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보라 기자2018-06-0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사야43:21)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예배)하기 위해 지음 받은 존재이자 동시에 거룩한 교회다. 그렇다면 교회와 가정, 그리고 우리의 삶 가운데 어떻게 찬양을 드려야될까. 반평생 넘는 시간을 오로지 교회음악이란 외길을 걸으며 헌신해온 문성모 목사(강남제일교회 담임·한국교회음악작곡가협회 이사장)를 만나 이 질문에 대한 고언을 들어봤다. 대형교회의 관심과 투자 절실해 문성모 목사는 우리나라의 최고 명문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출신이다. 서울예고 시절 서양음악 작곡을 전공했던 문 목사는 당시 인생의 목표였던 교수가 되기 위해 선배의 조언에 따라 국악과에 입학하여 작곡을 전공하게 됐다. "서양음악이든 국악이든 작곡은 똑같다 생각하고 전공을 바꿨는데, 한동안 고생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참 감사한 게 그렇게 안 했으면 제가 전통음악을 어떻게 알았겠어요." 문 목사는 대학교 3학년 때 서울 금호동 숭덕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하게 됐다. "당시 교회에 목사님이 안 계셔서 장로님 두 분이 임시로 설교를 하시고 저도 도왔는데, 어느 날 제게 신학교에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음대 대학원을 준비하던 문 목사는 부모님께 알리지도 않고 장신대 신대원에 원서를 내었고 합격이 됐다. 그리고 합격 후에 "이것은 24년 동안의 기도응답"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다. 신학교에 들어간 문 목사의 눈에는 한국교회의 예배와 음악이 너무 미국화된 것이 보였고, "예배와 음악의한국화"는 그의 평생 작업이 되었다. "한국교회 전체가 너무 획일화돼있어요. 교회에 가보면 드럼, 신디 등 세팅이 똑같아요. 드럼을 들여놓은 교회가 있다면, 가야금을 놓은 교회도 있으면 좋겠어요." 문 목사는 "한국 전통음악에 대한 교회의 인식이 과거에 비해 좋아졌다"면서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문 목사는 적극적인 계몽과 특히 대형교회의 문화 예산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이단들이 해요. 통일교의 리틀엔젤스 솔직히 잘 해요. 몰몬교의 태버내클 합창단은 미국 대통령 취임할 때 늘 공연하는 단골이에요. 요즘은 신천지집단도 문화에 많이 투자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교회가 단 한 곳도 없죠." 교회음악을 하는 대부분의 사역자가 생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문 목사는 "대형교회들이 예산의 1%만 투자한다면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옛날에는 귀족들이 음악가를 먹여 살렸다. 그들이 바하이고 하이든이며 모차르트"라면서 "대형교회가 개교회 중심이 되든, 아니면 연합해서 문화법인체를 구성하든 간에 교회음악가들의 활동을 보장하고 컨트롤해야 한다"고 밝혔다. 가정 문제 해결의 열쇠도 가정 내에서의 찬양(예배) 회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문 목사도 "현행 찬송가에 가정에 대한 찬송을 많이 보강했다. 특히 가정에서 많이 불리면 좋겠다"라면서 "구두회 장로의 ‘사철의 봄바람 불어 잇고’(559장), 박정선 장로의 '우리 주님 모신 가정’(555장), 그리고 제가 작곡한 '날마다 주님을 의지하는'(556장) 등 좋은 찬송이 많다"고 소개했다. 계속해서 그는 "가정에서 찬양과 성경말씀 뿐만 아니라 세상의 좋은 영향력을 주는 노래와 시도 낭독하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재 한국교회음악작곡가협회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문 목사는 협회의 40년간 발자취를 정리해 <한국교회음악작곡가협회 40년사>를 집필했고, 1,425쪽의 방대한 역사책 한 권이 지난해 출간됐다. 문 목사는 "역사가 정리돼야 그다음의 역사에 대한 어떤 방향성의 이정표가 세워진다"면서 "이것이 후학들에게 도움과 연구가 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오는 9월에는 그가 <기독교사상>에 3년간 연재했던 내용을 모은 <한국교회 예배와 음악 다시 보기>라는책이 나올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문 목사는 ‘예배가 신앙의 중심’이라면서 예배의 3가지 요소를 설명했다. "말씀은 위로부터 아래로의 순서고, 찬양은 아래로부터 위로의 순서예요. 그리고 성만찬은 수평적이죠. 이 3가지 요소가 잘 갖춰진 예배가 한국교회에 정착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온전한 예배가 하나님께 드려지고 찬송 한 곡을 부를 때도 의미를 담아서 신앙고백하면 은혜가 넘칠 거예요. 삶이 신앙고백 되고, 제물이 되고, 응답이 되는 성도님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천보라 기자2018-05-21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이는 주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하신 명령으로, 목회자뿐만 아니라 평신도에게도 해당되는 역할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을 세상에서 보내야 하는 평신도가 현실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거룩한 직분으로 살아가기에는 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뒤따른다. 이런 세상 풍파 속에서 날마다 자기십자가를 지고 주님만을 따르는 평신도 사역자가 있다. 오랜 세월 직장사역에 헌신한 이희봉 전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장이 그 주인공이다. 하나님나라의 사역지대, 직장 이희봉 전 청장은 직장 현장에서 사역에 헌신한 자타공인 '직장선교사'다. 이 전 청장은 약 30년 동안 가는 직장마다 기도와 말씀의 제단을 쌓고 직장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주님의 수많은 제자들을 양육해왔다. 하지만 직장선교사 이 전 청장도 직장사역의 길을 걷기까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의 고난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이 전 청장은 군 제대 후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그러나 고시 합격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시를 준비한지 7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에게 들려온 건 늘 불합격이라는 소식이었다. 연이은 낙방에 그의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7급 공무원 생활 중에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8년 만에 행정고시에 합격하게 됐다. 고시 합격은 그를 통해 주님이 이룰 직장사역을 향한 놀라운 계획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당시에는 몰랐지만 훗날 자신이 "주님이 직장으로 보낸 사역자였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이 전 청장은 공직을 시작한 후 몸담은 직장에서 '신우회(선교회)', '성경공부반', '기도회모임' 등의 활동을 이어갔다. 하나님은 그에게 '행정자치부선교회장'과 '정부종합청사기독선교연합회장', '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한직선) 부회장'이라는 중책과 함께 직장선교사로서의 기초작업을 하는 동시에 지평을 더욱 넓혀가도록 했다. 특히 이 가운데 있었던 'DTS(Discipleship Training School)' 훈련은 이 전 청장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DTS를 통해 주님과의 관계와 교제를 사모하게 됐어요. 새벽에 일어나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을 일과의 시작으로 습관화해 가게 되었죠." DTS 훈련 후에는 직장인성경공부모임 'BBB(Business Bible Belt)'와도 자연스레 연결됐다. 그는 BBB 모임을 통해 직장선교사역자로서의 정체성과 직장 현장에서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야 한다는 비전을 갖게 됐다. 그는 요즘도 순천 광양 지역의 BBB 모임에 나가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한편 교회, 선교단체 등에서 특강을 통해 평신도 사역을 강조하고 있다. 이 전 청장은 최근 자신이 체험한 간증과 직장사역에 대한 모든 내용을 정리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을 출간했다. "이 책은 개인적인 성공담이나 기적을 밝히는 책이 아니에요. 그리스도인임을 부끄러워하는 직장인, 예배 드리는 것에만 만족하는 직장인, 직장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직장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사역자로서의 정체성과 사역의 비전을 전하는 메시지예요." 이 전 청장은 고지식한 성격 때문에 공무원 조직생활과 세상적인 행태에 어려움을 겪었고, 상관의 비위를 맞추는 일에 서툴러 고생도 많이 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직장선교를 멈출 수 없었던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의 답이 이어졌다. "현대 그리스도인, 평신도는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요. 이런 평신도가 직장에서 말씀대로 사역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복음이 전해지고, 어떻게 주님의 제자가 세워지며, 어떻게 삶의 터전에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나요? 추수할 곡식은 많되 일꾼은 적다고 하시는 주님의 탄식을 누가 메워 줄 건가요?" "무엇보다 평신도가 변해야 직장이 변하고 우리 사회가 변화 된다"고 강조하는 이 전 청장. 그는 지금도 "먼저 '하나님과 함께 일하기 운동'부터 함께 해보자"며 평신도 사역을 기독 직장인들에게 열심히 전파하고 있다. ▲연탄봉사를 하고 있는 이희봉 전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장의 모습(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위클리굿뉴스

박혜정 기자2018-05-23

기독교인이라면 잘 알고 있는 한동대학교 초대총장 김영길 박사는 진화론을 전공했던 과학자였지만, 하나님을 만나면서 창조론으로 돌이켰다. 그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참교육으로 회복하는 교육을 위해 지금도 기도하고 있다. 경북 안동이 고향인 김영길 박사는 어린 시절부터 경천애인의 유교사상 가정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첩첩산중 오지에서 자동차보다 비행기를 많이 보고 자란 덕분에 자연스레 비행기 제작에 호기심이 많았고 금속재료공학을 전공하게 됐다. 그는 1967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편지로 지금의 아내 김영애 권사와 연애를 시작했다. 아내는 그가 하나님을 믿게 해준 축복의 통로였지만 그는 처음에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중 김 박사는 1974년 NASA연구원이 되면서 성경과 가까워졌다. NASA에서 첨단과학을 다루는 백여 명의 박사들이 매주 예배하며 찬송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그는 이 모습을 보고 도대체 저들이 왜 기쁘게 찬송하고 간절히 기도하는지 궁금해 성경책을 읽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면서도 말씀이 과학적 논리에 맞지 않아 의심이 들었다. 그러다가 집 근처 책방에서 구입했던 핼 린지가 쓴 <지구의 해방>이라는 책에서 그가 그동안 품었던 모든 의문들이 풀리는 것을 경험했다. 주님을 만난 후 하나님이 예배하신 길을 따르게 돼 1978년 12월, 12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김 박사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재료공학과 교수가 됐다. 1980년 8월 CCC(대학생선교회)에서 '세계복음화성회, 창조냐 진화냐'를 주제로 개최되는 세미나에 그는 유일한 한국측 강사로 활동했다. 1981년 1월에 그는 300여명의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창립한 ‘한국창조과학회’에 초대회장으로 선출됐다. "해외 유치(誘致)과학자로 갓 귀국한 제가 진화론을 부정하고 있다는 비판적 기사가 실렸다. 또 창조과학이나 강의하러 다닌다는 색안경 낀 시선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 무렵 미국에서 ‘NASA 체크브리프 상’과 ‘IR-100상’을 수상하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또한 김 박사가 풍산금속과 협력해 발명한 반도체 리드 프레임 ‘PMC-102’합금 제조기술이 독일에 수출돼 우리나라 최초의 ‘선진국 기술 수출 1호’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그는 창조과학회에서도 여러 연구업적을 쌓다가 1994년 순수 기독교신앙으로 교육하는 대학의 초대총장 제안을 받았다. 그는 결단을 내리고 총장직을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심 느껴 학교를 시작했던 이사장의 사업상 문제로 재정난이 심각했다. 몇 달간 교직원들 월급이 나가지 못한 상황 속에 국고금 지원을 받은 것으로 잠시 전용했다가 몇 달 후 원상복귀 시킨 일이 있었는데 이게 문제가 돼 그는 53일간 감옥생활을 했다. 감옥생활 중에서도 그는 그 안에서 복음을 전했다. 스승의 날에는 1,800여 명의 한동대 학생들과 학부모, 교직원들이 감옥 밖에서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러주었다. 무엇보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 53일을 사용하셨고 하나님이 일하셨다고 고백했다. "신기하게도 제가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오히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한동대가 자동홍보 됐고, 부족한 재정들이 채워져서 이전보다 더 많은 후원금이 모아졌다." 20년을 한동대 총장으로 재임하며 좁은 길을 걸어온 김 박사는 2016년 5월, 췌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그는 수명이 여기까지라고 생각했지만 시편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평안한 마음으로 치료받고 모든 병이 사라지는 기적을 경험했다. "치료를 잘 받게 하시고 독이 몸이 퍼지지 않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박사는 UNAI Korea에서 그동안의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국제기구와 협력해 국내외 세계시민 양성 교육 활성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조준만 기자2018-07-30

신간 을 출간한 팀하스 하형록 회장. 그는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도전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술이 "Done(다 했습니다)", "Finished(다 이뤘습니다)"와 같은 말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다 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삶을 사십시오. 예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미국 최고의 건축설계회사 중 하나인 '팀하스(TimHaahs)'의 하형록 회장.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는 서른 둘의 나이에 ‘심실빈맥’으로 생사를 오가게 된다. 보험은 바닥나고 집도 차도 다 모두 잃었다. 29세의 나이에 미국 최고 설계회사의 중역이었던 남자는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고 그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 완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났다. 심장이식을 앞두고 그는 자신에게 꼭 맞는 심장을 다른 이에게 양보했다. 이후 ‘이웃사랑’을 목표로 하는 ‘팀하스’를 창업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는 사업뿐만 아니라 저술과 목회활동을 병행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최근 펴낸 <W31>에서 그는 ‘성경대로 세상사는 지혜’를 말한다. 그는 성경이 말하는 지혜대로 살면 당당히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 정말일까? 팀하스의 하형록 회장을 두란노서원에서 만났다. - 책에서 "당신의 삶이 우리의 비즈니스다", "이웃을 향한 섬김과 사랑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좋은 마음가짐과 선의가 인생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을까? “배경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배고픈 시대를 산 이들과 부유한 시대를 살아간 이들은 정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 저와 제 아버지 시대는 가난했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가난을 아는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거짓을 행하는 것을 어느 정도 정당화했다. 먹고사는 문제 앞에선 다들 그랬다. 그러나 부유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정의’를 찾는다. 생존이 아닌 ‘감동’과 ‘관계’를 원한다. 이들은 관계에서 성공을 찾는다. 복음의 전함과 비즈니스(사회생활)의 모양도 이러한 차이로 인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자, 여기 100달러짜리 계약과 500달러짜리 계약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500달러 계약에는 불법은 아니지만 걸리는 부분이 존재하고 100달러짜리 계약은 액수는 작지만 선한가치가 있는 계약이라고 하자. 배고픈 시대의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고민하지 않고 500달러 계약을 선택한다. 그러나 요즘세대는 100달러짜리 계약을 선택한다. 가치를 중요시하고 희생이 수반되는 선함에 주목하는 것이다. 오늘날은 떡을 주는 것이 아닌 ‘감동’을 줘야한다. 감동을 주면 관계가 생기고 사람이 모이게 되는데 이는 결국 성공으로 이어지게 된다. 말로써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 관계와 직업에서의 성공을 보장하는 말로 "했습니다(Done)"를 말하셨다. 모든 것을 다 지켜 행했다는 부자청년이 떠올랐다. “부자청년이 예수님에게 한 질문은 ‘영생’에 관한 질문이었다. 인생과 성공에 관한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책에서 밝힌 “했습니다(Done)”은 삶의 지혜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에게 감동과 사랑을 전달해 줄 수 있을지에 관한 것이다. 관계와 직업에서의 성공은 이러한 지혜와 판단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세상과 섞이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어울리며 살 수 있는가에 대한 관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 했습니다”, “다 이뤘습니다”라고 말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9:30에서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구약의 완성이며 신약의 결실이다. 다른 말로 하면 구약에 예언된 모든 말씀을 이 단어로 결론지을 수 있다." ▲그는 신간 을 통해 다음과 같이 도전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술이 "Done(다 했습니다)", "Finished(다 이뤘습니다)"와 같은 말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다 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삶을 사십시오. 예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위클리굿뉴스 -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할 때 '확신'을 강조하셨다. 하지만 불안과 고통의 문제는 마음가짐 이상의 문제가 아닐까.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크리스천들을 포함해)은 자신들이 뿌리내릴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을까 막막해 한다. “두 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내일 중요한 시험이 있는데 절박한 상황에 놓인 친구가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가 왔다고 하자, 너희는 이때 어떻게 할 거니? 이때 첫째 딸과 둘째 딸의 대답이 달랐다. 첫째는 당연히 친구에게 가야죠. 둘째는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 이렇게 타일렀다. 우리는 믿는 사람으로서 내가 잘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당장의 성적은 희생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를 희생하고 누군가를 도울 때 그 희생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억해주신다. 딸들에게 정말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많이 두라고 말한다. 이것이 성공의 길이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확신의 근거다. 내가 도움을 준 이들 중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있다고 치자. 사람이 어떤 위치에 오르면 자기 밑에 둘 사람을 찾는다. 그때 기술자를 찾을까 아니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까.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삶은 결국 보상받게 되어 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은 희생을 달려있다고 본다.” - 교회의 사회적인 신뢰도는 바닥이고 교회를 떠나는 젊은이들이 많다. 존경받는 교계 어른을 떠올리면 머뭇거리게 된다. “우리 부모님이 실수를 했을때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저주하거나 등 돌리지 않는다. 신앙과 삶의 멘토를 찾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멘토를 섬기는 것이다. 멘토는 멘토고, 부모님은 부모님이다. 이것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조화를 이루고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를 보면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바로 ‘판단’하는 죄다. 하나님께서는 판단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신다. 판단하고 정죄하는 사람은 결코 복음의 향기를 전하지 못한다.” ▲하형록 회장의 신간 (사진제공=두란노)

홍의현 기자2018-07-16

GOODTV와 함께 <비츠로포럼>을 설립 한국교회 제2의 부흥을 위한 사역을 시작한 사단법인 새길과새일의 최서형 이사장을 만나 한국교회의 문제점과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에 대해 인터뷰를 가졌다. Q 최근 <한국교회에 한방을 먹이다>란 신간도서를 발간하셨다. 어떤 도서인지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A 한의학은 증상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근본 배경을 치료한다. 제목은 한의학의 좋은 솔루션을 한국교회에 제시한 것이다. 근원을치유할 수 있는 의학적인 해석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Q 오랜 기간 한국교회는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주된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A 심각성은 공감한다. 미래도 어둡고 어떤 문제냐 핵심이 뭐냐는 건 다 다르다. 환자를 보며 찾아냈다. 우리나라에는 소화기관은 더럽고 썩어있는 사람이 많다. 폭식, 야식, 독성음식 그런 것을 먹으면서 소화는 잘 된다. 마구 먹어도 소화가 잘 된다. 근데 속은 썩고 피는 탁한 겉과 속이 다른 위장병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게 한국교회의 문제다. 속 사람은 썩어 있거나 더러운데 겉은 경건하고 깨끗하거나 아무렇지 않은 속과 겉이 다른 모습이 핵심이다. 왜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 모습을 교인들이 드러내게 됐느냐는 이유를 분석했고, 분석을 통한 솔루션을 책에서 제시했다. Q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 교회, 연합단체들이 각자의 모습으로 위기를 탈피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뚜렷하게 개선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교회 위기 탈피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A 한국 교인들과 교계 지도자들이 성격이 나쁘거나 본질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가장 큰 것은 말씀교육에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우리 국민은 어릴 때 교육이 주입식 입시교육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게 했다. 말씀이 지식으로만 되고 몸으로는 체득되지 않은 모습이 위선으로 나타난 것이다.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을 실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서 사랑 타령에도 사랑을 하지 않는 교회, 그게 사회의 눈에 보인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는 게 어려운 건 아니다. 그길은 말씀에 힌트가 많이 나와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대목에서 그런 행태를 분석해보면 특징적 문제를 밝히고 있다. 결국 사랑으로 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걸 교회가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적용하고, 에베소서에 몸에서 배우라고 돼 있다. 사랑 안에서 하나를 이룬다고 돼 있다. 우리 사람들은 이분법에 익숙하다. 반복과 배타, 자기 것 추구, 그런 것이 되다 보니 개교회주의, 이기주의, 기복주의, 이런 문제가 생긴다. 악이 선이 되는 통전적인 생명섭리를 배워야 한다. 한국교회에 통전 생명관이란 패러다임을 가르치고 적용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Q 최근 GOODTV와 함께 <비츠로포럼>을 설립해 한국교회 제2의 부흥을 위한 사역을 시작하셨다. 이 사역의 의미와 앞으로의 계획은. A 지금의 한국교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막다른 골목에 와있다. 사회로부터는 배타되고 캡슐화되고 변화의 동력은 없고 청년세대는 예수를 부끄러워하고 미래도 어둡다. 이제는 빨리 바꿔야 한다. 더 늦으면 안 된다. 입체적이고 통전적인 프로그램으로 한국교회를 다시 교육해야 한다. 그런 인물을 양성하고 한국교회에 퍼뜨리면서 재무장해야 한다. 그러면 한국교회는 다시 변화된다. 교육과 연구 작업, 포럼을 통해서 퍼뜨리는 물결을 이루는 일을 하고 싶다.

천보라 기자2018-04-30

1984년 개봉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명작으로 꼽히는 이유 중 하나는 음악감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의 OST 때문일 것이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영화에서 흐르던 플루트 연주곡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천상의 소리'라 불리는 플루트는 맑고 청아하지만 최고의 음역대를 내는 관악기다. 플루트의 아름다운 소리에는 플루티스트의 힘과 호흡이 반드시 뒤따른다. 그런데 1급 소아마비 장애와 심한 척추측만이라는 악조건을 이기고 플루티스트가 된 주인공이 있다. 바로 플루티스트 장은도 목사다. 상처투성이였던 어린 시절 장은도 목사는 세 살 되던 무렵 바이러스에 의한 소아마비감염후유증(Polio)으로 하반신 마비가 됐다. "확진 후 일주일 뒤 통장님이 예방접종고지서를 돌리러 오셨다고 하더라고요. 누군가는 제 팔자라고 했지만, 제 장애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장 목사는 초등학교 입학 후 친구 어머니의 소개로 장애인 통합멀티시스템이 구축된 재활원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 지하셋방에 여섯 식구가 살 정도로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영세민 판정을 받아 큰 혜택을 받게 됐다. 장 목사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다. 재활원에서의 생활은 장 목사에게 육체적·정신적인 회복을 주었다. 여러 차례의 수술과 재활 끝에 그는 목발을 짚고 걸을 수 있었다. 매일 술에 취해있던 아버지와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보지 않으면서 마음 속 깊은 트라우마가 사라졌고, 성격도 밝고 사교적으로 변했다. 재활원에서 나와 일반 고등학교에 입학한 장 목사는 아버지가 개조한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어느 날 오토바이가 고장 나 힘겹게 하교하던 그의 앞에 한 선배가 나타났다. 선배는 장 목사의 가방을 들어주며 전도했고, 그는 며칠 후 선배를 따라 처음 교회에 가게 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의 인생을 바꾼 성령님과 플루트와의 첫 만남이 시작됐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주님 많은 악기를 접한 장 목사에게 플루트는 유일하게 정복이 안 되는 악기였다. 플루트는 하반신 마비인 그에게 불가능한 악기였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단지 도전의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척추측만으로 늘 소화가 안 됐는데, 플루트를 하고 나서 소화가 잘되고 몸이 좋아지는게 느껴졌어요. 나중에 깨달았죠. 주님이 제게 가장 좋은 것을 매칭 해주셨다는 걸."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레슨을 받을 수 없었던 장 목사는 음대를 찾아다니며 동냥레슨을 받기 시작했고, 서울대 음대에 도전한다. 그러나 결과는 낙방이었다. 그는 대입 실패 후 플루트를 멀리 했지만 인연의 끈은 길고도 질겼다. 4년 후 장 목사는 플루트로 대학원에 합격했고, 대학원에서의 인연으로 음악의 고장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까지 가게 된다. "논문지도 교수님이 같이 빈으로 여행을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도착하고 나니 이미 오디션을 준비해 놓으셨더라고요." 계획 없이 본 오디션은 당연히 엉망진창이었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왔다. '음악의 고장' 빈의 예술사립대학에 합격한 것이다. 그는 10년 과정을 만 6년 만에 마치고 최고연주자 과정을 취득했다. 장 목사는 당시 자신에게 큰 은혜를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이유를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다. 그리고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너는 나의 교회를 섬기고 나를 찬양하는 자들을 키워줬잖니!" 장 목사는 청년시절 논두렁길을 오가며 시골교회를 6년 동안 섬겼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봉사하러 홀로 논두렁길을 걷던 장 목사의 곁에는 어느새 아내와 아이가 있었다. "하나님의 일에는 공짜가 없어요. 몇 십 배로 갚아주시는 분이에요." ▲1급 소아마비 장애와 심한 척추측만이라는 악조건을 이기고 플루티스트가 된 장은도 목사 ⓒ데일리굿뉴스 늦깎이 목사가 되기까지 한국으로 돌아온 장 목사는 말 그대로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그러나 세상의 영광은 하늘의 영광을 가리기 시작했다. 교만이 하늘을 찌르던 그때, 하나님은 그를 가만두지 않으셨다. "물질부터 관계, 건강 등 모든 것이 끊어지고 연단이 시작됐어요. 그제야 제가 과거 주님의 일을 하겠다고 서원했던 것이 떠올랐어요." 그렇게 장 목사는 미루고 미루던 신학교에 입학했고, 2014년 12월 목사 안수를 받았다. 장 목사는 자신이 받은 큰 축복을 자신의 달란트를 사용해 되갚고 있다. 자선음악회를 통해 필요한 곳에 응급차량과 악기 등을 기증했고, 인도 등 해외의 어려운 교회를 위한 선교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선행들로 2013년에는 국무총리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올해 기도로 집필한 간증집 <날마다 아프지만 찬란하게 노래합니다>를 출간했다. 장 목사는 마지막으로 성도들에게 꼭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책은 저뿐만 아니라 성도님들에게도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쓰게 됐어요. 우리는 바로 앞에 있는 것만 보고 급급해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생 전체를 보고 속도를 맞추시는 분이에요. 하나님의 속도는 절대 느린 게 아닙니다. 오히려 실패가 없으니 완벽한 거죠. Do Not Give Up!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한혜인 기자2018-04-06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북한 교도소에서 속삭이듯 찬양이 울려 퍼진다. 3대 독재 체제에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복음이 들어가는 건 참으로 어려워 보이지만, 하나님은 북한 땅에도 역사하고 있었다. 세번의 탈북 과정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한 이영주 집사를 만나 그의 파란만장한 탈북 스토리를 들어봤다. '비스킷'만한 교도소서 누린 은혜 이영주 집사(열방샘교회)의 탈북 스토리는 1997년부터 시작된다. 3번의 탈북 시도와 2번의 북송, 고된 심문과 고문, 3년 반의 교도소 생활. 그가 한국으로 오는 여정은 고난의 길이었다. 이 집사에게 들은 북한 교도소의 환경은 단순히 열악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했다. 200여 명 남짓 들어갈 만한 '비스킷'만하게 작은 잿빛의 교도소에는 1,200여 명의 사람들이 수용돼 몸 한 번 제대로 뉘이기 어려웠다. 나오는 음식은 쥐똥, 강냉이, 생옥수수 몇 알, 다 뜯어먹은 옥수수 심대, 모래, 흙이었다. 씻지도 않은 거친 생 음식은 삼키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간부들이 중간에 가로채 먹을 것이 없어 아사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특히 북송된 사람들은 교도소에서 '반역자'로 불리며 고된 심문을 받았다. 중국에서 교회에 다녔다는 사실이 들통 나면 가차 없이 처형이다. 이들에게 인권은 없다. 교도소 간부들은 알몸 수색, 온갖 비난과 폭력, 살인까지 서슴지 않았다. 눈물로 매일을 보냈던 이영주 집사는 어느날 하나님이 그를 북한 교도소에 보내셨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후 그의 삶은 '북한 교도소의 복음 전도사'로 180도 변했다. "꿈에서 봤던 통통한 여자 간부가 전화 받는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됐습니다. 전화기 색깔까지 똑같았습니다. 이후, '하나님이 날 이곳에 섬기라고 보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는 순종하면서 사람을 섬겼습니다. 중국에서 하나님 만난 탈북민들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어려움이 없었다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을까 싶다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북한 교도소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 친밀했다고도 덧붙였다. "삭막한 교도소서 눈 뜨고, 속삭이듯 기도했죠." 물론 '다른 사람은 한 번에 가는 한국을 나는 왜 두 번이나 막으시나'하고 하나님이 너무나 불공평하다 생각해 하나님을 원망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그는 북한 교도소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셨다고 고백했다. "하루는 '하나님 저 금식기도 하고 싶은데 기도할 공간 좀 마련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교도소에서 5명만 감방으로 옮겨졌는데, 5명이 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었죠." 이 집사는 교도소 사람들에게 찾아가 하나님을 전했다. 간부의 귀에 들어가면 그의 상황이 곤란해지니 사도신경이 써진 종이를 몰래 건넸다. 더 용기를 낸 날에는 중국에 갔는데 교회가 있어서 살짝 다녀봤는데 너무 좋다고 돌려 말했다. 이 집사는 남한에서 큰 소리로 찬양하고, 기도하는 일조차 감사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처럼 교도소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한국에 도착해 하나원에서 2011년 12월 1일에 나왔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너희 여기서 태어난 게 얼마나 축복인 줄 아냐'고 소리쳐 외치고 싶었습니다." 요즘 이 집사의 가장 큰 기쁨은 눈을 감고 기도할 수 있는 것, 찬양하고 싶을 때 먼지 가득한 담요를 덮고 숨어서 찬양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가 교도소에서 뿌렸던 씨앗처럼, 지금도 북한 땅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서서히 복음이 전해지는 중이다. "북한이 희망 없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복음 통일을 위해 미리 예비하는 국가임을 알길 원합니다."

천보라 기자2018-03-07

고신대학교복음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는 지난 1992년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로부터 시작해 2014년 12월 병동을 오픈하고 본격적인 병실 호스피스를 시작했다. 오픈 이래 4년 안 되는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환자와 가족, 지역민의 신뢰를 받으며 성장하고 있는 고신대복음병원 호스피스. 임호섭 센터장은 이러한 성장배경엔 병원 설립 이념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실천'이 있다고 말한다. 영원한 안식 위한 안내자 고신대복음병원 호스피스병동 센터팀에게 호스피스는 돌봄과 섬김 그리고 사랑이다. 그들은 환자와 가족을 향한 사명과 죽음에 대한 가치가 없으면 호스피스병동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래서일까 호스피스병동 센터팀에는 자발적으로 지원해 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올해 취임한 임 센터장도 마찬가지다. 임 센터장은 30대 무렵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고 한다. 때마침 염창환 교수(前 서울성모병원 완화의학과 임상과장)의 연락을 받고 그는 서울로 향했다. 염 교수를 만난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대체의학인 줄 알고 갔는데 호스피스였어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죠." 그러나 이후 더 놀라운 일이 생겼다. 원치 않게 오게 된 호스피스에서 점점 변화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처음엔 어려웠죠. 사람이 없어서 잠도 못자고 새벽까지 일하는 게 부지기수였거든요. 너무 힘이 든데 이상하게 보람 있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였는데 감사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요. 오히려 제가 많은 것을 얻었죠. 결국 호스피스가 저의 길이라고 확신하게 됐어요. 하나님의 이끄심이라고 생각해요. 제게 이 일을 맡기신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웃음)" 호스피스에 대한 부정적 인식, 갈 길 멀어 최근 죽음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웰 다잉(Well Dying)’이 부각되면서,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터부시됐던 죽음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인 측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임 센터장도 "과거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실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은 의료진도 마찬가지예요. 호스피스를 시작하려면 환자분의 의식이 명료해야 하고 몇 개월의 여명이 남아있어야 해요. 그래야 삶을 정리할 여유가 있거든요. 그것이 호스피스의 목적이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환자가 굉장히 안 좋은 상황에서 의뢰를 받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호스피스를 시작할 수 없어 많이 안타깝죠." 임 센터장은 먼저 한국사회의 호스피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변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의료계와 언론 등이 호스피스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 정확히 알고 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호스피스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환자 중에서 암에 대한 치료를 놓치면 안 되는 환자가 있다"면서 "반대로 의미 없는 치료를 유지하면서 호스피스의 기회마저 놓치는 환자도 없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임호섭 센터장(좌측)의 주관 하에 호스피스완화의료팀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위클리굿뉴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실천 호스피스병동에서는 환자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매주 한 번씩 진행되는 원예, 미술, 음악 요법과 자원봉사자를 통한 침상목욕, 세발, 아로마 테라피, 손발 마사지, 찜질 등은 환자들에게 호응이 좋다. 또 가족사진 촬영과 생일, 결혼기념일 등의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임 센터장은 "궁극적으로 '영혼 구원' 측면 이 부분에 초점을 더 두고 있다. 환자들의 요청이 있으면 언제든지 함께 기도하고,영접 예배, 세례식 등도 진행하고 있다"면서 지난해 총 23명의 환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말했다. 현재 호스피스병동에서는 2주에 한 번씩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지난달부터는 마지막 주 목요일마다 원목실 주관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저희는 신앙을 베이스로 합니다. 육체적인 돌봄도 중요하지만 영적인 돌봄도 중요하거든요." 죽음은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고도 한다. 죽음 앞에 설 때 비로소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임 센터장과 호스피스병동은 환자들이 죽음이란 거울을 잘 비춰보며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 짓고, 또 다른 시작인 영원한 안식을 준비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임 센터장은 마태복음 25장 40절 말씀을 마음에 새겨 주님께 하듯 환자와 가족들을 섬기겠다고 밝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천보라 기자2018-02-20

평창올림픽 선수촌이문을 활짝 열고 선수단을 맞았다. 세계 각국의 선수단이 입촌하면서 평창선수촌의 유승민 선수촌장은 손님맞이에 그 어느 때보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본지는 대한민국 유일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이자 선수촌장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분주하게 달려온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한국 유일의 IOC 위원, 한국 스포츠 알리다 유 촌장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IOC 선수위원이다. 그는 스포츠 외교관이라 불리는 IOC 선수위원으로서 한국 스포츠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가 2016년 IOC 선수위원에 도전했을 당시 스포츠계는 그의 낙선을 예상했다. 심지어 "다른 후보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는 등의 이유로 그의 출마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그가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후배들을 위한 마음이 컸다. "은퇴 후 바로 지도자의 길을 걸으면서 제가 몰랐던 선수들의 고충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선수들이 맞닥뜨린, 예를 들어 은퇴 후 진로 등의 문제에 대해 정작 제가 해결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더 넓은 곳에서 선수들의 부족함을 보완하고 어려움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확고해진 계기가 됐습니다." 유 촌장은 IOC 선수위원으로 바라본 한국 스포츠 위상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 한국은 4대 메이저 경기를 모두 개최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로 '스포츠 강국', '스포츠 선진국'으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전 세계가 평창동계올림픽을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3번의 도전 끝에 성공한 평창동계올림픽은 성공개최를 염원하는 모든 국민의 마음이 합쳐진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유승민 평창선수촌장이 올림픽 국가대표로활약했던 당시의 모습 ⓒ데일리굿뉴스 내 집처럼 편안한 선수촌에 중점 유 촌장은 지난달 23일 선수촌장 임명식을 가졌다. 그는 "선수촌장이라는 중임을 맡겨주신 정부, 평창조직위, IOC에 감사한다"면서 "막중한 책임이 따른 선수촌장 임명에 어깨가 무겁다.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선수촌장의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다짐했다. 일찌감치 선수촌에 입촌한 유 촌장은 구석구석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점검 또 점검했다. 그의 꼼꼼함 덕분에 평창선수촌을 방문한 이들의 평가는 매우 높다. 최근 평창동계올림픽 참관을 위해 방한한 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도 선수촌을 둘러본 후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며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선수촌이라고 하면 화려한 시설보다는 선수들이 편안하게 묵을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평창 날씨가 굉장히 춥다 보니 난방상태나 온수를 비롯해 식당이나 다양한 시설, 동선 등 여러 가지 중점을 두고 신경 썼는데, 많은 분들이 선수들에게 가장 적합한 환경이고 굉장히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해주고 계십니다. 바흐 위원장은 본인도 선수촌의 좋은 방을 배정해달라는 농담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평창 마운틴 클러스터에 위치한 평창선수촌은 3,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주거구역, 운영구역, 선수촌 플라자 크게 3가지로 나눠진다. 선수촌에는 편의점, 은행, 피트니스 센터, 미용실, 종교 시설 및 식당 등 일상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다양한 편의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또 레스토랑은 450여 개의 음식이 뷔페식으로 준비되어, 식단을 조절하는 선수부터 종교식을 찾는 선수까지 모두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 유 촌장은 무엇보다 선수촌에서 머무는 선수들이 조금의 불편함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는 "저를 필두로 선수촌의 모든 스태프들이 선수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놓치지 않으려 늘 주시하며 대비하고 있다"면서 "선수들이 느끼는 불편한 점은 바로바로 피드백을 받아 조치하려고 준비한다"고 밝혔다. ▲유승민 평창선수촌장(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스태프와 함께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데일리굿뉴스 전 세계에 화합의 장 되길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이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 '화합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중요한 올림픽이라고 생각한다는 유 촌장. 그는 "대회가 끝난 후 전 세계인들의 기억 속에 강하게 자리 잡는 올림픽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렇다면 그의 개인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유 촌장은 "매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최대한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지금 가장 큰 목표"라며 평창선수촌장의 역할 수행과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꼽았다. 그는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힘든 훈련을 견뎌내고 고생한 선수들에게 "올림픽을 위해 수많은 땀을 흘린 후배들이 자랑스럽다"며 "부디 주님의 은총과 함께 본인들이 목표한 결과, 좋은 성적을 거두고 행복한 올림픽으로 남길 바란다"도 선배로서의 따뜻한 말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유 선수촌장은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이를 통해 화합의 장이 열릴 수 있도록 국민들의 성원과 응원을 당부했다.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이 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대회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온 선수들, 특히 대한민국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많은 응원과 기도 부탁드리겠습니다." PROFILE 주요이력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대한체육회 이사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집행위원 평창동계올림픽 선수촌장 국제탁구연맹 이사 주요수상 2002 부산아시안게임 탁구 남자 복식전 금메달 2004 아테네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전 금메달 2008 베이징올림픽 탁구 남자 단체전 동메달 2012 런던올림픽 탁구 남자 단체전 은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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