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16개월 입양아 정인양의 양모 장모씨 '입양가정에 대한 편견'을 내세워 외부 기관의 개입을 차단하려 한 정황이 최근 재판에서 밝혀졌다.
 
▲'정인이 양부모' 엄벌 촉구 피켓 시위(사진제공=연합뉴스)

이 같은 상황에서 입양 사후 관리를 담당하는 입양기관은 학대 의심 증거를 발견하고도 소극적 조치로 사실상 정인이를 방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인양이 다니던 어린이집 원장 A씨는 지난 17일 정인양의 양부모 재판에 나와 "지난해 7월부터 정인이가 갑자기 나오지 않았다"며 "양모에게 이유를 묻자 '입양가정에 대한 편견의 시선이 싫어서'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장씨는 '정인이를 차에 5분 정도 두고 큰아이 학원을 데려다줬는데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했다'고 했다"며 "입양가정에 선입견을 품은 외부에 아이를 노출하는 게 싫어 어린이집에 등원시키지 않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했다.

앞서 정인양에게서 학대로 의심되는 상처를 여러 차례 목격한 A씨는 아이 상태 확인을 위해 꾸준히 정인양의 등원을 권고했지만, 장씨가 그때마다 이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며 등원시키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정인양은 몸에 상처가 늘고 심하게 야윈 상태로 약 두 달 만에 어린이집에 돌아왔다.

문제는 양모가 정인이를 숨기는 동안 입양기관은 학대로 충분히 의심할 만한 정황을 확인하고도 양부모 말을 믿은 채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같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홀트아동복지회 직원 B씨는 "지난해 7월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으로부터 정인양에 대한 학대 신고가 접수됐다는 사실을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아보전은 공동 가정방문을 요청했으나 B씨는 "양모 쪽에서 불편해할 것 같다"며 거절했다는 것이다.

홀로 정인양의 집을 찾은 B씨는 현장에서 학대 흔적을 다수 확인했다. 그는 "당시 정인이의 어깨 쪽이 살짝 내려앉아 있었고 곳곳에 멍과 긁힌 듯한 상처가 있었다"며 "상처에 관해 물으니 양부모는 '자다 생긴 것이고 금방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이후 B씨는 장씨로부터 "정인이가 일주일째 밥을 먹지 않고 있다"는 전화도 받았다. B씨는 법정에서 "보통은 아이가 한 끼만 밥을 먹지 못해도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게 부모인데 일주일째 병원에 가지 않았다는 게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같은 해 9월 28일 B씨는 아보전으로부터 '정인양의 체중이 크게 줄어 또다시 학대 신고가 들어왔다'는 전달을 받았다. 아이의 상태 파악이 시급했지만, 그는 이번에도 양부모 말을 믿었다.
B씨는 "당시 양모가 전화를 받지 않아 양부와 통화했고, 이전보다 더 잘 먹어 컨디션이 좋아졌다고 했다"며 "곧 추석이니 연휴가 끝난 후인 10월 15일에 가정방문을 하기로 잡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정인양은 가정방문 이틀 전인 13일 숨졌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양모가 입양가정이라는 점을 악용해 아이를 숨기는 데도 입양기관 측은 가해자인 양부모의 말만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학대 사실을 보고도 모른 척하며 사실상 양부모의 범행을 방치한 셈"이라고 말했다.

[진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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