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기자2017-05-16

한국교회의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본질 회복이 우선이라 외치지만,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됐는지 풀어가기가 쉽지 않다. 주일학교가 사라지고, 청년들이 빠져나가고, 고령화되는 교회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던 권준 목사는 '기성교회도 부흥할 수 있다'는 비전을 품었다. 그리고 미국 시애틀의 형제교회로 갔다. 올해로 부임 17년째, 권 목사의 눈에 '양로원' 같았던 형제교회는 활기가 넘치는 교회로 변화됐다. 성도들도 꾸준히 늘어나 시애틀에서 가장 큰 교회로 성장했다. 10년 전부터는 컨퍼런스를 통해 지역교회들과 함께 건강한 교회(웰빙처치)로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권준 목사를 만나, 형제교회의 '놀라운' 이야기를 들어봤다. "교회는 사랑의 힘에 의해서 변화된다" 고등학교 때부터 미국에서 살았던 권준 목사는 신학을 공부하고 부목사로 목회하다가 1996년 귀국해 온누리교회에서 사역했다. 두란노서원 원목으로 섬기며 해외 한인교회들을 많이 접해봤다는 그는 침체된 기성교회의 부흥을 향한 비전을 품게 됐다. "기성교회들이 처음엔 부흥하다가 청년들이 빠져나가고 고령화 되면서 침체되잖아요. 이러다가는 교회가 장례식을 치르게 되겠구나 싶더라고요. 기성교회도 변화돼서 부흥할 수 있다는 열정이 생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회를 달라고. 변화의 모델을 만들어서 수많은 교회들과 비전을 나누고 싶다고요." 그리고 2000년 권 목사는 시애틀 형제교회에 부임했다. 당시 장년 200여 명이 출석하는 작지 않은 규모의 한인교회였지만, 권 목사의 눈에는 '양로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부임하고 4주째 되는 주일이었어요. 예배 마치고 성도들과 악수하는데, 권사님 한 분을 꼭 안아드렸습니다. 그분이 너무 사랑스러웠거든요. 그리고 말했죠. '권사님 사랑합니다.' 그 순간 하나님이 이런 마음을 주시더라고요. '이게 바로 목회야'라고." 어떤 특별한 프로그램을 한 것도 아닌데, 성도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가정 올까 말까 했는데 한 주에 몇 가정씩 새신자로 함께하니, 성도들도 신이 났다. 목사와 성도들 사이의 믿음이 쌓이고, 교회 분위기가 활기차게 변하고 있었다. 형제교회는 현재 3000명 이상이 출석하는, 시애틀에서 가장 큰 교회로 성장했다. 하지만 권 목사는 성도 수가 늘어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뭔지 알게 됐다. '교회는 사랑의 힘에 의해서 변화된다.' 형제교회에서 17년 목회하며 깨달은 것이다. 목적이 우리를 이끄는 게 아니라, 사랑의 힘이 목적을 향해 함께 가게 한다는 것. 그게 형제교회의 오늘을 있게 했다고 권 목사는 이야기한다. ▲컨퍼런스에는 목회자뿐 아니라 교역자와 성도들 모두 참여할 수 있다ⓒ사진제공 권준 목사 '예배ㆍ친교ㆍ전도', 세 가지 원리에 집중해야 권 목사는 자신이 처음 품었던 비전대로 형제교회의 부흥을 다른 교회들과 나누기 위해 2007년부터 해마다 컨퍼런스를 열고 있다. 컨퍼런스에는 목회자와 평신도 모두 참석할 수 있게 했다. 함께 변화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2015년에는 중국동포 목회자 80여 명과 함께 제주도에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올해는 5월 22~24일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동수원장로교회에서 '세상을 감동시키는 교회'라는 주제로 진행할 예정이다. 권 목사 외에도 정성진 목사(거룩한빛광성교회), 옥성석 목사(충정교회), 김상현 목사(동수원장로교회), 우상진 목사(성경과 설교연구원장) 등이 강사로 참여한다. "컨퍼런스에서 중요하게 나누는 이야기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집니다. 성경은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새 계명이라'고 말씀합니다. 새 계명이라 함은 예수님이 제자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이고, 예배죠. 두 번째가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즉 친교입니다. 세 번째는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바로 전도죠." 권 목사는 교회가 이 세 가지 원리에 집중하면 교회가 부흥할 수 있다고 말한다. 변화의 가장 큰 힘은 예배의 갱신에서 오고, 예배로 은혜를 받으면 그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그게 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몰려오며 전도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의 슬로건은 '아이엠 교회'입니다. 'I'm missionary'의 약자죠. 우리 모두가 삶 속에서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선교사라는 자각을 갖고, 배려와 양보와 섬김을 실천하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정문에는 '당신은 지금 선교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란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있답니다."

박은정 기자2017-05-18

화상으로 인해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지만 "평생 나와 같은 장애인들을 섬기겠노라" 다짐하며 장애인 사역에 앞장서는 목회자가 있다. 바로 자오나눔선교회의 양미동 목사가 그 주인공. 장애인을 향한 남다른 섬김으로 주변을 따뜻하게 밝히는 양 목사의 헌신은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강렬한 도전을 주기에 충분하다. 죽음의 문턱에서 만난 복음…새로운 삶으로 인도해 양미동 목사는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예수님을 거부했던 청년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어린 아들을 두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만화방을 운영했던 양 목사는, 어느 날 가게 안에 있던 난로가 불에 타면서 전신 화상을 입고 말았다. 사고로 인해 양 목사는 22번 수술대에 올랐고 그의 왼쪽 다리는 일부 절단됐다. 살지 못할 거란 의사에 판단에 그의 곁을 지켰던 아내마저 14개월 된 아들을 두고 떠나버렸다. 결국 양 목사는 지체장애 1급이란 판정을 받고 퇴원을 했다. 병상에서 죽음의 문턱을 헤매던 양 목사가 복음을 접할 수 있었던 건 부천 목양교회 찬양팀의 섬김이 있었기 때문이다. 목양교회 찬양팀이 매주 양 목사의 병실을 찾아 말 동무가 돼주고 하나님 말씀을 전한 것이다. "매주 교회 청년들이 저에게 와서 찬양을 하고 말씀을 ▲자오나눔선교회 양미동 목사ⓒ데일리굿뉴스 전하는 데 처음에는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더 이상 오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죠. 그렇게 1년이 되던 날, 갑자기 제 입술에서 찬송이 흘러 나왔어요. 그 순간 완전히 무너졌죠. 어릴 적 교회에서 얼핏 들은 찬송이 입에서 흘러 나오면서 닫혔던 저의 마음이 열린 겁니다." 이후 하나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이어오던 그에게 대구의 한 단체가 진행한 '장애인 간증수집 콘테스트'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 당시 출석하던 교회에 건축헌금을 내고 싶단 마음에 '주님 내게도 들을 것이 있습니다'란 제목으로 간증 수기를 올린 것이 대상을 받게 된 것. 그때부터 자신과 같은 장애인을 위해 살고 싶단 비전을 갖게 됐고, 교회의 도움으로 1996년 5월 '자오나눔선교회'라는 장애인 선교 및 봉사단체를 설립하게 됐다. 그는 1995년 11월 소록도 한센병자를 찾아 봉사활동 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다양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 ▲<월간나눔>이란 선교지를 매월 제작해 장애인과 군부대, 교도소에 무료로 발송하는 것은 물론 ▲1998년부터 안양교도소를 방문해 장애인 재소자들을 위한 예배 및 상담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교정선교를 할 때는 예배만 드리고 오지 않습니다. 재소자들과 함께 성경필사도 진행하고 있어요. 필사를 완성한 분에게는 영치금도 전달해드리죠. 교도소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만난 하나님은 재소자들에게 더 큰 은혜를 전하시더라고요. 성경필사만 3~4번 한 분도 있습니다." 대문 없는 쉼터…"누구나 자유롭게 머무를 수 있도록" 현재 양미동 목사는 경기도 화성에 '자오쉼터'를 세우고 8명의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제가 장애인이 되다 보니 장애인들의 열악한 환경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가족들마저 장애인들을 관리하기 어려워 방 안에 방치하곤 하더라고요. 그래서 장애인들끼리 한 곳에 모여 공동체를 이루며 생활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죠. 처음에는 재정도 없어 힘들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곳에서 도움을 받아 현재 16년째 장애인 분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자오쉼터에 머무르는 장애인들은 모두 지체 장애인 1, 2급. 대다수 다른 장애인 시설에서 적응 문제로 자오쉼터로 왔지만 오히려 자오쉼터에서는 별탈 없이 생활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오쉼터에는 대문이 없어요. 장애인 분들이 자유롭게 생활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통제하지 않는 거죠. 예배 시간만 통제할 뿐 모두 자유롭게 머무를 수 있도록 하니까 다른 시설보다 여기서 평안을 얻는 것 같아요." 양 목사는 최근 한 가지 걱정이 있다. 보건법이 바뀌면서 장애인들이 장애 등급에 따라 요양원으로 이동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양 목사는 "하나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10인 이하 장애인들이 머무를 수 있는 요양시설을 쉼터 옆에 세워 장애인들이 맘껏 생활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며 "장애인 사역을 위해 성도님들의 기도를 부탁한다"고 전했다.

김민정 기자2017-04-28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뮤지컬 배우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전수경. <캣츠>, <맘마미아>, <캐치 미 이프 유 캔>, <금발이 너무해>, <시카고> 등 내로라 하는 작품들에서 열정적이고 굵직한 연기를 선사해 온 그는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조연상(1997)과 여우주연상(1999, 2002)을 수상하며 뮤지컬계의 여신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은 뮤지컬뿐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 등을 통해 폭넓은 연기로 사랑 받고 있는 전수경 씨의 삶을 지탱해 준 건 다름 아닌 '감사'다. 예기치 못한 위기 때마다 하나님의 붙들어주심을 경험하며 감사의 고백을 잊지 않았다고. 배우 전수경이 털어놓는 신앙 스토리를 <신앙계> 5월호가 만났다. 포기 못한 배우의 꿈…끈질긴 도전 끝에 이루다 학창시절 미션스쿨을 다니며 자연스레 신앙생활을 시작했다는 전수경 씨는 '크리스천'이라는 정체성은 갖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믿음은 없었다. 그런 그에게 뜻하지 않은 난관이 찾아왔다. 어머니가 간암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 "제가 해드릴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이런 고민 가운데 가까운 친구가 하나님께 매달려보라고 권하더군요." 난생 처음 3일 금식기도도 하고, 밤을 지새우며 철야기도도 했다. 주일예배도 열심히 참석했다. 그러면서 진짜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됐다. "매일 행복하고 맛있는 것만 먹으면 이것이 행복이고 이 맛이 맛있다는 것을 못 느끼면서 살아갈 것 같아요. 하나님이 간혹 맛없는 것도 먹게 하시고 추운 것도 알아야 따듯한 것에 대한 감사도 알게 되잖아요. 저는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하나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꿈꿨던 배우의 길을 걷고 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뮤지컬이 하고 싶어 연극영화과에 입학했지만, 뮤지컬이 활성화돼 있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무대에 설 기회를 찾는다는 게 쉽지 않았다. 방송국 공채탤런트 시험도 모두 낙방했다. 하지만 그에게 포기란 없었다.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통로가 된다면 무엇이든 도전했다.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동상을 수상한 것도 그러한 도전의 결과였다. 생각지 못한 소식에 기쁨이 컸지만, 가수보다 연기가 하고 싶었던 그는 다시 연극판으로 돌아왔다. 그러던 중에 뮤지컬 <캣츠>의 국내 공연 오디션을 봤고, 그는 당당히 합격했다. 캣츠를 시작으로 유수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배우 전수경'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TV와 영화 등을 오가며 종횡무진했다. "제 본래 성격은 온순한 편인데 개성 강하고 직설적인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어요. 처음엔 낯설었는데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도 재밌게 느껴졌어요. 무엇보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변함없이 이어가는 것 자체가 감사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있는 전수경. 그는 자신의 마음을 함께해주는 남편에게 늘 고맙다고 전한다ⓒ사진제공 신앙계 갑상선암 판정 받고 주님 다시 만나…"모든 것 감사" 배우로 승승장구하던 전 씨가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된 계기가 있었다. 2010년 5월 갑상선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주님과의 시간을 게을리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어요. 제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하는 게 너무 죄송스러웠죠. 그때 한 친구가 제게 기도하라며 구체적인 방법까지 일러주더군요." '사랑하는 남자친구에게 하듯 기도하라.' 친구가 해준 조언이었다. 전 씨는 용기를 내서 기도했다. 갑상선암이 임파선까지 퍼진 상황이었고, 확진을 위해 여러 번의 검사를 해야 했다. 그는 나지막하게 고백했다. 고쳐달라는 게 아니라, 함께 해달라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기도 가운데 그는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했다. "제가 원래 논리적이지 않으면 잘 믿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신앙체험을 누가 얘기해도 의심부터 했었죠. 그런데 정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제 온몸으로 들었을 때, 저는 그 자리에서 순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한다’는 말씀이 온몸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너무 큰 은혜였습니다.” 바로 그날, 전 씨는 임파선으로 암이 전이되지 않았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감사의 고백을 가족과 함께 나눈다. "아팠던 시간들을 계기로 앞만 보고 달려가던 저는 이제 주변을 돌아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신 거지요. ‘이제 나를 바라 보거라, 네 이웃을 돌아 보거라’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박은정 기자2017-05-15

평택의 작은 농촌마을에 특별한 음악회가 열렸다. 노인과 아이들이 신앙 안에서 함께할 수 있는 공간, 일명 '노아방주'를 만들기 위해서 임천명 목사가 마련한 것이다. 임 목사는 "성경 속 노아의 가족처럼 농촌 지역의 소외계층이 '노아방주 복지센터'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길 바란다"고 고백했다. 조손가정 위한 '지역아동센터' 사역에서 시작 13일 오전 평택시 팽성읍 노성리에 위치한 섬기는 지역아동센터(센터장 임천명 목사)에서 '노아방주 건축기금마련 음악회'가 열렸다. 이날 음악회에는 지역 내 어르신과 아이들, 그리고 지역아동센터의 후원자들이 함께 해 자리를 빛냈다. 섬기는 지역아동센터가 위치한 평택시 팽성읍 노성리는 주민 대부분이 노인인 농촌 지역이다. 그나마 젊은 층이라고 해도 어르신들의 자녀 혹은 손자·손녀 몇 명뿐으로, 마을 대다수가 조손가정, 편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으로 구성돼 있다. 이런 가운데 임천명 목사와 그의 아내 노영순 사모는 17년 전 이 곳으로 이사 와 교회를 개척하고 푸드뱅크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됐다. 임 부부는 봉사를 하며 지역 내에 방치된 아이들을 발견하게 됐다. "17년 전 이 마을에 이사오면서 푸드뱅크 자원봉사를 시작했어요. ▲섬기는 교회 임천명 목사 주로 계양 지역의 독거노인과 저소득층 가정에 식료품을 나눠주면서 많은 가정들을 만나게 됐죠. 그런데 한 집 한 집 방문을 하면서 조부모 손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보이더라고요. 그때부터 아이들을 위한 센터를 운영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하지만 아이들을 돌보기에 제대로 된 장소도, 비용도 없었다. 그러던 때 마침, 주변의 도움을 받아 교회 인근에 작은 공부방을 열게 됐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임 목사 부부가 자원봉사를 하던 평택 푸드뱅크에서 간식을 받아와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도서관에서 책을 기증받으며 아이들을 돌봤다. 차츰 사역이 넓혀지면서 임 목사 부부는 2002년 10월부터 섬기는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게 됐다. 현재는 23명의 아이들을 섬기고 있으며 학습지도와 역사논술, 안전교육, 아동권리교육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외에 정서지원 상담 프로그램도 함께 하고 있다. 학교를 마치면 길거리에서 방황하고 집에만 있었던 아이들이 이제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센터로 달려온다. 자연스럽게 하나님 말씀을 접하게 된 아이들에게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맨 처음 아이들 대다수가 자신감도 없고 가정에 대한 상처도 많이 받은 상태였어요. 그런데 센터에서 또래 아이들과 함께 놀며 교육도 받으면서 점점 회복되더라고요. 학교에서 반장은 물론 회장까지 맡는 아이들도 있어요. 아이들이 변하자 가정까지 함께 전도되는 기적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손자·손녀 모두 지역아동센터에서 돌봄을 받고 있다는 이운하 할머니는 "우리 손자·손녀가 '학교 대신 교회 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교회를 너무 좋아한다"며 "이제는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많이 밝아져 목사님께 감사하다"고 전했다. "성경 속 노아처럼 '노아방주'에서 구원 받길" 이런 가운데 임 목사 부부는 이제 노인과 아동이 함께 머무를 수 있는 '노아방주 복지센터'를 설립하고자 한다. "노인들은 나이가 들거나 치매에 걸리면 지병으로 인해 요양원에서 쓸쓸하게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손자들과 한 공간에서 지낸다면 오히려 아이들로부터 삶의 희망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아이들도 노인들과 함께 지내며 노인공경도 배우고 저절로 따뜻한 보살핌도 받을 수 있어 더 좋은 거죠." 임 목사 부부의 최종 꿈은 성경 속 노아의 가족처럼 노아방주 복지센터에 머무르는 노인과 아이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섬기는 교회는 농촌의 작은 교회고 성도들도 많진 않지만 복지 목회를 통해서 많은 영혼들을 사랑으로 구원하고 싶어요. 그래서 갈급한 마음을 가진 소외계층 영혼들이 '노아방주 복지센터'에 생활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받길 바랍니다." 한편 노아방주 복지센터 기금 후원과 관련된사항은 노영순 사모(010-3376-1191) 문의 및 (사)함께하는 다문화네트워크 351-0943-4390-13(농협)을 통해 가능하다.

윤인경 기자2017-05-18

7살에 한센병에 걸려 사람들의 조롱과 편견 속에서 살아야 했던 김흥수 장로(원당반석교회). 여러 차례 죽음을 시도했지만, 그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던 그에게 누나가 내민 성경책 한 권은 새로운 삶을 선물했다. 소록도로 들어가 하루하루 기도와 찬양으로 살던 어느 날, 기적처럼 한센병이 나았다. 후유증으로 인해 지체장애인으로 살고 있지만, 김 장로는 자신의 삶이 '덤'이라 감사할 따름이라고 주저 없이 고백한다. 신앙계가 창간 50주년을 맞아 공모한 '간증수기'에 입상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만나보자. '하늘이 내리는 큰 벌, 천형(天形)'으로 알려진 한센병. 김흥수 장로는 어린 나이에 가족들과도 격리된 채 살았다. 그는 골방에서 밥도 따로, 잠도 따로, 화장실도 따로 써야 했다. 손과 발은 변형되고 눈썹도 모조리 빠졌다. 한번은 상처 붕대를 끌러보니 벌레가 한 주먹이나 나왔다. 김 장로는 벌레가 병 때문에 자신의 몸 속에서 나온 줄 알고 깜짝 놀라, 몰래 땅 속에 묻었다며 그 때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마을에서는 사람만 모이면 한센병에 걸린 내 얘기로 온통 수근거렸다"며 "나는 너무나 부끄러워서 어린 나이임에도 도저히 이대로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독약을 먹어도 보고 목을 매어도 봤지만 죽는 일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가고 있는 그에게 어느 날, 누나가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을 전해줬다. 방에서 하는 일이 없으니 밥 먹듯이 복음서를 읽는데, 거기에는 예수님이 한센병 환자를 고치셨다고 적혀있었다. 김 장로는 "성경에는 한센병이 치유된 기적이 68번이나 기록돼 있다"며 "그 때 성경을 읽으며 예수님이 내 병도 고쳐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살 수 있겠다는 소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19살 되던 해에 그는 한센병 약이 풍부하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소록도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가 대전에서 소록도까지 간 길은,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과 같은 '고행길'이었다. 그가 버스 뒷자석에 타자 승객 중 누군가가 왜 한센인을 태웠냐며 고함을 쳐서, 결국 그는 버스 조수에게 끌려 차 밖으로 내팽개쳐지기도 했다. 겨우 도착한 소록도는 낙원 같았다. 그는 소록도에서 다른 사람의 눈치 볼 필요 없이 마음껏 하나님께 매달리고 찬양했다. 김 장로는 "그 때는 정말 일주일에 11번도 더 교회에 갔다. 오직 신앙만이 내가 사는 이유이자 힘이었다. 피곤해서 새벽 찬양대에 빠지면 하루 종일 괴로워 교회 찬양대석에서 자고 찬양을 한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성경을 읽을 때 가졌던 소망은 20년도 더 지나서야 마침내 현실이 됐다. 한센병이 다 나은 것이다. 그는 10년 만에 아내와 함께 소록도를 나와 경남 함안군에 정착했다. 김 장로는 교회 청년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더욱 뜨겁게 신앙생활을 했다. 김 장로는 불교를 믿으며 평생 살아온 부모님의 구원을 위해 40여년 간 매일 새벽기도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위암으로 입원 중인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불길한 예감이 덮쳐왔다. "전도할 기회는 이 때가 마지막이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께 '아버지, 예수 믿으세요.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미국대통령도 그 사람들이 다 바보라 예수 믿습니까?'라고 말씀 드렸어요. 그러자 아버지께서 눈물을 흘리며 '나 예수 반대 안 한다'고 말하셨죠." 아버지의 진료차트를 보니 기독교라고 적혀 있었다. 김 장로는 아버지 마음이 변한 것을 알게 됐다. 목사님을 불러 세례를 받을 것을 권했고, 아버지는 병상에서 세례를 받은 후 그 날 돌아가셨다. 이제 한센병은 다 나았지만 그 후유증으로 인해 김흥수 장로는 지체 2급 장애인이 됐다. 하지만 그는 담담히 고백한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고 치료해주셨기에 지금 내 삶은 덤으로 받은 것이다. 부족한 모습이지만 주님께 쓰임 받는 종으로 살아가는 삶이 너무나 감사하다"

한연희 기자2017-05-10

"한경직 목사님은 은퇴 후 남한산성의 조그만 집에서 26년간 사셨는데, 1년에 몇 번씩 찾아뵈며 가르침을 받았더랬죠. 늘 다독여 주시고 격려해주시는 모습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교회는 훌륭한 신앙의 선배들로부터 이 시대에 필요한 신앙적 유산을 충분히 물려받았다고 봅니다." 한국교회 원로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의 말이다. 신념과 행동이 일치하는 신앙으로 한국교회와 사회에 본이 됐던 신앙의 선배들이 그리워지는 이때, 김 목사를 만나 이 시대의 '스승'의 의미는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유창한 설교, 심오한 신학보다 중요한 건… 1천만 명 가까운 성도수로 국내 최대 종교가 됐지만, 사회 신뢰도에서는 타종교보다 월등히 낮은 점수를 받고 있는 한국교회의 역설적 상황.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선배들이 남긴 신앙적 유산을 이어가는 게 급선무임을 강조하며 김명혁 목사는 이같이 말했다. 김 목사는 "그저 손양원, 한경직 목사님을 조금만 닮으면 된다"면서 "모두를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섬김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설교를 유창하게 하고, 심오한 신학강의를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면서 ”오히려 그것들이 복음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교회가 권력과 외형에 치우치는 일을 멈추고 기독교 본래의 가치인 섬김을 삶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설교 전에 삶이 우선시 돼야한다"라며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면 교회에 반대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경직 목사님은 평생에 섬김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분과 그 교회가 하고자 하는 어떤 일에 있어서 반대에 부딪힌 적이 없다"면서 "존경은 교회 울타리를 넘어서 타 종교까지도 퍼져 있다. 지금도 다른 종교 지도자가 한 목사님의 섬김을 칭송한다"고 말했다. 그의 삶에서 참된 스승은 멀리 있지 않았다. 한경직, 정진경 목사와 같은 유명한 인물의 가르침도 있었지만 주일학교 교사의 헌신은 평생의 신앙적 토대가 됐다. 김 목사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옥살이 중이었을 때 주일학교 선생님들로부터 보살핌과 사랑을 많이 받았다. 평양 서문밖교회 이인복, 최병목, 명선성 선생님이다. 아직까지 이름도 못 잊을 정도다. 새벽기도와 주일성수, 순교신앙을 가슴깊이 심어주신 분들”이라고 밝혔다. "새대통령, 섬김의 정치 해달라" 마지막으로 김 목사는 새로운 대통령에게도 한국교회 신앙적 스승과 같은 섬김의 리더십을 주문했다. 김 목사는 "독재와 독선의 정치를 포기하고 백성들을 위한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면서 "낙선자들까지도 품을 수 있는 넓은 마음과 가난한 자들을 섬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이승훈 선생과 조만식 선생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평생 헌신하셨음에도 나중에 하나님을 믿고는 민족주의를 버리셨다"면서 "지역주의,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통합의 정치를 해달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삶으로 섬김의 족적을 남기는 진정한 스승이 간절히 필요한 이 시대다. 한국교회가 먼저 그 역할을 감당해 사회에 제시한다면 땅에 떨어진 신뢰는 저절로 회복될 것이 자명하다. 그럴 때 비로소 국내 1위 종교로써의 면모도 갖추게 될 것이다. 이런 고민은 김명혁 목사가 한국교회에 지속해서 “신앙의 선배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외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김민정 기자2017-05-02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가정과 교회, 학교의 연계 회복 사역을 펼치고 있는 이명현 선교사.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조금씩 변화되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그 아이들을 통해 달라지는 가정과 학교를 지켜보면서 다시 한 번 힘을 내본다. 이 선교사는 사람들이 아프리카 아이들을 불쌍하게 보지 말아주길 거듭 당부했다. 아이들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바라보고, 이들이 자립해서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 그는 "내가 언제 이곳을 떠나더라도, 이들이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유일한 목표"라고 담담하게 고백했다. "몽골 떠나야 했을 때 많이 힘들어" 이명현 선교사의 첫 사역지는 몽골의 작은 도시 종머드였다. 2004년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한 시간여 떨어진 이곳에 발을 디딘 그는 어린이들의 회복 사역에 주력했다. "몽골이 사회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변화하면서 길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아졌어요. 당장 먹을 것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 아이들을 지원해 주면서 그 부모와 가정을 회복시켜야겠구나 마음 먹었죠." 전문기관과 협력해 부모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어린이전도협회 등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잠재력을 개발하는 사역들을 했다. 그렇게 6년을 지내면서 지역의 가정들이 하나씩 회복되는 모습에 감사했고,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갑자기 몽골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몽골에서 비자법이 만들어지면서 사역이 좀 힘들어졌어요. 종교활동을 제재하고, 법을 위반하면 무조건 추방됐죠. 저는 NGO 비자로 들어왔는데, 종교활동을 하는 것이 문제가 돼서 나오게 됐어요. 단 일주일 만에 모든 걸 정리하고 나와야 했죠. 많이 힘들었어요. 왜 나일까…. 처음엔 이해가 안됐어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라 확신했고, 힘든 환경에서도 열심히 해왔기에 너무나 아프고 괴로웠다는 이 선교사. 기도하던 중 '이것도 복이 되게 해주겠다'는 말씀을 받고 순종하기로 했다. 2010년 우간다에 사역자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간다의 쿠미 지역에 도착해 그가 눈여겨 본 것은 교육제도였다. 이 선교사에 따르면, 학교에 대한 정부 지원이 거의 전무한 상태라, 초등학생 33% 정도만이 졸업을 한다. 학교 수업에 흥미를 못 느끼고 나온 남자아이들은 취업, 여자아이들은 조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은 5% 정도라고. "공립학교를 지원하는 센터(쿠미CDP)를 설립해서, 어린이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키워주는 일을 시작했어요. 학부모들은 급식비를 내도록 하고, 우리는 여러 가지 시설을 지원해요. 교사숙소, 교실, 교문과 울타리, 각종 교육 기자재 등이죠. 아이들의 교육 문제에 대한 의식계몽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치면서 다양한 방과후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요."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쿠미CDP가 지원한 지역의 공립학교는 총 23곳이다. 학교 지원에 있어서 급식 프로그램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부모가 자녀의 교육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되고,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해 유급률을 줄일 수 있게 되기 때문. 센터가 지원하는 학교들은 학기가 시작되면 급식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정기적인 평가회의를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안들을 나누고 실행한다. 초등학교 졸업국가고시 1등급 아동들도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한국을 잠시 찾은 이명현 선교사는 아프리카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데일리굿뉴스 센터 사역에 몸 10개라도 모자라…아이들 보며 힘내 이 선교사의 사역은 학교, 어린이에 머무르지 않는다. 쿠미CDP는 가정-교회-학교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단계별로 해결하는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가정의 경우 열악한 주택환경, 부모 역할에 대한 책임감 부족이 가장 큰 문제다. 이를 위해 학부모들이 가정의 소득증대를 위해 소규모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돕고, 마을저축조합을 운영해 재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교육한다. 모델홈 프로젝트를 통해 주택환경을 단계별로 개선한다. 부모들의 의식계몽을 위해 농업박람회를 열고, 견학과 세미나 등을 진행하기도 한다. 교회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선교사는 "우간다 인구의 70%가 기독교인이지만, 토속신앙과 결합된 형태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성경이 없는 신자들이 많다"며 "교회는 많지만, 정작 어려운 일이 생기면 주술사를 찾아가는 게 이곳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 선교사는 목회자 재교육도 하고 있다. 또한 교회연합회를 구성해 교회들이 주체적으로 사역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밖에 교회건축 지원, 리더와 교사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현재 이 선교사가 진두지휘하는 쿠미CDP는 총 3곳이다. 때문에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하지만 부모와 아이들이, 학교가, 교회가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 힘을 내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아프리카 아이들 하면 못 먹어서 비쩍 마른 모습을 떠올리게 되잖아요. 전 사람들이 아프리카 아이들을 불쌍하게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들의 가능성, 희망을 바라보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그래서 학교지원 사역이 중요하죠. 동정심에 일시적으로 돕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요. 우리가 이곳을 떠나도, 이들이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 돼야죠." 이 선교사는 '늘 오늘이 마지막날'이라고 생각하고 하루를 시작한다고 이야기한다. 갑작스럽게 몽골을 떠나야 했던 기억이 있기에, 언제 어느 때라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후회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사역 원칙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건, 이 땅에 영적, 육체적 굶주림이 종식될 때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믿어요. 그 비전만 바라보고 갈 겁니다." ▲이명현 선교사는 바쁜 사역에 힘이 들 때도 있지만, 변화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기운을 낸다고 이야기한다ⓒ이명현 선교사 제공

박은정 기자2017-04-10

2014년 4월부터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조선족 중국동포에 대해 한국 출입국을 자유화하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중국동포 청소년들의 입국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 장기적으로 체류할 수 없어 실질적으로 내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모호한 신분으로 어떠한 혜택 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들어와 홀로 방황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교육을 돕는 곳이 있다. 바로 한중사랑학교가 그 곳. '한 사람의 새 신자가 한 사람의 선교사로 양성된다'란 비전 아래 중국동포 청소년을 보듬고 있는 현장을 찾아가 봤다. 중국동포 청소년, '일반학교'로 진학 성과 이뤄 한중사랑학교(교장 서영희)는 6일 서울시 구로구 위치한 한중사랑학교에서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들어온 중국동포 청소년들의 입학식을 개최했다. 이날 입학식에 참석한 청소년 8명은 선서낭독과 함께 한중사랑학교의 사역에 함께하게 됐다. 한중사랑학교는 중국동포의 대모라 꼽히는 서영희 목사가 2001년 설립한 한중사랑교회에서 시작됐다. 중국동포가 한국에 들어와 나그네처럼 홀로 외롭게 지내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보기 위해 설립된 것이다. "한중사랑교회는 '한 사람의 새신자가 한 사람의 선교사로 양성된다'는 비전을 품고 있어요. 한 사람을 귀하게 여겨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을 중국동포들에게 전하고 싶단 사명으로 교회를 세우게 됐죠." 처음부터 중국동포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사업을 실시하지 않았다. 2001년부터 한중사랑교회로 사역을 이어오다, 서영희 교장의 눈에 중국동포 성도들의 자녀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동포 한 명 한 명을 돌보면서 성도들의 자녀들이 눈에 ▲한중사랑학교 서영희 교장ⓒ데일리굿뉴스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부모는 한국에 있지만 자녀들 대다수가 중국에서 홀로 지내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방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국에 데려오도록 했죠. 하지만 아이들이 한국어도 몰라 한국 정착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의 잠재력을 일깨워주고자 2015년 한중사랑학교를 설립하게 됐습니다." 한중사랑학교는 현재 한국어와 영어, 사회, 체육, 음악 등 일반학교와 동일한 커리큘럼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일반학교와 달리 아이들이 한국생활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1:1 교육으로 진행된다. "한국에 들어온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모두 어둡고 불안함에 휘말려 있었어요. 한국의 일반학교에도 제대로 정착하지 못해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다반사고, 게임중독과 음주, 흡연이란 유혹에 빠지기도 했죠. 하지만 아이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푸근한 마음으로 섬기니 아이들도 하나 둘 씩 자신감을 갖고 꿈을 갖게 되더라고요." 한중사랑학교 노력 때문일까. 한중사랑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들 대다수가 일반학교로 진학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현재 10명 이상의 학생들이 일반학교로 진학했다. 특히 서영희 교장의 섬김과 교사들의 사랑으로, 아이들 모두 100% 교회에 참석하고 있다. 전영준 학생은 "한국에 들어와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었는데 한중사랑학교에 와서 한국어 말고도 음악과 수학, 체육 등 평소 좋아했던 수업들을 배울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끝으로 서영희 교장은 "한중사랑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많은 아이들이 한국에 잘 정착해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며 새로운 비전으로 아름답게 성장해 나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중사랑학교는 6일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들어온 중국동포 청소년들의 입학식을 개최했다.ⓒ데일리굿뉴스

김준수 기자2017-04-04

최근 이태원 경리단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망원동 일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면서 덩달아 오른 임대료 때문에 상인들의 피해가 크다. 망원동에서 40년째 사진관을 운영해온 김선수 사진사도 폐업 위기에 내몰려 주민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임대료 '껑충'…폐업 위기 내몰린 사진관 행운의스튜디오 김선수 사진사는 망원동에서만 40년째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 자리에서도 22년째다. 주민들은 동네 터줏대감인 그를 '털보 아저씨'라고 부른다. 15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동네 주민들의 추억이 가득하다. 돌 사진을 찍었던 아기가 어른이 되어 사진을 찍으러 오는 경우도 흔하다. 망원동에 위치한 망원교회와 한서감리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기도 했던 김 씨는 사진관을 개업한 이래로 사진 가격을 인상한 적이 없다. 증명사진 9장에 여권사진 8장을 합해서 1만 원, 돌 사진도 액자를 포함해서 1만 원이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않던 교인들과 주민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망원동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동네였어요. 집마다 화장실이 없어서 아침이 되면 공동화장실에서 일을 보려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근처에 있는 사진관에서는 증명사진만 찍어도 2만 5천 원을 받아요. 서민 사진관이라는 생각에 22년 전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40년이나 마을 사진사 역할을 톡톡히 해온 김 씨지만, 정든 사진관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망원동 일대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치솟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김 씨 역시 권리금도 받지 못하고 보증금만 받고 나가야 할 상황이다. 일부 주민들이 폐업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4월 15일이면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 사진관이 없어진다는 소식에 주민들의 마음도 착잡하긴 마찬가지다. 40년을 동고동락했던 털보 아저씨를 더 이상 볼 수 없단 생각에 주민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은사 목회자 가르침 따라 사진사의 길로… 목회의 꿈을 꿨지만 사진을 배워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나눈 이유에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창립을 주도했다고 알려진 故 허홍 목사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학비도 지원해주고 자신을 아들처럼 아껴주었던 허 목사가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라"는 말에 사진사의 길을 택했다. 존경하는 은사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사진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강의도 꾸준히 했다. 지금까지 그가 가르친 제자만 3,700명이나 된다. 또 사진 기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만두지 말라고 말하는 주민들도 많지만, 이 동네 임대료가 몇 배씩 뛰어서 다른 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원래는 인형뽑기방이 들어오기로 했는데 주민들의 반대로 계약을 해지했다고 들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할지 구체적으로 계획한 건 없습니다." 사진관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다는 현실에 실망이 컸던 탓일까. 김 씨는 요즘 귀도 잘 들리지 않고, 멀쩡하던 치아도 빠지는 등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망원동 사람들의 인생을 담는다는 생각으로 40년간 셔터를 눌렀어요. 지금도 할 수만 있다면 사진관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윤화미 기자2017-03-31

몽골이 자원가격의 하락으로 경제 위기에 직면해 있다. IMF 구제금융 지원을 받을 만큼 전 국민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현지 교회들도 재정적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스스로 자립하고 성장해서 연약한 교회들을 돕고 있는 교회가 있다. 바로 함팅토야교회다. 현지 교회를 개척한 정광윤 선교사(64)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집 팔고 용돈 모아 건축…연약한 교회들 지원도 "몽골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있는 교회가 오로지 교인들 힘으로 지어졌어요." 정광윤 선교사(몽골선교재단)는 지난 1월 아내와 함께 4개월의 안식기간을 맞아 한국에 들어왔다. 2004년 쉰이 넘은 늦깎이 나이, 몽골 선교에 나섰다는 정광윤 선교사는 몽골에서 이뤄진 놀라운 사역들을 이야기했다. 1990년대 기독교 선교가 처음 시작될 당시 몽골은 교회도, 성경도, 교인도 없었고 국가 경제마저 어려운 상황이었다.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가 주민들을 섬기며 구제사역에 힘을 쏟았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도움 받는 곳'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란 인식이 뿌리깊게 자리잡았다. 교회에 대한 이 같은 인식 때문에 몽골 대부분 교회의 한 달 헌금은 지금도 30만원이 채 안된다. 교회가 자립하고 스스로 성장하기는 매우 어려운 환경이다. 울람바토르 지역에 위치한 함팅토야교회는 정 선교사가 처음 개척한 교회다. 교회는 지난 해 아름다운 예배당을 건축했다. 2억원이 넘는 돈이 들었는데, 모두 교인들의 헌금으로 이뤄진 일이었다. "재작년까지 1억이 모였고 작년에 건축하자 해서 총 2억이 모였어요. 출석 교인이 200명 정도 되는데, 두 가정이 집을 팔아 헌금하고 어린 아이들이 용돈을 모아 헌금을 하더라고요.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헌금을 하고... 몽골에서 교인들이 예배당을 스스로 지었다는 건 전무후무한 일이죠." 교회는 5년 전 자립에 성공했고 해마다 교인이 늘어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제는 인도에 나가있는 선교사를 돕고 몽골의 연약한 교회까지 지원하면서 '선교하는 교회'로 자리잡았다. 현지인이 목회 하도록 돕는 게 바로 '선교' 함팅토야교회는 몽골인 목회자가 이끌어가고 있다. 또 개척 중인 델힝다우스교회도 지난 해 건축을 마치고 몽골인 전도사가 꾸려가고 있다. ▲정광윤 선교사(64, 몽골선교재단)ⓒ데일리굿뉴스 정 선교사는 교회를 이들에게 이양하고, 멘토 역할을 자처해 교회 운영과 목회 방법을 조언해주고 있다. 그는 현지인에 의한 선교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 선교사는 "제가 바라는 선교는 현지인에 의한 선교입니다. 몽골인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스스로 섬길 수 있도록 하는 선교를 해야 합니다. 나는 도움을 주고 환경을 만들어주는 정도로만 합니다." 하지만 몽골 현지 목회자들은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된 이들이 대다수다. 신학과 목회능력을 배울 기회가 없고 관련 교재도 구하기 어려워 교회를 운영해가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때문에 정 선교사는 9년 전부터 현지인 목회자 양성을 위한 사역을 시작했다. 목회자훈련원을 세워 신학을 가르치고 담임 교역자와 목사, 전도사들을 배출했다. 한국의 신학대학원 교수들이 몽골에 와 강의도 진행하면서 신학대학원 과정까지 운영하고 있다. 교인들이 몽골사회 크리스천 리더가 되도록… 정 선교사는 또한 교인들을 몽골 사회의 크리스천 지도자로 육성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선교사와 함께 인터뷰에 동행한 잉크진(25) 씨는 한국 유학생으로, 숭실대 기독대학원 기독상담학을 공부하고 있다. 또 잉크진 씨의 가족들은 현지에서 말기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있고, 또 다른 교인은 기독교식의 라파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몽골인들이 몽골 사회에서 크리스천 리더가 되는 일은 쉽지 않아요. 불교인구가 90%고, 기독교는 아주 적은 비율입니다. 그래서 몽골의 지도자를 키우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한편 정 선교사 부부와 잉크진 씨는 이번에 GOODTV 글로벌선교방송단 선교사기자 4기로 등록했다. 정 선교사는 앞으로 몽골 현지의 다양한 모습과 사역들이 방송을 통해 보도되면 사역을 확장하는 데 큰 밑걸음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김주련 기자2017-03-21

중국집 배달원 故 김우수 씨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철가방 우수씨>(감독 윤학렬).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며 받은 월급으로 불우한 어린이들을 후원해 오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진 그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줬다. 특히 배우 최수종 등 출연 배우들이 재능기부로 참여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사회의 어두운 현실에 주목해온 윤학렬 감독이 영화 <지렁이>로 관객들을 다시 찾아왔다. 이번 영화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학교 폭력과 장애인 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다. 윤학렬 감독을 직접 만나 영화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30여 건의 실제 사건 취재, 실화 바탕으로 제작 지렁이. 영화 제목부터 독특하다. 윤 감독은 이번 영화의 제목을 이사야서 31장 14절에서 찾았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한국어로는 버러지로 해석됐지만 영어 성경에는 'warm'이라는 단어를 쓰거든요. 지렁이라는 뜻이에요. 지렁이는 흙을 먹었다가 토해내면서 토양을 부드럽게 하고 비옥하게 하는 역할을 하죠. 쓸모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귀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거에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라는 말처럼 밟으면 꿈틀하는 지렁이의 외침이 장애우 인권과 집단 따돌림 문제를 공론화 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영화 <지렁이>는 청소년 성폭력 사건과 장애인 인권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뇌성마비 장애를 앓고 있는 아버지와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딸 자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뇌성마비 장애우 원술(김정균)의 외동딸 자야(오예설)는 집단 따돌림에 시달리다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결국 억울한 죽음을 택하게 된다. 원술은 자야에게 벌어진 잔인한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공분을 일으킨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서 홍보위원장으로 활동할 정도로 평소 청소년 문제, 소수 인권 등에 관심이 많았던 윤학렬 감독은 학교폭력 피해자를 만나기도 하고, 30 여 건에 달하는 자살사건 및 실제 피해 사례를 직접 취재해가며 영화를 제작했다. "우리나라는 일주일에 1.2명이 자살을 하는데 대표적인 원인이 집단 따돌림이에요. 이런 부분을 우리나라가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5년 전부터 영화를 준비했어요.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던지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학교 폭력을 '나와 상관 없는 이야기'라며 방관하지 말아달라는 거에요. '나와의 다름'이 차별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영화 <지렁이>의 윤학렬 감독 ⓒ데일리굿뉴스 "지역교회, 청소년 문제에 각별한 관심 가져주길" 하지만 성경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사회문제를 공론화 시키기란 쉽지만은 않았다. 재정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상업영화에 비해 인지도가 낮기 때문이다. "배우 섭외부터 제작 과정 등 어려운 점이 많았어요. 특히 영화 속에 꼭 들어가야 했던 성폭력 장면을 찍을 때는 심적으로도 육제척으로도 힘들었죠. 하지만 배우들이 그 신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묵묵히 믿고 따라와줘 고마울 따름이에요. 청소년 문제는 사랑과 배려, 대책이 없다면 해결할 수 없다고 봐요. 다음세대를 책임질 청소년들을 생각하면서 영화를 끝까지 마무리 할 수 있었어요." 윤 감독은 청소년 문제에 대해 각 지역교회들이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려있는 학교 폭력 문제에 지역교회들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청소년 문제에 관심 있는 지역교회가 그 지역의 학교와 연결해서 학교 폭력 상담소를 만드는 거죠. 아이들 입장에서는 친구나 부모님, 선생님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거에요." 함께하는 배우들과 스탭들이 하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도록 제자양육에도 힘쓰고 있는 윤 감독. 그는 앞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룬 영화를 제작할 계획이다. 한편 영화 <지렁이>는 포털사이트 다음을 통해 스토리펀딩을 진행 중이며, 장애인의 날을 1주 앞둔 4월 13일에 개봉할 예정이다.

홍의현 기자2017-03-20

국내외 400개 지회, 7천 5백여 회원을 자랑하는 (사)한국기독실업인회(이하 CBMC). CBMC의 중앙회장을 맡고 있는 두상달 장로는 오랫동안 '기독 경영인으로서의 올바른 자세'를 강조해왔다. 칠성산업(주)과 (사)가정문화원 이사장이기도 한 그는 얼마 전 CBMC 중앙회장에 연임되며 굳건한 영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기독 경영인들이 믿지 않는 직원들에게 하나님의 참 사랑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고 말하는 두상달 장로의 비전과 포부를 들어봤다. "시대 변화 대응하는 기독 경영인 되자" 기독실업인회는 1951년 당시 6.25 전쟁으로 온 나라가 실의에 빠졌을 때 국내에 들어왔다. 미국 군사고문단 일원으로 참전한 세실 힐(Cecil Hill) 대령이 황성수 박사(민의원, 당시 기독공보 부사장)에게 CBMC를 소개하며 시작된 단체다. 설립 이후 CBMC는 교회 건축과 교계 연합사업, 방송 선교사역 등에 적극 참여하며 한국교회의 부흥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구 지역에서 처음 CBMC가 시작되고 10년 만에 한국CBMC가 설립됐어요. 매일 아침마다 모여서 성경적인 경영 노하우를 나누고, 기독 경영인들이 어떻게 일터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건전한 단체입니다." 두상달 중앙회장은 지난달 21일 논산 육군훈련소 연무대교회에서 열린 제50차 정기총회에서 중앙회장으로 연임됐다. 중앙회장 3년차를 맞은 두 중앙회장은 무엇보다 타성에 젖은 실업인회 모임이 아닌 순수한 마음으로 '교회와 사회'를 섬기는 기업가들이 되도록 노력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실제로 CBMC는 2000년대 들어 지도자 양육을 통해 사역을 확대하겠다는 생각으로 CBMC대학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비전스쿨과 리더십스쿨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회원들의 지도력 향상과 더불어 신앙 훈련에도 집중하고 있다. 두 중앙회장은 '한국교회가 배우고 싶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최종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어느 단체나 수십 년간 사역을 이어가다 보면 타성에 젖기 마련이죠. 저희 CBMC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회원 대부분이 기성세대로 이뤄진 만큼, 시대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응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젊은 감성'의 선교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기독실업인회 두상달 중앙회장. 그는 가정이 행복해야 기업과 국가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데일리굿뉴스 행복한 가정, 건강한 기업과 국가의 '근간' 두상달 중앙회장은 CBMC 외에도 칠성산업(주) 대표이사와 (사)가정문화원 이사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특히 가정문화원 사역은 아내인 김영숙 원장과 함께 하며 '국내 1호 부부강사'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가정은 사회 조직의 최소 단위이기 때문에 가정이 행복해야 기업(회사)이 살고, 나아가 국가가 올바로 세워지게 되죠. 기업인에게 '행복한 가정' 사역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만 잘하는 직원이 아니라 가정을 통해 행복감을 찾는 직원을 만들어 주는 것도 기독 경영인이 해야 할 몫이죠." CBMC는 최근 '청년 선교'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다음세대 위기 속에 교회의 허리 역할을 하는 청년이 살아야 미래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특히 '군 선교' 사역을 통해 청년들을 교회로 이끄는 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논산 육군훈련소 연무대교회에 '새 성전 건축헌금' 2억 5천만 원을 후원하기도 했다. "한국교회가 지금처럼 다음세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언젠가 '교인 절벽 시대'를 맞게 될 겁니다. CBMC가 청년들을 위해 군 선교에 집중하듯, 한국교회 전체가 이제는 다음세대 교육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두 중앙회장은 최근 어지러운 국가 상황 속에서 크리스천들이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그는 "크리스천들은 끝없이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묵묵히 맡은 바 사명을 잘 감당하는 모든 한국교회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크리스천들은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결실을 바라면 안 됩니다.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는 인물들이 많아지고, 또 그 인물들을 통해서 언젠가는 변화될 세상을 바라며 기도하는 게 가장 중요한 역할이죠. 시국은 힘들고 어렵지만, 역사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내는 것. 그게 바로 성도 아닐까요."

김지선 기자2017-03-17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 건강기능식품 사업을 시작한 크리스천 기업이 있다.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일보다 무료 건강세미나를 통해 복음을 전하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일에 주력하고 싶다는 건강전도사 코어라이프소스코리아 장흥복 대표를 만났다. 수익금 전부 선교 후원 불규칙한 식사 습관, 운동부족,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성인병의 발병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의학 발달로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건강에 집중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약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한 장흥복 대표는 오롯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건강기능식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화산장로교회(담임 조시현 목사) 장로로 섬기고 있는 그는 출애굽기 15장 26절 말씀을 의지하며, 기업을 이끌어오고 있다. 코어라이프소스코리아는 지난 2014년부터 미국 한인과학자 데릭 김 박사가 연구·개발한 건강기능식품을 한국으로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미국에서 코어라이프소스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데릭 김 박사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미국 남가주 얼바인 대학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리노이 주립대 약대 교수를 역임했다. 또한 알츠하이머 디지즈 치료제 물질 및 제조공정에 관한 특허를 가지고 있다. 자연약초에서 치매를 예방하고 다스리는 물질 '커큐미노이드'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기도 하다. 코어라이프소스코리아의 건강기능식품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이원희 전 유도선수가 공식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장 대표는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해 얻은 수익금 전부를 선교 헌금으로 사용하고,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목회자들에게는 무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코어라이프소스코리아에서 판매하고 있는 건강기능식품.ⓒ데일리굿뉴스 "건강식품 의지하는 것보단 건강한 식습관 중요" 장흥복 대표는 "코어라이프소스코리아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교회들을 대상으로 무료 건강세미나를 진행했다"며 "건강세미나를 통해 제대로 된 식습관은 물론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는 사무실로 찾아오는 고객에게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기 보단 치료 목적의 상담을 3시간씩진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담 시간은 낙심한 사람들을 전도하는 계기가 되기도 됐다. 장 대표는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놀라운 섭리로 창조하셨다"며 "건강기능식품을 의지하는 것은 일시적인 효과만 가져올 뿐, 건강한 식생활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건강을 유지하려면 먼저 정확한 정보에 눈을 뜨고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그 이후 건강기능식품을 병행한다면 효과가 더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젊었을 때 무역 사업으로 크게 실패를 맛본 후 다시는 사업에 뛰어들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연단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었다"며 "나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이루게 하셨다"고 고백했다. 마지막으로 장흥복 대표는 "식생활 개선을 통해 모두가 건강한 삶을 누렸으면 좋겠다"며 '건강한 식생활 지키기' 방법을 소개했다. △매 끼니 생 야채를 필수적으로 섭취하는 것이 좋다. 야채는 흐르는 물에 씻어서 농약이나 화학성분을 제거하고 섭취해야 한다. 볶은 야채는 영양소가 빠져나간 섬유질 상태이므로 생으로 섭취하는 것이 좋다. △고기는 굽거나 볶은것 보다 수육으로 삶아서 섭취하는 것이 좋다. 육고기는 가공된 사료와 항생제 주사를 맞으며 사육되기 때문에 과도한 육식은 우리 몸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우리 몸은 약 알카리성이 최적의 상태이므로 산성음식 섭취를 줄여야 한다. 맵고 짠음식, 흰 쌀밥, 밀가루, 튀김, 술, 초콜렛 등 대부분의 음식은 산성이다. 과도한 산성식품 섭취는 많은 산화물질을 배출하며, 몸 속의 나쁜 균의 영양분이 되어 몸 속 염증 및 박테리아 등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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