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대 권득칠 총장ⓒ데일리굿뉴스
지금으로부터 503년 전,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1483∼1546)는 비텐베르크 성 교회게시판에 ‘95개의 논제’를 ‘면죄부의 효력에 대한 해명을 위하여’라는 부제와 함께 붙였다.

면죄부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었던 로마 가톨릭교회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진리를 향한 투쟁의 과정 속에서 루터는 복음의 본질을 가리고 있는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의 권위주의, 교권의 남용 등을 폭로했다.

이러한 루터의 외침은 마침내 중세의 암흑을 깨뜨리고 복음·인간성 회복을 향한 근대라는 역사의 새 차원을 열었다. 우리는 이것을 ‘종교개혁’이라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역사적 사건인 종교개혁이 실로 루터라는 하나의 인격 속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루터는 인격의 근원을 믿음으로 표현했다. 바로 ‘믿음 없이는 인격도 없다’는 것이며, 이 인격(신앙인격)에서 자유가 나온다는 말이다.

오늘도 독일 사람의 약 3분의 2가 루터의 사상으로 살고 있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의 선진복지국가들도 루터의 사상 속에서 그들의 복지를 발견했다. 기타 서양의 모든 개신교 국가들이 루터로부터 반항 정신(프로테스탄트 정신)을 배웠다.

그러면 루터의 종교개혁 근본원리는 무엇일까? 첫째는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것은 오직 신앙만으로 된다는 것이다. 사실 종교의 본질은 신(하나님)과의 내면적 관계요, 외적인 제도나 의식은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교회의 제도나 의식이 하나님과의 내적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방해가 될 때는 일체를 배제해야 한다. 특히 사제의 직분은 신분이 아니라 기능을 수행하는 권한이요 능력이기에, 본래적일 수 없고 누구나 사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루터가 선언한 소위 ‘만인 사제론(만인제사장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 교회는 목회자들은 물론 평신도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제사장(사제적) 역할을 감당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오늘날 루터의 만인사제론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만인사제론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실천적 과제로서 평신도들의 사명을 깨닫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는 루터의 종교개혁의 근본원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과 생활의 절대규범으로 믿는 성서주의다. 이것은 교회의 전승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전통주의와 대립한다. 성서야말로 신앙의 중심이 되는 하나님의 은총과 신앙의 내용이 되는 하나님의 진리를 계시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루터는 언제나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로잡혀 있다’고 했다. 루터의 생애와 종교개혁의 비밀은 바로 이 자유 속에 있었다. 그리고 이 자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양심 속에서만 가능했다.

이 두 가지 원리에 의해 신자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중재자로서 사제를 필요로 하는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의 제도와 대립하고, 금욕과 도덕을 권장하는 수도원을 부정하게 된다.

루터의 대표작으로서, 종교개혁 3대 논문 가운데 하나인 ‘그리스도인의 자유’(1520)에서는 그리스도인이 ‘구원의 현실’로서 ‘믿음 안에서 누리는 자유’에 대한 루터의 외침을 소개한다.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이웃을 위해서 산다.

믿음으로는 그리스도와 같이, 사랑으로는 이웃과 같이 사는 것이다. 그는 믿음을 통해 자기를 넘어서 하나님께 도달하고, 사랑을 통하여 자기를 바쳐서 이웃과 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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