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의 모임 '도너패밀리(Donor Family)' 회장 강호 목사가 아들 강석민 군의 초상화를 들고 있다.ⓒ데일리굿뉴스

"엄마 나 머리 아파."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의 모임 '도너패밀리(Donor Family)' 회장 강호(66) 목사가 기억하는 아들의 마지막 목소리다. 2000년 3월 23일, 당시 고등학교에 입학한 강석민 군은 두통을 호소하다 쓰러졌다. 자발성 뇌출혈이었다.
 
강 목사는 하루아침에 뇌사 판정을 받은 아들을 보며 황망했다. 하지만 문득 신체가 건강한 아들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장기기증을 떠올렸다. 신학생 시절부터 생명 존중에 대해 깊이 생각해왔던 터라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가족도 강 목사의 뜻에 동의했다.
 
"아들이 쓰러진 지 3일째 되던 날이었어요. 아들의 회복기도를 하고 있는데, 의사가 와서 뇌 석회화되고 폐에 물이 찰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바로 장기기증하겠다고 했죠."
 
강 군이 남긴 각막과 폐, 심장, 간 등 9개의 장기는 8명의 생명을 살렸다. 뼈와 연골, 피부 등 인체조직은 화상이나 조직 손상으로 고통받는 환자 100여 명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했다. 강 목사 부부 역시 이날 장기기증에 서약했다.
 
강 목사는 아들이 없는 현실은 애통하지만, 누군가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느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장기기증을 두고 "아들을 두 번 죽인 거 아니냐"는 말로 강 목사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과 만남은 이때쯤 시작됐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을 위해 마련한 모임에 참석했다. 현재 강 목사가 회장으로 있는 도너패밀리의 전신이다. 강 목사는 모임에서 같은 아픔을 지닌 유가족들과 서로 위로하며 지탱할 힘을 얻었다.
 
"유가족들은 가족모임이 잘 안 돼요. 생일이나 명절 등이 되면 오히려 심란해요. 당사자도 힘들고 지켜보는 사람들도 불편할 수 있죠. 그런데 도너패밀리 모임에서는 나 혼자만의 아픔이나 괴로움, 고독이 아니라 유대감, 연대감이 느껴져요. 그렇게 서로 극복해 나가는 거죠."
 
도너패밀리는 현재 음악 및 미술 심리상담과 전국 권역별 소모임, 캠프, 전시회 등 뇌사 장기기증인을 기리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D.F(도너패밀리) 장학회'를 출범하고 뇌사 장기기증인 유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강 목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과 예우가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매일 7.5명이 장기기증을 기다리다 결국 사망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뇌사 장기기증인 수가 크게 저조한 원인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아들을 지금 눈앞에서 볼 수는 없지만, 같은 하늘 아래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장기기증은 축복의 통로예요. 물론 상실의 아픔이 있지만, 기증을 통해서 생명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지킬 수 있거든요.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몸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풍성함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어요."

[천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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