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성장사 큰 획…'조용기 목사'가 남긴 족적들

최상경 기자(cs_kyoung@goodtv.co.kr)

등록일:2021-09-14 11: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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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0월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기도대성회에서 설교하는 조용기 목사.(사진출처=연합뉴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가 14일 별세했다. 향년 86세. 조 목사는 지난해 7월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나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이날 오전 7시 13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고(故) 조용기 목사는 세계 최대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설립해 한국 기독교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남북관계의 개선과 취약계층을 돕는 다양한 사업도 펼쳐왔다.

1936년 경남 울산 울주군에서 태어난 조 목사는 한학과 전통적인 종교문화에 익숙한 가정에서 자랐다. 가난한 사춘기를 보냈고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며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했다.

그는 고교 2학년 때 폐결핵으로 사망선고를 받고서 병상에 있으면서 누나 친구로부터 처음 복음을 접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 목사는 1956년 하나님의성회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장모이자 목회 동역자인 최자실 목사를 만났고, 두 사람은 1958년 신학교를 졸업하고서 그해 5월 18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시초인 천막교회를 개척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70∼80년대 소외된 이들을 보듬는 '희망의 신학'을 외치며 성장을 거듭했다.

1973년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오순절 세계대회'를 개최했다. 여의도로 교회 자리를 옮긴 뒤로 성장세가 가팔라지며 1979년 교인수 10만명, 1981년 20만명을 넘어섰다. 

1993년에는 교인수 70만 명이 넘는 세계 최대 교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교회 측은 이런 성장 배경으로 조 목사의 강한 리더십을 꼽는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긍정의 힘으로 영적 도전을 거듭했기에 성장 가능했다고. 

특히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구역 모델은 성도 수 증가의 비결로 거론된다. 서울 지역을 20개 구역으로 분할한 후 평신도 여성들을 구역장으로 임명해 구역 모임을 이끌게 한 것이 출발이었다. 외국에서 온 목회자들이 현지 목회에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구역조직을 접목시켜 엄청난 부흥을 이루기도 했다.

미국 풀러신학교 피터 와그너 박사는 "한국의 조용기 목사는 20세기 후반 들어 가장 강력하게 세계 교회에 영향을 미치는 영적 지도자 중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라고 평했다.
 
 ▲평양서 열린 '조용기 심장전문병원' 착공예배.(여의도순복음교회 제공)

조 목사는 취약계층을 돕는 다양한 사업과 함께 남북관계 개선에도 크게 기여했다. 

비정부기구(NGO)인 사단법인 '선한사람들'(현 굿피플)을 세워 인권, 환경, 아동복지 증진 등에 힘썼다. 핵심 대북사업 중 평양에 추진해 온 '조용기 심장전문병원'은 2007년 착공해 골조공사가 마무리됐으나, 2010년 정부의 '5·24조치'로 인해 내부공사와 병원 기자재 설치 작업이 중단되며 미완공 상태에 있다.

조 목사는 사역 50년을 맞은 2008년 이영훈 목사를 담임목사로 임명하고 원로목사로 물러나는 세대교체를 이뤘다. 

고인의 빈소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 1층 베다니홀에 차려졌다. 조문은 15∼17일 오전 7시∼오후 10시 할 수 있다. 장례예배(천국환송예배)는 18일 오전 8시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에서 한국교회장으로 치러진다. 하관예배는 당일 오전 10시 장지인 경기 파주시 오산리최자실국제금식기도원 묘역에서 있을 예정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와 이영훈 담임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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