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경 기자2017-10-08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성경 말씀에 따라 무작정 고아원에 가서 봉사를 하다가 미혼모들을 알게 된 이효천 선교사. 미성년자인 미혼모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이 선교사를 비롯해 중학교 친구 다섯 명이 한 마음으로 뜻을 모았고, 그렇게 비영리법인 한부모가정지원센터 위드맘이 시작됐다. 어느날, 공원 화장실에서 아기 셋과 함께 살고 있는 엄마가 있다며 위드맘으로 연락이 왔다. 이효천 선교사가 즉시 멤버들과 찾아가보니 정말로 한 어린 엄마가 공원 화장실에 아기들 옷을 펼쳐놓고 지내고 있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두 아이를 낳고 셋째를 임신한 이 여성과 남편 앞에 어릴 때 소식이 끊겼던 아버지가 간암말기 환자가 돼 나타났다고 해요. 이런 현실이 부담스러웠는지 셋째의 출산 직후 남편은 집안에 있는 돈을 다 들고 도망을 갔고요. 아버지 병간호도 하면서 아이들도 건사해야 했기에 이 어린 엄마는 병원 앞 공원 화장실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거에요." 위드맘의 도움으로 그녀는 아버지의 장례까지 무사히 치렀고, 이효천 선교사의 전도로 세 아이와 함께 교회에 잘 다니고 있다. 이 선교사는 '위드맘'을 통해 24세 미만의 청소년미혼모들에게 긴급거주지를 제공하고 자립을 돕고 있다. 비영리법인으로서 특별히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미혼모들 곁에 함께 있는 것이다. "저희가 돕는 미혼모들은 주로 혼인신고가 된 상태로 미혼모가 된 경우, 가령 부양자 몇 명 이상이면 군 면제가 되니까 남자가 일부러 혼인신고를 하고 아이들을 낳은 뒤 도망간 경우 등이에요. 이런 경우 국가가 도움을 주기 힘들기 때문에 저희가 이혼재판, 이혼무효소송과 같은 법적인 도움을 주고 미혼모들이 찜질방, 모텔을 전전하지 않도록 거주지 마련과 자립을 돕고 있어요." 지난해에만 위드맘에서 후원물품을 제공받은 미혼모들이 700여 명이고 현재 정기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미혼모들은 약 300명 정도다. 미혼모들은 병원비, 분유값 등 돈이 들어갈 데가 많다. 하지만 미성년자인데다가 아기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조차 구하기 어렵다. 이에 위드맘이 직접 나서게 됐다. "미혼모들이 그래도 손쉽게 딸 수 있는 자격증이 바리스타 자격증이에요. 그래서 위드맘에서 '프롬맘'이라는 카페를 열어 미혼모들이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프롬맘 카페에서 일하는 미혼모들의 시급은 1만원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기초생활수급비가 줄어들게 되는데, 그렇다해도 일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심어주려고 내린 위드맘의 결단이다. 그에 반해 프롬맘 카페에서 상주하며 일하는 이 선교사 부부는 무급이다. "들어오는 후원금과 수익은 100% 미혼모들을 위해 사용하고 저희들은 자비량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강의 들어오는 것이 유일한 제 수입원이죠." 10년 가까이 미혼모들을 돌보다 보니 열매도 맺히고 있다. 이른 나이에 엄마가 돼 학교를 중퇴한 미혼모들이 중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자립에 성공한 미혼모들이 늘면서 자발적으로 나서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이들도 많아졌다고. 이 선교사는 "자립에 성공한 미혼모들이 자신들의 재정을 모아 베이비박스 후원, 위안부 할머니들 돕기 등을 매달 하고 있다"며 "손가락질 당하던 미혼모들이 다른 이웃들을 살리고 있는 이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미혼모들을 위해 기도하다 보면 '내가 사랑하는 딸들이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진다는 이 선교사 부부. 이 선교사는 "사람들이 미혼모들을 비행청소년이라는 따가운 시선이 아닌 '생명윤리를 지킨 용감하고 씩씩한 엄마'로 바라봐줬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홍의현 기자2017-10-17

지난 2015년 교단 분열을 겪었던 예장대신 수호 측. 건강한 중견 교단으로 이름을 떨쳤던 대신 수호 측 교단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내실을 다지는 작업에 한창이다. 지난 9월 새롭게 취임한 김동성 총회장은 교회 개척을 강조하며 공교회성 회복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김동성 신임 총회장을 직접 만나 한해 사역 계획을 들어봤다. '통합결의무효소송'의 건은 항소심에 집중하기로 작지만 강한 교단을 기치로 내걸고 한 해를 달려왔던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수호)교단. 지난 9월 취임한 김동성 총회장은 어려움을 겪었던 교단의 현실을 직시하고 마음을 모은 결과 지금은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성 총회장은 "대신-백석 통합과 관련해 우리 교단이 고난을 당했지만, 총회 산하 교회와 목회자들이 협력하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며 "여러가지 현안의 문제는 있지만, 급하게 움직이지 않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겠다"고 전했다. 김 총회장은 총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교회 개척 운동'을 다시 한 번 확산시키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교회 개척이 뜸한 오늘날 한국교회 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해 공교회성을 회복하겠다는 생각이다. 김 총회장은 "우리 교단 설립자인 김치선 목사님은 '이만 팔천 동네에 우물을 파라'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복음사역에 앞장섰다"며 "물론 예전과는 다르게 목회 현장이 많이 힘들어졌지만, 노회별로 진행되는 여러 지원사업을 확장시켜 나간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교회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교단 명칭' 사용과 '통합결의무효소송'에 대해서는 내달 10일 처음 열리는 서울고등법원 재판 결과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김 총회장은 "이번 재판의 쟁점은 정족수 문제인 만큼, 1심 승소 판결이 뒤집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드러내며 "항소심에서도 이길 수 있도록 교단 내 법률팀과 철저히 준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동성 총회장은 한 때 형제처럼 지냈던 교단 이탈자(대신 통합 측)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우리가 이탈자들을 받아주지 않기 위해 무척 애를 쓴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우리는 모든 문을 열어놓고 조건 없이 환영할 것이다. 정치적 문제에 대해 잘 모르고 가신 분들이 많은 데 꼭 돌아와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끝으로 김동성 총회장은 "대신교단이 한국교회 자생교단이자 건강한 중견교단으로 활약했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무엇보다 교단의 성장과 더불어 한국교회의 공교회성을 회복하는 작업에 주력하겠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교회 선언문'과 '목회자 윤리강령'을 제작·배포해 지역사회에서 사랑 받고 존경 받는 목회자와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김 총회장은 또 "건강한 교단과의 협력과 교류를 적극 추진하면서 개혁주의 교회의 신앙의 일치 운동을 앞장서 전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은정 기자2017-08-25

한국전쟁 당시 '내 잔이 넘치나이다'란 마지막 고백을 남기고 포로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한 청년 맹의순. 최근 제자들이 기증한 육필일기가 책으로 출간되면서 맹의순의 삶이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죽기까지 복음전파와 이웃사랑을 멈추지 않았던 맹의순의 삶을 되돌아보자. 억울하게 갇혔지만 '복음전파 위해' 석방 거부 부유한 장로의 아들로 태어난 맹의순. 조선신학교를 다니며 남대문교회 중등부 교사로 섬기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겨우 피난길에 올랐지만, 그는 미군의 오해로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에 억류됐다. 억울할 법도 하지만 맹의순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곳 만큼 전도하기 좋은 곳은 없다'고 말하며 포로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수용소 당국은 포로들에게 종교활동의 자유를 보장했고, 맹의순은 당국의 협조를 받아 포로들에게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이 바로 포로수용소의 '광야교회'가 세워지게 된 시초가 됐다. 맹의순은 늘 낮은 자세로 전도활동을 펼쳤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낮 예배와 성경공부 등을 실시하며 밤에는 투병 중인 중공군 포로들을 간호했다. 맹의순은 영어 통역이 가능해 미국인 의사들이 환자를 진찰할 때 그 옆에서 통역을 담당했다. 이를 기회로 삼아, 매일 새벽 1~2시가 되면 병동을 찾아 포로들의 얼굴과 손을 닦아주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찬양을 불러주곤 했다. 이런 가운데 석방될 기회가 찾아왔지만, 그는 자신의 사명을 수용소에서 끝까지 감당하겠다며 석방마저 거부했다. 하지만 과로한 피로상태와 부족한 영양실조가 계속 그를 힘들게 했다. 밤낮없이 포로들의 곁을 지켰던 맹의순은 결국 석방을 나흘 앞둔 채 죽음을 맞이했다. 맹의순의 모습을 봐 온 중공군 포로들은 참된 천사를 보았다고 고백한다. "선생은 하늘에서 보낸 천사였습니다. 마지막 환자를 다 씻기고 일어난 선생은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시편 23편을 우리말로 더듬더듬 읽어주셨습니다. 다 봉독하신 뒤 높은 곳을 바라보시며 다시 한 번 말씀하셨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당시 중공군 포로 환자가 맹의순 죽음을 추모하며 쓴 글- 맹의순이 마지막으로 고백했던 '내 잔이 넘치나이다'는 결국 그의 마지막 유언이 되고 말았다. 남대문교회 손윤탁 목사는 그의 고백에, "병마와 싸우면서도 천국을 향한 맹의순의 열정, 그리고 죽기 전까지 '주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은 삶과 신앙을 일치하고자 치열하게 노력했던 그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제자들의 도움으로 <십자가의 길> 출간 27살이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맹의순에 대한 자료는 많이 ▲<십자가의 길>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맹의순과 함께 포로수용소에서 교회를 섬기던이원식 목사(서울 국일교회 원로)가 남대문교회 역사위원회에 맹의순의 육필일기 원본을 기증하며 빛을 보게 됐다. 영어와 일본어, 한문이 섞인 원고를 남대문교회 손호인 목사가 한글로 번역하고 신재의 원로장로가 일기와 교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맹의순의 삶을 되살려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육필일기를 묶은 <십자가의 길>을 펴냈다. 맹의순의 삶은 비록 짧았지만, 그의 신앙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교회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말씀과 삶의 일치를 중요시했던 루터의 종교개혁. 이 가치를 맹의순 선생은 죽기 직전까지 실천했던 인물입니다. 수용소에서 석방될 기회마저 버리고 전도에 힘썼던 그의 삶이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제사장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홍의현 기자2017-09-27

한국교회 주요 장로교단 중 가장 먼저 정기총회를 치른 예장대신 교단. 올해 대신교단은 '구 대신과 구 백석'의 교단 통합 이후 처음으로 구 대신교단 출신 목회자를 총회장으로 추대해 눈길을 끌었다. 새롭게 취임한 유충국 신임 총회장을 만나 주요 쟁점에 대한 입장과 향후 사역 계획을 들어봤다. '대신' 명칭 문제…항소심 결과에 관심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정기총회를 마친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신임 총회장 유충국 목사, 이하 대신)교단. 새롭게 취임한 유충국 신임 총회장은 구 대신 출신 총회장으로서 소속된 교회와 목회자들의 화합을 첫 번째 목표 사역으로 꼽았다. 구 백석 출신 총회장이었던 장종현 목사와 이종승 목사가 재임기간 내내 구 대신 측 목회자들의 입장을 대변해준 만큼, 이번에는 반대로 구 백석 측 목회자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겠다는 방침이다. 유충국 총회장은 "우리는 같은 신학의 뿌리를 갖고 있는 한 가족"이라며 "한해 동안 아름답게 교단을 섬겨 행복한 목회를 할 수 있는 교단을 만들고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는 명문 교단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신의 가장 큰 쟁점은 '대신'이라는 교단의 명칭을 사용하는 문제다. 현재 대신은 수호 측에서 제기한 '명칭 관련 소송 항소심' 결과를 지켜보고 향후 추이에 따라 입장을 정리하기로 총회 결의를 마쳤다. 이번 총회에서는 구 대신 출신 목회자들과 구 백석 출신 목회자들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기도 했지만, 증경총회장단의 권면으로 일단락 된 바 있다. 유충국 총회장은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지금 대신 명칭을 포기한다면 여러가지 파생되는 문제점들이 많다"며 "다행히 항소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신 명칭을 고수하기로 한 만큼, 최대한 잡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소통하며 일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은 이번 총회에서 새롭게 출범한 연합기관 '한국기독교연합'에 가입하기로 결의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보수 연합기관이 하나돼 사회적 현안에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또 내년부터 시행되는 종교인 과세 문제에 대해서는 소속 교회와 목회자의 '자발적 납세'를 기본으로 결의했지만, 앞으로 세무당국에 구체적인 문제제기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특히 교계 안팎의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성경에서 분명히 금하는 죄악이면서도 동성애 당사자는 물론 일반인들과 국가 기반을 흔드는 동성애를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퀴어신학을 주창하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임보라 목사에 대해서 대신은 '1년간 연구'한 뒤 다음번 총회에서 보고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유충국 총회장은 이 문제에 대해 "동성애는 그들 본인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막아야 한다"며 "무엇보다 퀴어신학과 임보라 목사는 일정 부분 이단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연구하기로 한 이번 1년간은 교단과 소속 목회자들이 교류하지 못하도록 결의했다"고 강조했다. 대신은 내부적으로 새 총회회관 입주를 앞두고 있다. 이를 통해 급격한 성장을 이룬 교단이 외적으로 뭉쳐 하나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와 함께 8천 여 교회로 성장한 교단 위상에 걸맞은 '연금제도'를 마련해 소속 교회들이 오로지 복음 전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유충국 총회장은 "총회회관은 오는 11월 입주를 눈앞에 두고 있고, 연금제도 마련은 본인(유충국 총회장)의 교단활동 판공비를 내 놓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 또 교단 소속 대형교회들이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를 통해 명실상부 한국교회 대표적 장로교단이 되길 바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총회장직을 수행하겠다"고 전했다.

한혜인 기자2017-11-15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웹툰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기독교계에서도 복음의 메시지를 웹툰에 담아내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 위성동 대표가 설립한 '디아툰'도 그 중 하나다. 웹툰을 통해 사람들에게 '공의와 평화, 기쁨'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위 대표를 직접 만났다. "웹툰 통해 독자들이 하나님 알아가길" '디아툰'은 봉사의 뜻을 가진 헬라어 '디아코니아(diaconia)'와 '웹툰(webtoon)'의 합성어로 만들어졌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신앙적 토대 위에 복음을 전하겠다는 취지로 설립된 디아툰은 작년 7월 기독교 만화서비스를 시작했다. 위 대표는 고등학교 때부터 기독교 만화 작가를 비전으로 품었다. 그는 "내게 주어진 '그림'이란 달란트로 하나님을 전하겠다고 다짐했다"면서 "기독교문화학과 신학을 공부한 후, 기독교문화 사역에 대한 마음을 품고 디아툰을 설립하게 됐다"고 전했다. 위성동 대표를 비롯한 10여 명의 디아툰 작가는 기독교 콘텐츠를 통해 종교, 세대, 인종에 제한을 두지 않고 복음을 전하겠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에 예수님의 생애, 선교사의 삶, 영어로 배우는 성경 등 다양한 콘텐츠를 담은 웹툰 연재에 힘쓰고 있다. 웹툰 <예수그리스도>는 요한복음을 토대로 예수님의 생애를 담았으며, <권력과 신앙>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핍박 받았던 기독교인의 삶을 담았다. <퍼가는 만화>는 선교사의 삶을 캐리커처를 통해 묘사했다. 생활에서 느낀 예수님을 전하는 <동행>, <주향>, 영어 어휘 웹툰 <베스트 보카>, 만화로 이해하는 신앙원리 <SOS 보람이를 구출하라!>, 성경 구절을 담은 <전하리 묵상>, <뻠쌤의 묵상방>도 연재 중이다. 모험 만화 <라하트하헤렙>, <진흙이의 모험>을 비롯해 작년 디아툰 공모전에서 입상한 <오예스>, <천로역정 일지>, <조금은 두근> 등도 만날 수 있다. 그는 "웹툰을 통해 크게 공의, 평화, 기쁨 이 세 가지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비록 지금은 미미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한다"며, "단순히 만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영화로 문화 콘텐츠 사역을 확장해나가고 싶다"고 전했다. 위 대표는 "문화 사역은 그에게 준 하나님의 사명이자,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일이기에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자들에게 만화 잘 봤다는 연락을 받을 때 가장 기쁩니다. 중국에서도 기독교 만화 콘텐츠에 대해 묻는 연락이 오기도 했습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었기 때문에 사역의 특성상 재정의 문제도 있을 수 있고, 콘텐츠의 다양성도 고민이 필요하지만 이 길이 하나님이 디아툰에 원하는 길이기에 묵묵히 걸어갈 것입니다." 디아툰은 내년 1월부터 해외서비스도 실시할 예정이다. 중국 파견 선교사와 협력해 중국어 웹툰을 준비하고 있으며, 한국기독만화선교회와 함께 일본 만화 전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번역을 통해 영어, 중국어, 일어 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뜻도 비췄다. 마지막으로 그는 "독자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전도하는 것이 디아툰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독자들이 복음에 대해 궁금해 했으면 좋겠다. 웹툰을 보고 독자가 살아가는 방향이나 목표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비전을 위해 한 걸음씩 내딛는 디아툰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한연희 기자2017-11-03

국민 90%가불교 라마교를 믿고, 5%는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 몽골. 그 어디에도 기독교가 뿌리내릴 자리가 없어보이는 이 곳에 복음의 씨앗이 기적적으로 심겨서 결실을 맺고 있다. 몽골의 교회들은 재정 자립이 어려워 늘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게 현실인데, 100% 몽골 현지 크리스천들의 헌금으로 건축하고 자립한 교회가 있어 희망이 되고 있는 것.목회자도 현지인이다. 몽골은 기독교 기반 약하지만 포기 않는다 안식년을 맞아 한국을 찾은 함팅토야교회(몽골 울란바토르) 잉케 목사는 조용하면서도 다부진 여성 목회자의 전형이었다. 몽골과 신앙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고 눈이 반짝였다. 잉케 목사 "몽골은 기독교적 신앙 기반이 매우 약하다"면서 "시대를 이끌어가야 할 남자들이 한참 나이에 승려가 되고, '작은 벌레조차 죽이면 자녀 세대에 해악이 따른다'는 가르침 때문에 혁명이나 변화를 두려워한다. 게다가 유목민 생활권이라 정착이 잘 안된다"고말했다. 또한 "그런 환경에서 순수하게 몽골 기독교인들의 힘으로 건축한 함팅토야교회는 척박한 환경에서 복음의 씨를 뿌리는 수많은 몽골의 교회들과 선교사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잉케 목사에 따르면 기독교 복음은 아시아에서 한국보다 몽골에 먼저 들어갔다. 하지만 유목 생활 때문에정착하지 못했고, 믿음이 들어가도 금방 시들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95%가 불교와 이슬람교도인 상황까지 감안한다면 선교적으로 매우 척박한 곳이 분명하다. 하지만 몽골에 희망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고. 잉케 목사는 "3박 4일 영성훈련 프로그램을 한국교회(예장 통합)에서 들여와 교인들을 훈련시키고 있다"면서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얄팍한 마음에 하나님의말씀이 깊이 들어가 진정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장로와 집사들도 훈련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지인들이 설립한 함팅토야교회는 선교사역의좋은 모델 잉케 목사는 "특히 지난해 2억원이 넘는 돈을 모아 교회를 건축했다"면서 "모두 교인들의 헌금으 ▲안식을 맞아 한국을 방문한 잉케목사를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데일리굿뉴스 로 이뤄진 일이었다. 출석 교인이 200여명 되는데 두 가정은 집을 팔고,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헌금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타 지역 목회자들에게도 물어봤는데, 몽골에서 교인들이 예배당을 스스로 지은 사례는 전무후무했다"면서 "그들도 함팅토야교회 자체에 많이 놀랐고 희망을 본것 같았다"고 말했다. 교회는 자체 경비를 헌금으로 충당할 만큼 재정자립이 됐다. 5년전 자립에 성공했고 해마다 교인이 늘어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금은 몽골 농어촌 미자립 교회와 아시아 선교지에 도움을 손길을 뻗고 있다. 잉케 목사는 "몽골에 성경의 말씀 뿌리가 깊게 내려지길 소망한다. 세대를 이어서 끊어지지 않고 복음의 줄기가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함팅토야교회의 몫"이라며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 청소년까지 십자가 복음을 전달하는 기회를 계속 만들어 갈 것이다. 몽골 사회에 축복의 통로가 되겠다"고 비전을 밝혔다. "한국의 몽골 노동자에게사랑과 복음 전해 달라" 잉케 목사는 1998년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로 들어왔다. 다니던 공장의 사장 부인이 그녀를 전도했고, 처음엔 '잘 보여야겠단 생각'으로 의무적으로 다녔다. 그러다가 기도와 성령의 힘을 체험하고 신앙인이 됐다. 2002년 몽골로 돌아갔고, 당시 함팅토야교회를 개척해 사역하던 한국의 정광윤 선교사(64)를 운명적으로 만났다. 통역을 돕던 잉케 목사를 정목사는 미래 목회자로 단박에 알아봤던 것이다. 정 목사는 함팅토야교회를 건강히 세우기 위해선 재정 자립과 함께 현지 목회자를 담임으로 세워야 한다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잉케 목사는, 정 목사의 도움으로 신학을 마쳤고 목회적 소양과 인성을 인정받아 함팅토야교회의 담임으로세워졌다. 잉케 목사는 "나와 같이 한국에 노동자로 나간 몽골인들이 많다"면서 "돈을 벌러 갔던 나라에서 복음 접하고 이렇게 조국으로 돌아와 섬기는 사역자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한국 기독교인의 사랑과 배려였다"고 말했다. 이어 "타지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그때에 복음을 먼저 접한 크리스천들이 따뜻하게 품어주고 인도해 줬으면 좋겠다. 그들이 결국 나처럼 몽골로 돌아와 복음의 씨앗을 심게 될 것이기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김준수 기자2017-09-28

최근 달걀과 생리대에서 인체에 해로운 화약성분을 사용한 것이 밝혀져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인체에 무해한 천연성분 제품들이 주목 받고 있다. 라이프온에서 생산하는 엑소덴 치약도 그 중 하나다. 건강한 제품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라이프온 이우승 회장을 만났다. "이윤보단 하나님 영광 위해 살고싶어" 20년 전, 잇몸 속 세균으로 인해 발병한 심장질환으로 일주일이 넘게 혼수상태에 빠졌던 라이프온 이우승 회장. 심장 이식 수술을 한 후에야 기적적으로 일어설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고 고백하는 이 회장은 치주질환이 전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겪고 난 후, 기능성 천연치약인 엑소덴 치약을 개발했다. 치아건강 예방을 위해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개발한 엑소덴 치약은 파라벤, 트리클로산, 합성계면활성제 등과 같은 화학성분을 첨가하지 않고 천연재료를 사용한 점이 특징이다. 국내에선 치과의사가 추천하는 치약으로 소문이 나 미국과 중국, 필리핀 등에 수출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조선대학교 치과병원, 대한예방치과학회 등과 협약을 맺어 제품의 기능 향상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엑소덴 치약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도와주셨죠. 양심적으로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경 속 인물들에게서 경영의 지혜를 찾는다는 이 회장은, 매일 잠언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제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감당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고객을 내 가족처럼 아끼고 사랑할 때라야 좋은 제품과 서비스가 나올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아침마다 솔로몬의 지혜와 다윗의 겸손함, 모세의 온유함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라이프온은 작은 회사지만, 나눔을 실천하는 일에도 앞장선다. 제3세계 지역으로 떠나는 의료봉사팀에게 정기적으로 라이프온 제품을 후원하고 있다. 또 서울의료봉사재단과 제휴를 맺고 저소득층의 구강건강 예방과 치주질환 수술을 지원 중이다. 이윤을 추구하기 보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라이프온 이우승 회장. 이 회장은 앞으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고 싶단 바람을 전했다. 이 회장은 "지금도 전세계 성인인구의 절반 정도가 치주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며 "라이프온은 잇몸질환 퇴치운동을 펼치는 가운데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일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정 기자2017-09-11

한 교회 지붕 아래, 두 개의 교회가 예배 드리는 곳이 있다. 바로 벧엘성서침례교회와 요한서울교회의 이야기. 서로 다른 교단, 다른 신학적 배경을 갖고 있지만 지난 주부터 한 예배당에서 오전, 오후로 나뉘어 두 개의 교회가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두 교회가 아름다운 동행을 시작하는 그 첫 걸음에, 직접 다녀왔다. "목사님 우리 교회로 오세요"…지역교회의 손길로 일어나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한 벧엘성서침례교회(담임 현상웅 목사)와 요한서울교회(담임 백상욱 목사)의 '동행'은, 요한서울교회 예배당 신축 고민으로부터시작됐다. 예배당 신축을 앞둔 요한서울교회는 신축공사가 진행될 약 1년여 기간 동안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릴 공간을 찾고 있었다. 인근 공립•사립 학교 강당은 물론 체육관까지 알아봤지만 모두 "종교기관에 대여해주기가 쉽지 않다"란 답변만 돌아왔다. 교회 건물은 다른 곳에 세우는 것도 고민 했지만, 백 목사는 몇 십년 동안 기도의 재단을 쌓은 교회터를 쉽게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이런 고민을 하던 때, 요한서울교회와 불과 500m도 안 되는 곳에 위치한 벧엘성서침례교회가 손을 내밀었다. 지역 목회자들과활동 중인 '좋은동네 만들기 이웃교회 연합회'에서 함께 사역하고 있는벧엘성서침례교회 현상웅 목사가, 이 사연을 듣고 선뜻 "목사님, 우리교회로 오세요"라고 말한 것. "예배 장소를 두고 여러 가지 방법을 구하던 중, 연합회에 소속된 목회자들에게 고민을 나눴어요.그랬더니 현상웅 목사가 흔쾌히 "우리교회로 오라"고 말해줬어요.본인들이 오전에 예배당을 사용하고, 오후에는 우리교회 성도들이 예배 드리라고 해준 거죠."(요한서울교회 백상욱 목사) "이 교회에 부임한 지 2년 정도 됐어요. 처음 교회에 왔을 때부터 지역을 섬기는 교회를 만들고 싶다란 마음을늘 품고 있었어요. 그래서 교회 예배당을 작은교회에 빌려주는 건 어떨까 고민하던 찰나, 요한서울교회의 어려움을 듣게 됐죠.요한서울교회의 고민이 저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풀어나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벧엘성서침례교회 현상웅 목사) 하지만 한 교회를 두 개의 교회가 함께 사용하기란 쉽지 않다. 목회자들끼리의 뜻이 합하더라도 성도들의 입장은 또 다르기 때문이다. "목사가 결정한다고 되는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평소 설교를 통해 지역사회와 어떻게 연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성도들과 많이 나눴기 때문에, 다행히 성도들도 한 번 동참해보겠다고 결심해줬어요.불편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지만, 서로 배려하는 모습을 통해 섬김의 정신을 배우는 통로가 될 것이라 기대해요."(현상웅 목사) "교회 공간을 우리가 오로지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성도들의 걱정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어요. 교회학교도 모두 운영할 수 없어 현재 유치부는 성도가 운영하는 태권도장에서 드려지고, 영아부는 없어졌죠. 하지만 성도들도 벧엘성서침례교회의 섬김에 감사하며 모든 불편을 서로 감안하고 예배드리기로 결정했어요."백상욱 목사) ▲벧엘성서침례교회와 요한서울교회가 아름다운 동행을 시작한다.ⓒ데일리굿뉴스 "1년 여 동안의 아름다운 동행, 기대돼요" 사실 교회 성도는 요한서울교회가 더 많은 상황. 때문에 벧엘성서침례교회 예배당이 요한서울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수용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요한서울교회 성도들은 예배당에 간이 의자를 설치하는 등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다. 요한서울교회 김신애 집사는 "벧엘성서침례교회 성도들이 예배당을 개방해주고 우리 교인들에게 마음을 열어줘 감사하다"며 "이 기간이 얼마나 될 지 모르겠지만 지역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벧엘성서침례교회 오한나 청년은 “목사님께서 ‘그리스도인은 더불어살아가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더불어 사는삶을 배울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요한서울교회는 벧엘성서침례교회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벧엘성서침례교회 1층 교육관을 리모델링 해주는 것은 물론, 공과금도 함께 부담하기로 했다. 요한서울교회가 진행 중이던 대안학교 프로그램 '요한기독학교'는 벧엘성서침례교회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두 교회는 현재 어떻게 하면 지역과 연합을 이뤄나갈 지 함께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는 주변 교회들과 함께 김장 담그기, 연주회 개최하기 등 다양한 문화행사도펼칠 예정이다. 이 같은 요한서울교회와 벧엘성서침례교회의 '아름다운 동행'은 개교회중심인 한국교회에 도전을 주고 있는 대목이다. 현상웅 목사는 "우리가 연합하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응원 해주고 있어 감사하다"며 "다른 교회들도 각자 갖고 있는 달란트를 통해 지역과 함께선을 이뤄나가길 소망한다"고전했다. 이어 백상욱 목사는 "한국교회 안에서 한 지붕 아래 두 교회가 경쟁하지 않고 동역한다는 것에 기대가 되고 설렌다"며 "우리의 모습이 한국교회에 선한 영향력으로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준수 기자2017-08-25

교육 전도사 사역이 끝나기 무섭게 첫 선교지였던 중국 광동성으로 떠난 이국찬 선교사. 15년째 중국과 태국에서 선교사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진정성 있는 사역을 위해 늘 기도한다는 이 선교사는 매일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고 싶단 소망을 전했다. "현지 마을 찾아 다니며 사람들 도와요" 태국 치앙마이드림교회를 섬기고 있는 이국찬 선교사는 올해로 15년째 해외에서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한인교회이지만 태국 현지 교단 소속돼 있어 실질적으론 태국교회다. 불우한 환경에 처한 태국 아이들이나 신학생들의 학업을 지원하거나 마을을 찾아 다니며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살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곳과 연결해주는 사역을 펼치고 있다. 15년 동안 가족들과 마음 편히 휴가 한 번 가지 못할 정도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처음부터 목회나 선교사에 대한 꿈은 없었다고 한다. 목회자였던 자신의 아버지 역시 좋은 목사가 되기보다 교회를 섬기는 좋은 장로가 되라고 권했었다고. 하지만 중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대만으로 유학을 갔던 것이 터닝포인트가 됐다. "중국어 공부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한인교회를 가지 않고 현지 교회를 다녔어요. 마침 올네이션스 경배와찬양 팀이 인도하는 집회를 참석했는데, 거기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됐죠. 그날 남은 인생을 중국인들을 위해 살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이 선교사는 대학 졸업 후, 1994년 공채 35기로 롯데그룹에 입사했다. 중국어를 전공했던 것이 결정적인 장점으로 크게 작용했다. 롯데건설에서 근무하며 베트남 호치민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위해 1년 동안 주재원 생활도 했다. 하지만 1997년 IMF 위기는 롯데그룹도 이겨내지 못했다. 이듬해 퇴사를 결심한 이 선교사는, 본격적으로 선교사의 삶을 준비하기 위해 2000년에 장로회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신대원을 졸업한 후에는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가납교회에서 교육 전도사로 3년을 섬긴 뒤, 지체 없이 첫 선교지였던 중국으로 떠났다. "이상하게도 국내에서의 목회는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연말쯤에 전도사를 사임하고 그 다음해 1월에 중국으로 갔던걸 보면 말이죠. 익숙하고 안정적인 곳을 떠난다는 불안감보다는 중국에서 저를 인도할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중국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이 선교사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인교회인 심천사랑의교회에서 8년을 섬기고, 사역지를 강소성 소주로 옮겨 교회를 개척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실천이 가능한 효과적인 전도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었다고 이 선교사는 회상했다. "태국으로 사역지를 옮긴 이유 중에 하나도 중국인들을 선교사로 세우기 위해서였어요. 현재는 중단된 상태지만, 태국에 온지 3년 동안은 이곳에서 선교사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내년부터는 중국 목회자들의 신학 연수를 위해 한국으로 보내는 사역을 계획하고 있어요." 이 선교사는 제대로 된 양육을 받고 있지 못하는 아이들을 돕고 있는 현지 목회자의 사역을 지원하고 있다. 전체 아이들과 봉사자들의 식비를 후원한다. 태국 멧사이 지역에 있는 베델신학교 학생 37명에게 장학금도 지원하고 있다. 또 올해 처음으로 치앙마이에 있는 한인교회들과 연합해 태국 코스타를 개최했다. 지난 2월에는 포항대도교회 장년부 단기선교팀과 함께 건기 철이 되면 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카족 마을을 찾아 새로운 수도관으로 교체하는 공사를 진행했다. 이제는 풍족하게 물을 받아놓고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환경이 개선돼 이웃들과 싸울 일도 사라져버렸다. 선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역의 지속성과 현지인을 향한 진정성이라고 말하는 이국찬 선교사는 앞으로도 태국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 선교사는 "예수님은 이 마을, 저 마을 다니시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고, 무슨 필요가 있는지 살펴보셨다"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사역을 잘 감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준수 기자2017-08-22

맨손으로 세운 인쇄회사 진흥문화를 어엿한 기업으로 키워낸 박경진 회장. 78살이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왕성한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금도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고 고백하는 박경진 회장을 만났다. "감사하는 삶의 태도가 성공비결" 진흥문화 박경진 회장은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아무런 연고도 없던 서울로 상경했다.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험난한 시절을 겪었다는 박경진 회장. 하지만 한 쪽 눈이 보이지 않는 어려움도, 판잣집에 살았던 고단함도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군대 가기 전에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3년이 지나고 보니깐 다 없던 일이 되고 말았어요. 1969년도 말에 서울로 올라와서 용역, 보따리 장사 등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10년 동안에 이사만 25번을 갔어요." 우연히 달력 외판원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돼 1976년 진흥문화를 설립했다.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지만, 1983년 당시 성화 달력이 큰 인기를 끌면서 기업으로서 입지를 다지게 됐다. 1990년대에는 인쇄기를 갖추고 자체 생산에 들어갈 만큼 성장했다. 지금은 인쇄부터 출판, 문구, 생활용품까지 다양한 분야를 다룬다. 박 회장은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며 외상거래를 하지 않는 철칙을 지킨 것을 성공의 비결로 꼽는다. 가족과 같은 회사를 추구하며 1997년 외환위기 속에서도 100여 명의 직원 중 한 명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IMF를 하나님이 기업인들에게 근신하라고 주는 경고로 생각하고 자신이 타던 자가용을 팔아 직원들의 보너스에 보태는 솔선수범을 보였다. 회사를 휘청이게 할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2004년 4월경에 공장에 화재가 발생한 것. 만약 달력 제작을 위한 용지나 완성품이 가득하게 있었을 연말에 불이 났다면 진흥문화가 입을 피해는 막심했을 것이라고 박 회장은 회상했다. "화재가 일어난 다음날 전 직원과 함께 예배를 드렸어요. 회사가 입을 피해를 최소화시켜 주시고 경각심을 일깨워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이나 직원들 모두 눈물로 드리는 예배였어요." 해외입양인 초청ㆍ장학금 지원 앞장서 박 회장은 자신의 어려웠던 지난 시절을 잊지 않고 나눔에도 앞장서고 있다. 한국기독교한센인선교회 이사장을 맡아 해외 한센인 선교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에서 만난 한 입양인과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1996년부터 해외입양인 모국방문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 동안 북미와 유럽 지역에 입양된 400여 명의 입양인과 가족들을 초청했다. 올해 한카문화교류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박 회장은 한국과 캐나다 수교 55주년인 2018년에 양국에서 두 차례 해외입양인 모국방문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2010년 진흥문화재단을 설립해 장애인과 고려인, 탈북민 청소년들에게 꾸준히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2000년도에 환갑 잔치할 돈으로 직원 자녀들에게 학자금을 주기 시작했어요. 이걸 확대해서 재단으로 만들었습니다. 성적이 떨어지지만 않으면 졸업할 때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박경진 회장은 올해 1월,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기독교 관련 유물을 협성대학교에 기증했다. 앞으로 기독교 문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박 회장은 순교의 피 위에 세워진 한국교회의 역사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자신의 뿌리, 과거의 역사를 알아야 내일을 내다볼 수 있어요. 한국의 기독교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 배우게 하는 일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김준수 기자2017-08-19

공산당원이었지만 지금은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는 문갈렙 목사. 북한 주민들에게 식량을 전한 것을 시작으로 소수민족 선교, 카페목회 등 종횡무진 사역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한충렬 목사의 순교를 잊을 수 없다는 문 목사는 "자신의 민족을 도운 요셉처럼 통일의 마중물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열렬한 공산당원에서 복음 전하는 목회자로 1967년 흑룡강성에서 태어난 문갈렙 목사는 신앙을 가기 전까지는 공산당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 목회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를 먼저 받아들인 문 목사의 아버지와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 덕분이었다. "1993년으로 기억합니다. 공산주의가 너무 부패했다는 생각에 회의가 들었어요.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어머니가 보내주신 성경을 읽게 됐습니다. 정말 성경에 나온 사람들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다면 내가 숭상하던 공산당보다는 낫겠다고 생각했죠." 문 목사는 교회에 가기로 결단하고 드렸던 첫 예배의 감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정식으로 신학 공부도 하지 못했던 아버지가 전한 설교, 3년 동안 빠지지 않고 문 목사를 위해 기도해왔다는 한 성도의 고백에 기독교를 거부하며 쌓아왔던 마음의 벽이 모두 무장해제됐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사역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문 목사는 가정신학교를 다니면서 북한 주민들에게 식량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으로 고통 받던 1996년부터 중국 공안에 체포되기 전인 1999년까지 이어졌다. 중국 공안에게 한국 간첩으로 몰리며 더 이상 북한을 출입할 수 없게 되자 문 목사는 깨어진 가정으로 인해 상처받는 조선족 아이들에게 눈을 돌렸다. 자신의 집에서 직접 아이들을 돌보고, 지역의 불우한 상황에 처한 아이들을 물심양면 지원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가는 조선족들이 참 많았어요. 부모는 곁에 없고 나이든 조부모만으로는 모든 걸 감당할 수 없으니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많았죠. 부모 중에는 한국에서 일하면서 다른 사람을 만나 이혼을 하는 경우도 있어 가정이 깨지는 일도 종종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목회자로 사역을 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원망도 많이 했었다는 문 목사. 자신을 조선족으로 중국에 태어나게 하신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어 답답었다고 한다. 문 목사의 고민은 2011년 횃불 한민족 디아스포라 세계 선교대회에 참석하면서 풀리게 됐다. "하용조 목사님이 조선족 사역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 하신 말씀이 있었어요. 우리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애굽에 먼저 보낸 요셉'이라고. 중국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반도 복음화와 통일을 이뤄가는 일에 큰 역할 감당해주어야 한다고 격려해주셨죠. 하나님께서 저를 중국에 보내신 이유를 깨닫게 된 순간이었어요." "복음 전하고 싶단 리수족 아이들 보면 힘이 나요" 문 목사는 안정적인 사역지였던 흑룡강성을 떠나 2004년 절강성 이우시에 이우염광교회를 개척했다. 이곳에서 현지인과 조선족을 대상으로 목회하는 가운데 2006년부터 운남 지역 리수족 선교를 지금까지 펼치고 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는 높은뜻정의교회와 협력해 여름성경학교를 진행하기도 했다. 운남 선교는 문 목사가 <산비>의 주인공인 영국 선교사 제임스 O. 프레이저의 무덤을 방문한 것이 인연이 됐다. 어린 나이의 딸을 아무렇지도 않게 파는 리수족의 충격적인 실상을 보게 된 문 목사는 리수족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짓기 시작했다. 현재는 7개의 학교에서 204명의 아이들이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 "리수속 아이들이 저를 보고 많이 늙었다면서 앞으로는 자기들이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말을 했어요. 너무나 감격스러웠죠. 왕복 7,000km나 되는 길을 오가며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겼는데, 그 동안의 고생이 씻은듯이 사라지는 것 같았어요." 문 목사는 지난해 4월 30일 피살된 故 한충렬 목사(장백교회)의 유가족들을 돕는 일에 앞장섰다. 특히 순교한 한 목사가 마지막까지 운전했던 차를 타고 백두산에서부터 히말라야까지 횡단하는 프로젝트도 주도했다. 현재 그 차는 한 목사의 순교정신을 잇기 위해 티벳에서 사역 중인 선교사에게 양도한 상태다. "동료 목회자들과 함께 한 목사님의 차를 타고 히말라야까지 갔습니다. 순교의 정신을 중국 곳곳에 퍼뜨리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죠. 차가 가는 곳마다 조선족 목회자들이 환영해주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중국 기독교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을 만한 일이었어요." 중국 공산당 정권 아래 목회를 하면서 조선족 교회의 방향을 깊이 고민한 문 목사는 셀교회에 주목하고 한 사업가의 도움을 받아 2013년에 카페를 시작했다. 주중에는 커피를 팔아 운영비와 선교비로 쓰고, 주말에는 교회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했다. 문 목사는 자신의 비전에 공감하는 사역자를 만나길 기대하면서 중국 전역에 카페교회가 확산되길 꿈꾸고 있다. 문 목사는 "중국교회와 한국교회간의 건강한 관계를 맺어갈 때"라며 한국교회의 중국 선교에 관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양적으로 성장한 중국교회에 돈으로 후원하고 선교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하드웨어는 충분히 갖춰진 셈이죠. 하지만 한국교회의 제자훈련이나 양육 프로그램은 중국교회가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이제는 한국교회의 소프트웨어를 전수해서 중국교회의 하드웨어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윤인경 기자2017-08-18

진한 화장을 한 배우가 아무런 말 없이 오직 과장된 표정과 몸짓만으로 연기를 한다. 국내 공연계에서 쉽사리 보기 힘든 무언극 '마임'. 이 대사 한 마디 없는 마임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조인정 마임이스트는 바로 최초로 국내에 '기독교 마임'이라는 영역을 개척한 선구자다. 뮤지컬 배우로 활약하던 그녀를 하나님은 마임의 길로 인도하셨다. 어느덧 17년째, 하나님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모든 사역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 조인정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극단에서 1년 반 동안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다. 경쟁이 치열한 뮤지컬 세계에서 짧은 시간 내 주역으로 발돋움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렇게 뮤지컬 배우로 성공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의외의 사건이 일어났다. "점프 연습을 하다 왼쪽 발목을 다쳤어요. 통증 때문에 더 이상 뮤지컬 배우 생활을 할 수 없었어요. 이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서 한동안 쉬게 됐죠." 그 즈음 마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대학시절 기독동아리 지도목사님이 유럽여행을 갔다가 처음으로 마임 공연을 접한 뒤 매력을 느끼고 조인정 씨에게 권유했던 것이다. "목사님이 우연히 프랑스 몽마르뜨 언덕에서 마임 공연을 보셨는데, 언어 없이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최고의 선교도구가 되겠다 싶으셨던지 저한테 다짜고짜 마임을 배워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조인정 씨는 처음에는 펄쩍 뛰었다. 마임은 삐에로 복장을 한 광대가 연기하는 것인 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미국의 '모세(Moses)' 마임 영상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게 됐다. "미국에서는 이미 마임을 통해 문화 선교를 펼치고 있더라고요. 웅장하고 멋있었어요. 뮤지컬을 하면서 근력이나 표현력의 기초를 익혔었기 때문에, 저도 마임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아니, 하고 싶어졌어요." 하지만 대중에게 마임은 생소했다. 특히 CCM과 같은 음악 위주의 기독교 문화 안에서 마임은 친숙하지 않은 소재였다. 마임 사역을 외로이 개척해 가는 과정에서 조인정 씨는 고민을 거듭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은 참 많은데 굳이 마임을 해야 하나' '꼭 내가 해야 하나' '돈도 벌면서, 가족들과 시간도 보내면서 살다가 천국만 가면 되는 것 아닌가' 등. 그러다 그녀는 마임으로 예배 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됐다. 훈련과 성장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믿게 되면서 전과 달리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나왔다. "마임 사역은 제가 가려지고 하나님, 예수님만 드러나는 사역이에요. 마임을 할 때는 진한 화장으로 제 얼굴도 가려지고 목소리도 내지 못하죠. 때문에 진짜 모세만 보이고 삭개오만 보이고 예수님만 보일 수 있는 사역이라고 생각해요." 한 때는 돈을 많이 벌어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이 목표였다는 조인정 씨의 요즘 첫 번째 기도제목은 '하나님 앞에서 잘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는 곳에 가서 자신의 땀과 시간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모든 사역을 이루어가심을 느낀다는 조인정 마임이스트. 앞으로 그녀가 보여줄 하나님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한편 조인정 마임이스트는 지난 2000년부터 12회의 기획공연을 비롯해 춘천국제마임축제, 홍대프린지페스티벌 등 문화예술공연과 선교 한국, 옹기장이, 마커스를 비롯한 수많은 무대에서 마임 사역을 이어왔다. 조인정 마임이스트의 자세한 신앙 스토리는 <신앙계> 8월호에서 만나볼 수 있다.

김준수 기자2017-08-13

한국교회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고난 받고 소외된 이들의 곁을 지키는 교회들이 있다.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희망찬교회도 그 중에 하나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성경의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희망찬교회 양민철 목사를 만났다. 이웃의 아픔 외면하지 않은 희망찬교회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희망찬교회. 1997년 교회를 개척하면서 양민철 목사와 성도들이 예수님은 구원과 삶의 희망이라는 고백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 희망찬교회는 그 이름처럼, 사회와 지역 속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교회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성이 아니라 모두를 품을 수 있는 숲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교회는 교인들의 아지트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숲은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많은 생명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곳이죠. 숲을 지나가는 행인들에게는 맑은 공기를 제공하기도 하죠. 희망찬교회가 구리시에서나 한국사회를 위한 숲과 같은 교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양 목사와 성도들이 교회론 공부에 힘을 쏟는 것도 교회의 역할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양 목사가 직접 쓴 <성경이 말하는 교회> 교재를 통해 성경이 말하는 교회는 어떤 모습인지 연구하며 공동체를 넘어 사회적 영성을 실천하는데 힘쓴다. 각자의 특기와 흥미를 살린 직능별 목장을 통해 재능기부 공연을 펼치고 커피와 식사봉사도 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곁을 지켰던 광화문 천막카페도 희망찬교회와 봉사자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했다. 해외선교는 교회 설립 초기 때부터 집중해오던 대표적인 사역 중에 하나다. 작은교회들과 연대해 중국과 말레이시아 등지에 선교사를 파송했다. 1998년에는 20여 교회가 참여한 말레이시아 선교회를 설립하고 박철현 선교사를 파송했다. 현재 박 선교사는 말레이시아 정글에 100여 개가 넘는 교회를 세우고 원주민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희망찬교회 교인들은 서로를 형제자매라 부른다. 양 목사는 "직분보다 중요한 건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임을 느끼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2007년부터 호칭장로제와 서리집사제도도 폐지했다. 중요한 의사결정은 회중정치의 전통을 따라 교인총회를 거친다. "교회가 공동체로만 머물지 않고 사회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희망찬교회부터 사회적 영성을 실천하는 일에 모범적인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교회가 어마어마한 건물을 짓는데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으로 나가서 예수님의 생명을 나눠주는 일에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양민철 목사는 앞으로도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성경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 싶단 바람을 전했다.

박은정 기자2017-08-07

환경보존 활동을 펼치며 건강한 하나님 나라 구현에 앞장서는 교회가 있다. 바로 경기도 하남에 위치한 덕풍교회가 그 주인공. 최근엔 강원도 홍천의 작은 마을을 찾아 직접 만든 방향제로 노방전도를 펼쳐, 나눔의 현장에 직접 다녀왔다. 손수 만든 용품으로 지역주민·해외 선교지 섬겨 "안녕하세요. 좌운교회에 수련회 온 학생인데요. 저희가 만든 방향제 드리려고 왔어요. 하나님 믿으세요!" 올 여름 강원도 홍천 좌운교회로 수련회를 온 덕풍교회(담임 최헌영 목사) 청소년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두 손 가득 방향제를 들고 마을 곳곳을 다니며 주민들에게 방향제와 함께 복음을 전하고 있다. 전도의 도구가 된 방향제는 덕풍교회 아이들이 홍천 지역주민들을 섬기기 위해 직접 만들었다. 귀여운 방향제 통에 향기 나는 오일과 아이스 젤도 넣으며 하나하나 완성시켰다. '수련회까지 와서 왜 방향제를 만드나' 싶지만, 직접 만든 제품으로 전도를 하는 건 덕풍교회만의 특별한 사역이다. 덕풍교회는 현재 사회 선교 일환으로 '즐거운 토요일'과 '덕풍동 마을쟁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주민들을 섬기고 환경보존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즐거운 토요일은 학교를 가지 않는 토요일, 가정에 방치된 아이들을 위해 교회가 주최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주로 미술 놀이와 음악 놀이, 종이 접기, 영화 시청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벌써 7년 째 하남시 아이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으며 이뤄지고 있다. 또한 △덕풍동 마을쟁이는 교회가 설립한 사회선교 단체. 단체의 이름처럼, 마을을 위해 벽화 그리기를 비롯해 폐식용유로 비누 만들기, 폐현수막으로 에코백 만들기 등 환경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완성시킨 용품은 모두 주민들과 해외선교지에 전달되고 있다. ▲덕풍교회 최헌영 목사 최헌영 목사는 "세상이 오염된 시대에 건강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자 먼저 환경개선에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교회가 마을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니 주민들은 물론 교회에도 좋은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덕풍교회가 환경운동의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던 데는 김주선 부목사의 역할이한 몫 했다.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한 김 목사가 자신의 전공을 살려 아이들과 함께 환경운동 활동을 하고자 한 것. 김 목사는 "어떻게 하면 교회가 마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사역을 이어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환경사역을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교회의 섬김에 지역 내 아이들은 물론 부모들까지 변화됐다. 교회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던 부모들도 "덕풍교회 '즐거운 토요일'이라면 가도 된다"며 아이들을 선뜻 교회에 보내주고, "덕풍교회가 참 좋은 일을 많이 한다"고 칭찬할 정도다. 최헌영 목사는 "교회의 사역을 통해 마을이 밝아지고 있는 것을 몸소 느낀다"며 "주민들이 '이런 교회라면 다니고 싶다'고 말하고 교회를 통해 지역사회가 변화돼 나간다면 그게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prev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goodtvICGCCMLOVE굿피플KCMUSA기독뉴스GoodPeople아멘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