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중대재해법)이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지 212일만인 지난 8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안전은 ‘절대’의 문제라는 입법 취지에는 다수가 공감하나, 중대재해의 정의와 처벌 수위, 적용 범위 등 세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법 시행 이후에도 경영계와 노동계 사이의 충돌과 파장은 계속될 전망이다.
 
 ▲발의된 지 212일만에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기까지 여야 논의는 단 5차례에 그쳤다.(사진제공=연합뉴스)

중대재해법 주요 내용…부상에 대해서도 처벌
 
중대재해는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뉜다. 중대산업재해는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재해로, 사업장에서 1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6개월 넘게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생겼을 때의 재해를 말한다. 중대시민재해는 제조물이나 공중이용시설 이용자가 사망 등의 피해를 볼 수 있는 재해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해당된다.
 
중대재해법에는 여러 의무가 있다.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재해 발생 시 재발 방지 대책 수립 및 이행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가 관계 법령에 따라 개선·시정 등을 명한 사항의 이행 △안전 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 이행에 필요한 관리 상의 조치 등이다.
 
위반 시 처벌을 받는 대상은 대표이사나 안전담당 이사와 같이 사업체를 대표하는 경영책임자와 법인이다. 의무를 어겨 중대한 산업 재해가 일어났을 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징역과 벌금이 동시에 부과될 수도 있다. 법인이나 기관은 50억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현행 산업안전법은 부상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으나, 중대재해법은 노동자가 부상을 입거나 질병에 걸린 경우에 대해서도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생기거나, 동일 유해 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했을 경우다. 경영책임자나 법인은 중대재해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다.

경영·노동계, “명확한 의무 명시 없어” 지적
 
처벌이 강화하다 보니 경영계에서는 입법이 진행될 때부터 볼멘소리를 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중대재해법이 법사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자 “참담하고 좌절감을 느낄 뿐”이라고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경영계는 “중대재해법의 의무 조항이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이 많다”며 “준수 의무도 광범위해 파악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법 시행에 대비하기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명확한 의무 범위가 명시돼 있지 않아 형벌만 높게 하는 것보단 차라리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제대로 정비하는 게 낫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규정이 모호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노동계에서도 나오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 처벌 대상 제외
 
경영계는 자의적인 법 해석과 집행이 가능하다는 점도 문제로 꼽는다. 정작 사고를 일으킨 회사는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처벌을 피해가지만 사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원청이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는 구조가 아니냐는 주장이다.
 
중대재해법에 따르면 하청업체의 경우 원청업체가 법 적용의 대상이면 함께 처벌받는다. 하청업체가 5인 미만이라 법을 비껴가도 해당 원청업체의 경영책임자 등은 처벌 대상이 된다. 다만, 이는 ‘기관의 시설, 장비, 장소 등에 실질적으로 지배, 운영, 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다.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높다는 불만도 있다. 중대재해법이 아니라도 한국은 이미 산업안전보건법상 처벌 형량이 7년 이하 징역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부가 참조한 영국의 경우 비슷한 법(법인과실치사법)이 있지만,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처벌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법인과실치사법의 높은 수준으로 벌금형을 받은 영국 중소기업 28개 중 16개에 달하는 기업이 영업을 중단하거나 파산했으며, 법 도입이 사망자 감소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영국 경영계의 분석도 있다.
 
노동계에서는 법을 빠져나가기 위해 사업장을 쪼개는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 늘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산업재해의 30%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나는데 중대재해법은 이를 일괄적으로 배제했기 때문이다. 경영책임자에 안전 담당 이사를 추가해 기업의 최고경영자에게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
 
한편, 중소기업중앙회장, 전문건설협회장 등 6개 경제단체는 11일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에게 중대재해법의 보완 입법을 요청하고 나섰다. 이들 단체는  ‘기업인을 범죄자로 내모는 법’으로 표현하며 시행 유예 기간인 1년 동안 재계의 요구를 반영해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사업주 의무 구체화 △의무를 다한 사업주의 처벌 면제 △건설업 등 업종 특성 반영 등을 요구했다. 여야와 정부는 구체적인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기로 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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