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규 기자2019-11-05

40여년의 목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은퇴 후 교회가 없는 경북 영천시 안천리에 귀촌한 한 원로 목회자가 마을 꽃길을 조성해 지역을 아름다운 꽃동산으로 변화시켜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예장 통합측 함해노회 소속의 대구 창신교회 원로목사인 조규화 목사(81)다. 1938년 경북 청송군 안덕면에서 태어난 조 목사의 모 교회는 복동교회로 그의조부인 조병국 영수(현 장로 직분 해당)가 설립한 교회다. ▲조규화 원로목사 부부ⓒ데일리굿뉴스 일찍부터 부친의 영향으로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았던 그는 미 북장로교 파송 선교사였던 구의령 선교사의 제자로 신학공부를 하게 됐으며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이후 영남 신학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을 거쳐 통합측 경안노회 100주년이 되던 1975년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는 미국 인터내셔널 신학대학교에서 명예 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백자·창락·탑리제일·대구효목제일·대구창신교회 등을 섬겼다. 지난 2000년 40여년의 목회사역을 내려놓은 조 목사는 고향과 가까운 영천 안천리마을로 이사했다. 비록 공식적인 목회일선에서 은퇴한 그이지만 완전히 사역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매 주일마다 영남지역의 은퇴 목회자들이 예배드리는 영남은목교회를 섬기고 있다. 이 교회는 은퇴목회자 23가정이 지난 2007년 12월 2일에 설립한 교회다. 교파를 초월한 은퇴목회자들이 모여 나라와 지역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다. 조 목사는 이 교회 설립을 주도했으며 설립이후부터 지금까지 설교자로 섬기고 있다. ▲조 목사의 영향을받은 마을 주민들이 꽃길 조성에 함께 동참하고 있다.ⓒ데일리굿뉴스 조 목사가 꽃길을 만든 것은 지난 2005년부터다. 농촌마을을 꽃길로 조성해 도로변을 아름답게 만들고, 영천 국도변 350m를 개간해 마을꽃동산과 꽃길을 조성함으로, 살고 있는 마을을 아름다운 꽃동산으로 변신시켰다. 조 목사는 “비록 지금은 목회 일선에서 은퇴했지만 농촌 목회 사역한다는 마음에서 마을 전체를 가꿔 주민들은 물론 우리 마을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따스함과 힐링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며 꽃길 조성의 동기를 설명했다. 또 지난해에는 마을 주민들의 휴식공간을 위해 육각형정자 두 곳을 건축하고 마을 주민들과 소통에 주력했다. 이를 통해 주민들에게 간접적인 전도의 기회를 삼고 있다. 이처럼 피폐된 농촌마을을 꽃동산으로 변신시킴으로, 각박한 민심을 정화시키고 복음전도에 주력한 결과, 마을 주민들이 감동을 받아 주민 일동이름으로 조 목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또 영천시청 공보실 홈페이지에 꽃길 사진들이 게재되는가하면, 영천 인터넷 방송과 경북도민신문 등 언론에서도 마을이 화제가 됐다. 때문에 이전보다 안천리를 찾는 발길들도 늘고 있다. 조규화 목사는 “농촌마을을 목회하는 마음으로 섬긴 결과 온 마을이 아름다운 꽃동산이 변신해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함께 수고한 주민들에게 감사드리며, 이를 통해 더욱 주님을 알아가는 주민들이 늘어나도록 기도하고 전도에 주력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그의 아들인 조용득 목사는 태국에서 소파왕으로 불릴 만큼 사업가로 성공했으나, 사업가로서의 사명 대신 선교사의 사명 감당을 위해 미얀마 선교사로 파송받아 사역하고 있다.

데일리굿뉴스 2019-11-04

GOODTV운영이사이자 모터펌프 전문 제조회사 길산업 최옥창 대표는 지난 10월 30일부터 11월3일까지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된 G-Fair 전시회에 참가했다. 이 전시회는 ‘대한민국 우수 상품 전시회’로 국내 최다 상품 전시회로 알려져 있다. 최 대표는 이 전시회에 벌써 3번째 참가했다. 특히 이 전시회에는 드론, BLDC MOTOR, 다양한 블로워 모터, STEPPING MOTOR 등의 첨단 모터가 출시됐다. 또한 열찜질 팩, 핸드폰 앱을 이용한 저주파 물리치료기가 자매품으로 선보였다. 이 전시회에는 외국 바이어가 많이 몰리는 관계로 참여 업체들에게는 수출 길을 열수 있는 기회도 됐다. 30여 년간 모터 연구에 주력한 길산업은 모터를 응용한 다양한 제품화를 위해 노력해 오던 중 지난 2016년말 벼를 찜과, 증속, 후속 가공시켜 GI(혈당지수) 84를 50(현미수준)으로 떨어뜨리는 획기적인 특허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개발로 인해 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과 발명진흥협회장상 수상은 물론 국내를 넘어 태국 발명협회에서도 금상을 받은 바 있다. 최 대표는 본 특허를 본격 사업화를 위해 대량 생산 체제가 가능한 빠른 건조기능을 갖춘 특허를 올해 추가 획득하고 대량생산을 통해 농민소득증대와 당뇨환자 식사 개선 및 관련산업의수출 길이 열리게 됐다. 또한 국가 기본 혁신성장 및 고용 창출 효과로 지난 11월 1일에는 중소벤처기업청장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오는 11월 27일(수)에는 발명진흥협회에서 주관하는 대한민국 발명특허대전에서 특허청장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모든 산업과 기계요소에 근본으로 사용하는 모터, 펌프를 통해 다각도의 성장을 도모하고 있는 길산업 최 대표는 "60년의 인생을 맞아 부족하지만 인류 사회를 위해 보다 뜻있는 일을 해야 할 때"라며 그 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 대표는 지난 5월 기독교복음방송 GOODTV 운영이사(서기)로 위촉받고 방송선교 활동과 더불어 글로벌선교방송단의 교회기자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박재현 기자2019-10-29

우리의 전통음악인 국악과 CCM을 결합해 첫 앨범을 선보인 밴드가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인의 정서인 한을 담은 판소리와 밴드음악을 접목해 만든 퓨전국악 밴드 경지가 그 주인공. 호소력 있는 창법과 다양한 악기를 활용한 개성 있는 사운드로 주목을 받고 있는 밴드 경지를 직접 만나봤다. "하나님 전하는 도구로…" 퓨전국악 밴드 경지는 2015년 제7회 대학국악제에 참여해 대상을 받은 계기로 결성된 팀이다. 건반과 기타, 드럼, 베이스 그리고 전통악기 피리 등 한국의 독보적인 음색을 전하는 보컬까지 총 6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퓨전국악'이라는 장르에서 다양한 음악을 펼치고 있다. 팀이 결성된 이후 일제강점기, 광개토대왕 등 한국의 역사를 주제로 한 곡들을 주로 선보여왔던 이들은 최근 국악과 CCM을 결합한 첫 앨범 '두려움이 없어지리라'를 내 놓게 됐다. 밴드 경지의 보컬 오현은 "CCM 음악을 통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쳤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이번 앨범을 만들게 됐다"며 "그 동안 쌓아왔던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들을 주님 앞에 토해내는 듯한 음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이번 앨범에서 부르는 곡은 완급적인 조절 부분에서 큰 파급력이 있으며 사운드 적으로 강하다"라고 덧붙였다. ▲밴드 경지 CCM 첫 앨범 '두려움이 없어지리라' (사진제공=밴드 경지) 특히 이번 앨범은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마음에 풍성히 채워진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가사와 멜로디를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의 신앙 생활을 돌아보고 진정으로 회개와 감사를 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밴드 경지 맴버들도 이번 앨범을 제작하면서 다른 음악과는 달리 각자의 마음 속에도 은혜가 가득 채워짐을 느끼게 됐다고 고백했다. 밴드 경지의 건반을 맡고 있는 박슬아는 "조금 더 영향력 있는 팀이 돼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과 나아가 기독교적인 메시지를 당당히 전할 수 있는 도구로 쓰임 받고 싶다"고말했다. 밴드 경지는 앞으로도 다양한 행사를 통해 크리스천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퓨전국악으로 하나님을 전하는데 힘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멈추지 않고 꾸준하게 한길을 나아 가겠다는 밴드 경지. CCM 전문가들은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를 담은 경지 특유의 음악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하나님을 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밴드 경지는 오는 11월 1일 6·25전쟁 당시 상황을 토대로 만든 곡으로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다.

김신규 기자2019-10-27

우물 기부를 위해 극지를 달리는 극지 마라토너 박태훈 씨(28). 그가 극지를 완주하는 이유는 식수가 부족한 아프리카에 우물을 기부하기 위해서다. 지난 7월 ‘몽골 고비사막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250㎞를 7박 8일간 완주했다. 그는 미리 약속대로 후원금으로 아프리카 차드 다르발 라반 지역에 우물 1기를 지난 8월 기부했다. 그는 대학 시절인 2016년 ‘칠레 아타카마 크로싱’에서 처음 출전해 250㎞ 코스 중에 170㎞까지만 달려 완주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2017년 ‘사하라 사막 레이스’와 ‘칠레 아타카마 크로싱’를 완주했고, 올해 고비사막 도전에 성공했다. 세계 4대 극지 마라톤대회 중 3개 대회 도전에 성공했다. 앞서 대회 후원금으로 아프리카 니제르, 르완다, 잠비아 등 3곳에 우물을 기부했던 박 씨는 고비사막 도전 성공으로 후원사의 도움을 받아 차드 다르발 지역 식수시설지원사업 기금을 굿네이버스에 전달했다. ▲박태훈 씨의 역주 모습ⓒ데일리굿뉴스 아프리카에 우물기부를 하게 된 것은 고교시절 도덕선생이 보여준 식수부족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다큐멘터리가 계기가 됐다. 당시 그는 ‘언젠가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우물을 선물하고 싶다’는 꿈을 공책에 적었다. 30살이 되기 전에 아프리카 우물 기부를 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그렇게 박 씨는 우물 기부사업 꿈을 실현하기 위해 대학 4학년 재학 중 사막 횡단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도전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아프리카에 우물을 만드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행위를 통한 기부로 기부에 대한 장벽을 낮추고 싶었지요.” 극지 마라톤 참가비 마련을 위해 수백 건 전화와 편지 보내기는 예사였고 하루 17시간씩 환풍기 설치나 실내야구장 아르바이트를 했다. 2017년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중견 건축회사에 취업한 박 씨는 극지 마라톤을 통한 꿈을 찾아 도전하기 위해 직장도 그만뒀다. 이후 창업에 도전해 올 초 스포츠 앱 분야 사업을 시작했다. “운동 분야 사업은 가장 잘 할 수 있고 관심 분야여서입니다. 7월에 앱을 출시했습니다. 전국에서 열리는 각종대회 정보와 이벤트 알려주는 플랫폼을 운영합니다. 앱 이름도 ‘터닝포인트’처럼 달려서 인생을 바꾸자는 의미로 ‘러닝포인트’라고 지었습니다.” 이제 그는 남미 아마존 250km대회와 가장 추운 남극 250㎞ 완주를 목표하고 있다. 박 씨는 “아마존을 통해서는 우물을, 남극 완주 후 아프리카에 작은 학교를 세울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목표가 있으면 전력으로 질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생은 망설이다가 끝이 난다. 도전에는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천보라 기자2019-11-15

일명 'SKY' 의대 출신의 세브란스 병원 전공의 및 전임의. 많은 사람이 꿈꾸는 이상적인 삶이다. 그러나 의사라는 타이틀과 안정된 삶을 내려놓고 아프리카 오지로 떠난 이가 있다. '죽음의 땅'이라 불리는 아프리카, 그중에서도 세계 최빈국 마다가스카르를 '생명의 땅'으로 일구는 이재훈 의료선교사가 그 주인공이다. 길 위에서 보낸 지 어느덧 14년, 지난해에는 오지 이동 진료 100회를 맞기도 했다. 이제는 '부시맨 닥터', '길 위의 닥터'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재훈 선교사를 서울 강남 소망교회에서 만났다. 하나님과의 약속에서 시작된 의료선교 이재훈 의료선교사(52)가 처음 교회에 나가게 된 건 네 살 무렵이다. 동네 형을 따라 교회에 갔던 게 계기가 돼 집안에서 유일하게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이 선교사였다. 하루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라는 말씀을 읽고 가족을 전도하기로 마음먹었다. 첫 번째 전도 대상은 제일 만만한 남동생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동생이 '형 같은 사람이 교회 다니면 나는 평생 죽어도 안 다녀'라는 거예요.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과거 동생에게 상처 준 일들이 떠올랐어요. 무엇보다 이런 저로 인해 우리 집이 구원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제 믿음이 가짜였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때부터였다. 믿음에 대한 검증이 필요했다. 당시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새벽기도를 비롯해 산기도, 철야기도 등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매일 성경을 읽고 십일조도 잊지 않았다. 심지어 부흥회를 다니며 안수기도를 받기도 했다. 절망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노력에도 아무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음속에 여전히 자리 잡은 죄에 대한 갈등이 이 선교사를 괴롭혔다. 하지만 이대로 가짜로 살 수는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최후의 방법밖에 없었다. 바로 하나님과의 일종의 '딜'이었다. "'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떠올랐어요. 당시만 해도 아프리카라고 하면 '식인종의 나라'라는 인식이 있었거든요. 어린 나이에 아프리카 선교사 정도는 돼야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인정받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그래서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기로 했어요." 잘하면 될 것 같다는 소망이 생겼다. 소망을 이루기 위해선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해야 했다. 학생 신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공부였고, 당시 성적이 우수하면 법대와 의대 진학이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렇게 이 선교사는 아프리카 의료선교사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 선교사는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위장, 간, 대장 갑상선, 소아외과 등 여러 분야의 전임과정을 거쳤다. 앞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안정적인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선교사는 세상의 부와 명예를 내려놓고 아프리카 오지로 향했다. "좋은 환경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들어요. 그런데 사실 큰 희생을 한 것도, 큰 걸 포기한 것도 아니에요. 한국에서의 의사가 눈에 보이는 것처럼 그리 편안한 삶은 아니 거든요. 더군다나 제가 아프리카에 가기로 한 건 제 구원에 대한 하나님과의 오랜 약속이었어요.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죠." ▲이재훈 의료선교사가 마다가스카르 북서부 베살람피시의 오지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사진제공=주마다가스카르 한국대사관) 절망에서 희망으로…한 사람이 바꾼 미래 아프리카 남동쪽 인도양에 있는 섬나라,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마다가스카르. 아프리카 의료선교사가 되기 위해 영국에서 신학을 하던 이재훈·박재연 선교사 부부에게 마다가스카르를 향한 부르심은 강렬했다. 하나님의 여러 사인과 인도하심 속에 이 선교사 부부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마다가스카르를 품게 됐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토록 바라던 선교지에 왔는데 이 선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법적 라이센스가 없어 환자를 볼 수 없었고, 불어를 못 한다는 이유로 강의를 나가는 것조차 허락이 안 됐다. "라이센스를 받는 과정부터 외국인 의사가 진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나갔어요.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법조문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계속 뒤집어지는 과정을 반복했죠. 덕분에 이제는 외국인 의사도 마다가스카르에서 임시면허증을 받아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세팅이 돼 있어요." 시스템이 구축됐지만 문제는 첩첩산중이었다. 턱없이 부족한 의료진과 병원, 열악한 의료 환경 등으로 수많은 말라가시(마다가스카르 원주민)가 평생 의사 한번 만나지 못하고 죽어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목도했다. 이 선교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168㎢에 의사 188명이 있는데 이 중 90%가 전문의일 가능성이 높다"며 "반면 마다가스카르는 168㎢에 의사 1명이 있는데, 그 의사도 의대를 막 졸업한 일반의일 가능성이 96%"라고 말했다. "오지를 다니며 환자들을 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외과적 처치가 필요한 환자들이 너무 많이 쌓여있는 거예요. 의사를 만나기 위해 멀게는 수백 킬로를 걸어오는 환자들을 보며 이대론 안 되겠더라고요. 의사를 데리고 가서 환자를 어떻게 치료하는지 보여주고 이들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만든 게 이동진료팀이에요." 그렇다 보니 유독 기억에 남는 환자가 많다. 이 선교사는 특히 최근 기억이 가장 선명하다며 수십 년 동안 방광이 점점 자라서 만삭의 배를 갖고 살아온 환자와 배 속에 있는 장기가 고환으로 다 빠져나와 무릎까지 커지면서 20년 넘게 허리를 못 편 환자의 이야기를 전해줬다. 도구 하나 제대로 구비되지 못한 열악한 환경에서 시작한 오지 이동진료는 올해 10월까지 112회 진행됐고, 마다가스카르 19개 지역 중 16개 지역을 방문했다. 나머지 3개 지역도 한 곳은 굉장한 부촌으로 현대식 병원이 있었고, 2개 지역은 도로가 없어 갈 수 없는 지역이었다. 이 선교사는 지난해 이동진료 100회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마다가스카르 정부로부터 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이 선교사와 의료팀이 진행해 온 이동진료가 그동안 최소한의 의료혜택도 받지 못한 자국민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한 사람의 의료가 한 나라의 의료체계를 변화시킨 놀라운 기적이었다. 그의 약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선교사는 "외과 수술 면에서 약 20가지 수술 기법을 배우고 진단명에서는 100~150가지만 잘 배워도 약 90%의 진료를 볼 수 있다"며 마다가스카르처럼 고통받는 많은 나라에 전할 수 있도록 오지통합의료전문의를 양성하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아프리카엔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니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하지만 여러 사람의 힘이 모이면 의외로 일이 빨리 끝날 수 있어요. 그리고 절망이 희망으로 변할 수 있어요. 혹 누군가를 돕고 싶다면, 마다가스카르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기도해주시고, 응원해주세요."

박재현 기자2019-11-11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북한이탈주민 3만 3,000명 시대라고 하지만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기는 녹록치 않다. 취업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취업을 해도 서로 다른 문화와 북한이탈주민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적응이 힘든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북한이탈주민들의 남한사회 적응을 돕는 기관·단체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가운데함께하는재단 탈북민취업지원센터 최경일 센터장은 10년간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해 경제적 자립은 물론 사회 적응력을 키울 수 있도록 멘토 역할을 감당해 왔다. 지속적인 관심·AS 지원…또 다른 도약 '통일' 만들어 나가길 "북한이탈주민들을 만나면 탈북보다 취업이 더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렵게 한국으로 왔는데 이곳에서도 또 다른 어려움들을 겪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어요." 8년 전 까지만 해도 한 기업의 인사팀장으로 근무했던 최경일 센터장은 2008년 대안학교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탈북 대학생들을 만나면서 인생 후반기 가슴 뛰는 새로운 삶을 찾게 됐다. 그 이후 대안학교의 인연으로 함께하는재단 탈북민취업지원센터(대표 장형옥)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도왔다. 최 센터장은 현재 함께하는재단 탈북민취업지원센터를 통해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한 취업상담과 교육을 통한 경제적 자립, 사회 적응력도 키우기 위해 힘쓰고 있다. ONE-STOP 취업지원 프로그램으로 취업에 대한 실무능력 향상부터 취업, 사후관리까지 장기적 맞춤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최 센터장은 "이 프로그램은 취업에 필요한 기술영역을 정해서 집중적으로 도와 주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높여주는 프로그램을 일주일 간 진행한 뒤 자신의 취업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데 어떠한 과정이 필요한지 등 집중적으로 진로상담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센터와 연계된 10개의 직영 굿윌스토어 등 관련 단체에서 인턴십을 통해 현장실무 능력을 길러주기도 한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1,300여명 되는 북한이탈주민의 취업과 정착을 도왔다. 도움을 받은 몇몇 북한이탈주민들은 사회적으로 잘 정착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더 많은 이들이 한국사회에 잘 적응하고 살아가도록 아낌 없는 지지와 격려를 전하겠다 고백하는 최 센터장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AS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수 많은 AS 중 결혼식에서 신부 아버지 역할을 한 적도 있고, 아이의 이름을 지어 준 적도 있었다"며 "이들이 더 건강한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평생 도움을 주는 센터로 만들어 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통일을 위해서는 통일 리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는 그런 분들을 양성할 수 있는 일을 계획하고 있어요." 북한이탈주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을 연결하는 것처럼 통일을 위해서도 사람을 준비해야 한다는 최 센터장은 북한이탈주민들이 한국에 온 것이 축복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내년에는 100여명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1,000명의 통일 리더를 키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해 한국에 또 다른 도약인 통일을 함께 만들어 나가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김민주 기자2019-11-10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갑작스런 사고로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됐지만, 이를 계기로 오히려 장애인을 돌보는 일에 열정을 쏟아온 사람이 있다. 12년 동안 서울 강북구립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원장으로 근무하며 중증 지적장애인들을 돌봐온 이상원 목사다. "내 자신이 장애인이다 보니 장애인들이 겪는 고충과 어려움을 알겠더라고요." 이 목사는 사고로 다리를 다쳐 장애를 갖게 됐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좌절과 원망이 컸지만 아픈 만큼 또 다른 것이 보였다. 신학을 전공하던 시절, 한 교회에서 지적장애인에게 제빵과 바리스타 직업 교육을 시켜주는 걸 보면서 장애인 사역을 결심했다. 이후 사비로 컨테이너 박스를 지어 장애인에게 무료로 도장과 열쇠 제작하는 일을 10년간 남몰래 했다. 소문이 났는지 강북구청장으로부터 ‘장애인재활시설장을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고 본격적으로 장애인 돌봄 일을 시작하게 됐다. "단순히 교육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의 내면이 건강해지고, 더 나아가 그들의 가정이 회복되는 것도 고민하게 됐죠." 그는 20대 중반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지적장애인들을 만나며 직업교육과 상담을 해왔다. 장애인을 잘 돌보기 위해서 전문지식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사회복지, 재활과 관련한 학위와 자격증을 취득했다.가족과 함께하는 음악치료나 전국 문화탐방 등 장애인들이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면서 회복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장애인 지도자를 양성하고 건강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장애인평생교육원도 개설했다. 장애인에 대한 깨지지 않는 선입견, 장애인에게 걸려온 1억이 넘는 손해배상 청구 등 오해와 어려움도 많았다. 그러나 이 목사는 “장애인들이 사랑을 받고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힘든 것이 싹 사라졌다”고 고백했다. "장애인들이 와서 ‘목사님 사랑한다’ 그러면서 안아주고, 말이 어눌한 뇌성마비 아이가 감사 기도하는 모습을 볼 때 정말 기뻤죠. 대학을 졸업해서 일터로 나가는 장애인을 볼 때도 감격이었어요." 이 목사는 당뇨 합병증으로 건강이 나빠져 지난 달 원장 직을 은퇴했다. 좀 쉴까 생각했지만 아는 선배 목회자의 요청으로 현재는 시온성교회 내 ‘데이케어센터’ 시설장을 맡아 노인돌봄교실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회복과 돌봄이 필요한 이웃에게 다가가 사랑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차진환 기자2019-11-06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전 분야에는 신실하고 유능한 크리스천들이 많다. 그들의 선한 영향력은 복음의 향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선교사역이 된다. 본보는 ‘리더스미션’이라는 타이틀 아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주위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심어주는 모범 크리스천 CEO들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전국 묘지면적은 10만ha 정도로 국토의 1%로전국 주택이 차지하는 면적의 절반 정도 해당한다. 매년 여의도 면적의 1.2배인 900ha의 묘지가 추가로 발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산림이 훼손될 우려가 큰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수목장이 가장 주목 받는 장례 방법으로 급부상 했다. 정부도 공공 수목장림을 대폭 늘릴 친환경적인 장지를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한국기독교 장지의전사업단 ‘한맘’의 조성태 대표는육이 땅에 남아 자연으로 돌아가는것. 그 성경의 원리를 가지고 한국의 장지 문화를 개척해 나갈 필요성을 느꼈다. 어려울 때만 찾았던 하나님…이제는 모든 것 맡기기로 “4살 막내 동생이 물에 빠져 실종된 적이 있습니다. 6시간 만에 찾아 집으로 데려 왔는데…죽은 줄 알았죠. 정말 간절히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초심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더라고요 기도를 마치자 동생이 물을 토해내고 깨어났습니다. 그 날의 감사함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국내 유일한 한국기독교 장지의전사업단 ‘한맘’의 조성태 대표의 실제 이야기다. 예수를 잘 몰랐던어린 아이는 동생이 죽을 수도 있단두려움에 동생을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것. 그때 받은 감동이컸던조 대표는 이후중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고등부 3년 내내 학생회장을 맡을 정도로 그의 10대는 성령으로 뜨거웠다. 24살 아파트 시공사업을 시작으로 손대는 사업마다 높은 수익을 냈다.조 대표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또래 친구들은 유치하게 느껴졌다. 친구는 멀리하고 오직 사업에만 전념했다. 그러자 인생의 주인이 서서히 돈으로 바뀌었다. 조성태 대표는 스스로 성공한 삶을 살아간다는 도취감에 오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언제부터 느껴지는 공허함을 견딜 수 없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 연이은 사업 실패로 가진 것을 모두 잃게 되자 조 대표는 세상 앞에 고개 숙일 수 밖에 없었고 잊고 지냈던 하나님께 엎드리게 됐다. ▲한맘의 수목장 사진.ⓒ데일리굿뉴스 돈의 노예가 아닌 예수 증거하는 삶으로 개척 후 자립하지 못한 채 문을 닫는 교회들을 많이 봤던 조 대표는 이들을 후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또한 크리스천 중에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과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자 노력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한국 장례문화였다. 가족이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나서 경황 없이 장례를 준비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상중에는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고 잘못된 장지선택으로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유족들이 지불하는 비용이 음지로 사라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조 대표는 크리스천의 마인드로장례의전사업을 계획했다. 조 대표는 “현재 수목장 분양 중개 등은 제도권이 아니다. 법적으로 정해진 수수료가 없기 때문에 유가족들은 업체가 달라는 대로 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그 알선 수수료의 거품을 빼고 투명하고 정직하게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존 업계의 폐쇄적이고 투명하지 못한 부분을 양지로 꺼낼 것이라는 포부다. 음지로 사라지던 수수료를 유족을 위해 사용하고 돌려주겠다는 계획이다. 또 미자립 개척교회 선교후원과 식자재를 서비스 이용자의 이름으로지원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크리스천을 적극 채용할 예정이다. 조 대표는 ”하나님이 도약할 순간을 주신다고 믿고 나아가는 중이다. 내가 먼저 주님을 따라 살려고 마음 먹고 실천하는 믿음이 필요하다”며 “주님의 반석 위에 바로 서고 기독교 기업답게 성장해 하나님께 인정 받는 회사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보라 기자2019-11-03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생명을 귀히 여기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신장을 기증한 부부 소식이 전해져 훈훈함을 안기고 있다. 올해 첫 '부부신장기증인'이 된 구신용(52, 인애교회) 목사와 홍선희(53) 사모가 그 주인공이다. 부부의 생명 나눔은 2006년 홍 사모의 신장 이식으로 먼저 시작됐다. 목사의 가장 큰 영광은 "성도를 위한 희생" "신학교 선배 목사님인데, 만성신부전으로 투병 중이었어요. 그때 신장 투석이 얼마나 힘든 건지 처음 알게 됐어요. 도울 방법을 알아보니 신장 기증밖에 없더라고요. 당연히 기증하겠다고 나섰지요. 그런데 저와는 혈액형이 안 맞아 이식이 어렵고, 제 아내와 혈액형이 일치하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아내에게 기증하라고 이야기했죠." 부부는 일심동체였다. 남편의 제안에 놀랄 법도 한데, 홍 사모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신장 하나를 기증했다. 홍 사모는 "저와는 신학교 동기였는데 굉장히 신실하고 좋은 사람이었다"며 "오래 목회하면 선한 영향력을 끼칠 것 같아 기증해도 아깝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홍 사모의 기증에 감동한 구 목사는 대신 사후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진행했다. 또 지금까지 헌혈 100회 이상을 하는 등 생명 나눔에 앞장섰다. 지난 9월엔 구 목사의 신장 기증이 이어졌다. 구 목사는 "13년 전 이미 내 신장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다가 2년 전 새벽기도 때 신장을 주라는 마음을 주셨고 바로 알아보게 됐다"고 밝혔다. 그렇게 직접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던 구 목사는 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생면부지인 60대 만성신부전 환자에게 신장을 이식할 수 있었다. "그분이 저를 보고 싶다고 하셨더라고요. 그래서 병실 앞에서 한 2분 정도 만났어요. 사실 누군가에게 줘야겠다는 마음뿐이었기 때문에 내 할 일만 했다고 생각했지, 다른 감흥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분을 만나 안아드리는데 제 신장을 받아줘서 잘 쓰실 것을 생각하니 제 입에서 먼저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목사의 가장 큰 영광은 성도를 위한 희생이라고 강조하는 구 목사. 부부는 "내가 조금 불편해서 누군가에게 더 큰 것을 줄 수 있다면, 그 불편함은 굉장히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기기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제고되도록 앞으로 홍보나 국가적인 제도가 잘 뒷받침됐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올해 첫 '부부신장기증인' 구신용(인천 인애교회) 목사와 홍선희 사모ⓒ데일리굿뉴스

박재현 기자2019-10-24

요즘 젊은이도 드라마보단 웹툰을 즐겨 본다고 할 정도로 SNS가 보편화되면서 웹툰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이다. 이런 가운데 성경적인 메시지를 웹툰으로 풀어내 인기를 끌고 있는 작가가 있다. SNS 안에도 하나님이 계신다고 고백하는 웹툰 '초롱이와 하나님' 김초롱 작가를 직접 만나봤다. 한 영혼 살리는 도구 '웹툰' 김초롱 작가는 목회자의 딸로 자랐지만 대학시절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했을 만큼 힘든 시기를 보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다 보니 자신의 문제를 터놓고 나눌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밝고 명랑한 성격이지만 하루에도 수 십 번 삶과 죽음을 고민했다는 김 작가는 태국에서 만난 한 선교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 변화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후 그림을 통해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게 된 것이다. 김 작가는 "기독교 청년으로서 겪는 어려움과 아픔들이 많다"면서 "그런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제가 좋아하고 저에게 주어진 달란트인 글과 그림을 통해 공감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다 보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1년부터 연재된 웹툰 '초롱이와 하나님'은 최근 2만 팔로우와 500만 뷰 이상을 기록할 만큼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일상적인 신앙 이야기를 솔직하고 간결하게 표현했을 뿐 아니라 김 작가의 개성이 묻어나는 귀여운 캐릭터도 인기요인 중 하나이다. 김 작가는 또 매일 묵상한 말씀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드로잉 클래스'도 운영하는 한편 초롱이 캐릭터를 넣어 만든 메모지와 휴대촌 용품 등 직접 만든 '굿즈'를 통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고 있다. 그림을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드로잉 클래스는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매달 열리고 있으며, 그림에 관심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굿즈도 하나님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김 작가는 "SNS 안에도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고 있으며, 굿즈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충분히 알릴 수 있다 생각한다"며 "이곳에 하나님이 개입하심으로 회복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 작가의 소망처럼 웹툰을 통해 우울증이 회복되고, 공황장애로 고통 받는 청소년이 이제는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소식을 전해 오기도 했다. 한 50대 아주머니는 웹툰을 통해 하나님을 다시 깊게 만나게 됐다고 고백했다. 웹툰을 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회복되는 모습들을 전해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는 김 작가는 앞으로 더 많은 이들과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자 한다. 김 작가는 "웹툰이 한 영혼을 살릴 수 있는 열매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귀하다"며 "이 땅에서 하나님만 믿고 살아도 기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 과정 가운데 웹툰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 영광을 모두 하나님께 돌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조유현 기자2019-10-23

“원주민과 완전히 사랑에 빠졌습니다. 이들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을 지경이에요. 가끔 한국에 오면 상사병에 걸린 것처럼 원주민들이 늘 걱정되고 보고 싶습니다.” 제19회 언더우드 선교상을 수상한 박철현 선교사는 20년간 말레이시아 정글 원주민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들과 사랑에 빠졌다. 원주민보다 더 원주민스러운 박 선교사의 사랑과 섬김이 말레이시아 정글을 복음의 밭으로 일구고 있다. 말레이시아 원주민들과 동고동락한 20년 이젠 한국보다 말레이시아 정글이 더 편하다는 박철현 선교사는 ‘제19회 언더우드 선교상’ 수상을 위해 잠시 한국에 들렀다. ‘언더우드 선교상’은 언더우드 선교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오지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선교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2001년 제정됐다. 이번 수상의 주인공이 된 박철현 선교사는 1999년부터 20년 동안 말레이시아 정글에 사는 원주민을 대상으로 교회개척, 학교운영, 의료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한국교회 목사로 사명을 감당하다 어느 날 TV 다큐멘터리에서 병든 딸을 제물로 바치는 말레이시아 원주민들의 정령신앙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 때 무작정 말레이시아 정글로 떠난 그의 선교 여정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말레이시아 정글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두마이지역에 112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신학교를 설립해 복음을 전하며 현지 제자도 양성하고 있다. 또한, 글을 모르는 원주민들을 위해 학교를 세워 사회진출을 돕고 있으며 의약품을 구입해 원주민 진료에도 참여하고 있다. 원주민들에게 박 선교사는 ‘파파 오랑후탄’으로 불린다. ‘파파’는 아버지, ‘오랑’은 사람, ‘후탄’은 정글 숲으로, ‘정글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박철현 선교사는 말레이시아 정글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마을을 찾아다니며 교회를 개척하고, 학교를 세우며복음전파에 힘쓰고 있다.ⓒ데일리굿뉴스 "새로운 원주민 마을을 찾았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원주민들의 가족, 친구, 때로는 보호자로서 왕성한 복음 전파 사역을 하기까지 박 선교사에게는 웃지 못할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말라리아와 독충에 시달리면서 이어온 사역 중에 몸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고 느껴 한국 병원을 찾은 어느 날, 박 선교사는 대장암 말기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다. 의사는 생존할 수 있는 의학적 가망성이 5%밖에 안 된다고 통보했다.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말레이시아 원주민들에게 다시 돌아가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돌아갔을 때 그곳에 원주민들이 정말 뜨겁게 기도해줬고 5년 뒤에 완치됐습니다.” 원주민들의 살해 위협 속에 숨어 지내야 했던 시간도 있었다. 식인종의 후예 ‘까심’이라는 원주민이 박 선교사의 목숨을 위협하며 5년을 쫓아다녔다. 하지만 그런 까심이 폐병으로 쓰러졌을 때 박 선교사가 찾아가 기도해줬고 낫게 됐다. 당시 폐병에 걸리면 대부분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기도로 낫게 되자 까심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됐다. 새로운 원주민 마을을 발견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박 선교사는 앞으로도 원주민 마을을 찾아 다니며 교회를 개척하고 학교를 세우는 일을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복음을 접하는 원주민들은 마약을 끊고 스스로 마을에 교회를 세워 예배를 드리고 다른 마을에 직접 찾아가 복음을 전해요. 힘든 오지에서 사역하는 만큼 주시는 보람도 큰 것 같아요. 원주민 선교가 정말 재밌고 생동감 넘쳐서 행복하게 하고 있답니다.”

조유현 기자2019-10-22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전 분야에는 신실하고 유능한 크리스천들이 많다. 그들의 선한 영향력은 복음의 향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선교사역이 된다. 본보는 ‘리더스미션’이라는 타이틀 아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주위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심어주는 모범 크리스천 CEO들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성구 제작으로 시작한 평신도 선교사역이 신앙의 불모지인 중국 땅으로까지 이어졌다. 중국 땅에서 교육을 통해 복음이 흘러가도록 학원선교를 한 지 20년이 되어 가는 김성조 대표.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도전 중인 그는 늘 선교에 목마르다. 중국에서 펼치는 학원선교 비전의 길 김 대표는 4대째 믿음의 집안에서 선교사의 꿈을 갖고 자라왔다.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형편상 학교를 끝마치지 못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평신도 선교사가 돼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문서 선교를 위해 ‘에벤에셀’을 설립했다. ‘에벤에셀’은 지금껏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고백으로 지은 이름이다. 사업을 시작하고도 끊임없이 선교의 길을 모색하며 기도하던 김 대표는 중국 학원 선교에 대한 비전을 받았고, 18년 전에 중국 복건성에 초 ·중·고등학교 국제부를 설립했다. 국제부 중국 학생들을 상호 협약 맺은 한국 대학에 유학시켜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고, 이들을 통해 중국을 복음화시키려는 포부로 시작한 것이다. 그의 사업을 눈여겨보던 중국 교육부가 귀주성 교육청과 MOU를 주선해 중국 국가장학금을 지원해주기 시작했다. 이후 국제부 학생들을 귀주대학과 민족대학의 대학생, 대학원생으로 진학시킬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 사역을 조금 더 확장시키기 위해 동역자들과 국제문화협력재단을 설립하면서 석가장에 연방국제학교 국제부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중국은 갈수록 복음의 정착이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복음의 씨앗을 뿌려야 하는 우리의 사명은 그것이 비록 순교일지라도 멈춰선 안 된다”고 말한다. “험난한 세상 속에 내가 너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 김 대표는 지금의 선교사역을 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특히 그는 사업이 한 순간의 부도로 어려움을 겪던 당시를 가장 긴 광야의 시기로 꼽는다. 39세에 사업 부도로 인해 심한 충격과 스트레스로 피를 쏟기 시작했다. 지혈이 되지 않았고 출혈 원인조차 찾지 못했다. 생명이 위험한 순간에 그는 모든 주사를 제거하고 눈 내리는 한 겨울날에 산으로 들어가 기도했다. “살리시든지 죽이시든지 하나님께서 정해주십쇼. 이 병은 주님만이 치료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루 밤을 보내고 집에 돌아왔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영영 멈추지 않을 것 같던 피가 멈춘 것이다. 김 대표는 이 때 하나님께로부터 “세상이 아무리 험해도 내가 너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간증한다. 이후 김 대표는 약속의 말씀인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장 16절)를 비전으로 품고 모든 사업을 펼쳐나가고 있다. 사람들이 그의 사업을 보면서 하나님을 떠올릴 수 있도록,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릴 수 있게, 이웃을 살리는 기업이 되도록 하는 것이 그의 비전이다. 그는 더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앞으로 중국 오지에 직업 전문학교를 세워서 직업 훈련과 복음 훈련을 받은 중국인들이 각자의 일터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고픈 또 하나의 비전을 품고 있다. “회사 자체가 교회가 되고 일이 예배가 되는 기업. 회사 어디서든 예수님의 향기와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기업이 되도록 하고 싶습니다.”

김신규 기자2019-10-20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돼 시신 미수습자 9명을 포함해 304명이 사망했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나라의 안전불감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의 하나이다. 이처럼 잊을만하면 터지는 안전불감증과 그에 따른 사후약방문 처방이 반복되고 있는 가운데 안전 대한민국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사단법인 지구촌안전연맹 채수창 대표다. 그는 소위 잘나가는 경찰공무원 출신이다. 경찰대 1기생인 그는 일신상의 편안함만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의 경찰대 동기 중에는 현역국회의원도 있다. 그만큼 채 대표도 줄만 잘 서면 얼마든지 사회의 고위층으로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 2010년 당시 경찰청장의 실적주의를 정면 비판했다. 이 중 평가시스템을 통해 일선경찰을 압박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그 때문에 경찰복을 벗어야 했다. 내부소통보다 무조건 상명하복의 경찰조직문화를 비판하다 해임된 그는 한동안 식당종업원, 의류가게 등을 운영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근 복직소송을 통해 승소하고 전남 화순경찰서장으로 복직했다. “2010년 경찰의 실적주의를 반대하며 파면되었다가 행정소송에서 승소한 후 복직을 앞두고 있으면서, 다시 경찰이 되면 어떤 경찰이 될까 한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우리의 미래세대인 ‘청소년 안전을 위한 경찰이 되자’라는 것이었죠. 우리 주변에는 청소년들을 위협하는 현장들이 너무 많고 또 우리 국민들의 안전불감증도 무시할 수 없었어요. 그것이 경찰로 은퇴한 이후 지금의 안전전문가로 봉사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채수창 대표의 지구촌안전연맹이 보행로 교통안전 교육을 시행하는 현장 모습 ⓒ데일리굿뉴스 그는 2015년 퇴직 후 지구촌 청소년연맹, 지구촌안전연맹을 설립하며 우리 주변의 안전불감증 해소와 청소년들의 안전한 생활을 돕는 일을 해오고 있다. 특히 경찰 공무원이었던 경험을 살려 위험지역에 대한 순찰 봉사와 아동청소년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안전전문가 양성을 위한 ‘아청(아동·청소년)안전지도사’ 자격시험을 신설해 안전교육 전문가를 양성하는데 주력해오고 있다. 아청안전지도사자격시험은 지난 2015년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그동안 배출한 안전지도사만도 2,000명이 넘었다. 소방관, 간호사, 변호사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안전지도사 시험을 치러 자격증을 얻었다. “안전지도사 자격시험을 치르도록 한 것은 우리 사회에 안전지도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많지만, 체계적인 교육이 없는 비전문가로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지요. 아청안전지도사 시험 이후 교육받고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확실히 다르다는 평가를 주변에서 많이 듣고 있습니다.” 현재 지구촌안전연맹과 아청지도사들은 매달 위험지역 순찰, 학교주변 교통안전 지도와 교육, 장애인 통행로 교통안전 점검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전동휠체어 교통사고가 장애인의 안전에 위협이 되는 만큼 이를 위한 대안 마련에도 고심하고 있다. 경찰 재직 30년 경험을 통해 대한민국의 안전사회 정착에 앞장서는 채 대표는 “학교주변 보행로(스쿨존)는 아이들이 최근 핸드폰에 집중하면서 사고 위험이 특히 많아져서 주의가 필요하다”면서 어른들의 주의와 함께 “운전자의 주의력을 높이기 위해 CC-TV카메라 또는 야간에도 손쉽게 식별될 수 있는 LED 조명장치 등을 보강도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최로이 기자2019-10-16

중남미에 있는 온두라스에서 10여 년 동안 태권도를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다가 최근에는 문서 선교에 열심인 선교사가 있다. <마스칼 꽃 향기>를 포함한 3,000년 전 언약궤의 비밀 시리즈와 월남 참전 내용을 기록한 <불타는 사이공>의 저자 정권수 목사다. 정 목사에게 태권도는 떼려야 뗄 수 없다. 1968년에는 육군 무도부에 들어가 월남군 제18사단의 태권도 교관을 지냈다. 이후 미국 등에서 수십 년 태권도를 가르치다가 2006년 사명을 갖고 온두라스에 들어가 태권도 선교를 펼쳤다. 온두라스의 원시 부족과 함께 생활하며 태권도와 영어를 가르치고 기본적인 의약품을 보급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다. 그러던 중 2011년 우연한 기회에 온두라스 육군사관학교 태권도 교관으로 발탁돼 2016년까지 활동했다. 10년간의 선교 생활을 마친 뒤 그는 선교에 대한 신념을 담은 책 <선교사 아무나 하나>를 발간하며 문서 선교에 힘쓰고 있다. 특히 정 목사가 에티오피아에 직접 방문한 뒤 집필한 <솔로몬 왕을 찾아간 스바여왕> 1·2권과 <마스칼 꽃 향기> 등은 3000년 전 미스터리로 남은 언약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정 목사의 책들은 미국에서만 발간돼 아직 한국 서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정 목사는 "월남전 참전용사들에게 힘이 되고, 한국 성도들과 사역자들의 신학공부에도 도움을 주고 싶다"며 "한국에서도 책을 발간할 기회가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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