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 총회 한국준비위원회(KHC) 준비위원장 박종화 목사는 지난 1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 부산 총회 준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KHC와 에큐메니칼 진영의 갈등에 대해 ‘오히려 생산적인 것’이라고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이른바 ‘1.13 공동선언문’과 김삼환 KHC 상임위원장에 대한 에큐메니칼 진영의 사퇴 요구에 대해서는, “채택되지 않은 문서는 아무리 싸인을 했어도 아무 효력이 없다”면서 “어떤 인사가 ‘미안하다’고 말한 것은 사임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요약하자면, 에큐메니칼 진영과의 갈등은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없으며, 공동선언문에 대해서는 김삼환 상임위원장이 유감을 표명했고 또 그것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으니 이제 사퇴 요구는 그만 하자는 것이다.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입장에서, 각 매체들의 보도 내용만으로 박 목사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앞뒤를 모두 잘라 냈다 하더라도, 지금의 갈등이 ‘오히려 생산적’이라고 보는 것은 박 목사가 상황을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물론, 에큐메니칼운동에 있어서 항상 ‘갈등과 긴장’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에큐메니칼운동 자체가 ‘교회의 대표들로 이루어진 협의기구’와 ‘바닥 행동그룹들’이 함께 전개해 나가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긴장과 갈등은 운동의 내용과 동력을 담보하기 위해 어쩌면 필수적일 수도 있다. 그럴 경우 긴장과 갈등은 ‘생산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생각해 보자. 지금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한국의 이른바 ‘에큐메니칼 진영’은 ‘바닥 행동그룹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KHC 상임위원회를 ‘교회 대표들로 구성된 협의기구’로 볼 수 있을까?
 
KHC로서는 그렇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 4개 WCC 회원교단들 마저도 KHC의 ‘협의회적 구조 복원’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 4개 교단뿐만 아니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회원 교단, 그리고 교회협 관계자들의 KHC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계속 거부한 것은 KHC이다. 교회협이 ‘WCC 부산 총회를 위한 협력위원회’를 구성해 사실상 ‘투 트랙’ 구조의 준비를 기정사실화하고, 에큐메니칼 진영도 동참하겠다고 밝힌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갈등 현상은 결코 서로를 보완하면서 하나의 길로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쪽의 ‘거부’에 대한 또 다른 쪽의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먼저 ‘거부’를 한 쪽에 있다. 먼저 거부를 한 쪽에서 이 상황을 ‘생산적’이라고 표현하는 것, 그것보다 더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어디 있겠는가.
 
더 심각한 것은 KHC가 거부한 것은 ‘협의회적 구조’나 ‘에큐메니칼 진영의 참여’만이 아니라 ‘에큐메니즘의 본질’ 그 자체였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공동선언문 사태’라는 점이다. 에큐메니칼 진영은 공동선언문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에 수치심과 분노로 몸을 떨었다. 그렇게 본다면 이 공동선언문을 기획하고 거기에 서명한 김삼환 상임위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는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에큐메니칼 진영의 이런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김삼환 상임위원장은 선언문의 폐기를 선언하든, 아니면 사퇴를 하거나 진심으로 사죄를 하든, 뭔가 이들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움직임을 보여 줬어야 했다.
 
그런데 박종화 목사는 “채택되지 않은 문서는 아무리 서명을 했어도 효력이 없다”고 공동선언문이 사실상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당사자가 유감을 표명한 것은 사퇴 그 이상의 의미가 있으니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 하자”고 말했다. 효력도 없는 문서에 유감을 표명했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지만, 유감표명이 사퇴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이상한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에큐메니칼 진영이 느꼈던 수치심과 분노는 아랑곳하지 않고 김삼환 상임위원장의 ‘위상’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정말 ‘자기중심적’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KHC가 끝까지 ‘협의회적 과정의 복원’이나 ‘에큐메니칼 진영의 참여’를 거부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KHC는 ‘지금 부산 총회를 둘러싸고 보수진영의 반대가 극심하고 진보와 보수 사이의 갈등도 심한 상황에서 보수진영의 참여를 이끌어 내 부산 총회를 한국교회 전체의 잔치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실제로 KHC는 계속 그렇게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우선, 부산 총회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보수진영이 참여한다 해서 그들이 총회 찬성으로 돌아서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그들이 반대하는 것은 WCC 자체이지, 총회에 보수진영이 참여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하나, 국내 보수적 신학자들이 WCC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WCC의 신학 노선이 자신들의 신학에 비추어 볼 때 문제가 있다는 것이지, 부산 총회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부산 총회에 보수 진영이 참여한다고 해서 이들이 WCC에 대한 문제제기를 멈추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부산 총회에 반대하는 쪽이나, WCC의 신학적 노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쪽이나, 부산 총회에 보수 진영이 참여하느냐의 여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은 WCC 총회에 보수진영이 참여하느냐의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 아니라 WCC 총회를 준비하고 있는 KHC와 교회협을 비롯한 에큐메니칼 진영 사이의 갈등이며, 그 원인은 전적으로 교회협과 에큐메니칼 진영의 참여를 계속해서 거부해 온 KHC에 있다.
 
그런데 KHC와 일부 인사들은 마치 우리나라에 WCC 부산 총회를 둘러싸고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 사이에 엄청난 갈등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회협이나 에큐메니칼 진영을 배제하고 KHC와 여기에 참여하는 보수 진영이 중심이 돼 부산 총회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KHC가 교회협과 에큐메니칼 진영을 배제하는 이유를 ‘진보와 보수의 갈등’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몇 년 전의 상황이 오버랩 된다. 2010년 8월25일, 당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사무총장이었던 조성기 목사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교회협이 WCC총회 개최의 전면에 나서면 안되며, WCC 4개 회원 교단이 주도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조 목사는 “보수교단의 참여를 유도해 WCC 총회를 한국교회 전체의 축제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조성기 목사는 지금 KHC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그런데 지금 KHC는 교회협은 물론, 국내 4개 WCC 회원 교단마저도 배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 총회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는 보수교단은 별로 없다. 이것은 결국, 보수교단의 참여는 교회협과 4개 WCC 회원교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안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더 정확히 말하면, 보수교단들은 사실 WCC 총회에 관심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이유로 교회협과 에큐메니칼 진영이 배제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본질의 왜곡을 넘어서 거짓말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 진영에게 있어서 WCC 총회는 그냥 ‘그쪽 사람들의 일’일 뿐, 굳이 반대할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동참하기는 더욱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교회협과 에큐메니칼 진영을 배제하면서 KHC가 내세운 이유 자체도 ‘말이 안되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KHC는 물론 한국교회가 얻은 ‘선한 결과’ 역시 아직은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기나긴 갈등의 과정을 거쳐 총회 준비 과정이 이분화되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이것이 과연 ‘생산적’인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종화 목사를 비롯해서 KHC가 지금의 상황을 계속해서 ‘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이제 더 이상 교회협과 에큐메니칼 진영의 지적과 비난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말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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