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건 사무총장ⓒ데일리굿뉴스
유럽 국가들처럼 한국에서도 기독교정당이 가능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독일, 네덜란드, 미국, 영국에서 공부한 여러 원로학자들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기독교 전통이 깊게 뿌리내린 유럽 국가들에게 기독교정당은 가능하지만 기독교 역사가 130년을 갓 넘은 한국기독교에서는 시기상조라는 것이 그들의 대답이었다. 기독교정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사회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목회라는 소명이 목회자들을 자기중심사고(나르시시즘)에 빠지게 하고, 예수의 이름을 팔아 이기심을 채우는 유혹의 함정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제20대 총선에서 기독교정당들이 국회 진입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우려가 기독교인들의 정서에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에서 기독교정당이 출범하려면 어떤 조건들이 선행돼야 할까. 우선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 있다. 한국의 정치 위기가 필요조건이고, 지지 확장성이 충분조건이라 볼 수 있다. 지지 확장성을 위해서는 정의사회의 암초인 황금만능주의와 권위주의 타파를 이끌어낼 리더십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 기독교정당들을 보면, 이런 리더십을 위한 충분조건 결여, 호소력 있는 정책 제시 실패, 기독교 정치철학의 부재 등을 드러내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짚어보자.
 
첫째, 필자는 정당정치의 적폐로 인한 대안으로서 기독교정당 출범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충분조건이란 기독교정당을 지지하는 한국기독교인 내부의 폭발성이다. 일례로, 이번 대선 때 한 기독교정당은 '범기독교가 홍준표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 선언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하지만 다수의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입장과 달랐다. 범기독교를 표방하면서 우파와 좌파를 가르는 일부 목회자들의 행태는 '견제와 균형'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어느 한 쪽을 무시하고 극단으로 가면, 좌파를 인정하지 않는 독일의 우파정당 히틀러와 같은 정치, 또는 우파를 인정하지 않는 좌파정당 스탈린 같은 정치가 남는다.
 
한국정치권의 혁신을 위한 기독교정당의 의미는 타당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일부 기독교정당이 보여준 모습은 안쓰러울 따름이다. 지난 3월 말레이지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인도네시아 여성과 베트남 여성이 북한 노동당 위원장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의 얼굴에 VX 신경작용제를 발라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그들은 ‘TV쇼 촬영을 위한 몰래카메라’라는 북한 용의자들의 거짓말에 속았다고 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의 정당성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은 공산주의 볼셰비즘의 중심이론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생각이 우리 사회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둘째, 충분조건인 지지확장성을 위해서는 기독교유권자들에게 호소력이 있는 탁월한 정책이 필요하며, 오늘의 상황에서 그것은 황금만능주의와 권위주의 타파로 나타나야 한다. 예수의 가르침인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 6장 24절)는 말씀처럼 맘몬주의, 즉 경제지상주의에 대한 맞섬의 정신이 필요하다. 또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태복음 23장 8절)는 가르침을 따라, 성서의 가치요 예수의 가르침을 무력화시킨 권위주의에 맞서는 기독교정치 리더십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기독교정당들에서 그런 모습을 기대할 수 있는가.
 
셋째, 정치는 거대한 숲 속에서 눈에 띄는 한 그루의 나무만 보아서는 안 된다. 안보, 동성애차별금지법 반대, 폭력종교 한국유입 방지, 종교법인 사립학교 건학 이념보장을 기독교정치의 모든 것인 것처럼 대변하는 것은 기독교정치를 협소화시킬 위험이 있다. 물론 이런 이슈는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기독교정치철학의 핵심인 '하나님의 정의'를 간과한다면, 그것은 게토(ghetto) 정치 속으로 기독교를 고립화하는 것이다. 성 어거스틴은 <신국론>에서 정치의 핵심을 정의로 가르치지 않았는가. 기독교정치란 정의의 관점에서 생활 전체를 포괄한다. 이런 의미에서 다수의 교인들이 기독교정당을 향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 아닐까. 비 올 때 건초를 말려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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