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의 대부로 불리는 이정호 신부(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 관장). 그에게는 '외국인 앞잡이'라는 별명이 늘 따라다닌다. "'앞잡이'라서 그런지 외국인들이 참 좋다"며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이 신부에게서 동네 아저씨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와의 본격적인 인터뷰는 먼저 축하 인사를 건네면서 시작됐다.
 
 ▲이주노동자를 안고 있는 이정호 신부의 모습 ⓒ데일리굿뉴스

나는 '외국인 앞잡이'

오랫동안 국내 외국인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앞장서온 이 신부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이달 국가인권위원회가 수여한 '2017년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드디어 이주민을 인정한 것 같아 기쁘다"며 짧은 소감을 밝힌 이 신부. 그가 외국인 지킴이로 묵묵히 그들의 곁에 있은 지도 올해로 벌써 27년째다. 이 신부는 1990년 성공회 사제로 서품을 받고 첫 사목지인 남양주 마석으로 오게 됐다.

"경제적인 사정으로 학교를 휴학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성공회 사제의 권유로 성공회대학교에 진학하게 됐죠. 장학혜택이 있어 돈 없이도 공부할 수 있었거든요. 어느 날 학교에서 운동하다 우연히 추락사고를 목격했어요. 학교 옆에 위치한 성베드로학교에서 지적장애인이 떨어진 거예요. 머리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데 아프다는 소리 한번 안 하는 아이를 보면서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의 축이 되고 이끌어주는 지킴이가 사제의 일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신부가 처음 파송 받을 당시 마석은 한센인 정착 마을이었다. 사회에서 차별받고 소외된 한센인들과 지내던 어느 날, 그의 눈에 한센인들과 비슷한 처지의 외국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시 가톨릭국가인 필리핀에서 온 노동자가 많았던 탓에 이 신부는 그들을 위해 영어 예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영어 예배를 드리면서 알게 된 외국인들의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대부분이 불법체류자들이에요. 그러니 부당한 일이 일어나는 데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없는 거예요. 미국과 캐나다에 사는 가족들로부터 이민자의 고충을 들었던 터라 내가 이들을 끌어안아야겠다는 계기가 생겼어요."
 
 ▲방글라데시 현지 학교를 방문한 이정호 신부의 모습 ⓒ데일리굿뉴스

일회용 컵처럼 생각하던 인식 많이 개선돼
이 신부는 90년대 초반에는 사회적 인식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고 고백한다. 폭력, 체불 등은 비일비재했고, 이주노동자들을 일회용 컵처럼 쓰고 버리는 존재로 생각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한국 이민사도 백 년이 넘었어요. 전에 MBC의 한 프로그램을 통해 독일에 갔었어요. 거기서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만났는데 '우리가 독일에 와서 사람대접받고 소위 마이너에서 메이저가 됐는데, 한국인들이 왜 이렇게 외국인을 못살게 구느냐'고 하더군요." 이 신부는 우리의 경험을 통해 이제 받은 것을 되돌려 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도 상황이 많이 좋아졌어요. 이제 한국사회도 느끼는 거예요."

2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는 이 신부는 형제처럼 지냈던 이들의 죽음은 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소위 '코리아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들어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란, 네팔에서 온 람, 필리핀에서 온 록키 등은 그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이름들이다. "람은 20대 때 친구와 둘이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와 형광등 공장에서 밝은 빛을 내는 아르곤을 주입하는 일을 했어요. 그러다 산업연수생에서 이탈해 마석동 가구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말기암 진단을 받은 거예요. 죽기 전에 세례를 받고 싶다고 부탁해서 세례를 해주고 그때 아브라함이란 세례명도 받았어요. 겨우 설득해서 고국인 네팔로 돌아갔는데,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어요."

이 신부는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모두 산재"라며 이에 대한 책임을 우리가 일부분 지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한국에서 상처나 트라우마를 갖고 고국으로 돌아간 외국인들을 위해 '애프터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 신부는 고국으로 돌아간 외국인들이 상담을 받거나, 물질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현지에 단체를 만들고 교류할 수 있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내달 1월 9일에는 고등학생과 함께 방글라데시에서 한국 알리기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신부는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피부와 언어가 달라도 우리와 다르지 않고 동등하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취지라고 밝혔다.

이 신부는 레위기 19장 33~34절, "타국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자기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한국교회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 같은 사람이다. 누구나 아는 단순한 말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면서 "조금만 인식을 새롭게 하고 외국인을 향해 배려하며 손을 뻗어주길 바란다"고 다시 한번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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