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교수 기자2017-11-06

한국 대학생들의 생활 ‘학원복음화협의회’가 5년 만에 <한국 대학생의 의식과 생활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한국 대학생 의식 전반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조사가 별로 없는 현실에서 매우 의미 있는 조사라고 생각된다. 특히 기독교인 대학생과 비기독교인 대학생들의 의식과 생활을 비교할 수 있는 전국적인 대규모 조사로는 유일한 조사이기 때문에 더욱 그 의미가 크다. 그 내용 중에 먼저, 삶에 대한 만족도는 61.4%로 높지 않으며 5년 전의 87.7%에 비해 상당히 낮아졌다. 또한 “거의 매일 피곤하거나 에너지가 생기지 않는다”는 무기력증에 대해서 44.2%가 동의하여 5년 전(24.3%)보다 2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자살 충동도 5년 전 16.3%에 비해 23.8%로 늘었다. 이것은 통계청이 실시한 ‘2016년 사회조사’에서 20대의 자살충동이 7.9%였던 것에 비하면 3배 정도 높은 수치이다. 그러나 종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28.6%만이 동의하여 5년 전(31.9%)에 비해 오히려 더 떨어졌다. 대학생들의 재정 상황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다섯 명 중에 한 명 꼴로 개인 빚이 있다고 응답했고, 빚의 규모는 평균 840만원으로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현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비율이 35.3%로 5년 전에 비해 10%p 이상 늘었고, 전체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없는 대학생이 14.0%에 불과할 정도로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었다. 아르바이트 목적은 역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가 52.2%로 과반수를 차지했다. 아르바이트를 통한 평균 수입은 60만원이었는데 현재 시급을 감안해서 이 정도의 돈을 벌려면 평일 기준으로 매일 4시간 이상을 아르바이트에 할애해야 한다. 이것은 학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정도이므로 아르바이트로 인한 압박이 심각한 수준으로 판단된다. 대학에 진학한 이유는 학문에 대한 관심(13.8%)보다도 취업 및 성공(42.7%)과 진로(12.1%) 등 현실적인 이유가 과반을 차지했다. “남들이 꼭 가야한다고 해서”(13.9%)와 “친구들이 다 가니까”(6.8%) 등 다섯 명 중에 한 명은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이 대학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나 세계적으로 높은 대학진학률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취업 준비 시간은 5년 전보다 50분이 늘어 매일 3시간 24분 할애를 하고 있는데, 이전 조사들과 달리 외국어 공부의 비중이 큰 폭으로 하락하였고, 자격증 취득이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대학 본연의 기능인 학문 활동보다 취업을 위한 준비과정으로서의 역할이 더 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청년들의 취업과 경제적인 어려움은 청년 이후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여겨온 결혼에 대해 대학생들은 불과 36.8%만이 결혼할 것이라고 응답했고, 절반에 가까운 47.8%가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고 응답하였다. 그리고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이 14.1%로 나타났다. 5년 전 조사결과와 비교해 보면, 결혼할 것이라는 응답은 20%p 가까이 줄었고,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10%p 이상 늘어 결혼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이 크게 증가하였다. 특히 여학생들은 결혼할 것이라는 응답이 4명 중 1명에 불과하였고,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이와 비슷한 22.2%로 나타나 매우 충격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여학생들의 결혼 의향은 5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현재 저출산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결혼 의향이 이렇게 약하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결과이다. 계층별 의식 차이 이러한 대학생들의 생활과 의식은 계층에 따라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 대학생들의 삶이 매우 불안정하고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은 대학생활 만족도의 감소와 취업 스트레스의 증가와도 관련이 있다. 그런데 자살 충동과 무기력증에 대해서 하류층으로 갈수록 동의율이 높았고 스트레스도 중상층에 비해 중하층의 대학생들이 10%p 이상 동의율이 높게 나왔다. 삶의 만족도에 대해서도 상층의 대학생들에 비해 하층의 대학생들은 30%p 가까이 낮게 나와 경제적인 형편에 따라서 삶의 질이 매우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결혼 의향이 경제적인 상황과 관련 있다는 것 역시 계층별로 보았을 때 뚜렷하게 나타난다. 상류층 학생들의 결혼 의향은 49.3%로 거의 절반에 가까웠으나 하류층 학생들의 결혼 의향은 32.1%에 머물렀다. 반면에 상류층 학생들의 비혼 의향은 8.7%로 10% 이하였으나, 하류층 학생들의 비혼 의향은 17.1%로 2배 이상 높았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이야기가 입증된 것이다. 자녀 계획에 대해 평균 2.2명이라는 결과가 나왔으나 이것은 “결혼을 한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응답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계획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희망사항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비혼 이유로는 “경제적인 문제”(37.3%)와 함께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고 싶어서”(44.5%)가 가장 많이 나왔다. 남학생들은 가장 많은 49.2%가 “경제적인 문제”를 이야기한 반면에, 여학생들은 가장 많은 50.9%가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고 싶어서”라고 응답하여 대조를 이루었다. 이에 대해서도 상류층 대학생들의 51.6%가 “구속받지 않고 싶어서”라고 응답한 반면에 하류층 대학생들의 가장 많은 44.4%가 “경제 문제”라고 응답하여 계층에 따른 의식의 차이를 나타내었다. 저소득층 대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개신교 대학생들의 보수적인 정치의식 한국의 대학생들은 자신의 정치의식에 대해 절반 가량(46.3%)이 중립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진보라는 응답(35.2%)이 보수라는 응답(18.4%)보다 두 배 정도 많았다. 5년 전에 비해 보수라는 응답은 비슷했으나 진보적이라는 응답이 2배 가까이 늘었고, 중보라는 응답이 10%p 가까이 줄었다. 작년에 있었던 국정농단과 관련된 촛불집회 등의 정국이 대학생의 정치의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이한 점은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진보적이라는 응답이 5.8%p 더 많았고, 보수적이라는 응답은 10.6%p 더 적게 나와 더 진보적인 성향을 보였다는 점이다. 계층별로는 상류층의 대학생들이 하류층에 비해 더 진보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장년층에서도 마찬가지 경향을 나타내는데, 사회학자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은 유한계급론에서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는 생산 활동에 시달리는 사람 즉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사람일수록 보수적이 된다고 말한다. 극빈층과 더불어 일상적인 생존 투쟁에 에너지를 모조리 쏟아 부어야하는 사람들은 내일의 생각에 노력을 기울일 여유가 없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개신교 대학생들은 다른 종교인들보다 정치의식이 더 보수적이었는데, 정치의식 형성에 도움을 준 대상이 비개신교인에 비해 부모 및 가족이라는 응답이 더 많았다. 이번 조사에서 개신교 대학생들은 모태신앙이 많기 때문에 같은 개신교인 가족에 의해 보수적인 성향이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촛불 집회지지 응답이 가장 적은 것도 같은 이유로 해석된다. 개신교인 대학생들의 정치의식이 다른 대학생들에 비해 가장 보수적이라는 점은 다소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 보수적인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보수적인 사회관은 현실 유지와 기득권 수호에 일차적인 관심을 두기 때문에 건전한 비판마저도 결여되기 쉽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자신의 삶에 대해 자족하며 감사하는 마음이 기독교적인 가치관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지만,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사회 정의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다면 성경의 가르침을 온전히 따른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은 대세에 따르기보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현실에 대해 분노하며 통회하고 공의를 실천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기독교인이라면 세계변혁적 하나님 나라 운동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청년 대학생들이 균형 있는 신앙을 갖고 특히 공공성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청년 사역자들이나 교회 지도자들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여주봉 목사 기자2017-11-06

성경이 말하는 우리의 사역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사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면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보이신다. 3.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온 삶으로 그 일에 동참한다. 4.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일을 성취하신다. 5.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한다. 우리는 지난번에 3번을 살펴보았다. 거기에 한 가지를 더한다면 우리는 믿음에 의한 삶을 반드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하나님 크기의 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따라가려면, 반드시 믿음에 의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이 없이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갈 수 없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모두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따랐다. 개인이 믿음에 의한 삶을 살아야 할 뿐 아니라, 특히 교회가 믿음에 의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출애굽 사건에서도 이 부분을 잘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실 때는 모세 한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생활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집중적으로 믿음의 훈련을 시키셨다. 애굽에서 나온 1 세대는 하나님의 반복되는 훈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불신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서 흩으셨다. 그러나 2 세대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셨다.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가르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신 사건들은 여호수아 한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진 일들이 아니었다. 그 일들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일들이었다.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순종하려면,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동참하는 삶을 살려면, 반드시 교회 전체가 믿음에 의한 삶을 살아야 한다. 4.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일을 성취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온 삶으로 동참하면, 이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다. 그 일은 하나님께서 보이신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뒷받침하신다. 우리는 출애굽 사건이나 기드온의 경우나 사울을 전도한 아나니아의 경우 등 성경의 모든 사건에서 이 부분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포도나무교회가 군 선교에 동참하게 된 과정은 이렇다. 새물결선교회에 연합하는 한 목사께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지역 교회 사역을 내려놓고 군 선교로 헌신하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분을 통해서 군 선교가 가운데 참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그 소식들을 들으면서 “응 이건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 건데.......”라는 생각이 나에게 들었다. 포도나무교회에는 하나님께서 행하고 계신 것이 보이면, 그 일에 온 삶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DNA 속에 들어 있다. 그래서 그 다음 주일 저녁, 예배를 마치고, 나는 지체들에게 군 선교와 관련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이신 것들을 나누고, 교회가 전체적으로 그와 관련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들으면 마치 과대망상증 환자들이 모여서 이야기 하는 것과 같은, 군 선교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놀라운 것들을 지체들이 나누기 시작했다. 한 가지 의심할 나위 없이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포도나무교회를 군 선교로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해서 포도나무교회 군 선교가 시작되었다. 현재 포도나무교회와 새물결선교회는 군선교연합회, 대한민국ROTC기독장교연합회와 협력해서 ROTC 학군단 113개 학교에 간사들을 세워서 그들을 돌보고 있고, 문무대, 상무대, 부사관학교, 공군교육사령부 등을 섬기면서 하나님께서 참 놀랍게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포도나무교회나 새물결선교회의 모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의 다음 세대를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작정하셨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군 선교를 시작할 때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뒷받침하신다.

한정국 선교사 기자2017-10-27

조선말기 한국에서 사역한 선교사 G. T. Davis는 다음과 같이 본국에 보고했다. "평양에서는 길선주 목사와 장로 한 사람이 교회당에 와서 새벽 기도를 드리는 습관을 가졌다. 누구든지 원하면 며칠 동안 새벽 4시 반에 모여 기도할 수 있다고 알렸다. 그 이튿날 1시 반부터 모이기 시작한 사람들은 새벽 4시 반까지 약 400여 명에 이르렀다." 새벽 기도는 기독교 전래 이전에 한국인에게 있는 샤머니즘적 불교 문화였다. 그러나 특유의 한국 기독교 문화가 되어 한국 기독교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오늘날 불교 문화권에는 상당한 Ritual(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불교의식 문화는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쳐, 그들의 삶의 일부가 됐고, 매일의 생활 습관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중 상당 부분은 한국의 새벽 기도처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차용함으로써 불교인들에게 기독교 복음을 좀 더 친밀히 전하고, 그들 또한 자신들의 문화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기독교 신앙을 수용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이전의 예수와 예수인 오늘날의 기독교인은 초대 교회 이후 수많은 교회 전통의 결과로 우리에게 수용된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25% 기독 인구 앞에서 주저앉고 있는 이유는 전파된 기독교가 민족 문화 속에 뿌리를 내리는 데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한국의 기독교는 너무 서구적이어서, 민초들이 느끼기에 외부적 종교라는 이질감을 느끼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적합한 민족신학인 건전한 한국신학이 필요하다. 기독교 이전의 예수와 신앙 문화가 지금의 그것과 상당히 다름을 우리가 인정한다면, 선교지에서 선교사가 갖고 있거나 현지 교회가 전통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서구적 기독 문화를 뛰어넘어 현지 문화에 적합한 새로운 기독교 문화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위해 적극적인 상황화 접근으로 다음과 같이 제안하는 바이다. 소승 불교권에서 발견되는 의미 있는 종교 문화 (1)출가 제도와 수도 남자들은 일생 중 수개월 또는 1년 이상을 집을 떠나 사찰에서 정기적 예불, 학습 그리고 신앙 훈련을 통한 수도 생활을 하는 것이 정착돼 있다. 이 수도 생활을 수행해야 남자로서 사회적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이 제도를 기독교의 제자 훈련과 접목시키면 좋을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가 되는 훈련으로서 집을 떠나 교회와 관련 시설에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새벽 기도회, 새벽 성도 집 방문, 음식과 시간을 정한 훈련, 나아가 성경 학습 등 집중 제자 훈련을 강하게 받게 한다면 더욱 좋을 듯하다. 수도복 유니폼도 황적색으로 멋지게 만들고, 머리를 깎으며, 수도 생활에 전념하게 한다. 목사는 이들을 OJT(On the Job Training)훈련 식으로 목회 현장에 투입하여 목회에 임한다면 인력 활용에도 그만이다. 여성까지도 가톨릭 수녀원의 경우를 연구하여 접목시킴도 시도할 만하다. (2)교회와 학교 그리고 의료원의 종합선교 불교권을 여행하다 보면, 사찰은 민초 교육과 의료 서비스 기능을 함께하는 전통이 있다. 지금은 인도차이나 전역에 실제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모델이다. 대도시에서 새롭게 교회 개척하는 경우 부동산 가격이 높아 이를 실시하기 힘들지만, 지방 소도시 또는 지방 지역에서 3개의 복합 사역 모델을 효율적으로 실시할 만하다. 이 방법은 불교식 의식 제도와 유사한 교회당을 세우면서, 그 옆에 학교 그리고 간단한 메디칼 클리닉을 함께 설립하는 방안이다. 학교는 현지 Local 학교와의 경쟁과 중복을 피해 한국형 국제 학교를 설립한다. 한국형 국제 학교는 한국인이 운영하고, 독특한 철학 즉 정체성, 국제성 그리고 사역성의 삼위일체 교육으로 민족 교육, 신앙 교육 그리고 국제 교육을 함께 시키는 철학을 견지한다. 초등 2학년까지는 정체성 확립을 위해 민족 교육, 그리고 초등 3학년부터는 SOT (School Of Tomorrow) 또는 Alpha Omega 등의 미국형 기독교 미니 학교 자기주도형 학습 제도를 채택한다. 그리고 사역성을 위해서는 중학 교육부터 제2 외국어를 배우게 함으로써 3개 언어를 고교 졸업 시 마스터할 수 있도록 추구한다. 특히 한류 이후 한글에 대한 관심이 많기에 제2외국어로 강력히 추천할 만 하다. 이 국제 학교의 비한국인 학생은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학생은 학교가 소재한 현지 Local어를 배우도록 하여, 고교 과정을 마치면 모국어, 영어(국제어의 일환으로), 한국어 또는 Local어의 3개 국어가 가능(Trilingual)한 학생으로 졸업할 것이다. 그리고 현지어로 전도하게 함으로써 선교에 참여하게 한다. 또한 Medical Clinic은 인근 의료원과 중복이 안되게 하고 기초적 1차 유료(대상에 따른 가격 조정)의료 행위를 현지의 의사 또는 간호사를 고용하여 아주 기본적인 치료 및 예방 교육에 힘쓰게 한다. 그리고 중증 환자의 경우 상급 의료원에 연결시키도록 서비스를 보완케 한다. 이상과 같이 사찰의 3개 기능 복합처럼 기독교의 삼위일체식의 3개 복합 사역은 바람직한 상황화의 한 모습이다. (3)새벽 탁발 제도 목회자와 기독교 사역자는 매일 수행자와 함께 새벽에 기상해, 교회에서 기도하고 말씀을 암송한 후, 각 신도의 집을 순방하고, 탁발 제도를 활용한다. 기독교 가정이 많이 없으므로 시간을 정하여 집을 방문, 문 밖에서 준비한 헌물을 받고, 그 가정에 필요한 간단 말씀과 기도를 해 준다면 신도들의 신앙 건강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그리고 사역자들은 새벽을 깨우고 일하는 좋은 훈련의 기회도 된다. 사역자의 경우 그 사모들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지 않고, 탁발로 공양된 음식을 나눠 먹음으로써 신도들의 헌물을 귀하게 느낄 수 있는 좋은 제도이다. 불교권 소재 한인교회가 이를 한번 시도하여 그 느낌을 나누면서 개선하고 현지 선교에 적용해 볼 만 할 것이다. (4)세례의 상황화 불교에서는 정화의 의미를 크게 강조한다. 불 또는 물로 정화 의식을 갖는데, 각자의 정화를 위한 의식으로 성수(聖水)를 활용하고 세례조차 침례를 권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지냄의 의미와 그리스도 안에서 죄 씻음을 받았다는 의미로 가르쳐서 그리스도의 영적 영향을 가르친다면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처럼 새로운 피조물로의 탄생을 기하도록 한다. 대승 불교권에서 새로운 法名(이름)을 부여 받는 것처럼 새로운 세례명을 받도록 함도 좋을 것이다. 시신 화장도 불교식을 채택하되 화장하기 전 설교 말씀을 통해 죄인의 육신이 불타 없어지더라도 영생의 몸으로 변화됨을 가르치고 현지에 적합한 기독교식 장례문화를 개발한다. (5)헌아 및 동자승 제도 어린 아이를 하나님께 바치는 의식을 불교에서 부처에게 바치는 의식과 비교 연구하여 상황화된 헌아식을 갖게 한다. 심지어 새로운 비싼 물건(오토바이, 자동차 또는 집 등)을 주께 드리는 헌물 예배를 드리게 함도 좋을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목격한 장면인데 한 젊은 부부가 새로 장만한 오토바이를 갖고 와서 실로 오토바이와 자신을 연결하고, 그 연장의 실 끝을 승려가 쥐고 축복과 무사 운전을 위해 기도해 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붉은 실을 이용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과 안녕의 기도를 하며, 붉은 실의 상징성이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는 공동체 의식을 가르치면서 이 의식을 실시함도 바람직할 것이다. 동자승도 고난 주간 또는 성탄절 전후 일주일간의 기간을 이용해 교회 또는 수련원에서 생활하는 제도로 실시한다면 어린이 신앙 교육의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다. 이때 스포츠스타일의 삭발을 하게 함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불교인의 관점에서 오늘의 예수님을 만나게 하려면 위와 같은 내부자(Insiders) 관점의 개발과 적용이 필요하다. 선교사에게 이런 용기가 없다면 BBB(Buddist Background Belieber / 불교배경의 기독신자)들의 내부적 적용으로 시도할 만하다. 인도네시아에서 내부자 운동이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은 이런 적극적 상황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33년 전에 인도네시아에 도착했을 때 약 400만 명의 개신교 인구가 지금은 4,000만 명을 넘어섰다면 이런 적극적 상황화를 소승 불교권에서 시도해 볼 만 하다고 필자는 믿는다. 다만 불교권에서 기독교와 기독교인의 모습이 너무 서구적이고 현지 문화에 이질적인 것이 고착된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내용보다 형식에 치우친 기독교가 형식의 과감한 상황화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시도는 기존 교회 또는 전통적 선교사가 아닌 BBB(불교 배경의 기독신자)의 용기와 선교사의 격려가 필요할 것이다.

김명전 기자2017-10-19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다. 여기저기서 새 정부의 J노믹스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를 시작했다. 가장 역점을 두었던 일자리 만들기가 대상이다. 소득주도성장을 내걸고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설치하며 일자리 만들기에 매달렸지만, 실적은 없다고 한다. 혹평이다. 근거는 올 8월 기준 취업 증가 폭이 21만 2000명으로 4년 4개월 이래 최저 수준이라는 것이다. 반면 실업급여를 신청한 실업급여 증가율은 15.9%로 높아졌다. 4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신청률이다. 일자리를 찾은 사람은 늘어나지 않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더 많아졌다는 통계다. 따라서 일자리 만들기를 내세워 소득주도성장전략을 추진해 온 J노믹스의 첫 학기 성적은 낙제점이다. 과연 그런가? 실제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고용 동향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청년(15-29) 실업률은 9.4%다. 1999(10.7%)년 이후, 18년 이래 가장 나쁘다. 하지만 청년실업률이 박근혜 정부인 지난해 8월 9.3%와 비교하면 고작 0.1% 증가한 수준이다. 따라서 '낙제', '사상 최악' 등 극단적인 평가는 출범 6개월 새 정부에 너무 가혹하다. 다만 올해 월별 취업자 증가 폭이 1월 24만 3000명을 제외하고는 7월까지 30만-40만 명 대를 유지한 점은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 노동경제학자들은 취업자가 40만 명 대 일 경우는 취업 사정이 좋다고 본다. 반면 20만 명 대는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다고 분석한다. 정책당국은 비교 시점의 경제 상황과 현재 상황이 너무 다른, 기저효과로 인한 차이를 강조한다. 지난 8월 임시직과 일용직이 20만 4천여 명 감소했지만, 상용직 고용은 46만여 명이나 늘었다는 점을 든다. 원칙적으로 고용지표는 경기가 일정 기간 진행된 뒤에 나타나는 후행지표이다. 따라서 상반기의 실적만으로 J노믹스를 실패라 단정하기는 너무 성급하다. J노믹스의 성과는 이르면 내년부터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통계청 경제지표 전반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임은 분명하다. 이런 선행적 경제 신호를 무시할 수 없다. J노믹스 정책 노선을 둘러싼 입장과 견해의 차이도 여기에 있다. 일단 정부의 경제지표를 보면 수출을 제외하고는 모두 어렵다. 수출도 반도체 호황으로 인한 착시효과라는 지적이 많다. 내년 경제에 대한 전망도 비관적이다. 현대와 LG경제연구원은 내년 경제 성장률을 2.5%로 전망했다. 통계청의 고용 동향에서도 전반적으로 양질의 일자리 만들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정부도 J노믹스의 보완적 정책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정책만으로는 균형 성장을 이룰 수 없다. 혁신성장이 보완책이 될 수 있다. 확실한 개념정의나 정책대안은 아직 명료하지 않다. 주요 방향은 각종 규제의 혁파, 기업과 노동의 생산성 제고, 글로벌경쟁력 강화이다. 특히 고용 부문은 진보적 새 정부가 노조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개혁을 이룰 수 있다. J노믹스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정책의 일관성이다. 핵심은 부의 양극화 문제 해소다. 양극화는 2000년 이후 성장 과실이 기업에 쏠리면서 심화됐다. 2016년까지 16년 동안 기업소득은 255% 늘어난 반면 가계소득은 138% 증가에 그쳤다. 거의 2배 가까이 기업에 돌아갔다. 양극화는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일거에 해결할 수는 없다. 집권 5년 동안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일관되게 추진한다면 J노믹스는 성공이다. 그 하나만으로도 역사적인 승리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박상은 기자2017-11-16

11월 중순, 이제 한 해도 저물며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서로에게 감사를 표하는 추수의 계절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서로 가장 아껴야 할 가정이 폭력이 난무하는 싸움터로 변질되고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끔찍한 범죄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3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사태도 알고 보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평형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컨테이너를 넣어 일어났으며, 가습기 사태도 돈에 눈이 어두워 사용해서는 안 될 유해물질을 섞어 무고한 수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러한 생명경시 풍조는 어쩌면 가장 안전해야할 어머니의 자궁 속의 아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면서 우리의 마음을 조금씩 무뎌지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경제를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간주하고 모든 정책을 경제 최우선주의에 맞추어 진행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경제보다 더 우선되는 사안이 생명과 안전이기에 이제 서로 만나면 돈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생명을 말합시다. 특히 여성과 청소년, 노인, 그리고 장애인들이 안전하게 생명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함께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사회가 지속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살과 독고사, 저출산, 고령화사회에 이르기까지 이 사회의 산적한 현안은 알고 보면 생명의 존엄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침 굿TV뉴스가 생명의 존엄성에 관한 특집을 이어간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 지면을 통하여 다양한 생명윤리 이슈들이 활발히 논의되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이러한 관심이 기폭제가 되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생명의 날을 함께 제정해 생명존중 문화를 일구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지난해에 제정한 생명존중 선언문이 연약한 한 생명을 일으켜 세우며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서로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는 데 소중한 계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나의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내 곁의 이웃의 생명 역시 소중하게 여기는 생명사랑운동이 확산되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이승구 교수 기자2017-11-14

시골 어떤 마을에 어떤 작은 교회 공동체가 있다고 해 보자. 목회자의 사례도 변변히 드리지 않는 곳인 이 공동체, 담임 목사의 은퇴시기가 다 된 가운데 다른 방도를 찾지 않으면 결국 이 교회 공동체를 파(破)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해 보자. 그런 상황에서 서울에서 신학 공부를 마친 그 목사의 아들이 아버지의 후임으로 그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다고 해 보자. 그렇게 되면 이를 비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른 방도로는 없어질 교회 공동체를 이어 갈 수 있게 해 주신 것을 감사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비판적으로 언급하는 ‘세습’이라는 말은 그저 아버지를 이어 아들이 목사가 되는 것이나, 심지어 한 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어려움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비판할 사람은 없다(그래서 최근에 “큰 교회를 목회하는 것은 큰 십자가를 지는 것인데, 그 고통의 길로 가려고 한다”는 말도 나온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대개의 경우에 상당히 힘이 들고, 더 나아가 이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교회 개척(church planting)이라는 고난이 없이 상당히 규모가 큰 교회의 담임 목사직을 그 아들이나 친척이 계승하려고 할 경우이다. 또한 상당히 규모 있는 교회 공동체의 장로들의 아들이나 친척이 계승하려고 하는 경우도 이에 포함시키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비판의 눈초리를 보내게 된다. 이는 혈연의 끈을 가지고 어떤 유리함을 얻으려 하는 것의 하나로 보이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고난의 길로 나아가려 한다면 그것을 세습이라고 비판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 지금까지도 만연한 혈연, 지연, 학연의 끈으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하는 오랜 관행을 참으로 잘라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서도 그리할 때에 비판한다면 더 그러하여야 할 교회 공동체에서야 얼마나 더 하겠는가? 고난스러운 과정을 생략하고, 그 후에 오는 과정에 동참하려는 일종의 사회적 편승을 이 세상이 비판적으로 보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세상과는 다른 길을 제시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으로 요구하는 교회 공동체가 그런 편승을 용인하고 심지어 조장한다면 그것이 과연 교회다운 결정과 행보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 사람 한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깊이 생각하면서 과연 아주 구체적인 우리의 삶의 과정에서 주께서 무엇을 원하시려는 지를 숙고(肅考)하고, 그에 근거해서 결단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과연 성령님과 함께 생각하고 사는 방식이다. 그것을 벗어난 것은 비성경적이고, 비성령적이며, 비기독교적인 것이고, 그런 것은 결국 교회를 해치는 것이다.

김성윤 교수 기자2017-10-22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무쇠도 아니요, 다이아몬드도 아니다. 독일의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는(Martin Luther) “진리”라고 하였다. 진리는 절대 권력의 왕보다도 강하고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어머니보다도 강하다. 그러나 진리는 세상을 가장 부드럽고 가장 안전하게 만드는 도구이다. 산업혁명의 두 얼굴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시작된 영국에서는 근 70년 가까이 일자리와 임금이 줄어들었다. 18세기 말에 등장한 기계화로 인해 새로운 부가 창출되기는 하였으나 수공업 직물업에 의존하던 농촌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그 결과 빈부격차와 농축산업 노동자의 몰락을 가져왔다.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시작된 조립라인으로 유명한 제2차 산업혁명은 대량 생산을 대중화시켰다. 이 또한 빈부 격차로 인한 사람들의 불평과 원성이 높았다. 그러나 결국 효율과 능률이라는 진리의 승리로 인간의 삶을 한 단계발전 시켜주었다. 석탄과 전기를 활용한 표준화가 1, 2차 산업혁명을 움직인 동력들이었다면, 3차 산업혁명은 반도체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정보화였다. 그렇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의 동력은 무엇일까? 단순히 더 작고 더 빠른 반도체를 남보다 더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다보스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밥 이 언급한 4차 산업혁명을 비롯한 역대 산업혁명을 이해하기 쉽게 줄이면 1차 산업혁명은 사람이 하던 일의 일부를 기계가 대신하는 기계화였고 제2차 산업 혁명은 기계와 전기를 통해 공장 대량 생산이 가능한 산업화였다. 그리고 제3차 산업혁명은 ICT기술을 통해 공장의 일부가 자동화 되는 것이고 제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플랫폼과 ICT기술 간 융합을 통해 모든 것과 초 연결시키고 그 속에 초지능(인공지능)이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공지능(AI)의 개인대출심사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 될수록 기존의 생각과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이제 인공지능은 인간이 하는 일의 보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보다 더 똑똑하고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 하고 있다. 그 사례는 은행의 여신업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보수적인 일터로 이름난 은행의 일자리마저 기계에 내주고 있다. 미즈호은행과 소프트 뱅크가 투자한 J스코어라는 회사가 일본 최초로 인공지능을 활용한 가계 대출 서비스를 9월 25일부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KEB하나은행이 국내 은행권에서는 처음으로 기업대출 심사에 인공지능을 도입한일은 있었다. 그러나 개인이나 가계대출심사를 인공지능이 담당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개인 대출 서비스는 먼저 고객이 스마트폰에 해당 은행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여야한다. 그런 다음 애플리케이션이 묻는 학력과 연봉, 나이 등 18개 항목을 입력한다. 이어 성격과 취미, 보유한 신용카드 개수 등에 대해 최다 150가지의 질문에 답해야한다. 대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출액수와 대출금리가 달라진다. 물론 인공지능이 대출심사를 할 때는 사람이 심사할 때와 다소 다른 사항을 많이 물어본다. 인공지능 애플리케이션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고객의 '상환 의지' '평소 씀씀이' 등을 파악한다. 그 예로 신용카트 사용 내역만 분석해도 그 사람의 일상을 알 수 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답이 신용카드사용 내역서에 사실대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공지능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실제 대출을 받는 데까지는 30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 적응할 것이냐? 도태 될 것이냐?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제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은행도 인공지능 애플리케이션(AI)이 도입 되면서 은행 직원과 고객이 직접 만날 필요마저 없어지고 있다. 면대면 접촉이 없어짐으로써 은행은 지점 운영비, 인건비, 영업장이나 사무실유지비 등 고정경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결과 은행의 수익성 개선에 도움 되고 역기능을 비롯한 대출사고를 최소화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한발 앞서 실시한 일본의 대형은행인 미즈호은행 관계자는 "비용이 절감되면 그만큼 대출 금리를 내릴 수 있게 된다."며 "간편한 절차를 선호하는 젊은 층이 많이 몰릴 것으로 기대 한다."고 하였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종전 대출이 현재 소득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젊은 층이 상대적으로 불리했다면서 지금까지는 젊은층이 은행 등에서 돈을 대출 받을 때 대출금액은 적고 금리는 높게 책정되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사용하면 ‘미래 소득’도 심사에 가미할 수 있게 되어서 순발력과 스마트폰 적응이 유리한 젊은 층 대출이 쉬워질 것이다. 더구나 낮은 금리에 대출금도 높아질 수 있어 필요시 은행 이용이 쉬워지리란 전망이다. 이 같은 진화는 앞으로도 더욱 가속화 될 전망이다. 여기에 누가 더 잘 적응하여 살아남느냐? 아니면 도태 되느냐만 남아있다. 따라서 불만이나 원망할 여력이 있다면 제4차 산업혁명에 동참할 길을 찾고 길을 열어 가는데 힘을 보태야 될 것이다.

장기웅 교수 기자2017-10-18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Bartholdy, 1809~1847)은 독일 낭만파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서 작곡가, 피아니스트 그리고 뛰어난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다. 그는 개신교 유태인으로 비교적 풍족한 환경에서 음악활동을 했는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Leipzig Gewanthaus Orchester)의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B단조 미사 BWV 232》를 발견하여 초연을 한 일,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의 《교향곡 9번 ‘대공’ D. 944》을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에게 전달받아 초연을 한 것 그리고 슈만의 《교향곡 제1번 ‘봄’ Op. 38》을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초연한 일 등은 음악사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멘델스존이 활동하던 당시의 라이프치히는 바흐가 봉직했던 ‘성 토마스교회’(St. Thomas Kirche)와 교회 부설 음악학교가 있는 곳이기도 하며 프로테스탄트 교회음악이 꽃피운 곳이기도 하다. 멘델스존의 누나 파니 멘델스존(Fanny Mendelsshon, 1805~1847)도 여성 작곡가로 알려져 있는데, 멘델스존의 곡으로 알려져 있는 많은 곡들이 파니 멘델스존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멘델스존과 슈만의 우정은 평생 지속됐는데 쇼팽(Frédéric François Chopin, 1810~1849)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 Op. 21》을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 1819~1896)이 연주하고 《슈만의 교향곡 제1번 ‘봄’》을 멘델스존이 초연 지휘한 음악회 프로그램만 봐도 슈만과 멘델스존의 친밀한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멘델스존의 피아노와 작곡 서재.ⓒ데일리굿뉴스 특별히, 멘델스존은 오라토리오(Oratorio) ‘사도 바울’(St. Paul)과 ‘엘리야’(Elias)를 작곡했는데, 오라토리오 ‘엘리야’는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의 ‘천지창조’(Die Schöpfung), 헨델(George Frideric Händel 1685~1759)의 ‘메시아’(Messiah)와함께 세계 3대 오라토리오에 속하는 곡이다. 멘델스존의 《교향곡 제5번 ‘종교개혁’ Op. 107》은 그의 나이 21세인 1830년에 작곡된 곡이다. 이 교향곡은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종교개혁(Reformation)과 1530년 아우구스브르크 신앙고백서(Augsburg Confession)가 만들어진 지 300주년을 기념하고, 프러이센(Prussia)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Friedrich Wilhelm III, 1770~1840) 아우그스부르크 선언문 300주년을 기념 선포하는 축제기간(1830년 6월)에 연주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작곡이 1830년 5월에서야 끝나게 되고 여러 가지 사정이 합쳐져 《교향곡 제5번 ‘종교개혁’》은 1832년 11월 15일 베를린에서 멘델스존 자신의 지휘로 초연됐다. 멘델스존은 개신교 종교개혁의 역사와 그 신앙적 사상을 물려받은 독일 루터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개신교 작곡가이다. 이 교향곡에는 개신교도로서 멘델스존의 신앙적 고백이, 교향곡이라는 장르를 통해 장엄하고 중후한 화성과 선율로 잘 표현돼 있는데, 교향곡의 4악장에는 루터의 코랄(Chorale)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 ist unser Gott)의 선율이 주제가 되어 4악장의 전개를 이루고 있다. ▲'한반도 평화통일 기원 평화음악회' 베를린필하모니 대극장(Muse Symphony Orchestra 지휘;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장기웅 교수).ⓒ데일리굿뉴스 필자는 2016년 6월 21일 대한민국 민간교향악단 최초로 베를린 필하모니 대극장(Berliner Philharmonie Grosser Saal)에서 Muse Symphony Orchestra의 협연으로 ‘한반도 평화통일 기원 평화음악회’를 지휘한 바 있다. 연주 후 멘델스존의 집(현재 멘델스존 박물관), 게반트하우스오케스트라 홀, 토마스교회 그리고 바흐 박물관 등을 방문해 멘델스존과 바흐의 음악적 행로를 탐구했다. 베를린에서 교향곡 ‘종교개혁’이 초연됐듯이, 언젠가 베를린필하모니 대극장에서 교향곡 ‘종교개혁’을 지휘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해 본다.

김은호 목사 기자2017-10-13

산 속에 숨어 지내며 살았다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김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숨어 지내게 되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의 압제와 노략이 시작이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읍에 거하며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산으로 피하여 들어가 웅덩이를 파고 굴과 산성을 만들고 그곳에서 숨어 지냈습니다.(사사기 6장 2절)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하여 숨어 지내는 이런 고난을 당해야만 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복된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범죄하고 죄 가운데 거하면 당당함을 잃어버리고 항상 피하며 유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아니 산으로 들어가 숨어서 지내지는 않을 지라도 항상 심리적으로 쫓기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빛 가운데 거하는 자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지 않습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당당히 나아갑니다. 비록 가진 것이 없고 남보다 많이 배우지 못했어도 사람의 얼굴을 피하여 숨어 살지는 않습니다. 누구를 만나도 눌리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마음의 평안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숨어 지내며 심리적으로 쫓기는 삶을 살지 않으려면, 아니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인생을 살아가려면 말씀대로 순종하며 빛 가운데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궁핍함이 심하였다 하나님께서 또 다시 범죄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 넘기심으로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의 궁핍함이 심하게 되었습니까? 미디안사람들이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토지 소산을 멸하여서 이스라엘 가운데 먹을 것을 남겨두지 않고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심한 궁핍함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까? 그들의 반복된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우리로 하여금 궁핍함을 가져다 줍니다. 왜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의 풍성함을 잃어버리고 쫓겨났습니까? 바로 죄 때문입니다. 왜 탕자가 먼 나라에서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를 먹으며 궁핍함 가운데 살아야 했습니까? 아버지의 품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오늘 왜 많은 사람들이 그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바로 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 지금 물질적으로 영적으로 궁핍함 가운데 있는 분이 계신다면 그 죄를 끊어버리고 탕자처럼 아버지께로 돌아오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 된 우리들이 궁핍함 가운데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부르짖음과 응답 이렇게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산 속에 숨어 지내며 궁핍함이 심하게 되자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언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까?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숨어 지내며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입니다.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하여졌을 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부르짖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특권이고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풍랑을 만났을 때 사방으로 욱여싸임을 당하였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부르짖음은 오늘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으시면 내가 살수 없다는 간절함에 대한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곧 바로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신 것이 아니라 이름도 나와 있지 않은 한 선지자를 보내어 말씀하셨습니다. 왜 한 선지자를 보내셨는가?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사사기 6장 8절) 하나님은 한 선지자를 보내어 하나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그 종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하나님의 징계 가운데 당신의 백성에게 제일 먼저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너를 구원했다” “내가 너를 사탄의 압제 아래서 죄의 종으로 살던 너희를 구원하여 내었다.” 먼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말한 선지자는 이어서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원주민을 쫓아내고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그들에게 주셨음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구원 그 이후 가나안 땅에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선지자를 보내어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그리고 구원 이후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을 받는 것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가 구원의 은혜에 감격을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가 책망도 달게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죄를 책망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므로 두려움 가운데 처하게 된 것을 책망하셨습니다.(사사기 6장 10절)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좀더 안정적으로 평화롭게 살기 위해 그 땅의 신들을 섬겼는데 도리어 두려움 가운데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사사를 먼저 보내지 않으시고 선지자를 보내어 그들의 죄를 책망하셨습니까?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죄를 정확하게 깨닫는 자만이 깨닫고 돌아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은 죄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복하여 그 죄를 짓고 부르짖어 기도할 때 그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그래서 한 선지자를 보내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사 기드온을 세워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연약하여 반복적으로 그 죄를 지었을지라도 회개하며 돌이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용서해 주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넘어지는 횟수보다 깨달음을 주시고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횟수가 더 많습니다. 왜냐하면 지은 죄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왜 하나님은 미디안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전에 한 선지자를 보내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먼저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징계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한 선지자를 보내어 그들을 책망하시면서도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징계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지은 죄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훨씬 큽니다. 내가 받는 징계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훨씬 큽니다.

여주봉 목사 기자2017-10-11

성경이 말하는 우리의 사역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사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면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보이신다. 3.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온 삶으로 그 일에 동참한다. 4.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일을 성취하신다. 5.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한다. 이제까지 2번까지 살펴보았고, 이제 3번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이시면,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의중과 뜻을 보이시면, 우리는 기꺼이 삶을 조정하여 그 일에 동참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당연히 우리에게 보여진 하나님의 뜻이 진정한 하나님의 뜻인지를 분별하는 과정이 전제되어 있다. 그런데 그 전에 나는 “아버지의 일이 내 일인 자세”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일”이라는 용어를 자주 쓰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 아버지의 일”은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 뭔가를 열심히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보이신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것을 행하고 마치는 것을 자신의 양식으로 아셨습니다(요 4:34). 예수님은 아버지의 행하심을 보면 어떠한 대가나 희생이나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그 일에 온 삶으로 동참하셨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라고 하신 말씀 속에서 그분의 그러한 결연한 의지를 볼 수 있다. 나는 우리가 하나님 중심적인 사역을 감당하려면 우리에게도 그러한 자세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믿는다. 오늘날 적지 않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자기 교회의 숫자적인 부흥이나 자기 사역의 확장 외에는 어떠한 관심도 없다. 그러한 자세로는 하나님의 행하심에 동참하는 삶을 살 수 없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그렇게 아버지의 일에 동참할 것이다. 개인 뿐 아니라, 교회가 반드시 그러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시는 가장 주된 단위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가 그렇게 세워지려면 교회가 철저하게 신앙의 본질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리고 성도들의 신앙의 자세가 사도 바울처럼 오직 예수님을 아는 것이 유일한 목표가 되는 삶이 되어야 한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또 하나 교회가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동참하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고 그것을 분별하여 순종하는 시스템이 세워져 있어야 한다. 초대교회에는 이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었다. 이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안디옥 교회의 예이다. 성령께서 안디옥 교회 지도자들에게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안수하여 보낸 사람들은 안디옥 교회이다. 사도행전 13:3의 주어는 3인칭 복수인데, 그들은 안디옥 교회를 가리킨다. 이것을 보면, 성령께서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말씀하셨고(어떤 방법으로 말씀하셨는지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음), 안디옥 교회 전체가 그 하나님의 인도를 분별하여 순종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바울과 바나바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 그들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았다. 만약 안디옥 교회가 하나님의 인도를 깨닫고 그것을 분별하여 순종하지 않았더라면 그 결과는 참으로 심각했을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를 통한 그 엄청난 선교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니까. 오늘날도 교회 안에 그러한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 중심적인 사역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교회 안에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데, 어떻게 그 교회가 하나님의 행하심에 동참할 수 있겠는가?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 안에 하나님의 명령체계가 세워져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모든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교회를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라는 사실을 믿는다. 그러나 실제 교회의 삶은 그 믿음을 반영하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뜻은 하늘과 땅처럼 다르고(사 55:8),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지혜로는 알 수 없고 오직 성령으로만 알 수 있다(고전 2:9-10)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때 하나님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는 국회나 로터리 클럽에서 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한다. 즉,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으로 개인들의 의견을 모아서 하나님의 뜻을 결정한다. 만약 그렇게 결정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말자고 말했기 때문입니다(신 1:1-38). 참고로 요단출판사에서 나온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란 책이 이 부분을 잘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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