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정 기자2017-07-03

한국에서 최고의 부흥강사로 이름을 알렸던 이병호 목사. 그러나 지금은 일본에서 유니온교회를 세워 노숙인들을 섬기며 '오사카의 밥퍼 목사'로 불리고 있다. 최근에는 목회자 회복을 위한 신학교를 설립해 사역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이 목사를 직접 만났다. "노숙자들, 마치 내 모습 보는 것 같아" 한국의 대표 부흥사 중 한 명이었던 이병호 목사.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강단 앞에 서는 것이 힘들어졌다. 하나님 말씀에 중점을 두지 않고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제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성도들은 하나님이 제게 주신 어린 양인데 그 것을 알지 못한 거죠. 어느 순간부터는 밖에 나가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지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죄책감과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던 때, 이 목사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바로 故 신현균 목사였다. 당시 일본선교에 앞장섰던 신현균 목사의 사역에 감화를 받아, 신 목사를 따라 일본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이후 우연히 노숙자들에게 설교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고, 이병호 목사는 노숙자들의 삶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노숙자들 대부분이 정상에 있다가 하루아침에 노숙자 신세로 내려앉게 ▲이병호 목사 된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의 모습이 마치 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빈털터리인 노숙자들의 모습이 하나님이 제게 주신 '양'이라고 느껴졌죠." 그 때부터였다. 이병호 목사는 비로소 일본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믿음의 눈으로 노숙자들을 바라보게 됐다. 진정으로 영혼을 살리고 싶다는 마음, 목회자로서 신앙을 시작했었던 '첫 사랑'을 회복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누구한테 손 내밀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돈으로 노숙자들을 섬기기 위해 한 두 명에게 무료로 밥을 제공했고, 지금은 매일 오후 5시면 찾아오는 200여 명의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한 끼를 대접하고 있다. 식사만 제공하지 않는다. 반드시 식사 전에 예배를 드리며 영혼구원에도 힘쓰고 있다. 노숙자들도 처음에는 밥만 먹으러 왔지만 매 시간 듣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 변화되고 있다. '아멘' 조차 하지 않았던 노숙자들의 입에서 이제는 '아멘'이 끊임없이 고백되며 마약과 술, 자살이란 음지에서 벗어나고 있다. 성도들의 변화는 놀라울 정도. 교회 예배당 구석에 놓여있는 헌금함에는 수면제와 술, 마약이 놓여져 있다. 노숙자들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려고 가지고 있던 것들을 헌금함에 넣으면서, 이전의 삶을 끊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것이다. 최근 이병호 목사는 10여 명의 목회자들과 함께 자비를 털어 USI 신학대학교도 세웠다. 예수님의 3대 사역인 말씀과 전도, 치유사역을 중심으로 균형 잡힌 목회자를 세우고픈 마음에서다. "한국교회가 많이 병들었다고 생각해요. 성령을 체험하지 않고 성령을 외치는 목회자들이 많고 영적으로 메마른 목회자들이 늘고 있죠. 이런 목회자들을 누군가가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나선 거죠." 끝으로 이병호 목사는 "하나님이 12명의 제자를 세워 세계를 복음화 시켰듯 나 또한 목회자 양성에 힘써 '진정한 목회자'를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김주련 기자2017-07-06

몇 해 전, 범죄를 저지르고 법정에 선 청소년들에게 호통을 치는 판사의 영상이 SNS상에서 큰 화제가 됐었다. 영상 속 주인공은 바로 천종호 판사다. 비행을 저지른 소년범과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차갑기만 한 요즘, 천 판사는 죄를 저지른 아이들을 엄벌하기 보다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먼저 헤아린다. '소년범 대부'로 불리는 천종호 판사의 특별한 이야기를 신앙계 7월호를 통해 들어봤다. "청소년들 변화 위해 호통 치기 시작" 무리지어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일진'들에게 호통을 치고, 사건을 무마하기에 급급한 부모와 교사들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판사. 소년원으로 송치되는 열일곱 살의 미혼모에게 배냇저고리를 선물하고, 배가 고파 돈을 훔친 자매에게 용돈 넣은 지갑을 건네주는 판사. 법정 밖에서는 인자한 아버지 같은 천종호 판사가 법정 안에서는 호통 판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2010년 창원지방법원으로 발령 났을 때 소년재판을 처음 맡게 됐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소년재판을 여는데, 평균 100명 정도의 아이들을 만납니다. 한 명당 3~4분 안에 이름 부르고 범죄사실 읽고 처분 내리기도 모자란 시간이죠. 그 짧은 시간 안에 아이들에게 법정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다음에 다시 오면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지 얘기해줘야 하는데, 그 아이들은 부모, 교사, 경찰, 검사에 대해서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를 소년원으로 보낼 수 있는 판사를 무서워합니다. 그래서 호통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효과는 그야말로 성공적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소년범과 보호자에게 조그만 깨우침이라도 주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 중에 몇몇 소년범들은 "마치 아버지한테 사랑의 질책을 당한 것 같아 속이 후련했다"고 하는 아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천 판사는 2010년 6월부터 소년재판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깨진 가정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이 복지와 교육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을 알게 됐다. 가정이 해체되면 가장 먼저 아이들이 타격을 입는다. 근로를 할 수 없는 아이들은 돈이 필요한데 줄 사람이 없고, 보살펴줄 부모가 없어 비행청소년이 되기 쉬운 환경에 노출되는 것이다. “비행청소년들은 아무도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 주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은 투표권이 없는 이들에게 별 관심이 없어요. 사회도 마찬가지고 교회도 똑같습니다. 교회에도 못 오게 합니다. 다른 아이들을 물들인다는 이유 때문이죠. 투명인간 취급을 받습니다." "아이들, 사랑과 신앙으로 변화시킬 수 있어" 천종호 판사는 초등학생 때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갔다. 그 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중고등부 회장 등을 하며 신앙생활을 했다. 그는 현재 장로로 시무하는 금정평안교회에서도 비행청소년들을 돌볼 뿐 아니라 부산 경남 지역 세 곳에 비행청소년들을 위한 교회를 만드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얼마 전 천 판사는 청소년들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만나 '사법형 그룹홈(청소년회복센터)'를 만들었다.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이 다시 비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대안가정을 만든 것이다. 그는 사법형 그룹홈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청소년복지지원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의원 300명에게 직접 편지를 써 보냈다. 법안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관계 부처 사람들을 만나 설득하는 작업을 한 끝에 겨우 법안이 통과 됐다.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법 통과 당시 예산을 신청하지 말라는 조건을 달았다.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만들 수 있는 초기 비행청소년이 전국에 수만 명이 있고, 그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가정입니다. 현재 180명을 돌보는 19군데의 사법형 그룹홈이 있습니다. 그중 16군데가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대안가정을 이뤄 아이들을 돌보고 있죠. 은퇴한 크리스천분들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양육하며 좋은 멘토 역할을 해주면 아이들이 변화됩니다. 더 많은 사법형 그룹홈이 생기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에 소년들만 생각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만사소년'이란 그의 별명처럼 천 판사는 청소년들을 위한 평생 기도제목도 갖고 있다. "사법형 그룹홈에 더 많은 크리스천 가정이 생겨났으면 합니다. 목사님, 장로님들이 공동체를 만들고 사회교육, 신앙교육을 통해 아이들을 사랑으로 양육한다면 우리 청소년들에게 미래가 있습니다. 국가와 교회가 나서야 할 땝니다. 아이들은 사랑과 신앙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한연희 기자2017-06-25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은 '신도수 14만 4천명 달성'이란 조건부 종말론을 내세우며 급성장했다. 이단전문가들은 신천지가 목표로 한 인원이 어느 정도 채워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교묘하고 공격적인 포교 활동으로 정통교회를 위협하고 있는 신천지의 실태를 신천지대책전국연합 신현욱 목사에게서 들어봤다. "17만 명 넘어선 것으로 예측" 신현욱 목사는 "초창기에는 교적부를 써서 낸 사람들로 해서 딱 14만 4천 명이 목표였다"면서 "그 교적부를 채우기 위해 한 지파당 1만 2천 명씩 열심히 매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젠 그 숫자를 넘어서 17만 명 정도가 됐다”며 “그러다 보니 교리가 바뀌었다. 14만 4천의 기준이 까다로워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천지는 14만 4천 명 안에 들어가는 기준을 '신도'에서 '인 맞은 자'로 바꿨다. 6개월간 신천지 교리 교육을 받은 수료자들을 '인 맞은 자'라 칭하는데 이들 14만 4천명이 모여야 완성된다는 것이다. 신 목사는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울수록 미혹의 역사는 더 횡행할 것"이라며 "잘못된 교리에 중독이 되면 직장을 포기하고 심지어 가출하고 이혼하고 가정을 파탄을 내면서도 모르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이영호 목사(사이비종교피해대책연맹)는 "교주의 말만 들으면 천당 가고 구원 받는 것으로 인식을 하기 때문에 사회적 죄악에 대한 인식이 없다"고 말했다. 이단 전문가들은 "신천지의 조건부 종말론이 신도들로 하여금 전도인 추수에만 매달리게 한다"며 "때문에 가정 파괴와 사회분열 등 심각한 피해를 초래한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위장교회 형식으로 정통교회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으며, 청년들을 주요 타깃으로 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만희 교주 사후 집단 탈퇴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상담 및 신앙 재교육을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신 목사는 "잘못된 성경공부, 이단 사설을 분별하지 못해 빠진 거니까, 그들에게 성경을 통해 바로 복음과 진리를 깨우쳐서 돌아오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만희 교주 사후에 집단으로 신도들이 탈퇴할 때가 반드시 오기 때문에 그때를 대비해야 한다"면서 "전문 상담사들을 양성하고 상담소를 많이 세워서 그들이 나와서 방황하는 일들이 없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신현욱 목사와의 자세한 인터뷰 내용과 신천지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GOODTV 글로벌선교방송단 미니다큐 〈구리초대교회 편-신천지 해부, 비상구는 있다〉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한연희 기자2017-07-11

새날교회 박철수 목사는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맞벌이, 편부모 가정의 청소년들을 위한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중요한 청소년 시기에 방황 대신 배움에 집중하고 복음도 접할 수 있도록 지역교회가 나선 사례다. 평일엔 선생님, 주일엔 설교자로 20년 살아온 박철수 목사를 만나봤다. 안양에서 공부 돌봄 20년 경기도 만안구에 위치한 새날교회의 바로 위층에는 새날공부방이 있다. 들어가면 수업용 하얀 보드판, 칸막이 책상이 늘어 서 있다. 책장에는 중고등학교 청소년 필독서가 꽂혀져 있고 작은 부엌과 냉장고도 구비되어 있다. 여기 위 아래층이 바로 박철수 목사의 사역 터다. 새날공부방 박 목사(새날교회)는 “주변엔 맞벌이, 편부모, 가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이 많다”면서 “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갈 데 없이 떠도는 것을 막고 자기의 꿈을 꿀 수 있도록 만들어야 겠다 생각해서 공부방 사역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학교 공부에 맞춰 복습하는 것과 시간관리법을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다”면서 “국어, 영어, 수학은 내가 직접 가르치고 나머지는 스스로 하는 자기주도형학습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목사는 1997년 안양에서 개척해 이듬해부터 공부방 사역을 진행해왔다. 올해 교회 창립 20주년이니 공부방 역사도 거의 비슷한 셈이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시간동안 무료로 청소년을 보듬는 사역을 해낸다는 것은 말 그대로 쉽지 않은 일이다. 이 특별한 부르심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궁금했다. 그는 “아내가 첫 아이를 낳고 1년 정도 후에 중추신경계 이상으로 한쪽 몸이 마비됐다. 그래서 목회 전략을 바꿨다.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데리고 거리 전도를 하고 심방을 다닐 수 없으니 교회로 부모들을 올수 있게 해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형편상 직장을 놓을 수 없는 부모들은 방과 후 혼자 있을 자녀들 생각에 늘 걱정과 조바심을 달고 산다. 그런 상황에서 세상 유혹이 차단된 교회에서 식사도 하고 공부도 한다면 안심이 되고 고마운 마음이 절로생긴다. 게다가 인성과 학습능력이 좋아지면 교회를 찾게 된다. ▲박 목사와 아이들이 책상에 둘러 앉아 기말시험의틀린 문제를 점검하고 있다.ⓒ데일리굿뉴스 "나도 돌봄이 필요했던 청소년기 보내" 또한 박 목사 자신도 청년시기 공부 돌봄을 경험했던 사람이다. 전라북도 임실 농촌마을에서 자랐지만 청소년 시기 공부에 대한 열망은 누구보다 높았다. 하지만 부모님은 농사일로 새벽에 나가셨다 날이 어두워져야 돌아오셨다. 그래서 또래들과 의기투합해 공부모임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꿈을 키웠다. 박 목사는 “20대에 서울에 올라왔는데, 주변이 내 고향 모습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며 “도시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부모의 관심에서 멀어진 아이들이 방황하고 떠도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역이 꼭 필요하겠구나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적 위주의 학교생활에서 집안형편과 낮은 성적으로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경우가 많은데, 공부방에서 회복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면서 “공부방에서 단체생활을 배우고 공부에 관심을 갖게 되니까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자존감이 높아지니까 복음에 대해 눈을 뜨고 인성도 달라졌다”면서 “주일엔 학생과 부모님이 함께 예배드리도록 독려하고 있는데, 잠깐의 시간동안에도 학생들이 정서적 치유를 받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박 목사는 최근 GOODTV뉴스를 통해 소개된 박정현 씨의 아버지이기도 하다.카페를 운영하면서 지역 아이들을 섬기고 넉넉치 않은 수입으로 미자립교회도 돕는 신학생 박 씨의 사연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박 목사 역시 성도가 몇 되지 않는 작은교회다보니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사역을 놓지 못한 이유는 단 한가지. 그는 “여러번 포기하고 싶었지만 사역을 놓지 못한 이유는 아이들의 간절한 눈빛 때문이다”면서 “‘여기가 전부’라고 말하는 그 눈빛을 보면서 나도 인내하고 버티고 감당해낸다”고 말했다. 박 목사와 학생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새날공부방에서 선생님과 학생으로 만나고, 주일엔 새날교회에서 목사와 성도로 만난다. 평일예배에 학생들이 제법 참석을 많이 하는데, 아무래도 공부하기 싫어서 예배를 선택하는 것 같다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새날교회를 찾아가는 길에 크고 아름답게 지어진 중대형 교회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띄었다. 그에 비해 새날교회는 간신히 간판하나 달고 있을 만큼 작고 협소했다. 하지만 강했다. 박 목사는 가난한 개척시기부터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끌어안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섬김과 사랑을 누구보다 강인하게 실천하고 있었다.

김주련 기자2017-07-21

한국에서의 안정된 직장을 과감히 내려놓고, 청년 때의 꿈을 이루기 위해 1997년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사람이 있다. 바로 정재훈 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미국 엔지니어 회사의 말단 직원으로 시작해 22년 만에 최고 경영자가 된 그는 2013년 '자랑스런 한국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런 그가 전세계에 이름을 널리 알리는 사건이 벌어진다. 정 박사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였다고 고백한다. 美 최악의 우주선 참사, '해결사'로 나서 1986년 1월 28일 전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최악의 참사가 미국에서 일어났다. 바로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가 민간인 교사를 포함, 총 7명의 우주인을 태우고 출발했지만 이륙 72초 만에 폭파돼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2003년 임무를 마친 7명의 우주비행사를 태우고 귀환하던 컬럼비아호가 폭발한 사건도 있다. 급저온 상태에서 생긴 얼음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한 이는 누구였을까. 바로 정재훈 박사다. "실시간으로 우주선이 폭파되는 장면을 보고 저 또한 큰 충격에 빠졌어요. 안타까움을 가지고 새벽기도를 드리는데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도우라고 하셨고, 해결할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챌린저호는 고체연료누출방지 장치의 결빙이 폭발원인이었는데, 저희 회사가 개발한 열조정장치가 해법이 됐죠." 이후 컬럼비야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정 박사는 하나님이 지혜를 쥔 방안을 가지고 6시간을 비행해 나사를 방문했다. "관계자가 난색을 표하더군요. '이미 2달간 수십 명의 석학들, 과학자들이 달라붙어 1안, 2안까지 진행돼 90% 정도 문제해결 방안이 완성돼 당신의 방안은 쓸모가 없다고 했어요.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6차례나 나사의 문을 두드렸어요."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 2안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3안으로 밀려났던 정 박사의 방안이 최종안으로 채택된 것. 정 박사에 의해 수정된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가 2005년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이 일로 그는 나사로부터 '기적의 사나이'란 호칭을 듣게 됐다. 아내와 수십 년간 새벽기도 드려 정재훈 박사는 이 모든 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고백한다. 한때 무역회사 상무로도 일했던 정 박사는 고등학교 일기장에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어 인류의 기쁨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다짐의 글을 발견하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1997년 아내 정정숙 권사와 어린 두 딸을 데리고 단 돈 4천 달러를 가지고 미국으로 이민을 결정했다. 그는 테이코 엔지니어링에서 시급 4달러25센트를 받는 말단 제도사로 입사했다. 이후 3년 만에 치프 엔지니어, 7년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 2000년부터는 창업자의 간곡한 부탁으로 CEO가 되어 회사를 성장시켰다. 이 모든 과정 속에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내와 함께 드린 새벽기도가 있었다. "매일 새벽 4시 15분이면 눈이 떠지고, 4시 30분부터는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새벽에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지는 은혜, 말씀과 기도로부터 얻어진 셀 수조차 없을 정도의 응답이 제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가 됐어요. 그래서 지금도 매일 밤, 내일새벽 주님께서 또 어떤 말씀을 하실지 설레는 마음으로 잠이 듭니다." 정 박사와 아내는 수십 년간 새벽을 하나님께 드리며 나아갔을 때 이처럼 많은 주님의 역사하심을 목격했다. 복음의 씨앗이 심겨져 예수님과 멀어졌던 여학생이 돌아오게 된 일, 방속국 PD와 스텝들이 정 박사 부부를 24시간 동행취재를 하다 주님을 영접하게 된 일, 인생의 목적을 잃고 소망을 잃어버린 청년들이 주께 돌아오는 일을 만날 때마다 부부는 함께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저는 평소 다니엘서를 즐겨 읽습니다.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라는 말씀에 의지해 매일 지혜를 구합니다. 똑똑함과 우둔함, 잘남과 못남, 부유함과 가난함 등 세상의 가치는 종잇장 한 장 차이도 안 됩니다. 우주개발이란 어려운 과정 속에 그것을 절실히 체험했어요. 모든 가치는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정해집니다. 과학이란 무엇일까요? 피조물이 만들어낸 학문적 이론에 불과한 것이죠. 저는 다만 그 과학을 통해 기업을 경영하며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일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정재훈 박사의 자세한 신앙 스토리는 <신앙계> 8월호에서 만나볼 수 있다.

박은정 기자2017-07-13

최근 집중호우를 동반한 장마로 전국에서 교회들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건물 지하에 위치한 작은교회들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한 실정이다. GOODTV 선교방송교회인 광희교회도 물폭탄을 맞은 예배당을 복구하느라 안간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피해 현장을 직접 찾아가봤다. 재정도 어려워 복구작업 더뎌…도움 절실 교회에 물이 차기 시작한 건 2일 저녁 11시경. 주일예배를 마치고 목양실에서 잠을 자던 윤은혜 목사가 물 소리에 눈을 뜨며 현장을 목격했다. "잠을 자는데 무슨 물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너무 놀라서 문을 열고 예배당으로 나가보니 예배당 창문에서 물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런데 그냥 물이 흘러 들어오는 게 아니라 파이프에서 물이 나오는 것처럼 쏟아졌어요. 처음에는 혼자 물을 퍼내다가 물이 빠른 속도로 들어와서 결국 119에 전화 했죠." 교회가 지하에 위치해 있어 도로에 고인 빗물이 창문과 벽 틈새로 들어온 것. 119가 출동해 펌프로 교회 계단과 예배당에 있는 물은 다 빼냈지만 2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다. 예배당 바닥에 깔려 있던 장판들은 빗물에 젖어 다 들어냈다. 하지만 장판 본드가 바닥에 붙어 있어 걷기 조차 힘들 정도로 끈적거린다. 통풍도 제대로 되지 않아 선풍기를 아무리 돌려 봐도 예배당에 가득한 습기가 빠지질 않는다. "예배당에 물기가 많아서 너무 습하고 냄새가 심해요. 장판마저 ▲광희교회 윤은혜 목사 들어냈더니 시멘트 냄새가 그대로 올라오고 벌레도 자꾸 생겨 상황이 더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더욱 심각한 것은 윤은혜 목사의 건강 상태다. 윤 목사는 현재 예배당 한 켠 목양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데, 습기가 많고 공기도 좋지 않은 예배당에서 하루 종일 있다보니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있다. 하루빨리 예배당을 복구해야 하지만, 재정 상황도 어려워 복구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현재로선 외부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 올해로 설립 13주년을 맞이하는 광희교회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영혼구원 사역을 감당해 왔다. 여자로서 홀로 목회를 하며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이번 일은 도저히 감당하기가 벅차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는 윤은혜 목사. 하지만 윤 목사는 "이번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일어날 것이라 믿는다"며 "교회에 주어진 사명을 계속해서 감당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많은 어려움도 있었고 이번에 물난리도 겪었지만 영혼구원에 대한 저의 신념은 생명 다하는 날 까지 변치 않아요.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좌절하지 않고 성도들을 천국의 길로 이끌겠습니다."(후원계좌 : IBK기업은행 377-109154-01-016 광희교회)

박은정 기자2017-07-12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이 3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탈북민들의 한국 생활은 녹록지 않다. 이런 가운데 탈북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와주는 카페가 있어 찾아가봤다. 커피교육ㆍ사업 통해 탈북민 자립 기여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카페 길동무. 언뜻 보기엔 일반 카페와 다르지 않지만 이 곳은 탈북민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다. 카페 길동무는 예장통합 소속 목회자들이 설립한 사단법인 길동무의 주력 사업 중 하나다. 맨 처음 북한 장애인들을 위한 사업을 펼치다 최근 탈북자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카페 길동무가 사단법인 길동무의 첫 탈북민 지원사업인 것이다. 탈북민들의 바리스타 교육은 카페 운영 경험이 있는 최광선 목사가 맡았다. 탈북민들에게 1:1로 바리스타 교육을 진행하며 남한사회 홀로서기를 도와주고 있다. "카페 길동무는 탈북자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다리 역할'을 하고자 세워졌어요. 특히 카페라는 공간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평소 경험하지 못했던 문화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첫 사업을 카페운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던 탈북민들도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어느새 남한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 돼 가고 있다. 탈북민들의 마음의 문이 열리기까지 최광선 목사의 많은 노력이 있었다. 최 목사는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탈북민들에게 다가갔고, 교육을 진행할 때도 꾸중보다는 칭찬과 격려로 가르쳤다. 특히 탈북민들이 남한사회 일터에서 차별 받지 않고 기본적인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아르바이트생에게 주휴수당과 4대 보험을 제공하고 있다. '카페 길동무가 탈북민들에게 일하고 싶은 곳으로 소문나고 싶다'는 최 목사의 바람이 담겨있는 대목이다. "탈북민들에게 단순히 일자리만 제공해주고 싶지 않았어요. 정직한 사업 마인드도 함께 가르쳐주고 싶었죠. 그래서 카페 길동무가 먼저 기본적인 근무 형태를 맞춰주려 노력했고, 자신의 열정만 있다면 남한사회에서 충분히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카페 길동무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크리스천이 아니다. 최 목사는 직원을 채용할 때부터 신앙의 유무와 상관없이 열정과 성실성을 우선시했다. 대신 탈북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섬김과 나눔의 자세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체험할 수 있도록 일깨워주고 있다. 최광선 목사는 카페 길동무의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남북의 연결고리가 되길 소망하고 있다. 최 목사는 "탈북자들이 직접 카페를 창업해서 제2호, 제3호 카페가 세워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주련 기자2017-07-10

얼마 전 군종장교 제75기 임관식에서 국내에선 최초로 3명의 여성 군종장교가 임관해 화제가 됐었다. 그 중에서도 해병대 최초의 여성 군종목사로 선발된 이가 있다. 바로 이예림 중위다. 이 중위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진로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젊은 장병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품고,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군인이었던 할아버지 영향 받아 올해 초 대전침례신학대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이예림 중위는 지난달 30일 충북 영동 육군종합행정학교에서 열린 군종장교 제75기 임관식에서 중위로 임관했다. 오는 14일부터 경기도 김포 해병2사단에서 보격적인 군 생활을 시작하는 이 중위. 해병대 특유의 상징인 팔각모를 쓰고, 빨간 명찰을 달게 된다. 일명 '귀신 잡는 해병대'라 불리는 곳에 그것도 국내 최초 '여성 군종 장교'로 임관한 이유가 무엇일까. "할아버지께서 주임원사로 전역하셨어요. 어릴 때 군인이셨던 할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던 점이 영향을 미쳤죠. 그래서 군종장교로 지원했습니다." 여성 신학생들이 독자적인 사역을 하기보다 교회의 '사모'가 되는 사례가 많단 편견에 대해서는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당찬 대답이 돌아왔다. "삶에는 젊음의 시기가 있어요. 사모가 되거나 결혼하는 것보다 군종장교라는 기회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육군종합행정학교에서도 유격훈련, 사격훈련, 행군들 다 똑같이 받았어요. 발목 인대 부상이 심했지만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습니다." 젊은 장병들이 받아도 힘든 훈련들을 똑같이 받으며 어려움의 순간도 많았다. "가장 떨렸던 훈련이 화생방이었는데, 처음에는 방독면의 정화통을 제대로 교체하지 못해 가스를 거의 다 먹었어요. 그때 군대 내 목사님이 오셔서 정화통을 끼워주셔서 정말 감사했던 경험이 있어요." 해병대 최초의 여성 군종목사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는 이 중위. 하지만 앞으로의 사역을 감당할 당찬 포부도 밝혔다. "제 행동 하나하나가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 생각해요. 열정적이되 신중한 행동을 통해 군에 꼭 필요한 군종장교가 되고 싶습니다. 또 진로 고민이 많은 젊은 장병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해주고,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싶습니다."

박은정 기자2017-07-06

길거리를 걷다 보면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고 버려진 전도지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두 명의 목회자가 만화 전도지를 만들었다. 김디모데 목사와 김돈영 목사가 의기투합해 만든 <복음 메신저>가 그것. 쉽게 읽히면서도 복음의 핵심에 충실한 스토리로 해외 선교사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복음 메신저의 두 주인공을 만났다. 성경 핵심 교리 담아…해외 선교지서도 '인기'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만화 전도지 <복음 메신저>. 이 안에는 천지창조부터 십자가, 부활, 초대교회 등 성경의 핵심 교리가 모두 담겨 있다. 이 전도지는 성경만화로 인기를 끌었던 <성경 2.0>의 제작사 씨엠크리에이티브 이사 김돈영 목사와 카카오톡 예수님 이모티콘을 만든 예하운선교회 김디모데 목사가 함께 제작했다. 김디모데 목사가 만화 전도지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때, 씨엠크리에이티브 역시 전도지 기획을 앞두고 집필자를 찾고 있어 두 사람이 한 뜻으로 힘을 모으게 된 것이다. 이에 김디모데 목사가 집필을, 김돈영 목사가 제작을 맡았다. <복음 메신저>는 10페이지 분량의 올 컬러판으로 한 권 가격은 600원이다. 표지 뒷면에는 교회와 단체를 표기할 수 있는 스탬프 공란이 있으며 해외 현지 교회와 선교단체의 거리 전도용으로 배포하거나 비치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김디모데 목사와 김돈영 목사는 텍스트 위주로 된 기존의 전도지들이 길거리에 버려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생각하던 중, 사람들이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만화'를 전도지에 접목시켰다. 김돈영 목사는 "만화는 사람들에게 구독에 대한 부담감을 줄여준다"며 "여기에 만화가 갖고 있는 시각적인 표현과 재미 요소가 더해지면 비신자나 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만화라고 해서 내용이 빈약할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 김디모데 목사와 김돈영 목사는 '만화로 성경을 전하지만 말씀의 핵심은 빠트리지 말자'는 생각으로 한 컷 한 컷에 성경적인 의미을 모두 담아냈다. 특히 비신자들에게 어려운 내용은 스토리를 재구성하며 쉽게 다가가도록 노력했다. 김디모데 목사는 "책의 내용을 구성할 때 흔히 비신자들이 갖고 있는 '우리가 하나님을 왜 믿어야 하는가'란 질문에 해답을 전하고자 노력했다"며 "어려운 개념인 '부활'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당신과 영원히 함께하고자 부활했다'는 식으로 내용을 쉽게 풀어나갔다"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으로 완성된 <복음 메신저>는 해외 선교사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전도활동이 제한된 선교지에서 전도지 하나만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선교사들의 계속되는 번역 요청으로 <복음 메신저>는 현재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로 번역돼 판매되고 있다. 특히 '현지인들이 읽었을 때에도 모두 동일한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70여 명의 외국인들에게 번역 검토를 받으며 완성도를 높였다. 김돈영 목사는 "단순히 언어만 바꿔서 작업을 한 것이 아니라 현지인들의 문화에 맞도록 번역 작업을 했다"며 "일본어 번역본은 일본인 사모님이, 중국어 번역본은 중국인 전도사님이 작업에 직접 참여했다"고 말했다. 김디모데 목사와 김돈영 목사는 앞으로 10개 국어 번역 작업을 목표로 두고 있다. 이들은 "성경을 쉽게 이해하고 전할 수 있는 자료를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고 싶다"며 "판매 수익금은 미자립교회 도서기부 프로젝트에 사용하며 문서선교의 사명을 실천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복음 메신저>는 현재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로 번역돼 판매되고 있다.ⓒ데일리굿뉴스

박은정 기자2017-06-23

부산 포도원교회 김문훈 목사는 유머와 재치로 말씀을 풀어내는 목회자로 유명하다. 포도원교회도 그가 부임한 이후 성장을 거듭해, 지금은 부산 지역에서 손에 꼽히는 대형교회로 자리매김했다. 김 목사를 만나 포도원교회가 놀라운 변화를 겪게 된 사연을 직접 들어봤다. 재치 있는 입담, 구수한 사투리…'신선한 바람' 일으켜 흔히 포도원교회의 성장 비결을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김문훈 목사의 설교'를 이야기한다. 설교라면 지루하고 딱딱하기 마련인데, 김 목사의 설교는 성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쉬운 내용에 구수한 사투리가 더해져 '재미있다'는 것. "많은 현대인들이 생활에 지쳐 있는데 교회가 이들을 위로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설교를 좀 더 흥겹게, 신나게 하다 보니 성도들의 마음 속에 있던 한과 아픔이 다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아요. 제 설교 듣고 우울증을 극복했다고 고백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IMF 이후 한국사회가 침체 속에 빠져있던 때 재치 있는 김 목사의 설교는 교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웃기면서도 성경의 핵심내용이 담겨져 있어 많은 성도들이 좋아해 준 것 같습니다. IMF 영향으로 사회가 우울했던 시기였기에 더 성도들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포도원교회는 구제와 전도에도 힘쓰고 있다. 매주 특별강사를 초청해 찬양콘서트와 건강세미나, 간증집회 등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 농어촌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농어촌교회 80여 곳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80개의 전도팀이 부산 전 지역에서 활발한 전도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도팀원들은 모두 제자훈련을 받고 매주 거리에 나가 대상에 맞는 전도활동을 펼치고 있어요. 탁월한 전도활동으로 1년에 새신자가 3000명에 이릅니다." 김문훈 목사는 포도원교회를 일명 '포도당교회'라고 소개한다. 여기에는 성도들뿐 아니라 지역주민들에게 치유와 회복을 전해주는 교회가 되고 싶단 바람이 담겨 있다. "포도원교회에 오는 모든 성도들이 위로를 얻어 얼굴에 생기와 소망이 넘쳐났으면 좋겠습니다. 부산 지역을 대표해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늘 기도하며 노력하겠습니다."

김주련 기자2017-06-11

최근 기독교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1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한 영화,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 故 서서평 선교사의 헌신적 삶을 통해 감동을 전했던 이 영화에서 단연 주목을 받았던 배우가 있다. 바로 서서평 선교사를 연기한 윤안나 씨다. 20대 독일 소녀가 105년 전 ‘푸른 눈의 어머니’라 불렸던 서 선교사를 연기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신앙계 6월호를 통해 그를 만났다. “분단의 아픔 가진 한국, 독일 생각에 더 마음갔죠” 배우 윤안나 씨는 15살 때 독일에서 베트남 친구를 통해 한국문화를 접했다.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무작정 한국에 가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다. “마침 아버지가 장로로 계셨던 교회가 한국교회와 연결이 돼 있었어요. 한국과 독일이 교류하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주 동안 한국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문화유산의 장소를 방문하던 중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38선에 있는 DMZ를 보고 말로 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바로 지척에 있는 북한의 모습을 보며 분단의 실상을 깨달은 윤안나 씨.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었던 독일과 같은 아픔을 가진 한국에 더욱 마음이 갔던 것이다. 한국의 첫 방문 이후 한국에 다시 오고 싶은 마음에 5달 동안 밤낮 없이 한국어 공부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 해 여름방학 때 또 다시 한국을 찾았다. 한 달 동안 혼자 한국의 거의 모든 박물관을 갔고 한국문화와 역사를 공부했다. 그는 다른 과목 보다도 언어 공부에 매진했다. 전공도 신문방송학과를 선택했고 부전공으로 한국학을 공부했다. 윤 씨와 한국과의 인연은 5년전 그가 한국영화와 배우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행을 결정하며 이어졌다. “평소 한국영화가 너무 좋았고 배우에 대한 꿈이 있었어요. 기회가 왔을 때 기도의 응답이라 생각하고 잡았죠.” 서서평 역할, 예수님 사랑·인생의 모토 깨닫게 해줘 배우의 꿈을 키워오던 윤 씨는 지난해 7월 영화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를 만나게 된다. 독일 대학 재학 시절 한국학과 조교로 일하며 인연이 된 한국인 교수의 권유로 서서평 선교사 역할에 지원하게 된 것. “사실 사람들이 한국에서 네가 맡을 만한 역할은 외국인 며느리 정도의 한정된 역뿐일 거라고 해서 낙심하게 된 일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한국에 머물고 있는 집 어머니께서 ‘한국 역사를 보면 외국인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일군 것들이 많았다’며 ‘네가 꼭 그런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너무 훌륭하신 서서평 선교사님을 만나게 된 것이죠. 많은 격려가 됐어요.” 그는 서서평 선교사를 통해 진정한 예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또 배우로서의 인생 모토를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같은 독일인으로서 부끄러웠어요. 서서평 선교사님의 삶을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됐거든요. 제 삶을 되짚어보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서 선교사님이 남긴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라는 말처럼 감사로 시작했던 첫 마음을 기억하고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김준수 기자2017-06-09

북한 노동당 간부였던 남명혜 대표가 우리나라에 정착한 지 올해로 9년. 탈북 직후 중국에서 밀고 당해 북송됐던 그는 기적적으로 탈출에 성공했고, 현재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에서 탈북민들의 자립을 돕는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탈북민들이 올바른 신앙 안에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힘이 돼주고 싶다는 남 대표를 만났다. "정성스레 키운 토종닭으로 탈북민 자립 도와요" 올해로 탈북 9년 차인 남명혜 대표는 탈북민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2015년 9월 'Jesus Power System'(이하 JPS)을 설립했다. 북한에서 17년간 총괄수출입과장으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토종닭과 기러기 등 가금류와 포도 효소, 된장ㆍ고추장 같은 발효식품을 생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노동당 간부였던 남 대표가 탈북까지 하게 된 건,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불경한 언급' 때문이었다. 함께 일하는 당 간부에게 지나가듯 건넸던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중에 역사는 김정일 장군님을 용서할까요?"란 한 마디에 정치범으로 몰려 쫓기듯 두만강을 넘어야 했다. 사선을 넘어 가까스로 도착한 중국에서도 고난은 계속됐다. 몸을 숨기고 있었던 조선족 집에서 남 대표를 밀고한 것. 탈북할 때 챙겨온 달러가 화근이었다. 다시 북송됐지만 경계가 느슨했던 때를 노려 기적적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북송돼서 감옥에 갇혀 있는데, 정치범으로 발각될까봐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어요. 그때가 마침 주일을 앞둔 날이었는데 꿈속에서 예수님을 만났죠. 그저 이 고난이 지나가도록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남 대표는 일가친척 하나 없는 한국에서 폴리텍대학을 다니는 등 발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북한에 남아있던 딸도 2012년 내려왔다. 헤어졌던 가족을 다시 만나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와중에 틈틈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탈북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힘썼다. 하지만 전도를 하면서 마음껏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탈북민의 현실을 목격하게 됐다. 휴대폰 요금을 낼 돈이 없어 주일에도 일을 해야 하는 탈북민들을 보며, '이들을 도와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 "통일부 산하에만 탈북민 단체가 70개가 넘어요.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뿌리 내리지 못한 탈북민들이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로 나가고 있는 형편이죠. 탈북민들을 평화통일의 역군으로 키워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일자리와 보금자리가 시급해요." 토종닭 100마리로 시작한 양계장은 1년이 지난 지금 1만 마리에 육박해 본격적인 유정란 판매도 준비하고 있다. 가로 0.5m, 세로 0.5m 크기 철창에 암탉 6마리를 사육하는 배터리 케이지(Battery cage) 방식이 아닌, 산이나 들에서 마음껏 뛰노는 자연방사 양계를 실천하고 있다. 항생물질이 들어간 사료 대신에 발효 효소와 갈은 조개 껍질을 섞은 사료를 쓰고 있다. 현재 29명의 탈북민과 함께 일하고 있는 남 대표는 8월말까지 고용 인원을 대폭 늘릴 계획이다. 남 대표는 "한반도의 평화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탈북민을 통일의 마중물로 키워야 한다"며 "한국교회가 탈북민 지원에 앞장서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박은정 기자2017-06-09

지역주민들에게 '보물단지'라 불리는 교회가 있다. 인천 도원동에 자리한 인천제2교회는 지역 비거주자 교인이 전체 90% 이상을 차지하지만, 모르는 주민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다. 교회 문턱을 낮춘 섬김과 나눔으로, 주민들과의 끈끈한 믿음을 쌓아가는 인천제2교회에 다녀왔다. "교회에 묵은 때 벗기러 왔어요"…이색 사역 '눈길' 인천제2교회(담임 이건영 목사)에는 매주 화·목요일 1시만 되면 지역 어르신과 노숙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교육관에 오자마자 자신의 이름을 명단에 적고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어르신들. '어떻게 오셨느냐' 물었더니 '목욕하러 왔다'고 한다. 인천제2교회는 지역주민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무료로 목욕탕을 운영하고 있다. 남자는 매주 화요일, 여자는 매월 첫째·셋째 주 목요일 1시부터 3시 30분까지 이용 가능하다. 교회는 수건과 때 타올, 칫솔도구 등 간단한 목욕용품을 어르신들에게 제공하고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따뜻한 차와 음료도 대접한다. 목욕하고 나온 어르신들에게는 성도들이 기증한 옷을 깨끗이 세탁해 주민들이 원하면 옷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한다. 장옥분 어르신은 "이 동네에 목욕탕이 있긴 하지만 너무 멀고 돈도 많이 들어 잘 가지 않았다"며 "그런데 교회에서 목욕탕도 열고 공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서 매주 온다. 게다가 교회에서 맛있는 식사까지 대접해주니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특히 목욕탕 사역을 섬기는 교회 성도들은 어르신들이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함께 수다도 떨며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기도 한다. 교회 목욕탕을 찾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교회의 '사랑나눔터'에서 밥을 먹고 온다. 사랑나눔터는 노숙인과 독거노인 등 따뜻한 한 끼 식사가 간절한 이들에게 매주 화·목·금 무료로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하루 평균 150여 명이 찾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회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곳이 교회가 맞나"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 1층 로비에 놓여진 안내표지판을 살펴보면 교회 안에 장애인 치료기관인 삼일특수교육센터을 비롯해 꿈나래어린이도서관, 드림 헬스장 등이 있어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향민·외국인 노동자 등 소외 이웃 섬김에서 시작 현재 인천제2교회는 총 20여 개의 나눔 사역을 펼치고 있다. 교회가 이 같은 활발한 사역을 펼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창립정신이 깃들여 있다. 인천제2교회는 1948년 인천에서 두 번째 세워진 장로교회다. 교회를 개척한 고 이승길 목사는 6·25 전쟁 직후 남편과 가장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교회 안에 '마르다 모자원'을 세웠다. 교회가 지역사회의 아픔을 끌어안은 첫 사역이다. 2대 담임목사였던 이삼성 원로 목사는 교회 안에 유치원을 설립했다. 당시만 해도 교회가 유치원을 운영한다는 게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기였다. 1993년 3대 담임목사로 취임한 이건영 목사 역시 지역사회 섬김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예수님은 영혼도 구원했지만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먼 ▲인천제2교회 이건영 목사ⓒ데일리굿뉴스 저 손 내밀었어요. 그래서 우리 교회도 영혼구원과 함께 지역 내에서 아픔 있는 주민들을 위해 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교회가 이처럼 다양한 섬김을 펼치게 된 데에는 지역적 특징도 한 몫 한다. 신도시에 밀려나 3D업종 공장들이 교회 주변에 있다 보니 교회 인근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다수다. 이들을 위한 제대로 된 복지시설이나 의료기관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 교회가 이들을 위한 섬김을 한 이유이기도 하다. 흔히 교회가 예배당을 세우면서 생길 법한 주민들과의 갈등도 없었다고 한다. 4300여 평에 달하는 예배당 공사가 진행되는 약 2년 동안 인근 공구상가단지와 학교 관계자, 주민들은 단 한 차례 반대나 항의를 하지 않았다. "학교 옆에서 건축하는 것은 죽음이죠. 그런데 단 한 번도 주민들이 민원을 넣거나 시위를 한 적이 없었어요. 기적 같은 일이죠. 그 동안 교회가 주민들과 함께 활동하며 자연스럽게 주민들에게 교회의 신뢰가 형성된 것 같아요. 새롭게 만든 주차장도 주민들과 함께 사용하고 있어요." 이건영 목사는 교회 사역에 고민하는 목회자들에게 "지역사회와 나눌 수 있는 사역은 주변에 늘 있다"며 "목회자와 성도들이 '거룩한 소비, 성경적인 소비'라는 마음으로 사역에 임한다면 지역과 하나되는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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