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우 박사 ⓒ데일리굿뉴스 
성경적 효는 자식들에게 부모공경만 강요하는 일방적인 효가 아닌 노소간 쌍방적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성인과 동등한 생명이요 인격체이다. 가정의 일원,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존중해야 한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존중하셨을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를 안고 저희 위에 안수·축복하셨다.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 청소년은 나라의 기둥’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실생활에는 그러지 못하다. 요즈음 일부 사례지만 어린이를 학대하는 어른들의 비행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한다.

성경의 가르침: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엡6:4) 성경은 왜 부모에게 자녀를 양육하라는 대
신 ‘노엽게 하지 말라’고 명령하는가? 그것은 노엽게 하지 않는 것이 잘 양육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녀를 부모가 강압적으로 지나친 요구를 하거나, 반대로 돌보지 않고 방임하면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이다(최성규 ‘효신학개론’).

실제로 자녀는 부모의 뜻이 버거워도 다른 의견을 내거나 부모에게 분노하지 못한다. 이렇게 아이의 마음속에 생긴 분은 해소되지 못하고 쌓이게 된다. 아이가 자란 후에 내면화 됐던 분노는 밖으로 표출되며 타인에게 폭발하게 된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문제아’다.

따라서 부모가 먼저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행동으로 솔선수범하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마
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쳐야 한다’(잠 22:6).

문제의 자녀 뒤에는 문제의 부모가 있다. 성경적 어린이·청소년·제자 사랑은 수직적 양육의 사랑을 넘어, 수평적 존중의 사랑을 요구한다. 베드로전서 2장 17절에 ‘뭇 사람을 공경하며’라고 했다. 이는 모든 사람을 공경(티마오)하라는 명령이다. 이를 어린아이와 청소년들에게 사용할 때는 ‘존중’ 혹은 ‘사랑’이라는 말이 적합하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존중하셨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보호받은 만큼, 사랑받은 만큼 꿈을 키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다.

어린이는 ‘어리신 이’라는 말을 줄인 말이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어리신 분, 어리신 이’라는 말을 줄여 어린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어린아이도 한 인격체로서 존귀한 자이다. 우리 속담에 ‘어른도 한 그릇, 아이도 한 그릇’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어른과 아이의 구별 없이 어린아이도 어른과 같이 존중받아야 할 한 인격체임을 알고 ‘내리사랑 올리효도’의 효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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