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하는 우리의 사역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사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면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보이신다.
3.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온 삶으로 그 일에 동참한다.
4.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일을 성취하신다.
5.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한다.

지난번에 그 중 1번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오늘부터 2번에 대해서 나누고자 한다.

사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행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알리신다. 예수님도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셔서 아들에게 아버지의 행하시는 것을 다 보이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뿐 아니라, 신구약에 걸쳐 하나님과 동행했던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목적을 보이셨다. 사실 이 부분이 우리의 사역을 위해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다.
 ▲여주봉 목사 ⓒ데일리굿뉴스


먼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요 신비이다. 예를 들어, 사울의 구원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예수님)께서 모든 일을 다 하셨다.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직면하셨고, 그를 향한 그분의 계획을 그에게 알리셨고, 나중에 아나니아가 그를 위해 기도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를 치유하시고, 그에게 성령으로 충만케 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 하시면 되는데 뭣 때문에 예수님께서 아나니아를 찾아가셔서 그에게 사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리시고, 그로 하여금 사울에게 가서 기도해주라고 하셨을까? 그리고 가정이긴 합니다만, 만약 아나니아가 그 당시 예수님의 인도에 순종해서 사울에게 가서 기도해 주지 않았더라면 사울은 최소한 그 시점에서는 치유 받지 못했을 것이고, 성령으로 충만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서 일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즉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동역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사랑이요 신비이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신비한 사랑을 분명하게 인식한다면, 우리에게는 정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이 샘솟을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 중심적인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관건이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머물러 있지 않으면 하나님 중심적인 사역은 불가능하다. 우선 우리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어야 하나님의 행하심을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어야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았을 때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고 순종할 수 있다. 하나님의 행하심에 동참하려면 믿음이 필수적인데,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지 않으면 믿음이 가능하지 않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지 않으면 하나님 중심적인 사역은 불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좋은 예가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이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 성경적인 지식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성경이 말하는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어떠한 인격적인 관계도 없었다. 즉 그들은 한 번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고, 한 번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했다(요 5:37). 그 결과 그들은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전혀 알지 못했다(마 16:3). 그들의 삶은 철저하게 교리적인 지식에 의한 삶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삶은 성경적인 지식을 토대로 한 그들의 신앙적인 의식(意識)에 의한 삶이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의 삶은 장로들의 전통에 의한 삶이었다(갈 1:14). 그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나름대로 확신과 확고한 의식을 가지고 여러 가지 사역들을 담당했지만, 그것들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것들이었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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