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종교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마저도 ‘종교다원주의’로 치부되는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과연 기독교와 이웃 종교의 대화와 협력은 가능한 것인가? 또, 일부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이웃 종교의 상징을 훼손하고, ‘땅밟기’ 등을 통해 아예 이웃 종교를 점령해 버리겠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사례가 빈발하는 상황에서 기독교가 이웃 종교에 ‘대화하자’며 내미는 손은 어느 정도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1965년 용당산 호텔에서 모인 한국 6대 종교지도자 모임 광경(사진제공 대화문화 아카데미)

‘가능성’은 일단 확인
 
지난 18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위원장 조경열 목사)가 개최한 종교간 대화 심포지엄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해답을 제시해 준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와 이웃 종교와의 대화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이 자리를 통해 확인됐다는 것이다.
 
사실 이날 심포지엄은 교회협으로서도 대단히 조심스러운 자리였다. 진보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교회협이 적극적으로 이웃 종교와의 대화에 나서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해 지극히 소극적이었던 보수 진영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자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이 자리에서 보수진영의 견해가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쪽으로 흘렀다면, 이웃 종교와의 대화를 추진해 나가는 교회협의 발걸음은 무거워 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심포지엄을 통해 나온 보수 진영의 견해는 정 반대였다. 발표를 맡은 김동춘 교수(국제신핚대학원대학교)는 “보수 기독교 역시 이웃 종교의 종교적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단언했다. 우리가 이웃 종교에 구원의 길이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웃 종교인들의 주장에 대해 진지하게 귀를 열고 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독교가 그동안의 무례하고 폭력적인 선교 방식을 고수하면서 이웃 종교에 대한 존중과 배려와 예의 없는 모습으로 일관한다면, 기독교 복음이 이 땅에서 버림받고 외면받을 수 있다”고 김 교수는 경고했다.
 
김교수는 또, 종교간 대화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밝힐 것을 진보 진영에 요구했다. “그 목표가 기독교의 진리 주장을 해체하고 타종교의 그것과 자신을 상대화해 구원의 그리스도 중심성과 최종성을 포기하는 것이라면, 이는 보수 기독교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기독교권 전체에서도 용인받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간 대화를 바라보는 보수 진영의 우려를 대변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논평을 맡은 이정배 교수(감신대)는, “앞으로는 명제적 진리보다는 순행적 진리가 더 중요한 시기가 올 것”이라며 “종교들 사이에도 교리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창시자들의 정신을 누가 더 잘 구현하고 있는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결국 종교 간의 대화에 있어서도, 자신이 갖고 있는 진리를 주장하기보다는, 어떻게 종교가 추구하는 공동의 가치를 함께 추구해 나갈 수 있는가의 문제가 더 중시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종교간 대화의 목표가 진리 주장이나 자신의 진리를 상대화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진보 진영에 던진 김동춘 교수의 질문은 ‘기우’가 된다.
 
따라서,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와 이웃 종교와의 대화가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한국의 종교간 대화가 이정배 교수의 말과 같은 방향으로 흘러왔다면, 보수 진영도 여기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종교간 대화의 출발점은 1919년 있었던 ‘3.1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3.1운동을 준비한 48명의 민족대표(독립선언문에 서명하지 않은 15인 포함)에 기독교는 물론 천도교와 불교 대표들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종교의 진리 체계와는 상관 없이 ‘민족 독립’이라는 대명제 아래 하나로 뭉쳤던 것이다.
 
협력기구 통한 ‘실천적 대화’가 주류
 
하지만 한국의 종교간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65년 10월18일부터 19일까지 1박2일동안 크리스찬아카데미(현 대화문화 아타데미) 주최로 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가톨릭, 개신교 등 국내 6대 종교의 종교인 23명이 용당산호텔에서 모였던 ‘6대 종교 지도자 모임’(용당산 모임) 부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전에도 기독교와 불교, 천주교 지도자들 사이의 간헐적인 만남은 있었지만, 6대 종교의 대표들이 공식적으로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 모임이 처음이었고, 대화문화 아카데미가 오늘날까지도 계속하고 있는 ‘종교간 대화모임’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한국 제종교의 공동과제’라는 모임의 주제가 말해 주듯, 이 모임에서는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 종교가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다뤄졌다. 당시 모임을 주선한 크리스찬 아카데미 원장 강원용 목사는 훗날 회고담을 통해 종교 대화모임의 방향을 “첫 번째는 종교간의 갈등을 극복하자는 것이 아니라 종교간의 평화 분위기를 계속 이어 나가자는 것이고, 두 번째는 종교간의 대화를 한국 사회의 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리로 삼자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적어도 아카데미의 종교간 대화모임은 상대방을 ‘개종’시키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는 것”의 세 가지로 요약한 바 있다. 이정배 교수가 지적한 종교간 대화의 목적과 상당부분 부합되는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용당산 모임으로 시작된 크리스찬 아카데미의 ‘종교간 대화 모임’은 1986년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의 창립으로 이어졌다.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을 목표로 한 ‘종교 협력기구’가 우리나라에도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1997년에는 또 하나의 종교 협력기구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종지협)이 창립된다. 기독교의 경우, KCRP에는 교회협이, 그리고 종지협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이 각각 화원으로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KCRP와 종지협은 기독교 쪽의 회원만 다를 뿐, 기독교, 불교, 천주교, 유교, 천도교, 민족종교 등 7대 종교의 대표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그 구성이나 목표가 상당히 유사하다. KCRP의 경우, “한국 종교인 상호간의 교류와 이해를 증진하며 이웃종교 사이의 공동과제를 함께 연구, 실천하여 보다 나은 한국 사회를 이룩하고, 전 세계 종교인들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고자 함”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종교 협력기구 역시 교리적 논의보다는 공동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 협력기구가 탄생하면서, 한국의 종교간 대화는 종교 협력기구를 통한 대화와 협력, 학술적 대화, 지역별 종교 화합 행사 등의 세 가지 유형으로 진행돼 나간다. 지역별 종교 화합 행사의 대표적 사례로는, 서울 성북동 지역의 덕수교회와 성북동성당, 그리고 길상사가 함께 개최하는 종교연합 바자회, 여러 지역에서 열리고 있는 종교평화 음악회 등을 들 수 있다.
 
2000년대 들어서 나타난 현상은, 대부분의 종교간 대화가 종교 협력기구를 통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같은 추세는 종교간 대화에 많은 종교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는 했지만, 개별 종교간의 대화, 즉 기독교와 불교, 기독교와 유교 사이의 대화 등은 상대적으로 사실상 사라지는 계기가 됐다는 문제점도 낳았다.
 
교회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종교간 대화의 현황을 살펴보면 이런 문제점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현재 교회협은 천주교와 함께 ‘그리스도교 일치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외부에서 본다면 이것 역시 종교간 대화의 범주에 집어넣을 수 있을지 모르나, 그리스도교의 눈으로 본다면 이는 ‘일치를 향한 움직임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를 종교간 대화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교회협과 불교의 조계종은 매년 성탄절과 석가탄신일에 축하 메시지를 발표하고 상호 방문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인사치레’ 이외의 공식적인 대화 모임은 아직 없다. 뿐만 아니라 불교 이외의 종교와는 ‘인사치레’도 거의 없다.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2003년 당시 백도웅 총무가 한남동 이슬람 사원을 찾은 것이 전부다.
 
한기총의 경우도 종지협을 통한 대화 이외에는 종교간 대화를 거의 시도하지 않고 있다. 2005년 당시 최성규 대표회장이 화재를 당한 낙산사를 방문한 일과 2011년 당시 길자연 대표회장이 조계종을 방문한 일 단 두 가지 사례뿐이다.
 
이처럼 현재 한국교회의 종교간 대화는 대부분 종교 협력기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웃 종교와의 양자간 대화는 사실상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또한 종교 협력기구를 통한 대화 역시, 교리적인 대화보다는 공동의 실천을 위한 대화에 국한돼 있다.
 
따라서 교회협이 앞으로 시도하고자 하는 대화는 이웃 종교와의 양자간 대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위해 먼저 기독교 내 보수진영의 의견을 들어 보고자 이번 심포지엄을 개최한 것이다. 사실 교회협은 지난 권오성 총무 재임 당시 조계종에 대해 ‘양자간 대화’를 제안한 적이 있으나 아직 이루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확인된 사실은, 기독교 진리의 유일성을 손상시키지 않는 실천적 대화라면, 보수진영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제까지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던 대화 또한 실천적 대화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것은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웃 종교 역시 ‘교리적 대화’에 대해 부담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결국 기독교 내의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대화의 내용과 한계에 대한 어떤 합의를 이루어 내느냐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양 진영의 만남을 통해 대화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참석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한국 기독교와 이웃 종교의 대화는, 이제 그 출발선을 긋는 작업을 막 시작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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