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경 기자2018-05-14

무슬림 인구의 증가율은 전 세계 평균 인구 증가율인 4.3%의 4배가 넘는 18.7%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하는 무슬림 관광객들이 크게 늘면서 이제는 한국사회에서도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 정부와 기업이할랄 단지와 무슬림 기도실 조성 등 무슬림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치면서무슬림에 대한 한국교회의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집트 콥트교인이자 무슬림 전문연구가인 이삭 선교사(가명)는 “무엇보다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슬림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려줄 누군가가 필요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켄싱턴호텔에서 만난 이삭 선교사는 비행기로 꼬박 하루 반나절이상을 타고 한국을 방문한이집트 콥트교인이다. 콥트교는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그리 익숙한 단어는 아니다. 기독교의 한 종파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콥트’는 그리스어로 이집트란 뜻으로, 콥트교는 2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집트의 기독교 자생종파다. 대표적인 이슬람권 국가로 꼽히는 이집트에서 콥트교는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인 IS로부터 집중적인 테러 공격을 받고 있다. 이삭 선교사는 오는 15일부터 개최되는 제27차 세계교회성장대회 참여를 위해 국제교회성장연구원(CGI)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이번이 세 번째 한국 방문이라는 그는 “올 때마다 한국교회의 놀라운 성장에 감탄하는동시에 점차 무슬림이 한국사회에서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며 “한국교회가 이슬람에 대해 정확히 알고 이를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삭 선교사는 “가장 큰 문제는이슬람에 대해사람들이 무지하다는 데 있다”며 “이슬람이 각 나라에 어떤 전략으로 침투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잘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더 이상 테러와 폭력으로는 포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슬람 세력들이 이제는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이슬람을 전하고 있다고 그는 경고했다.한국에서도 이런 이슬람의 비폭력적인 포교방식이 뚜렷하게 보인다는 것. 이삭 선교사는 “이슬람이 교육과 문화, 출판 등을 통해 비폭력적이고 거부감 없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전쟁을 일으킬 것을 말하는 코란의 본질은 변하지 않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만 이슬람과 무슬림은 구분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슬람의 길이 옳다고 굳게 믿으며 살아가는 무슬림에게는 사랑으로 다가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야한다”며 “그러나 동시에 기독교인들은 영적으로 깨어 이슬람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슬람은 그리스도인들이 경계해야 할 영적 전쟁의 대상이되 무슬림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는“무슬림들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려줄 누군가가 필요하고, 우리가 바로 그 역할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교회는 타 문화권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야 한다"강조했다. 비록 지난 수십년 간 이슬람에 의해 갖은 핍박을 받아왔지만 이삭 선교사는 "내 심장은 무슬림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면서 "이집트 기독교인들은 무슬림을 사랑하며그들의 구원을 간절히 바란다는것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란과 성경의 공통된 부분을 통해 무슬림들에게 다가가서 예수님을 전해야 한다"며 "코란에 예수님이 없는데 그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냐.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빛은 어둠보다 강하고 생명은 죽음을 지배합니다. 빛이자 생명인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이슬람 정책이나 이슈는 철저히 경계하되 무슬림은 사랑하고 선교의 대상으로 섬겨야 합니다"

최상경 기자2018-05-14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았던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한 교사가 고안해낸 작은 베품이 학교공동체에 크고 작은 기적들을 만들고 있었다. 고소한 붕어빵 향기 속에 피어나는 '선생과 학생들간의 유쾌한 이야기'는 스승의 날을 앞둔 지금, 찬란했던 우리들의 학창시절 속 선생님 얼굴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든다. 강화 덕신고 김세환 교목과 붕어빵 나눔 강화도에 위치한 덕신고등학교는 매주 금요일 점심시간 때마다 진풍경이 펼쳐진다. 학교 건물 사이로 붕어빵 기계가 설치된 소형 승합차가 자리를 잡으면 붕어빵을 받으려는 학생들로 긴 줄이 늘어선다. 2005년 붕어빵 나눔을 처음 시작한 김세환 선생님의 섬김 활동은 10년을 넘어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비로 집기들을 구입해 출발한 사역은 수많은 변화를 일구는 결과를 낳았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선생님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관계였다면 이제는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같이 가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붕어빵 나눔의 처음 시작은 제가 했지만, 지금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며 함께 파트너를 이루게 됐습니다. 학생들과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동일한 방향으로 가게 됐다는 게 가장 큰 변화죠." 시큰둥했던 학생들은 곧 이 나눔이 즐거워지자 점심 붕어빵 행사가 하루 중 가장 기대되는 시간이됐다. 팝콘 쿠폰을 꺼내든 김지연 학생(17)은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면 붕어빵 외에도 팝콘을 교환 받을 수 있는 쿠폰을 나눠준다"며 "오늘 질문을 적극적으로 했더니 많이 받았다"고 미소를 보였다. 옆에서쿠폰을 구경하던 정세은 학생(17)도 "붕어빵 차가 학교에 생겨 좋다"며 함께 웃음 꽃을 피었다. 소소하지만 의미있는 김 교사의 나눔은 학교 안에 행복한 문화가 확산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아낌없이 베풀고자 하는 김 교사의 마음이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다. "처음 붕어빵 나눔을 시작했을 당시만해도 학생들이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느꼈던 점은 아이들이 어떠한 대가가 꼭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점차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일에 의미를 통감하게 되는 학생들이 늘면서 섬김을 실천하고자 하는 문화가 공동체에 형성됐습니다." ▲점심시간 김세환 교사와 학생들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데일리굿뉴스 학생들까지 나눔 동참…"오병이어 기적 만들어 가다" 실제로 뜻을 모은 학생 20여 명은 '오병이어'라는 봉사단까지 만들었다. 반죽에서부터 붕어빵을 굽는 작업까지 붕어빵 사역에 모든 과정을 도맡아 실천하는 중이다. 동참하는 학생들이 늘면서 되려 김 교사는 학생들에게 배우는 지점이 많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제가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해가 거듭될수록 저 역시 학생들에게 받는 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서로 주고 받는 관계라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된 것이죠. 이렇게 깨닫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실천하는 동력이 생깁니다. 섬김과 나눔을 경험한 아이들만이 나중에 이를 실천하게 되는 선순환을 낳게 되는 것이죠." 붕어빵 나눔은 교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점차 확장돼 지역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인근 강화 초·중·고등학교를 비롯한 요양원 같은 노인요양시설과 군부대, 교회 등 다양한 장소를 찾아 붕어빵 나눔으로 사랑을 실천했다. 이러한 활동은 대외적으로 인정 받아 2016년 교육부로부터 학교 현장 우수 사례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김 교사는그간 맺은 열매들을 상기하면서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는 데에 본인의 역량을 집중하고픈 마음을 전했다. "아이들과 가까워진 만큼 아이들의 고민도 더욱 여실히 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대인관계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가 공동체를 강조하는 부분과도 연관되지요. 세상 속에서 겪을 수 밖에 없는 갈등은 같이 부딪치면서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해결하는 법 밖엔 없어요. 이 과정 속에 아이들과 더불어 함께 하면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붕어빵 소형 승합차에는 아이들과 함께 하고픈 김세환 교사의 바람이 집약돼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갈 이들의 공동체 이야기는 교권추락과 입시위주의 경쟁구도로 허덕이는 지금의 현실을 돌아보기 충분했다. 향후 붕어빵 나눔을 통해 일어날 크고 작은 기적들이 유독 기대되는 이유다. ▲덕신고등학교의 붕어빵 나눔을 통해 앞으로 일어날 크고 작은 기적들이 기대된다.ⓒ데일리굿뉴스

한혜인 기자2018-03-22

탈북민이 우리 사회에 완전하게 동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 이들에게 교회 문화는 사회 적응과 더불어 또 하나의 적응거리로 느껴지곤 한다. 그래서일까. 하나원에서 열심히 교회에 다니던 이들도 사회로 나오면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 탈북민 3만 시대를 맞은 현시점에서 '탈북민에게 복음을 전할 때 한국교회가 알아야 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빨리 빨리' 외치는 교회들…"서두르지 마세요" "교회가 궁금해 교회에 가봤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왜 이렇게 할 일이 많나요? 오자마자 등록하라 하고, 양육 받고, 세례받으라 하고...도저히 못 다니겠어요." "북한에서는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웠죠. 성경을 봤는데, 창세기부터 이해할 수 없는 내용 투성이더라고요." "미국에 대한 적대감이 있습니다. 국가에서 교육받았습니다. 미국으로 인해 남북이 분단되었다고 배웠습니다. 미국 선교사가 많던데...그럼 기독교도 나쁜 종교 아닙니까?" 탈북민들이 처음 기독교를 접할 때 드는 생각들의 일부다. 남한에 적응하는 것 자체도 어려운 탈북민들에게 교회 적응은 큰 부담이자 숙제로 느껴지곤 했다. 동시에 북한에서 교육받은 사상이 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2일 본지와 만난 이나단(31, 가명) 전도사는 북한에 있는 가족이 걱정된다는 이유로 가명을 요구했다. 약 5년 전 탈북한 이후 북한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만난 한 목회자와의 인연으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그는 성경은 거짓이라고 부정하다가부흥회에서 눈물로 성령의 임재를 느꼈다. 이후, 그의 비전은 복음 통일로 변했다. 이 전도사는 "한국은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북한과 문화도 너무나 달라 대다수의 탈북민이 많은 어려움에 부딪힌다"면서 "주말에도 일을 하는 탈북민의 경우 교회에 나가는 시간도 부족할뿐더러, 한국 사회에서 적응하기도 힘든데 교회에 가면 교회 문화도 적응해야 해 이중고라고 느끼기 쉽다"고 밝혔다. 이나단 전도사에 따르면, 탈북민이 교회에 오더라도 한국교회가 이들을 온전히 품어주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했다. '빨리 빨리'가 습관화된 한국사회의 특징이 한국교회로까지 스며들었기 때문일까. 그는 돈과 시간을 들이면 즉시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한국 사회 특유의 분위기가 교회에도 팽배해있다고 진단했다. 빨리 마음을 열지 않는 탈북민들을 한국교회가 이들을 쉽게 포기하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 탈북민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데, 일률적인 교회 교육 프로그램과 등록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탈북민은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교회가 궁금해 예배를 드리러 나왔는데, 교회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오늘 등록해라', '양육 교육받아라' 등 탈북민의 입장에서는 '요구'하는 것이 많다 보니 부담스러워 떠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문화와 생각 차이에서 발생하는 교인들의 실수로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나는 경우, 돈을 준다는 이유로 이단 교회에 빠지게 되는 경우 등 탈북민이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꾸준함이 필요…"한 영혼 세움은 북한에 교회를 세우는 일" 그렇다면탈북민 사역의 핵심은 무엇일까. 이 전도사는 '관계 맺기'와 '꾸준함'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탈북민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천천히 시간을 갖고 탈북민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픔에 함께 공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탈북민이 남한에 혈연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이들의 입장에서 배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전도사에 의하면대부분의 탈북민은 중국에서는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숨어 살았다.19살이나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임신한 경우도 많다. 원하지 않았던 결혼을 하거나 성매매를 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들이 교회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도록 탈북민을 향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는 또, 한 명을 섬기더라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 꾸준히 섬겨야 한다고 역설했다. 탈북민에게 복음이 들어가는 건 참으로 어렵지만, 한 명의 탈북민에게 복음이 들어가면 그 파급 효과는 엄청나다는 것이 이 전도사의 믿음이다. 그의 마지막 말에서 단호함이 느껴졌다. "탈북민 1명을 제대로 훈련시키면 사실상 북한 땅에 교회를 세우는 것과 같은 효과입니다. 탈북민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비주류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통일 후에는 이들이 주류가 되어 북한 주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대사가 될 것입니다."

박혜정 기자2018-03-26

"시련은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여기,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힘겨운 시련의 연속을 극복하고 전 세계에 자랑스러운 태극마크를 알린 사람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장애인 아이스하키팀 국가대표 최광혁 선수가 그 주인공. 지난 23일 서울 잠실동 부근 북카페에서 꽃제비, 탈북민, 장애인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이제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된 최광혁 선수를 만났다. 北서 사고로 왼쪽다리 잃어…南 적응도 어려워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과 모여서 애국가를 부르는 순간, 무언가 뜨거운 감정이 마음 깊은 곳에서 복받쳐 올라왔다. 사람들 앞에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티 내고 싶지 않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겪은 좋았던 것들과 아쉬웠던 지난날이 생각을 스쳐 지나갔다. 이 모든 일들을 이겨낸 스스로에게 잘 버텼다고 칭찬해주고 싶었다." 왼쪽 가슴에 자랑스런 태극마크를 달고 인터뷰 장소에 나온 최 선수가 2018 동계 패럴림픽에서 한국 장애인아이스하키 사상 첫 패럴림픽 메달(동메달)을 획득 했을 때 심정을 전했다. 수 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대한민국 국가대표선수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최 선수의 인생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최 선수는 1987년 북한 함경북도 화성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북한에서 지붕도 없는 집에서 살면서 힘겹게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아이스크림 팔이 생활을 했다. 열차 지붕이나 측면에 매달려 역마다 정차해 아이스크림 장사를 하다가 왼쪽 발이 열차 바퀴에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그리고 한쪽 다리가 없이 살아야 하는 장애인이 됐다. 북한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었다. "건강한 사람도 살기 힘든 북한 생활인데, 나는 장애인으로 살았으니 정말 죽지 못해 산 삶이었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 한탄할 만큼 척박한 삶을 살았다. 장애인이 북한에서 산다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2001년 최선수가 14살 일 때, 브로커가 찾아왔다. 그는 남한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겠다는 브로커의 말에 남한에서의 새로운 삶을 기대하며 한국 땅을 밟았다. 그러나, 남한에서 탈북민, 장애인으로 사는 것은 그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남한에 와서 가족과 재회의 기쁨도 잠시였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고아원 생활을 했다. 사람들은 내게 도깨비라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대했다. 이런 남한생활은 내 반항심만 자극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남한에서 학창시절에 PC방에서 밤새고, 술 마시고, 담배 피는 생활을 일삼았다." 그는 기독교 학교인 '여명학교' 출신이고, 중학생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어려웠고 성경말씀에 반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 "학교는 나의 모난 부분을 품어줬던 곳이다. 내가 깊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지난 시간은 모두 감사한 시절이다" 인생 바꾼 아이스하키…장애인 위해 '의족' 만드는 것이 꿈 최 선수는 2011년 '한국복지대학교 의료보장구학'에 입학한 후 아이스하키 운동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아이스 하키 운동을 처음 접했지만, 이 운동을 시작한 것은 그의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됐다. "과격하고 파워풀한 아이스하키 운동에 매력을 느꼈다. 아이스하키는 내게 좋은 시간을 가져다 준 인생의 반환점이다" 그는 운동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장애인 국가대표선수라는 목표를 갖게 됐다. 그리고 국가대표 선수로 준비하는 시간은 최 선수를 성장하게 해주었다. "아이스하키대회가 국내에서 치러지는 거대한 행사라는 점과 국가대표선수라는 타이틀이 나에게 매력적이었다. 태극마크를 달고 패럴림픽에 출전하겠다고 결심한 후, 학교 가는 날은 교내 웨이트 장에서 연습하고, 주말에는 아이스하키 운동에 매진하며 주말 없이 공부하고 운동했다. 내가 담배까지 끊어가면서 운동하니 사람들은 내게 독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 바뀔 수 있다" ▲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개막 전 8일 오후, 강원 강릉하키센터에서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아이스하키 선수단 공식훈련을하고 있는 최광혁 선수. 최 선수는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일상에서 많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게 주어진 현재의 시간이 얼마나 가치 있고 귀한 시간인지 늘 되새기고 있다. 탈북 청소년이나 나와 같이 장애를 겪고 있는 많은 이들이 다시 오지 않을 현재의 시간을 효과적으로 잘 보내길 바란다. 어떤 생활을 하든지 힘든 시간은 꾸준히 찾아온다. 그러나, 오늘 닥친 힘겨움을 이겨내면, 다음 번 다가온 새로운 힘겨움의 무게를 덜 수 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국가대표선수로서 더 발전된 경기를 위해 준비하겠다는 열정을 내비쳤고, 자신과 같은 장애 이웃을 위해 의족을 만들고 싶은 개인적인 바람도 전했다. "패럴림픽이 끝난 이후 여전히 마음이 떠 있지만, 금방 잠재울 것이다. 다시 다가올 올림픽을 바라보며 부족했던 경기력을 채우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또한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장애에 있어서 이해도가 넓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아프리카와 같은 가난한 나라에 있는 장애인들을 위해 좋은 의족을 만들고 싶다" 최 선수가 넘어선 시련들은 누구나 쉽게 겪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의 대한민국 국가대표 메달리스트로서 삶이 더욱 값지다. 그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반감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 아직 깊은 신앙은 없다고 말했지만, 앞으로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선수'로서 전 세계에 태극마크를 자랑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희망의 메시지가 되길 소망한다.

박혜정 기자2018-04-23

35년동안 무신론자로 살면서 기독교인을 비웃었던 미국 강력계 형사가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는 과정에서하나님을 만났다. 현재 목사이자 한글번역책 <베테랑 형사 복음서 난제를 수사하다> 저자이기도 한 그는 하나님을 만난 후 세상에 복음을 열정적으로 증거하는 '복음의 증인'이 됐다. 미국 크리스천 브로드캐스팅 네트워크 'CBN뉴스'를 통해 월리스 목사의 신앙 이야기를 정리해 봤다. J. 워너 월리스, 첨단 과학수사 기법으로 복음 증명해 살인사건 전담 수사관 및 미제사건 담당 형사답게 날카로운 안목과 예리한 판단력을 가진 월리스 목사는 담당사건을 처리했던 기법으로 성경을 공부했다. 그러던 중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이 본인의 성향에 딱 맞는 방법으로 만나주셨다고 고백했다. "사건을 수사할 때 내게 주어진 증거들을 가지고 사건 속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계속 질문한다. 이처럼 복음서가 말이 되는지 궁금해서 6불 짜리 성경책을 사 성경말씀 속 증언들을 샅샅이 파헤치고 분석했다. 말씀 속 증거들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달았다." 그가 복음을 신뢰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성경말씀 속 증언들의 특징이 자신의 의심과 궁금증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증인들의 목격담이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수의 증인들이 같은 사건을 봤다면, 그들은 절대 같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퍼즐을 맞출 수 있는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마찬가지로 복음서에 이 같은 특징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복음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만나기 전과 후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 내 인생은 무(無)에서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죄인은 내가 감옥에 넣는 사람들이었고, 나는 착하고 선한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난 후 더러운 내 자신을 발견했고 나는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불필요한 신화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복음은 진리며 이는 내가 기독교인인 이유이기도 하다." 복음의 진리를자신의 괜한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월리스 목사는 성령의 역사를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미제 살인사건 수사기법을 적용해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지 못하거나 비판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는 미국 현지에서 2013년 '콜드케이스 크리스채너티(Cold-Case Christianity)' 출간을 시작으로 2016년에 '갓스 크라임 씬(God's Crime Scene)'2017년 '포렌식 페이스(Forensic Faith)'를 저술해 호평을 받았다. 특히 원제 '콜드케이스 크리스채너티(Cold-Case Christianity)'의 한글 번역본 <베테랑 형사 복음서 난제를 수사하다>가 2017년 국내에 발행되면서 독자들로부터 흥미진진하고 설득력 넘치는 책이라는 평을 받았다. 크리스천 포스트 기독교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복음을 통해 '놀랍도록 선명한 깨달음'을 얻었다면서 기독교는 자신이 형사로서 처리했던 어느 사건들만큼 설득력 있다고 전했다.

한혜인 기자2018-04-18

20년 동안 말레이시아 정글에 100개가 넘는 교회를 세운 박철현 선교사의 선교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담아낸 영화 <파파 오랑후탄>이 19일 개봉한다. 이에 개봉 전인 18일 박철현 선교사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배우 염광호를 만났다. 배우 염광호 "말레이시아 원주민에게 감사" 19일 개봉하는 <파파 오랑후탄>은 원주민과 사랑에 빠진 '원주민 바보' 박철현 선교사의 말레이시아 정글 사역을 그린 영화다. 영화에는 선교사로서 감당해야 하는 삶의 애환과 천국 소망이 담겨있다. 박철현 선교사의 젊은 시절은 배우 염광호가 연기했다. 배우 염광호는 1985년생으로, 2011년 KBS 드라마 <브레인>을 통해 데뷔했다. 18일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GOODTV사옥 인근 카페에서 만난 배우 염광호는 영화 촬영 현장이었던 말레이시아 정글은 그야말로 예배의 현장이었다고 전했다. 촬영 전에는 스태프와 출연진이 함께 예배를 드렸다. "영화는 5년 전이었던 2013년에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제작비가 열악해 말레이시아 정글로 떠날 땐 이성관 감독과 저 둘뿐이었죠. 시작할 때는 막막했지만,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하니까 단기 선교사들이 피디, 섭외, 오디오, 분장 등 적극적으로 영화 제작에 협력해줬습니다. 이후 제작팀은 말레이시아 정글에서 원주민을 설득했다. 그는 제작 초반에는 원주민들이 못하겠다고 도망 다녔던 탓에 촬영이 많이 지연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원주민들도 국내 제작팀에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도와줘 무사히 영화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이에 그는 원주민 도움 없이는 영화가 탄생할 수 없었다며 원주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에게 <파파 오랑후탄>은 소중한 영화다. 신앙적으로 가장 어려울 때 영화 촬영이 시작됐고, 영화를 찍으며 그의 신앙이 회복됐기 때문이다. 영화가 그의 삶에오아시스가 된 셈이다. 또, 말레이시아에서 박철현 선교사의 사역을 보며 도전을 받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박철현 선교사의 선교적인 태도와 생각을 배울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역사를 어떻게 펼쳐가시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의 영향으로 감사하게도 촬영 현장이 하나의 작은 교회가 되어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이렇게 제작된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5년이 지나서 개봉하게 됐다. 그는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씀이 영화와 그의삶에 살아있는 말씀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국 기독 문화가 대중적으로 사랑받길 원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기독 문화에는 세상이 따라올 수 없는 무언가를 하나님께서 채워주고 계신다 생각합니다. <파파 오랑후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 문화인들이 선한 경쟁을 서로펼치다보면 보다 희망적이고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는 콘텐츠나 문화의 산물이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더불어 선교적 사명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영화는 파이오니아 21(대표 김상철 감독)이 배급하며, 함께하는사랑밭, 애플브릿지, 애플망고 선교회가 공동 제공한다. 영화는 필름포럼(02-363-2537)과 부평대한극장(032-503-3330)에서 개봉하며, 80명 이상 단체 관람 시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인근 극장에서 대관 상영이 가능하다.

박혜정 기자2018-04-16

"포기하는 것이 제일 힘든 길로 들어서는 것. 어떤 상황 속에서도 Do not give up." 소아마비 1급 장애인이자 플루티스트 장은도 목사의 말이다. 그는 어려운 가정환경과 장애 때문에 어린시절 마음껏 공부하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을 만난 후 장애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음악예술사립대 출신 최초 장애인 플루티스트이자 목사인 장은도 목사는 자신의 모든 것이 '복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장은도 목사는 어린 시절에 술을 벗 삼는 아버지 밑에서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3살에 잘 걷고 뛰어 다니다가 척추로 바이러스가 들어가면서 열이 나 하반신부터 마비되는 소아마비 판정을 받았다. 영원히 완쾌되지 않고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이 진단에 장 목사와 그의 가족들은 절망의 날들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 신앙생활을 하며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하나님의 자상함으로 극복해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내 인생은 실패자였다. 장애인으로 살 팔자, 고생할 팔자, 가난할 팔자,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이후엔 그 모든 팔자가 복의 근원이 됐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선배로부터 교회를 가자는 제안을 받은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됐다. 선배의 말이라면 무조건 몸을 조아려야만 했던 시절이라서 그는 긴장이 앞섰지만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는 꿈에 교회를 갔다. 그렇게 만난 교회는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예배장소에 들어가자마자 표현할 수 없는 평안함이 느껴져 눈물이 울컥하고 올라왔다. 신실한 친구들을 만났을 뿐 아니라, 지인을 통해 플루트를 접하게 돼 학교 기악 반에서 연주법을 배우면서 플루트와 평생 인연을 맺었다." 기술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의견과 달리 장 목사는 "네가 밟는 땅이 모두 너의 것이 될 것이다"는 말씀에 힘을 얻어 가장 즐거워하는 음악을 하기로 확신했다. 그는 독학으로 플루트를 불렀고, 아무 대학연습실을 들어가 보이는 형들에게 동냥레슨을 받으면서 연습했다. 작은 방이 딸린 레코드 가게에서 플루트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1년 후엔 신촌 종합학원 악기 선생님으로 일했다. 이렇게 늘 함께 한 플루트는 장 목사의 건강도 나아지게 했다. "심한 척추측만증 때문에 소화가 힘들었는데 악기를 분 다음부터 잘 됐다. 플루트를 하면서 몸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심폐기능이 좋아졌다." 그러나 그에게도 플루트와 거리를 두는 방황의 시기가 있었다. 그는 4년 동안 플루트를 하지 않고 다른 분야를 해보려고 교회음악계통 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런데 이 공부가 오히려 제대로 된 플루트전공공부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장은도 목사가 플루트 즉흥연주를 선보이고 있다.ⓒ데일리굿뉴스 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기로 장 목사는 4년 학사학위로 중앙대 대학원에 입학해 본격적인 플루트 전공을 20대 후반에 시작했다. 그는 29살 대학원 졸업을 하고 플루트를 가르치면서도 학부전공부터 시작하지 못한 것 때문에 스스로 반쪽자리 선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때, 대학원 논문지도 교수님 제안으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여행 차 갔다가 오디션까지 보게 돼 비엔나음악예술사립대에 입학했다. "유럽학교에서는 실기 전공생을 뽑을 때 성적합격이 되더라도 학생을 가르치겠다는 선생님이 한 명도 없으면 입학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오디션에서 장애까지 있는 나를 책임지고 가르치겠다는 교수가 있었다." 장 목사는 입학 후 아내와 두 딸을 한국에 두고 홀로 하는 유학생활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기도의 힘으로 대학(4년) 대학원(4년) 최고연주자(2년) 과정을 6년만에 마쳤다며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졸업식때 지도교수님은 나를 껴안으면서 제자가 아니라 친구라고 말했다. 나는 교수님께 대한민국 학생 1호였다. 어린 나이에도 마치기 힘들다는 최고 연주자과정을 삼십대에 마친 것은 기적이었다. 이는 하나님의 긍휼하심 덕분이다." 공부하지 못했던 '한'을 제대로 푼 그는 목사가 되기까지 많은 연단의 시간을 겪고 순종했다고 고백했다. "결혼해서 피아노 학원운영하면서 남부럽지 않은 부도 누려봤다. 그러나 나는 어느새 교만해져 있었다. 교회에서 연주 봉사만 하면 된다는 생각들이 틈타면서 하나님께 헌신하겠다고 고백했던 초심을 잃었다. 하나님은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았던 나를 연단하셨고 마침내 나는 하나님께 순종해 목회의 길을 갔다." 현재 장 목사는 'D.C&Logos'라는 크리스천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방문 연주를 하고있다. 가족예배를 드리기 위해개척교회를 시작한장 목사는 음악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계속 알리겠다고 말했다. "음악선교에 뜻을 둔 학생들의 선생이자 목사로 살고 싶다. 음악선교를 통해 나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각자의 은사에 맞게 그들의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대한민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

박혜정 기자2018-04-11

기독교인이라면 잘 알고 있는 한동대학교 초대총장 김영길 박사는 진화론을 전공했던 과학자였지만, 하나님을 만나면서 창조론으로 돌이켰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다"고 여전히 고백한다. 이제 그는 유엔아카데믹임팩트 한국협의회(이하 UNAI Korea) 회장으로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지키는 참교육으로 세계의 여러문제를 해결하고 세계시민교육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여든에도 불구하고 공부해서 남 주는 것이 여전히 꿈이라며 교육의 철학을 지키고 있는김영길 박사이야기를 정리해봤다. 안동이 고향인 김영길 박사는 어린 시절부터 '어리석어도 좋으니 어질어라'는 뿌리깊은 경천애인의 유교사상 가정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고향이 안동인 만큼 비행기를 많이 보고 자란 덕분에 자연스레 비행기 제작에 호기심이 많았고 금속재료공학을 전공하게 됐다. 그는 1967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편지로 지금의 아내 김영애 권사와 연애를 시작했다. 아내는 그가 하나님을 믿게 해준 축복의 통로였지만, 그는 처음에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1974년 NASA연구원이 되면서 성경과 가까워졌다. NASA에서 첨단과학을 다루는 백여 명의 박사들이 매주 예배하며 찬송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그는 이 모습을 보고 도대체 저들이 왜 기쁘게 찬송하고 간절히 기도하는지 궁금해서 성경책을 읽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면서도 말씀이 과학적 논리에 맞지 않아 의심이 들었고, 그 의문들을 아내에게 제기하면 아내는 "너무 따지지 말고 무조건 믿으라"는 대답만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김 박사가 깨달은 한 가지가 성경지식들을 한 번에 거리낌없이 맞춰지게 했고 그는 드디어 성경을 믿었다. "성경은 1600년 동안 각각 다른 장소와 관점에서 40여명의 기자들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능력이야기다." 그렇게 그는 예수님에게로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 그 때 <지구의 해방>이란 책을 읽게 됐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확실한 답을 찾았다고 전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졌고 이유 모를 눈물도 흘렸다. 이러한 감격을 아내와 밤늦도록 나눴고, 아내와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논리와 이성으로 성경의 이야기를 판단하는 내 모습은 이제 없다." 주님을 만난 후 하나님이 예배하신 길을 따르게 돼 김 박사는 그가 만난 하나님을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전하고 싶은 소망 때문에 어렵게 귀국을 결심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삶도 이미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셨다. 1978년 12월, 12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유치 과학자로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재료공학과 교수로 왔다. 1980년 8월 C.C.C(한국대학생선교회)에서 '세계복음화성회, 창조냐 진화냐'를 주제로 개최되는 세미나에 그가 유일한 한국측 강사가 된 것이다. 1981년 1월에 그는 300여명의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창립한 '한국창조과학회'에 초대회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이 때 자신을 바라보는 비판의 시선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부분까지도 해결해주시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해주시는 귀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해외 유치(誘致)과학자로 갓 귀국한 제가 진화론을 부정하고 있다는 비판적 기사가 실렸다. 또 연구하랬더니 창조과학이나 강의하러 다닌다는 색안경 낀 시선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 무렵 미국에서 'NASA 체크 브리프 상'과 'IR-100상'을 수상하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또한 김 박사가 풍산금속과 협력해 발명한 반도체 리드 프레임 'PMC-102'합금 제조기술이 독일에 수출돼 우리나라 최초의 '선진국 기술 수출 1호'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그는 창조과학회에서도 날로 많은 연구업적을 쌓다가 1994년 순수 기독교신앙으로 교육하는 대학 초대총장 제안을 받았다. 그는 교육의 길로 들어서기까지 스스로 기도를 많이 했고, 주변사람들 기도의 힘도 컸다. 그는 결단을 내리고 총장직을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그는 영어교육, 컴퓨터교육, 인성훈련을 위한 무(無)감독 시험제를 학교에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등 학생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글로벌 자질을 갖추도록 노력했다. ▲김영길 박사는 1994년부터 2014년 2월까지 한동대학교 초대총장으로 재임했다.(사진제공=신앙계)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심을 느껴 하지만 학교를 시작했던 이사장의 사업상 문제로 재정난이 심각했다. 몇 달간 교직원들 월급이 나가지 못한 상황 속에 국고금 지원을 받은 것으로 잠시 전용했다가 몇 달 후 원상복귀 시킨 일이 있었는데, 이게 문제가 돼 그는 53일간 감옥생활을 했다. 감옥생활 중에서도 그는 그 안에서 복음을 전했다. 스승의 날엔 1천800여 명의 한동대 학생들과 학부모,교직원들이 감옥 밖에서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러주었다. 무엇보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 53일을 사용하셨고 하나님이 일하셨다고 고백했다. "신기하게도 제가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오히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한동대가 자동홍보 됐고, 부족한 재정들이 채워져서 이전보다 더 많은 후원금이 모아졌다" 20년을 한동대 총장으로 재임하며 좁은 길을 걸어온 김박사는 2016년 5월, 췌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그는 수명이 여기까지라고 생각했지만, 시편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평안한 마음으로 치료받고 모든 병이 사라지는 기적을 경험했다. 김영길 박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믿음의 통로로 사용하시기 위해 이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허락하신 것을 믿고 고백했다. "치료를 잘 받게 하시고 독이 몸이 퍼지지 않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김 박사는 UNAI Korea에서 그동안의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국제기구와 협력하여 국내외 세계시민 양성 교육 활성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한편, UNAI Korea는 2010년 유엔에서 출범한 유엔아카데믹임팩트(UNAI)의 미션실행 주체로서, 국내외 고등교육(대학교) 및 학술기관과 협력해 고등교육과 세계시민교육 증진을 통한 글로벌 과제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김영길 박사의 자세한 간증은 <신앙계> 4월호에서 만날 수 있다.

한혜인 기자2018-04-10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자기소개서를 내야 한다. 왜일까? 회사 입장에서는 같이 일하게 될 지원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알고 싶다면 성경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는지 보면 된다. 베이직교회 조정민 목사가 신간 <예수는 누구인가?>를 출간했다. 요한복음을 바탕으로 쓴이 책은 한마디로 '예수님 소개서'다. 지난 6일 서울시 강남구 베이직교회 사무실에서 조정민 목사를 만났다. 요한복음 8가지 키워드 바탕…"진정한 예수 만나길" "교회는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곳이지 개인의 꿈을 이루는 곳이 아닙니다. 기자로 일할 때 제 야망을 갖고 입사했으니 첫 사회생활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회사의 목적과 내 꿈이 안 맞으면 갈등하죠. 신앙생활도 똑같습니다. 예수님이 요구하는 크리스천의 모습이 있습니다. 내 목적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면 신앙이 자랄 수가 없습니다." 조정민 목사(베이직교회)는 25년 동안 언론인으로 일하다 예수를 만난 후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MBC사회부·정치부 기자, 워싱턴 특파원, 뉴스데스크 앵커, 보도국 부국장,IMBC대표이사. 그의 이력을 보면 세상에서 성공 가도를 달려온 인생으로 보이지만, 예수를 만난 후 이 땅에서의 성공은 성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성경은 일종의 신입사원 안내 지침서입니다. 신앙의 세계에 입문한 이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죠. 새신자들이 예수님을 몰라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지 않기를 바라며 예수를 소개하는 책을 썼습니다." 1951년 생인 조 목사는 MBC 기자로 입사한 후, 당시로는 드물게 대학원까지 나온 그를 회사가 충분히 대접해주지 않는다 생각해 내적 갈등을 겪었다. 이후 시행착오를 거치며 회사에 적응했다는 그는 진작에 회사에 대해 알았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불교 신자였던 그는 교회에 다니는 아내를 말리기 위해 교회에 출석하다 하나님을 만났다. 그래서 비기독교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이에 새신자와 비기독교인이 쉬운 언어로 예수님을 알아가길 바라며 이 책을 썼다. <예수는 누구인가?>는 요한복음의 8가지 키워드를 통해 '예수가 소개하는 예수'를 담아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생명의 떡 △세상의 빛 △양들의 문 △선한 목자 △부활 생명 △길과 진리 △포도 나무 △내가 그라 등 8가지 키워드로 자신을소개한다. 타인에게 듣는 예수가 아닌 예수님이 직접 소개하는 예수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바르게 알 수 있다는 것이 조 목사의 설명이다. "초신자여도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는 데에 문제가 없도록 예수님에 대해 쉽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첫 번째 키워드인 '생명의 떡' 부분만큼은 꼭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내가 네 안에 있겠다", "내가 너와 하나 되겠다"고 말하는 부분이기 때문이죠.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비결입니다." 조 목사는 예수님을 모르면서 본인이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예수는 누구인가?>는 새신자를 위해 쓴 책이지만, 기존에 교회를 다니고 있던 성도들도 이 책을 통해 진정한 예수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또 진정한 전도를 위해서는 기독교인들이 먼저 회복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5)는 말씀처럼 '사랑'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사랑은 입으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지기에 그리스도인이 먼저사랑의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바로 알게 되면, 올인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게 됩니다. 자발적으로 종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시고, 그 사랑을 깨달으면 우리는 스스로 그분의 종이 되길 자처할 겁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좋은 선물을 받은 사람이 다른 사사로운 것들에 마음이 향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이긴 예수님을 만나면, 이 세상 것들은 비교할 가치조차 없을 만큼 무의미해진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 조 목사는 이 책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만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159페이지로 구성된 이 책은 5천 원. 커피 한 잔 값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음료 대신 복음이 담긴 책을 선물하는 건 어떨까. 조 목사와 두란노서원의바람대로 이 책이 전도지로 활용되어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알게 되는 사람이 늘어나길 바란다. ▲조정민 목사 신간 <예수는 누구인가?>, 두란노서원

한혜인 기자2018-03-30

젊은 사회적 기업가들이 모인 하나의 청춘 네트워크 공간이자 서울숲의 상징적 의미로 자리매김한 '소셜벤처 클러스터'. 사회적 기업 '임팩트 스퀘어'가기획에 참여한서울숲 소셜벤처클러스터에는 160여 개의 벤처기업이 모여 각자의 사업 스토리를 만들고 있다.임팩트 스퀘어도현명 대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뿜는 사회적 기업가들이 하나로 뭉쳐 더 큰 시너지를 발산하는날이 오길바란다"고 밝혔다. "예수 닮은 기업 늘어나 시너지 내야죠" "사업의 모습은 창업자를 그대로 닮아 있습니다. 기업자가 자신의 영혼까지 빼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을 닮은 자들입니다. 예수를 닮은 크리스천 청년들이 성심껏 사업을 운영한다면, 결국에는 기업이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요?" 29일 만난 도현명 대표(36, 분당만나교회)는 사회적 기업이 예수 그리스도가 행했던 가르치고, 먹이고, 고치는 일들을 감당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회적 기업이 이러한 소명을 제대로 감당할 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도현명 대표는 국내 유명 게임 회사를 퇴사한 후, 2010년 사회적 기업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이 '임팩트 스퀘어'다. 임팩스 스퀘어의 주요 사업은 사회적 기업에 투자해 기업을 성장시키고, 젊은 사회적 기업가를 양성하고 컨설팅하는 일이다. 도 대표가 유독 마음이 향한 곳은 방황하는 청년들이다. 이에 도 대표는 2014년부터 ‘서울숲 소셜벤처 클러스터’를 기획했다. 서울시 성동구에 자리한 '서울숲 소셜벤처 클러스터'에는 현재 160여 개의 사회적 기업이 세워져 있다. 크리스천 사회적 기업가를 위한 주거형 쉐어하우스 심 센터(SEAM, Social Entrepreneurship And Mission Center)도 있다. 심 센터는 신앙을 바탕으로 사회적 기업가 정신이 이어지는 공간이다. 코워킹스페이스로 1층은 사회적 기업가들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개방형 사무 공간이자 개인 업무 공간, 지하는 2개의 회의실로 활용되고 있다. 임팩트 스퀘어의 궁극적 비전은 더 많은 사람이 ‘임팩 비즈니스’를 소비하게 하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가 들어간 비지니스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과 소비를 높임으로써, 더 이로운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이란 한 사람의 소비 행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돈을 보다 선한 곳에 쓰기를 바라는 거죠. 사회적 가치에 대한 관심은 환경, 장애인 등 분야는 다르지만, 모두 회복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회복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는 사회가 망가질 수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이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심 센터에 모인 사회적 기업가들(사진제공=도현명 대표) ⓒ데일리굿뉴스 청년들에게 '소명' 강조…"인생의 감독은 하나님" 도 대표는 특히 '소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소명을 발견했는가가 그가 강조하는 '직업관'의 핵심이다. 비단 청소하는 일이어도 그 안에서 이 땅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면, 충분히 인정받을 직업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청년들에게 최소한 일주일이라도 '나는 왜 살까?', '뭘 하고 살아야 할까?' 등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할 것을 권했다. 도 대표가 청년들에게 100번 이상 강조해 이야기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20대 때는 6개월 늦어지면 죽을 것 같은데, 청년들은 앞으로도 40년을 더 일해야 할지도 모르죠. 1년, 2년 허비하는 건 허비가 아닙니다. '10년 뒤에 이 일을 하는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일인가?처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서 기쁨과 고백을 공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여유를 찾는 것이 필요한 작업이죠." 그는 소명이 직업으로 구체화될 뿐이라며, 소명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청년들이 어느 곳에 들어가든 만족할 수 없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안정성이나 돈을 중심으로 진로를 결정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전했다. 미래를 보면, 현재 1,000만 원 더 버는 것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는데, 돈을 중심으로 인생을 고민하는 것은 하나님 무시하는 태도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우리의 실패가 하나님의 실패가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는 소명의 성취와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인생의 후배인 청년들에게 지금 못하는 것 같이 느껴지고, 실패한 것 같아도 괜찮다고 위로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신뢰하라고 조언했다. 하나님이 청년들의 삶에 행하신 그 동안의 과정을 신뢰하라는 것이다. 버려두지 않았기 때문에 역량이나 네트워크도 쌓아 두셨을 것이라고 전했다. "우리 사회는 액션 영화라면, 하나님의 세상은 멜로 영화입니다. 액션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항상 승리하죠. 양육강식의 세계에서는 강자가 이겨야만 하죠. 그런데 하나님의 세상에서는 그 분의 계획 안에 하나의 스토리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더 가치 없지 않습니다. 멜로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져도 됩니다. 결국 우리 인생 시나리오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이미 시나리오는 완결됐습니다. 나쁜 결말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비록 하나의 장면만 떼어 놓고 보면 실패한 것처럼 보여도, 결국 인생의 시나리오의 주인은 하나님이기에 걱정 말라는 도 대표의 말에서 청년들을 향한 그의 진심이 전해졌다.

한혜인 기자2018-03-21

한 컷의 그림에 함축된 메시지. 그림은 말보다 강한 힘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한다. 만국의 공통어라고도 불리는 그림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담아낸다면, 국내를 넘어 전세계에 복음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 21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한국기독만화선교회 제14대 신임 회장 전하리 작가는 사랑 많은 엄마이자 펜으로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오른팔이었다. 40史기독만화선교회 사상 첫 여성회장…"선교의 도구되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말씀과 함께 그려진 그림에는 예수님이 어린 양을 안아주는 모습이 담겨 있다. 성경 속 장면이 만화로 생생하게 묘사돼 이목을 끄는가 하면, '창세기', '히브리서', '레위기'와 같은 글자 안에 성경 각 권의 주제 말씀이 그림으로 표현된 <성경 문자도>도 있다. 최근 한국기독만화선교회 제14대 회장으로 선임된 전하리 작가(서울명륜교회)가 그려온 그림들이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한국기독만화선교회는 1977년 3월 만화를 통해 선교하고자 하는 이들이 모여 설립됐다. 전 작가는 선교회 사상 최초의 여성 회장이다. 21일 만난 전 작가는 온 에너지를 만화 사역에 쏟고 있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다. 다음 세대를 위해 걱정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자녀를 사랑하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고, 그림이야기를 할때는펜으로 복음을 전하는 '여 전사'의 모습이 투영됐다. 이제 막 한국기독만화선교회 회장으로서의 임기를 시작한 그는 아직은 잘할 수 있을까 싶다며 겸손해했다. 혼란스러운 현시대에 만화가 온전히 선교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가 되도록 기도해 달라는부탁도 잊지 않았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다음 세대의 신앙에 대해 걱정이 될 때가 많습니다. 기독교 문화는 쇠퇴하고, 교회는 축소되고, 가나안 성도는 늘고 있죠. 험난한 세상에서 아이들이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믿음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되지만, 크리스천 만화가들이 협심해 선교의 비전을 품으면 세상이 변할 겁니다." 만화가 험난한 이 세대에서 선교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비전이다. 이에 한국기독만화선교회도자칫하면 흐려질 수 있는 말씀의 본질을 만화를 통해 임팩트있게 전달하는 것을 사역의 목표로 삼았다. 만화는 메시지 전달 효과가 크기 때문에, 한 컷의 그림만으로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전 작가와 한국기독만화선교회 회원들의 믿음이다. ▲전하리 작가의 작품들ⓒ데일리굿뉴스 '공장 소녀'에서 '만화가'로…선교회도 새 단장 中 그는 처음부터 만화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 시인이 되고 싶었다. 그랬던 그에게 만화와의 인연은 민들레 홀씨처럼 사뿐히 다가와 깊게 뿌리내렸다. 고등학교를 막 마친 19살 겨울, 전 작가는 어려웠던 가정 형편에 언니와 함께 반도체 공장 생산직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삭막한 현실에 '꿈'을 꿀 여유조차 없었다. "당시에는 '하나님, 저 꿈도 없이 이렇게 인생을 살아야 하나요'라는 생각에매일 아침 울면서 출근해 울면서 퇴근했습니다. 그런데입사한 지 일주일 후 기적처럼 회사에 공문이 떴습니다. 사보에 실릴 삽화를 그릴 사내 직원 1명을 뽑겠다는 내용이었죠. 어차피 울면서 다니는거,한 번 해보자 싶어서 제출했는데그때부터 그림과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이후 전 작가는 30여 년 동안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다. 신문 삽화, 대기업 사보 일러스트 등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청도 많이 들어왔다. 그러던 중 약 20년 전 어느 날선교사로 헌신하는 사촌 오빠를 보며'하나님의 일'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사촌 오빠는 어릴 때부터 새 신발 사주면 주면불쌍한 친구들에게 다 나눠주고 고무신을 신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촌 오빠에 자극을 받아그날 무릎 꿇고 '하나님, 전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요' 기도로 물었죠. 하나님이 제게 '내가 네게 그림 그리는 달란트를 주지 않았냐'고 되물으셨습니다. 그때부터 순종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그는 인터넷에 기독교 만화를 검색했다. 그렇게 기독만화선교회와의 연을맺었다. 전 작가의 그림도 그때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그림의 트레이드 마크는 '말씀'이 됐다. 이후부터 지금까지 <매일 말씀 묵상 예수 365>, <성경 문자도>, <예수님이 좋아요>와 같은 만화를 그리고, 기독교 잡지나방송사 사보에일러스트를 연재해왔다. 군 부대와 병원 내에 있는 교회에말씀 그림을 전시하는 것도 그가 사랑하는 일 중에 하나다. 그의 만화 사역에는 쉴 틈이 없어 보였다. 먼저 부활절을 맞아 <제12회 한국기독만화선교회 만화전시회>가 '예수사랑 만화사랑'이란 주제로다음 달 9일부터 23일까지 CTS기독교TV 1층 로비에서 열린다. 6월에는'동북 아시아 선교대회'가 송도에서 진행된다. 선교회 소속 작가 외에도 대만, 일본 등에서 활동 중인 크리스천 만화가들이 협력해 의미를 더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기독교 만화 웹툰 사이트인 '디아툰'에 계속해 만화 연재를 하고,개인 전시도열심으로 준비할 계획이다. 한국기독만화선교회도 새 단장할 채비를 하고 있다. 만화선교회에 젊은 신입 작가들이 들어와 하나님의 일에 동참했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선교회의 사단법인 설립도 추진 중이다. 해외선교부와 기독 만화가들을 양성하는 교육부, 전도지 등을 기획하고 발행할 편집부와 기독용품 부서도 구성 중에 있다. "한국기독만화선교회에 소속된 만화가들은 펜으로 하나님을 전하는 전사들입니다. 선교회의 작품과 전시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는 사람이 늘어나길 소망합니다. 전도의 영역이 해외로까지 확장될 수 있도록, 또만화가 전도의 강력한 무기가 되어 주님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기도로 동참해주시길 바랍니다."

최상경 기자2018-03-20

성폭력 피해 여성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공간이 새로이 탄생했다.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가 성폭력 피해여성 치유상담센터인 '#WITHYOU’의 개관 소식을 알렸다. 상담센터의 수장으로서 여성들의 상처 보듬기에 나선 김향숙 원장은 "타인의 아픔에 동참하는 것이 하나님의 미션"이라며 'With Church'의 중요성을 한국교회에 강조했다. 성폭력 피해자 센터 개관…"몸이 기억하는 상처 치유가 먼저" “그동안 폐쇄적이었던 교회 내 성 문제를 성찰하고 회복하는 데 한국교회가 적극 참여(WITH YOU)하길 바랍니다.” 김향숙 원장이 경기 양평군의 복합기독교문화공간 W스토리에 성폭력 피해여성 치유상담센터를 개관한 목적이다. 한국사회 전반으로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성폭력 피해자 보호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26년 전부터 하이패밀리 상담소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과 마주해온 김 원장 역시 여성들의 'Me Too' 외침을 그저 바라만 볼 수 없었다. "여성들이 이제서야 용기 내어 입을 열었습니다. 여기서 교회가 마냥 침묵한다면 주어진 사명을 다하지 않는 것이죠. 하나님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며 타인의 아픔에 동참하고 함께 행동하길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미션과도 같은 것이죠." 현 상황에 맞는 센터 건립의 필요성을 절감한 뒤, 김 원장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토탈케어가 가능한 상담센터를 고안해냈다. 특히 국내에서 드문 신체심리치유 전문가인 김 원장은 센터 모든 과정에서 신체 치유를 최우선으로 뒀다. "몸이 먼저 회복돼야 마음의 치유가 비로소 가능합니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들의 경우 폭력적이고 비인격적인 접촉 경험을 고스란히 신체에 담고 있죠. 반복적인 따뜻한 터치로 그 경험의 기억을 잠재우고 병든 신체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우선시돼야 합니다. 몸은 정서를 담고 있는 도구거든요. 이를 먼저 회복시켜 주는 거죠." 몸 속에는 마음을 낳게 하는 자연치유법이 내재돼 있다는 게 김 원장의 생각이다. 아울러 오랜 세월 동안 가정사역에 전념해온 사역자답게 치유대상을 피해자·가해자의 가족들까지로 확장시켰다. "신체가 회복되면 영적인 치유가 반드시 따라와야 합니다. 교회 내 성폭력인 경우 절대적인 신뢰가 깨지며 분노가 형성되죠. 이 분노는 결국 하나님을 향한 분노로 이어집니다. 이 과정을 바라보는 가족의 상처 또한 상상 이상으로 깊습니다. 목회자가 가해자일 경우 사모나 자녀들이 받는 충격은 상당히 크죠.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가정의 회복이 전적으로 중요합니다."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야 말로 성 문제를 해결하는 일차적 방안이 된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이와 더불어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있어 가정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자신이 망가졌다고 생각합니다. '난 결혼을 할 수 없을 거야' , '불결해' 라는 인식이 강하죠. 심지어 저항하지 못하고 유약하기만 한 자신을 자책하는 여성들도 있습니다. 치료의 핵심은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옆에서 끊임없이 알려주는 거에요. 그래서 가족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롬7:24)'라는 말씀을 다잡으며 매일 같이 자신을 성찰한다는 김향숙 원장. 사역을 함에 있어 교만하지 않고 내면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김 원장의 원칙이자 철학이다. 이 원칙에는 한국교회가 직면한 작금의 상황을 헤쳐나갈 메시지가 담겨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픔이 없으면 성장도 없습니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이 아픔의 과정을 성찰해야 다시 회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된 지 오래죠. 교회는 불의를 더 크게 외치고 정의를 추구해야 할 시대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이야 말로 한국교회가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한연희 기자2018-03-15

한국교회 교단 중 선교사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예장 합동 총회세계선교회(GMS)가 7년 만에 전세계 흩어져있는 선교사들과 본국 교회들이 모이는 세계선교사대회를 개최한다. 선교지의 놀라운 사역과 은혜를 나눔으로써 침체에 빠진 한국교회를일으켜 세우는 기회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예장 합동GMS김찬곤 이사장'선교대회' 포부 밝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세계선교회(GMS) 이사장 김찬곤 목사는 15일 경기도 안성 GMS선교센터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2018 세계선교대회를 한국교회와 선교현장이 선교동반자관계로 하나되는계기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 목사는 “해외 선교가 전체적으로 어렵다고 말하지만 숫자적 감소는 지금이 변곡점이다.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증가되지도 않는 그런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오히려 GMS의 파송 선교사는 증가하고 있어서 KWMA의 선교사 평균치를 유지해주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많은 사람을 파송하는 것보다 사역하고 있는 사람을 새롭게 회복시키고 계속 일할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GMS가 선교본질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선교사 계속 교육이다. 98개 나라에 선교사들이 나가 있는데 영적인 재충전, 재공급이 없으면 안된다. 재교육을 통해 현장을 안정화를 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6월 열리는 2018 세계선교대회에선 우선적으로 한국교회와 선교현장이 하나 되는 선교전략과 비전을 공유할 것이다. 이를 통해 기성세대와 다음세대 간 선교 브릿지가 되어 한국교회가 계속해서 선교적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도전을 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교회 개척 보다 현지 교회 세우기로 가야 또한 김 목사는 선교방향의 패러다임 전환도 논의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에는 현지에 가서 교회를 세우는 처치 플랜팅이 중요 방향이었다면 지금은 그 나라가 자립해 시혜를 베풀 수 있도록 세워주는 미션 플랜팅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김 목사는 “선교사들이 개척한 현지 교회들이 스스로 자립하고 선교하는 교회로 세워지도록 선교사역 방향 전환을 격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그동안 불규칙적으로 개최된 선교대회를 정돈해 5년에 한차례로 정례화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또한 대회 이후 공동메뉴얼집을 펴내 예비 선교사와 선교에 관심있는 교회에 길라잡이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GMS 2018 세계선교대회는 오는 6월 25일부터 28일까지 대전 새로남교회(담임 오정호 목사)에서 열린다. 선교사 700명, 국내 교회 1000명, 선교단체 100명 등 총 1800명이 참가하는 큰 행사다. 이번 대회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선교사 부흥 사경회 △선교보고 및 합심 기도회 △다음세대 선교 집회 △사역영역별 특강 △지역위원회와 지역선교부 전략발표 △공동선언문 선언 및 파송예배 등이 있다.

최상경 기자2018-03-13

이단 신천지에 빠졌다가 가족들의 눈물의 기도로 회심한 김강림 전도사. 그에겐 잘못된 말씀을 진리라고 굳게 믿으며 삶도 영혼도 모두 빼앗긴 채 끌려 다녔던 시간들이 존재했다. 악몽 같았던 8개월 신천지 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현재는 자신처럼 신천지에 빠졌던 청년들을 회생시키고 있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촉망 받는 신학자의 꿈…신천지가 앗아가" "갓 군대에서 제대한 뒤 들뜬 마음으로 SNS 상에 이를 알렸습니다. 그러자 '청춘생활백서'라는 잡지사에서 이벤트에 당첨됐다는 고지와 함께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지요. 인터뷰 장소에 나가보니 기자 등 각자 역할을 맡은 3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들은 모두 신천지 신도들이었다. 당시김 전도사는 신학생으로서 한국교회 부흥과 잃어 버린 영혼을 찾는 것이 삶의 일차적 목표였다. 그러나 무심코 응했던 이 한번의 인터뷰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인터뷰를 통해 개인적 상황을 포괄적으로 파악한 신천지는김 전도사의 인생을 점진적으로 옭아매기 시작했다. 인터뷰의 끝은 결국 성경공부라는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졌다. "매일 2시간 30분씩 성경공부가 진행됐습니다. 신천지가 고안해낸 비유풀이는 특히 중독성이 매우 강하죠. 성경해석에 있어 마치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은 통쾌함을 느끼게 합니다. 새로운 진리를 발견해낸 듯 '정말 내 신앙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구나' 라는 착각마저 들게 하죠." 총 7개월간 진행된 신학과정은 사실상 신천지 교리에 대한 의심의 과정을 없애고, 이를 세뇌시키기 위한 물밑 작업이었다. 이는 신천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쉽사리 떠날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복음방과 비유풀이 등의 과정이 끝나면 신천지라는 사실을 알려줘요. 신천지라는 사실을 들었을 땐 일단 너무 놀라서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죠. 하지만 담당전도사와 항상 마음을 공유하던 게 습관이 돼 있다 보니 반사적으로 답장을 하는 거에요. 가족들을 너무 오래 속이고 신천지 동료를 의지하게 된 상황에서 이를 박차고 떠나는 이들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허점 많은 이단 교리…"청년들의 갈급 충족이 먼저죠" 신천지란 수렁에서 나올 수 있었던 건 가족의 눈물 어린 기도와 주님의 전적인 인도하심 덕분이었다. 생계포기를 결단할 정도로 모든 걸 내려놓은 부모의 눈물겨운 사랑은김 전도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결정적인 요소가 됐다. "어느 날 집에 왔더니, 부모님이 모두 계신 거에요. 이단상담소를 찾으며 오래 전부터 저와의 전쟁을 준비해오신 거죠. 부모님은 생업을 포기하고 동생은 수능도 포기한 채 자물쇠로 문을 걸어 잠그고 온 가족이 저를 위해 매달렸습니다. 신천지와의 연락을 완전 차단한 것이죠. 가족의 눈물 젖은 기도는 결국김 전도사의 발걸음을 이단상담소로 이끌었다. 신천지에서 상담소는 독이고 '독을 먹으면 죽는다'고 규정한다. 그만큼 신천지에서 빠져나올 궁극적인 해결 방법을상담소가 갖고 있는 것이다. "신천지의 교리는 허점이 많아 상담소에 가는 것만으로 90%가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문제는 상담소를 공포스런 곳으로 조성한다는 것이죠. 신천지에 빠진 자녀들이 있다면 가족들이 먼저 상담소를 찾아 미리 대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신천지에서 빠져 나온김 전도사는 허탈감에 빠져있는 청년들을 주목했다.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은 젊은 또래가 대다수로, 이들의 영적 갈급함을 진정한 복음으로 채워주는 일이 중요함을 자각한 터였다.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거나 성경적인 갈급을 느끼는 청년들이 신천지에 온 마음을 빼앗기죠. 신천지는 이들의 허점을 정확히 공략합니다. 계속해서 이들을 보듬어 주면서 신천지 교리 안에서 허황된 꿈을 꾸게끔 유도하는 것이죠." 그는 지금 이단세미나와 교회 간증을 다니며 많은 청년들의 아픔과 마주하고 있다. 특히 정통교회의 청년은 계속 줄고 이단에 빠지는 청년은 늘고 있는 현상에 대해 매우 우려하는 마음을 표했다. 끝으로 그는 이단 퇴치에 대한 한국교회 역할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 시대의 청년들이 분명히 말씀에 대한 갈망이 내적으로 존재하는 데 그런 것에 대한 외부적인 공급이 부족합니다. 이단이 교리가 뛰어 난 것은 결코 아닌데 전도 방식이나 세뇌 방식이 아주 악랄해 지고 있죠. 청년들의 신앙적 면역력이 강해질 수 있도록복음을 강화하는 등이단의 공격에 대한 예방책이 필요합니다.마지막으로 '면접·복사비6-7만원·월화수목금 성경공부 7개월'을 기억하세요.이것은무조건 신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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