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봉 목사. ⓒ데일리굿뉴스
나는 지금까지 오늘날 우리에게 참된 예배의 회복이 왜 시급한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제부터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참된 예배에 대해 살펴보기에 앞서 거짓신앙체계의 예배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겠다. (거짓신앙체계란 신앙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말하며, 자세한 내용은 나의 책 <십자가의 복음>을 참고하라. 또는 내가 2015년 2월부터 9월까지 쓴 칼럼을 참조하라.) 우리가 참된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거짓신앙체계에 기초한 예배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철저하게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짓 신앙체계에 빠지면 신앙 전반과 예배에 대해서 잘못된 이해를 가지게 된다. 그 거짓신앙체계의 한 핵심적인 축이 율법주의인데 율법주의는 자기의 종교적인 행실이나 헌신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서고자 하는 가치관을 말한다. 성경적인 용어로 말하면,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를 의지하는 자세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율법주의적인 가치관을 가지면 그들의 예배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게 된다.

율법주의에서는 예배가 하나의 절차로 전락해 버린다

우리 신앙의 가장 핵심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다. 예배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친밀한 교제를 위한 수단이고, 그래서 참된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그런데 율법주의적인 가치관에서는 우리의 신앙을 몇 가지 의식들을 잘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에 예배도 하나의 절차로 전락해 버린다. 하나님과의 만남에는 무관심한 채 예배의 순서와 절차에만 온갖 관심을 기울인다. 예배의 몇 가지 정해진 순서를 잘 마치면 예배를 잘 드렸다고 만족할 뿐 하나님을 만난다는 생각도,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에 대한 기대감도 없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타락한 예배다.

율법주의 예배는 절차에 대한 외부적인 복종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 즉 가난하고 애통하는 마음을 원하신다.(시 51:17)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기 속에 하나님 앞에 내놓을 만한 어떤 선한 것도 없음을 인식하는 자세고, 애통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하기 때문에 그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자세입니다. 그러나 율법주의 예배에서는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지 않기 때문에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세와 삶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외부적인 절차와 형식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절차와 순서를 중시하는 율법주의의 배후에는 공(功)사상이 놓여있다. 다시 말해서 율법주의에서는 예배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얻기 위한 '공로'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것은 철저하게 타락한 가치관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값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은 가난하고 애통함 없이 외부적인 절차에 초점을 맞춘 예배를 살인, 개와 돼지를 드리는 제사, 우상숭배에 비유하며 강력하게 비난한다.(이사야 66:1-3) 그리고 공(功)사상을 가지고 드리는 예배에는 하나님의 은혜도 없을뿐더러 십자가의 능력은 소멸되고 육신적인 열매만 남게 된다.

율법주의 예배는 전통에 집착한다

율법주의 예배는 외부적인 복종과 규례와 규칙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전통에 집착한다. 물론 모든 전통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좋은 모습으로 정착된 전통은 소중하다. 그런데 문제는, 전통에 집착한 나머지 성령을 소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R.T 킨덜 목사는 그의 책 에서 "성령을 방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가 미리 정해 놓은 생각과 편견으로 그분을 둘러싸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형태의 예배를 드릴 것인가를 미리 정하고 예배하러 나올 때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 이러한 종류의 편견보다 성령을 소멸하는 것은 없다"라고 말한다.

율법주의 예배는 새로운 정보 수집에 관심이 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말씀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우리의 신앙은 곧 삶이라는 사실을 반복하여 강조하셨다. 하지만 율법주의에서는 이론이 실제를, 가르침이 삶을 대체해버리기 때문에 말씀과 삶이 분리되어 버린다. 율법주의 예배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말씀을 청종(말씀대로 사는 삶)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듣지도 않고 그저 새로운 성경 정보를 발견하는 데 관심을 둔다. 감동적인 설교를 듣고 감동받은 것으로 만족할 뿐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몸부림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 안에 율법주의적 가치관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나아오는 성도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이나 하나님과의 만남을 사모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예배당에 1시간 남짓 앉아서 주일예배의 순서를 빠짐없이 잘 마치면 성도로서 의무를 다했다고 여기며 만족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애통하고 고민하며 부르짖음도 없이, 이전에 듣지 못했던 새롭고 재밌고 감동적인 설교만을 듣기 원한다. 그리고 그것을 소위 은혜받았다고 말한다. 더 심각한 사실은, 설교자들마저 그 말씀을 듣는 사람이 그 말씀대로 살 것을 기대하지 않고 설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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