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교수ⓒ데일리굿뉴스
종교개혁과 직업 소명

올해는 종교개혁 5백주년을 맞는 해다.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써붙힌 95개 조항에도 많은 내용이 있지만, 그 핵심 내용 중의 하나는 성직주의의 극복이다. 루터는 만인제사장 개념을 통해서 사제와 평신도 간에는 어떠한 존재적 차이도 없음을 천명했다. 여기서 만인제사장은 단순히 오늘날 교회 안의 목회자와 평신도의 관계를 말하기보다 영적 직분과 세속직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목회를 성직이라고 표현하듯이 성도들의 직업 활동 역시 똑같이 거룩한 직분이며 하나님께서는 이 일로 모든 신도들을 부르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생계 활동을 하기 위해 직업을 갖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직업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종교개혁 이래 개신교의 전통은 교회 안에서의 삶에만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요구되는 엄격한 윤리 기준을 개신교인들의 모든 생활에 확대하여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의 의례로서 예배에 참여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실천 윤리의 행동 지향성이 각자의 삶의 무대 위에서 표출되어 나타나야 한다. 일부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의 주장과 달리, 현실 세계를 부정하지 않고 그 안에서 초월의 기준에 따라 삶을 영위하며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개신교의 전통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소명 의식이다. 목회에 대한 소명으로 목회자를 부르셨듯이,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직업 활동에 대한 소명으로 평신도를 부르셨고 그 일을 통하여 영광 받으시길 원하신다는 소명 의식이 바로 정립되어 있어야 이러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직업 소명 의식

이와 관련하여 ‘한국교회탐구센터’에서는 평신도들의 직업 소명 의식에 대하여 설문조사했는데 필자가 조사의 책임을 맡아 진행했다. 아직 발표되지 않은 조사 결과(6월 8일 발표 예정) 중 일부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이번 조사에서는 현재 직업을 갖고 있는 자영업자,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농임어업에 종사하는 응답자 654명을 대상으로 현 직업을 선택하시기 전에 소명을 고려하였는지에 대해 질문하였다. 그 결과 ‘고려했다’ 36.1%, ‘고려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다’ 52.0%로 고려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더 많았다.

직업별로 소명 고려 여부를 살펴보면, 자영업자,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등 세 직업 중에서 블루칼라에서 29.6%로 가장 낮게 나타났다. 또한 고용형태별로는 임시직이 21.0%로 가장 낮았으며, 다음으로 비정규직이 28.3%, 그리고 정규직이 39.8%로 가장 높게 나왔다. 이러한 결과로 볼 때, 어느 정도 안정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일수록 직업 소명을 고려한 경우가 많았다고 응답하여 직업 소명이 직업의 내용이나 귀천과 상관없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현재 직업을 갖고 있는 응답자(654명)를 대상으로 현 직업을 최종적으로 선택할 때 ‘소명’과 ‘연봉, 적성, 이동거리 등 현실적 상황’ 중 어느 것을 기준으로 선택했는지에 대해 ‘소명’ 23.3%, ‘현실적인 상황’ 69.1% 로 나타나 소명을 기준으로 선택한 경우는 4명 중 1명에 불과했다. 또한 이들에게 “현재 종사하는 일이 소명에 맞는지”를 질문했는데, ‘그렇다’ 67.0%, ‘그렇지 않다’ 31.3%로 3명 중 2명가량은 현재 직업이 자신의 소명에 맞는 일이라고 응답했다. 앞의 조사 결과와 비교해서 보면, 직업을 선택할 때에는 소명과 관련하여 선택하지 않았지만, 선택한 이후에 소명에 맞는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는 신정론에 대하여 설명하였는데, 그에게 신정론은 종교적 믿음은 지금의 계층체계를 신의 뜻에 의해 확립된 것으로 인가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베버에 따르면, 특권계급의 경우 자신들이 희소가치를 소유한 것을 신이 부여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행운의 신정론’을 발전시키고, 비특권 계급에서는 현존하는 불평등 구조를 부정적으로 보며 내세에서의 보상을 기대하는 ‘보상의 신정론’을 발전시키게 된다. 이 이론에 따라 해석한다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이 소명과 맞다고 해석하고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 직업에 대한 만족이나 소명의식을 갖지 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직업 소명 교육을 확대해야

이와 같이 소명 의식이 바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직업 소명과 관련된 교육을 받은 경험이 3분의 1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소명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면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실천하기 어려운 것은 자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소명 교육을 받은 사람들 대다수는 실제 상황에 적용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고, 다수는 어떤 직업이든지 소명감을 갖고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응답해 소명 교육이 효과를 보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고용형태별로는 정규직에서 소명 교육이 도움이 되었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고, 다음이 비정규직이었고 임시직에서는 가장 낮게 나타나 정규직이 아닌 다른 고용형태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소명 교육의 개발이 필요한 실정이다.

또한 4분의 1은 소명 교육을 통해 직업 선택의 방법이나 소명 있는 직업을 알게 됐다고 응답해 소명 교육이 바람직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직업 소명에 대해 루터는 모든 직업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소명(calling)임을 강조했고, 칼빈 역시 그 어떤 직업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봉사의 현장임을 역설했다. 따라서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모든 직업에 대해 소명 의식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나 일부 직업 소명 교육 중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안정된 직업을 선택하도록 안내하거나 그런 직업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직업이라는 식으로 오히려 그릇된 직업관을 심어주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번 결과에서도 4분의 1 가량이 그러한 직업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비정규직이나 임시직에서 소명 교육에 대한 만족이 낮은 이유가 될 것이다. 현재 일에 대해 소명으로 인식한다는 응답은 가정주부, 학생, 무직자를 제외하면 매우 낮게 나와 현실의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은 매우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평신도들이 직업 소명 교육을 받을 기회를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

평신도들은 이미 세상에 보내진 자들이다. 일상생활의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과 같은 일반 사회 안에서 보내는 평신도들은, 전문 목회자들과 같이 교회 안에서의 활동에 몰두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평신도들의 삶의 자리는 ‘교회’가 아니라 ‘사회’인 것이다. 이미 보내진 사회 각각의 영역에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이 철저하게 기독교인의 삶의 원리를 따라 사회생활을 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때 평신도들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를 변혁시킬 주체자의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올바른 신앙인으로서만 아니라 기독 시민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에 기독교는 우리 사회의 공공 영역에서도 의미 있는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