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정 기자2018-12-04

CCM계에 예사롭지 않은 샛별이 탄생했다. 믿지 않는 친구들이 하나님과 친밀해지기를 꿈꾸며 13세 최연소 나이에 CCM 가수로 데뷔한 '민강'이 그 주인공이다. "값 없이 하나님께 받은 선물, 제 마음 주께 드려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 말씀처럼 아무리 짜증이 나도 하루 이상 못된 마음을 이어가지 않으려고요. 왜냐하면 결국 그 화는 저한테 다시 돌아오니까요.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스스로 더 겸손해지는 최고의 예배자가 되고 싶어요." 올 해 13세 소녀 '민강(본명: 채민강)'이 자신의 첫 CCM 앨범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전한 신앙고백이다. '민강'은 초등학생 6학년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확고한 신앙고백 아래 CCM 음악을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민강'은 "하나님에 대해 확신이 없는 친구들이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친밀하게 느꼈으면 좋겠다"며 "이 앨범을 들은 100명 중 1명이라도 하나님께 돌아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물론 '민강'이 처음부터 CCM 가수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4학년 때 학교 음악선생님으로부터 노래에 소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팝송, 트로트, 가요, 민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혼자 노래와 춤 연습을 했다. 여느 또래 친구들처럼 아이돌 가수를 꿈 꾼 적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면서 '사람을 살리겠다'는 꿈을 가졌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노래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그는 "교회 새벽기도회에서 설교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다"며 "당시 친구 관계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엄마가 새벽예배를 가자고 강력히 권해 어쩔 수 없이 따라 갔다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확실히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영적 회복을 경험한 '민강'은 CCM 버스킹을 나가기 위해 엄마와 음향장비를 구하러 음향기기전시회를 갔다. 그 곳에서 이번 앨범의 프로듀서이자 음향기기회사 '인피니티사운드' 한의섭 대표를 만났다. CCM 버스킹 보다는 앨범을 제작 해 보자는 한 대표의 제안으로 첫 앨범을 출시했다. 한 대표는 "첫 만남에서 또래 아이들과 달리 민강이의 꿈과 비전이 뚜렷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어린 아이가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쉽지 않고 자칫 목이 상할 염려가 있어 음반 제작을 제안했다"며 "본업인 음향기기 사업과 더불어 앨범 준비를 이행하느라 음반을 내기까지 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에 수록된 찬양곡 '서로 Duet'과 '사랑을 기다리네'를 부르는 '이화'와 '민강'ⓒ데일리굿뉴스 청아하고 깨끗한 목소리로 재해석 된 <여호와께 돌아가자> 마침내 '민강'의 '더 퍼스트 프레이어(The First Prayer)' 음원이 지난 달 출시됐다. 메인 타이틀 곡은 제이어스의 '여호와께 돌아가자'를 리메이크 했다. 민강은 찬양의 가사가 자신의 삶에서 원동력이 됐다며 선곡 이유를 설명했다. 민강은 "노래 가사 중 '우리는 넘어져도 그 사랑 영원하네'가 있다. 이 가사로 인해 많이 울기도 했다"며 "학교생활과 신앙생활에 힘이 되 준 노래"라고 말했다. 민강의 목소리로 재해석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앨범에 실렸다. 그 외 △서로 Duet △전하리라 △주를 위하여 △사랑을 기다리네 등 창작곡이 수록돼 총 6곡의 음원이 출시됐다. 특히 '서로 Duet'과 '사랑을 기다리네'는 미얀마 기독교 종교탄압을 피해 정식 절차를 받고 한국에 온 또래 친구 '완이화' 양이 '민강'과 함께 부른 듀엣곡이다. '더 퍼스트 프레이어(The First Prayer)' 음원은 갓피플과, 각종 온라인 음원사이트, 포털사이트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윤인경 기자2018-11-08

아프리카에서 가장 열악한 국가로 꼽히는 부룬디에서 17년째 한센인 선교사역을 이어오고 있는 선교사가 있다. 지난달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언더우드 선교상 수상자로 선정된 신인환·신응남 선교사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잠시 방문한 이들 부부를 만났다. 신 선교사 부부의 얼굴에는 한센인들을 향한 각별한 사랑과 섬김의 열정이 그대로 묻어났다. 간암 투병에도 불구하고…17년 간 33개 아프리카 국가 돌아다니며 선교 "한센인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 한센인보다 마을 사람들이 더 깜짝 놀라요. 그 동안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버림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선교사가 와서 이들을 섬기는 모습이 충격적인 거에요. 이들에겐 머나먼 아프리카 땅에 한국인 선교사가 와서 한센인들을 돌보는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겁니다." 전 세계 한센인은 약 2천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로 17년째 아프리카에서 한센인 사역을 이어오고 있는 신인환·신응남 선교사 부부가 처음 한센인들을 만난 것은 지난 2001년 소록도에서였다. 소록도 신성교회에서 새벽예배를 인도한 신인환 선교사는 동이 트기도 전인 이른 시각, 250여 명의 한센인들이 나와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은 매일 새벽마다 나라와 민족, 한국교회와 목회자·선교사들을 위해 소리 높여 기도하고, 마지막에는 자신을 버린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다. 신인환 선교사는 "하나님이 '내 백성 가운데 가난과 질병으로 가장 고통 당하며 탄식하는 백성, 아프리카 한센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음성을 들려주셨다"며 "한센인들은 고통에 신음할 뿐 아니라 손과 발이 문드러져 노동을 할 수 없으니 가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선교사 부부는 케냐를 시작으로 아프리카에 있는 54개 나라 중 33개 나라를 돌며 한센인들을 섬겼다. 가장 환경이 열악하고 가난한 곳에 찾아가서 한센인들을 돌보는 일은 마음은 기뻤지만 육체는 고된 일이었다. 한센인 사역을 시작한 지 10년째 되던 해, 신인환 선교사는 간암 진단을 받았다. 한국으로 귀국해 1년 간 투병 생활을 마친 신 선교사는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아프리카로 되돌아갔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두 아들은 아버지가 정말 선교사임을 실감했다고. 신인환 선교사가이번에 향한 곳은 한센인들이 가장 많이 있는 나라로 꼽히는 부룬디였다. 아프리카 중심부에 위치한 작은 나라 브룬디는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가난한 나라다. ▲아내 신응남 선교사는 한의술을 통해 한센인들과 마을 주민들을 치료하며 복음을 전한다.(사진제공=신인환·신응남 선교사) 아프리카서 가장 열악한 국가…"무료 진료 받으려 2시간 넘게 맨발로 걸어와" 신 선교사 부부는 부룬디 수도 부중부라에서도 4시간 가량 차를 타고 가야 닿을 수 있는 작은 시골마을 무제에 자리를 잡았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한의학을 공부해 늦깎이 한의사가 된 아내 신응남 선교사가 의료선교를 담당하고, 신인환 선교사는 선교센터와 클리닉센터를 비롯한 건물들과 마을을 잇는 다리 등을 손수 건축한다. 선교사 파송 전까지 10년 넘게 목회를 했던 신인환 선교사에게 건축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을 리가 없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걸까. 신인환 선교사는 "아프리카는 우기가 되면 매일 장대 같은 소낙비가 퍼붓는데, 집에 지붕이 없어 사람들이 그 비를 다 맞고 있었다"며 "우선 급하게 지붕부터 만들어 올리고, 마을에 필요한 수도 공사와 다리 공사 등을 하다 보니 어느새 건물까지 짓고 있더라"며 웃음을 보였다. 매일 5시 30분, 새벽 예배로 문을 여는 클리닉센터에는 하루에 많게는 70명의 환자들이 찾아온다. 주변에 보건소나 다른 병원이 있지만, 돈을 내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모든 진료와 약이 무료인 센터까지 맨발로 2~3시간을 걸어서 온다. 신응남 선교사는 "한국과 미국에서 매년 2~3명씩 단기의료 선교팀이 방문하지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은퇴한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부룬디를 많이 찾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부 둘이서 매일 환자를 돌보고 건축을 하는 일 외에도 어린이 성경학교와 영어학교, 주일에는 각 지역교회를 찾아가 사역을 돕는 등 현지교회가 설 수 있도록 온 힘을 쏟다 보니 체력적인 소모가 클 수 밖에 없다. 신 선교사 부부는 거의 해마다 말라리아에 걸려 고열과 오한에 시달리곤 한다. 신인환 선교사는 "말라리아에 걸리는 것이 제일 힘들다"면서도 "하지만 선교를 포기하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매일 경험할 수 있는 한센인 선교사로 불러주신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고백했다. ▲지난달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언더우드 선교상 시상식. 수상자로 선정된 신인환·신응남 선교사 부부를 축하하기 위해 이날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다.ⓒ데일리굿뉴스 두 아들까지 선교에 헌신…"하나님만 드러나는 사역 되길" 신인환 선교사는 올해 제18회 언더우드 선교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연세대학교가 제정한 이 상은 조선에 복음을 들고 온 최초의 선교자인 언더우드 선교사의 정신을 기려, 매년 세계 각국에서 헌신적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부모의 신앙심은 그 자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신 선교사 부부의 두 아들 역시 아프리카 한센인 선교 사역에 헌신하겠다는 결심을 품었다. 내심 아들이 선교 사역을 이어갔으면 하고 바랐던 부부는 이 얘기를 듣고 크게 기뻤다고 말했다. 신인환 선교사는 "선교사 아들까지도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차, 좋은 집을 사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라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라는 것을 아들들이 확실히 알게 돼, 온 가족이 주님 오실 날을 위해 선교에 헌신하게 되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진짜 선교사는 이름도 없이 헌신하며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선교사인데, 이렇게 알려지게 되어 부끄럽습니다. 제가 자꾸 무엇을 주려고 하고 가르치려고 하면서 저 자신을 드러내는 사역이 아닌, 오직 한센인들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보는 사역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박혜정 기자2018-11-15

한부모 가정 혹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된 교육기회를 갖지 못한 아이들에게 책으로 진로 모색을 돕고, 복음을 전하는 사회적 기업이 있다. 바로 4년 전 출범한 '리드어스'가 그 주인공이다. 최근 이들은 사역의 지경을 넓히기 위해 비영리 진로교육단체 '기부이펙트'와 함께 '움직이는재단' 출범을 준비 중이다. '움직이는재단' 부대표이기도 한 '리드어스' 안용재 대표를 만나 구체적인 사역이야기를 들어봤다. 책 통해 변화된 아이들, "나 때문에 십자가 지신 예수님 감사해요" '리드어스'는 주로 그룹홈과 아동지역센터를 다니며 독서지도를 통해 아이들 진로교육을 하고 있다. 독서지도는 안용재 대표(리드어스)가 약 7명으로 구성된 그룹홈과 지역아동센터를 정기적으로 찾아가 직접 하고 있다. 아이들은 안 대표를 '진로샘(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대부분 소년소녀가장, 한 부모 가정 등 소외계층 아이들이다. 독서지도를 위해 선정되는 책들은 기본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섬기는 이야기다. 책 이야기가 끝나면, 아이들은 느낀점과 함께 자신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고 나눈다. 그러면서 실제로 아이들은 자신의 꿈을 고백한다고 했다. "한 아이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장점을 살려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다고 고백 했어요. 어려운 아이를 도와주는 선생님이나 상담가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안 대표는 표면적으로는 독서지도지만, 사실상 성경학교라고 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는 비도덕적 행동 때문에 아이들이 교회에서조차 거절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아이들에게 우리의 몸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자 교회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처음에 안 대표를 경계하고 낯설게 대했던 아이들은 오고 가는 대화와 함께하는 시간이 지속되면서, 친밀감을 느끼고 마음을 열었다. 아이들의 입술에서 먼저 나오는 신앙고백은 안 대표가 이 사역을 계속 해 나가야겠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2년 전 지역아동센터에서 만난 아이들은 수업이 불가할 만큼 친구들을 때리고 우는 등 말 그대로 카오스였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서서히 어떤 행동이 옳고 그른 것인지, 가치관을 갖기 시작했죠. 처음 저를 만났을 때, 눈도 안 마주치면서 방어기세를 보인 아이는 이제 먼저 제 손을 잡아줍니다. 작년에는 아이들과 성탄절 카드를 썼는데, 한 아이가 '예수님이 나 때문에 죽으셨음'을 인지하고 감사의 고백을 적었어요. 아직도 감동을 주는 추억입니다." "아이들이 가장 기대하고 집중하는 수업시간이죠" 책을 통한 사역 외에도 최근에는 여행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일로 사역의 지경이 넓어졌다. 지난 13일 아동센터에서 안 대표는 오는 30일 아이들과 함께 떠나기로 한 소백산 트래킹여행을 앞두고 사전 준비가 한 창이었다. 남녀 학생들이 4명 씩 팀을 이뤄 코펠과 생수, 개인 수저 등 최소한의 필수품만 챙겨가는 그야말로 '빡센' 여행이다. 그는 "이 여행은 관광 차원이 아니라 힘든 여정으로 아이들에게 성취감과 자신감을 일깨워 주기 위한 프로젝트다. 아이들은 학교나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며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와 위대함을 알려주면서 아이들에게 기독교 세계관을 심어주는 것이 목적이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다이나믹지역아동센터의 최영광 교사는 안 대표에 대해 "아이들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선생님은 끝까지 인내심으로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고, 독서 외 다양한 프로그램 등 수업 준비를 철저하게 해 오신다"며 "아이들이 가장 기대하고, 집중도가 높은 수업의 선생님이 바로 용재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리드어스' 안용재 대표 ⓒ데일리굿뉴스 아이들에게 '삶의 의미' 찾아주는 것이 비전 현재 다드림교회 전도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리드어스'의 안 대표는 8년 간 안산YFC사역단체에서 청소년 사역을 하던 중 2014년 세월호 사건을 마주했다. 이는 그가 소외된 어린이들을 돕겠다는 비전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고, 후원에 의존하는 사업구조 보다는 소외계층 아이들이 실제적으로 필요한 것을 채워 주고, 이러한 선교 본질을 흐리지 않는 단체를 구상했다. 안 대표의 뜻을 공감한 기독청년들이 힘을 보탰다. 이들은 창립 과정에서, 현장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와 복지센터 관계자들의 조언을 통해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실제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소외계층 아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물질적인 후원일 것이라고 예상했어요. 하지만, 아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것을 알았어요. 어린 시절, 가정과 사회에서 상처 입은 아이들은 우울감을 가진 채 정체성 고민을 하다 보니, 다른 친구들보다 더 극심한 혼란을 겪는다는 것이죠." 어린이들에게 물질적인 것보다 '책'으로 다가가 진로를 안내하고 정서를 안정시키며, 이를 복음의 접점으로 삼게 된 이유다. 그러면서 '리드어스'란 이름의 사회적 기업이 탄생했다. 앞으로도 한 부모 가정과 소년소녀 가장, 수감자 자녀 등 상처입고 소외 된 아이들이 신앙 안에 바로 서고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해 나갈 계획이다. 이제 '리드어스'는 사역의 지경을 넓히고,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기부이팩트'와 합병하고, 이 달 중 '움직이는재단' 발족을 앞두고 있다. '기부이펙트'는 '리드어스'와 다음세대 사역에 같은 뜻을 둔 비영리단체로서, 기독교 가치관을 토대로 청소년 진로교육 및 문화활동을 펼쳐왔다. 안 대표는 앞으로 '움직이는재단'을 통해서 더 많은 아이들을 체계적으로 돕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예수의 소망이 자라나길 바랍니다. 자신의 선택과 상관없이 어른들에게서 상처받은 아이들이 복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울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자신과 세상에 부정적인 색안경을 쓴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어요. '너희는 정말 소중한 친구들이야.'"

한혜인 기자2018-11-21

다음 세대를 올바로 세우는 일에 한국교회가 앞장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가운데 학생들의 영적, 지적인 성숙을 돕는 기독 학교가 있어 주목된다. 인천 미추홀구에 위치한 한국국제크리스천학교(KICS)를 찾아 유용국이사장의남다른 열정과 포부를 들어봤다. "하나님 자녀 양육하는 기독교 학교 700개 세울 것" ▲한국국제크리스천학교(KICS) 유용국 이사장 ⓒ데일리굿뉴스 "기독교 교육의 핵심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이 시대의 리더를 양성하는것입니다." 한국국제크리스천학교는 2004년 세워진 기독교 사립학교다. 설립 목적은 학생들을 영적, 지적인 리더십을 갖춘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숙시키는 데에 있다. 2004년 전교생 5명으로 시작된 학교는 현재 온오프라인을 포함해 전교생이 1,000명이 넘는 학교로 자리매김했다. 한국국제크리스천학교는 인천, 경기 부천, 서울 서초, 미국 일리노이에 위치해 있다. 한국국제크리스천학교는 미국 밥존스대학교의 커리큘럼을 바탕으로,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 이때문에 전교생 중에는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귀국했거나 외국 대학으로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도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김건우(18) 군은 "기독 학교인 한국국제크리스천학교에 등록한 이유는 하나님과 진심으로 가까워지고 싶기 때문"이라며, "학교를 졸업하면 외국에서 공부할 수도 있단 것이 큰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또 모든 학생이 크리스천이다 보니, 학업과 개인적인 고민으로 힘들 때, 학생들 스스로 말씀이나 기도 제목을 나눔으로써 힘을 얻는다는 것도 학생들이 말하는 기독 학교의 장점이다. 이레(12) 양은 "일반 학교에 다닐 때는 친구들과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낯설기만 했는데 지금은 정말편해졌다"며 "학교 분위기과 교육을 통해 일상 생활에서하나님을 찾는 것이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학교는 '기독교 학교 700개 세우기 운동'에 비전을 품고 있다.ⓒ데일리굿뉴스 학교는 유용국 이사장을 필두로 '기독교 학교 700개 세우기 운동'에 비전을 품고 있다. 말씀을 중심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가 늘어나 아이들의 인격이 예수님을 닮아가고, 크리스천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심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유 이사장에 따르면, 한국국제크리스천학교가 교육 커리큘럼을 공유하는 학교는 현재까지 100여 곳, 설립을 지원하는 학교는 40여 곳이다. 유용국 이사장은 "기독교 학교 사역에 헌신함으로써,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교육 현장을 만들어가겠다"며, "학교의 부흥과 학생들의 성숙을 통해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길 기도해달라"고 전했다.

윤인경 기자2018-12-07

우리나라 학생들은 하루 최고 16시간을 공부한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일지 모르지만, 가장 불행한 학생이기도 하다. 남들보다 늦어지는 게 두려워 학교로도 모자라 학원 뺑뺑이를 돌며 모두가 열심히 달린다. 그런데 이런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겠다는 아이들이 있다. 과감하게 학교를 벗어나 1년을 뒤쳐지기로 작정한 이팔청춘, 꽃다운친구들을 만나봤다. 무슨 방학을 1년이나?…"안식년, 우리 아이들에게도 필요해요" '요즘은 재수, 삼수도 흔하고 대학에 입학하면 휴학 한두 번 정도는 일상적인데, 그렇다면 청소년기에 1년 쉬는 것 정도는 해볼 만 하지 않을까?'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고등학교 입학 전에 1년 동안 방학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꽃다운친구들'(이수진 대표, 이하 꽃친)은 이러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삶은 고달프다. 학교를 마치면 학원으로, 독서실로 향하다가 밤늦은 시간이 돼서야 힘없이 집으로 돌아간다. 한국 학생들의 공부 시간은 OECD 회원국 중 1위지만, 삶의 만족도는 최하위를 기록한다. 이수진 대표는 "오늘과 내일의 행복 중에서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아이들은 미래를 꿈꿀 시간도, 자기 자신을 알아갈 시간도 없다'며 "평균수명이 100세를 훌쩍 넘는 사회를 살아갈 아이들인데 그 중에 1년 정도는 해볼만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일찍부터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또는 고등학교 졸업 뒤 1년을 쉬면서 진로를 탐색하는 프로그램 등 비제도권 교육이 발달해 왔다.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나 영국 갭이어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이 시간 동안 아이들은 학교 다니기를 멈추고 쉼과 여행, 진로 탐색에 나선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학교를 벗어난 교육을 상상해보기 어려울 정도로, 교육은 전통적으로 곧 학교를 의미해왔다. 그런 학교를 1년 통째로 쉰다는 것은 부모 뿐 아니라 청소년들에게도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였을 터. 어떻게 꽃친에 참여하게 됐을까. 3기 청소년 6명을 만나보니 대부분 부모님의 권유로 꽃친을 알게 됐지만 결정은 본인들의 몫이었다. 국제학교를 다니다가 꽃친에 온 최서진 군은 "다른 친구들은 다 공부하고 학원 가는데 1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면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되돌아볼 시간,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지금 말고는 없다는 생각이 두려움보다 더 컸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7일 꽃다운친구들 모임에서 꽃씨가 되어 떨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학생들.ⓒ데일리굿뉴스 꽃친들의 고민, 어떻게 하면 푹 잘 쉴까? 꽃친은 일주일에 2번 모인다. 느슨하게 짜여진 프로그램 외에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것이라면 일단 시작하고 본다. 올해는 단편영화 제작과 목공수업, 도자기를 비롯해 아이들이 직접 기획해서 다녀온 래프팅과 암벽등반 등을 함께 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5일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을 자든, 종일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든 오롯이 아이들 마음대로다. 김은혜 양은 "기본적으로 12시간 이상 잠을 잤고 핸드폰 하면서 놀고 먹으면서 '홈뒹굴링'을 했다"며 "저는 언제든 시간을 맞춰줄 수 있으니까 친구들이 만나자고 하면 다 나갔다"고 말하며 웃음을 보였다. 김다영 양도 "처음에는 뭘 해야 될지 몰라서 집에만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집에만 있는 게 또 싫어서 어디든 밖에 나가보려고 했던 기간도 있었다"며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갔던 것과 좋아하는 영화를 정말 많이 봤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잠자고 집에서 놀면서 보내는 아이를 그저 바라만 보는 건 부모에게도 큰 도전이다. 학업의 연장이 아닌 정말 온전한 쉼을 누리라고 허락했지만, 내심 이 참에 진로를 찾아보거나 뭐라도 했으면 하는 게 부모의 마음이기 때문. 이수진 대표는 "속앓이를 하다가 결국 참다 못해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며 "그런데 1년이 지난 뒤에 보면 아이 뿐만 아니라 부모님들도 눈에 띄게 변화한다"고 말했다. "부모님들은 '우리 애만 뒤떨어지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만사태평하게 시간을 보내고 그나마 세운 계획도 작심삼일이면 끝나는 아이들에게 실망하고 심지어 원망하기도 해요. 그러다가 여름쯤 지나면서 느긋함이 생기죠. '아 이제 어쩔 수 없구나' 그러면서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자기 자녀를 보는 눈에 큰 변화가 생겨요. 공부하는 존재가 아닌 하나님이 주신 자녀로 바라보고, 학업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그 아이만의 장점,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게 되는 거죠." 무엇보다 가족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꽃친 3기의 한 부모는 "학교 시스템에 구겨 넣어졌던 풍선이 다시 제 모양을 찾은 것처럼, 아이가 자신의 고유한 모양을 지켜가는 힘을 기른 것 같다. 아이가 단단해져가는 시간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과 같은 교육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학교를 완전히 그만두고 홈스쿨링을 한다거나 오랜 시간 동안 학업을 중단하는 결정은 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1년짜리 방학은 하나의 절충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옥유겸 군은 "굳이 꽃친을 하지 않더라도 청소년들이 쉬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1년 방학'을 적극 추천했다. ▲꽃다운친구들을 표현하는 손동작을 다같이 하고 있다.ⓒ데일리굿뉴스

박혜정 기자2018-12-06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됐지만 미국 시민권 취득에서 배제돼 합법적 신분을 갖추지 못한 입양인을 돕는 비영리단체 '월드허그파운데이션'. 길명순 이사장을 만나 현지사회 내 한인 입양인들의 현 주소를 들어봤다. 미국 추방 위기 한국계 성인입양인 약 '2만 명' "18세 이상 한국계 성인입양인 약 2만 1,000여 명은 미국시민권 취득이 불가능하다. '엄마'라는 한국말도 모르는 이들은 언제든지 향후 미국에서 한국으로 추방될 위기에 놓여 있다. 친 부모와 양부모는 물론 심지어 정부까지도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 길명순 이사장은 미국으로 해외입양된 후 시민권 취득에 불이익을 받는 입양인들 약 3만 5,000명 중 약 60%가 한국계 입양인이라고 했다. 길 이사장은 약 50년 전 이들에게 발급된 비자형태와 현 미국 입양아시민권법의 미비점을 지적했다. "40~50년 전, 당시 입양된 아이들이 받은 비자는 미국시민권 비자(R3)가 아닌 입양인 비자 일명 'R4비자'였다. 가까운 나라 필리핀 입양인들만 해도 R3 시민권비자를 받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R4비자를 준 것이다. 현재 미국 시민법은 'R4 비자'로 미국에 입양된 한국사람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할 수 있는 법 제도 자체가 마련돼 있지 않다." 현 미국 '입양아시민권법'은 2001년 연방의회가 2000년 이후 미국에 온 입양아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18세 미만 입양아들에게만 해당되는 법안이다. 2000년 이전에 입양된 18세 이상의 입양인들은 이렇다 할 이유 없이 시민권 부여 대상에서 배제된 것이다. 길 이사장은 이처럼 시민권 신분이 아닌 입양인 신분으로만 살아가는 입양인들은 언어와 문화적으로는 미국인화 됐지만 법적으로 미국인이 아니다 보니 정체성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친부모와 양부모 모두에게서 버림 받아 마약과 범죄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현지사회의 불이익에 노출된 사람이 입양인이라는 지적이다. "시민권을 받기 위해 세 번의 결혼을 한 51살 여성이 있었다. 그러나 시민권을 받을 무렵 남편과 헤어지면서 자녀들은 세 명인데 세 아이의 아빠가 모두 다르다. 일하다가 척추를 다친 40대 후반 입양인은 병원에 갔지만 정부혜택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 또 양부모의 죽음 후 유산을 물려받으려 했지만 시민권이 없어 자기 몫의 유산은 고스란히 정부에 환원됐으며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된 경우도 있다." "'엄마'의 마음으로 보니 외면할 수 없었다" 32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간 길 이사장은 가정에서 자녀 셋과 손자손녀를 둔 '엄마'이자 '할머니'다. 그는 '엄마'의 심정으로 소외된 성인입양인들을 보니 그들이 처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직접 발로 뛰며 자비량으로 입양인들을 찾아 다녔다. "메릴랜드 주에 있는 한인 입양인을 만나기 위해 5시간을 운전해 찾아갔다. 당시 37세였던 한인입양인은 도움을 주러 온 내게 '너 돈 많아? 왜 날 도와주려 하냐'며 무턱대고 방어태세를 취했다. 그러나 2시간 정도 진심으로 대화를 나누니 마음을 연 듯 했다. 이 후 교회 행사에도 초대하고, 맛있는 것도 사주며 극장을 다니면서 친밀해졌다. 2년이 지난 지금, 그는 나를 '한국엄마'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는 2만 명이 넘는 한인 성인입양인들을 실제적으로 돕기 위해 합법적인 시민권 부여를 위한 법률자문 지원활동이 시급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러한 활동을 위해 2016년 11월 비영리단체 월드허그파운데이션(World Hug Foundation, 이하 WHF)을 발족했다. 길 이사장과 뜻을 같이 한 현지사회 시민들이 늘어나 단체를 설립한 지 2년도 채 안된 현재 한국, 베트남, 인도, 에디오피아 출신 등 임원 21명과 자원봉사 변호사 100여 명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현재 WHF는 '2000년 기준 18세 이상 입양인의 시민권 취득을 위한 법안'을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에 제출해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더불어 입양아들의 시민권 신청 및 취득을 위한 1달러 릴레이 모금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길 이사장은 반드시 관련 법개정이 선행돼야 한다며 한국교회에 기도를 부탁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입양된 것도 모두 입양아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생한 것이다. 법사위원회에 제안한 법 개정이 통과되지 않으면 그들은 시민권을 받을 기회 조차 없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유와 신분이다. 이들이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자식 키우는 엄마의 역할을 다할 수 있지 않을까."

최상경 기자2018-11-25

치과에 들어설 때 긴장하지 않는 사람이 있긴 할까. 치과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출입이 두려운 공간이다.그런데 이 공간을 매개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특별한 의사가 있다. 미보치과 공윤수 원장은 서울시 봉사상과 사회 공헌복지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나눔과 봉사의 아이콘으로 불리 운다. 나눔을 통해 사랑의 온도를 높이고 있는 그의 일상 이야기를 기독교 월간지 <신앙계>를 통해 들어봤다. 나눌 수록 커지는 기쁨,모든 자리서 '나눔 실천' ‘의료선교단체 꿈이 있는 사람들 대표’, ‘한국새생명복지재단 이사’, ‘성북구 재향군인회 부회장’, ‘라이온스클럽 이사’. 이것 말고도 공윤수 원장이 맡고 있는 공식 직함만 10개가 넘는다. 일상이 늘 나눔과 봉사와 연결돼 있다 보니 어느새 수많은 일들을 도맡게 됐다. 현재 그는 치과에서 지역주민들을 위한 작은음악회, 장애인음악회 등을 열고, 지역의 소상공인들을 위해서는 SNS 교육 강의를 열어 매출 증대에 도움을 주고 있다. 지역의 의료제도권 밖에 있는 취약계층을 위한무료진료를 하는 가하면, 주말에는 병원에 올 수 없는 중증장애인들과 시골마을에 찾아가 진료 봉사도 하고 있다. “사람을 만나고 함께 교제하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제가 하는 일들은 혼자 할 수 없고 함께 해야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함께 모여서 소통하고 마음과 마음을 모아 선한 일을 하는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지역을 위해 섬길 수 있어 감사한 마음뿐이죠.” 치과의사가 된 동기도 순전히 봉사를 위해서였다. 대학 때우연히 참여하게 된봉사활동에서 강한 울림을 느낀 그는의료선교란 비전을 품게 됐고 이는 지금의 공 원장을 만들었다. “어르신들 중에 치아가 없어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어린이들 중에도 치아 상태가 좋지 못해 아파하는 아이들이 있었지요. 마음이 아팠어요. 그리고 이들을 치료해 아픔에서 벗어나게 해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죠. 지나고 보니 그때 했던 작은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셔서 지금 이 일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2000년에는 필리핀으로 떠나 평신도 의료선교사로 헌신하면서 선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공 원장 부부는 필리핀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고, 산족 등 소외된 원주민들에게 의약품 지원과 생필품을 공급하며 선교했다. 현지 선교사들과 협력해 교회를 세우는 일에도 동참했다. “필리핀에서의 생활은 힘든 때도 많았지만 보람되고 기쁜 일도 많았습니다. 그곳의 한센인들을 보며 큰 은혜를 받았는데 그들은 코와 손이 없어도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죠. 늘 웃음과 미소를 머금고 사는 모습을 보며 저를 돌아보게 됐어요. 제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받았고 배웠죠.” 필리핀에서의 사역은 이후 의료선교단체인 ‘꿈이 있는 사람들’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2009년에 치과를 개원한 이후 국내의료봉사를 하던 중 2013년부터는 해외로 활동영역을 넓혔고, 2014년에 단체를 설립해 필리핀과 캄보디아에 6개의 치과 진료소를 세웠다. "일상 속 작은 실천이 큰 변화를 이끕니다" 이토록 많은 일을 감당하기까지 모든 과정이 특별했지만, 순탄치만은 않았다. 학창시절 마라톤 선수였던 그는 고 2때 무릎 연골이 파열돼 꿈이 상실되는 큰 좌절을 맛봐야 했고,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 당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모든 재산을 선교지에 흘려 보냈기에 유일한 재산이라곤 아파트 한 채뿐이었지요. 친구가 아파트를 매도한 돈을 들고 도주했을 때 사실 하나님을 더 원망했어요. 선교사역을 잘 마치고 돌아왔는데 그 보상이 이거냐며 따졌지요.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전해줬어요. ‘내가 네 아내와 아들을 데려간 것보다 이것이 더 큰일이냐.’ 그 때 깨달았죠.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면서도 내 돈으로 사역하고 내 돈으로 선교한다는 착각 속에서살았던 것을요.” 그 뒤 모든 걸 온전히 하나님 앞에 내려놓은 공 원장. 그는오늘도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하루를 보내기에 여념없다.끝으로 그는 나눔과 봉사, 재능기부에 대해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작은 실천이 먼저라는 말을 남겼다. “5천원, 1만원 기부하는 게 쉽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아요. 하는 사람은 계속하게 되고 안 하는 사람은 계속 못합니다. 1%라도 나누는 연습을 시작한다면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흘려 보낼수록 더 풍성해지는 것은 경험해보지 못하면 알 수 없어요. 작은 나눔이라도 실천해보는 연말연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공윤수 원장의 자세한 신앙 이야기는 <신앙계> 12월호에서 만나볼 수 있다.

최상경 기자2018-11-07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일까. 의사들 사이에서는 환자들의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이가 좋은 의사라고 한다. 그만큼 극한의 상황과 다양한 케이스를 접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25년간 내과의사로서 의료 선교를 펼쳐온 심재두 선교사는 이런 '경험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안다. 치열한 사역 현장 속에서도 매일 같이 기록을 남기면서 경험을 축적한 그였다. 그런 그가 의료선교사들의 경험을 고스란히 꺼내 들었다. 의료 선교의 모든 것을 담은 종합교과서 같은 책을 발간한 것이다. 791쪽의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이 책은 현장 의료선교사들의 생생한 의료 선교 보고와 선교 과제들을 총망라해 집대성했다. 오로지 한국 선교를 위한 일이었다. 급변하는 시대, 한국 선교 '전략' 필요 최근 50여 명의 의료선교사를 중심으로 의료 선교 현황과 사역을 연구하고 종합한 교과서 같은 책 <현대 의료 선교학>이 출간됐다.이 같은 책을 기획한 장본인이 바로 심재두 선교사다. 알바니아 등지에서 십 수년간 의료 사역을 펼친 그는 현재 의료선교협회 이사로서 의료 선교 관심자와 헌신자를 모으는 촉매자로 꼽힌다. 저자 57명의 섭외부터 편집까지 모든 과정에 정성을 쏟은 건, 의료 선교 전략을 세우는 데 이정표를 제시하고픈 심 선교사의 마음에서 비롯됐다. "선교에 관한 자료나 책도 없고 정보 찾기가 어려운 건 지금도 매한가지죠. 현지의 상황 등 동시대를 반영하는 여러 기록들이 있어야 다음세대가 이를 토대로 전략을 짤 수 있는 데 그럴 만한 근거가 없다는 거에요. 그래서 일종의 가이드를 제공해주고 싶었어요." 실제로 세계 선교 현장의 지형이 날로 바뀌면서 전략적인 면이 강조되고 있다. 철저한 ‘리서치 앤 디벨롭(Research & Develop)’으로 선교의 방향을 잡고 출발하는 서구와 달리, 심 선교사는 "한국 선교는 이렇다 할 전략 없이 사역을 전개하고 있는 게사실"이라고 밝혔다.그는 선교전략의 유무가 실제 사역지에서 큰 차이를 드러낸다고 강조했다. "출발점이 다르다고 보면 돼요. 이미 전략을 세우고 현지 상황을 충분히 습득한 뒤 사역에 뛰어들면 그만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죠. 실제 적응력도 빠르고 속도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는 걸 확인했어요. 한국 선교는 전략적인 면에서 점수가 높지 않죠. 지나치게 하드웨어 중심적이에요. 그러다 보니 실질적으로 선교에 필요한 내용과 전략, 사람 등 소프트웨어가 부재하죠." ▲50여 명의 의료선교사를 중심으로 의료 선교 현황과 사역을 연구하고 종합한<현대 의료 선교학>이 출간됐다.ⓒ데일리굿뉴스 "선교의 놀라운 능력, 협력에서 비롯된다" 이에 심 선교사는 한국 선교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봤다. 그는 "의료파트간의 넒은 파트너십과 행정과 지원에 많은 협력이 요구된다"면서 네트워크를 통한 '연합'과 '협력'을 강조했다. 급변하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해야 한다는 게 그의 요점이다. 실질적인 방편으로 그는 의료 선교 관심자와 헌신자 7000명을 모으는 '7000네트워크운동'을 전개 중에 있다. 전 세계의 많은 의료선교사를 카톡에 초대해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중남미의 아이티까지 소식을 함께 전하고 나눈다. 카톡방을 매개로 선교에 관한 다양한 소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 가진 인프라는 무궁무진해요. 이들이 가진 경험들이 한데 모아지면 한국 선교의 엄청난 자산이 되겠죠. 네트워크는 선교현장에서 겪을 상당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어요. 선교 현장이 열악하다 보니, 선교사 자신이 전과 전문의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죠. 이제는 카톡방을 통해 서로 의료 자문을 구하고 병원을 연계해주면서 점차 협력을 도모하고 있어요." 선교사들을 한데 모으는 촉매 역할을 자청하고 나선 심 선교사. 그는 선교의 동력이 자꾸 떨어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한국 선교가 재부흥할 기회라고 봤다. 앞으로도 그는 의료 선교의 활성화를 위해 자신의 경험을 끊임없이 공유하겠단 다짐이다. "선교의 위기라고들 하지만 오히려 기회라고 봐요. 마치 요셉의 7년 흉년처럼 지금은 의료 선교 부흥을 위한 풍년의 준비 시간인 거죠.이 때 부족한 걸 메우고 회개하고 성찰하며 재도약을 위해 숨을 골라야 해요.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쓰이도록 의료 선교의 밑거름이 되길 원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서포트해주며 그 사람이 가진 잠재력을 사역에 쓰게끔 이끌어 주고 싶습니다."

최상경 기자2018-11-01

최근 헬멧을 녹일 정도의 화마에서 3세 남아를 구조한 소방대원들의 사연이 화제다. 어느 누구도 뛰어들지 않을 뜨거운 불길 속에 들어간 대원들의 살신성인에 감동의 여운이 계속되고 있다. 엄혹한 현실 속, 큰 감동 선사 "시뻘건 불길이 건물 전체를 삼킬듯 타오르고 시커먼 연기가 눈 앞을 가릴 정도였습니다." 화마(火魔)의 위협에도 오직 아이의 안전을 위해 몸을 던진 강원 홍천소방서 김인수 구조팀장(소방위). 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긴박했던 순간을 전했다. 홍천소방서 상황실에 화재신고가 접수된 건 지난달 28일 오후 5시 18분 경. 홍천읍 한 빌라 4층에서 불길과 시커먼 연기가 치솟고 있다는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김 팀장은 "출동 지령이 내려질 때 '아이가 집에 혼자 있다'는 아이 엄마의 말을 듣는 순간 예전에 춘천의 한 산부인과 화재현장서 신생아 4명을 구조한 경험이 떠올랐다"며 "뜨거운 열기 속에 고통 받고 있을 아이의 안전이 우선적으로 걱정됐다. 오로지 '이 아이를 정말 구해야겠다'는 신념만 가지고 현장에 출동했다"고 전했다. 경력 27년 차 베테랑인 그도 이번 구조는 긴박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화염과 연기가 바깥으로 치솟을 만큼 '최성기' 상태였고, '집안에 아이가 있다'는 얘길 들은 대원들은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대원들은 인명구조 2개조 4명, 화재진압 1개조 2명으로 나눠 진압 팀의 엄호 속에 아이 구조에 나섰다. 가까스로 안방 진입에 성공한 대원들은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김 팀장은 "거센 불길에 거의 엎드리다시피 해서 안방까지 갔다"며 "아이를 들어보니 축 처지길래 '큰일났다' 싶었다. 다행히 호흡이 있었고 살아있으니 어떻게든 구해내자는 생각뿐이었다"고 밝혔다. 그 후 건물을 어떻게 빠져 나왔는지는 기억도 나질 않는다며 긴박했던 순간을 설명했다. 아이 구조 과정에서 크고 작은 부상도 속출했다. 박동천 소방장은 구조대원들의 진입을 돕다 왼쪽 뺨에 2도 화상을 입었다. 당시 착용했던 헬멧은 화염에 녹아내려 새카매졌고, 반듯했던 표면이전부 울퉁불퉁하게 뒤틀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박 소방장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아이가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라며 "화상을 입긴 했지만 걱정할 만큼 심하지 않고, 치료를 받고 왔으니 괜찮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화염으로 녹아내린 헬멧(사진제공=강원도소방본부) 현재 아이는 소방관들의 발 빠른 구조와 응급처치 덕분에 의식을 되찾고 회복 중이다. 소방대원들 앞으로 격려 전화 쇄도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응원과 격려가 쏟아지고 있다. 누리꾼들 사이에선 '진정한 영웅이다', '아름답고 고귀한 노고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등의 반응이 뜨겁다. 소방대원들 앞으로 격려 전화가 쇄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익명으로 치킨과 피자 등 간식을 선물하는 경우도 많다. 강원도소방본부와 홍천소방서 홈페이지 '칭찬합시다' 코너에는 소방관들의 용기와 노고를 칭찬하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시민들의 관심과 칭찬에 소방대원들은 감사의 뜻을 표했다. 김인수 팀장은 "다른 소방관이었어도 그런 상황이면 분명히 같은 일을 해냈을 것"이라며 "그저 이번 일이 크게 이슈가 돼 쑥스러울 따름이다. 응원과 격려에 힘입어 국민들에게 더 다가가고 헌신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서 PC방 살인 사건 등 엄혹한 현실을 사는 지금, 한 생명을 위해 죽음과 사투하는 소방대원들의 이야기는 훈훈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한진식 기자2018-10-16

6.25전쟁 고아들의 실화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이달 31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를 제작한 추상미 감독을 만나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쟁 상처를 매개로 사랑 나눈 '러브 스토리'" 6.25전쟁 중이던 1951년, 북한은 전쟁을 이어가기 위해 동유럽 사회주의 동맹국들에 전쟁 고아들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이렇게 해서 러시아와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 지역에 수천 명의 북한 고아들이 보내졌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8년 간 폴란드에 머물다가 다시 북한으로 송환된 1천5백여 명의 북한 고아들을 조명했다. 메가폰을 잡은 추상미 감독은 산후 우울증을 앓던 중에 꽃제비의 실상을 보고 북한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고, 얼마 뒤 폴란드로 보내진 고아들의 이야기를 접했다. 이 북한 고아들의 이야기는 장편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소재를 찾고 있던 추 감독에게 깊은 영감을 줬다. 추 감독은 본격적으로 폴란드에서 아이들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들을 부모의 사랑으로 품고, 여전히 이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폴란드 선생님들을 만나게 됐다. 추 감독은 "폴란드는 1950년대 당시 유신론 사회주의 체제였고, 북한 고아들을 맡았던 선생님들은 모두 신앙심이 깊은 분들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생님들 역시 제2차 세계대전이란 전쟁의 상처를 경험했다"며 "고아였던 빈민 출신의 선생님들이 이 북한 고아들을 맡아서 양육한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폴란드 선생님과 북한 고아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10월 31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사진제공=커넥트픽쳐스) "전쟁 고아에서 탈북자로 이어지는 분단의 비극" 폴란드 선생님과 북한 고아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는 여정에는 탈북 소녀도 동행했다. 추상미 감독은 "분단의 비극이 6.25전쟁 당시 전쟁 고아들에게서 시작됐고, 이 비극이 대물림되어 이제는 탈북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러한 비극이 우리의 현실과 얼마나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고 전했다. 영화에는 여정에 동행했던 이 탈북 소녀가 60여 년 전 북한 아이들을 품었던 폴란드 선생님을 만나 회복되는 모습도 담겼다. 추 감독은 "이 소녀가 초반에는 마음을 닫고 있었는데 폴란드 선생님들이 반겨주고 안아주니까 깊이 박혀있던 상처가 많이 치유되고, 정체성도 회복한 것 같다"며 "영화 준비 과정에서 의도했던 내용은 아니었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느껴 이 내용을 그대로 영화에 담았다"고 고백했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이번 영화의 주인공이나 다름 없는 북한 고아들 중 한 명의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폴란드로 보내졌던 북한 고아들 중에 성인이 되어 북한을 떠난 탈북자가 있었던 것이다. 추 감독은 "그분을 꼭 만나보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작년에 돌아가셨다"며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폴란드로 이민을 가기 위해 준비하고 계셨다고 들었는데, 그런 걸 보면 그곳을 무척 그리워하셨던 것 같다"고 전했다. ▲함께 지냈던 북한 고아들을 회상하며 눈물을 훔치는 한 폴란드 선생님. (사진제공=커넥트픽쳐스) "증오·상처 극복하고 사랑 실천한 이들의 선한 이야기"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지난 4일 개막했던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화제작으로 주목을 받았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한국인 아이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아 깊은 울림을 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추상미 감독은 "시대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는 영화를 만들라는 소명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며 "이번 영화에서는 상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조명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추 감독은 "폴란드 선생님들은 전쟁으로 인한 아픈 상처를 온통 다른 민족을 품는 데 선하게 사용했다"며 "이들이 상처를 극복하고 북한 고아들에게 사랑을 쏟아부었듯이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컴패션, 즉 연민으로 결국 북한을 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인경 기자2018-10-03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면 과연 어떻게 대답할까.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기독교인은 아마 드물 것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자신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신앙은 허공에 빙빙 도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신앙이 자리잡는다고 생각해, 기독교의 다섯 가지 기초 개념을 문답식으로 정리한 <소교리문답>을 펴냈다. 최근 이를 번역한 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를 만나 루터가 전하는 기독교의 핵심 가르침에 대해 들어봤다. 마르틴 루터가 가장 아꼈던 저서…평신도의 신앙 안내서 <소교리문답>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생전 수백 권에 달하는 저서를 저술할 만큼 다작가였다. 루터는 그러나 "그 가운데 남길 만한 책은 대교리문답서와 소교리문답서, 그리고 노예의지론"이라고 할 만큼 이 세 권의 책을 특별하게 생각했다. '평신도의 성경'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오랫동안 한결같이 사랑받은 이 책은, 루터가 14세기 당시 교회 성직자들과 성도들의 무지함을 보고 충격을 받아 펴낸 신앙 안내서다. 14세기 중세교회는 예배가 형식화되고 미신화된 시기였다. 유럽에 흑사병이 몰아치면서 시신을 수습하던 사제들이 다수 사망하자, 교회는 10년 간의 사제 교육과정을 전부 생략하고 주교의 안수만 있으면 사제가 될 수 있도록 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라틴어로 된 성경조차 읽지 못하는 사제들이 대거 생겨났는데 이들이 할 수 있었던 건 그저 사람들에게 예배에 많이 참석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 뿐이었다. 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는 "그 당시에는 예배에 참석하기만 하면 은혜를 받는다는 공식이 있었을 정도"라며 "심지어 한 사제가 하루에 담당한 예배가 30번까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했다. '질문하고 소통하라'는 루터의 가르침…오늘날 한국교회는? 최주훈 목사는 이런 점에서 한국교회가 14세기 중세교회와 굉장히 닮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목회자에 대한 순종이 마치 하나님에 대한 순종으로 가르쳐지는 오늘날 한국교회에선, 교인들이 질문이 생기더라도 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설교를 지나치게 맹신하고 스스로 성경을 찾아 읽지 않거나, 질문하지 않는 교인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최 목사는 "지금 한국 기독교는 한쪽에서는 목회자를 전적으로 숭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목회자의 권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아, 극진보와 극보수만이 남은 것 같다"며 "이는 어느 순간부터 교회에서 성경 말씀을 놓고 질문하고 토론, 논쟁하는 풍경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마르틴 루터의 <소교리문답>이 이러한 한국교회에 토론의 장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최 목사는 전망했다. 그는 "일상에서 생겨나는 교회, 신앙에 대한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루터가 가장 강조하는 그리스도인의 태도"라며 "질문에 명확히 답변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삶에서도 말씀을 실천할 수 있을 것"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싸워도 다시 얼굴을 마주하고 밥을 먹는 식구처럼, 교회에서는 서로를 포용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목사는 "신학적으로 교회는 성찬 공동체인데, 이를 쉽게 풀이하면 식구"라며 "때로 치고받고 싸우기도 하지만 그리스도 몸 앞에 앉아 서로 다르지만 사랑 안에서 포용하는 교회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윤인경 기자2018-10-01

러시아에서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은 심각한 사회문제다. 손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는 데다가, 최근에는 화학적 조합으로 마약 성분을 수십 배 높게 만든 고농도 마약이 등장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고 있다. 러시아 서부 시베리아 지역 톰스크 시에서 20년째 사역을 펼치고 있는 티호노프 알렉 목사 역시 한 때 중증 마약 중독자였다. 하나님을 만난 뒤 불가능할 것 같았던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 과거 자신과 같은 중독자들의 치유를 돕는 일에 힘쓰고 있는 알렉 목사를 서울 용산구 한 교회에서 만났다. 기독교인 5% 미만…'복음의 불모지' 러시아서 30개 지교회 세워 러시아 톰스크에 최초로 세워진 개신교 교회인 찬양교회는 오순절교회연합 교단 소속이다. 20년 전 아파트 한 칸 방에서 시작된 찬양교회는 현재 1천 명의 교인들이 다니는 교회로 성장했는데, 러시아 내 기독교인이 5%가 채 안 된단 점과 그마저도 대부분이 러시아 정교회를 믿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부흥이다. 러시아 정교회의 텃밭 가운데 우뚝 선 톰스크 찬양교회는 티호노프 알렉 목사와 그를 찾아온 몇몇 마약 중독자들의 모임에서 시작됐다. 20대 초반 장난 삼아 해본 마약에 중독돼 10년 간 빠져나오지 못하다가 마침내 하나님을 만나 치유된 알렉 목사는 과거 자신과 같은 중독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역을 시작했다. 그 동안 수많은 마약 중독자들을 마주했을 알렉 목사. 그에게 '하나님을 만나고 극적으로 변화된 사례가 있는지'를 묻자 그는 한 영상을 보여주며 주저 없이 자신이라고 소개했다. 영상은 1999년 당시 시베리아 아친스크시의 교회부설 재활센터에 들어간 알렉 목사를 인터뷰한 것이었다. 머리카락을 밀고 야윈 모습을 한 20년 전의 알렉 목사는 자신을 중증 마약 중독자로 소개하고 있었다. 그는 영상에서 "거의 모든 마약 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아봤지만 퇴원한 지 한 시간도 안 지나 다시 마약을 시작했고 오히려 중독이 더 심해졌다"며 "10년 동안 마약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살까지 시도하다가,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마약 중독에서 벗어난 알렉 목사는 찬양교회를 세우는 한편 톰스크 시내 곳곳에 재활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현재 남성과 여성, 어머니와 자녀가 함께 있을 수 있는 센터 등12개 마약재활센터를 운영하며 마약 중독자들의 갱생과 회복에 힘쓰고 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재활센터와 비교할 때 다른 점은 무엇보다 모든 치료법에 예수님이 빠지지 않는단 점이다. 일반적으로 재활센터에서 수면제, 소량의 마약 성분이 포함된 약 등 약물 치료를 병행하는 것과 달리, 교회 재활센터에선 4~6개월 동안 성경과 찬양, 설교와 교제 모임이 이뤄질 뿐이다. 하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재활센터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다시 중독에 빠지지 않았다.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 성경 학교와 신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은 상당수 사람들은 크고 작은 도시 곳곳으로 파송됐다. 대부분 마약·알코올 중독자였다가 재활센터를 통해 치유된 이들 목회자들은 복음을 미처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들어가 수십 개의 지교회를 세웠다. 그리곤 노숙자와 중독자들, 그리고 각계각층의 러시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알렉 목사는 "우리 마음의 빈 부분을 하나님으로 채우지 않으면 다른 악한 것으로 채워지게 된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중독'"이라며 "마약·알코올 중독을 단순히 병이나 중독 증세가 아닌 영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섯 명의 자녀를 둔 알렉 목사. 성도들 또한 "아이 셋이 기본"이라는 찬양교회는 최근 어린이 예배를 세우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 "러시아 개신교회 부흥 위해 한국교회와 협력하고 싶어" 2년 전 한국을 처음 방문한 알렉 목사는 이번이 다섯 번째 방문이다. 이번 방문은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선교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가 인연을 맺은 평창군기독교연합회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알렉 목사는 "러시아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일하심, 마약·알코올 중독자들이 어떻게 주님을 믿고 삶이 변화됐는지를 나누고자 한다"며 "실제로 교회에서 많은 중독 치료 사례가 나타나는 걸 보고 러시아 의사들도 중독자들에게 교회를 소개하는 등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마약 중독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러시아 정교회조차도 개신교 교회가 맺은 사역의 열매를 보고 나서부턴 재활 사역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지난 6월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 교회를 방문한 평창군기독교연합회 회장 조장환 목사(평창중앙감리교회) 역시 중독자들이 치유되고 건강한 교회로 세워져가는 결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장환 목사는 "러시아는 정교회 외에 다른 종교활동이 쉽지 않은 나라인데 이렇게 교회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며 "특히 전도에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마약중독자와 노숙자들을 섬기는 사역을 보고 한국교회가 배울 점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알렉 목사도 한국교회와의 협력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짧은 기독교 역사에 비해 빠른 성장을 하고 많은 경험이 쌓여 있는 만큼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며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시작된 관계의 끈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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