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고 쓰레기를 사는 회사’, ‘망하는 게 최종 목표인 회사’….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돕기 위해 지난해 초 설립된 사회적기업 러블리페이퍼. 공동대표인 기우진, 권병훈 씨는 버려진 종이에 사랑을 불어넣어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하고 있다. “망하는 게 최종 목표”라고 말하는 두 대표를 직접 만나 이들이 꿈꾸는 세상의 모습을 들어봤다.
 
 ▲지난해 초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돕기 위해 ‘러블리페이퍼’를 설립한 기우진(右), 권병훈 대표는 버려진 종이로 만든 예술작품을 팔아 어르신들을 돕고 있다.ⓒ데일리굿뉴스

어르신들이 주운 폐지 ‘10배 가격’에 구입
 
러블리페이퍼(LOVE RE:PAPER)는 ‘종이(PAPER)를 재활용(RE)해 사랑(LOVE)을 나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공동대표 기우진 씨는 폐지 가격이 폭락하던 지난 2013년 겨울,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고단한 삶의 무게를 덜어드리기 위해 봉사단체 ‘굿페이퍼’를 설립하고, 대학생 봉사자들과 함께 방한용품을 전달했다.
 
학교와 교회, 가정 등에 요청해 사용하지 않는 종이를 기부 받고, 이를 고물상에 팔아 얻은 수익금으로 어르신들에 생필품과 함께 혹서기에는 방충망을, 혹한기에는 방한복을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어르신들이 하루 종일 폐지를 모아 얻는 수익금은 고작 5천 원 안팎이었어요. 한때 1kg에 200원까지 올랐던 폐지 가격이 80원 정도 할 때였으니까 어르신들의 고충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죠.”
 
그러나 일회성의 도움에는 한계가 있었다. 단기간 캠페인으로는 어르신들의 힘든 일상을 끊을 수 없다고 느낀 기 대표는, 보다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장기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회사를 설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과정에서 대학생 봉사자로 활동하던 권병훈 대표가 기 대표의 제안에 따라 공동대표로 참여하면서 러블리페이퍼가 탄생하게 됐다.
 
이후 폐지를 활용한 수익 창출 방법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두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박스를 재활용해 캔버스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가 만약 어르신들이 모으시는 박스를 시중보다 비싼 가격에 구입하고, 그것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팔아 어르신들을 위해 다시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하는 꿈 같은 고민에서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박스로 캔버스를 만들 수 있다는 글을 보고, 어르신들께 시중의 10배 가격인 1kg 당 800원에 폐박스를 구매했죠.”
 
 ▲두 대표는 단순히 폐지 줍는 어르신들에 대한 물질적 지원 차원을 넘어 이들과 직접 만나고 교제함으로써 진정한 이웃이 되려 노력한다.ⓒ데일리굿뉴스  

“재능기부자ㆍ구매자 공동의 선…매개 제공할 뿐”
 
두 대표는 전문가와 캔버스 제작에 대한 의견을 듣고 만들기에 돌입했지만, 캔버스가 작품으로써 값어치를 하기 위해서는 그 위에 그려질 그림이 사업 성공 여부의 키를 쥐고 있었다.
 
이들은 SNS를 통해 그림을 그려줄 재능기부 작가들을 모집했고, 당초 40명을 모집하려던 계획을 훌쩍 뛰어넘어 구인 4시간여 만에 150여 명의 재능기부 신청이 폭주했다.
 
이후 재능기부자들에게 택배를 통해 캔버스를 건넸고, 그들은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려 다시 러블리페이퍼로 보내왔다. 이렇게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난 폐지는 지난해 4번의 전시회 및 홈페이지를 통해 모두 판매됐다.
 
“많은 분들이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데, 페이퍼 캔버스가 이러한 분들에게 좋은 매개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물건을 만들지만 재능기부를 해주시는 분들, 작품을 구매하시는 분들 모두가 러블리페이퍼라는 네트워크 안에서 어울려 함께 나눔을 실천한 것이죠.”
 
지금까지 전시회와 작품 판매로 얻은 수익금은 모두 400여 만 원. 이는 전액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생계지원 및 건강, 여가활동을 돕는 데 사용됐다.
 
두 대표는 앞으로 이 프로젝트를 전국적으로 확장해 더욱 많은 어르신들을 돕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또한 물질적 지원뿐 아니라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향한 세상의 인식을 바꿔나가고, 더 나아가 현 상황을 야기한 사회 구조적 문제를 바꿔나가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저희는 러블리페이퍼가 결국 망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처음 설립 목적 자체가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돕기 위함이었던 만큼, 이 세상에 이러한 어르신들이 안 계시다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심으로써 세상을 살리셨던 것처럼, 저희 또한 점점 망해가는 길을 가면서 사회를 조금씩 바꿔나가고 싶습니다. 지금은 비록 이상적인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정말 이 꿈이 이뤄진다면 망해도 굉장히 기분 좋게 망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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