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여기,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 힘겨운 시련의 연속을 극복하고 전 세계에 자랑스러운 태극마크를 알린 사람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장애인 아이스하키팀 국가대표 최광혁 선수가 그 주인공. 지난 23일 서울 잠실동 부근 북카페에서 꽃제비, 탈북민, 장애인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이제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된 최광혁 선수를 만났다.
 

 ▲지난 23일 서울 잠실역 부근 북카페에서 최 선수를 만나 그가 꽃제비, 탈북민에서 패럴림픽 메달리스트가 되기까지의 삶의 여정을 인터뷰했다.ⓒ데일리굿뉴스

 

北서 사고로 왼쪽다리 잃어…南 적응도 어려워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과 모여서 애국가를 부르는 순간, 무언가 뜨거운 감정이 마음 깊은 곳에서 복받쳐 올라왔다. 사람들 앞에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티 내고 싶지 않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겪은 좋았던 것들과 아쉬웠던 지난날이 생각을 스쳐 지나갔다. 이 모든 일들을 이겨낸 스스로에게 잘 버텼다고 칭찬해주고 싶었다."

 

왼쪽 가슴에 자랑스런 태극마크를 달고 인터뷰 장소에 나온 최 선수가 2018 동계 패럴림픽에서 한국 장애인아이스하키 사상 첫 패럴림픽 메달(동메달)을 획득 했을 때 심정을 전했다. 수 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대한민국 국가대표선수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최 선수의 인생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최 선수는 1987년 북한 함경북도 화성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북한에서 지붕도 없는 집에서 살면서 힘겹게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아이스크림 팔이 생활을 했다. 열차 지붕이나 측면에 매달려 역마다 정차해 아이스크림 장사를 하다가 왼쪽 발이 열차 바퀴에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그리고 한쪽 다리가 없이 살아야 하는 장애인이 됐다. 북한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었다.

 

"건강한 사람도 살기 힘든 북한 생활인데, 나는 장애인으로 살았으니 정말 죽지 못해 산 삶이었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 한탄할 만큼 척박한 삶을 살았다. 장애인이 북한에서 산다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2001년 최선수가 14살 일 때, 브로커가 찾아왔다. 그는 남한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겠다는 브로커의 말에 남한에서의 새로운 삶을 기대하며 한국 땅을 밟았다. 그러나, 남한에서 탈북민, 장애인으로 사는 것은 그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남한에 와서 가족과 재회의 기쁨도 잠시였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고아원 생활을 했다. 사람들은 내게 도깨비라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대했다. 이런 남한생활은 내 반항심만 자극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남한에서 학창시절에 PC방에서 밤새고, 술 마시고, 담배 피는 생활을 일삼았다."

  

그는 기독교 학교인 '여명학교' 출신이고, 중학생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어려웠고 성경말씀에 반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

 

"학교는 나의 모난 부분을 품어줬던 곳이다. 내가 깊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지난 시간은 모두 감사한 시절이다"

 

인생 바꾼 아이스하키…장애인 위해 '의족' 만드는 것이 꿈

 

최 선수는 2011년 '한국복지대학교 의료보장구학'에 입학한 후 아이스하키 운동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아이스 하키 운동을 처음 접했지만, 이 운동을 시작한 것은 그의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됐다.

 

"과격하고 파워풀한 아이스하키 운동에 매력을 느꼈다. 아이스하키는 내게 좋은 시간을 가져다 준 인생의 반환점이다"

 

그는 운동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장애인 국가대표선수라는 목표를 갖게 됐다. 그리고 국가대표 선수로 준비하는 시간은 최 선수를 성장하게 해주었다.

 

"아이스하키대회가 국내에서 치러지는 거대한 행사라는 점과 국가대표선수라는 타이틀이 나에게 매력적이었다. 태극마크를 달고 패럴림픽에 출전하겠다고 결심한 후, 학교 가는 날은 교내 웨이트 장에서 연습하고, 주말에는 아이스하키 운동에 매진하며 주말 없이 공부하고 운동했다. 내가 담배까지 끊어가면서 운동하니 사람들은 내게 독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 바뀔 수 있다"

 

 ▲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개막 전 8일 오후, 강원 강릉하키센터에서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아이스하키 선수단 공식훈련을 하고 있는 최광혁 선수.

 

최 선수는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일상에서 많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게 주어진 현재의 시간이 얼마나 가치 있고 귀한 시간인지 늘 되새기고 있다. 탈북 청소년이나 나와 같이 장애를 겪고 있는 많은 이들이 다시 오지 않을 현재의 시간을 효과적으로 잘 보내길 바란다. 어떤 생활을 하든지 힘든 시간은 꾸준히 찾아온다. 그러나, 오늘 닥친 힘겨움을 이겨내면, 다음 번 다가온 새로운 힘겨움의 무게를 덜 수 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국가대표선수로서 더 발전된 경기를 위해 준비하겠다는 열정을 내비쳤고, 자신과 같은 장애 이웃을 위해 의족을 만들고 싶은 개인적인 바람도 전했다.

 

"패럴림픽이 끝난 이후 여전히 마음이 떠 있지만, 금방 잠재울 것이다. 다시 다가올 올림픽을 바라보며 부족했던 경기력을 채우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또한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장애에 있어서 이해도가 넓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아프리카와 같은 가난한 나라에 있는 장애인들을 위해 좋은 의족을 만들고 싶다"

 

최 선수가 넘어선 시련들은 누구나 쉽게 겪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의 대한민국 국가대표 메달리스트로서 삶이 더욱 값지다. 그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반감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 아직 깊은 신앙은 없다고 말했지만, 앞으로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선수'로서 전 세계에 태극마크를 자랑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희망의 메시지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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