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정 기자2017-03-22

지난해 여름 발생한 춘천중앙교회 화재 사건은 교계 안팎으로 큰 충격을 안겨줬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건물이 순식간에 전소되면서 교인들은 큰 아픔을 겪어야 했고, 더 늦기 전에 교회도 각종 재난에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본지는 안전사고에 대한 교회의 관심이 이제는 적극적인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인식 하에 '교회의 안전관리'를 주제로 기획을 준비했다. 교회의 안전관리 실태를 진단하고, 사전 예방과 대응 그리고 사후관리에 이르는 전반적인 대응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만약 주일 예배를 드리던 중 화재가 발생했다면 어떻게 대피해야 할까. 특히 교회의 경우 지하공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평일에도 많은 교인들이 드나들기 때문에 화재발생시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화재 피해를 막기 위한 교회차원의 예방법과 화재 발생 이후 교회복구를 위한 사후처리 방안을 살펴봤다. 교회 성도 대다수 "소방교육 받은 적 없어" 현재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에 소화기가 어디에 비치돼 있는지 알고 있는 성도는 몇 명이나 될까. 성도들 대다수가 교회 내 소화기 비치 여부를 모르고 있는 것은 물론 교회에서 소방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A교회 차옥환 집사는 "교회 생활한 지 7~8년 됐지만 소방교육을 따로 받은 적은 없다"며 "소화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긴 하지만 정말 화재가 났을 때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B교회 김도경 집사는 "화재가 났을 때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교육을 받은 시간은 없었다"며 "소화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사용법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제대로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 "대피훈련만 받아도 대형사고 막을 수 있어" 종교시설 가운데 교회의 경우 다른 시설보다 화재예방이 필수적이다. 매주 일요일이면 수천 명이 한 장소에 응집해 있고 대부분 지하공간을 식당과 기도실 등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사전에 대피훈련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한 교회는 취약계층인 어린이와 노인 등이 다 함께 사용하는 공간으로, 평소 △비상구와 피난통로를 상시 개방하고 △소화기 사용법 익히기 △전기제품 사용 후 플러그 뽑기 등을 생활화해야 한다. 화재가 발생한 후에는 불꽃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119에 신고해야 하며 어린이와 노인 등 취약계층부터 먼저 대피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소방관계자들은 "평소 교회 내에서 모의 대피훈련을 진행하고, 화재발생시 각 부서마다 어떻게 대피할 지 역할을 분담해 놓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영등포소방서 재난관리과 홍경환 소방원은 "교회 내에서 화재예방 매뉴얼을 자체적으로 제작해 부서마다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며 "사전 교육이 이뤄지면 화재가 발생했을 때 혼란이 일어나지 않아 인명피해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보험개발원을 통해 2011~2015년 교회건물의 화재보험 가입여부를 살펴본 결과, 2011년대비 2016년에소폭 증가하긴 했지만 여전히 낮은 수치였다.ⓒ데일리굿뉴스 사후 처리 위한 '화재보험 가입' 필수 사전 예방을 위한 교육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사후처리다. 교회들이 화재를 당해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게 화재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험개발원을 통해 2011~2015년 교회건물의 화재보험 가입여부를 살펴본 결과, 2011년 5,534건에서 2016년 6,128건으로 소폭 증가하긴 했지만 여전히 낮은 수치였다. 교회안전복지연구소 대표 최윤곤 장로는 "대형교회를 비롯해 화재보험에 가입한 교회들이 있지만 대부분 '기도하면 교회에 사고는 발생하지 않는다'란 생각에 보험 가입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며 "결국 교회들은 화재가 발생해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안전사고로부터 교회를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교인들의 작은 관심과 실천에서 비롯된다. 지금이라도 가까운 관할소방서를 찾아, 도움을 청해보는 건 어떨까.

김준수 기자2017-03-19

종교개혁 500주년인 올해, 한국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화해와 연합의 기치를 높이 내걸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교회의 최대 숙원이라 할 수 있는 '복음통일'을 위한 준비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조짐이다. 올해 창사 20주년을 맞는 GOODTV는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통일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연중특별기획을 마련했다. 한국교회의 통일사역, 그 역사의 생생한 증인들을 만나보고 다양한 사역을 통해 복음통일의 그림을 그려가는 현장을 찾아가본다. 또한 '복음통일한국'을 위해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을 모색하고,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특별대담과 포럼도 개최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통일선교에 대한 비전을 받은 이후 북한과 통일을 위한 기도편지를 매일 배포하고 있는 오성훈 목사(북한사랑센터 대표). 그날의 상황과 정보가 담긴 기도제목을 통해 중보자들의 구체적인 기도를 돕고 있다. 오 목사는 한국교회가 지금보다 통일선교에 집중해야 한다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통일선교언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 섬김과 통일 위해 매일 기도제목 올려요" 오성훈 목사는 지난 2001년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17년째 북한과 통일을 위한 기도제목이 담긴 민족중보기도편지를 배포하고 있다. 기도편지에는 북한과 통일에 관련된 주요 소식은 물론, 12가지 영역(지도자, 사상, 정치, 군사, 사회, 문화, 교육, 외교, 경제, 종교, 탈북민, 북한인권)에 속한 구체적인 기도제목이 들어있다. 매일 사역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오 목사는 "하나님께 받은 통일선교에 대한 비전이 너무나 컸다"며 힘들었던 순간도 사명감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1996년 선교한국 대회에 참가해서 북한선교를 위한 선교동원가로 살겠다고 결심했어요. 제 사명을 확실히 깨닫게 되니깐 한 길만 걸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매일 북한과 통일을 위해 기도제목을 쓰다 보니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어떻게 사용하실지 기대도 되고요." '북한과 열방을 위한 중보기도네트워크'(The Prayer Network for North & the Nations) 기도일지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사역은, 2007년부터 <북한사랑>이라는 이름의 잡지로 독자들에게 전달됐다. 총 131호까지 발간된 <북한사랑>은 한 달에 1만 부라는 여느 잡지 못지 않은 발행부수를 자랑하기도 했다. 2012년부터는 <통일코리아>라는 이름으로 20호까지 발간됐다가 현재는 블로그(http://www.pn4n.org/)와 페이스북을 통해 공유되고 있다. 잡지에서 SNS으로 전달 방식을 바꾼 이유에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북한과 통일을 위해 기도하기 원하는 독자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기도편지를 받을 때의 상황이 기도제목을 작성할 때와는 너무나 달라져있을 때가 많았어요. 그 날 상황과 이슈에 맞게 실시간으로 기도제목을 전달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비전은 확실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도 무시할 수 없었다. 기도편지를 제작을 위한 인쇄비나 발송비가 아슬아슬하게 채워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지금까지 사역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후원자 분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죠. 보통 통장이 20페이지 정도 되는데, 지금 가지고 있는 후원통장이 97개나 됩니다. 필요한 재정만큼 채워지는 일을 많이 경험했어요.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이 사역을 기뻐하시고 보호하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교회, '통일선교언약' 제정해야" 오 목사는 <하나님의 눈으로 북한 바라보기>라는 책의 출판을 계기로 2011년 포앤북스 출판사를 설립했다. 지금까지 14권의 책을 내면서 건강한 통일선교 사역자들을 저자로 발굴하거나 통일선교와 관련된 이론 및 실천서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2013년에는 북한을 마주보고 있는 김포로 이사해 가정교회를 개척했다. '예수님의 심장으로 민족과 열방을 섬기는 교회'라는 비전을 담아 예심교회라는 이름을 지었다. 교회에서는 전문 사역기구인 북한사랑센터를 세워 탈북민 영어교육을 위한 캠프를 열거나 기도 인도자 훈련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현재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 사무총장 대행으로 섬기고 있는 오 목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회개운동을 준비 중이다. 한국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수라는 생각에서다. 오 목사는 통일선교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회개를 외치는 까닭에 대해 "통일선교만큼 한국교회가 복음 안에서 살고 있지 못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 없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이념과 전쟁으로 분단된 남과 북이 하나되기 위해 한국교회의 책임이 큽니다. 복음은 하나 됨을 위해 교회가 나서야 할 이유에 대해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이기주의, 개교회주의 넘기 위해서는 통일선교에 집중하는 일이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오 목사는 복음주의 교회의 눈을 영혼구원을 넘어 사회로 돌리게 했던 '로잔언약'처럼 한국교회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통일선교언약'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목사는 "한국교회 통일사역에 대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전략과 비전이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각 영역별로 전문가들이 모여 치열하게 고민하고 구체적인 실천까지 담은 선언문이 발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선 기자2017-03-15

지난해 여름 발생한 춘천중앙교회 화재 사건은 교계 안팎으로 큰 충격을 안겨줬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건물이 순식간에 전소되면서 교인들은 큰 아픔을 겪어야 했고, 더 늦기 전에 교회도 각종 재난에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본지는 안전사고에 대한 교회의 관심이 이제는 적극적인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인식 하에 '교회의 안전관리'를 주제로 기획을 준비했다. 교회의 안전관리 실태를 진단하고, 사전 예방과 대응 그리고 사후관리에 이르는 전반적인 대응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매년 교회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예방책 마련 없이 교회는 각종 재난에 무방비 상태나 다름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교회가 소방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거나, 안전사고에 대한 교육 및 훈련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화재를 당한 교회들의 사례를 통해 문제점은 무엇인지 짚어봤다. 교회 화재 빈번하게 발생…예방책은 無 지난 2015년 충남 아산에 위치한 엘림전원교회에 화재가 발생했다. 사고가 발생한 시각은 오후 10시 30분경. 잠자리에 들기 전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던 김황래 담임목사는 교회 건물에 불이 붙었다는 이웃의 말을 듣고 서둘러 현장으로 달려나갔다. 35년 전 허허벌판이었던 이곳으로 들어와 교회 건물과 필요한 모든 집기를 손수 만들었던 김 목사는 사고 현장을 목격하며 참담한 심정을 지울 수 없었다. 엘림전원교회는 이 사고로 교회 건물이 전소돼 7,000만 원 상당의 피해를 봤다. 지난해 7월에는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춘천중앙교회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나 예배당이 한 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춘천중앙교회는 1989년 설립된 강원도 최초의 교회로 지역 복음화와 근대화에 힘쓴 교회였다. 특히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눈물과 기도로 지은 교회 건물이기에 권오서 담임목사를 비롯한 교역자와 성도들의 충격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춘천중앙교회, 초기에 진화될 수 있었다" 불시에 찾아온 교회 화재를 막을 수는 없었을까. 당시 춘천중앙교회 화재를 진압했던 소방관은 "소방시설이 작동됐다면 초기에 진화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춘천중앙교회에는 스프링클러 설치가 되지 않아 자체 진화가 어려웠던 것이다. 강원소방본부 김봉배 주임은 "춘천중앙교회 건축이 허가된 것은 1998년도였고, 2001년 건축이 완료됐다"며 "근데 건물 바닥면적이 1000㎡ 이상 되는 곳은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한다는 법은 2004년 개정됐다. 법 개정 전 건축이 완료된 춘천중앙교회는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에 해당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초기대응이 미흡했던 것도 화재를 키운 원인이었다. 화재 당시 비상벨 소리를 들은 직원이 사이렌이 울리지 않도록 스위치를 끄고, 화재 현장을 확인 한 후에야 119에 신고한 것이 문제였다. 화재로부터 3분이나 경과된 시점이었고, 경보를 정지시켜 건물 내 사람들의 대피를 지연시켰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강원소방본부 김봉배 주임은 "화재가 나면 바로 신고해서 소방대가 출동해야 하는데, 화재가 난 걸 확인하고 나서 신고하다 보니 3분 정도 출동시간이 지연됐다"고 말했다. ▲화재로 인해 잿더미로 변한 강원도 춘천중앙교회 예배당모습.ⓒ데일리굿뉴스 소화설비 ·경보설비 부실 '심각' 지난해 강원도 소방서에서 종교시설 소방특별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대상 366개 중 '양호' 판정은 233 곳, '불량' 판정은 133곳이었다. 3분의 1 이상이 소화설비와 경보설비가 부실한 상황인 것. 교회가 화재 예방에 가장 필수적인 소방시설 관리조차 미흡하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그렇다면 화재 예방을 위해 소방훈련과 소방교육을 하는 교회는 얼마나 될까. 본지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이마저도 현저히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소방본부 김봉배 주임은 "교회의 요청으로 직접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은 파악된 부분이 없다"며 "교회 같은 경우는 소방훈련과 소방교육을 하는 곳이 많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교회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교회의 대응책은 미비한 실정이다. 화재 예방에 대한 관심을 넘어, 다양한 응급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준비가 시급하다.

김준수 기자2017-03-05

종교개혁 500주년인 올해, 한국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화해와 연합의 기치를 높이 내걸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교회의 최대 숙원이라 할 수 있는 '복음통일'을 위한 준비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조짐이다. 올해 창사 20주년을 맞는 GOODTV는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통일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연중특별기획을 마련했다. 한국교회의 통일사역, 그 역사의 생생한 증인들을 만나보고 다양한 사역을 통해 복음통일의 그림을 그려가는 현장을 찾아가본다. 또한 '복음통일한국'을 위해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을 모색하고,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특별대담과 포럼도 개최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평생을 북한선교와 연구에 헌신해 온 유관지 목사(북한교회연구원장). 1974년 극동방송 입사 이후 지금까지 하나님이 선물해주실 통일의 그날을 기다리며 북한선교라는 한 길만을 고집하고 있다. 언젠가 북한 지역 교회와 기독교 유적에 작은 표지판이라도 세우고 싶다는 유 목사는 통일 이후를 대비해 각 분야에서 북한과의 통합을 준비하는 체계적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40여 년 전 중국동포 편지…평생 연구 계기" 북한교회연구원장 유관지 목사는 올해 우리 나이로 일흔 넷, 고희(古稀)를 보낸 지도 4년이 흘렀지만 나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 목사는 기독교통일포럼에서 공동대표로 섬기면서 매년 발표 중인 '통일선교 10대 뉴스' 발표를 책임지고 있을 뿐 아니라,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 고문 겸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복음적 통일을 위한 기도운동 확산에 이바지하고 있다. 1974년 극동방송 입사 이후 42년 동안 북한선교에 매진해 온 유 목사. 1978년 중국의 개방정책의 영향으로 받게 된 중국 동포들의 편지와, 광복 50주년인 1995년을 3년 앞두고 북한교회 특집을 기획했던 것이 평생을 북한선교에 헌신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38년 전의 일이지만, 유 목사는 중국 심양에서 보낸 편지 하나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폐쇄정책으로 인해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릴 수는 없지만 방송을 들으며 신앙을 지킬 수 있어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말씀이 보고 싶다면서 성경을 보내주었으면 좋겠다는 간곡한 호소가 담겨 있었다. "1978년 이전만 하더라도 제3국을 통해 중국 현지 교인들의 편지를 1~2통 받은 것이 전부였어요. 그게 개방이 되면서부터 1979년 한 해에만 1만 5천 통 넘게 늘어났죠. 중국 동포들의 편지를 받았을 때는 충격과 감동이 동시에 밀려왔어요. 초대교회의 기적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된 거죠. 또 우리 방송사역이 의미가 있었구나, 모진 박해도 신앙을 이기진 못한다는 걸 알게 됐죠." 1992년 극동방송에서 방영된 <북녘기행>은 유 목사가 도맡아서 진행한 특집 프로그램이었다. 매주 북한의 시나 군에 있었던 교회를 소개하기 위해 자료 조사에 무척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만 해도 북한에 관한 정보 접근이 쉽지 않아 달라진 행정구역을 대조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 목사는 "북한교회 특집을 준비하면서 당시 교회의 영향력이 상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며 "'한 교회에는 적어도 한 개 이상의 학교가 있었다'는 말처럼 마을에서는 교육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지금의 주민센터처럼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북한교회 연구가 평생의 작업으로까지 발전했다. 논문 주제 역시 북한의 개교회사였다. 성화감리교회 은퇴 이후 북한교회연구원을 세운 것도 연구자가 전무한 북한 개교회들의 역사와 지리에 대해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유 목사는 탈북민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지역에 교회 건물이 남아있는지 묻곤 한다. 덕분에 함주와 청진에 용도가 바뀌긴 했지만 교회 건물이 보존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성과도 있었다. "민족의 슬픔 해결할 길은 통일뿐" 평생을 북한선교를 위해 달려온 노 목회자는 통일이 이뤄져야만 하는 당위성이 쉽게 부정 당하는 세태에 진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산가족과 실향민의 슬픔은 통일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수 없어요. 이제는 분단 국가라는 수치도 씻을 때가 됐습니다. 지금도 북한으로 복음이 비밀리에 들어가고, 지하교회도 있다고 하지만 직접적으로 마음껏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통일은 시급한 문제입니다." 한국교회 통일운동의 공과(功課)에 대해 유 목사는 민간 차원에서 통일운동을 시작했다는 점은 높이 살 수 있지만,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통일에 관해 일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 부분을 한계로 평가했다. 특히 "각 정당 대선후보들의 통일 비전과 정책을 평가하는 작업이 미미한 것 같다"며 한국교회 차원의 지속적인 검증을 주문했다. 또 통일 이후를 생각하며 각 분야에서 북한과의 통합을 준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목사는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이하 조그련)으로 대표되는 북한교회가 향후 남북한이 통일과 통합으로 나아가는데 있어 한국교회와 중요한 동반자 역할을 감당할 것으로 기대했다. 현재 북한에서 활동 중인 교회를 △전통교회 △국가교회(조그련) △지하교회 등으로 분류한 유 목사는 "자유롭게 예배 드리고 전도하는 전통교회는 6.25전쟁 이후 북한사회에서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부정적인 모습이 있지만 조그련은 국가의 필요에 의해 세워진 교회"라며 "가짜 교회나 위장교회라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최종 판단은 하나님이 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목사는 향후 통일이 됐을 때 신사참배를 두고 분열이 일어났던 한국교회처럼, 북한에서도 국가교회와 지하교회에서 활동한 신자들간의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통일 과정에 있어 한국교회와 북한을 이어주는 유일한 창구인 조그련이 파트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유관지 목사는 북한 지역에 있었던 교회와 기독교 유적에 표지판을 세우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사진은 지난 2012년 11월 10일 김화에서 열린 제4차 DMZ 기도회.(사진제공=유관지 목사) "북한교회 위치, 구글지도 입력 시급해" 유 목사의 기도제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대략 3천 개라고 알려진 북한교회의 위치를 구글 지도에 입력하는 것이다.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이 소장 중인 1912년 일제가 측량한 지적도와 각 교단의 자료를 참고하면 충분히 가능한 작업이라고 자신했다. "가톨릭은 이미 북한 지역에 있었던 70개 가량의 성당 위치를 구글 지도에 입력하는 작업을 마쳤어요. 어디든 지원만 해주면 당장이라도 착수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한국교회가 이런 일에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북한 지역에 있었던 교회와 기독교 관련 유적에 표지판을 세우는 일이다. 유 목사는 "북한교회 연구를 시작하면서 가졌던 변함없는 소원"이라며 "소래교회 근처에 있다는 맥킨지 선교사의 발자취나 침례교를 기틀을 다진 펜윅 선교사의 무덤에다가 작은 표시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 목사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통일을 선물로 주실 것"이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들어간 걸로 여겼던 것처럼, 우리도 통일이 될 것이라는 선취적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윤화미 기자2017-03-28

최근 주요 대학 총학생회장에 동성애자라며 커밍아웃을 한 후보들이 잇따라 당선됐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 특히 대학 캠퍼스 내 인식이 크게 변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사회 변화와 함께, 기독교계는 동성애 문제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짚어봤다. 기독 사립대서도 동성애자 총학생회장 출마 2015년 최초로 성소수자 총학생회장이 등장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단독 출마했던 김보미 씨는 정책간담회에서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밝혔다. 김 씨는 총학생회장 당선 이후 공약으로 내걸었던 ‘인권가이드라인’ 제정을 서둘렀다. 인권가이드라인은‘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항목을 포함한 것으로, 동성애 확산을 우려하는 학생 및 교수들의 반발에 부딪쳤다. 김 씨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이후, 타 대학 총학생회장 선거에도 스스로 성소수자라고 밝히고 출마에 나선 후보들이 속속 등장했다. 같은 해 이예원 고려대 동아리연합회 부회장이 당선된 데 이어, 지난 해에는 한성진 카이스트 부총학생회장, 장혜민 계원예술대학교 총학생회장이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당선됐다. 또 연세대 마태영 씨가 신학과 출신으로 총여학생회장에 당선돼 기독교계에 상당한 충격을 준 데 이어, 최근에는 기독 사립대학인 성공회대에서도 동성애자 후보가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성공회대 백승목 총학생회장 후보는 “많이 떨리고 두렵지만 제 커밍아웃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며 “내면의 모습까지 솔직하게 드러냈고 벽장에서 완전히 나왔다. 이제는 저를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백 후보는 ‘다양성’에 대한 공약으로 ‘성중립 화장실 설치’를 내세우고 ‘차별과 혐오 없는 학교를 위한’ 인권가이드라인을 제안했다. 사회적 인식 변화…동성애 폐해에는 ‘무감각’ 학교를 대표하는 총학생회장으로 커밍아웃을 한 학생들의 당선이 줄이어 나오면서, 대학 내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점차 달라지고 있다. 후보들은 커밍아웃이란 이슈로 이목을 집중시켜 표심을 잡았고, 동성애가 혐오 대상이 아닌 개인의 성적 취향임을 피력했다. 나아가 인권과 평등을 내세워 차별금지법과 유사한 학내 인권가이드라인 제정을 앞다퉈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그룹은 좁은 편견을 가진 혐오자로 비판의 대상이 됐다. 대학 캠퍼스뿐 아니라, 근래 한국사회에서는 유명 연예인들의 커밍아웃과 동성애를 미화하는 영화와 드라마, 언론 등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형태로 스며들면서 사회 인식의 변화를 꾀했다. 동성애문제대책위원회 김규호 사무총장은 “매스컴의 영향도 적지 않지만 문제는 ‘교과서’다. 교과서에 동성애를 옹호하는 내용이 삽입되면서 어린 청소년들에게 동성애에 대한 긍정적 시각만 주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동성애로 인해 오는 사회적 폐해에 대한 인식과 홍보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동성 간 문란한 성관계로 인한 에이즈 발병은 크게 늘고 있다. 최근에는 남성 동성 성매매 알선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 경찰이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공공연히 드러나고 있는 동성 성매매는 용돈벌이에 나선 미성년자까지 대상으로 삼아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은 찾아보기 어렵고 급증하는 범죄를 제재할 방안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무조건 반대’는 안 돼…현명한 대처 필요 그간 동성애 반대에 앞장서 왔던 기독교계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교회가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2015년과 2016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퀴어축제에서 기독교계가 벌인 맞불집회는 동성애 문화를 막기보다 축제를 홍보하는 역효과를 낳아 비판을 받았다. 때문에 동성애의 사회적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동성애의 폐해를 알리고 탈동성애 사역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김규호 사무총장은 “반대만 해서는 안 된다. 동성애의 폐해를 젊은 세대에서 잘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동성애가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고 성중독의 일종이며 정신적 폐해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며 “진정한 인권은 동성애를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 제도적 측면의 노력도 중요하다. 교계는 최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반영할 가장 대표적인 정책으로 ‘동성애 차별금지법 반대’를 내세우고, 후보자들을 상대로 철저한 정책 검증을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대다수 후보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는 만큼, 차기 정권에서 차별금지법의 입법 여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김 사무총장은 “한국교회가 차별금지법의 입법을 막기 위한 유권자운동을 벌여야 한다. 기독교계만 아니라 불교와 가톨릭 등 타 종교와의 연대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동성애 합법화가 전 세계적 흐름으로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교회의 실질적이고 현명한 대처가 절실해 보인다.

김주련 기자2017-03-26

종교개혁 500주년인 올해, 한국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화해와 연합의 기치를 높이 내걸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교회의 최대 숙원이라 할 수 있는 '복음통일'을 위한 준비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조짐이다. 올해 창사 20주년을 맞는 GOODTV는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통일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연중특별기획을 마련했다. 한국교회의 통일사역, 그 역사의 생생한 증인들을 만나보고 다양한 사역을 통해 복음통일의 그림을 그려가는 현장을 찾아가본다. 또한 '복음통일한국'을 위해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을 모색하고,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특별대담과 포럼도 개최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나는 오랫동안 북한 땅을 바라보았다. 하얀 왜가리가 북쪽을 향해 자유롭게 날아갔다. 부러웠다. 조용히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어 북한 땅이 보이는 다리 위에 놓았다. "나 대신 엄마 아빠에게 가 줘. 강물에 떠밀려서라도…가…." 탈북 난민 이야기를 담은 청소년 소설 <난민 소녀 리도희>의 한 구절이다. 의도치 않게 낯선 땅에서 홀로 난민이 된 주인공 도희가 북한 땅을 바라보며 읊조리는 말이다. 이 책을 집필한 이는 바로 박경희 작가다. 박 작가는 탈북민 기독대안학교인 하늘꿈학교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며 탈북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다. 그가 만난 탈북 아이들의 이야기가 그의 손을 거쳐 한 편의 소설로 세상에 나왔다. 그는 책을 통해 탈북 청소년들에 대한 편견을 깨고, 통일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탈북 과정 모티브로 신간 <난민 소녀 리도희> 펴내 박경희 작가는 아이들의 탈북 이야기를 모티브로 신간 <난민 소녀 리도희>를 썼다. 소설 속 주인공인 도희는 로동신문 기자였던 아버지가 한 번의 실수로 숙청되자 교사였던 어머니와 함께 중국으로 탈북한다. 교사였던 어머니는 난민신청을 하기 위해 남한이 아닌 캐나다로 도희를 보낸다. 하지만 도희는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해 진짜 '난민'이 돼 버린다. 엄마를 찾기 위해 중국 연길로 떠난 도희는 꽃제비로 살고 있는 탈북민 소녀 구희를 만난다. 소설은 고위층 자녀의 망명길과 배곯는 가난을 겪는 꽃제비의 삶 등을 현실적으로 녹여냈다. 박 작가는 이번 작품에 통일에 대한 희망도 담았다. "아이들이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해요. '들에 심어놓은 미나리는 잘 크고 있을까', '골목에서 뛰어 놀던 동무가 보고싶다', '할머니집 우물가에 있던 오야주 나무가 지금도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통일이 되서 이 아이들을 따라 북녘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도희를 평양 아이로 정한 것도, 결국은 도희가 평양에 다시 돌아가는 것이 '통일'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였어요."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넌 탈북 청소년들은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하기도 하고, 꽃제비가 되는 등 어렵고 안타까운 과정을 겪는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박경희 작가는 "최근에는 북한의 교육열 높은 부모들의 권유로 국경을 넘는 아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해외로 유학 보내듯이 남한으로 아이들을 보내는 경우도 있어요. 중국이나 태국을 거쳐서 남한으로 오는데, 브로커 없이는 올 수 없어요.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부모가 뒤따라 오기도 하지만 부모와 아이들이 결국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박경희 작가 ⓒ데일리굿뉴스 "탈북 청소년, 통일 세대 주역될 것" <류명성 통일빵집>, <우리의 소원은 통일> 등 그간 탈북 청소년과 관련된 책을 집필해온 박경희 작가. 그는 소설과 에세이, 동화, 르포를 통해 탈북 청소년들의 스피커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이런 주제들로 글을 썼던 것은 아니다. 그는 오랜 시간을 방송국에서 일한 방송 작가였다. 1994년부터 18년 동안 극동방송 ‘김혜자와 차 한 잔을’의 원고를 썼고, 2006년에는 '한국방송작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박 작가가 탈북 청소년들과 인연을 맺은 건 2010년, 탈북민 기독대안학교인 하늘꿈학교에서 탈북 청소년 관련 르포 집필을 의뢰 받으면서다. 박 작가는 어려운 삶을 살아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에둘러 탈북 과정을 묻지 않았다. 대신 아이들의 속마음을 취재하기 위해 글쓰기·독서 수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쌍하다', '안쓰럽다'는 마음을 갖고 아이들을 만났어요. '어떻게 이런 시련을 견뎌왔을까' 울기도 많이 울었죠. 그런데 아이들은 아니었어요. 남한에서 당당하게 인정받고 싶다는 꿈과 포부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르포 집필이 끝난 후에도 박 작가의 글쓰기와 독서 수업은 계속됐다. 아이들은 조금씩 마음을 열었고, 이제는 물어보지 않아도 각자의 사연을 꺼내 놓았다. "아이들의 탈북 이야기가 힘들고 아픈 것은 맞지만 아이들은 현재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어요. 그것을 목격하고 함께했기 때문에 '아이들의 이야기를 가장 진정성 있게 담아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사실 '탈북 이야기만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도 들었죠. 하지만 아이들 대신 목소리를 내는게 제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박 작가는 최근 인터넷포털 다음에서 <탈북 청소년, 그들의 진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스토리펀딩을 진행 중이다. 탈북 청소년들의 삶을 알리고 아이들을 향한 편견을 바로잡고 싶어서다. 박경희 작가는 아이들을 동정이아닌 인정의 시각으로 바라봐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아이들의 아픔이 물론 특별해요. 하지만 아이들이 이런 경험을 했다고 해서 남한 청소년들과 다르지는 않아요. 똑같이 성장통을 겪어요. 많은 분들이 '탈북'했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보지만, 사실 아이들은 남한과 북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아마 통일이 된다면 탈북 청소년들이 통일 세대의 주역이 될 것이라 믿어요."

박은정 기자2017-02-28

1919년 3월 1일, 종로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이 낭독되며 독립을 향한 외침이 전국으로 뜨겁게 타올랐다.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겠단 국민들의 열망은 지역과 남녀노소, 신분과 이념, 종교와 신앙의 벽을 넘어 모두가 하나돼 나타났다. 특히 3·1운동은 기독교와 천도교, 불교가 연합해 한국 근대사 초유의 종교간 연대를 이뤄냈단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본지는 한국기독교역사학회가 지난 23일 '3·1만세운동과 종교계'란 주제로 진행한 심포지움의 내용을 토대로 3·1운동 당시 한국종교의 역할은 어땠는지 살펴봤다. "3·1운동 중심에 한국교회 있었다" 익히 잘 알려져 있듯이 기독교는 3·1운동의 중심축을 차지했다. 이덕주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는 "3월 1일 독립선언서의 낭독으로 대규모 만세운동이 벌어질 때, 독립선언서에는 민족대표 33인의 서명이 담겨 있으며 신석구, 이승훈, 길선주 등 자랑스런 16명의 기독교인의 서명도 담겨있다"고 말했다. 3·1운동을 출범시킨 이 역시 기독교인이었다. 3월 1일 당시 민족대표단이 체포되면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던 기독교사 정재용이 공원 단상 위에 올라 선언서를 낭독한 것. 이 교수에 따르면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데 교회의 노회 및 총회 조직이 큰 역할을 했다. 장로교회와 감리교회는 총회와 노회, 지방회라는 지역교회를 연결해 전국적인 연락망을 구축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활발한 움직임에 한국교회는 일제 탄압의 표적이 됐다. 3·1운동 이후에 감옥에 투옥된 9,458명 중 약 20%가 기독교인이다. "죽는 한이 있어도 만세를 부르겠다"고 고백한 유관순 열사, "기독교 복음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 것"이라 외친 신석구 목사는 민족의 독립을 외치다 투옥된 믿음의 선조들이다. 이 교수는 "예수님처럼 고난과 박해를 무릅쓰며 조선의 자유를 열망했던 믿음의 선조들을 우리 한국교회가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천도교, 3·1운동으로 민족운동 주역으로 급부상 기독교에 이어 천도교도 3·1운동에 큰 역할을 했던 종교로 꼽힌다. 조규태 교수(한성대학교)는 "천도교가 3·1운동을 위해 민족대표단을 구성과 독립선언서 작성 및 배포, 독립선언식 개최 등을 준비했다"며 "이를 통해 급진적·혁명적·점진적인 것을 바탕으로 사회번혁을 위해 노력했던 천도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천도교는 독립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키고자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천도교 중앙총부는 지방 교구에 교령을 내려 1919년 1월 5일부터 49일간 특별기도회를 지도했다. 이는 독립운동의 전개를 대비하고 지방 교인들을 단속하기 위한 의도였다. 3·1운동을 주도했던 천주교 지도자로는 천도교 중앙총부 도사 권동진, 도사 화세창, 보성고등보통학교 교장 최린, 천도교 교주 손병희 등을 꼽을 수 있다. 조규태 교수는 "이들은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배포함으로써 시위운동을 일으켜 조선의 독립 열방을 해외에 알렸다"며 "이어 1월 하순 △독립운동은 대중화해야 할 것 △독립운동의 방법은 비폭력으로 할 것 △독립운동은 일원화 돼야 할 것 이 세가지 원칙을 정해 당당한 독립운동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끝으로 조 교수는 "천도교에게 3·1운동은 천도교의 성격을 드러낼 수 있는 거사였을 뿐 아니라, 천도교인들은 3·1운동을 통해 민족운동의 주역으로 급부상하게 됐다"고 전했다. 불교 민족대표 '한용운' 옥중투쟁 한국불교는 한국 불교의 인사권 재산권 등을 조선총독부가 장악하는 '사찰령 체제'로 인해 일제에 반발하는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 민족운동을 통해 고양된 민족의식으로 3·1운동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됐다. 불교의 3·1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면 단연 한용운일 것이다. 한용운은 3·1운동 이전 10년 간 불교의 민족의식 고양을 선도해 왔으며, 3·1운동 당시 민족대표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김광식 교수(동국대학교)에 따르면 한용운이 일본으로 가면서 천도교 대표로 활동한 최린을 만나 3·1운동의 지도부에 편입하게 됐고, 이에 3·1운동의 지도부에 있었던 한용운은 불교계를 대표하는 승려를 추가로 교섭해 민족대표단에 활동시키며 한국불교가 민족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불교계 민족대표인 한용운과 그의 민족대표 동참에 적극 따른 백용성은 3·1운동으로 인해 3년, 2년 동안 감옥에 수감됐다. 이들은 단순이 구속된 것 이상의 민족적 행보를 옥중에서도 전개해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전했다. 김 교수는 "한용운과 백용성이 보여준 옥중투쟁은 결코 잊을 수 없는 행보"라며 "한용운은 재판 과정에서 한국이 독립이 돼야 하는 이유, 자신이 독립운동에 참가한 당위성 등을 작성해 일제 판사에게 제출했으며, 이는 <독립신문>에도 게재됐다"고 말했다. 3.1운동은 극소수 친일파를 제외한 전 민족적 항일독립운동이자 계몽운동, 민족의 생존권 투쟁 등 각계각층이 결집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었다. 특히 3·1운동을 통해 나타난 종교간 연대는 오늘날 한국사회와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한연희 기자2017-02-22

GOODTV가 복음통일을 준비하며 선보인 <오, 자유여!>가 시청자들의 큰 호응 속에 '남북한가족맺기' 캠페인을 전개한다. 탈북민들의 신앙 간증...안방 ‘눈물’ 3만 탈북민들을 복음통일의 주역으로 육성하고자 기획된 신앙 간증 토크쇼 <오, 자유여!>. GOODTV의 대표 프로그램인 <오, 자유여!>는 디지털 케이블 종교채널에서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며 GOODTV 간판 프로그램으로자리매김하고 있다. <오, 자유여!>는 지난 10월 27일 첫 전파를 탄 이후 △남한 생활 정착기 △북한에서의 직업과 여가생활 △납북의 명절 등 매번 다른 주제와 간증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북에 놓고 온 어린 자녀를 그리워하는 모성, 탈북과 재송환 그리고 재탈북,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남한 생활 정착 이야기 등은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기며 큰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면서 탈북민들을 돕고 싶다는 시청자들의 연락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서울의 한 시청자는 "탈북 과정이 힘들다는 것 알고 있다. 직접 도울 수 없어 기도만 하다 용기를 냈다"면서 "김치를 나눠주며 남한 사람들의 정을 전해주고 싶다"고 전해왔다. 수원의 한 시청자는 “명절에 탈북민이 더 외롭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화했다”며 “한 가정이든 한 사람이든 명절에 초대해 같이 식사하고 교제 나누며 외로움을 달래 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전북 무주군 한 시청자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온 탈북민들이 안타깝고, 보람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순수함이 있어서 신앙생활에는 남한 사람들보다 훨씬 낫더라. 작은 도움이겠지만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GOODTV는 시청자와 탈북민을 신앙 멘토와 멘티로 연결해주는 '남북한가족맺기' 캠페인을 진행하게 됐다. 남한의 크리스천 가정과 남한에 온 탈북자를 한 가족으로 연결해 탈북자들의 남한 정착을 돕고 그들의 신앙을 더욱 단단히 다져주자는 게 취지다. <오, 자유여!> 진행자인 주순영 선교사는 "탈북민 토크쇼는 종편 프로그램에서도 진행한 부분이어서 새로울 게 없다. 하지만 <오, 자유여!>는 주체가 '크리스천' 탈북민"이라며 "자유를 향한 힘든 여정을 겪은 탈북민들의 교회와 신앙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낸 것이 시청자 호응을 이끌어 낸 것 같다"고 말했다. 주 선교사는 “남한에 온 탈북자가 3만명 가까이 된다고 하더라. 한 교회가 탈북민 한사람을 섬기면 복음화가 된다는 취지로 시작한 게 ‘남북한가족맺기’ 캠페인”이라며 “이들은 통일 후 북한 주민과의 가교역할을 감당할 것이고 북한 선교의 최전선에서 사역할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GOODTV <오, 자유여!>는 매주 목요일 9시 30분(본방), 일요일 오후 6시(재방), 화요일 오후 8시(삼방)에 각각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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