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허준', '이산', '동이'의 OST 메인 연주자이자 작곡가로서 대중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세계적인 플루티스트 송솔나무.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하나님의 연주자'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그의 아름다운 연주 뒤에는 학창시절 왕따, 아버지의 부도, 플루트리스트로선 치명적인 신체적 약점처럼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다. 송솔나무 집사의 파란만장한 신앙 스토리를 <신앙계> 12월호에서 만났다.
 
 ▲송솔나무 집사의 파란만장한 신앙 스토리를 <신앙계> 12월호에서 만났다.

13살에 줄리어드 장학생 입학…왕따로 힘든 시절 겪기도
 
송솔나무 집사는 만 13세에 음악 영재들이 가는 학교인 줄리어드 프리스쿨의 장학생으로 입학할 만큼 주목 받던 인재였다. 꿈의 무대라 불리는 미국 카네기홀과 링컨센터에서 수 차례 독주회도 가진 바 있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는 전 세계 100여 국에서 악기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송솔나무 집사는 학교에서 아이들의 폭력을 피해 숨어 다니는 왕따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나면서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나 방 2개에 화장실 1개인 이모부 집에 14명이 함께 살았습니다. 학교에 가면 매일 맞고 다니는 왕따였고, 집에 오면 사촌형에게 맞아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그가 플루트란 악기를 만난 건 아이들의 눈을 피해 들어간 학교 화장실에서였다. 변기에 쭈구리고 앉아 있던 그에게 플루트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소리를 따라 찾아간 학교 밴드부 플루트 선생님 앞에서 한국에서 몇 달 배운 적 있는 애국가 한 소절을 불렀다. 선생님은 그의 가능성을 알아봤고, 이후 플루트는 그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힘든 학교생활을 버텨내는 원동력이 됐다.
 
어려움 속에서 힘이 됐던 플루트였지만, 그에게는 플루트 연주자로 성공하기에는 어려운 약점이 있었다. 플루트는 악기 특성 상 호흡량이 중요한데, 알레르기성 천식으로 송 집사의 폐활량은 일반인의 63~64% 밖에 되지 않는다. 남들보다 손가락이 짧고, 오른쪽 다리는 십자인대파열로 수술했다. 몇 해 전부터는 변이형 협심증으로 약물 치료 중이다.
 
처음에는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다. 심장이 아플 때는 "하나님을 전하는데 더 복을 주셔야지 왜 심장까지 아프게 하냐"고 원망했다. 그때 하나님은 그가 연주 때마다 들고 다니는 수천만 원의 알토플루트나 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수억 원의 백금 플루트가 아닌 낡은 스텐레스 파이프로 만든 악기를 다시 보게 하셨다. 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스텐레스 파이프 악기는 배관용으로나 쓰이는 스텐레스 파이프를 쓰지도 못하게 잘라놓고 거기에 구멍까지 뚫어놨습니다. 이런 파이프를 어디다 쓰겠습니까? 이 파이프의 입장에선 난 이제 끝이구나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파이프가 악기가 돼 저와 함께 세계를 돌며 아름다운 멜로디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다니며 공연…"곳곳서 하나님 역사 일어나"
 
송솔나무 집사는 학창시절 왕따, 아버지의 부도, 천식을 비롯한 신체적 약점으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 플루트리스트로서의 소명을 확인했다. 이에 송 집사는 하나님이 부르는 곳이면 길이 없고, 전기가 없고, 관객이 적어도 어디든 찾아갔다. 고통 속에 힘들어하던 그를 찾아온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다.
 
100여 곳을 돌며 플루트를 연주했던 송 집사에게 남수단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악기라고는 북소리가 전부였던 사람들이 그의 연주를 통해 복음을 접했기 때문이다.
 
"연주를 시작하려는 데도 사람들이 시끄러우니까 추장이 막대기를 갖고 떠드는 사람들의 머리를 때렸습니다. 그런데 연주가 시작되자 모두가 조용히 플루트 소리에 귀 기울였어요. 메시지를 전하자 여기저기서 훌쩍 거리더니 예수님을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일본은 송 집사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찾아간 나라 중 하나라고 전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모두가 일본을 떠날 때, 송 집사는 악기와 구호물품을 갖고 일본으로 향했다. 이시노마키, 센다이, 후쿠시마 등 피해지역을 돌며 절망에 빠진 이재민들을 위로했다.
 
"일본 이재민들에게 '내 고향'이라는 곡을 연주하면서 우리의 진짜 고향은 천국이라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때 자신의 집이 떠내려가도 울지 않던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이후 센다이에만 교회가 4곳이 세워지는 등 일본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이후 송 집사는 일본에서 70회 이상 자비량으로 헌신해 연주하며, 일본 선교의 마음을 품었다. 현재 그는 일본에 집을 얻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사역하고 있다.
 
송솔나무 집사의 연주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녹아있다. 그의 인생이 산 증거다. 그래서 오늘도 꿈꾸는 모든 이들을 향해 도전한다. 그의 유일한 꿈은 '빨리 하나님의 꿈을 알아차리고 순종하는 것'이다.
 
"무엇이 되겠다는 내가 정한 꿈을 놓고 기도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원래 계획하신 대로 만들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최고입니다. 위대하신 하나님만 좇아가면 내가 위대해질 필요가 없지요. 순종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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