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현 목사
서기 1949년 중국에서의 모택동의 공산주의 혁명 이후에도 기독교는 증국 안에서 계속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기 635년에 기독교의 한 종파였던 경교의 선교사 알로펜이 성경을 들고 중국 땅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기독교를 전하기 시작한 이후 거의 1300여 년을 지나가고 있을 때에,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앞세운 모택동에 의하여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로 바뀌었는데 그때 중국의 기독교는 어떤 태도를 취하였을까? 혹시라도 중국의 기독교가 모택동의 공산주의를 만남에서 우리나라 북반도의 교회에서처럼 목사들과 성도들이 순교당하고 교회들이 거의 다 문을 닫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중국의 기독교는 공산주의 정권 아래에서 계속 살아남았다. 중국의 기독교인들은 지금도 변함없이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고 있고, 매 주일 자기들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 한반도에서는 해방 직후에 평양에 입성한 공산주의 정권의 극심한 교회 핍박으로 인하여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죽임을 당하였고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남으로 피난하였다. 그때 북의 고향을 떠난 많은 실향민들이 속히 북의 고향으로 되돌아가서 교회당을 다시 회복하고 싶어서 날마다 기도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래서 필자는 중국에서는 어떻게 교회가 살아남았는가를 알기 위하여 중국의 삼자교회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교회가 공산주의 체제 안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아서 많은 목회자들이 양산되고, 많은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면서 그들의 조국 중국을 위하여 봉사하고 있는 사실을 알았다. 공산주의 체제 안에서도 살아남아서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중국 교회를 깊이 있게 공부하면서 우리 북반도의 공산주의 정권과의 평화적인 만남의 길을 찾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다.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린 북에서 온 목회자들과 성도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지난날의 억울함을 뒤로하고, 미래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북의 공산주의자들을 만나야 하기에 중국교회 목사들과 성도들이 모택동의 공산주의자들을 만나서 어떻게 대처하였는지를 배울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45년에 외세에 의하여 38도 선이 한반도 한 가운데에 그어지고, 한반도가 반쪽으로 쪼개져서, 남 반도는 미국의 자본주의 정책을 받아드려서 신앙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기독교의 성장을 이룩하였지만, 북 반도는 사회주의 정권이 지배하면서 기존의 북의 교회들이 거의 박멸되었다. 북에서는 지금도 기독교가 자유롭게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북에 교회와 예배처가 몇 곳 있다고는 하지만, 지난날의 그 번창하던 평양이나 신의주의 교회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나 초라하기 그지없다. 속한 시일 안에 남북이 하나 되어 북에도 자유로운 복음 전파가 가능해져서 기독인들이 자유롭게 예배하고 사회와 민족을 위하여 일할 날이 속히 오게 하기 위하여 중국 삼자애국교회의 역사를 꼭 배워야 한다.
 
북의 교회를 되살려내기 위해서 우선은 북의 사회주의 체제에 적응하여 살던 북의 교우들을 이해하고 감싸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한반도의 통일을 위하여 사회주의에 오랫동안 물든 북의 동족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에 사는 동족들의 생각과 마음을 올바로 읽어내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오랫동안 사회주의 정권 안에서 살고 있는 북의 동포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사회주의 모택동 정권을 받아드린 중국의 삼자교회 기독인들을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

모택동 사회주의 혁명 당시에 중국의 기독교 지도자들 중에는 팅주교와 오요종 같은 목회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택동의 사회주의에 기초한 정책들을 환영하고 받아드렸다. 가난하고 멸시 받던 농민들이나 노동자들을 우선적으로 돌보던 모택동의 사회 정책을 적극적으로 환영하였다. 과거 외국의 헌금이나 부자들의 재물에 의존하던 교회의 모습을 탈피하여 가난한 농민들을 우선시 하는 모택동 정권에 적극 협력함에서 중국의 삼자애국교회는 중국의 민중을 위한 교회로 거듭났던 것이다. 오요종 목사는 초월에 편향된 서구신학에서 기독교의 비극을 보고 “영혼의 구원”이라는 초월성에만 집착할 때 사회와 정치에서 초월되고 그리고 반동적 정치에 이용당한다고 설교했다. 교회가 사회와 정치에 참여할 때 기독교의 참 신앙이 구체적으로 민중의 삶과 연결되고 그때 예수의 십자가가 확실하게 사회 속에 재생되어진다고 오요종은 설교했다. 이제 우리 남한의 기독교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중국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을 배워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운동에 앞장 설 수 있기를 바란다.
 

*본 칼럼은 평화통일연대에서 발송하는 평화칼럼으로 평화통일연대 홈페이지(http://www.cnpu.kr/44)에서 열람이 가능하다.

 
저작권자 © 데일리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