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훈 사무국장
원고를 부탁 받고 스스로에게 평화와 통일에 관해서 몇 마디나 말을 할 수 있으며, 몇 글자나 쓸 수 있을지 질문을 해보았다. 평화나 통일에 대한 사전지식도 부족할 뿐 아니라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노력해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말과 글은 쓸 수 있지만, 그것이 정말 말이 되고 글이 된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평화와 통일은 우리가 흔히 쓰는 말과 글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삶하고는 전혀 동떨어진 것이 될 때도 있다.
 
이전에 출석하는 교회에서 청년회 회원들이 판문점 내의 통일촌에 있는 한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을 위해 우리의 봉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통일에 대해서 기도하고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볼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을 하기에 앞서서 우리의 생각 속에는 전쟁, 이념, 세대 간 차이 등 수많은 명제들이 뒤엉켜서 하나의 거대한 철책선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 거추장스러운 장막들을 거두고 나니 남는 것은 너와 나의 만남이었다. 분단의 현실은 나와 너였던 관계들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자매형제의 만남, 벗들의 속삭임, 사랑하는 그 모든 행위들, 자연스럽고 자유한 그 모든 것들이 단절되어 버렸다. 그러한 단절을 회복하는 흐름들을 우리 속한 자리에서, 그리고 전쟁의 슬픈 역사 속에서, 나아가 통일의 미래를 세우는 현장 속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들을 모았다. 그것은 다시 너와 내가 만나는 것이요, 막힌 길이 뚫리는 것이며, 개성공단뿐 아니라 남북-북남의 노동자들이 먹고 살만한 일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수백만의 촛불이 한 자리에 모인 이유는 모두 너와 내가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의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찌된 노릇인지 탄핵정국을 맞은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은 함께 만나자고 불러낸 자리에서도 대화하기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억나지 않는다” “모른다”는 그 말들은 너와 나의 만남을 단절하는 철책선과 다를 바 없으며, 사람의 마음을 가지지 못한 이들이 내뱉는 절단된 말과 글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기억하며,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만남이 단절된 것을 기억하며 그것들을 회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 말과 글이 삶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통일을 기억하며 알아야겠다. 말과 글이 내 삶과 분단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위의 칼럼은 '평화와통일을위한연대'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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