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라면 잘 알고 있는 한동대학교 초대총장 김영길 박사는 진화론을 전공했던 과학자였지만, 하나님을 만나면서 창조론으로 돌이켰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다"고 여전히 고백한다. 이제 그는 유엔아카데믹임팩트 한국협의회(이하 UNAI Korea) 회장으로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지키는 참교육으로 세계의 여러문제를 해결하고 세계시민교육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여든에도 불구하고 공부해서 남 주는 것이 여전히 꿈이라며 교육의 철학을 지키고 있는 김영길 박사 이야기를 정리해봤다.
 

 ▲김영길 박사는 2016년부터 유엔아카데믹임팩트 한국협의회(UNAI Korea)회장을 맡고 있다.(사진제공=신앙계)

 
안동이 고향인 김영길 박사는 어린 시절부터 '어리석어도 좋으니 어질어라'는 뿌리깊은 경천애인의 유교사상 가정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고향이 안동인 만큼 비행기를 많이 보고 자란 덕분에 자연스레 비행기 제작에 호기심이 많았고 금속재료공학을 전공하게 됐다.
 
그는 1967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편지로 지금의 아내 김영애 권사와 연애를 시작했다. 아내는 그가 하나님을 믿게 해준 축복의 통로였지만, 그는 처음에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1974년 NASA연구원이 되면서 성경과 가까워졌다. NASA에서 첨단과학을 다루는 백여 명의 박사들이 매주 예배하며 찬송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그는 이 모습을 보고 도대체 저들이 왜 기쁘게 찬송하고 간절히 기도하는지 궁금해서 성경책을 읽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면서도 말씀이 과학적 논리에 맞지 않아 의심이 들었고, 그 의문들을 아내에게 제기하면 아내는 "너무 따지지 말고 무조건 믿으라"는 대답만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김 박사가 깨달은 한 가지가 성경지식들을 한 번에 거리낌없이 맞춰지게 했고 그는 드디어 성경을 믿었다.
 
"성경은 1600년 동안 각각 다른 장소와 관점에서 40여명의 기자들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능력이야기다."
 
그렇게 그는 예수님에게로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 그 때 <지구의 해방>이란 책을 읽게 됐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확실한 답을 찾았다고 전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졌고 이유 모를 눈물도 흘렸다. 이러한 감격을 아내와 밤늦도록 나눴고, 아내와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논리와 이성으로 성경의 이야기를 판단하는 내 모습은 이제 없다."
 
주님을 만난 후 하나님이 예배하신 길을 따르게 돼
 
김 박사는 그가 만난 하나님을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전하고 싶은 소망 때문에 어렵게 귀국을 결심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삶도 이미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셨다.
 
1978년 12월, 12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유치 과학자로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재료공학과 교수로 왔다.
 
1980년 8월 C.C.C(한국대학생선교회)에서 '세계복음화성회, 창조냐 진화냐'를 주제로 개최되는 세미나에 그가 유일한 한국측 강사가 된 것이다. 1981년 1월에 그는 300여명의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창립한 '한국창조과학회'에 초대회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이 때 자신을 바라보는 비판의 시선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부분까지도 해결해주시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해주시는 귀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해외 유치(誘致)과학자로 갓 귀국한 제가 진화론을 부정하고 있다는 비판적 기사가 실렸다. 또 연구하랬더니 창조과학이나 강의하러 다닌다는 색안경 낀 시선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 무렵 미국에서 'NASA 체크 브리프 상'과 'IR-100상'을 수상하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또한 김 박사가 풍산금속과 협력해 발명한 반도체 리드 프레임 'PMC-102'합금 제조기술이 독일에 수출돼 우리나라 최초의 '선진국 기술 수출 1호'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그는 창조과학회에서도 날로 많은 연구업적을 쌓다가 1994년 순수 기독교신앙으로 교육하는 대학 초대총장 제안을 받았다.
 
그는 교육의 길로 들어서기까지 스스로 기도를 많이 했고, 주변사람들 기도의 힘도 컸다. 그는 결단을 내리고 총장직을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그는 영어교육, 컴퓨터교육, 인성훈련을 위한 무(無)감독 시험제를 학교에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등 학생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글로벌 자질을 갖추도록 노력했다.

 

 ▲김영길 박사는 1994년부터 2014년 2월까지 한동대학교 초대총장으로 재임했다.(사진제공=신앙계)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심을 느껴
 
하지만 학교를 시작했던 이사장의 사업상 문제로 재정난이 심각했다. 몇 달간 교직원들 월급이 나가지 못한 상황 속에 국고금 지원을 받은 것으로 잠시 전용했다가 몇 달 후 원상복귀 시킨 일이 있었는데, 이게 문제가 돼 그는 53일간 감옥생활을 했다.
 
감옥생활 중에서도 그는 그 안에서 복음을 전했다. 스승의 날엔 1천800여 명의 한동대 학생들과 학부모, 교직원들이 감옥 밖에서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러주었다. 무엇보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 53일을 사용하셨고 하나님이 일하셨다고 고백했다.
 
"신기하게도 제가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오히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한동대가 자동홍보 됐고, 부족한 재정들이 채워져서 이전보다 더 많은 후원금이 모아졌다"
 
20년을 한동대 총장으로 재임하며 좁은 길을 걸어온 김박사는 2016년 5월, 췌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그는 수명이 여기까지라고 생각했지만, 시편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평안한 마음으로 치료받고 모든 병이 사라지는 기적을 경험했다.
 
김영길 박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믿음의 통로로 사용하시기 위해 이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허락하신 것을 믿고 고백했다.
 
"치료를 잘 받게 하시고 독이 몸이 퍼지지 않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김 박사는 UNAI Korea에서 그동안의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국제기구와 협력하여 국내외 세계시민 양성 교육 활성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한편, UNAI Korea는 2010년 유엔에서 출범한 유엔아카데믹임팩트(UNAI)의 미션실행 주체로서, 국내외 고등교육(대학교) 및 학술기관과 협력해 고등교육과 세계시민교육 증진을 통한 글로벌 과제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김영길 박사의 자세한 간증은 <신앙계> 4월호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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