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가운데).(사진출처=연합뉴스)

동성결합법 첫 공개지지
교리와 정면 충돌 우려


동성 커플을 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 마디가 동성애 이슈를 둘러싼 논쟁에 불을 지폈다. 교황의 이번 발언은 동성애를 배척해 온 전통 가톨릭의 입장을 깨고 제도화를 지지하는 발언이어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오랜 금기를 깬 교황의 ‘폭탄선언’에 전 세계 가톨릭 본산인 바티칸이 술렁이는 모습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교황은 최근 로마 영화제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에서 동성 간 ‘시민결합법’(Civil law)을 통한 동성 커플의 권리 보호를 공개 지지했다.

교황은 다큐멘터리 내 인터뷰에서 “동성애자들도 주님의 자녀들이며 하나의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갖고 있다”면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버려지거나 비참해져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시민결합법으로 동성애자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라며 “나는 이를 지지한다”고 부연했다.

시민결합법은 동성 결혼 합법화의 대안으로 제시된 것으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국가와 미국의 일부 주(州)가 채택하고 있다. 이성 간 정상적인 결혼으로 발생하는 모든 권한과 책임을 동성 커플에게도 법적으로 동등하게 부여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교황은 2013년 즉위 이래 ‘사람이 먼저’라는 인식 아래 동성애자들의 인권과 차별 금지를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처럼 동성 커플의 법적 보호, 한발 더 나아가 시민결합법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사제는 “근래 수십년 간 교황에게서 나온 발언 가운데 가장 폭발력이 크다”면서 “바티칸 성직자들도 하나같이 큰 충격을 받은 모습들”이라고 말했다.

교황의 이번 발언은 전통 가톨릭의 입장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진보·보수를 떠나 상당수 사제와 신자들은 교황의 발언이 1천년 넘게 유지된 기존의 가톨릭 교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보고 있다. 동성애를 존중하더라도 동성 행위를 인정할 순 없다는 게 지금까지 교황청의 공식 입장이었다.

실제 가톨릭교회의 신앙·윤리 문제를 다루는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2003년 훈시를 통해 “동성애자를 존중하되 이것이 동성 행위나 동성 결합에 대한 승인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교황이 인터뷰 상에서 동성 커플의 ‘가족 구성’을 언급한 것도 성직자들을 당혹케 하는 부분이다. 교리상으로 가족은 결혼으로 맺어진 부부만이 구성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리는 결혼이란 남성과 여성이 결합해 부부의 연을 맺는 것으로, 성행위도 이러한 부부의 틀 안에서만 허락된다고 가르친다.

시민결합법상의 커플도 법적으로는 부부와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는다. 하지만 교리상으로는 정식 부부가 아닌 동거 형태에 불과해 여기서 이뤄지는 모든 성행위는 간음으로 간주된다. 이런 맥락에서 시민결합법을 지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간음을 용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가톨릭계에서 시민결합을 허용하지 않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때문에 교황청 안팎에서는 교황의 발언이 어떤 맥락과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재임 기간 있었던 다양한 교리·사회적 이슈를 얘기하는 과정에서 나온 개인적인 의견으로 지나친 확대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이미 이탈리아를 비롯해 전 세계 많은 국가가 채택한 시민결합 이슈를 가톨릭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논쟁할 시점에 이르렀다는 교황 나름의 치밀한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까지 다양하다. 한 가톨릭 매체는 교황의 발언이 짜깁기 식 편집으로 왜곡됐다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교황의 이번 발언이 배경과 관계없이 동성애 이슈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을 촉발시켰다는 점이다.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교황의 발언에 대해 “유럽과 북미, 기타 서방국가들에서 동성애와 관련한 ‘문화적 전쟁’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관측했다. 뉴욕성가족성당의 주임사제인 제랄드 머레이 신부는 “교황의 발언은 월권”이라면서 “다른 주교와 추기경들이 교황의 발언을 두고 찬반을 드러내며 내부 분열이 심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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