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경 기자2018-07-24

제자리로 돌려놓는 데 무려 12년 2개월의 세월이 걸렸다. 비정규직 문제의 상징으로 꼽혀온 KTX해고승무원 사태가 극적으로 해결됐다. 차디찬 거리로 내쫓겨 고통스러운 복직투쟁을 벌이다 보니, 20대 중반이던 그녀들의 나이는 어느덧 40대를 바라보게 됐다. 이토록 지난했던 투쟁사는 비정규직과 간접고용, 정리해고라는근로자들의 어두운 현실을 수면위로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거머진 이들의 승리는 공동체 갈등 해결의 좋은 선례를 남기며 더 큰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그간 노조를 지켜온 정미정 총무 실장에게서 현재 소회를 직접 들어봤다. 간절했던 지난 순간들…"드디어 일터로 돌아가" 지난 21일 오후 서울역 내에서 열린 '천막농성 해단식', KTX 해고승무원들은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야 했다. 본지가 이들을 직접 만난 건 지난해 겨울이었다. 그때만해도 서울역 한 켠에서 기도회를 갖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선 일종의 간절함이 느껴졌었다. 이 간절함이 작용한 덕분일까. 지난 2006년 해고돼 복직 투쟁을 벌여온 KTX 승무원들이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정규직으로 복직하게 됐다. 지난 9일부터 전국철도노동조합과 코레일이 수차례 해고자 복직 교섭을 갖고, 21일 이처럼 합의하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노조를 지켜온 정미정 상황실장은 이 결정에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복직 교섭 후 합의됐을 당시의 심정을 전해왔다. 전화기 넘어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되려 담담함이 풍겨졌다. 정 실장은 "모든 게 결정되기까지 힘든 과정이었다"며 "확실하게 약속 받은 부분이 없기 때문에 교섭을 진행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뒤엎어 질까 우려되기도 했었다"고 전했다.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극적인 합의가 타결되며해고승무원들의 복직이 가시화됐다. 그는 "막상 해결이 되고 나니까 그제서야 지난 시간들이 한 순간에 스쳐지나 가더라. 교섭을 끝내고 천막으로 내려왔을 때, 밤새 천막을 지킨 6명의 조합원들이 먼저 보였는데,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고 떠올렸다. "아직도 투쟁 중인 노동자들…희망이 됐으면 한다" KTX 승무원 해고 사태는 공기업이 시행한 최초의 대규모 정리해고였다. 12년 전, 승무원들은 KTX 개통과 함께 '지상의 스튜어디스'라는 부푼 꿈을 안고 입사한 터였다. 당시 이들은 철도청(현 코레일) 자회사에 위탁 계약직으로 준공무원 대우와 정규직 전환을 약속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2년의 계약기간이 끝나자 또 다른 자회사의 계약직으로 재계약을 강요 받았고, 승무원들이 이를 거부하며 파업에 돌입하자 코레일은 이들을 전원 해고했다. 이후 해고승무원들은 서울역 앞 천막 농성과 단식 농성, 철탑 고공농성 등을 전개하며 험난한 싸움을 이어왔다. 상황은 법원행정처가 2015년 작성한 재판거래 의혹문건이 나오면서 반전됐다. 사법부와 청와대 간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졌고 해고승무원들은 다시 농성을 전개했다. 반전된 분위기는 이번 교섭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달 들어 코레일 노사가 적극적으로 교섭에 임했고, 그 결과 180명의 해고승무원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가게 됐다. 그럼에도 해고승무원들의 잃어버린 12년 세월을 돌려놓기 위한 과제는 여전히 남은 상태다. 우선 이들이 원하는 대로 원래의 승무 업무를 맡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정 실장은 "막상 돌아가서 일을 해봐야 알겠지만, 아직 우리의 문제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면서 "그래서 마음 한 켠이 무겁다. 아직 '재판거래'의 진상도 규명되지 않고 있는데, 모든 일이 밝혀질 때까지 계속해서 마음을 모을 것"이라고 전했다. "꿈을 놓지 못하는 간절함이 기다림의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마흔, 아니 오십이 되도 열차에 오를 순간을 꿈꾼다" 지난 인터뷰 당시, 기자에게 들려준 이들의 메시지다. 12년이 넘는 싸움을 끝내는 지금, 이들은 다시 철로 위를 달리는 순간을 꿈꾸며 아직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또 다른 노동자들을 위해 투쟁할 것을 약속했다. 끝으로 감사의 마음을 건넨 정미정 실장은 "기독교를 포함해 종교계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기도해주신 덕에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그 고마움을 무엇으로 보상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불합리한 상황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이 많다. 이번 합의가 이분들의 희망이 됐으면 좋겠고,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연대하며 받은 것 이상으로 더 돌려드리고자 노력하겠다"는 인사를 전했다.

윤인경 기자2018-08-10

가장 역사가 오래된 기독교 민간단체 중 하나로 꼽히는 서울YMCA(회장 이석하)가 어느덧 창립 100년을 훌쩍 넘었다. 그 동안 YMCA는 기독교사회운동을 통해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의 가교 역할을 하며, 기독교 단체로서 변함없는 신뢰감을 얻어 왔다. 여봉구 부회장은 그 까닭을 "YMCA가 기독교 단체라는 것을 명시하기 보다, 실천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독교적 가치를 나타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YMCA의 관심은 청소년에게 향해 있습니다" 서울YMCA가 올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업 중 하나는 바로 청소년들을 평화의 일꾼(Peace Maker)으로 키우는 피스메이커 운동이다. 서울YMCA에서 35년째 일하고 있는 여봉구 부회장은 "YMCA의 가장 첫 번째 고민은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을 건전하고 건강하게 육성할 수 있는지"라고 부연했다. '건강한 청소년'이란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일까. 그는 "현대에는 더 이상 신체적으로 건강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건강한 사람이라고 얘기하지는 않는다"며 "신체와 정신, 정서, 사회적 관계 등이 골고루 건강해야 진짜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때문에 서울YMCA는 영·지·체를 건강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체력 프로그램과 영어토론, 캠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오늘날 청소년과 청년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고민인 만큼, 교회 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서울YMCA의 프로그램은 매번 선착순 마감이 될 만큼 인기가 뜨겁다. 서울YMCA는 다른 기독교 민간단체들과 달리 유독 일반인들의 참여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독교 단체라는 YMCA의 정체성이 여전히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있기 때문인 이유가 크다. 여봉구 부회장은 "한두 번 프로그램에 참여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YMCA가 기독교 단체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는다"며 "참여하시는 분들이 오히려 '이런 단체라고 한다면 기독교를 잘 모르지만 한번 알아보고 싶고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더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역'과 같이 교회에서는 흔하게 사용하는 단어들도 YMCA에서는 잘 쓰이지 않고 직접적으로 전도를 내세우지도 않는다"며 ""사람들이 스스로 기독교를 믿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기독교적인 가치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갈등과 혐오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서울YMCA 역시 어떻게 하면 이 갈등 구조를 해소할 수 있는지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각 지역사회에 설립되고 있는 YMCA 이웃분쟁조정센터는 층간소음 문제부터 주민들 사이에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우며 갈등을 미연에 예방할 수 있도록 소통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부모들이 자식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하는 건 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거죠. 청소년들이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구성원, 피스메이커로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YMCA가 할 일입니다."

최상경 기자2018-07-27

미국 흑인해방 운동가 마틴 루터 킹의 후계자를 자처해온 제시 잭슨 목사는 그간 흑인 및 소수인종, 정치범, 성희롱 문제 등에 목소리를 높인 인권운동가다. 그런 그가 32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파킨슨병을 진단 받고도 현역에서 세계 평화를 위해 매진 중인 그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행보에 큰 자극을 던지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했다. 32년만에 방한…"경계 허물고 희망으로 치유해야"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큰 섭리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없게 하는 오만함과 종교적, 교리적 이념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26일 오후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시 잭슨 목사(미국 침례교)는 먼저 이렇게 운을 뗐다. 예멘 난민을 비롯해 동성애까지 여러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한국 사회에 조언이 될만한 얘기였다.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그는 사회적 현안을 짚음과 동시에 한반도 통일을 향한 자신의 비전을 허심탄회하게 나눴다. 무엇보다 잭슨 목사는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찾아온 것에 기대감을 한껏 표출했다. 그는 "남북이 평화를 향해 가는 길목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게 된다"며 "바로 내일이 종전의 날이 될 것이다. 이제 정말 종전 협약을 할 시간이다"라고 확언했다. 그럼에도 완전한 평화 정착을 위해선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음을 언급했다. 그는 지금까지 쌓아 온 벽들, 즉 '두려움'으로 집약된 경계부터 허물어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잭슨 목사는 "지금까지 우리는 많은 벽들을 만들어 놓았다"면서 "우리가 보호받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이 앞섰기에 선을 긋고 벽을 쌓았다. 이제는 이 경계를 '희망적 실천'으로 허물고 서로를 이을 다리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한-미 군사훈련을 줄이거나 없애고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기회를 늘리거나 서울과 평양을 완행하는 철도를 잇는 등 실질적인 노력에 힘써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런 의미에서 잭슨 목사는 지난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북 정상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도 했다. 그는 "양 정상들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아름다운 광경을 또렷이 기억한다"면서 "서로가 이토록 적극적인 초대에 임했으며 소통하길 힘썼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경계를 허물면서 한국이 누리고 있는 번영을 북한과 함께 누리기를 앞장서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인권 운동가답게 북한 사람들을 인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지금까지 북한은 두려움 속에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희망 속에서 살 권리가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잭슨 목사는 "한국이 누리는 번영을 북한과 함께 나눠야 한다"면서 "남한이 더 발전됐다는 사실은 두려움에 놓인 자들을 희망과 치유로 돌봐야 한다는 의미다. 굶주림 해소와 교육의 기회 확대, 의료 지원 등을 통해 북한을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더 나아가 현재 최대 이슈로 꼽히는 난민 문제에 관해서도 '긍정적인 접근'을 당부했다. 그는 예멘 난민 문제를 한 마디로 '자비의 문제'라고 정의했다. 잭슨 목사는 "전쟁 중인 고국을 탈출해 떠돌고 있는 난민들을 보며, 65년 전 한국 전쟁을 피해피난 가던 때를 떠올려 보자"면서 "한국이 절망에 빠졌을 때 세상은 등을 돌리지 않았다. 내가 대접받기 원하는 대로 상대를 대하는 '황금률'을 이 사안에 적용하면 정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끝으로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교회의 역할'임을 상기시켰다. 우선적으로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되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보수와 진보 같은 논리를 적용하지 않으신다"며 "하나님은 모든 이들을 품으시고 마음이 무너진 사람들을 보살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같은 사랑을 기억하며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모두를 공동체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평화를 위한 시간이 됐습니다. 미국에서의 경험으로 볼 때, 평화를 만드는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반전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지만,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박사가 말했듯, 도덕적 보편을 이루는 과정은 지난하지만, 그것은 늘 정의를 향합니다."

한연희 기자2018-07-25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가 최근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70년이 되는 이때에 남북한이 평화의 시대로 들어가는 첫 발을 뗀 만큼 우리 사회와 기독교가 대통합으로 나아가는 것은 시대적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이영훈 목사는 우선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법인 창립총회를 계기로 한국 교회가 대통합의 길로 들어섰으며 기독교의 진정하고 영원한 정신인 나눔과 섬김을 모든 교회가 연대해서 실천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 기독교는 자체적인 개혁과 정화의 노력이 부족해요. 사회 대통합에 앞서 기독교계가 먼저 통합에 나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가진 자들이 자신의 역량과 노력으로 갖게 됐습니까? 국민들의 노력으로 된 것이지요. 교회들이 쌓고 누리려고만 들지 나눔에는 소홀합니다. 초기 교회가 칭찬받고 높이 평가되는 것은 바로 가진 것을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진정하고 영원한 정신은 나눔과 섬김입니다. 이 명쾌한 진리는 한두 교회가 아닌 모든 교회가 함께 발맞춰 실천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서울신문>은 이영훈 목사에 대해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며 한국 개신교계의 연합과 일치, 대통합 움직임을 주도하는 대표적 인물”이라고 평가하면서 화해와 비핵화를 위해 우리 사회와 기독교의 대통합이 시대적인 과제임을 강조했다. “올해는 우리 정부가 수립한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00년 동안 흩어졌던 이스라엘이 독립선언으로 건국한 지 70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고요.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신 기간이란 공통점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70년은 기독교에서 회복의 대희년을 의미하는 수이기도 합니다. 그런 역사적 전환기에 남북, 북미 정성회담이 열리고 평화의 시대로 들어가는 첫발을 뗀 만큼 대통합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얼마 전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우리와는 영 딴판인 의회의 활동상을 보고 인상 깊었습니다. 11개 정당의 의원 140명이 극보수에서 극진보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지만 국익을 위해 한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한 결정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지요. 나와 다르면 적으로 여기기 일쑤인 분열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병폐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60년 전의 프레임에 갇혀 좌우의 극렬한 대립이 일상화된 한국의 초상이 안타깝습니다.” 이영훈 목사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비핵화 움직임과 관련해서 꾸준한 대화와 노력을 강조하고 “지금 북한에서 비핵화 조치가 지체되는 까닭은 북한이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지만 아직 기대치에 못 미치기 때문이며 기대치에 미치면 완전한 비핵화로 반드시 갈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통일 과정에서는 무엇보다 한미동맹의 견고한 지속이 중요하다며, 동맹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 기독교계의 역할과 노력이 절대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신중한 노력과 역할을 당부했다. 이영훈 목사는 인도적 차원의 의료 교육 복지에 대한 투자가 시급하다면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그동안 선도적으로 추진해 온 인도적 대북지원사업의 중요성도 설명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중단된 평양심장병원 건립은 최근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북측으로부터 빨리 완성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특히 북한의 요청에 따라 200개 군 모두에 보건소를 짓는 사업을 전개해왔으며 20개 정도 지은 상태에서 중단되어 있다. 이영훈 목사는 이와 관련하여 인도적 대북지원사업의 경우 한국 교회가 똘똘 뭉쳐서 함께 나서야 할 사안으로 시급히 연대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했다.

박혜정 기자2018-08-10

자신은 하나님을 믿지만, 본인과 가장 가까운 부모님과 배우자, 자녀, 친구들이 예수를 모르고 교회를 거부할 때, 거절감과 안타까움은 크다. 가족 구원을 위해 기도하지만 열매가 보이지 않아 좌절하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 전도를 해야 할 지 몰라 속만 애태울 때도 있다. 이처럼 가족이 하나님을 믿도록 기도하는 성도들을 돕기 위해, 교회 내 공동체를 구성하고 이끌었던 목사 김선일 교수가 성도들과 오랫동안 기도하고 열매 맺은 경험담을 담아 책을 출간했다. 그는 가족 구원을 소망하는 기독교인들을 공감하고,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조언하고자 한다. 전도는 말로써 아닌 성품으로 하는 것 먼저 "딸의 믿음을 놓고 기도하기 위해 가족전도모임에 오신 권사님이 있었다. 딸은 엄마의 신앙과 교회에 부정적이었다. 우리는 권사님을 위로하며, 딸의 회심을 위해 2년을 함께 기도했다. 그런 뒤, 딸과 미국으로 떠난 권사님이 오랜만에 교회를 찾아 오셨는데, 딸이 건강한 신앙 가정이자 목사의 아들과 결혼을 했다는 거다. 게다가 딸은 신앙 안에서 변화된 엄마를 인정하고 미국에서 같이 교회를 다니게 됐다."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실천신학의 김선일 교수는 예수소망교회에서 목회할 당시 가족 전도를 두고 고민하는 성도들을 돕기 위해 가족전도공동체를 만들고 이끌었다. 처음 모임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민망하리만큼 열매가 없었는데 권사님과 딸의 간증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실제로 성도들이 기도한 가족원이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은혜를 경험했다. 김 교수는 가족을 전도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복음을 전하는 이의 성품이 먼저 변화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가족에게 말씀이 영향력있게 전달된다는 것. 그는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일수록 더욱 소중히 여기면서 사랑의 실천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전도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보여줘야 한다. 친하고 익숙한 사람에게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도 상대방이 알아서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곁에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데, 자신과 너무 가까이 있는 가족이기에 그 소중함을 놓치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가족을 환대하고 돌보고 있는가?" '내가 만난 하나님' 우리 가족에게 들려줘야 이어 그는 가족을 전도할 때, '교회로 나오라'고 말하기보단 '내가 만난 하나님을 증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모가 어떻게 예수를 믿고 의지하게 됐는지 이야기를 들은 자녀들이 신앙을 꾸준히 지킨다는 통계조사도 있다. 성인이 돼서도 신앙이 흔들리지 않거나 신학의 길을걷는 자녀들의 특징은 대부분이 부모의 신앙 이야기를 들은 자녀였다.특히 배우자를 전도할 땐 싸움이 나지 않도록겸손하게말해야 한다." 신앙 생활은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 하는 것이다. 전도 대상자인 가족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졌더라도, 이들이 혼자서 신앙생활 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꾸준히 믿음을 키워가기 어려울 것이다. 김 교수 역시 가족구성원이 가족 외 신앙인들과 사회적 관계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믿지 않거나, 믿음이 연약한 가족원이 또 다른 신앙인들과 접촉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도 목적을 위한 세미나나 포럼에 같이 가자고 제안하면, 부담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다른 신앙의 동지들이 같이 밥을 먹고 싶어한다고 제안하면, 고마워서라도 식사자리에 참석하는 경우가 있다. 교회 사역에 있어서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것도 좋다. 자연스럽게 교회와 다른 신앙인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김 교수는 가족전도의 절박함과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가족 전도를 위해 기도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해결점을 함께 찾고자 책 <모든 사람을 위한 가족전도>를 썼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강조했다. "가족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가족전도 책표지

윤인경 기자2018-08-02

교회에서 받는 사례비를 떳떳하게 공개한 목사가 있다. 평균 1만여 신도들이 주일예배에 출석하는 '대형 교회', 경기 고양시 소재의 거룩한빛광성교회 정성진 목사가 그 주인공이다. 내년 조기은퇴를 앞두고 '제2의 사역'을 준비하고 있는 그가 기독교 월간지 <신앙계>를 통해 신조와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목회자 사례비·자동차 크기 상한선 정해야 한다" 1997년 개척 초기부터 교회 분립을 시작한 거룩한빛광성교회는 최근 운정광성교회까지 21곳의 분립 개척교회를 세웠다. '교인 1천 명이 넘으면 분립한다'는 기준으로 꾸준히 몸집을 줄이는 모범적인 대형교회로 꼽히고 있다. 정 목사는 주보에 교인들의 헌금 내역을 공개하고, 교회 예산의 51%는 구제와 선교에 사용하도록 했다. 65세 조기은퇴를 결정하고 목회자 사례비도 월 450만 원으로 정했다. 목회자 사례비와 자동차 크기에 대해 상한선을 정해야 한다는 제안을 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는 모두 '아사교회생(我死敎會生)', 즉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는 정 목사의 오랜 지론에서 비롯됐다. 이 문구가 적힌 액자는 정성진 목사의 목양실에서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놓여 있다. 정성진 목사는 "목사가 살면 교회가 죽는다. 목사가 적게 먹고 투명하게 살지 않으면 한국교회에 희망이 없다"며 "섬기는 교회, 상식이 통하는 교회라는 목회 방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일 이 문구를 묵상한다"고 밝혔다. "교회 안에서는 진보와 보수 모두 모일 수 있어야" 정성진 목사는 지금껏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열린 목회를 해왔다고 자부한다. 그는 기독교라는 한 지붕 아래에 여러 가족이 살더라도, 바깥으로는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거룩한빛광성교회에는 해병전우회와 경실련 운동가, 그리고 전교조 노조위원장과 기윤실 활동을 하는 교인들이 함께 어우러진다. 정 목사는 "민중신학 등 가장 진보적인 길과 광성기도원 원목을 맡으며 가장 보수적인 신앙도 만났다"며 "이 모든 것이 목양의 밑거름이 됐고,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게 당연하다"고 소신을 밝혔다. 내년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정성진 목사는 여전히 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고 고백한다. 요즘 그의 관심사는 다음 세대를 세우는 사역이다.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처럼 젊은이들의 야성과 영성을 키우는 사단법인 크로스로드와 '비빌 언덕'이란 고아 사역을 준비하고 있다. "어릴 적 고아원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던 경험이 특별히 고아에 대한 마음을 더 심어준 것 같아요. 19세가 되면 이 아이들은 보육원을 나와야 하기 때문에 이들이 온전한 자립을 할 때까지 돕는 자립관을 세워 보호하고 품어줄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정성진 목사의 자세한 신앙 이야기는 <신앙계> 8월호에서 만날 볼 수 있다.

한연희 기자2018-07-30

선교사 하면 조선말 파송돼 들어온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턴 등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반면 1965년 비즈니스선교 형식으로 한국에 들어와 양질의 기독 원서들을 캠퍼스 학생 및 교수들에게 전달하며 지식인들의 성경적 세계관 형성에 크게 기여해온 웨슬리 웬트워스의 존재는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손봉호, 김민철, 박상진, 방선기, 양승훈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천 대표 지성인들도 젊은 시절 웨슬리가 들이민 책자를 읽으며 가랑비에 옷 젖듯 신앙을 기경했다. 그의 문서선교 삶이 곧 한국 기독인들의 현대사란 생각으로 만남을 요청했다. 크리스천 지성인들에게 시작한 문서선교 사역 웨슬리 웬트워스를 처음 만나면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먼저 배낭 속에 여러 권의 책이 쏟아져 나오고 그 책에 대해 상대가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그 후 폐부 깊숙이 심호흡하고 번민의 시간을 보내야만 나올 수 있는 심오한 질문을 던져 상대의 허를 찌른다. "너는 왜 그 일을 하니, 하나님과 연관 짓고 있는 게 맞니?". 결국 이 해답은 창조, 타락, 구속, 완성(재창조)의 성경적 섭리로 가야만 찾을 수 있고 그래야 비로소 마무리 된다. 기자는 훌륭한 통역자(홍병룡 아바서원 대표)가 있었음에도 그가 던지는 어떤 질문에도 변변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손봉호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양승훈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 송인규 한국교회탐구센터 소장, 최태연 백석대학교 교수, 신국원 총신대학교 교수, 장수영 포항공과대학교 교수 등 내로라하는 기독 지성인들이 모두 그의 독특한 문서선교에 영향 받은 제자와 친구들이다. 학문과 영어 소통면에서 최고의 지성을 갖춘 사람들이지만 벽안의 선교사가 던지는 돌직구 질문엔 여지없이 당황했던 기억이 많았다고 전한다. 다짜고짜 직업과 전공 분야를 물어보고는 "당신의 일과 하나님의 부르심이 잘 연결되어 있는냐"는 질문을 던지는 통에 진땀을 뺐다는 것이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양승훈 원장은 "끊임없이 서구 학자들의 글을 읽어 보라고 권하실 때 내가 화를 낸 적 있다"면서 "그런데 선교사님은 별로 서운해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한동안 쉰 후에 다시 문서 전달사역을 재개하셨다. 그분은 지식인들을 설득시키는 겸손과 인내가 있는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홍병룡 아바서원 대표는 "처음 만난 때는 1978년 내가 대학 3학년 때였다. 캠퍼스와 지성사회의 복음화를 위해 문서가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차에 웨슬리를 만났기 때문에 서로 쉽게 대화가 통했고 그와의 만남이 나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제자들이 한국선교 40주년을 기념하며 바친 헌정글 모음집 <사랑해요 웨슬리 선교사님>(예영, 2004년)과 50주년을 기념하며 바친 <문서선교사 웨슬리 웬트워스>(IVP, 2015년)엔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위트와 함께 녹아져 있다. 제자와 친구들은 이 책에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땅에서 평신도 선교사로 지내며 우리의 친구요 멘토가 되었던 웨슬리 웬트워스 선교사님께 바친다"고 기록했다. 1965년 한국에 들어와 53년간 헌신한 벽안의 선교사 웨슬리 웬트워스는 1935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났으며 버지니아공대 시절 복음주의 선교단체 IVF를 통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했다. IVF에서 소그룹리더, 문서 담당자, 선교 담당자로 섬기며 문서 사역과 선교에 관심을 가졌다. 대학원 졸업 후 미국 현지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서울시 하수처리시설 건설에 자원해 1965년 한국에 왔고 IVP 고문, 기독교학문연구회,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 설립, 광주기독병원 건축 등을 도왔다. 전형적인 비즈니스 선교(BAM)에 해당한다. 웨슬리는 "버지니아 공대 시절 IVF 수련회에서 내가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아래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게 됐다. 이후 수련회에서 주로 책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북테이블을 담당하며 많은 책을 접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학생 시절 <열매 맺는 성경공부>가 제시한 필독도서 100권을 읽으며 복음주의적 지식과 학문에 본격적으로 흥미를 가졌다. 관련 강의도 열심히 들었다. 이런 지적 탐구는 후에 한국 캠퍼스와 단체를 돌며 각 개인에게 맞는 신앙 서적과 논문 자료들을 전달하는 데 든든한 배경지식이 됐다. 웨슬리는 “대학생 시절부터 책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기독교 변증학과 신학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면서 “내 스스로 문서 사역에 소명을 느끼진 않았지만 주변으로부터 내가 문서사역에 특별한 소망이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본인 스스로 자신을 '책장사'로 소개했지만, 그를 거쳐간 많은 한국인들은 '공짜가 더 많은 손해보는 장사'였다고 기억한다. ▲웬트워스를 대학시절 만나 지금껏 친구이자 통역자로 함께하고 있는 아바서원 홍병룡 대표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김정효 교수는 "나는 이분이 우리가 아는 근대 선교사 스크랜턴과 언더우드 같은 선교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또한 '나는 책장사입니다'라고 하셨지만 아무도 그것을 곧이듣진 않았다. 웨슬리 웬트워스는 21세기 초에 아직도 한국에 남아 있는 미국인 선교사였다"고 평가했다. 지금은 기술 발달로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인터넷으로 바로 주문할 정도로 편리해졌지만, 당시엔 필사를 하거나 타자를 치는 일이 많았다. 웨슬리는 “한국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총신대학교 간하배(Harvie M. Conn) 선교사, 부산 고신대학교 하도례(Theodore Hard)선교사의 문서 사역을 도왔다. IVP 사무실에도 여러 다양한 주제의 영어책들을 사서 모아두고 신학생들에게 책을 소개하며 보급했다. 엔지니어로 일하며 받는 급여가 넉넉했던 내가 책의 구매 대금을 미리 지불하여 주문하면, 선교사가 학생들에게 책을 팔고 돈을 돌려줬다”고 말했다. 21세기 미국 선교사..."한국에서 묻힐 겁니다" 촉망 받는 엔지니어로 한국에 들어온 30세 청년은 어느새 한국 생활 53년의83세 할아버지가 됐다. 오랜 세월 그의 헌신이 더 가슴 먹먹하게 다가 오는 것은 가정을 꾸리지 않은 채 독신으로 그 시간을 감당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사정은 묻지 않았지만, 자기 명의의 집하나 제대로 갖지 않고 꽤 오랫동안 IVP 사무실 옆에 야전 침대를 놓고 살아온 그의 삶에서 많은 사람들은 문서선교에 아낌없이 쏟아 부은 선교사적 헌신을 고스란히 목도 했을 것이다. 인터뷰 날인 26일 웨슬리가 입고 온 체크무늬 반팔 셔츠와 검은색 바지는 제자들의 도움으로 3년 전 출간한 <문서선교사 웨슬리 웬트워스>의 표지 의상과 같았다. 옷은 힘을 잃고 색도 바랬지만 한마디 한마디 결코 가볍지 않는 질문을 던지고, 변증법적 신학 사고를 전하는 주인의 강인함에 곧 묻혔다. 83세. 이제 죽음도 생각해야할 나이가 된 웨슬리는 한국에 묻히겠다고 조용히 말했다. 지방의 한 기독병원 묘원에 자리까지 마련했다며 웃는 그에게 그저 감사와 존경을 표할 수 밖에 없었다. “이토록 오랫동안 한국에 있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회사의 프로젝트를 마치고 곧장 미국으로 돌아갔어야 했다. 돌아보면 나는 한국에 있는 동안 한국사람과 미국사람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러는 동안 많은 한국 친구들을 만났고 교회를 알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 살면서 문화 충격을 경험 하는데 나는 그런 기억이 없다. 소위 말하는 고난받는 선교사는 아니었다.<문서선교사 웨슬리 웬트워스> 중 일부"

박혜정 기자2018-07-26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웹툰의 매력에 빠지면, 끝까지 봐야 직성이 풀리는 경우가 있다. 출퇴근 때, 대중교통 이용 중에도 웹툰을 보면서 이동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가운데 기독교 웹툰도 기독교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기독교 웹툰 사이트 '에끌툰'의 만화들이 연신 높은 조회수 기록을 남기며 웹 상에서 인기를 끌더니 책으로도 출간 됐다. 최근에는 웹툰 <요한복음 뒷조사>와 <누가복음 뒷조사>가 단행본으로 출시되면서 4복음서 만화 시리즈작이 완결됐다. '에끌툰'의 대표이자 세번째 시리즈 <요한복음 뒷조사>의 김민석 작가는 만화가 주는 재미에 교회가 실천해야 할 사랑이 무엇인지를 더해 깊고 울림 있는 성경적 메시지를 전했다. <요한복음 뒷조사>, 한국 교회에 진정한 '예수의 사랑'을 말하다 2015년 웹툰 시장에 첫 발을 내딛고 조회수 30만 명을 기록하면서 웹툰 시장에서 기독교 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기독교 만화사이트 '에끌툰'. '에끌툰'의 김민석 작가와 김영화 작가가 야심차게 내 놓은 4복음서 장편 만화 작품들이 완결됐다. <요한복음 뒷조사>와 <누가복음 뒷조사>가 최근 책으로도 출간되면서 사대복음 만화의 단행본 시리즈 출판까지 마무리됐다. 그 중 세번 째 시리즈 <요한복음 뒷조사>에는 신학적 지식 전달에 초점을 둔 나머지 시리즈 작품들과는 또 다른 성경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김민석 작가는 요한복음만이 줄 수 있는 메시지의 특징과 유익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마태복음 뒷조사>와 <마가복음 뒷조사>가 좀 더 성경적 지식에 초점을 두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서로 사랑하고 하나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독교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을 들게 할 만큼 한국 교회를 향한 시선이 곱지 않은 요즘, '서로 사랑하라'라는 말씀에서 '사랑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자문한 것이 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이 시대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대사와 행동 모두가 공감을 끈다. 예수를 희화화 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믿음을 잃어라"라고 외치면서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자신만의 논리로 성경을 비판하는 인기작가 사페레. 그를 소송한 교회에서 청년부로 활동하다가 사페레의 생각을 캐내기 위해 그의 회사에 위장 취업한 성경이. 결국 성공 지향적인 위선자의 길을 걷는 김다윗 목사. 작품 속에서 주인공들이 요한복음의 배경과 주제를 탐구하고 토론해가며 서로의 속 사정을 이해해 가는 모습은 우리의 실제 삶과 교회가 서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깨우치게 한다. 교회를 한 번이라도 다녀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상황이 연출돼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기독교 만화, 누군가에겐 따뜻한 위로와 치료제 ▲책으로 출판된 <요한복음 뒷조사> 표지 김 작가는 요한복음서가 말하는 사랑의 메시지가 독자들로 하여금 정말 소화되고 녹아질 수 있을지 고민하며 작품을 마쳤다. 거듭된 고뇌 속에서 탄생한 한 편 한 편의 만화는 공동체에서 상처받아 멀어지고 교회를 떠난 사람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교회에서 상처받은 분들로부터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어느 전도사님은 여자친구 분이 교회에서 상처 받고 난 뒤 교회에 대한 반감이 심해져 신앙 이야기는 꺼낼 수 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자 친구가 책을 읽고 나서 공감과 위로의 눈물을 쏟아내더니 이제는 서로 신앙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인사를 전했다." <요한복음 뒷조사>를 포함한 4복음서 시리즈 뿐 아니라 '에끌툰'에 연재 된 기독교 웹툰 중에는 이미 조회수 30만 명을 기록한 인기 작품들이 많다. 지난해 11월 유료화 서비스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만화를 구독하는 회원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한번 쯤 고민해보고 질문하고 싶은 것들이 만화 속에 담겨 있기에 기독교 만화에 대한 관심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김 작가는 전했다. "'세상과 기독교 간 부딪치는 가치로부터 고민되는 것들이 나 혼자만의 고민은 아니구나'라는 공감대 형성이 된다고 생각한다. 웹툰을 읽은 독자들끼리도 웹 상에서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기독교 웹툰은 쉽게 나누기 어려운 주제에 관해서도 서로 나누게 하는 하나의 장으로써 역할을 하고 있다." 김민석 작가는 '복음서 시리즈'가 완결됐으니 당분간 휴식이 필요하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도 지치지 않고 우리 삶 속에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관심을 가지면서 탐구할 것을 다짐했다. "'성경이 그저 좋은 것'이라는 깨달음만 주고 끝나는 작품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하나님 나라가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작품을 만들도록 계속 도전하겠다. 기독교 만화가로써 걷는 이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끝까지 이 길을 가고 싶다."

박혜정 기자2018-07-23

<우리는 주의 움직이는 교회> <예수의 그 이름>, <나는 믿네>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CCM 여성 어쿠스틱 밴드 '홀리원'. 2006년 CMF영뮤지션 페스티발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데뷔한 지 어느덧 12년 차를 맞이한 이들은 새로운 앨범 <다시 봄처럼>으로 돌아왔다. 10년이 넘도록 팀의 리더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김세미를 본지가 직접 만나 이번 홀리원 앨범에 담긴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김세미는 지금의 홀리원이 있기까지 개인의 의지보단 하나님의 이끄심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너도 그렇구나, 나도 그래" 삶의 위로를 노래하다 여성 듀오 CCM 밴드 홀리원은 얼마 전 4집 정규앨범 <다시 봄처럼> 발매 기념 콘서트를 마쳤다. 그 여운이 가신지 얼마 안돼 리더 김세미를 서울 합정역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팀을 대표해 인터뷰에 응한 그의 이야기를 통해 느낀 홀리원의 노래는 '위로'와 '안심'이었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아침>에는 사는 것이 힘들지만 삶을 포기할 순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는 이들을 공감하면서 우리의 삶을 책임지는 분이 계시니까 ‘괜찮다’고 위로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김세미는 이 메시지를 위해 가사에 직접적으로 기독교 단어를 넣기 보단 평범하고 일상적인 표현으로 가사를 써내려 갔다. "노래 가사 끝 부분에 한 줄 정도만 '주님'이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했고 나머지는 일반적인 노래가사를 썼다. 실패라고 생각했던 자리에서 항상 아침이 오고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아름다운 꽃이 핀다는 가사가 있다. '인생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우리 뒤에 누군가 계신다'는 메시지를 가사에 하나님이나 주님, 영광이란 단어를 직접적으로 쓰지 않고 으깨어 노래에 녹여내고 싶었다." 홀리원은 삶의 경험을 통해 느낀 소소한 것들을 노래와 노랫말에 담으면서도 한 문장, 한 단어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아침> 뿐 아니라 앨범에 담긴 총 12곡이 스스로에게 위로와 안심을 주기에 자신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같은 위로와 안심을 줄 수 있길 바랬다. "살면서 닥치는 어려움과 불편한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너도 그렇구나, 나도 그래.' 라고 소통하고 싶었다. 노래를 듣는 이가 '우리는 어디서 쉼을 얻어야 해?'라는 물음표만 있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답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홀리원이 있도록 이끌어주신 하나님 홀리원에서 드럼 연주를 비롯해 작사를 맡고 있는 김세미는 개인의 삶에서 처음부터 찬양사역자가 비전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드럼을 쳤고,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영화를 했던 그가 뒤늦게 실용음악을 전공하면서 홀리원으로써 찬양사역 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는 CCM 가사를 쓰면서 누군가에게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는 통로로 쓰임 받는데에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자신의 정체성을 홀리원이라고 고백하며 리더로써 하나님이 맡겨 주신 일에 책임을 다하려는 것이 엿보였다. "홀리원이 어느새 4집 앨범을 내고 콘서트도 정기적으로 열어 오면서 그 동안 낸 노래만 60여 곡이 넘는다. 홀리원으로써 해야 할 일이 항상 생기는 것은 우리가 탄 홀리원이란 배를 뒤에서 밀어주고 있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팀 이름도 처음에는 2006년 'CMF영뮤직페스티발'에 나가기 위해 이름이 예뻐서 홀리원이라고 지었다. 그런데 나중에 에베소서 말씀을 통해 홀리원은 ‘각 팀원 지체들이 하나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란 의미를 찾았다." 그는 이어 "개인적으로는 작사를하면서 내가 쓴 가사가 삶이 불편하고 두려운 이들을 위로해 주는 하나님의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느꼈다"면서 "가사를 쓰면서 내 자신이 먼저 위로 받았다"고 말했다. 홀리원은 앞으로도 노래와 콘서트,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하고자 한다. 홀리원은 자신도 누군가처럼 똑같이 힘든 삶을 살고 있지만 노래를 통해서 하나님이 있으니 이로 인해 함께 안심하자고 격려할 것이다. "우리의 노래는 이 복잡한 세상 속에 인생은 무엇이고, 하나님은 누구며 나는 누구인지를 담고 있다. 우리도 다른 누군가처럼 삶이 두렵고 불편하지만 하나님께서 안심을 주신다. '성공하는 것으로 안심 말고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말자. 진정한 안심이 하나님께 있다'고 노래로 이야기 하겠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위로를 주니 우리의 노래를 듣는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된다면 좋겠다." ▲보컬 유단비와 리더 김세미, 4집 앨범 재킷

박혜정 기자2018-07-20

퇴직 후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내게 맞는 일인가. 좀 더 가슴 뛰는 일을 할 순 없을까.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에서나 하물며 현직에 있으면서도 한번 쯤 떠오르는 생각들이다. 이처럼 '평생직업'을 갈망하면서도 정말 평생직장이 가능하긴 한 것인지 고민하거나, 남들과 똑같지 않은 직업을 꿈꾸는 세대들을 위해 조언을 담은 책이 출간됐다. 새로운 직종을 만드는 창직, "창직이 답이다" 정은상 창직사관학교 맥아더스쿨 교장은 지난 6년 동안 200명의 창직을 위해 일대일 또는 그룹으로 코칭을 하면서 쌓은 실전 경험을 토대로 <창직이 답이다>를 출간하고 20일 서울시 종로구 한 카페에서 책 간담회를 열었다. 창직이란 누구나 걸어갈 수 있는 쉬운 길은 아니기에 더욱 생소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는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국가나 회사가 개인의 삶을 끝까지 책임져 주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이 때 '창직'이야말로 직업세계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대안 중 대안"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창직을 "지금까지 없었던 직업을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남을 따라 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남들이 관심을 두지 않더라도 나만이 할 수 있고 관심 있으며, 중도에 멈추지 않고 그 안에서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일이 창직으로 이어진다"고 전했다. 또한 책에서 저자는 단순히 일자리를 얻고 직업을 찾는 기능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마다 일을 통해 보람과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그는 "창직을 하거나 직업을 갖는 것이 돈과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돈에 우선을 두면 꾸준히 이어가기 힘들다"면서 "자신에게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영등포구 남서울교회에서 장로로 섬기고 있는 그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기독교인들을 위해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해 보길 바란다"면서 "봉사를 하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어디에 가치를 두는지 찾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저자는 자신에 대해 50대 중반까지 찌질하게 살았다고 말한다. 평생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냈고 중학교 시험부터 취직시험까지 모든 시험에서 낙방의 쓴 맛을 봤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2009년 말 아이폰3에 빠져 들게 됐고 변화의 시대를 직감하면서 인생이모작에 대해 연구하고 칼럼을 쓰면서 강연과 코칭을 시작했다. 그는 서울시 50플러스재단 중부캠퍼스에서 '1인창직' 그룹 코칭을 진행해 왔으며 올 해는 서울 신당동 장충중학교 자유학기제 교사로써 매주 1학년을 대상으로 주니어 창직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창직이 답이다> 책 표지

천보라 기자2018-07-17

교회는 오랫동안 여성 목회자의 차별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최근 들어 한국교회에 변화의 바람이 조금씩 불고 있지만, 여성 목회자들이 설 땅은 여전히 비좁은 것이 현실이다. 인천광민교회의 주향 목사는 이 척박한 환경 가운데 국내 대표적인 여성 목회자로 떠오르는 인물이다. 11년 전 인천광민교회(구 온누리 넘치는 교회)를 개척한 그는 교회와 방송 등 다양한 사역을 통해 성도의 삶에 적용되는 말씀으로 전달함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성도의 변화…말씀과 삶의 현실 연결돼야 가능 주 목사는 25세 되던 해 '다메섹의 바울' 같은 강력한 경험을 통해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났다. 그로부터 5년 뒤, 그는 주님의 부름을 받고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됐다.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었지만, 기쁨으로 믿고 순종했다. 그러나 남성중심의 한국교회에서 여성 목회자로서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녹록치만은 않은 일. 하지만 20여년이 넘는 사역기간동안 그에게 여성이라는 점은 핸디캡이 될 수 없었다. "주님이 주신 열정의 불을 갖고 왔기 때문에 여자라서 불편함, 억울함을 받았거나 손해를 본 적은 없었습니다. 주님께 받은 소명이 정확하고 내 열정이 뜨겁다면 내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고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 목사는 여성 목회자의 강점을 '섬세함'과 '민감함'이라고 말한다. 자녀를 양육하고 가정을 살피는 등 삶의 현장을 전체적으로 섭렵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보는 눈이 삶과 더 연결돼 열린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기독교복음방송 GOODTV의 설교방송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시청자들은 "주 목사의 말씀이 삶의 현실과 연결돼 귀가 열리고 쏙쏙 들어온다"고 입을 모은다. "삶의 이야기를 터치해주지 못하면 성도들이 영적 세계에 대해서는 민감할 수 있지만, 영적세계에서 현실의 삶으로 끌어내지는 못합니다. 교회에 와서 앉아 있긴 한데 나와 무관한 다른 차원의 이야기만 하니깐 귀가 닫히는 거죠. 그러다보니 변화와 성장이 안 되는 거고요."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천국만 바라보고 소망하며 살아라'라는 요지의 복음이다. 주 목사는 천국만 가면 그만이라는 신앙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이런 복음은 성도가 현실을 회피하게 만들고 결국 삶까지 황폐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시대의 목회자들이 영적·육적 균형을 맞춰서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 건강의 문제, 부부·자녀간의 문제 등 많은 문제를 갖고 있는데 모두 담을 쌓고 살아버리게 됩니다. 성도가 빛을 발하지 못하니 주변에서 볼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이 저 정도야?', '교회 갈 필요 없어'라는 생각이 들죠. 그러나 하나님은 태초에 우리를 존귀하게 지으셨습니다. 이 땅에서도 천국과 같은 삶을 누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주 목사는 "교회가 모든 죄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목회자가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며 "목회의 방향성을 숫자나 부흥에 두지 말고 더디 가더라도 제대로 가자"고 격려했다. "여성 목회자들이 기도는 많이 하는데 지식이 부족합니다. 더 멋지게 쓰임받기 위해서는 여성이라는 틀 안에 갇혀있지 말고, 신학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잘 준비해서 목회 현장에서 능력을 증명하고 경쟁력을 갖춰야 합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만큼 쓰십니다!"

최상경 기자2018-07-12

내 주변에 '넌 가치 있어' '존재 자체로 빛나' '넌 내게 중요한 사람이야'라고 끊임없이 말해주는 이가 있다면 어떨까. 상대방을 긍정해주는 한마디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만큼 강력하다. 꿈이 있지만 방황하는 청소년과 삶의 변두리로 쫓겨난 노숙자들, 더 나아가 삶의 목표를 잃은 자들에게 쉼없이 긍정의 말을 건네는 이가 있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인생의 동반자가 돼 '하나님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드림트리빌리지(Dreamtree Village) 이성교 대표는 아이러니하게도 타인들에게 미움 받던 속칭 '최고의 쓰레기'였다. 미움과 멸시의 대상…"꿈을 노래하는 자가 되다" "전 그냥 미움 받는 존재였어요. 이유 없이 왕따를 당하고 늘 친구도 없었죠.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노래가 왜이리 싫었는지 몰라요. 가정 형편도 안 좋아 항상 위축돼 보였을 지도 몰라요. 마냥 하루가 괴롭고 살기 싫은 마음이 컸던 저였죠." 과거 타인들로부터 소외된 삶을 살던 이성교 대표는 현재 사회적 기업인 '드림트리빌리지'를 통해, '문화예술 교육과 나눔'을 제공하면서 수많은 이들의 '비전'을 심어주고 있다. '재능 나눔'의 비전을 안고 지금에 도달하기까지10여 년이 걸렸다. 이 대표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고 이렇게 운을 뗐다. "매년이 힘들었어요....놓고 싶은 적도 많았죠. 아내에게 이번만은 마지막이라고 얘기한 적이 너무 많아요. 그러면서 달려온 거죠. 아무리 사회공헌에 만족한다 해도 현실적인 문제는 타격이 커요. 월세가 10개월 치 밀린적도 있고, 문을 아예 닫은 적도 있죠. 4년 전엔 사실상 망한 기업이라는 진단까지 받았죠." 그럼에도 그는 도중에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너무도 뚜렷했기 때문이다. 26살 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서 이 대표는 인생의 눈이 새롭게 떠졌고, 자신의 존재이유 역시 찾게 됐다. "하나님은 특별함이 아닌 '내 존재 자체가 은혜'라는 음성을 들려주셨어요. 과거 전 제 자신을 '최고의 쓰레기'라고 여기며 살았죠. 그러나 '너는 나의 최고의 작품이야',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야'라고 이야기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믿게 됐고 제 삶이 바뀌었어요. 그 후 하나님은 순차적으로 '비전'을 주셨고 '타인들과 관계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셨죠. 처음으로 혼자라는 느낌에서 벗어나 다른 이들에게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됐어요." 내가 가진 것으로 남들에게 나눌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이에 대한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작은 돈도 감당할 여력이 없던 그는 만일 '재능'이라면 하루에 10시간이라도 드릴 수 있으리란 확신이 생겼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 돼 재능 나눔 단체인 '드림트리빌리지'는 이렇게 해서 탄생됐다. 베이스기타를 전공한 이 대표는 2013년 1월 재능 나눔을 위해 개인 학원으로 사업을 시작해, 이듬해 사회적 기업의 옷을 입고 더욱 풍성해졌다. 현재 드림트리빌리지는 '문화예술을 통해 좀 더 친절하고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모토로, 취약계층 청소년을 비롯한 노숙인, 시니어 등과 함께 음악·공연 콘텐츠를 만들며 공유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드림트리 1집 블루밍(피어나다)은 드림트리빌리지에서 취약계층 청소년들이 재능 나눔으로 참여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꿈을 주제로 만든 앨범이다. 일명 노숙인 밴드로 노숙인 인식 개선의 혁명을 일으킨 '봄날 밴드'도 드림트리빌리지에서 비롯됐다. 노년의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멋쟁이 시니어합창단을 결성해 또 다른 꿈도 펼치고 있다. 이밖에 필리핀 몬탈반 쓰레기마을의 청소년 음악캠프, 청각장애를 위한 음악교육 등 개별적으로 진행하는 사업 역시 무궁무진하다. 이같이 지속적으로 사업이 확장된 데는 무엇보다 '관계의 힘'이 컸다. "큰 틀에선 재능 나눔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신기하게도 사람은 딱 자기가 받은 만큼 타인에게 되돌려 주려는 습성이 있죠. 내가 곁을 내주면 그걸 받은 이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만큼을 전달하는 거에요. 이처럼 계속 선순환 되면서 함께 성장하는 것이죠." '꿈'을 매개로 인연을 만들고 있는 드림트리빌리지는 수많은 결실을 맺기 위해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이 대표는 "5년 전 계획한 모든 일들이 다 이뤄졌다"면서 향후 5년의 기대감도 한껏 드러냈다. 그는 만 19세가 되면 보육시설을 떠나야만 하는 고아들의사회 정착 위해, 지원사업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끝으로 '비전의 중요성'을 다시금 가슴 깊이 전해왔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가슴 벅찬 원동력이 되요.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어떤 생각을 심어 주시면 즉시 실행에 옮겨 보는 거에요. 만일 그 길을 열어 주신다면 하나님이 함께해주신다는 증겁니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혹 지금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나요? 그렇다면 바로 지금 나아갈 때입니다"

한연희 기자2018-07-04

분립개척, 토요예배, 미디어 교회. 분당에서 성공한 메가처치로 여겨지는 만나교회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사역들이다. 여타 대형교회들의 모습처럼 규모가 갖춰지면 안정화를 추구할 것 같은데 흩어지는 교회를 시도하고 있다. 토요예배는 전통적 예배론을 거스르는 부분이라 논쟁의 여지도 남기지만, 한국교회 미래적 대안으로 래디컬 체인지(본질적 변화)와 선교적 교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건강한 교회의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선 응원하고 지켜볼만 하다. 지난해 말 <치열한 순종>에 이어 최근 <치열한 도전>을 펴낸 김병삼 담임목사를 분당 만나교회에서 만나봤다. 선교적 교회에 대한 치열한 고민 김 목사는 "<치열한 도전>은 교회가 가야할 방향에 대한 이야기로 한국교회 성도들이 봤으면 한다"면서 "만나교회가 가는 길은 The way가 아닌 One of them일 뿐이다. 만나교회가 한국교회 미래방향으로 하나의 길을 시도하는 선상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소위 대형교회형태를 갖추면 안정을 추구하게 되기 때문에작게 쪼개지고 쪼개져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선교적 교회'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김 목사는 크레이크 밴 겔더, 드와이트 샤일리의 저서를 인용해 ▲하나님은 교회를 세상으로 보내시는 선교적 하나님임을 인식▲기독교 세계 이후의 포스트모던적이고 세계화된 상황에 참여하기 위해 보냄 받은 성육신적 사역 지향등이 선교적 교회라고 제시한다. 김 목사는 "이것이 선교적 교회의 핵심 주제라면 만나교회는 선교적 교회를 분명하게 지향하고 있다. 2018년을 시작하며 교회를 다시 고민하기 위해 4주간 주일예배를 통해 '우리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흩어지기 위해 모입니다', '우리는 헌신하기 위해 모입니다'. '우리는 삶으로 예배합니다'라는 주제로 설교했다. 모두 하나님 나라 선교와 선교적 교회의 주제들을 담아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흩어지는 교회를 실현하는데 제일 힘든 사람이 교인이 아니고 목회자"라며 "이 정도 규모의 교회에서 은퇴할 때 받을 수 있는 대우가 다르다. 흩어지는 교회를 지향한다는 것은 목회자가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교회는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자발적으로 흩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역사를 보면 교회가 모이면 문제가 생기고 알아서 흩어진다"고 했다. 현재 만나교회를 바라보는 시각 중에는 너무 새롭다 보니 지나치다 싶은 '토요예배'가 있다. 올해 4월 7일 시작했으며, 첫 예배에 1천명 정도가 모였다. 교인 수로 따지면 1/10정도 규모다. 현재는 5~600명 정도가 모이고, 이들 중에는 주일 봉사에 집중하고자 참여하는 성도도 있고, 주일에 지역 미자립 교회를 찾아가 예배 드리겠다는 선교적 각오로 모인 이도 있다. 김 목사는 "2018년 4월 만나교회는 예배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담장을 넘는 토요예배인데 토요일에도 주일예배와 동일한 비중의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보다 의도적으로 흩어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다. 토요일 오후에는 만나교회에서 예배하고 주일에는 만나교회 안팎의 사역지, 선교지로 흩어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흩어지는 교회, 성전을 허무는 교회가 되어야 만나교회가 토요예배를 시작하게 된 현실적 문제도 있었다. 주일에 교회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이를 효율화 해보자는 취지도 크다. 김 목사는 "한국은 땅도 적고 건축비도 높다. 교회 건축이 천문학적 문제로 이어진다. 주일 예배를 토요일로 옮기면 자원이 절약된다. 건축에 투자하는 많은 부분들이 절약된다는 고민도 있었다"고 전했다. 선교적 교회론 실행을 충분히 고민한 교회의 입장에서 토요예배는 어찌 보면 이해 받을 수 있는 시도일 것이다. 하지만 주일 성수란 전통적 예배론을 거스르는 부분이라서 논쟁의 여지는 남기고 있다. 토요예배에 대한 신학적 명분을 묻는 질문에 만나교회와 김병삼 목사는 어떤 현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김 목사는 "간호사는 3교대이고 아파트 경비는 하루 걸러 하루씩 일하는 구조다. 그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교회에 가서 주일을 지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럼 우리는 그들에게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하나. '주일을 지키면서 회사를 그만두세요.' 이게 굉장히 믿음 좋은 모습인가. 아니면 , '당신의 삶 가운데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세요. 우리가 주일을 지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겠습니다'가 맞을까. 나는 길을 열어주는 쪽을 선택했다."고 했다. 김 목사는 토요예배를 신학적 논쟁으로 끌고 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진리의 문제가 아닌 선교적 관점으로 접근하길 원했다. "이건 진리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이 곳이 선교지라 생각한다면 마음은 달라진다. 선교적 마인드를 갖는다면 교회가 많은 것을 뛰어 넘을 수 있다. 그래서 올드페러다임에서 뉴페러다임으로, 교회 중심적 사고에서 하나님 중심적 사고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내가 선교학을 공부하다 보니 그런 것 같은데, 선교적 생각은 제도권을 뛰어 넘는다. 만나교회에 흡연실이 있는데 담배를 피는 곳이 아니라 담배를 끊는 곳이다. 또한 목회자들에게 주일을 낀 휴가를 주고 있는데 휴가지 현장에서 예배 드리란 의미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이 성전을 허무는 일이었다. 나는 우리가 교회를 허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상경 기자2018-06-11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의 고통을 어느 누가 짐작할 수 있을 까. 『스물두 살 태훈이』의 저자이자 자폐아 아들을 둔 박상미 작가는 그 고통의 무게를 유쾌한 시선으로 승화시킨다. 감내하기 어려운 슬픔에서 성숙한 방어기제인 재치나 유머의 단계로 접어들기까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쳤을지 감히 단정조차 할 수 없다. 모든 걸 이겨 낸 뒤 드디어 찾은 세상을 관통하는 '따뜻한 시선'은 삭막한 현실을 사는 우리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태훈이와의 동행…"이 또한 주어진 삶이죠" "태훈이와의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특히 아이와의 외출은 아이를 업은 채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도 같았다. 오늘은 부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나가기 전에 큰 결심을 하곤 했다."(82쪽) 남들 모두가 맞는 평범한 일상도 '장애'라는 이름 앞엔 곧 특수함으로 둔갑돼 버렸다. 이들 모자에게 일상이 전쟁터가 된 순간, 박상미 작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픈 고비의 순간을 맞았다. "이미 모든 것을 초연하게 받아들인 부모들이 부러울 정도였어요. '전 어떻게 해야 되죠' '이 고통이 미치겠어요!' 라며 하나님께 계속해서 발악했죠. 그러다 보니 결국엔 '어떻게 죽을까'라는 최악의 생각까지 가게 되는 거에요. 그때는 아이가 정상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집착이 마음을 옭아맨 요인이 됐다는 것을 몰랐을 때였죠." 전쟁터에 끌려 나온 억울한 마음으로 평생을 살 수는 없었다. 박상미 작가는 삶에 대한 원망 대신 집착을 버리고 오롯이 삶을 받아들이기로 결단했다. 아들의 장애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자 의미 있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모든 상황과 사실을 받아들인 다는 것. 사실은 말이 쉽지 너무 어렵죠. 그러나 이 또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태훈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발견했죠. '얘는 정말 약하지. 인격적으로나 영적으로 섬길 대상이구나' 작은 자를 섬기신 하나님의 삶이 내 삶 가운데 임함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순간의 행복 쫓다보면…반드시 좋은 날도 옵니다" 모든 것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자, 태훈 씨를 향한 시선도 달라졌다. '서로 사랑에 빠졌다' '귀여워 죽겠다'라는 말이 시종일관 나올 정도로 긍정적인 마음이 넘쳐났다. 화가를 꿈꾸던 그는 사는 것에 바빠 그림 그리는 것을 잊고 살다가 아들로 인해 다시 그림도 그리게 됐다. "서로 사랑에 빠져야 될 것 같아요. 아이 자체를 존중해주고 타인의 삶과 비교하려는 태도를 없애려는 게 중요하죠. 결국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아이에게 영향이 가거든요. 지긋이 바라보면 예쁜 부분이 있어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눈높이를 맞추되 때로는 한 템포 물러서서 바라볼 필요성도 있죠." 그는 태훈 씨를 바라보면서 발견한 일상의 기쁨을 그림일기로 남기기 시작했다. 엉뚱한 태훈 씨의 어록과 함께 삶 속에서 찾은 소소한 순간이 기록으로 쌓여 특별한 삶으로의 변화를 이끌었다. 고통스럽기만 했던 예전의 삶이 어느덧 모자에게 '유쾌함'과 '소중함'으로 점철된 일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하루하루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행복에 대한 기준이 다르니까 결국 어디에 기준을 두냐에 따라 삶의 방향도 결정되죠. 하루만이라도 '행복을 위해 즐겨야겠다'는 마음이 큰 변화를 이끌었어요. 긍정적이고 늘 밝은 저희의 모습을 보고 요즘엔 주변사람들도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줍니다." 이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게 아닐 터다. 삶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고자 치열하게 노력한 데서 빗어진 결과나 다름없다. 그러나 박상미 작가는 끝까지 이 과정들을 말로 옮기지 않았다. 책 속에서도 오로지 유머러스 한 감각만이 살아 움직일 뿐이다. 어쩌면 이것은 박상미 작가가 전하고픈 메시지이자 모두에게 건네는 위로 자체일지 모른다. '나보다 힘든 이들이 수두룩할 것'이라며 수줍음마저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삶을 긍정하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 지온전히 전해졌다. "지금 세상엔 힘든 사람들로 넘쳐 나잖아요. 절망까지 거의 다 가기도 하고. 조금만 더 견뎌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무작정 인내하란 말은 아닙니다. 그저 방향을 조금 바꿔보라는 말을 건네고 싶어요. 결국 우리는 각자의 역할이 있고 자기 이치에 맞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소중하게 받아들여 보는 거에요. 그러면 분명 행복에 더욱 가까워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prev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goodtvICGCCMLOVE굿피플KCMUSA기독뉴스GoodPeople아멘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