게 만든다. 그러나 마귀가 우리를 시험하는 목적은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한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은 절대적 진리를 거부한다. 기존의 모든 진리들을 상대화시킨다. 다양성을 최고로 여긴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융합하여 퓨전화시킨다. 어느 한 종교만을 고집하지 말고 각자의 종교성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듣기에는 정말 그럴듯하고 좋아보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속아넘어간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배타적이라고 공격한다. 천주교는 불교와 손을 잡고 일을 하는데 기독교는 왜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느냐고 공격한다. 오늘 이 시대에 마귀의 강력한 유혹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도 섬기라는 것이다. 모든 종교는 하나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공감을 하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는 속 좁은 사람들이 다니는 종교인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물론 타 종교를 비방하거나 무시하면 않된다. 다른 종교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다른 종교를 통해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바른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진리와 비진리를 혼합시킬 수는 없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한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오직 예수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다. <요14:6> 이것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길이 아닌 것을 길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생명이 없는 것을 생명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귀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안다. 약점도 잘 안다. 그리고 거래에 약하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거래의 덫을 놓고 우리를 유혹한다. 아담과 하와가 그 마귀의 거래의 덫에 걸려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마귀는 예수님과도 거래하려고 했다. 천하 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내게 한 번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했다. 정말 매력적인 거래 였다. 이 정도의 조건이면 안넘어 갈 사람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이 얼마나 간교한 거래 조건인지를 알고 계셨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으로 물리치시고 하나님의 검증 과정을 통과하시고 쓰임받으셨다. 마귀가 주는 시험은 말씀으로 물리치고,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믿음으로 인내하며 하나님의 검증 과정을 통과하고 쓰임받자. 최후의 승리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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