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수 기자2017-08-06

기독교이라면 꼭 읽어야 할 양서나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책들을 소개해주는 서점이 있다. 그 주인공들은 바로 헌책방 용서점과 골목책방 그냥과보통. 이들은 서점을 찾아오는 모든 방문객들이 책을 통해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교양 있는 기독인을 위한 큐레이팅 헌책방 고양시 덕은동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한 헌책방 용서점. 올해 1월 영업을 시작해 책을 사랑하는 기독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용서점 박용희 대표는 장신대 라비블 서점과 기독출판사IVP를 거치며 큐레이팅 헌책방에 대한 꿈을 키워왔다. 용서점이라는 이름은 책이 서가에 꽂혀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이들에게 사용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다고 한다. 큐레이팅을 하는 이유도 처음 책을 접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책을 찾는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독자들을 발굴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실제로 박 대표의 큐레이팅을 거친 서가에는 삶과 신앙을 풍요롭게 해줄 양서가 주제별로 진열돼있어 좋은 책을 찾는 수고를 덜어준다. 다루고 있는 주제도 기독교와 관련된 책부터 인문, 사회과학, 에세이 등 가리지 않는다. 또 지역교회와 협력해 찾아가는 헌책방도 운영 중이다. "헌책방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목표로 삼았던 건, 교양 있는 기독인을 위한 큐레이션이었어요.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가운데 읽으면 유익한 도서들을 위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8월부터는 강연회와 책 모임도 진행한다. 기독출판계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예비 기독출판인들과 번역가를 위한 강좌도 준비 중이다. "책만큼 간편하고 저렴하면서 한 분야에 대해 신뢰감 있게 정리된 도구도 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성경과 함께 양서를 읽는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나 신앙적인 성숙에 있어서 흔들리지 않는 기반을 만들어 갈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순천의 명소로 자리잡고 있는 골목책방 그냥과보통. 일상의 소소함을 다룬 책들부터 독립출판물,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만날 수 있다.ⓒ데일리굿뉴스 일상의 소소함 가득한 골목책방 그냥과보통 전남 순천시 문화의거리에 위치한 골목책방 그냥과보통. 순천을 찾는 여행객들이 꼭 방문하는 명소 중에 하나다. 그냥과보통은 그 이름처럼 일상의 소소함을 다룬 책들이 많다. 동네책방에서만 구입이 가능한 책부터 <계간홀로>와 같은 독립출판물, 에세이나 여행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강성호ㆍ이로운 부부는 책방을 찾아온 방문객들이 자신만의 책을 만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책을 통해 작은 즐거움이라도 얻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강성호 대표는 "그냥과보통이라는 단어가 주는 특별함이 없고, 위대하지 않는 느낌이 좋았다"며 "일반서점에서 볼 수 없는 출판물들이나 강정마을, 페미니즘과 같은 소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책들을 위주로 소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출간된 <한국 기독교 흑역사>의 저자이기도 한 강 대표는 최근 책방을 방문한 이들을 대상으로 순천 기독교 유적지 답사도 진행하고 있다. "순천은 조선시대 원도심의 모습이 잘 남은 지역으로, 책방 근처에 있는 선교사 마을은 순선 기독교 유적지 첫 순례코스이기도 합니다. 가족이나 교회 공동체 지체들과 방문한다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실 수 있습니다."

김준수 기자2017-08-25

교육 전도사 사역이 끝나기 무섭게 첫 선교지였던 중국 광동성으로 떠난 이국찬 선교사. 15년째 중국과 태국에서 선교사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진정성 있는 사역을 위해 늘 기도한다는 이 선교사는 매일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고 싶단 소망을 전했다. "현지 마을 찾아 다니며 사람들 도와요" 태국 치앙마이드림교회를 섬기고 있는 이국찬 선교사는 올해로 15년째 해외에서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한인교회이지만 태국 현지 교단 소속돼 있어 실질적으론 태국교회다. 불우한 환경에 처한 태국 아이들이나 신학생들의 학업을 지원하거나 마을을 찾아 다니며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살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곳과 연결해주는 사역을 펼치고 있다. 15년 동안 가족들과 마음 편히 휴가 한 번 가지 못할 정도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처음부터 목회나 선교사에 대한 꿈은 없었다고 한다. 목회자였던 자신의 아버지 역시 좋은 목사가 되기보다 교회를 섬기는 좋은 장로가 되라고 권했었다고. 하지만 중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대만으로 유학을 갔던 것이 터닝포인트가 됐다. "중국어 공부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한인교회를 가지 않고 현지 교회를 다녔어요. 마침 올네이션스 경배와찬양 팀이 인도하는 집회를 참석했는데, 거기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됐죠. 그날 남은 인생을 중국인들을 위해 살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이 선교사는 대학 졸업 후, 1994년 공채 35기로 롯데그룹에 입사했다. 중국어를 전공했던 것이 결정적인 장점으로 크게 작용했다. 롯데건설에서 근무하며 베트남 호치민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위해 1년 동안 주재원 생활도 했다. 하지만 1997년 IMF 위기는 롯데그룹도 이겨내지 못했다. 이듬해 퇴사를 결심한 이 선교사는, 본격적으로 선교사의 삶을 준비하기 위해 2000년에 장로회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신대원을 졸업한 후에는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가납교회에서 교육 전도사로 3년을 섬긴 뒤, 지체 없이 첫 선교지였던 중국으로 떠났다. "이상하게도 국내에서의 목회는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연말쯤에 전도사를 사임하고 그 다음해 1월에 중국으로 갔던걸 보면 말이죠. 익숙하고 안정적인 곳을 떠난다는 불안감보다는 중국에서 저를 인도할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중국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이 선교사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인교회인 심천사랑의교회에서 8년을 섬기고, 사역지를 강소성 소주로 옮겨 교회를 개척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실천이 가능한 효과적인 전도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었다고 이 선교사는 회상했다. "태국으로 사역지를 옮긴 이유 중에 하나도 중국인들을 선교사로 세우기 위해서였어요. 현재는 중단된 상태지만, 태국에 온지 3년 동안은 이곳에서 선교사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내년부터는 중국 목회자들의 신학 연수를 위해 한국으로 보내는 사역을 계획하고 있어요." 이 선교사는 제대로 된 양육을 받고 있지 못하는 아이들을 돕고 있는 현지 목회자의 사역을 지원하고 있다. 전체 아이들과 봉사자들의 식비를 후원한다. 태국 멧사이 지역에 있는 베델신학교 학생 37명에게 장학금도 지원하고 있다. 또 올해 처음으로 치앙마이에 있는 한인교회들과 연합해 태국 코스타를 개최했다. 지난 2월에는 포항대도교회 장년부 단기선교팀과 함께 건기 철이 되면 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카족 마을을 찾아 새로운 수도관으로 교체하는 공사를 진행했다. 이제는 풍족하게 물을 받아놓고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환경이 개선돼 이웃들과 싸울 일도 사라져버렸다. 선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역의 지속성과 현지인을 향한 진정성이라고 말하는 이국찬 선교사는 앞으로도 태국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 선교사는 "예수님은 이 마을, 저 마을 다니시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고, 무슨 필요가 있는지 살펴보셨다"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사역을 잘 감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은정 기자2017-08-07

환경보존 활동을 펼치며 건강한 하나님 나라 구현에 앞장서는 교회가 있다. 바로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덕풍교회가 그 주인공. 최근엔 강원도 홍천의 작은 마을을 찾아 직접 만든 방향제로 노방전도를 펼쳐, 나눔의 현장에 직접 다녀왔다. 손수 만든 용품으로 지역주민·해외 선교지 섬겨 "안녕하세요. 좌운교회에 수련회 온 학생인데요. 저희가 만든 방향제 드리려고 왔어요. 하나님 믿으세요!" 올 여름 강원도 홍천 좌운교회로 수련회를 온 덕풍교회(담임 최헌영 목사) 청소년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두 손 가득 방향제를 들고 마을 곳곳을 다니며 주민들에게 방향제와 함께 복음을 전하고 있다. 전도의 도구가 된 방향제는 덕풍교회 아이들이 홍천 지역주민들을 섬기기 위해 직접 만들었다. 귀여운 방향제 통에 향기 나는 오일과 아이스 젤도 넣으며 하나하나 완성시켰다. '수련회까지 와서 왜 방향제를 만드나' 싶지만, 직접 만든 제품으로 전도를 하는 건 덕풍교회만의 특별한 사역이다. 덕풍교회는 현재 사회 선교 일환으로 '즐거운 토요일'과 '덕풍동 마을쟁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주민들을 섬기고 환경보존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즐거운 토요일은 학교를 가지 않는 토요일, 가정에 방치된 아이들을 위해 교회가 주최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주로 미술 놀이와 음악 놀이, 종이 접기, 영화 시청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벌써 7년 째 하남시 아이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으며 이뤄지고 있다. 또한 △덕풍동 마을쟁이는 교회가 설립한 사회선교 단체. 단체의 이름처럼, 마을을 위해 벽화 그리기를 비롯해 폐식용유로 비누 만들기, 폐현수막으로 에코백 만들기 등 환경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완성시킨 용품은 모두 주민들과 해외선교지에 전달되고 있다. ▲덕풍교회 최헌영 목사 최헌영 목사는 "세상이 오염된 시대에 건강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자 먼저 환경개선에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교회가 마을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니 주민들은 물론 교회에도 좋은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덕풍교회가 환경운동의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던 데는 김주선 부목사의 역할이한 몫 했다.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한 김 목사가 자신의 전공을 살려 아이들과 함께 환경운동 활동을 하고자 한 것. 김 목사는 "어떻게 하면 교회가 마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사역을 이어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환경사역을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교회의 섬김에 지역 내 아이들은 물론 부모들까지 변화됐다. 교회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던 부모들도 "덕풍교회 '즐거운 토요일'이라면 가도 된다"며 아이들을 선뜻 교회에 보내주고, "덕풍교회가 참 좋은 일을 많이 한다"고 칭찬할 정도다. 최헌영 목사는 "교회의 사역을 통해 마을이 밝아지고 있는 것을 몸소 느낀다"며 "주민들이 '이런 교회라면 다니고 싶다'고 말하고 교회를 통해 지역사회가 변화돼 나간다면 그게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윤인경 기자2017-08-18

진한 화장을 한 배우가 아무런 말 없이 오직 과장된 표정과 몸짓만으로 연기를 한다. 국내 공연계에서 쉽사리 보기 힘든 무언극 '마임'. 이 대사 한 마디 없는 마임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조인정 마임이스트는 바로 최초로 국내에 '기독교 마임'이라는 영역을 개척한 선구자다. 뮤지컬 배우로 활약하던 그녀를 하나님은 마임의 길로 인도하셨다. 어느덧 17년째, 하나님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모든 사역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 조인정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극단에서 1년 반 동안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다. 경쟁이 치열한 뮤지컬 세계에서 짧은 시간 내 주역으로 발돋움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렇게 뮤지컬 배우로 성공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의외의 사건이 일어났다. "점프 연습을 하다 왼쪽 발목을 다쳤어요. 통증 때문에 더 이상 뮤지컬 배우 생활을 할 수 없었어요. 이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서 한동안 쉬게 됐죠." 그 즈음 마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대학시절 기독동아리 지도목사님이 유럽여행을 갔다가 처음으로 마임 공연을 접한 뒤 매력을 느끼고 조인정 씨에게 권유했던 것이다. "목사님이 우연히 프랑스 몽마르뜨 언덕에서 마임 공연을 보셨는데, 언어 없이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최고의 선교도구가 되겠다 싶으셨던지 저한테 다짜고짜 마임을 배워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조인정 씨는 처음에는 펄쩍 뛰었다. 마임은 삐에로 복장을 한 광대가 연기하는 것인 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미국의 '모세(Moses)' 마임 영상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게 됐다. "미국에서는 이미 마임을 통해 문화 선교를 펼치고 있더라고요. 웅장하고 멋있었어요. 뮤지컬을 하면서 근력이나 표현력의 기초를 익혔었기 때문에, 저도 마임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아니, 하고 싶어졌어요." 하지만 대중에게 마임은 생소했다. 특히 CCM과 같은 음악 위주의 기독교 문화 안에서 마임은 친숙하지 않은 소재였다. 마임 사역을 외로이 개척해 가는 과정에서 조인정 씨는 고민을 거듭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은 참 많은데 굳이 마임을 해야 하나' '꼭 내가 해야 하나' '돈도 벌면서, 가족들과 시간도 보내면서 살다가 천국만 가면 되는 것 아닌가' 등. 그러다 그녀는 마임으로 예배 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됐다. 훈련과 성장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믿게 되면서 전과 달리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나왔다. "마임 사역은 제가 가려지고 하나님, 예수님만 드러나는 사역이에요. 마임을 할 때는 진한 화장으로 제 얼굴도 가려지고 목소리도 내지 못하죠. 때문에 진짜 모세만 보이고 삭개오만 보이고 예수님만 보일 수 있는 사역이라고 생각해요." 한 때는 돈을 많이 벌어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이 목표였다는 조인정 씨의 요즘 첫 번째 기도제목은 '하나님 앞에서 잘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는 곳에 가서 자신의 땀과 시간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모든 사역을 이루어가심을 느낀다는 조인정 마임이스트. 앞으로 그녀가 보여줄 하나님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한편 조인정 마임이스트는 지난 2000년부터 12회의 기획공연을 비롯해 춘천국제마임축제, 홍대프린지페스티벌 등 문화예술공연과 선교 한국, 옹기장이, 마커스를 비롯한 수많은 무대에서 마임 사역을 이어왔다. 조인정 마임이스트의 자세한 신앙 스토리는 <신앙계> 8월호에서 만나볼 수 있다.

박은정 기자2017-09-11

한 교회 지붕 아래, 두 개의 교회가 예배 드리는 곳이 있다. 바로 벧엘성서침례교회와 요한서울교회의 이야기. 서로 다른 교단, 다른 신학적 배경을 갖고 있지만 지난 주부터 한 예배당에서 오전, 오후로 나뉘어 두 개의 교회가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두 교회가 아름다운 동행을 시작하는 그 첫 걸음에, 직접 다녀왔다. "목사님 우리 교회로 오세요"…지역교회의 손길로 일어나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한 벧엘성서침례교회(담임 현상웅 목사)와 요한서울교회(담임 백상욱 목사)의 '동행'은, 요한서울교회 예배당 신축 고민으로부터시작됐다. 예배당 신축을 앞둔 요한서울교회는 신축공사가 진행될 약 1년여 기간 동안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릴 공간을 찾고 있었다. 인근 공립•사립 학교 강당은 물론 체육관까지 알아봤지만 모두 "종교기관에 대여해주기가 쉽지 않다"란 답변만 돌아왔다. 교회 건물은 다른 곳에 세우는 것도 고민 했지만, 백 목사는 몇 십년 동안 기도의 재단을 쌓은 교회터를 쉽게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이런 고민을 하던 때, 요한서울교회와 불과 500m도 안 되는 곳에 위치한 벧엘성서침례교회가 손을 내밀었다. 지역 목회자들과활동 중인 '좋은동네 만들기 이웃교회 연합회'에서 함께 사역하고 있는벧엘성서침례교회 현상웅 목사가, 이 사연을 듣고 선뜻 "목사님, 우리교회로 오세요"라고 말한 것. "예배 장소를 두고 여러 가지 방법을 구하던 중, 연합회에 소속된 목회자들에게 고민을 나눴어요.그랬더니 현상웅 목사가 흔쾌히 "우리교회로 오라"고 말해줬어요.본인들이 오전에 예배당을 사용하고, 오후에는 우리교회 성도들이 예배 드리라고 해준 거죠."(요한서울교회 백상욱 목사) "이 교회에 부임한 지 2년 정도 됐어요. 처음 교회에 왔을 때부터 지역을 섬기는 교회를 만들고 싶다란 마음을늘 품고 있었어요. 그래서 교회 예배당을 작은교회에 빌려주는 건 어떨까 고민하던 찰나, 요한서울교회의 어려움을 듣게 됐죠.요한서울교회의 고민이 저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풀어나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벧엘성서침례교회 현상웅 목사) 하지만 한 교회를 두 개의 교회가 함께 사용하기란 쉽지 않다. 목회자들끼리의 뜻이 합하더라도 성도들의 입장은 또 다르기 때문이다. "목사가 결정한다고 되는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평소 설교를 통해 지역사회와 어떻게 연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성도들과 많이 나눴기 때문에, 다행히 성도들도 한 번 동참해보겠다고 결심해줬어요.불편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지만, 서로 배려하는 모습을 통해 섬김의 정신을 배우는 통로가 될 것이라 기대해요."(현상웅 목사) "교회 공간을 우리가 오로지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성도들의 걱정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어요. 교회학교도 모두 운영할 수 없어 현재 유치부는 성도가 운영하는 태권도장에서 드려지고, 영아부는 없어졌죠. 하지만 성도들도 벧엘성서침례교회의 섬김에 감사하며 모든 불편을 서로 감안하고 예배드리기로 결정했어요."백상욱 목사) ▲벧엘성서침례교회와 요한서울교회가 아름다운 동행을 시작한다.ⓒ데일리굿뉴스 "1년 여 동안의 아름다운 동행, 기대돼요" 사실 교회 성도는 요한서울교회가 더 많은 상황. 때문에 벧엘성서침례교회 예배당이 요한서울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수용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요한서울교회 성도들은 예배당에 간이 의자를 설치하는 등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다. 요한서울교회 김신애 집사는 "벧엘성서침례교회 성도들이 예배당을 개방해주고 우리 교인들에게 마음을 열어줘 감사하다"며 "이 기간이 얼마나 될 지 모르겠지만 지역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벧엘성서침례교회 오한나 청년은 “목사님께서 ‘그리스도인은 더불어살아가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더불어 사는삶을 배울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요한서울교회는 벧엘성서침례교회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벧엘성서침례교회 1층 교육관을 리모델링 해주는 것은 물론, 공과금도 함께 부담하기로 했다. 요한서울교회가 진행 중이던 대안학교 프로그램 '요한기독학교'는 벧엘성서침례교회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두 교회는 현재 어떻게 하면 지역과 연합을 이뤄나갈 지 함께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는 주변 교회들과 함께 김장 담그기, 연주회 개최하기 등 다양한 문화행사도펼칠 예정이다. 이 같은 요한서울교회와 벧엘성서침례교회의 '아름다운 동행'은 개교회중심인 한국교회에 도전을 주고 있는 대목이다. 현상웅 목사는 "우리가 연합하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응원 해주고 있어 감사하다"며 "다른 교회들도 각자 갖고 있는 달란트를 통해 지역과 함께선을 이뤄나가길 소망한다"고전했다. 이어 백상욱 목사는 "한국교회 안에서 한 지붕 아래 두 교회가 경쟁하지 않고 동역한다는 것에 기대가 되고 설렌다"며 "우리의 모습이 한국교회에 선한 영향력으로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은정 기자2017-08-25

한국전쟁 당시 '내 잔이 넘치나이다'란 마지막 고백을 남기고 포로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한 청년 맹의순. 최근 제자들이 기증한 육필일기가 책으로 출간되면서 맹의순의 삶이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죽기까지 복음전파와 이웃사랑을 멈추지 않았던 맹의순의 삶을 되돌아보자. 억울하게 갇혔지만 '복음전파 위해' 석방 거부 부유한 장로의 아들로 태어난 맹의순. 조선신학교를 다니며 남대문교회 중등부 교사로 섬기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겨우 피난길에 올랐지만, 그는 미군의 오해로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에 억류됐다. 억울할 법도 하지만 맹의순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곳 만큼 전도하기 좋은 곳은 없다'고 말하며 포로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수용소 당국은 포로들에게 종교활동의 자유를 보장했고, 맹의순은 당국의 협조를 받아 포로들에게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이 바로 포로수용소의 '광야교회'가 세워지게 된 시초가 됐다. 맹의순은 늘 낮은 자세로 전도활동을 펼쳤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낮 예배와 성경공부 등을 실시하며 밤에는 투병 중인 중공군 포로들을 간호했다. 맹의순은 영어 통역이 가능해 미국인 의사들이 환자를 진찰할 때 그 옆에서 통역을 담당했다. 이를 기회로 삼아, 매일 새벽 1~2시가 되면 병동을 찾아 포로들의 얼굴과 손을 닦아주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찬양을 불러주곤 했다. 이런 가운데 석방될 기회가 찾아왔지만, 그는 자신의 사명을 수용소에서 끝까지 감당하겠다며 석방마저 거부했다. 하지만 과로한 피로상태와 부족한 영양실조가 계속 그를 힘들게 했다. 밤낮없이 포로들의 곁을 지켰던 맹의순은 결국 석방을 나흘 앞둔 채 죽음을 맞이했다. 맹의순의 모습을 봐 온 중공군 포로들은 참된 천사를 보았다고 고백한다. "선생은 하늘에서 보낸 천사였습니다. 마지막 환자를 다 씻기고 일어난 선생은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시편 23편을 우리말로 더듬더듬 읽어주셨습니다. 다 봉독하신 뒤 높은 곳을 바라보시며 다시 한 번 말씀하셨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당시 중공군 포로 환자가 맹의순 죽음을 추모하며 쓴 글- 맹의순이 마지막으로 고백했던 '내 잔이 넘치나이다'는 결국 그의 마지막 유언이 되고 말았다. 남대문교회 손윤탁 목사는 그의 고백에, "병마와 싸우면서도 천국을 향한 맹의순의 열정, 그리고 죽기 전까지 '주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은 삶과 신앙을 일치하고자 치열하게 노력했던 그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제자들의 도움으로 <십자가의 길> 출간 27살이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맹의순에 대한 자료는 많이 ▲<십자가의 길>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맹의순과 함께 포로수용소에서 교회를 섬기던이원식 목사(서울 국일교회 원로)가 남대문교회 역사위원회에 맹의순의 육필일기 원본을 기증하며 빛을 보게 됐다. 영어와 일본어, 한문이 섞인 원고를 남대문교회 손호인 목사가 한글로 번역하고 신재의 원로장로가 일기와 교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맹의순의 삶을 되살려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육필일기를 묶은 <십자가의 길>을 펴냈다. 맹의순의 삶은 비록 짧았지만, 그의 신앙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교회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말씀과 삶의 일치를 중요시했던 루터의 종교개혁. 이 가치를 맹의순 선생은 죽기 직전까지 실천했던 인물입니다. 수용소에서 석방될 기회마저 버리고 전도에 힘썼던 그의 삶이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제사장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김준수 기자2017-08-22

맨손으로 세운 인쇄회사 진흥문화를 어엿한 기업으로 키워낸 박경진 회장. 78살이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왕성한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금도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고 고백하는 박경진 회장을 만났다. "감사하는 삶의 태도가 성공비결" 진흥문화 박경진 회장은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아무런 연고도 없던 서울로 상경했다.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험난한 시절을 겪었다는 박경진 회장. 하지만 한 쪽 눈이 보이지 않는 어려움도, 판잣집에 살았던 고단함도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군대 가기 전에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3년이 지나고 보니깐 다 없던 일이 되고 말았어요. 1969년도 말에 서울로 올라와서 용역, 보따리 장사 등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10년 동안에 이사만 25번을 갔어요." 우연히 달력 외판원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돼 1976년 진흥문화를 설립했다.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지만, 1983년 당시 성화 달력이 큰 인기를 끌면서 기업으로서 입지를 다지게 됐다. 1990년대에는 인쇄기를 갖추고 자체 생산에 들어갈 만큼 성장했다. 지금은 인쇄부터 출판, 문구, 생활용품까지 다양한 분야를 다룬다. 박 회장은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며 외상거래를 하지 않는 철칙을 지킨 것을 성공의 비결로 꼽는다. 가족과 같은 회사를 추구하며 1997년 외환위기 속에서도 100여 명의 직원 중 한 명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IMF를 하나님이 기업인들에게 근신하라고 주는 경고로 생각하고 자신이 타던 자가용을 팔아 직원들의 보너스에 보태는 솔선수범을 보였다. 회사를 휘청이게 할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2004년 4월경에 공장에 화재가 발생한 것. 만약 달력 제작을 위한 용지나 완성품이 가득하게 있었을 연말에 불이 났다면 진흥문화가 입을 피해는 막심했을 것이라고 박 회장은 회상했다. "화재가 일어난 다음날 전 직원과 함께 예배를 드렸어요. 회사가 입을 피해를 최소화시켜 주시고 경각심을 일깨워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이나 직원들 모두 눈물로 드리는 예배였어요." 해외입양인 초청ㆍ장학금 지원 앞장서 박 회장은 자신의 어려웠던 지난 시절을 잊지 않고 나눔에도 앞장서고 있다. 한국기독교한센인선교회 이사장을 맡아 해외 한센인 선교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에서 만난 한 입양인과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1996년부터 해외입양인 모국방문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 동안 북미와 유럽 지역에 입양된 400여 명의 입양인과 가족들을 초청했다. 올해 한카문화교류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박 회장은 한국과 캐나다 수교 55주년인 2018년에 양국에서 두 차례 해외입양인 모국방문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2010년 진흥문화재단을 설립해 장애인과 고려인, 탈북민 청소년들에게 꾸준히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2000년도에 환갑 잔치할 돈으로 직원 자녀들에게 학자금을 주기 시작했어요. 이걸 확대해서 재단으로 만들었습니다. 성적이 떨어지지만 않으면 졸업할 때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박경진 회장은 올해 1월,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기독교 관련 유물을 협성대학교에 기증했다. 앞으로 기독교 문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박 회장은 순교의 피 위에 세워진 한국교회의 역사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자신의 뿌리, 과거의 역사를 알아야 내일을 내다볼 수 있어요. 한국의 기독교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 배우게 하는 일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김준수 기자2017-08-19

공산당원이었지만 지금은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는 문갈렙 목사. 북한 주민들에게 식량을 전한 것을 시작으로 소수민족 선교, 카페목회 등 종횡무진 사역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한충렬 목사의 순교를 잊을 수 없다는 문 목사는 "자신의 민족을 도운 요셉처럼 통일의 마중물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열렬한 공산당원에서 복음 전하는 목회자로 1967년 흑룡강성에서 태어난 문갈렙 목사는 신앙을 가기 전까지는 공산당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 목회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를 먼저 받아들인 문 목사의 아버지와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 덕분이었다. "1993년으로 기억합니다. 공산주의가 너무 부패했다는 생각에 회의가 들었어요.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어머니가 보내주신 성경을 읽게 됐습니다. 정말 성경에 나온 사람들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다면 내가 숭상하던 공산당보다는 낫겠다고 생각했죠." 문 목사는 교회에 가기로 결단하고 드렸던 첫 예배의 감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정식으로 신학 공부도 하지 못했던 아버지가 전한 설교, 3년 동안 빠지지 않고 문 목사를 위해 기도해왔다는 한 성도의 고백에 기독교를 거부하며 쌓아왔던 마음의 벽이 모두 무장해제됐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사역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문 목사는 가정신학교를 다니면서 북한 주민들에게 식량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으로 고통 받던 1996년부터 중국 공안에 체포되기 전인 1999년까지 이어졌다. 중국 공안에게 한국 간첩으로 몰리며 더 이상 북한을 출입할 수 없게 되자 문 목사는 깨어진 가정으로 인해 상처받는 조선족 아이들에게 눈을 돌렸다. 자신의 집에서 직접 아이들을 돌보고, 지역의 불우한 상황에 처한 아이들을 물심양면 지원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가는 조선족들이 참 많았어요. 부모는 곁에 없고 나이든 조부모만으로는 모든 걸 감당할 수 없으니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많았죠. 부모 중에는 한국에서 일하면서 다른 사람을 만나 이혼을 하는 경우도 있어 가정이 깨지는 일도 종종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목회자로 사역을 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원망도 많이 했었다는 문 목사. 자신을 조선족으로 중국에 태어나게 하신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어 답답었다고 한다. 문 목사의 고민은 2011년 횃불 한민족 디아스포라 세계 선교대회에 참석하면서 풀리게 됐다. "하용조 목사님이 조선족 사역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 하신 말씀이 있었어요. 우리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애굽에 먼저 보낸 요셉'이라고. 중국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반도 복음화와 통일을 이뤄가는 일에 큰 역할 감당해주어야 한다고 격려해주셨죠. 하나님께서 저를 중국에 보내신 이유를 깨닫게 된 순간이었어요." "복음 전하고 싶단 리수족 아이들 보면 힘이 나요" 문 목사는 안정적인 사역지였던 흑룡강성을 떠나 2004년 절강성 이우시에 이우염광교회를 개척했다. 이곳에서 현지인과 조선족을 대상으로 목회하는 가운데 2006년부터 운남 지역 리수족 선교를 지금까지 펼치고 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는 높은뜻정의교회와 협력해 여름성경학교를 진행하기도 했다. 운남 선교는 문 목사가 <산비>의 주인공인 영국 선교사 제임스 O. 프레이저의 무덤을 방문한 것이 인연이 됐다. 어린 나이의 딸을 아무렇지도 않게 파는 리수족의 충격적인 실상을 보게 된 문 목사는 리수족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짓기 시작했다. 현재는 7개의 학교에서 204명의 아이들이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 "리수속 아이들이 저를 보고 많이 늙었다면서 앞으로는 자기들이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말을 했어요. 너무나 감격스러웠죠. 왕복 7,000km나 되는 길을 오가며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겼는데, 그 동안의 고생이 씻은듯이 사라지는 것 같았어요." 문 목사는 지난해 4월 30일 피살된 故 한충렬 목사(장백교회)의 유가족들을 돕는 일에 앞장섰다. 특히 순교한 한 목사가 마지막까지 운전했던 차를 타고 백두산에서부터 히말라야까지 횡단하는 프로젝트도 주도했다. 현재 그 차는 한 목사의 순교정신을 잇기 위해 티벳에서 사역 중인 선교사에게 양도한 상태다. "동료 목회자들과 함께 한 목사님의 차를 타고 히말라야까지 갔습니다. 순교의 정신을 중국 곳곳에 퍼뜨리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죠. 차가 가는 곳마다 조선족 목회자들이 환영해주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중국 기독교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을 만한 일이었어요." 중국 공산당 정권 아래 목회를 하면서 조선족 교회의 방향을 깊이 고민한 문 목사는 셀교회에 주목하고 한 사업가의 도움을 받아 2013년에 카페를 시작했다. 주중에는 커피를 팔아 운영비와 선교비로 쓰고, 주말에는 교회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했다. 문 목사는 자신의 비전에 공감하는 사역자를 만나길 기대하면서 중국 전역에 카페교회가 확산되길 꿈꾸고 있다. 문 목사는 "중국교회와 한국교회간의 건강한 관계를 맺어갈 때"라며 한국교회의 중국 선교에 관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양적으로 성장한 중국교회에 돈으로 후원하고 선교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하드웨어는 충분히 갖춰진 셈이죠. 하지만 한국교회의 제자훈련이나 양육 프로그램은 중국교회가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이제는 한국교회의 소프트웨어를 전수해서 중국교회의 하드웨어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김준수 기자2017-08-13

한국교회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고난 받고 소외된 이들의 곁을 지키는 교회들이 있다.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희망찬교회도 그 중에 하나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성경의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희망찬교회 양민철 목사를 만났다. 이웃의 아픔 외면하지 않은 희망찬교회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희망찬교회. 1997년 교회를 개척하면서 양민철 목사와 성도들이 예수님은 구원과 삶의 희망이라는 고백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 희망찬교회는 그 이름처럼, 사회와 지역 속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교회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성이 아니라 모두를 품을 수 있는 숲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교회는 교인들의 아지트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숲은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많은 생명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곳이죠. 숲을 지나가는 행인들에게는 맑은 공기를 제공하기도 하죠. 희망찬교회가 구리시에서나 한국사회를 위한 숲과 같은 교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양 목사와 성도들이 교회론 공부에 힘을 쏟는 것도 교회의 역할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양 목사가 직접 쓴 <성경이 말하는 교회> 교재를 통해 성경이 말하는 교회는 어떤 모습인지 연구하며 공동체를 넘어 사회적 영성을 실천하는데 힘쓴다. 각자의 특기와 흥미를 살린 직능별 목장을 통해 재능기부 공연을 펼치고 커피와 식사봉사도 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곁을 지켰던 광화문 천막카페도 희망찬교회와 봉사자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했다. 해외선교는 교회 설립 초기 때부터 집중해오던 대표적인 사역 중에 하나다. 작은교회들과 연대해 중국과 말레이시아 등지에 선교사를 파송했다. 1998년에는 20여 교회가 참여한 말레이시아 선교회를 설립하고 박철현 선교사를 파송했다. 현재 박 선교사는 말레이시아 정글에 100여 개가 넘는 교회를 세우고 원주민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희망찬교회 교인들은 서로를 형제자매라 부른다. 양 목사는 "직분보다 중요한 건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임을 느끼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2007년부터 호칭장로제와 서리집사제도도 폐지했다. 중요한 의사결정은 회중정치의 전통을 따라 교인총회를 거친다. "교회가 공동체로만 머물지 않고 사회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희망찬교회부터 사회적 영성을 실천하는 일에 모범적인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교회가 어마어마한 건물을 짓는데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으로 나가서 예수님의 생명을 나눠주는 일에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양민철 목사는 앞으로도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성경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 싶단 바람을 전했다.

김준수 기자2017-08-06

강원도 철원은 6.25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곳곳에 남겨진 지역이다. 지금도 당시 격렬했던 전투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112년 역사의 철원제일감리교회는 전쟁의 아픔을 보듬으며 기도로 통일을 준비하고 있다. 이상욱 담임목사는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북한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앞장서고 싶다"고 말했다. 항일운동ㆍ순교 역사 간직한 철원제일감리교회 이상욱 목사는 31년 전인 1986년, 27살의 젊은 나이로 월하감리교회에 담임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했다. 당시만해도 민간인통제구역이었던 강원도 철원군 월하리는 사람들간의 왕래가 쉽지 않아 교회를 맡아줄 목회자가 절실하던 차였다. 이 목사는 지금까지 월하리에 머물며 영혼 구원 사역에 전념해오고 있다. "담임전도사로 부임하고 몇 년 지나서 결혼하고 아이가 생겼어요. 목사 안수까지 받으니깐 교인들이 내가 떠나는 건 아닌가 불안해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습니다. 교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다른 곳에 가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습니다." 이 목사의 목회 여정은 4년 전,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폐허가 됐던 철원제일감리교회가 복원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이 목사와 월하감리교회 성도들이 철원제일감리교회의 112년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며 한 교회로 통합된 것. 긴 시간 방치됐던 철원제일감리교회의 역사성을 눈여겨본 이 목사는 자신이 속한 철원서지방회 내에 역사보존위원회를 설치하고, 연회에 예배당 복원을 건의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철원제일교회 복원건축위원회를 만들어 7년 여의 걸친 공사 끝에 복원을 완료했다. 철원제일감리교회는 1905년 장로교 웰번 선교사가 개척하고, 1907년 강원도 철원 지역이 감리교의 선교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감리교회가 됐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강원도 영서 지역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철원애국단이라는 독립단체를 조직하는 등 항일 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감당했다. 또 1942년 강종근 담임목사가 신사참배를 거부해 순교를 당한 아픔도 간직하고 있는 교회다. 복원예배당 옆에 자리한 철원제일감리교회 터는 한국근대문화유산 23호로 지정돼 순례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철원제일감리교회는 한국교회사 차원에서 의미가 남다른 곳입니다. 우선 장로교와 감리교의 연합 정신으로 시작된 교회이자 항일독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무엇보다 순교자의 피가 흐르는 곳이죠. 우리 교회를 통해 순교의 영성이 퍼져나가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 목사는 교회 통합 이후 매주 목요일 북녘 땅을 바라보며 통일기도회를 개최하고 있다. 교단을 뛰어넘어 지역 목회자들과 함께 한반도 평화와 복음 통일을 위해 간절히 기도 중이다. 또 교회를 방문한 청소년들과 성도들에게 통일의 중요성을 알리는 사역에도 힘쓰고 있다. 통일은 신앙인이 감당해야 할 십자가라고 말하는 이 목사는 북한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순회전도자로 살고 싶단 바람을 전했다. "강원도 지역은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행정구역상 남과 북으로 나뉜 곳입니다. 이런 아픔을 가진 강원도가 앞장서서 남북한의 아픔을 치유하는 일에 앞장서고 싶습니다. 남북 강원도 주민들이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찬양을 하며 함께 어우러지는 날이 오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김주련 기자2017-08-03

최근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한일 갈등의 골이 깊어 지고 있다. 양국에서는 서로를 겨냥한 '혐한 논란'과 '반일감정' 등을 내세우며 등을 돌리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먼저 화해와 용서의 손을 내민 사람이 있다. 바로 이성수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이 감독은 한국과 일본의 화해를 위해 12명의 크리스천이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서울에서 도쿄까지 34일간의 대장정은 <용서를 위한 여행>이란 제목으로 스크린에 오를 예정이다. 이성수 감독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9월 18일 서울역서 출발 예정 <용서를 위한 여행>은 이성수 감독이 직접 기획했다. 독도, 위안부, 최근엔 군함도 문제까지 한국과 일본을 둘러싼 민감한 주제들로 국가 간 갈등이 깊어지는 이때, 서로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누가 누구를 용서할 자격이 있냐', '애써 고생할 것 까지 있냐'는 등의 비판 여론도 적지 않다. "예수님의 시선으로 한국과 일본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요. 유독 일본 이야기만 나오면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도들이 많은데, 한국교회가 생각을 바꾸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먼저 다가간다면 용서와 화해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해요. 이런 믿음으로 일본 선교 영화를 시작하게 됐죠." 이 감독은 <용서를 위한 여행>을 위해 한국인 6명, 일본인 6명 총 12명의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 12명의 참가자들은 9월 18일 서울역을 시작으로 도쿄까지 자전거로 달린다. 참가자 12명은 현재 모집 중이지만, 이미 확정된 이들도 있다. 회사에 사표를 내고 여정에 함께하기로 한 정년과, 자전거 묘기를 펼치는 10살 소년, 당회의 허락을 기다리고 있는 일본인 목사 등이 참가를 결심했다. 첫째 날은 서울역에서 경기도 화성 제암리교회까지 페달을 밟는다. 제암리교회 희생자 추모예배를 드린 뒤, 공주와 익산, 순창, 거창, 대구, 밀양, 부산까지 80~100km를 달리게 된다. 여행의 여정은 일제강점기 역사가 남아있는 곳 위주로 선정했다. 여행의 숙식 문제는 각 지역의 교회가 나서 돕는다. 대구 동신교회와 부산 수영로교회 등 한국의 7교회가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고 일정 구간은 자전거로 함께할 예정이다. 9월 26일 부산을 떠나 27일 일본 시모노세키에 도착한 팀은 우베시와 히카리시, 히로시마시, 후쿠야마시, 오카야마시, 히메지시, 고베시, 오사카시, 교토시 등을 거쳐 10월 20일 도쿄 도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일본에서 팀을 맞이할 교회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형교회는 아니지만 일본의 17교회가 교회마당을 빌려주는 등 이 목사의 뜻에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자전거 팀의 여정 중에는 크게 3차례 집회도 계획돼있다. 9월 28일 제암리 예배, 10월 16일 오사카 한일대예배, 10월 20일 도쿄 일한대예배다. 집회에는 플루이스트 송솔나무, 개그우먼 조혜련, 성서화가 김복동 작가 등이 참석한다. 도쿄 집회에서 설교를 맡은 오야마 레이지 목사는 수차례 한국교회를 방문해 한국교회에 사죄한다는 입장을 밝힌 인물이기도 하다. 2014년에는 일본 개신교를 대표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머리를 숙이며 사죄하기도 했다. "한국인 목사님부터 일본인 목사님까지 모두 하나된 마음으로 기꺼이 동참해주셨어요. 힘든 여정이지만 서로의 진심이 통하길 바라요." 한편 이성수 감독은 2013년 기독교인에게 학대당한 캐나다 원주민과 그들을 섬기고 있는 한국인 선교사의 이야기로 영화 <뷰티풀 차일드>를 제작해 교계에서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김준수 기자2017-07-28

방과후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을 만들고, 여행자들에게 쉴 곳을 제공해주는 순천 대대교회. 마을이 필요로 하는 사역을 펼치다 보니 지역에서 없어서는 안 될 교회로 자리잡았다. 대대교회 공학섭 목사는 "지역사회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을을 섬기게 됐다"고 말했다. 주일학교 사역으로 설립한 교회…지역아동 섬김에도 앞장 올해로 창립 91주년을 맞은 순천 대대교회는 순천만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대대동에 위치해있다. 1926년 매산학교 교장이었던 원가리 선교사와 학생들이 마을로 찾아와 확장 주일학교 사역을 하면서부터 교회가 시작됐다. 김구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조상항 장로가 말년에 순천에 정착해 신앙생활을 한 곳도 대대교회였다. 조 장로는 성경구락부를 통해 후학들을 키우는 일에 열심이었다고 한다. 다음세대를 키우는 일에 열심이었던 전통 덕분인지 대대교회에서 배출한 목회자만 김상봉 목사(예장합동 증경총회장), 조재태 목사(예장고신 증경총회장), 서철원 박사(전 총신대 신대원장), 박종구 목사(월간목회) 등 35명에 달한다. 대대교회 공학섭 목사는 "상당히 이른 시기에 시골까지 복음이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선교사와 매산학교 학생들 덕분이었다"며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모아 놓은 헌금이 마중물이 되어 지금의 교회 터를 샀다. 어린이들의 신앙으로부터 시작된 교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세계 5대 연안습지로 손 꼽히는 순천만은 바람에 넘실거리는 갈대군락지, 아름다운 일몰과 낙조를 볼 수 있어 순천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찾는 필수 코스 중에 하나다. 공 목사는 게스트하우스라는 말이 생소하던 때부터 순천만을 방문한 관광객들과 기독교 유적지를 순례하는 이들에게 교회 공간을 제공해오고 있다. 교회는 지역사회가 꼭 필요로 하는 곳이 돼야 한다는 목회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를 통해 얻는 소정의 운영비는 100% 이웃을 위한 나눔에 쓰고 있다. "방학이나 휴가철이 되면 하루에 많게는 3~40명이 묶고 갈 때도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워낙 좋은 숙박시설이 많이 생겨서 이용하는 분들이 줄었죠. 교회에서 하루라도 편하게 묶었던 사람들이라면 나중에 교회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선교하는 마음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교회가 운영 중인 지역아동센터와 순천만작은도서관에는 근처 마을은 물론, 순천 시내에 사는 아이들도 찾아온다. 학부모들도 교회가 아이들을 잘 돌봐주고 있다며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 사역을 통해 교회에 출석하거나 마을에 정착하는 가정도 생겼다. 노인 인구 비율이 높은 마을의 특성에 따른 맞춤 사역도 펼치고 있다. 독거노인들을 위한 반찬 나눔 사역과 평생교육 차원에서 진행한 노인대학이 대표적이다. 노인대학은 마을의 어르신들 중에 모두 수료한 덕분에 할 수 없이 중단한 상태다. 신규 인구 유입이 흔하지 않다 보니 일어난 일이다. 한동안은 거동이 불편한 근처 마을의 어르신들을 위해 '찾아가는 노인대학'도 진행했다. ▲세계 5대 연안습지로 손 꼽히는 순천만. 순천을 찾는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명소다.ⓒ데일리굿뉴스 "환경 보존은 그리스도인들의 의무" 공 목사는 순천만자연생태공원 공모사업에 지원해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환경 보존을 위한 생태지도자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예장합동 순천노회 차원에서 농어촌부도 신설해 농촌목회의 필요성과 노하우를 지역 목회자들에게 아낌없이 나눈다. "환경 문제는 시민단체나 운동가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도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영역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분이 지으신 세계를 잘 관리하라는 책임을 맡겨 주셨기 때문이죠. 교회에서 잔반을 남기지 않거나 이면지를 쓰는 일처럼 작아 보이지만 일상에서 실천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지역사회의 필요에 민감히 반응해야 한다고 강조한 공 목사는 앞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고 싶단 바람을 전했다. "목사의 사명은 매일 주어진 삶 가운데서 말씀과 기도로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대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로 바로 섰으면 좋겠습니다."

김주련 기자2017-07-21

한국에서의 안정된 직장을 과감히 내려놓고, 청년 때의 꿈을 이루기 위해 1997년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사람이 있다. 바로 정재훈 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미국 엔지니어 회사의 말단 직원으로 시작해 22년 만에 최고 경영자가 된 그는 2013년 '자랑스런 한국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런 그가 전세계에 이름을 널리 알리는 사건이 벌어진다. 정 박사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였다고 고백한다. 美 최악의 우주선 참사, '해결사'로 나서 1986년 1월 28일 전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최악의 참사가 미국에서 일어났다. 바로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가 민간인 교사를 포함, 총 7명의 우주인을 태우고 출발했지만 이륙 72초 만에 폭파돼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2003년 임무를 마친 7명의 우주비행사를 태우고 귀환하던 컬럼비아호가 폭발한 사건도 있다. 급저온 상태에서 생긴 얼음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한 이는 누구였을까. 바로 정재훈 박사다. "실시간으로 우주선이 폭파되는 장면을 보고 저 또한 큰 충격에 빠졌어요. 안타까움을 가지고 새벽기도를 드리는데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도우라고 하셨고, 해결할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챌린저호는 고체연료누출방지 장치의 결빙이 폭발원인이었는데, 저희 회사가 개발한 열조정장치가 해법이 됐죠." 이후 컬럼비야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정 박사는 하나님이 지혜를 쥔 방안을 가지고 6시간을 비행해 나사를 방문했다. "관계자가 난색을 표하더군요. '이미 2달간 수십 명의 석학들, 과학자들이 달라붙어 1안, 2안까지 진행돼 90% 정도 문제해결 방안이 완성돼 당신의 방안은 쓸모가 없다고 했어요.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6차례나 나사의 문을 두드렸어요."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 2안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3안으로 밀려났던 정 박사의 방안이 최종안으로 채택된 것. 정 박사에 의해 수정된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가 2005년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이 일로 그는 나사로부터 '기적의 사나이'란 호칭을 듣게 됐다. 아내와 수십 년간 새벽기도 드려 정재훈 박사는 이 모든 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고백한다. 한때 무역회사 상무로도 일했던 정 박사는 고등학교 일기장에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어 인류의 기쁨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다짐의 글을 발견하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1997년 아내 정정숙 권사와 어린 두 딸을 데리고 단 돈 4천 달러를 가지고 미국으로 이민을 결정했다. 그는 테이코 엔지니어링에서 시급 4달러25센트를 받는 말단 제도사로 입사했다. 이후 3년 만에 치프 엔지니어, 7년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 2000년부터는 창업자의 간곡한 부탁으로 CEO가 되어 회사를 성장시켰다. 이 모든 과정 속에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내와 함께 드린 새벽기도가 있었다. "매일 새벽 4시 15분이면 눈이 떠지고, 4시 30분부터는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새벽에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지는 은혜, 말씀과 기도로부터 얻어진 셀 수조차 없을 정도의 응답이 제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가 됐어요. 그래서 지금도 매일 밤, 내일새벽 주님께서 또 어떤 말씀을 하실지 설레는 마음으로 잠이 듭니다." 정 박사와 아내는 수십 년간 새벽을 하나님께 드리며 나아갔을 때 이처럼 많은 주님의 역사하심을 목격했다. 복음의 씨앗이 심겨져 예수님과 멀어졌던 여학생이 돌아오게 된 일, 방속국 PD와 스텝들이 정 박사 부부를 24시간 동행취재를 하다 주님을 영접하게 된 일, 인생의 목적을 잃고 소망을 잃어버린 청년들이 주께 돌아오는 일을 만날 때마다 부부는 함께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저는 평소 다니엘서를 즐겨 읽습니다.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라는 말씀에 의지해 매일 지혜를 구합니다. 똑똑함과 우둔함, 잘남과 못남, 부유함과 가난함 등 세상의 가치는 종잇장 한 장 차이도 안 됩니다. 우주개발이란 어려운 과정 속에 그것을 절실히 체험했어요. 모든 가치는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정해집니다. 과학이란 무엇일까요? 피조물이 만들어낸 학문적 이론에 불과한 것이죠. 저는 다만 그 과학을 통해 기업을 경영하며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일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정재훈 박사의 자세한 신앙 스토리는 <신앙계> 8월호에서 만나볼 수 있다.

박은정 기자2017-07-13

최근 집중호우를 동반한 장마로 전국에서 교회들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건물 지하에 위치한 작은교회들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한 실정이다. GOODTV 선교방송교회인 광희교회도 물폭탄을 맞은 예배당을 복구하느라 안간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피해 현장을 직접 찾아가봤다. 재정도 어려워 복구작업 더뎌…도움 절실 교회에 물이 차기 시작한 건 2일 저녁 11시경. 주일예배를 마치고 목양실에서 잠을 자던 윤은혜 목사가 물 소리에 눈을 뜨며 현장을 목격했다. "잠을 자는데 무슨 물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너무 놀라서 문을 열고 예배당으로 나가보니 예배당 창문에서 물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런데 그냥 물이 흘러 들어오는 게 아니라 파이프에서 물이 나오는 것처럼 쏟아졌어요. 처음에는 혼자 물을 퍼내다가 물이 빠른 속도로 들어와서 결국 119에 전화 했죠." 교회가 지하에 위치해 있어 도로에 고인 빗물이 창문과 벽 틈새로 들어온 것. 119가 출동해 펌프로 교회 계단과 예배당에 있는 물은 다 빼냈지만 2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다. 예배당 바닥에 깔려 있던 장판들은 빗물에 젖어 다 들어냈다. 하지만 장판 본드가 바닥에 붙어 있어 걷기 조차 힘들 정도로 끈적거린다. 통풍도 제대로 되지 않아 선풍기를 아무리 돌려 봐도 예배당에 가득한 습기가 빠지질 않는다. "예배당에 물기가 많아서 너무 습하고 냄새가 심해요. 장판마저 ▲광희교회 윤은혜 목사 들어냈더니 시멘트 냄새가 그대로 올라오고 벌레도 자꾸 생겨 상황이 더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더욱 심각한 것은 윤은혜 목사의 건강 상태다. 윤 목사는 현재 예배당 한 켠 목양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데, 습기가 많고 공기도 좋지 않은 예배당에서 하루 종일 있다보니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있다. 하루빨리 예배당을 복구해야 하지만, 재정 상황도 어려워 복구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현재로선 외부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 올해로 설립 13주년을 맞이하는 광희교회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영혼구원 사역을 감당해 왔다. 여자로서 홀로 목회를 하며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이번 일은 도저히 감당하기가 벅차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는 윤은혜 목사. 하지만 윤 목사는 "이번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일어날 것이라 믿는다"며 "교회에 주어진 사명을 계속해서 감당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많은 어려움도 있었고 이번에 물난리도 겪었지만 영혼구원에 대한 저의 신념은 생명 다하는 날 까지 변치 않아요.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좌절하지 않고 성도들을 천국의 길로 이끌겠습니다."(후원계좌 : IBK기업은행 377-109154-01-016 광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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