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번에 이사야 하반부에는 신약의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유업들이 약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매우 중요한 사실은 그 유업들이 십자가 복음에 주어진 유업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철저하게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세워질 때 그 유업들이 교회 가운데 주어진다.  
 
우리는 이 점을 갈라디아서 4장에서 잘 볼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갈라디아교회는 사도 바울이 병이 들어서 쉬러 갔다가 세워진 교회이다(갈 4:13). 그런데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를 떠난 후에 거짓 사도들이 갈라디아교회에 와서 거짓 복음을 퍼뜨렸다. 사실, 그 일은 갈라디아교회에서만이 아니었다. 사도 바울이 교회를 세우고 지나간 곳마다 거의 모든 교회에서 그 일이 발생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의 거의 모든 서신서에서 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만큼 거짓 복음의 문제가 그 당시 세계적으로 매우 심각했다.
 ▲여주봉 목사 ⓒ데일리굿뉴스

 
그 거짓 복음의 핵심적인 특징은 예수님을 믿음에다 추가로 할례를 받고 유대인의 전통을 지켜야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육체를 의지하는 것을 더하면 그것은 전적으로 육체를 의지하는 것과 같다. 그것이 바로 율법주의 신앙이다. 그것은 거짓 복음이다. 그리고 육체를 의지하는 율법주의에 빠지면 참된 복음의 모든 능력과 특징이 그 개인과 교회의 삶에서 걷힌다(갈 5:2-4). 
 
그렇게 갈라디아교회가 거짓 복음을 받아들여 참된 복음에서 떠나게 되자 사도 바울은 그들을 돌이키기 위해 갈라디아서를 쓴다. 그는 갈라디아 4장에서 그가 전한 참된 복음인 십자가의 복음과 그 당시 거짓 사도들이 전한 예수+할례의 거짓 복음, 즉 율법주의 신앙을 아브라함의 두 아들에 비유한다. 즉 이삭을 십자가의 복음에 그리고 이스마엘을 거짓 복음에 비유한다. 거기에서 그는 이사야 54:1을 인용하면서, 그 유업이 이삭의 무리, 즉 십자가의 복음에 주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바꿔 말해서, 그는 그 유업이 이스마엘의 무리, 즉 거짓 복음, 율법주의 신앙에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말한다. 더 나아가 그는 그러므로 아브라함 당시 하나님의 명령으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냈던 것처럼, 거짓 신앙, 즉 율법주의 신앙을 그들에게서 철저하게 내어 쫓으라고 강력하게 명령한다.  “22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갈 4:22-30).
 
우리는 이 구절에서 사도 바울도 이사야 54:1의 유업이 신약의 교회에 주어진 유업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그 유업이 철저하게 십자가의 복음에 주어지는 유업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사야 하반부에 나오는 신약의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유업은 십자가 복음에 주어진 유업으로써 교회가 사도들이 전한대로 철저하게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세워질 때 그곳에 주어진다. 오늘날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들의 교회 가운데 성경에 약속된 하나님의 유업이 실제로 주어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우리의 교회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갈라디아서를 보면, 사도 바울이 거짓 복음, 즉 율법주의에 빠져 버린 갈라디아교회, 그리고 그 결과 참된 복음의 모든 특징에서 단절되고, 하나님의 유업을 받지 못하게 될 위험에 빠진 갈라디아교회를 향해 참된 복음, 즉 십자가의 복음으로 돌아오라고 절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갈 3:3-4).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 
 
그런데 이 절규는 단순히 사도 바울의 절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규, 성령님의 절규이다.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하나님의 절규가 오늘날 한국교회를 향한 절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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