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위해 목숨 던지다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뮤지컬 <더북(THE BOOK)>이 주목받고 있다. 1517년 루터의 95개 반박문을 기점으로 촉발된 종교개혁은 마틴 루터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몇몇 인물에 의해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 이미 종교개혁 100여 년 전 목숨을 걸고 성경을 전한 순교자, 롤라드(Lollard)가 있었다. 롤라드는 당시 종교 기득권자에 의해 '중얼거리는 자', '가라지', '위선자' 등 경멸의 의미로 불려졌다.
평범하지만 진리를 추구했던 사람들인 롤라드는 종교개혁자 존 위클리프의 가르침을 따르는 '복음적인 신앙운동 집단'이다. 옥스퍼드를 거점으로 한 이 운동은 백성들에게 성경을 보급하고 여러 곳을 순회하면서 '사도적 청빈의 정신'으로 전도하는 단체였다. 이 운동이 확산되자 로마교회는 의회로 하여금 롤라드파의 사상을 설교하는 사람들을 세속 당국에 넘겨 화형에 처하라는 내용의 '이단자 화형법(De Haeretico Comburendo)'을 통과시키게 만들었다.
<더북>은 이렇게 생명을 걸고 번역된 THE BOOK(성경)을 펼치려는 롤라드와 THE BOOK(성경)을 덮으려는 타락한 가톨릭교회 세력과의 대결을 밀도 있게 담아내고자 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진리와 진실을 숨기려는 자들과 억눌린 자들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공방을 통해 비록 수백 년 전의 과거지만, 이 이야기가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와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묵직한 실화가 주는 생생함
<더북>은 지난 11월까지 약 10개월간의 기간 동안 무려 4만 9,125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또, 올 1월 공연 시작 후 평균 90% 이상의 높은 점유율을 꾸준히 유지하며 소극장 뮤지컬로는 흔치 않은 흥행을 내고 있다. 뮤지컬 스타 한 명 없고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되지도 않은 <더북>이 이처럼 관객들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 묵직한 실화가 주는 생생함을 바탕으로 온 몸을 던져 밀도 있게 담아내는 배우들의 열연 때문이다.
또한 소극장 뮤지컬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비장함과 웅장함이 어우러진 작품성과 오직 성경을 전하기 위해 목숨까지 던지는 가슴 먹먹한 울림은 공연 피날레에 모든 관객이 복받치는 감동으로 기립하게 만들기도 했다.
<더북>은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선율과 노래들, 14세기 유럽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고풍스러운 의상과 무대, 결코 잊을 수 없는 뜨거운 감동의 피날레 씬 등 소극장 창작 뮤지컬의 격을 한 단계 높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지방과 해외에서도 공연 초청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극단 '문화행동 아트리'가 8번째로 올린 창작 뮤지컬 <더북>은 12월 30일까지(월~토) 공연되며, 혜화역 4번 출구에서 가까운 열린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