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 여성이 무참히 살해당한 강남역 살인사건은 온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여성들은 언제든지 자신도 그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고 토로하며 지금보다 안전하고 여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변화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여성차별 문제를 대하는 한국교회의 현실은 어떤지 살펴봤다.
"CCTV 설치하기에 앞서 여성 존중하는 사회돼야"
2016년 5월 17일 강남의 한 화장실에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은 우리 사회에 여성차별과 여성혐오 문제에 대해 큰 화두를 던졌다. 한 여성이 칼에 찔려 무참히 살해당하자 '묻지마 살인'과 '여성혐오 범죄'라는 의견이 대립하는 등 논란이 거셌다.
여성들은 자신이 당할 수도 있었던 사건이라며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차별을 호소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하거나 최근 페미니즘 도서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도 이런 사회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사건이 발생한 서초구는 재발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지난해 6월부터 관내 공공ㆍ상업용 건물 1,049동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각 건물의 화장실을 직접 방문하고 8억2000여 만원을 들여 비상벨 348대와 CCTV 39대를 설치했다.
하지만 치안 대책을 마련하기에 앞서 사회 인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인해 여성혐오를 포함한 여성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지만, 여성을 바라보는 차별적 시선이나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교회는 어떨까. 유교 문화와 가부장적 전통이 강한 한국교회 안에서도 성평등이나 여성 차별 문제는 불편함을 주는 단어로 금기시돼왔다. 특히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건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적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이런 분위기 탓에 성폭력이나 동거, 낙태, 혼전순결과 같은 이슈에 대해 교회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단 지적도 나온다. 성 관련 이슈를 논의할 때 섹스 문제를 빼놓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터부시하는 교회 문화가 성을 왜곡시키고 음성적으로 접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심에스더 성평등교육 전문강사는 "이제는 성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밤낮없이 우리 일상 곳곳에서 드러나고 활발하게 다뤄지고 있다"며 "하지만 개신교 안에서 성(Sex)은 여전히 '불온한 쾌락'의 이미지가 강해 일상의 언어로 나타내고 표현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성은 우리의 일상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를 억압하거나 왜곡되게 내버려두어선 안 된다"며 "우리는 마땅히 누려야 할 성생활의 기쁨을 죄책감 없이 누리고, 잘못된 가치관으로 고통을 주는 성적이슈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차별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
교회를 다니는 여성들은 고정화된 성 역할을 강요 받거나 강단에서 공공연히 벌어지는 목회자의 성차별적 발언을 듣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지 마라'는 지적부터 '화장을 하지 않아 알아보지 못했다'와 같은 외모 품평 등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전문가들은 교회가 성평등한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서 여성차별 문제가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함께 연대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백소영 교수(이화여대 기독교학과)는 "페미니즘이 이야기하는 것은 여성들이 남성보다 상위로 올라가겠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동안 배제돼왔던 경험을 나누고 바꿔나가자는 것"이라며 "남성과 여성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다른 재능과 장점을 가진 남성과 여성이 서로 인정하고 귀히 여기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가 가부장적인 성경 해석을 넘어 여성의 시각이 반영된 성경 읽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백 교수는 "종교개혁은 성도들에게 성경을 돌려주었던 운동이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텍스트가 있다면 그건 바로 성경"이라며 "여성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경을 바라보기 시작한다면 그 동안 들려오지 않았던 성서해석이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보다 하나님의 뜻에 근접한 성경읽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