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교회는 최근 교회 홈페이지에 올린 성탄절 공연 동영상이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증명을 받았다. 영상에 사용된 자막의 서체 라이선스를 교회가 보유하지 않은 것이 저작권 침해 대상이 된 것이다. 한편 교회 홈페이지 관리를 외부업체에 맡겼던 B교회 역시 같은 내용의 내용증명을 요구 받았다. 이번에는 교회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동영상에 사용된 자막이 문제가 됐다.
 
지난 2007년경부터 제기되기 시작한 교회 내 저작권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코앞에 닥친 문제가 됐다. 전문가들은 "교회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각종 저작물들을 예배에 이용하는 것은 마치 훔친 물건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과 같다"며 교회가 저작권 문제에 경각심을 가질 것을 촉구했다.

 

 ▲한국교회저작권협회와 기독교 저작권 라이선싱 인터내셔널이 10일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삼일교회에서 '예배 안의 별별 저작권' 설명회를 개최했다.ⓒ데일리굿뉴스


찬송 악보 복사·영화 장면 인용…교회의 '도둑질'?
 
한국교회저작권협회(사무총장 곽수광 목사)와 국제 기독교 저작권단체 기독교 저작권 라이선싱 인터내셔널(CCLI ·함승모 한국지사장)은 '예배 안의 별별 저작권' 설명회를 열고 교회 내에서 저작권법에 저촉되는 구체적인 사례와 올바른 사용방법을 소개했다.
 
이날 설명회에서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남형두 교수는 한국교회와 저작권 문제를 십계명 가운데 '도적질하지 말라'는 계명에 빗대어 설명했다. 남 교수는 "교회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찬양 악보를 복사하고 각종 외부 동영상을 예배에 이용하는 경우, 마치 교회가 훔친 물건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는 교회가 비영리 기관이라는 점, 저작권자도 같은 기독교인이라는 점 때문에 사실상 '저작권법의 치외법권 지대'로 여겨져 큰 문제로 확대되지 않았지만, 교회 내 저작권 위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라며 "오히려 교회는 저작물에 대해 사회보다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지키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못박았다.
 
교회 내에서 저작권법이 적용되는 경우는 크게 3가지다. 찬송가와 악보 등 음악 저작물, 성경 공부 교재와 간증집 ·설교집 등 어문저작물 그리고 주보 도안과 서체 등 각종 디자인과 관련된 미술저작물이다.
 
남 교수는 "인터넷이나 타인의 블로그에서 이미지를 가지고 와 교회 홍보나 예배 순서에 사용하는 경우도 저작권법에 위배된다"며 "하지만 예배 후 광고 시간에 영화 등 외부 저작물을 보여주는 경우, 미리 보기와 같은 형식으로 예고편을 상영하는 것은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설교 표절 문제도 거론됐다. 목회자가 설교집의 예화나 다른 성도의 간증을 표현만 일부 바꿔 마치 자신이 겪은 일 인양 설교에 이용했다면 이는 설교 표절에 해당한다.
 
남형두 교수는 "설교 표절의 경우 법적 처벌이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인으로서 윤리적, 도덕적 책임과 종교적 책임을 고려한다면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문제"라고 충고했다.
 
교회 내 만연한 저작권 문제, 해결 방법은?
 
교회가 저작권 침해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식 판매용 저작물을 사용하고 정당한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한다. 가령 찬송가 저작권의 경우, CCLI나 카피케어코리아 등 음악 저작권을 관리하는 단체에 사용료를 내면 일일이 저작권을 확인하지 않아도 해당 단체와 계약을 맺은 곡들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교인 수 30명 이하의 미자립교회가 전체 한국교회의 65% 이상을 차지하는 현 상황에서, 많은 교회들이 재정적 어려움으로 선뜻 저작권을 구입해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저작권협회는 이처럼 저작권 사용료를 납부하기 어려운 미자립교회를 돕고 교회 내 저작권 위반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난 2012년 설립됐다.
 
조병범 사무국장은 "현재 100여 개의 교회가 저작권협회에 가입돼 있는데 그 중 미자립교회들에 대해서는 회비를 받지 않고 있다"며 "대형교회들이 본래 지불해야 하는 금액의 2~3배에 해당하는 회비를 냄으로써 작은 교회들은 면제해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 저작권법상 보도·비평·교육·연구의 비영리적 목적으로 저작물을 이용하는 경우는 예외적으로 합법적 이용을 인정한다. 그러나 종교적 목적에 대한 저작권 면책 조항은 없다. 반면 미국의 경우 교회가 종교 목적으로 저작물을 사용하는 경우 저작권 침해 책임을 면제하는 면책 조항이 있다.
 
남형두 교수는 "종국에는 우리나라의 저작권법도 종교적 목적의 면제 조항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며 "기독교 뿐 아니라 다른 종교도 다같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종교 목적 사용에 대해 일정 부분 면책을 허용하는 조항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남형두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교회 안의 저작권 문제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데일리굿뉴스


"한국교회, 저작권 준수 기준 마련해야"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참석자들은 실제 교회가 겪는 고민이 담긴 질문을 쏟아냈다. 한 교회 관계자는 "예배 실황을 생방송 또는 녹화해서 유투브나 SNS상에 업로드하는 것이 저작권법에 위배되는 것인지"를 물었다.
 
이에 남 교수는 "이 경우 영상은 교회의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어 저작권법에 위배되지는 않지만 초상권 침해나 명예훼손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면서도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카메라 촬영이 이뤄지고 있는 것, 영상이 인터넷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초상권 침해나 명예훼손이 성립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답했다.
 
저작권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교회 내에서 영화 등 동영상을 상영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에 대해 남 교수는 "판매용 DVD를 통해 영화 상영을 허가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상영할 수 있는 영화와 기관이 제한돼 있다"면서 "개봉 후 최소 6개월이 지난 영화를 도서관이나 구민회관, 경로당 등에서 상영하려고 할 경우 이를 허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은 한국교회가 저작권 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저작권 준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 한국교회저작권협회 조병범 사무국장은 "이미지와 폰트, 소프트웨어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는 이미 많은 교회들이 내용증명을 요구받은 상황"이라며 "음악 부문도 지금까지는 문제제기가 없었지만 해외 저작권자들이 소송 제기를 준비하고 있어 한국교회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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