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결혼 모델이 무너지고 있다. 동거, 이혼, 재혼에 이어 최근에는 '졸혼'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졸혼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도 연이어 나오고 있다. 졸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졸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다양했다.
 
 ▲'결혼을 졸업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신조어 '졸혼'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데일리굿뉴스

미디어 통해 '졸혼' 트렌드화…법원서 졸혼 권해
 
'결혼을 졸업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신조어 '졸혼'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졸혼은 2004년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의 책 <졸혼을 권함>에서 처음 나온 말로, 부부가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부의 신분은 유지하되 각자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결혼이라는 틀에서 부부가 가져야 하는 의무나 책임은 없지만 법적 혼인 관계는 유지하는 형태다.
 
지난해 한 프로그램에서 배우 백일섭 씨가 '졸혼했다'고 고백한 이후 한국에서도 미디어를 중심으로 졸혼 이슈가 확산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 2>에서는 백일섭 씨가 '졸혼남'으로 출현해 음식, 청소 등 살림을 배우는 장면을 그렸다. 그는 프로그램에서 "부부가 예의를 지켜가며 사는 것이 좋은 것인데 무뚝뚝한 성격상 힘들었다"면서 "졸혼한지 1년 반이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예능 프로그램 <별거가 별거냐>에서는 별거중인 배우 남성진, 김지영 부부가 출현해 새로운 취미 생활을 시작하는 등 각자의 삶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아냈다.
 
드라마에서도 졸혼이 소개가 되고 있다. <아버지가 이상해>와 <밥상 차리는 남자>에서는 황혼이혼 위기에 처한 주인공 부부가 졸혼을 택하며 이혼을 면하는 장면이 방송됐다.
 
간접적인 미디어 영향 외에는 '황혼 이혼율 증가'가 졸혼 확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여성가족부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15년 이혼한 부부 3명 중 1명은 결혼 20년 차 이상 부부였다. 1990년 5%대였던 황혼 이혼율이 15년 사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황혼이혼이 증가함에 따라 법원에서도 졸혼을 권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황혼이혼의 경우 재산분할이나 연금재산 분할 등의 사안에서 갈등이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졸혼은 법적 관계를 청산할 필요가 없어 다툼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 반응은 제각각…'위선'이라는 의견도
 
가정사역단체 하이패밀리가 전국 기혼남녀 1,041명을 대상으로 '졸혼에 대한 의식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4.0%가 졸혼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결혼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에는 47.4%가 졸혼을 생각해 볼 것이라고 답했다.
 
'졸혼'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은 양측으로 나뉘었다. '황혼이혼의 대안', '선진적인 결혼 형태', '이혼이란 단어의 포장', '우리 사회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졸혼이 황혼이혼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답한 40대 직장인 A씨는 "100세 시대에 사랑이란 감정을 계속해서 유지하긴 힘든데, 오래된 부부가 각자의 삶을 살게 된다면 자녀와 배우자를 위해 희생했던 시간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며, 황혼기 삶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의 선택 문제라고 답한 30대 직장인 B씨는 "개인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양육하다 보면 결혼이란 제도가 답답할 수 있다"면서 "아이를 위해 결혼 생활을 유지하다가 자녀가 결혼한 후에는 황혼이혼이든 졸혼이든 개인의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20대 직장인 C씨는 "나중에는 서로 조금만 안 맞아도 졸혼을 선택할 것 같다. 결혼의 본 의미가 사라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선진적인 결혼 형태로 인정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30대 직장인 D씨는 "졸혼이란 단어의 등장 자체가 결혼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우리나라의 유교 사회 성격 상 서구적인 문화가 쉽게 들어오기 어려운데, 찬성하기 보다는 결혼의 형태가 많이 서구화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30대 대학원생 E씨는 "우리 사회에 적용되기엔 시기상조"라고 반박했다.
 
졸혼은 이혼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단어일 뿐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20대 휴학생 F씨는 "졸혼 자체가 이혼이란 단어에서 나오는 부정적 시선을 기피하기 위한 위선의 단어라고 생각한다"면서 "상대방이 싫거나, 다른 사람이 좋아져서 헤어지는걸 단순히 나이가 들었거나 결혼 기간이 길어 졸혼이라고 표현하는 건 위선"이라고 역설했다.
 
증가하는 황혼이혼에 대한 대안으로 졸혼이 이슈화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졸혼의 유행으로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고 서약한 결혼의 참 의미가 무색해지진 않을까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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