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서울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주민토론회에서 수십 명의 장애학생 부모들이 무릎을 꿇은, 일명 '무릎 영상'이 공개되면서 특수학교 설립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런 가운데 올해로 개교 20주년을 맞은 밀알학교가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다.
 
밀알학교는 체육관과 미술관 공연장 등을 동네 주민과 공유하며 특수학교가 지역사회와 융화한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밀알학교를 건축한 이는 바로 유걸 건축가다. 한 매체를 통해 보도된 유걸 건축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밀알학교를 설계한 원로 건축가 유걸 (사진제공=연합뉴스)

밀알학교, 예배당 대신 세워진 장애아 교육 공간
 
20년 전 문을 연 밀알학교는 남서울은혜교회가 예배당 대신 장애아 교육 공간을 짓기로 하면서 설립됐다. 남서울은혜교회의 성도이기도 한 유걸 건축가는 당시 학교의 설계를 맡았다.
 
하지만 서울 한 복판에 특수학교가 세워진다는 말에 20년 전에도 주민들의 반대가 이어졌다.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유걸 건축가는 밀알학교를 지을 때도 아주 살벌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밀알학교도 설계 시작부터 주민 반대가 굉장히 거셌습니다. 주민이 반대하니 강남구청에서 허가 인증을 해주지 않으려 했어요. 시공사가 현장에 갖다 놓은 중장비 한 대가 부서진 적도 있었죠."
 
밀알학교 건립 문제는 결국 법정으로 향한 뒤에야 해결됐다. 2~3개월 지연된 끝에 큰 고비는 넘었지만 한정된 대지와 예산으로 특수학교를 짓는 일도 쉽지 않았다. 자폐아를 비롯한 발달 장애아들의 특성을 고려하면서도 특수학교라는 정체성을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아야 했다.
 
고민 끝에 탄생한 학교는 1층부터 4층까지 뚫린 거대한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한 본관으로 구성됐다. 4층 높이 유리로 마감한 한쪽 벽면과 폴리카보네이트로된 반투명 지붕은 외부의 공기와 빛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 실내에서도 유리 밖 낮은 구릉과 녹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아트리움은 밀알학교에서 일종의 마당인 셈이다.
 
"아이들에게 제일 좋은 것은 종소리가 들리면 뛰어나올 마당이 있는 공간이죠. 우리나라 학교 건축을 보면 그래서 정말 마음이 아파요. 좁은 복도에 교실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기만 하죠."
 
 ▲밀알학교 음악당 (사진제공=연합뉴스)

"한국사회 특수교육, 외국 사례 본 받아 통합교육으로 가야"
 
본관과 분리된 듯하면서도 이어지는 별관은 체육관과 공연장, 카페, 미술관 등으로 구성돼있다. 주말마다 교회 예배당으로 쓰이는 체육관을 비롯해 아래층 밀알미술관 등은 지역주민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이 중 지역주민에게 가장 사랑 받는 공간은 공연장이다. 수천 송이 꽃이 만개한 듯한 도자 벽화는 유 건축가가 이곳을 올 때마다 한 번씩 들여다보는 명작이다. 홀 내부 작품들은 난반사로 근사한 음향을 만들어내, 내로라하는 음악가들이 공연을 자청한다고 한다. 지역사회의 굉장히 좋은 자산이 된 것이다.
 
이 밖에도 유치원실, 통합감각실, 체력단련실 등이 학교를 구성하고 있다.  경제적 제약과 지금보다 한참 뒤떨어진 기술 수준 속에서 아쉬운 점은 없을까.
 
"쓰는 분이 마음 편히, 구석구석 잘 쓰면 그것이야말로 제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 건축가는 이번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논란을 보며 '20년이 지나도 똑같다'는 생각과 함께 무척 마음이 아팠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좋은 장애인 특수학교가 있는 일이 자랑스러운 일만은 아니"라는 뜻 밖의 말도 내뱉었다. 이어진 설명을 들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특수학교 설계가 처음이다 보니 외국에서 시범 케이스가 될만한 곳이 있나 하고 찾아봤죠. 그런데 미국은 통합교육을 하기에 일반 학교에서 다 같이 교육하고, 일본도 일반학교에서 한 반에 1,2명씩 받아들여서 함께 공부하더라고요. 비용은 훨씬 많이 들겠지만, 우리도 장애아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통합교육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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