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는 것이 제일 힘든 길로 들어서는 것. 어떤 상황 속에서도 Do not give up." 소아마비 1급 장애인이자 플루티스트 장은도 목사의 말이다. 그는 어려운 가정환경과 장애 때문에 어린시절 마음껏 공부하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을 만난 후 장애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음악예술사립대 출신 최초 장애인 플루티스트이자 목사인 장은도 목사는 자신의 모든 것이 '복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 지난 10일 경기도 수원에서 장은도 목사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데일리굿뉴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장은도 목사는 어린 시절에 술을 벗 삼는 아버지 밑에서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3살에 잘 걷고 뛰어 다니다가 척추로 바이러스가 들어가면서 열이 나 하반신부터 마비되는 소아마비 판정을 받았다.
 
영원히 완쾌되지 않고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이 진단에 장 목사와 그의 가족들은 절망의 날들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 신앙생활을 하며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하나님의 자상함으로 극복해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내 인생은 실패자였다. 장애인으로 살 팔자, 고생할 팔자, 가난할 팔자,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이후엔 그 모든 팔자가 복의 근원이 됐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선배로부터 교회를 가자는 제안을 받은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됐다. 선배의 말이라면 무조건 몸을 조아려야만 했던 시절이라서 그는 긴장이 앞섰지만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는 꿈에 교회를 갔다. 그렇게 만난 교회는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예배장소에 들어가자마자 표현할 수 없는 평안함이 느껴져 눈물이 울컥하고 올라왔다. 신실한 친구들을 만났을 뿐 아니라, 지인을 통해 플루트를 접하게 돼 학교 기악 반에서 연주법을 배우면서 플루트와 평생 인연을 맺었다."
 
기술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의견과 달리 장 목사는 "네가 밟는 땅이 모두 너의 것이 될 것이다"는 말씀에 힘을 얻어 가장 즐거워하는 음악을 하기로 확신했다.
 
그는 독학으로 플루트를 불렀고, 아무 대학연습실을 들어가 보이는 형들에게 동냥레슨을 받으면서 연습했다. 작은 방이 딸린 레코드 가게에서 플루트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1년 후엔 신촌 종합학원 악기 선생님으로 일했다. 이렇게 늘 함께 한 플루트는 장 목사의 건강도 나아지게 했다.
 
"심한 척추측만증 때문에 소화가 힘들었는데 악기를 분 다음부터 잘 됐다. 플루트를 하면서 몸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심폐기능이 좋아졌다."
 
그러나 그에게도 플루트와 거리를 두는 방황의 시기가 있었다. 그는 4년 동안 플루트를 하지 않고 다른 분야를 해보려고 교회음악계통 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런데 이 공부가 오히려 제대로 된 플루트 전공공부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장은도 목사가 플루트 즉흥연주를 선보이고 있다.ⓒ데일리굿뉴스



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기로

장 목사는 4년 학사학위로 중앙대 대학원에 입학해 본격적인 플루트 전공을 20대 후반에 시작했다. 그는 29살 대학원 졸업을 하고 플루트를 가르치면서도 학부전공부터 시작하지 못한 것 때문에 스스로 반쪽자리 선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때, 대학원 논문지도 교수님 제안으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여행 차 갔다가 오디션까지 보게 돼 비엔나음악예술사립대에 입학했다.
 
"유럽학교에서는 실기 전공생을 뽑을 때 성적합격이 되더라도 학생을 가르치겠다는 선생님이 한 명도 없으면 입학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오디션에서 장애까지 있는 나를 책임지고 가르치겠다는 교수가 있었다."
 
장 목사는 입학 후 아내와 두 딸을 한국에 두고 홀로 하는 유학생활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기도의 힘으로 대학(4년) 대학원(4년) 최고연주자(2년) 과정을 6년만에 마쳤다며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졸업식때 지도교수님은 나를 껴안으면서 제자가 아니라 친구라고 말했다. 나는 교수님께 대한민국 학생 1호였다. 어린 나이에도 마치기 힘들다는 최고 연주자과정을 삼십대에 마친 것은 기적이었다. 이는 하나님의 긍휼하심 덕분이다."
 
공부하지 못했던 '한'을 제대로 푼 그는 목사가 되기까지 많은 연단의 시간을 겪고 순종했다고 고백했다.
 
"결혼해서 피아노 학원 운영하면서 남부럽지 않은 부도 누려봤다. 그러나 나는 어느새 교만해져 있었다. 교회에서 연주 봉사만 하면 된다는 생각들이 틈타면서 하나님께 헌신하겠다고 고백했던 초심을 잃었다. 하나님은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았던 나를 연단하셨고 마침내 나는 하나님께 순종해 목회의 길을 갔다."
 
현재 장 목사는 'D.C&Logos'라는 크리스천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방문 연주를 하고있다. 가족예배를 드리기 위해 개척교회를 시작한 장 목사는 음악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계속 알리겠다고 말했다.
 
"음악선교에 뜻을 둔 학생들의 선생이자 목사로 살고 싶다. 음악선교를 통해 나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각자의 은사에 맞게 그들의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대한민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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