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성식 기자2013-07-19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김영주 총무의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 총회 한국준비위원회(KHC) 상임집행위원장 복귀가 초읽기에 들어간 것일까? 결론은 그렇다.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지만, 당사자인 김 총무는 ‘아직 생각 중’이라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18일 열린 교회협 제 61회기 제3차 실행위원회 회의 말미에서 기독교대한감리회 신복현 위원은 “김 총무가 상임집행위원장에 조건 없이 복귀해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박수로 정리하자”고 제안했고, 위원들이 이에 대해 박수로 화답했다. 실행위원회서 김영주 총무 복귀 공식 제기 물론 이 제안이 실행위원들에 의해 박수로 받아들여진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김 총무 자신은 이에 대해 어떤 분명한 입장도 공식적으로 표명하지 않았다. 회의 후 기자들의 집중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겠다”고 원론적인 대답만 내놓았을 뿐이다. 김 총무가 상임집행위원장에 복귀한 다는 것은, 이른바 ‘공동선언문’ 사태로 촉발된 교회협을 포함한 에큐메니칼 진영과 KHC 사이의 ‘결별’이 공식적으로 종식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결별’은 그동안 ‘투 트랙 구조를 통한 부산 총회 준비’와 이를 전제로 한 ‘WCC 총회를 위한 협력위원회’를 교회협이 구성한 것으로 구체화됐다. 따라서 김 총무의 상임집행위원장 복귀가 거론되기 위해서는, 공동선언문 사태가 종식되기 위한 조건이 어느 정도 충족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 그런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총무의 복귀가, 그것도 교회협 실행위원회라는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거론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김 총무의 상임 집행위원장 복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사퇴 이후 지금까지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의 발원지는 주로 KHC 상임위원인 국내 4개 WCC 회원교단 교단장들이었다. 그리고 일부이긴 하지만, 4개 교단 총무들 중에서도 ‘협의회적 과정의 복원’을 이유로 복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김 총무 자신은 이에 대해 지극히 회의적이었다. 근본적으로, 복귀를 한다 해도 자신과 4개 교단 총무들이 분명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 총무의 이같은 생각에 동의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교회협 실행위원회가 ‘WCC 총회를 위한 협력위원회’ 구성을 결의한 것은, 적어도 교회협 주변에는 ‘복귀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협력위원회’는 김 총무가 상임집행위원장에 복귀하지 않은 상태에서 에큐메니칼 진영과 함께 총회에 필요한 준비를 해 나가기 위한 일종의 ‘공동전선’이었던 셈이다. 이 ‘공동전선’이 가능했던 이유는, 국고보조금을 비롯한 부산 총회 준비를 위한 예산이 교회협의 재단인 한국기독교 연합사업 유지재단의 통장을 통해 입출금되고, 따라서 유지재단 이사장인 김 총무가 예산의 인출과 집행에 대한 ‘결재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KHC의 조바심이 표출된 사건이 바로 ‘2600만원 무단 인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김영주 총무, 이미 마음 굳힌 듯 그런데, 이 ‘공동전선’에 어느 날부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동전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협력위원회에서 김총무의 복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심지어 윤길수 위원장마저도 공식적으로 ‘복귀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김 총무의 ‘복귀 불가’를 외치던 4개 교단 총무들 역시 ‘복귀의 필요성’에 동조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18일의 실행위원회에서 김총무의 ‘복귀 제안’ 발언을 한 인물이 바로 가장 강하게 ‘복귀 불가’를 외쳤던 인물이라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이것은 결국, KHC 측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김 총무의 복귀를 위한 ‘포위작전’을 시작했고, 그 대상은 협력위원회 주변을 비롯한 ‘복귀 불가론자’들이었으며, 이들이 차례로 그 포위작전에 의해 설득을 당했음을 의미한다. 김총무 역시 이런 부분에서 많은 외로움을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총무에게 불리하게 돌아간 분위기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른바 ‘2600만원 사건’ 이후 여론은 오히려 김 총무에게 불리하게 흘러갔다. 다시 말해서 ‘대사를 앞두고 돈을 갖고 대범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는 식의 여론이 형성돼 갔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총무는 국고 보조금 사용과 관련해서 일말의 문제라도 생긴다면 그 책임을 모두 교회협이 떠안아야 한다는 사실에 엄청난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차라리 자신이 상임집행위원장에 복귀하는 것이 오히려 그런 문제의 소지를 없애는 길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 총무는 18일 실행원회 직후 개인적인 자리에서 ‘그런 문제를 없애기 위해서는 복귀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했다.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 때, 김 총무는 사실상 2600만원 사건 이후 상임집행위원장 복귀 쪽으로 상당부분 마음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사건 직후 김삼환 KHC 상임위원장과 박종화 준비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고, 이 자리에서 세 가지의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조건은 첫째, ‘공동선언문’에 대해 김삼환 상임위원장과 김 총무가 함께 유감을 표명하는 ‘공동의 문서’를 발표하자는 것과 둘째, 상임집행위원장에 복귀할 경우 4개 교단 총무가 공동집행위원장 등의 형식으로 함께 참여하는 것, 그리고 김 총무가 지명하는 실무자 한 사람이 KHC 사무국에 동행하는 것이었다. 한편, 실행위원회 당일인 18일 아침에 열린 교회협 회원교단장 회의에서 김 총무는 상임집행위원장 복귀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김 총무의 발언에서 ‘공동의 문서’와 관련된 이야기는 빠져 있었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말하자면 ‘복귀’는 기정사실화 된 것이나 다름없지만, 공동선언문에 대한 입장 표명은 복귀 조건에서 제외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행위원회 석상에서 마침내 ‘김 총무의 조건없는 상임집행위원장 복귀’ 제안이 나왔다. 하지만 사실상 마음을 굳힌 김 총무는 이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아직 생각중’이라는 입장만 공식적으로 내놓았을 뿐이다. 과연 김 총무의 복귀는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이런 방식’의 복귀가 지니는 의미와 파장은 무엇일까? 결국 이렇게...‘모양 빠지는’ 복귀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 총무의 복귀는 이제 ‘누구나 당연한 일’로 생각하는 것이 됐다. 하지만, 김 총무 스스로가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주변에 의해 ‘조건 없는 복귀’가 제안됐다는 점에서, 복귀를 하더라도 ‘상당히 모양이 빠지는 복귀’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공동의 입장 표명’이 빠졌다는 점이 지적될 필요가 있다. 사실 김 총무가 공동선언문의 폐기를 선언하고 상임집행위원장을 사퇴한 것은 스스로 ‘속죄염소’가 돼 에큐메니칼 진영을 위로하는 동시에, 투 트랙의 준비구조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김 총무가 상임집행위원장에 복귀한다는 것은 투 트랙의 구조가 ‘원인무효’ 됐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공동선언문 사태에 대한 정리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그래야 이로 인해 상처를 받았음에도 김 총무라는 ‘속죄염소’를 믿고 총회 준비에 참여했던 에큐메니칼 진영에게 계속 참여할 명분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총무는 이 과정을 생략하려 하고 있다. 이는 에큐메니칼 진영에게 상당한 혼란과 상처를 동시에 안겨 주는 일이다. 이에 대해 김 총무는 ‘만일 김삼환 위원장과 함께 공동선언문 문제를 다시 거론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자신이 김 위원장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복귀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결정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공동 문서를 발표함으로써 김 상임위원장의 복귀 요구를 받아들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김 총무가 사태와 상황을 ‘정 반대로’ 해석하고 있는 부분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김 총무는 복귀가 필요하다고 스스로 판단하고도 이를 자신의 분명한 입장으로 발표하지 않고 실행위원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그것도 현장에서 가타부타 분명한 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채 ‘아직 생각 중’이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이는 어쩌면 김 총무 자신도 복귀의 ‘명분’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왕에 복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지금이라도 복귀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한 목표와 전략을 분명하게 수립하고 복귀를 선언해도 늦지 않다. 지금 김 총무의 복귀를 ‘절실하게 바라고 있는 쪽’은 오히려, ‘명분’과 ‘돈 문제’를 함께 챙겨야 하는 KHC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주변의 목소리에 떠밀리는’ 형식으로 은근슬쩍 복귀하고 넘어가는 것은 KHC의 ‘포위 작전’에 항복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전략도 이념도 없는 백기 투항’이라는 불만이 교회협 실무진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성식 기자2013-08-01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김영주 총무가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 총회 한국 준비위원회(KHC) 집행위원장에 복귀함에 따라, 그동안 교회협의 ‘부산 총회를 위한 협력위원회’ KHC로 이원화돼 있던 부산 총회의 준비과정이김 총무와 회원교단 총무들로 구성되는 ‘집행위원회’로 일원화되는 과정을 밟아 가고 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교회협 실행위원회가 ‘부산 총회를 위한 협력위원회’를 구성하고 또 이 협력위원회의 결의에 의해 교회협과 KHC 사이의 ‘실무협의회’가 구성된 것은, 김 총무가 KHC 밖에서 부산 총회 준비 과정을 챙겨야 했던 상황, 다시 말해서 ‘투 트랙’ 구조의 총회 준비가 불가피한 상황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총무가 집행위원장에 복귀함으로써 이런 상황은 사실상 ‘원인 무효’가 돼 버렸다. 이는 결국, 김 총무가 직접 집행위원장 자격으로 KHC 사무국이 실무를 하나하나 챙길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김 총무는 지난 29일 오전 KHC 사무국의 보고를 받기도 했다. KHC의 실무를 챙겨야 하는 입장에 놓인 것이 김 총무만은 아니다. 집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회원교단 총무들 역시 같은 입장에 놓이게 됐다. 지난 31일 열린 총무단 회의에서는, 집행위원회에 교회협 가맹 9개 교단 총무는 물론, KHC에 참여하고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측과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무도 참여시키기로 했다. 다시 말해서, 국내 11개 교단 총무들이 부산 총회 준비과정을 직접 챙기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부산 총회 준비를 둘러싸고 두 가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하나는, 그동안 외부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KHC의 예산 수립과 운용 계획이 사실상 공개돼 교단 총무들의 직접적인 검증을 받게 됐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투 트랙’을 전제로 구성된 교회협의 ‘부산 총회 협력위원회’와 ‘실무협의회’의 필요성에 관한 것이다. 첫 번째 문제는 이미 31일의 총무단 회의에서도 제기됐다. 이날 회의에서 총무들은, “KHC가 정한 교단 분담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것은 교단 분담금이 적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KHC가 교단과 아무런 협의도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분담금을 책정했고, 교단들은 사실상 이 금액을 책임지기 힘들다는 얘기였다. KHC가 책정한 교단 분담금은 총 26억5000만원에 달한다. 구체적으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8억원, 기독교대한감리회 6억원, 한국기독교장로회 3억원, 대한성공회 1억원,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5억원,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측 3억원, 그리고 기타 교단 5000만원 등이다. 이 중 이제까지 예장 백석측이 3억원을 모두 납부했고, 나머지 교단들은 기하성 2억원, 감리교 3억여원, 통합측 1억원 등 일부만 납부한 상태다. 따라서, KHC가 책정한 교단 부담금이 뜻대로 걷히기는 이미 힘들어진 상황인 듯 하다. 그러나 더 문제는, 교단 분담금 이외에도 KHC가 잡고 있는 ‘수입’ 계획이 지극히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KHC가 잡아 놓고 있는 수입의 총액은 69억 5000만원. 이 중 앞에서 말한 교단 분담금 26억5000만원과 정부 지원금 23억원을 제외한 20억원은 ‘준비위원회 임역원 분담금’12억원과 ‘다양한 모금목표’를 통한 8억원의 모금을 통해 조달하는 것으로 돼 있다. ‘준비위원회 임역원 모금’으로는, 50명의 상임위원장단으로부터 7억원을 모금하고, 250명의 임역원으로부터 5억원을 모금한다는 것이 KHC의 계획이다. 그러나, 이미 상임위원의 수를 128명으로 늘여 놓은 상황에서 존재감이 없어진 ‘상임위원장단’이 모금에 참여할 것인지도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250명에 이른다는 ‘임역원’도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게다가, 과연 KHC가 이 불분명한 대상들을 상대로 ‘모금을 위한 노력’을 했는지도 미지수이다. 이는 8억원을 잡고 있는 ‘다양한 모금목표’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KHC의 계획에 의하면, 1000개 교회와 300만 기도운동 회원, CMS 회원 및 기관 단체를 대상으로 3억원을 모금하고, CBS와 CTS, C 채널 등 언론을 통한 공동 모금 캠페인을 통해 5억원을 모금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000개 교회와 300만 기도운동 회원이 과연 존재하는지도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부산 총회 개회를 100일도 남겨두지 않은 지금 CBS 등 방송을 통한 모금 캠페인 계획도 잡혀 있지 않다. 다시 말해서 ‘다양한 모금목표’는 아직까지 허수로 남아 있는 것이다. 결국 KHC가 이제까지 잡아 놓고 있는 예산 수입 계획은, 23억원의 정부 보조금을 제외하고는 대폭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더 심하게 말한다면, 정부 보조금과 향후 줄어들 교단 부담금을 빼놓고는 사실상 기대할 만한 수입원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KHC의 지출 계획 역시 허술하기는 마찬가지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12억9156만3600원에 달하는 ‘예비비’이다. 이는 총 예산 69억5000만원의 18.6%에 해당하는 것으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비율이다. 게다가 제대로 모이지도 않는 프로그램위원회의 회의비와 식사비가 2억5650만원이나 잡혀 있다. KHC 측에서도 이같은 예산 계획상의 허술함을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30일 열린 총무 회의에 참석한 KHC 측의 한 인사는 교단 분담금 현실화 요구에 대해 “지출 계획이 치밀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므로 그런 부분을 조정하면 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렇게 치밀하지 못한 KHC이 예산 운용계획이 앞으로 집행위원회를 통해 어떻게 수정되고 또 집행될 것인지의 문제가 관심거리로 떠오르게 됐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예산상의 수치에 국한된문제가 아니라, 사업 내용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된 문제라는 점에서, 당초 KHC가 계획하고 있던 사업이 어떤 형태로 변경될 것인지도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이것이 사업의 목적이나 의미와 관련된 논란으로 이어질 경우, 그 파장은 훨씬 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반도 평화 프로젝트 프로그램의 경우, KHC가 잡고 있는 예산은 2억원이지만, 이 중 국고에서 지원할 예정인 예산은 ‘홍보물 제작’을 위한 8000만원 뿐이다. 이는 평화열차 등의 프로그램에 국고를 거의 사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가뜩이나 예산 규모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논란을 피해 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교회협과 KHC 사이의 사업 협력 등을 위해 구성된 협력위원회와 실무협의회의 계속 존재 여부가 관심거리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두 기구의 존재 필요성은 사실상 ‘원인무효’가 됐지만, 앞으로 계속 사업 내용에 대한 조정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두 기구의 존속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두 기구의 활동이 논란 등으로 인해 난관에 봉착했을 때, 이에 대한 보고를 받고 방향을 정해줘야 할 교회협 실행위원회가 부산 총회 직전인 오는 10월 셋째 주에나 열린다는 사실, 그리고 실무협의회를 통해 합의된 사항 역시 총무들로 구성된 집행위원회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 등을 감안한다면, 두 기구가 존속한다 하더라고 그 역할은 지금보다 대폭 축소될 수 밖에 없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연희 기자2014-04-28

거대한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헬기 한 대가 앉았다 다시 왔던 길로 서둘러 돌아간다. 이때 중년으로 보이는 부부가 서로 팔을 잡아주며 헬기가 앉았던 부근 간이천막 속으로 들어간다. 이윽고 여자의 애절한울부짖음이 터져나온다. 일순간 저녁을 준비하는 자원봉사자, 카메라를 만지던 기자, 길을 지나던 사람들 사이 정적이 흐른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생때같은 자식이 차가운 주검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안다. 이제는 주검을찾은 것 만으로도 다행이라는 것을 말이다.애 끓는 어미의 울부짖음을 들으며한편으로는 ‘그래도 저 부모는 아이를 찾았네...’라고 안도해야 하는 잔인한 현장에서모두가 그만 고개를 떨군다. 세월호 침몰 10일을 넘기고 있는 진도 팽목항의 상황이다. 단 한명의 생환자 없이 주검만 늘어 실종자가 사망자보다 적어진 지금, 팽목항은 정적이 감돌고 있다.생존에 대한 간절함은 초동 대처에 미흡했던 정부에 대한 분노,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변했고, ‘이제 제발 시신만이라도 찾게 해달라’는 애원으로 바뀌어 속울음을 삼키고 있는 중이다. 감리교 호남서연회 김두현 목사(진도교회)는 “사고 수습 기간이 길어지면서 풍경이 바뀌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자기 자식이 아닌것에 안도했다면, 지금은 죽은 자식 찾아 장례식장으로 떠나는 유족들을 바라보며 부러워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외로움, 두려움이 이들에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점점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내 자식은 영영 찾지 못하는 것 아닌가’하는 두려움이 이들에게 있다. 매일 새벽 5시 기도회를 하면서 찾아오는 이들을 위로하고 기도해주고 있다” 김두현 목사는 감리교 호남서연회 전남서지방 소속으로 진도체육관 옆에 마련된 감리교 부스에서 생수, 생필품 등을 나눠주고 있다. 사고 3일 동안은 로만칼라를 착용하고 현장에 찾아가 조심스럽게 가족들에게 다가가 기도하며 보냈다고 했다. 부스 안에는 여기저기 기도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권사, 집사, 장로 등기독인 가족들이 찾아와 실종자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쪽지에 적어 남기고 갔다. 그 중에는 ‘000 시신 수습 감사합니다’란 메모도 눈에 띄었다. 여기서 만난 한 실종자 친할아버지는 “사람들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외로움이 있다. 2학년 8반 손주녀석이 아직이다”라고 말했다. 사고 지점과 좀더 가까운 팽목항에서 만난 한 실종자 가족은 “시간이 지나면서 수습되는 시신도 줄고 애가 탄다. 어제도 해수부장관이 찾아왔기에 몰려가서 크게 항의했다. 그러고 나니 시신이 좀 더 오는 것 같더라”라며 속절없는 불신을 드러냈다. 실종된 단원고 2학년 2반 김00 학생의 큰엄마란다. 처음에는 아이 부모가 함께 내려왔는데, 중학교 아들이 혼자 안산에 있는 것을 힘들어해서 엄마는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고. “정부쪽에선 인양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기간도 길어지고, 그나마 수색작업도 중단된다. 시간이 없다. 조금이라도 알아볼 수 있을 때.....” 진도를 찾은 25일. 그 다음날부터 사고 지점에는 풍랑주의보가 내려져 비가 오고 수색도 중단됐다고 했다.‘이번에는 내 아이가 나오지 않을까’하는 바람이 자꾸만 물거품이 되고 있는 셈이다. 오랜 기다림으로 지치고 희망을 잃은 가족들에게서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누군가 안타깝게 말했다.잔인한 시간이 흐르고 있는 지금, 교회는 뭘해야 할까 묻고 또 묻는다. 오늘로 사고 13일째를 맞으며 사망자가 거의 190명에 가까워졌다. 점차 사람들의 시선도 합동분향소가 세워진 안산으로 향한다. 그렇지만 가족을 기다리는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는 한 팽목항에 눈을 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절망 속에 불신과 외로움, 우울감, 두려움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곁에서함께 울며 기다려주는 것이 남은 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110여명의 학생과 어른들이 진도 앞바다에 갇혀있다. 한국재난구호 조성래 목사는 “실종자 가족에게 더 이상 내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될 시점까지 팽목항에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옆에 조용히 있어주며 안아주고 들어주는 일 밖엔 할 게 없다. 기독교가 잘 할 수 있는 게 바로 이런 것 아니겠나. 그냥 들어주고 함께 울어주는 것” ▲팽목항에는 전국에서 보내온 기도편지가많았다. 사진은 한게시판에걸려있는응원의 메시지ⓒ뉴스미션 ▲실종자 가족들의 임시 거처인 진주실내체육관모습. ⓒ뉴스미션

민성식 기자2013-05-03

얼마 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에 한 통의 메일이 날아왔다. 그것은 교회재정건강성운동이라는 단체로부터 온 것으로, ‘목회자 소득세 신고 지원’ 활동을 시작하니 교회협 회원 교단 소속 목회자들에게 홍보를 해 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메일에는 소득 신고 대행 신청 서류와 포스터 등의 자료도 첨부돼 있었다. 교회협으로서도 반가운 메일이었다. 교회협 역시 ‘교회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운동의 과제 중 하나로 목회자 납세를 설정해 놓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던 상황이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이 갑갑해 할 수도 있는 소득 신고를 대행해 줄 수도 있다니, 반가움을 넘어서 고맙기까지 한 메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교회협은 지난 2일 교회재정투명성제고위원회를 열어 교회의 재무제표와 회계 처리의 기준안을 만들기로 결의한 바 있다. 땅에 떨어져 있는 한국교회의 신뢰성을 회복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이 교회 재정의 건강성 혹은 투명성 확보와 목회자들의 납세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 메일은 정말로 교회협에게는 엄청난 ‘응원군’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교회재정건강성운동은 교회협과 같은 이른바 ‘에큐메니칼 진영’이 아닌 복음주의 진영에 속해 있는 ‘개혁운동 그룹’이 결성하고 운영하는 단체이다. 다시 말해서 복음주의 진영의 개혁운동 그룹이 에큐매니칼 진영인 교회협에 ‘함께 하자’고 손을 내민 것이다. 기자는 이 소식을 듣고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 중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바로 교회일치운동, 즉 에큐메니칼운동과 교회개혁운동의 상관관계이다. 아주 고전적인 에큐메니칼운동 이론에 의한다면, 에큐메니칼운동이 지향하는 것은 교회가 교회로 바로 서게 하는 것(Let churches be the Church), 즉 교회의 개혁과 선교적 사명의 수행 두 가지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내용상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교회가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일치에 합당한 구조로 스스로를 개혁해 나가야 하고, 개혁을 이루지 못한 교회가 선교적 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동안 한국교회에서는 이 두 가지가 서로 다른 실체처럼 여겨져 왔다. 에큐메니칼운동은 진보적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교회들이나 하는 것이고, 개혁운동은 보수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교회들이나 하는 운동 정도로 인식돼 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문제들이 생겨났다. 우선 에큐메니칼운동은 진보적 사회 참여와 동일시됨으로써 에큐메니칼운동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과연 교회가 무엇이기에 하나가 되자고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 다시 말해서 ‘교회론’에 대한 논의가 거의 무시돼 왔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에큐메니칼운동이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적인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다 보니, 진보적 사회운동과 동일시되던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즘이 그 목적 의식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반면, 개혁운동 단체들의 운동은 아직 교회 정관 마련을 통한 교회의 민주적 운영과 재정의 투명성 문제나, 세습, 그리고 목회자의 성윤리 등과 같은 것에 대한 ‘사안별 정화 운동’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물론 이 자체로도 큰 의미를 지닌 것은 분명하고, 또 많은 결실을 본 것도 사실이지만, ‘교회는 항상 개혁돼야 한다’(Ecclesia semper reformanda)는 개혁 교회의 이념에 따라 ‘늘 개혁을 향해 열려 있는 교회’를 만들기에는 아직 미흡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에큐메니칼 진영이 일치에 걸맞는 교회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 ‘에큐메니칼 교회론’(Ecumenical ecclesiology)을 정립하는 데 실패했다면, 한국의 개혁운동 진영 역시 총체적 개혁운동의 교회론적 당위성을 설명할 수 있는 ‘개혁운동의 교회론’(Ecclesiology for reformation)을 정립하는 단계에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양 진영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기자는 감히 그것을 ‘에큐메니칼운동과 개혁운동의 통합’이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세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른바 ‘하나의 거룩하고 사도적이며 보편적인 교회’(One holy, apostolic and catholic Church)의 이념을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적인 차이를 떠나 추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에큐메니칼운동이 추구하는 교회의 모델이나, 개혁운동이 추구하는 교회의 모델이나 모두 이 이념과 통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하나의’라는 수식어가 에큐메니칼 진영이 말하는 ‘일치’를 상징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하나의’라는 수식어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모든 지체, 즉 모든 교회와 성도들의 집합체이다. 그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함께 먹고 마시며 한 분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거룩한 공동체’(Holy Comm)이다. 개혁운동이 추구하는 교회의 진정한 모델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로,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의 진정성과 온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은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생명과 그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정의와 평화로 가득찬 세상, 말하자면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맛보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에큐메니칼 진영이 실현하려 하는 복음이나, 개혁운동 진영이 선포하려 하는 복음이나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같은 내용의 복음을, 다른 방식으로 선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세상이 교회에게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교회가 교회답다는 것을 보여 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다움은 세상을 향한 교회의 봉사, 즉 선교를 통해 표현된다. 그런데 제대로 된 선교를 위해서는 ‘교회답지 않은 모습’의 극복이 전제돼야 한다. 교회의 개혁과 선교 과제를 수행하는 일이 둘이 아닌 하나라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이 분열이건, 아니면 타락한 교회의 모습이건, 진정한 선교를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돼야 한다. 한 가지를 사족처럼 덧붙이자면, 코 앞으로 다가온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 총회가 한국교회에 뭔가 의미를 주기 위해서라도 에큐메니칼운동과 개혁운동의 통합은 반드시 필요하다. 개혁운동 진영에서는 조금 의아해 하실지도 모르겠으나, 지역 교회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생각해 보자. 사실, 개혁운동 진영이라고 해서 부산 총회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개혁운동 진영에 속한 교회나 에큐메니칼운동 진영에 속한 교회나 모두, 안으로는 WCC에 대한 몰이해를 극복해야 하고, 밖으로는 WCC 총회를 반대하는 목소리와 싸워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에큐메니칼 진영과 개혁운동 진영의 협력과 통합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참으로 길고 어려운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지금부터라도 각 지역에서 에큐메니칼 진영의 교회들과 개혁운동 진영의 교회들이 일종의 ‘써클’같은 것을 만들어 지역의 문제를 위해 협력해 나갈 것을 권하고 싶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그리고 WCC에 대해 배우고, 간극을 좁혀 나가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필요하다면, WCC 총회 기간 동안 해외교회 대표들을 교회로 초대하는 일도 함께 하면서, 지역에서부터 ‘함께 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에큐메니칼운동과 개혁운동의 통합 같은 거창한 담론은, 그런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면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민성식 기자2013-06-23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총무 김영주 목사)는 지난 20일 유성에서 지역 교회협과의 간담회를 갖고, 지역 교회협의 활성화와 지역 교회협과 교회협의 관계 설정 문제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현재 지역 교회협은 부산과 강원 등 전국 9개 지역에 구성돼 있다. 이들은 대부분 과거 군사정권 시절 ‘지역 인권위원회’ 형식으로 조직돼 지역 교회협으로 발전했다. 다시 말해서 공교회성보다는 운동성을 위주로 조직됐던 것이다. 게다가 조직 단위도 ‘랜덤’ 그 자체다. 부산 같은 광역시가 있는가 하면 정읍 같은 소규모 지역도 있다. 조직 방식이나 규모에 상관없이, 지역 교회협은 그 지역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대변하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협은 1년에 한두 차례씩 지역 교회협 관계자들을 초청, 간담회 등을 갖고 그들의 의견을 들어오곤 했다. 간담회 때마다 지역 교회협이 교회협에 요청하는 것은 한가지로 요약된다. 중앙과 지역의 연결고리를 공식화해 달라는 것이다. 지난 20일의 간담회에서도, 지역 교회협을 담당하는 상설 위원회를 교회협 안에 설차해 달라는 의견과, 교회협의 프로그램 위원회에 지역 교회협 대표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의견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 지역 협의체의 참여는 필수적이고도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중앙에서 정책을 수립하면, 이 정책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회원 교단과 그 교단에 속한 지역의 개교회들이다. 그런데 이 연결고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지역 협의체이다. 다시 말해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지역 협의체가 교회협의 논의 구조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협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미 이 문제를 두 차례나 논의했으나 그때마다 엉뚱한 이유들 때문에 무산됐다. 이 문제가 처음 다뤄진 것은 지난 1990년대 초반. 지역 협의체의 대표를 실행위원회와 총회에 참여시킨다는 내용의 정관 및 세칙 개정안이 총회에 상정됐다. 그러나, 정족수 미달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표결조차 하지 못했다. 정관 개정안을 다룰 수 있을 만큼의 총대가 자리에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2006년, 당시 ‘교회협 발전과 개혁을 위한 특별 연구위원회’가 지역 협의체 대표를 총대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담은 ‘개혁안’을 완성했다. 그러나 일부 교단의 반대로 지역 협의체 대표의 총대 참여는 개혁안에서 제외됐다. 당시 일부 교단들은 왜 여기에 반대했을까? 표면적인 이유는 지역협의체의 ‘구성’에 있었다. 사실, 지역 교회협은 그 구성이 지역에 따라 매우 들쭉날쭉이다. 교회협의 회원 교단이 모두 참여하고 있는 지역도 드물 뿐만 아니라, 비회원 교단이 참여하고 있는 지역도 많다. 따라서, 이런 지역 협의체가 임의로 총대를 파송할 경우, 교회협의 ‘공교회성’이 손상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지역 협의체의 조직 과정과 특성을 도외시한 것이다. 그토록 공교회성이 중요하다면, 애초부터 지역 협의체를 창립할 때 공교회성을 충족시키도록 교회협이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든지, 아니면 그런 들쭉날쭉한 조직이 ‘지역 교회협’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것을 막았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운동을 위한 조직으로 구성될 때에는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다가, 정작 논의기구에 참여하려 할 때에 와서야 문제를 삼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지역 협의체의 논의구조 진출을 막은 ‘진짜’ 이유는 뭘까? 그것은 아무래도 ‘교단 이기주의’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현재 교회협 실행위원과 총대의 수는 세칙으로 정해져 있다. 큰 이변이 생기지 않는 한, 각 교단들이 차지하고 있는 ‘점유율’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역 협의체가 총대를 뽑아 파송할 경우, 이 ‘점유율’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물론 지역 협의체의 ‘들쭉날쭉한 구성’에 있다. 말하자면, 교단들은 현재의 점유율이 변하거나 비회원 교단이 논의구조에 참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역협의체의 역사와 특성을 도외시한 것인 동시에, 지금의 교회협 운영방식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현재 교회협 실행위원회에는 CBS를 비롯해서 대한기독교서회와 한국기독학생총연맹(KSCF), 그리고 한국 YMCA 전국연맹의 대표가 ‘회원 연합기관의 대표’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CBS나 서회에는 교회협 회원 교단이 아닌 교단도 참여하고 있다. YMCA의 경우는 아예 공교회 기구도 아니다. 따라서 지역 협의체의 대표를 배제했던 2006년의 논리는 지금에 와서는 전혀 맞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교회협은 지역 협의체의 대표를 하루 속히 논의 구조에 참여시키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의가 언제 다시 시작될지는 지금 아무도 모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역 협의체를 교회협 논의구조에 포함시켜야 하는 ‘진짜 이유’다.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마찬가지로, 지역 교회협은 ‘협의체’라기보다는 ‘운동성’을 전재로 한 ‘운동체’로 조직된 것이다. 따라서 그 구조와 운영방식은 ‘공교회 협의체’인 교회협과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협의체인 교회협은 그 구조상 운동성이 취약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교회협도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그 취약한 운동성을 보강하기 위해서는 지역 협의체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다시 말해서 운동성의 강화를 위해서는 협의체적 구조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연합기관을 회원으로 받아들인 것 자체가 교회협으로서는 협의체적 구조를 상당부분 양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협이 한 실무자는, “운동성과 협의적 구조를 동시에 갖추기 원한다면 ‘이중구조’가 불가피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는 결국, 갈수록 약해져 가는 교회협의 운동성을 강화하기 위해 협의체적 구조에 대한 심각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재고‘의 내용 속에는 지역 협의체 뿐만 아니라 에큐메니칼 진영에 속한 바닥 운동단체들의 문제도 함께 포함될 수밖에 없다.

민성식 기자2013-06-10

한국의 대표적인 장로교단 중 하나인 한국기독교장로회(이하 기장)가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표면적으로 보면 기장의 탄생은 한국 장로교회의 두 번째 분열의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1907년의 평양 대부흥운동 이후 한국 장로교회의 주류로 자리를 잡은 이른바 ‘개인적 내세적 구원관을 중시하는 보수 신앙과 신학’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신앙과 신학운동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기장60주년이갖는의미 이 같은 ‘새로운 신학과 신앙의 태동’에는 장공 김재준 목사와 조선신학교(한신대 전신)가 가리잡고 있다. 그는 송창근, 채필근 목사 등과 함께 1938년 조선신학교를 설립했고, 당시 신사참배 거부로 인해 한국 장로교회의 총회 인준 신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1940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조선신학교를 총회 직영 신학교로 인준한다. 그러나 일부 신학생과 신학자들은 김재준 목사의 신학 노선과 교육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1947년에 열린 제 33회 총회에서는 재학생 51명이 김재준 목사의 신학적 성향과 성경관을 문제 삼는 탄원서를 제출하기에 이른다. 이듬해인 1948년에는 장로회신학교가 재건되고 이듬해인 1949년에 열린 제35회 총회에서는 장로회신학교도 직영 신학교로 인준, 결국 한 교단에 두 개의 직영 신학교가 공존하게 됐다. 하지만 1951년 제 36회 계속총회는 조선신학교의 직영 인준을 취소했으며, 다음해인 1952년 제 36회 총회에서는 김재준 목사에 한 면직안과 조선신학교 출신 목회자에 대한 불채용안이 가결됐다. 나아가 1953년의 제 37회 총회에서는 면직 결의가 재확인되기에 이른다. 상황이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치달은 것이다. 결국 같은 해 6월 김재준 목사를 지지하는 조선신학교 측은 조선신학교 강당에서 ‘법통 제38회 총회’를 열고 ‘복음의 자유, 신앙양심의 자유, 자립자조의 정신, 세계교회 정신’을 표방하는 새로운 교단을 창립했고, 이듬해 교단 명칭을 ‘대한기독교장로회’로 개칭했다. 오늘날의 ‘기장’ 교단이 탄생한 것이다. 기장이라는 교단의 탄생은 당시 내걸었던 슬로건처럼 ‘복음의 자유, 신앙양심의 자유, 세계교회 정신’을 모토로 하는 ‘새로운 진보적 장로교단’이 한국에도 생겨났음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기장의 탄생은,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를 기치로 탄생한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측과 함께, 그동안 한국 장로교단에서 무수하게 벌어졌던 ‘교회 분열’과는 다른 차원에 이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기장의 이 같은 출범 정신은 내부적으로는 ‘사회참여의 신학’으로,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세계교회협의회(WCC)를 비롯한 에큐메니칼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으로 구체화됐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에큐메니칼운동의 ‘하나님의선교 신학’을 적극 수용, 이를 다시 사회참여의 신학에 적용했다. 1970년대 이후 기장이 우리 사회의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배경에는 ‘사회참여의 신학’과 ‘하나님의 선교신학’이 자리 잡고 있었단 것이다. 1970년대는 한국교회가 대규모 부흥운동을 통해 급격한 성장을 이룬 시기이기도 했지만, 국가조찬기도회의 시작에서도 볼 수 있듯 당시 박정희 정권과 교회 사이의 ‘정교유착’ 역시 고착화되던 시기였다. 그 결과, 1970년대 말의 이른바 ‘긴급조치’와 ‘10월 유신’으로 대변되는 폭압적 독재 정권 아래에서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같은 인권 유린 사태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장의 교회들과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신학을 바탕으로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리고 기장의 이같은 경함은 ‘민중신학’으로 집약됐으며, 이것은 나아가 1980년대 꽃을 피운 ‘민중교회운동’의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1980년대 들어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한 뒤, 기장의 사회 참여는 민주화 인권운동과 민중선교운동에서 그치지 않고, 평화통일운동으로까지 넓혀져 갔다. 이것은 민주화를 위한 근본적인 요건이 민족 자주성의 회복과 이를 통한 분단체제의 극복이라는 인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후 기장은 1980년대 들어 민족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연구를 계속, 1987년까지 두 번에 걸쳐 평화통일문서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기장의 이같은 사회 참여는 큰 희생을 불러 왔다. 무엇보다 기장에 대한 독재 정권의 탄압이 극심했다. 박형규, 문익환 목사 등 목회자는 물론이고, 수많은 한신대 학생과 교단 청년들도 옥고를 치러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교단 소속 교회들 역시 탄압의 대상이 됐다. 노상예배를 드려야 했던 사울제일교회 사태나, 송암교회 본당 최루탄 투척 사건이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보다 더 큰 희생은, 1980년대를 기점으로 교단의 성장이 완전히 침체의 길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기장 교회에 대한 정권의 탄압과 공작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197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교회의 보수화와 대형교회 중심주의의 산물이기도 했다. 그러자 기장 내에서도 사회 참여에 대한 비판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그것은 성령운동과 교회 성장을 우선시하는 목회자 그룹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지금에 와서는 기장 소속 교회들 중에서도 대형교회로 성장한 교회들이 적지 않다. 문제는 이처럼 교회 성장을 중시하는 경향이 갈수록 기장의 주류적 경향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 성장을 무조건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로 인해 기장이 출발 당시부터 내세웠던 신학적 신앙적 정체성, 다시 말해서 이른바 ‘기장성’이 엷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잆다. 왜나하면, ‘기장성’은 기장이라는 한 교단의 정체성에서 머무르지 않고, 70년대와 80년대 이땅의 민주화와 통일을 외치며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예언자적 자세를 견지했던 한국 그리스도인 모두의 신앙고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신앙고백이 존재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도 바로 ‘신학과 신앙양심의 자유’를 내세웠던 기장의 창립 이념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국의 현대 교회사에서 기장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이다. 보수적이고 내세적인 신앙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풍토 속에서, 기장은 그리스도교가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중요한 가치를 제시하고 실천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창립 60주년을 맞는 기장은 지금 ‘기장성의 재건’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기장 총회가 60주년을 맞아 발표한 선언문은, 지금의 상황에서 어떻게 ‘기장성’을 세우고 실천해 나가야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이것을 제대로 실천해 나가면서 예전과 같은 동력과 에큐메니칼 지도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기장에게 맡겨진 몫이다, “우리의 기장성에는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의 분리도 있을 수 없다. 한국 기독교 일각에서는 지금도 구원의 본질은 오직 개인의 영혼구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구원은 개인 영혼에 국한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개인과 사회만 아니라 온 우주를 포함하는 구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와 지구의 모든 문제를 신앙의 문제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민성식 기자2013-05-27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김영주 총무가 공식적으로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 총회 한국 준비위원회(KHC) 상임집행위원장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지만, 교회협 교단장들이 이에 대해 다시 ‘복귀를 권고’하고 나섬으로써, 부산 총회 준비를 둘러싸고 교회협 내부에서 ‘엇박자’가 나타나고 있다. 교회협 내의 ‘엇박자’ 김영주 총무가 ‘상임집행위원장 복귀 불가’ 의사를 처음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지난 13일 ‘WCC 부산 총회를 위한 협력위원회’가 모인 자리에서였다. 이것은 결국, KHC와는 상관없이 이 협력위원회를 중심으로 국내 4개 WCC 회원 교단과 교회협 회원교단, 그리고 에큐메니칼 진영이 함께 부산 총회를 준비해 나가는, 이른바 ‘투 트랙’ 구조를 공식화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김 총무는 같은 날 이같은 뜻을 담은 서신을 회원 교단장들에게 발송했다. 이 서신에서 김 총무는, “부산 총회가 본래의 에큐메니칼 전통을 계승하고, 특히 한반도와 아시아에서 생명·평화·정의의 신앙고백을 실현하는 역사적인 총회가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며, “이것은 교회협 실행위원회가 구성해 주신 ‘WCC 제10차 부산총회 협력위원회’를 통해서 실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총무는 교단장들을 직접 만나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지난 20일 회원 교단장들을 서울 시내의 한 음식점으로 불렀다. 그러나 애틀랜타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통일 협의회에 참석했다 돌아오는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정작 김 총무는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고, 대신 교회협 실무자들이 참석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교단장들은 다시 한 번 김 총무의 ‘상임집행위원장 복귀를 권고’했다. 그리고 오는 6월1일 다시 한 번 회원 교단장 총무 모임을 갖기로 했다. 말하자면, 김 총무의 결단에 교단장들이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교단장들이 다시 한 번 김 총무의 상임집행위원장 복귀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투 트랙’ 구조가 현실화되는 것은 결국 WCC 총회를 유치해 놓고 한국 교회가 갈라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서, 김 총무가 상임 집행위원장으로 복귀하고, 그를 통해 KHC의 ‘협의회적 구조’를 복원해 총회를 준비해 나가야 한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같은 교단장들의 뜻은, 어떻게 보면 교회협 실행위원회의 결의를 번복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동안 KHC가 보여 준 행보와 이에 대한 교회협 차원의 대응을 되짚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KHC, ‘협의회적 과정 복원’ 계속 거부 김 총무의 ‘상임집행위원장 복귀 권고’가 처음 나온 자리는 지난 4월6일 열렸던 ‘교회협 회원 교단장 총무 긴급 연석회의’였다. 그런데 이날 모임에서 김 총무의 복귀를 권고한 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국내 4개 WCC 회원 교단 총무들과 김 총무, 그리고 조성기 KHC 사무총장 등 6인이 ‘공동 집행위원장단’을 구성, KHC의 사업과 예산을 직접 관리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4월23일 열린 KHC 상임위원회는 이같은 결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총회 장소를 부산에서 서울로 옮기는 방안을 연구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것은 ‘협의회적 과정의 복원’을 원했던 교회협 회원교단들의 뜻을 송두리째 무시한 KHC의 ‘도발’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로 인해 4월25일 열린 교회협 실행위위원회에서는, 부산 총회를 위한 ‘협력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의하기에 이른다. 이 위원회는 원래 ‘지원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제안된 것이었지만, KHC의 행보에 분노한 실행위원들이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KHC에 대한 대책을 포함해서 부산 총회를 준비하기 위해’ 이름도 ‘협력위원회’로 바꿔 통과시킨 것이다. 사실상 이로써 교회협은 ‘투 트랙’의 준비 과정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바로 이틀 전에 있었던 교단장 총무회의의 결정 사항이었던 ‘김 총무의 상임집행위원장 복귀 권고’가 이날 실행위원회에서는 사실상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린 것이다. KHC가 멋대로 총회 장소를 서울로 옮기는 일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김 총무가 상임집행위원장에 복귀한다 해도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그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협력위원회’를 구성해 총회 준비를 해 나간다는 결의를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날 실행위원회에서는 ‘김 총무의 상임 집행위원장 복귀’와 ‘투 트랙을 전제로 한 협력위원회의 구성’을 맞바꾼 것이다. 교단장들이 다시금 ‘김 총무의 상입 집행위원장 복귀를 권고’하는 것이 실행위원회의 결의를 번복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한 가지 눈여겨봐야 할 사실은, 김 총무의 상임 집행위원장 복귀는 근본적으로 KHC 내에 ‘협의회적 과정’을 복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KHC는 그동안 계속해서 이를 거부해 왔다. 이것은 지난해 11월 KHC가 조직을 개편하면서 ‘실행위원회’를 삭제함으로써 국내 4개 WCC 회원교단 총무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하면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리고 이른바 ‘공동선언문 사태’로 김 총무가 상임 집행위원장을 사퇴한 이후에도 ‘협의회적 과정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회원교단들로부터 계속 제기돼 왔지만, KHC는 철저하게 이를 외면했다. KHC는 지난 3월26일 열린 상임위원회를 통해 조직의 확대 개편을 결의했으나, 여기에 회원교단 인사들을 참여시킨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 ‘복귀 불가’ 선언은 ‘거부’에 따른 선택 결국 김 총무의 ‘상임위원장 복귀 불가’ 선언은 KHC의 계속되는 ‘거부’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기 싫어서 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김 총무가 복귀하지 못하는 이유는 김 총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KHC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김 총무의 상임 집행위원장 복귀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본질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교단장들이 모르고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교단장들만이 알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사실들이 있다. 먼저, 만일 교단장들이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면, 지난번 교회협 실행위원회에서 김 총무의 복귀 문제를 슬그머니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지 않고 그 자리에서 분명하게 김 총무에게 복귀를 권고했어야 했다. 그러나 교단장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또 하나는 교회협 회장이자 KHC 상임위원장의 한 사람인 김근상 주교가 김 총무에게 “복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면 나도 상임위원회에서 빠지겠다는 뜻을 밝히겠다”고 말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교단장들 중 적어도 김근상 주교의 경우는, 김 총무의 복귀는 의미가 없으며 나아가 KHC 상임위원회 역시 함께 총회를 준비할 파트너가 되기 힘들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근상 회장을 비롯한 교단장들은 김 총무에게 다시 한 번 상임집행위원장 복귀를 권고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교단장들이 사태의 본질을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이 문제는 오는 6월1일 모임에서 다시 한 번 거론된 뒤 분명한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동안 KHC가 보여 준 행보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 설사 김 총무가 교단장들의 권고에 따라 상임집행위원장에 복귀한다 하더라도, 교단장들이 원하는 것처럼 KHC내에 협의회적 과정이 복원돼 총회 준비 과정을 국내 4개 WCC 회원교단들이 관장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KHC는 4개 교단이나 에큐메니칼 협의과정과는 상관없는 인물들로 상임위원회를 확대 개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 총무가 복귀하고 예전에 거론됐던 6인의 ‘공돋 집행위원장단’이 구성된다 하더라도, 확대 개편된 상임위원회의 ‘산하 기구’가 될 수밖에는 없다. 실질적으로 KHC의 예산과 사업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기 힘들다는 얘기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교회협 실행위원회가 결의한 바대로 WCC 부산 총회를 위한 협력위원회를 중심으로 에큐메니칼 진영과 대해 총회의 내용을 채워 나가기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부산 총회의 중요한 ‘호스트’ 중 하나인 교회협 내의 WCC 비회원교단들의 소외를 막기 위해서는 이런 구조가 더욱 절실하다. 결국 지금의 상황에서는 교단장들의 결단에 따라 교회협이 총회를 준비해 나가는 방향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김 총무는 이미 결단을 내렸지만, 아직까지 교단장들은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 고민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지, 교단장들 스스로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민성식 기자2013-05-16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 총회 한국준비위원회(KHC) 준비위원장 박종화 목사는 지난 1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 부산 총회 준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KHC와 에큐메니칼 진영의 갈등에 대해 ‘오히려 생산적인 것’이라고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이른바 ‘1.13 공동선언문’과 김삼환 KHC 상임위원장에 대한 에큐메니칼 진영의 사퇴 요구에 대해서는, “채택되지 않은 문서는 아무리 싸인을 했어도 아무 효력이 없다”면서 “어떤 인사가 ‘미안하다’고 말한 것은 사임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요약하자면, 에큐메니칼 진영과의 갈등은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없으며, 공동선언문에 대해서는 김삼환 상임위원장이 유감을 표명했고 또 그것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으니 이제 사퇴 요구는 그만 하자는 것이다.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입장에서, 각 매체들의 보도 내용만으로 박 목사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앞뒤를 모두 잘라 냈다 하더라도, 지금의 갈등이 ‘오히려 생산적’이라고 보는 것은 박 목사가 상황을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물론, 에큐메니칼운동에 있어서 항상 ‘갈등과 긴장’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에큐메니칼운동 자체가 ‘교회의 대표들로 이루어진 협의기구’와 ‘바닥 행동그룹들’이 함께 전개해 나가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긴장과 갈등은 운동의 내용과 동력을 담보하기 위해 어쩌면 필수적일 수도 있다. 그럴 경우 긴장과 갈등은 ‘생산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생각해 보자. 지금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한국의 이른바 ‘에큐메니칼 진영’은 ‘바닥 행동그룹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KHC 상임위원회를 ‘교회 대표들로 구성된 협의기구’로 볼 수 있을까? KHC로서는 그렇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 4개 WCC 회원교단들 마저도 KHC의 ‘협의회적 구조 복원’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 4개 교단뿐만 아니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회원 교단, 그리고 교회협 관계자들의 KHC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계속 거부한 것은 KHC이다. 교회협이 ‘WCC 부산 총회를 위한 협력위원회’를 구성해 사실상 ‘투 트랙’ 구조의 준비를 기정사실화하고, 에큐메니칼 진영도 동참하겠다고 밝힌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갈등 현상은 결코 서로를 보완하면서 하나의 길로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쪽의 ‘거부’에 대한 또 다른 쪽의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먼저 ‘거부’를 한 쪽에 있다. 먼저 거부를 한 쪽에서 이 상황을 ‘생산적’이라고 표현하는 것, 그것보다 더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어디 있겠는가. 더 심각한 것은 KHC가 거부한 것은 ‘협의회적 구조’나 ‘에큐메니칼 진영의 참여’만이 아니라 ‘에큐메니즘의 본질’ 그 자체였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공동선언문 사태’라는 점이다. 에큐메니칼 진영은 공동선언문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에 수치심과 분노로 몸을 떨었다. 그렇게 본다면 이 공동선언문을 기획하고 거기에 서명한 김삼환 상임위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는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에큐메니칼 진영의 이런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김삼환 상임위원장은 선언문의 폐기를 선언하든, 아니면 사퇴를 하거나 진심으로 사죄를 하든, 뭔가 이들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움직임을 보여 줬어야 했다. 그런데 박종화 목사는 “채택되지 않은 문서는 아무리 서명을 했어도 효력이 없다”고 공동선언문이 사실상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당사자가 유감을 표명한 것은 사퇴 그 이상의 의미가 있으니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 하자”고 말했다. 효력도 없는 문서에 유감을 표명했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지만, 유감표명이 사퇴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이상한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에큐메니칼 진영이 느꼈던 수치심과 분노는 아랑곳하지 않고 김삼환 상임위원장의 ‘위상’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정말 ‘자기중심적’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KHC가 끝까지 ‘협의회적 과정의 복원’이나 ‘에큐메니칼 진영의 참여’를 거부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KHC는 ‘지금 부산 총회를 둘러싸고 보수진영의 반대가 극심하고 진보와 보수 사이의 갈등도 심한 상황에서 보수진영의 참여를 이끌어 내 부산 총회를 한국교회 전체의 잔치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실제로 KHC는 계속 그렇게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우선, 부산 총회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보수진영이 참여한다 해서 그들이 총회 찬성으로 돌아서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그들이 반대하는 것은 WCC 자체이지, 총회에 보수진영이 참여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하나, 국내 보수적 신학자들이 WCC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WCC의 신학 노선이 자신들의 신학에 비추어 볼 때 문제가 있다는 것이지, 부산 총회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부산 총회에 보수 진영이 참여한다고 해서 이들이 WCC에 대한 문제제기를 멈추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부산 총회에 반대하는 쪽이나, WCC의 신학적 노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쪽이나, 부산 총회에 보수 진영이 참여하느냐의 여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은 WCC 총회에 보수진영이 참여하느냐의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 아니라 WCC 총회를 준비하고 있는 KHC와 교회협을 비롯한 에큐메니칼 진영 사이의 갈등이며, 그 원인은 전적으로 교회협과 에큐메니칼 진영의 참여를 계속해서 거부해 온 KHC에 있다. 그런데 KHC와 일부 인사들은 마치 우리나라에 WCC 부산 총회를 둘러싸고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 사이에 엄청난 갈등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회협이나 에큐메니칼 진영을 배제하고 KHC와 여기에 참여하는 보수 진영이 중심이 돼 부산 총회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KHC가 교회협과 에큐메니칼 진영을 배제하는 이유를 ‘진보와 보수의 갈등’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몇 년 전의 상황이 오버랩 된다. 2010년 8월25일, 당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사무총장이었던 조성기 목사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교회협이 WCC총회 개최의 전면에 나서면 안되며, WCC 4개 회원 교단이 주도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조 목사는 “보수교단의 참여를 유도해 WCC 총회를 한국교회 전체의 축제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조성기 목사는 지금 KHC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그런데 지금 KHC는 교회협은 물론, 국내 4개 WCC 회원 교단마저도 배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 총회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는 보수교단은 별로 없다. 이것은 결국, 보수교단의 참여는 교회협과 4개 WCC 회원교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안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더 정확히 말하면, 보수교단들은 사실 WCC 총회에 관심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이유로 교회협과 에큐메니칼 진영이 배제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본질의 왜곡을 넘어서 거짓말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 진영에게 있어서 WCC 총회는 그냥 ‘그쪽 사람들의 일’일 뿐, 굳이 반대할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동참하기는 더욱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교회협과 에큐메니칼 진영을 배제하면서 KHC가 내세운 이유 자체도 ‘말이 안되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KHC는 물론 한국교회가 얻은 ‘선한 결과’ 역시 아직은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기나긴 갈등의 과정을 거쳐 총회 준비 과정이 이분화되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이것이 과연 ‘생산적’인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종화 목사를 비롯해서 KHC가 지금의 상황을 계속해서 ‘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이제 더 이상 교회협과 에큐메니칼 진영의 지적과 비난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말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다.

민성식 기자2013-04-15

지난주 다수의 교계 언론들이 비슷한 뉴스를 전했다. 북한 지하교회의 지도자들이 북한의 상황을 ‘전쟁 분위기’라고 전하면서 ‘북한이 전쟁 준비가 아닌 평화를 추구하도록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내용이다. 이 뉴스들은 모두 미국 오픈도어스의 홈페이지에 실린 내용을 그 ‘소스’로 하고 있다. 미국 오픈도어스는 북한의 상황을 상세하게 전하면서, “전쟁과 미사일 발사 가능성에 대한 수사의 이면에는 20만명에서 40만명에 달하는 북한 기독교인이 당하는 고통과 박해가 숨어 있다”는 제리 딕스트라 대변인의 말을 덧붙이고 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접하면서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우선 북한 ‘지하교회’의 존재에 관한 것이다. 물론 존재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우리는 북한 지하교회의 존재를 전제로 북한 선교를 준비하고 실행에 옮겨 왔다. 일단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실체는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다. ‘지하교회’인 만큼 실체가 드러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오픈도어스의 홈페이지는 ‘지하교회의 지도자들’의 말을 인용해 소식을 전하고 있다. 여기서 두 번째 의문이 생긴다. 과연 그들이 외국의 선교단체를 향해 직접적인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까? 이 의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던 기자의 뇌리를 스쳐간 하나의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부활절 남북 공동기도문’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와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 사이의 합의를 거치지 못한 채 ‘반쪽짜리’로 발표된 경위를 취재하던 중 일어난 ‘돌발 상황’이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던 이훈삼 교회협 정의평화국장은 “지금처럼 남한이 군사훈련을 하고 북한이 거기에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남북한 사이의 모든 통신이 두절된다”고 말했다. 그러니 부활절 공동기도문에 대한 답신도 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마친 이훈삼 국장이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은 다 보내면서...” 이것은 결국 부활절 공동기도문에 대한 답신이 아닌 또 다른 ‘서신’이 조그련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기자는 모든 ‘레이더’를 동원해 ‘또 다른 서신’의 존재와 내용을 취재했다. 취재를 통해 얻은 결론은 이것이다. 문제의 ‘서신’은 조그련 국제국장 이종로 목사의 명의로 교회협뿐만 아니라 세계교회협의회(WCC) 국제위원회(CCIA)에도 보내졌고, 그 내용은 “지금 한반도가 전쟁의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으니 남북한과 세계의 그리스도교 형제들이 이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확인을 할 수는 없었다. 모두가 일다시피 조그련은 철저하게 북한 당국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단체다. 따라서 조그련이 보낸 서신에는 북한 당국의 뜻이 담겨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기자가 취재한 서신의 존재와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오히려 북한 당국이 ‘전쟁을 할 의사’를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 된다. 미국 오픈도어스가 전하는 ‘북한 지하교회 지도자’들의 말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이런 정황을 생각한다면, 북한 지하교회 지도자들의 메시지가 미국 오픈도어스를 통해 전해진 경로는 크게 세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전제해야 할 것은, 최근 북한과 외부의 통신은 철저하게 두절돼 있으며, 북한 당국이 하고 싶은 말만 외부로 흘러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미국 오픈도어스가 전하는 메시지는 첫째, ‘완전한 창작’일 수도 있고, 두 번째로는 교회협과 WCC 이외의 해외 교회에 보내진 조그련의 서신을 ‘마사지’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셋째로,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너다니는 사람들’에 의해 전해진 것일 수도 있다. 경우야 어찌됐건, 중요한 것은 이런 내용의 소식이 지금 극도의 긴장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 관계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북한을 ‘전쟁 준비에 광분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밝힌 바와 마찬가지로, 조그련의 서신은 정 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조그련의 서신이 진짜로 존재하고 내용도 기자가 취재한 것과 같다는 사실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확인’을 하지 못했을 뿐이지 존재와 내용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다수의 사람들이 이야기해 준 내용이 놀랍도록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성격의 서신이 조그련으로부터 날아든 것이 이번이 처음인 것도 아니다. 미국 오픈도어스가 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도 아닌 외국 선교단체가, 출처가 불분명한 메시지를 인용해 북한을 ‘전쟁 준비에 여념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빌미로 지하교회 교인들을 탄압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한반도의 긴장을 누그러트리기보다는 조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결코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국내외를 불문하고 선교단체들이 북한의 소식을 전하는 방식과, 또 그것을 국내 매체가 인용, 보도하는 방식이 보다 신중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평화지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성식 기자2013-04-04

남북한 교회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지난달 31일 부활절에 새문안교회에서 드려진 올해 부활절 연합예배에서는 예년과 다름 없이 ‘남북교회 부활절 공동기도문’이 낭독됐다. 그러나 이 기도문은 남북한 교회의 합의를 거치지 않은 ‘반쪽짜리’ 기도문이었다.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의 응답이 없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단독으로 발표한 것이다. 남북관계 경색 여파, 남북교회 관계에도 영향 미쳐 남북교회 부활절 공동기도문은 지난 1996년부터 해마다 NCCK와 조그련의 합의를 통해 발표돼 왔고, 합의 없이 남한 교회가 단독으로 발표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올해 부활절 공동기도문의 경우, 대규모의 한미 합동 군사훈련인 키 리졸브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종교계 뿐 아니라 모든 부문의 남북간 통신이 두절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할 때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최근 들어 남북한 교회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음을 보여 주는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오는 10월30일부터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제 10차 총회에 조그련 대표가 참석하는 것이 사실상 ‘무산’됐다는 점이다. NCCK 화해통일위원회 관계자 역시 조그련으로부터 ‘부산 총회 참가가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음을 시인했다. 부산 총회의 의미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 줄 수 있는 ‘이벤트’ 하나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몇 가지 부수적인 사건들을 도미노처럼 몰고 왔다. 원래 WCC 국제위원회(CCIA)는 부산 총회를 앞두고 4월 중 제주도에서 조그련 대표까지 참석하는 ‘동북아 평화와 안보에 관한 국제협의회’를 개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조그련 대표가 부산 총회에 참가하기도 힘든 마당에 이 협의회에 참가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고 판단한 CCIA는, 장소를 홍콩으로 옮겨 오는 6월 초에 개최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이유는 ‘조그련 대표의 참석을 위해서’이다. 여기에서는 CCIA는 물론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대표도 참석한다. 또, 부산 총회에 제기할 한반도 평화통일 관련 의제를 집약하기 위해 국내에서 개최하려 했던 ‘한반도 평화통일 국제협의회’ 역시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다. 지난 2월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열린 ‘부산 총회를 위한 기획마당’에서는 WCC 부산 총회 한국준비위원회(KHC)와 NCCK 화해통일위원회가 공동으로 이 협의회를 개최한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그러나 KHC는 아직 국내에서의 협의회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은 ‘아직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실상 계획이 없었던’ 것이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NCCK 화해통일위원회는 이 국내 협의회를 개최하는 대신 5월에 미국 애틀란타에서 미국연합감리교회가 주최하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문제에 대한 국제협의회’에 참석하고, 여기서 부산 총회에 제기할 의제를 정리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NCCK-조그련 30년 돈독한 관계 금가나? NCCK와 조그련은 지난 1986년 글리온 회의에서 WCC CCIA의 주선으로 처음 만나 30년 가까이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WCC 제 7차 캔버라 총회부터는 양 기구의 대표들이 나란히 참석, 세계의 에큐메니칼 형제들에게 그동안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가져 준 것에 대해 함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합동 예배를 드려 왔다. 따라서 이번 부산 총회에 조그련 대표들이 참석하는 것은 하나의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런 ‘당연해 보였던 일’이 무산된 것이다. 조그련으로서도 NCCK가 ‘호스트’가 돼 치르는 WCC 부산 총회에 참석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비록 장소는 한반도 내 부산이지만, 세계 교회로서는 가장 큰 행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불참하게 된 것일까? 가장 커다란 이유는 물론 최근 경색을 넘어서 극도의 긴장으로 흐르고 있는 남북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부문을 막론하고 북한 주민이 남한 땅에 발을 들여놓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조그련 내부의 상황도 어렵긴 마찬가지이다. 조그련은 지난해 1월 강영섭 중앙위원장이 별세한 이후 아직까지 위원장을 선출하지 못하고 있다. 강영섭 위원장은 김일성 주셕의 혁명동지인 강양욱 목사의 아들로, 북한 내 서열이 높은 인물이었고, 따라서 조그련의 위상도 강영섭 위원장 시절이 가장 높았다. 따라서 강영섭 위원장 사망 이후 조그련의 북한 내 위상이 급격하게 하락했을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또한 지금 정권 교체기에 있는 북한의 상황이 조그련의 행보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을 수도 있다. 북한의 WCC 불참 통보, 역시나지만 이례적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일찍 부산 총회 불참을 통보하는 것은 조금 이례적이다. 설사 불참을 결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러 가지 실무적인 문제를 따져 본 뒤에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NCCK와 조그련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조짐이 나타난 것은 지난 2009년 홍콩에서 열린 ‘도잔소 회의 25주년 기념 한반도 평화통일 국제협의회’였다. 이 협의회에 참가했던 신선 당시 NCCK 지도력개발위원회 위원의 참관기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회의가 기대와 긴장 속에서 진행되는 동안, 각 발제에서 북의 정책이나 인민의 현실이 공개될 때마다 북측대표는 마이크를 잡고 항변과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표했다. 예를 들면, 미국의 대조선 정책과 핵의 문제로 6자회담 위반이라는 점, 일본은 북의 파멸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 북의 내부사정과 김정일 위원장의 신변 언급을 했던 발제자에 대하여 항의하고 도잔소 회의는 당국자들의 회의가 아니라 교회관계자의 회의이니,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교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특히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은 6·15공동선언을 전면무시한 상황이라며, 북의 목적은 조선반도의 비핵화이므로 이는 미국의 대 조선반도 정책에 달려있다며, 현재 북한은 ‘사탕 알이 없이는 살지만 총알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상황임을 강조하였다. 핵문제, 지속적인 인도주의적 지원, 연방제 등이 언급된 공동성명 문안 수정에 의견이 교차되어 잠시 휴회하고 조율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발제의 내용 등이 북한 대표를 심하게 자극해 회의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회의 이후 조그련이 NCCK나 WCC와의 접촉을 꺼리기 시작했으며, 그런 분위기가 부산 총회 불참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론도 있다. 이 협의회 이후에도 남북 교회의 만남과 접촉은 꾸준히 이어졌으며, 지난해에도 북경과 심양 등지에서 실무 접촉을 가진 바 있다는 게 NCCK 화해통일위원회 관계자의 주장이다. 특히 2011년 12월에는 대북 지원품의 분배 상황을 모니터하기 위해 남한 교회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했으며, 이 때 조그련은 순안예배소라는 ‘가정교회’를 공개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남북교회 관계 넘어 한반도 평화 통일에 대한 근본적 논의 필요 NCCK와 조그련의 관계에 대한 진실은 NCCK와 조그련만이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 진실이 ‘미래’에 미칠 영향이다.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미래는 부산 총회 직전에 치러지는 ‘평화열차’ 프로그램이다. 계획대로라면 평화열차는 북한을 거쳐 부산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남북한 교회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면, 과연 평화열차가 북한을 통과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평화열차’ 프로그램의 본질을 생각한다면, ‘북한을 통과하느냐 마느냐’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평화열차 조차도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을 보여 주는 것이 바로 평화열차 프로그램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부산 총회 기간 동안 주말 프로그램으로 총회 참가자들이 비무장지대를 방문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시야를 조금 더 넓혀서 생각해 본다면, 남북 관계가 극도의 긴장으로 흐르고 또 남북한 교회의 관계마저 예전 같지 않은 ‘어려운 상황’은 또 다른 기회일 수 있다. 한국교회 통일운동의 찬란한 역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관한 한국교회 선언’(88선언)은 통일운동에 대한 억압이 가장 심하던 시절에 나왔다. 이후 DJ 정권의 ‘햇볕정책’으로 남북 교류가 자유로워진 후에는 오히려, 교회를 비롯한 민간부문의 통일운동이 ‘만남과 교류, 그리고 지원’의 차원을 넘지 못했다. 통일의 원칙이나 통일 이후 한반도의 체제 등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나 움직임은 역설적으로 정부 당국에 의해 독점됐던 것이다. 따라서 지금 NCCK에 필요한 것은 남북관계나 남북교회의 관계를 걱정하는 일이 아니라, 다시 한 번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에 나서는 일이다. 그리고 그 논의의 장에 북한 교회도 참여하도록 끊임없이 불러내 하나의 목소리를 내면서, 그 목소리를 근거로 남북한 교회가 함께 새로운 통일운동에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WCC 등 국제 에큐메니칼 기구와의 연대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부산 총회에서 다뤄질 한반도 관련 의제의 하나는 ‘포스트 도잔소’, 다시 말해서 앞으로 진행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에큐메니칼 차원의 협력 방안이다. ‘포스트 도잔소’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그 내용은 ‘도잔소 어게인’이 돼야 한다는 것을, 지금의 남북한과 남북 교회를 둘러싼 상황은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민성식 기자2013-02-22

흔히들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로 ‘세속화’를 이야기한다. 하나님보다 물질과 크기를 더 중시하는 물량주의, 교회를 무슨 사유 재신인 것처럼 물려주는 행위, 교단이나 기관의 ‘장’이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 모리배 같은 ‘목사님’들의 행태 등등은 모두 우리 교회의 ‘세속화’가 현실로 드러난 단면들이다. 하지만 이것뿐만이 아니다. 최근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시비가 교계는 물론 사회에서도 뜨거운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표절이냐 아니냐의 여부는 오목사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고, 또 교회 차원에서도 조사를 한다 하니 곧 밝혀질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시비에서 기자는 한국교회 세속화의 또 다른 한 단면을 본다. 바로 한국 교회에 만연해 있는 ‘학벌 중심주의’다.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목사’보다, ‘긴 가방끈’의 ‘세속적 상징’인 ‘박사’를 더 좋아하는 한국교회의 풍토가 이번 시비로 다시 한 번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에서 박사학위를 둘러싼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표절시비’도 여러 번 있었고, 심지어는 ‘가짜 학위’ 논란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그만큼 한국교회 목사들이 ‘박사학위’에 목을 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박사학위 자체를 두고 이렇다 저렇다 말할 필요는 없다. 박사 홍수시대라고는 하지만, 많은 공부를 하고 논문을 써 통과됐다는 것 자체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방끈이 짧은 기자로서는, 박사학위는 물론 석사학위라도 갖고 있는 친구나 선후배가 부럽기만 하다. 학위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자체로 자부심이요 영광인 것이 바로 박사학위다. 그러나 그것은 정당한 방법을 통해 취득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표절이나 대필, 그리고 돈을 주고 학위를 사는 행위가 결코 용납되지 않는 이유도, 정당하게 취득한 학위가 주는 자부심과 영광에 먹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학위의 권위와도 연결된다. 따라서 그런 행위들은 굳이 여기서 논의할 가치 조차 없다. 문제는 왜 그렇게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라도 ‘박사’가 되려 하느냐에 있다. 생각해 보자. 사실 목회를 하는 데 있어서 박사학위는 필요할 수도 있고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목회 현장과 신학이 철저하게 괴리돼 있는 우리 한국 교회의 풍토를 생각한다면,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그 길고도 어려운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 낭비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필요하다기보다는 필요하지 않다는 데 더 방점이 찍힌다는 말이다. 또 생각해 보자. 한국교회에 정당한 방법으로 취득한 박사학위를 가진 목사는 수없이 많다. 그런데 그 수많은 ‘박사 목사님’들이 강단에서 자신의 ‘신학적 지식과 이론’을 얼마나 설교를 통해 풀어낼까? 그리고 목사가 강단에서 어려운 신학적 지식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할 교인은 또 얼마나 될까? 사실, 한국교회의 정상적인 교단에서 목사가 된다는 것은 박사가 되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긴 과정을 필요로 한다. 기본적으로 6년 내지 7년의 대학 및 신학대학원 과정을 거쳐야 하고(따라서 목사들은 모두 석사 학위를 갖고 있다), 여기에 어려운 시험과 수련 과정이 더해져야 비로소 안수를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 제대로 목사가 되려면 이론과 실천을 모두 구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목회자로서의 소명의식도 갖춰야 한다. 따라서,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소정의 과정을 거쳐 안수를 받았다면, 그 자체로 충분한 지식과 경험, 성품을 갖춘 것으로 평가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목사 안수를 받은 뒤 공부를 계속해 박사가 되는 것은, 자신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일 수는 있어도, ‘목회자의 자격’을 갖추는 것은 아니다. 박사학위는 목회자들에게 ‘덤’일 뿐이다. 오히려 현장에서 교인들과 만나며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삶과 신앙의 고민을 풀어주면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길러 내는 ‘심화된 경험’이 박사학위보다 더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금 담임목사 청빙 과정에 있는 교회의 청빙위원들에게 묻고 싶다. 혹시 마음속에 ‘박사학위, 그것도 해외 박사학위를 가진 목사가 지원을 했으면...’ 하는 식의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아예 ‘반드시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고 정해 놓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또 이글을 읽는 분들 중에 ‘왜 우리 교회 목사님은 박사도 못됐어? 건너편 교회 목사님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던데, 창피하게...’라는 생각을 가진 분은 없는지도 물어보고 싶다. 박사 홍수시대인 만큼 교인들 중에도 박사가 수두룩하기 때문에 박사학위를 가진 목회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교인이나 목회자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목회자는 교인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하는 존재일 뿐 박사 수준, 혹은 그 이상의 지식을 전달하는 존재가 아니다. 게다가 교인들이 갖고 있는 박사학위는 대부분의 경우 신학이나 믿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렇게 본다면 목사가 박사학위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철저하게 ‘학벌중심’적인 것이며, 따라서 ‘안수받은 목사’보다 ‘세속적 인증서를 가진 박사’가 좋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세속화의 모습이다. 또한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부당한 방법으로라도 박사학위를 가지려 하는 목사들의 행태는 세속화를 넘어 범죄행위에 속한다. 교인들과 목사 모두 처절하게 반성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논문 표절이나 가짜 학위 시비를 일으킨 목사들을 두둔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그 이면에 가려진 학벌중심주의와 세속화 현상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이것은 단지 ‘학위 욕심’을 가진 목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인들 역시, 영적인 능력 같은 잣대보다는, 박사학위 같은 세속적 잣대로 목사들을 평가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신학대학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상태에서 세계적인 부흥사로 명성을 날렸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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