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충현교회와 왕성교회 등 대형교회에서 시작된 교회세습. 이제는 교회규모와 상관없이 한국교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명성교회는 김삼환 원로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를 담임목사로 청빙한다는 건을 공동의회에서 통과시키면서 '교회세습' 논란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에 본지는 한국교회의 오랜 병폐로 지적된 '교회세습'을 주제로 기획을 준비했다. 한국교회 세습문제의 실태를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일부 대형교회들의 세습 논란으로 제정된 '세습방지법'. 하지만 한국교회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자립교회는 교회의 '생존'을 위해 목회 세습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찾아오기도 한다. 일부 교단들이 마련한 세습방지법에는 이런 폐해를 방지할 조항이 없는 상황에서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짚어봤다.
 
▲최근 명성교회 세습 논란으로 '세습방지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정형화된 세습방지법이 농촌지역의 미자립교회에 역피해를 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데일리굿뉴스

후임 청빙 어려운 교회…어쩔 수 없는 '세습' 선택
 
산골마을에 위치한 A교회. 이 교회는 50대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가 개척한 교회다. 교회를 설립한 이후 10여 년간 지역 복음화를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미자립 개척교회 상황을 벗어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담임 목회자가 오랜 기간 앓던 지병으로 소천하면서 교회는 더 큰 어려움에 처했다. 곧바로 후임 목회자를 청빙하려 했지만, 몇몇 노인들 밖에 없는 산골마을의 교회에 부임하겠다고 나서는 이를 찾기 힘들었다.
 
고심 끝에 교회는 소천한 담임 목회자의 아들(신학교 졸업) 전도사를 담임 교역자로 청빙하기로 했다. 아버지의 목회 철학을 계승해 함께 교회를 세워나갈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들 전도사가 부임하면서 자연스레 홀로된 사모의 거처 문제가 해결돼, 재정적 어려움도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다행히 A교회가 속한 교단은 A교회 '목회 대물림' 이후에 세습방지법을 통과시켰다. 교회 관계자는 "만약 세습방지법이 이전부터 시행됐다면 우리 전도사님은 교회에 부임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그랬다면 이 교회는 1대 목사님 소천과 함께 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정형화된 '교회 법규', 피해 사례 야기
 
A교회 뿐만 아니라 전국의 수많은 교회가 목회자 청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립교회 청빙 소식이라면 수십 명이 지원서를 내겠지만, 어려운 교회일수록 지원자가 적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세습방지법'이 적용되는 교단 소속일 경우에는 아들이나 사위 등 자녀에게 사역을 계승할 수 없게 돼 더 큰 어려움이 발생하게 된다.
 
때문에 '세습방지법은 그 사안에 따라 다르게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당초 이 법은 기업화 돼버린 대형교회가 자녀에게 고스란히 목회직을 대물림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옳지 않다는 판단에서 나온 건데 정형화된 교단 법규 때문에 피해사례가 생기고 있다는 것. 세습방지법을 통과시킨 교단에서도 세부사항이나 예외조항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의된 바가 없다.
 
한국기독교장로회 한남교회 김민수 목사는 "대형교회 세습은 막대한 자본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고 미자립교회들의 세습은 목회 사명의 대물림"이라며 "세습이라고 해서 같은 잣대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세습방지법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노회와 총회가 권한을 행사하는 '목회자 청빙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사진은 내용과 관계 없음)ⓒ데일리굿뉴스

'목회자 청빙법' 신설…자구노력도 필요해
 
그렇다면 한국교회 80% 이상을 차지하는 미자립교회들의 어려운 상황을 그저 지켜만 봐야 하는 걸까. 김민수 목사는 "세습방지법 외에 목회자 청빙에 관한 법을 새롭게 만들어 관련 사안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실상 우리나라 교회의 청빙은 '청빙'이라기 보다 '공개채용'에 가깝다"며 "모셔온다는 단어의 뜻처럼 예를 갖추고 교회 구성원들이 직접 담임 목회자를 찾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어 "노회나 총회가 권리를 갖고 개교회 목회자를 청빙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른바 '목회자 청빙법'을 통해 세습방지법의 역차별성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형교회의 세습과 미자립교회의 세습. 선대 목회자의 목회 철학을 계승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거대 자본의 유무에 따라 사회적 시선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한국교회 위상을 높이고 사회적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선 총회 차원의 법적 제도를 벗어나 욕심에 따른 세습을 피하는 교회의 자구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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