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식 목사 ⓒ데일리굿뉴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 많은 이들의 정의가 있습니다. 아마도 사람 수만큼 될 것입니다. 예수 믿음을 하나로 정의하기에는 무리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믿음에는 공통적인 고백과 확신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 고백과 확신입니다. 이러한 확신과 고백이 없다면 믿음은 소유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믿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하나님은 내 편’이라는 확신은 분명해집니다. 수많은 사람이 믿음을 말하고 정의를 내리지만, 그 골자는 같습니다. 하나님께 내 편이 되신다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창조주이시고 구속주이신 하나님께서 내 편인데 이 땅에서 무엇이 두렵고, 부럽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확신이 무너질 때 세상은 무섭게 보이고 부럽게 다가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 다양한 자기편을 만들어 냅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끈끈함은 자기편이라는 의식에 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가족은 내 편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가족은 화목합니다. 이것은 부부 사이에도 동일합니다. 부부가 가장 행복할 때는 적어도 배우자는 자기편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입니다. 세상에 실패해도 적어도 배우자는 자신을 지켜주고 함께 한다는 믿음이 있을 때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도, 부부도 불행할 때는 자기편이라는 확신이 무너질 때입니다. 그러면 함께 사는 것이 지옥이 됩니다.

자기편을 만드는 일에 열심을 내는 이유는 사람이 가진 연약함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홀로 사는 것이 주는 외로움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함께 사는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영광을 가지셨기 때문에 사람도 함께 사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은 자신과 함께하는 사람과 살았습니다. 함께 삶으로 외로움을 이겨내고, 부족함을 채워주었습니다. 자신과 함께 사는 사람이 영원한 배필 즉 자기편임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놀랍고 위대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사랑도 사라지고, 능력도 사라졌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들어온 죄는 함께 사는 사람이 자기편인지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처절함은 가인과 아벨의 관계에 나타났습니다. 아벨을 죽인 가인은 아벨이 자기편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없어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사람의 죄악은 반복적으로 재생산됐습니다. 노아 시대는 하나님이 사람을 보시고 후회했습니다. 그래서 홍수로 심판했습니다. 하지만 노아라는 그루터기는 남겨놓았습니다. 하지만 바벨의 사람들이 또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로 인해 열국으로 흩어지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타락한 세상에서는 자기편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됐습니다. 그리고 죽는 그 순간까지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돈이 결부되면 서로 믿지 않습니다. 형제는 어떻겠습니까? 세상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잠시 동안 자신의 편이 돼줄 사람을 찾습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돈이 함께 합니다.

맘몬의 힘으로 자기편을 만듭니다. 맘몬이 힘을 발휘할 때까지 관계는 유지됩니다. 하지만 돈이 힘을 잃으면 부모도 자식을 버립니다. 자식이 부모를 버립니다. 형제지간에 싸움이 나고 서로 돌아보지 않습니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도 인격적인 관계가 지속되는 것이 힘이 듭니다. 돈이라는 권력이 없으면 관계가 지속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세상입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이러한 현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누구도 영원한 내 편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도 죄가 살아있는 한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영원한 내 편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내 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 됐을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것도 끝까지 변함없이 사랑하셨습니다. 그 징표가 바로 십자가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입니다. 세상은 다 변해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십니다. 항상 신실하십니다. 다윗은 시편 27편 10절에서 ‘부모가 나를 버려도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신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부모도 나를 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을 내 편이라는 고백을 성경은 ‘우리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하나님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 하나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은 우리 하나님에 대한 확신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확신할 때 세상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창조주가 우리 하나님이신데 피조 세계를 의지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믿을 때 세상에서 다가오는 고난과 어려움과 아픔도 기꺼이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입니다. 이 믿음으로 오늘을 이기고 내일을 맞이합시다.
 
저작권자 © 데일리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