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지난 3월 10일에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12월에 예정이었던 대통령 선거가 5월 9일로 앞당겨졌다. 이르면 4월에 대선 일정이 잡힐 수도 있어서 ‘벚꽃 대선’이라고 했는데 5월로 확정되면서 언론에서는 ‘장미 대선’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주요 정당들은 당내 경선을 거쳐 대선 후보를 거의 확정했고, 이제 본격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다. 사람들은 유력 대선 후보들을 놓고 이들의 장단점을 이야기하고 누구의 당선 가능성이 높은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정재영 교수 ⓒ데일리굿뉴스


언론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대선주자들의 지지율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 대선주자가 한 달 넘게 1위를 독주하며 당선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가운데 다른 후보들이 격차를 줄일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3자 또는 4자 대결에서는 유력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지만 2자 대결에서는 지지율 격차가 오차 범위 안으로 줄어들어 누가 당선될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따라서 과연 다른 후보들이 후보 단일화를 이룰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후보들을 둘러싼 다양한 정보들뿐만 아니라 가짜 뉴스를 포함한 루머와 괴담까지 퍼지고 있어 행정 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총장이 대선 예비후보로 나섰다가 사퇴한 이유 중의 하나로 가짜뉴스를 꼽았을 정도로 가짜뉴스가 우리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가짜 뉴스는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서 정점을 찍었다. 지난 달 이루어진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 대해서 SNS를 통해 '헌법재판관들이 거액의 돈을 받고 편파적인 판결을 했다'는 내용의 가짜 뉴스가 확산된 것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당국에서는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서 가짜 뉴스를 엄단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정보들에 대해 내용의 진위를 따져보고 취사선택할 수 있는 비판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정치 토론의 불모지

선거철을 맞아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정치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지만 교회에서는 사정이 매우 다르다. 대부분의 한국 교회에서는 정치 얘기 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 이유는 교회 안에서 세상 얘기를 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이고, 더 큰 이유는 정치 얘기 잘못 꺼냈다가 교인들 사이에 싸움이 나고 분란이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회자조차도 정치에 대한 설교를 하기를 매우 꺼리고 있다. 자신과 정치적인 입장이 다른 설교에 대해 교인들이 항의하거나 교회를 떠나는 일도 생기기 때문에 설교자는 신중할 수밖에 없고 아예 정치 관련 설교를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설교자가 정파적인 설교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강단에서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설교를 하는 것은 유권자가 선거에 대하여 갖는 고유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같은 기독교인이고 같은 교회의 교인이라고 하더라도 정치에 대한 견해가 다를 수 있고 이것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치 이슈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거나 교인들 사이에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듯이, 사회 문제나 정치 문제에 대해서도 성경의 관점 그리고 기독교적 가치에 따라 판단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 밖에서는 각 후보들과 그들이 내놓은 정치 공약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를 내놓고 비판하기도 하며 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야 하는지 토론을 벌이고 있는데, 정작 교회 안에서 나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공약이 성경의 가르침이나 기독교 정신에 부합하는지를 이야기할 수 없다면 기독인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느 후보가 성경의 관점에서 바람직하고 어떤 공약들이 기독교 가치에 부합하는지 면밀하게 따지고 선택할 수 있도록 교회 안에서도 정치 토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일부에서는 기독교인들의 정치 참여를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정치에 지나치게 무관심한 것이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낳는다는 점을 우리는 최근 정국을 통해 뼈저리게 배웠다. 선거철에만 정치에 관심을 갖고 평상시에는 정치를 잊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치는 정치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치를 근본적인 의미에서 ‘믿는 바에 대한 도덕적 실천’이라고 한다면 모든 국민은 철저하게 ‘정치적’이어야 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을 변혁시키려고 하는 기독교인들은 더욱 그러하다.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기독 시민에게 요구되는 참모습일 것이다.

토론의 활성화를 위해

여전히 교회에서 정치 얘기를 하기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 사회에 토론 문화가 정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입식 교육에 익숙하여 다른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면서 자기 의견을 논리적으로 피력하는 훈련이 돼 있지 않다. 토론의 제1 덕목은 경청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상대방도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그렇게 하면서 서로 의견도 조정하고 자기 생각에 부족한 점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토론하기 좋아한다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 얘기를 하고 주장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식으로는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질 수 없다.

특히 교회에서는 말이 많은 것은 효율을 떨어뜨리고 덕스럽지도 않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의 성격에 대하여 생각해봐야 한다. 교회가 기업과 같은 영리 조직에서 하는 것과 같이 신속성이나 효율성을 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조직인가 하는 것이다. 잘 알고 있듯이 교회는 공동체이고 공동체성이 우선돼야 한다. 교회에서는 소수에 의한 일방 결정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씨름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할 때까지 이해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토론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고 정치 주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전래 초기 한국 교회에서는 남녀와 신분의 차별이 없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토론회가 활성화되었고 자발성에 기초한 조직으로서의 교회가 전국 곳곳에 세워지면서 공공의 의사소통을 수행하는 시민들의 공간이 됐다. 시민 회의가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교회는 민주주의 학습장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한 것이다. 이러한 전통을 되살려서 이제 교회에서 정치 문제에 대해서도 민주적으로 토론하는 풍토가 자리 잡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기독교인들의 생각을 통해서 배우며 서로의 생각을 조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교회 안에 토론의 장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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