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살인사건 피고인의 재판결과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피고인 김 모 씨는 남편의 머리를 장식용 돌로 수 차례 내리쳐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 4월 13일 재판부가 김 모 씨(61, 여)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과 같은 징역 4년을 선고하자, 여론은 뜨거운 갑론을박을 벌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김 모 씨를 향해 "남편을 잔혹하게 죽인 살인마"라고 비난할 수 없었다. 그의 자녀들은 오히려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의 선처를 호소했다. 김 모 씨는 지난 37년간 남편에게 모진 학대를 받은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
 

 ▲남성 셔츠·타이 전문 브랜드 'STCO(에스티코)'에서 진행했던 '여성 가정폭력 근절 캠페인' 중 한 장면 ⓒ위클리굿뉴스


죽음 부를 수 있는 범죄…가정폭력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한 통계에 근거해 "한국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피해자 수는 1년 평균 약 400명"이라고 밝혔다. 피해자를 살펴보면 여성이 절반인 200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100여명이 가정폭력으로 인해 죽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살인사건 여성 피해자의 2분의 1이 가장 안전해야 될 집안에서 가장 믿어야 할 이에게 목숨을 잃는 것이다. 홍철호 의원실(자유한국당)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전체 가정폭력 피해자 수는 4만 5,453명이었는데 이중 3만 3,818명(74.4%)이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폭력은 그 동안 한국사회에서 꺼낼 수 없는 금기어와 같았다. 유교 사상과 가부장적 사고가 만연한 한국사회의 인식은 가정에서 벌어지는 처참한 폭력에 늘 관대했다. 그리고 그릇된 관용의 가장 큰 희생자는 대부분 힘없고 약한 아내와 자녀였다. 그러나 음지에 숨어 있던 '매 맞는 아내'들이 용기를 내어 양지로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가정폭력이 흉악범죄를 양산하는 등 사회적 관심을 받으면서 피해 당사자들의 인식에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가 아닌 가족이 '죽고 사는 문제'라는 작은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가정폭력으로 신고 접수된 건수는 2013년 16만 272건에서 2017년 27만 9,058건으로 74.1% 증가했다. 이는 자구책으로 신고를 선택하는 피해 당사자들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그러나 가정폭력 신고 건수 대비 기소율은 2012년 14.8%에서 2016년 8.5%로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폭력의 8.5%만 범죄로 인정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 조사 결과,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사소한 다툼이나 단순한 가정문제라고 판단해 돌아가는 경우도 여전히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경우 폭력이라는 악순환은 물론 2차 범죄 발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에 대해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가정폭력이 범죄라는 인식이 없었다. 또한 한 사건에 대한 반복적인 접수 및 높은 재범률 때문에 통계만 보고 전체적인 가정폭력률이 증가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여전히 가정폭력에 대해서 가볍게 여기거나 오히려 가해자 입장을 대변하는 오해 등 사회와 수사기관 내 일부 인식이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면서 "가정폭력에 대한 내부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일반경찰과 여청계(여성청소년계)를 대상으로 가정폭력에 대한 교육과 인식변화, 대응 방법 매뉴얼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가정폭력추방주간을 활용해 법원·경찰 관계자와 토론을 실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처벌보다 사회 인식 및 가해자 교정이 먼저

 ▲매월 8일은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보라데이'다.ⓒ위클리굿뉴스

가정폭력 신고건수가 매년 증가하지만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바라는 것은 단순히 처벌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부장은 "상담을 통해 만나는 대다수의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가해자가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 그저 살고 싶다는 마음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박 부장에 따르면 특히 피해 여성들 가운데 이혼 의지가 확고한 여성보다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가 보호처분이나 치료를 통해 반성하고 폭력적인 성행이 교정되길 바라는 여성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는 "피해 여성들이 아이들을 위해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대다수의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먼저 사회적인 인식의 변화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가 조사한 한 통계에 따르면 '가정폭력을 감소시키기 위해 필요한 정책'의 설문조사에 대해 전체 응답자 중 '폭력 허용적 사회문화의 개선'을 꼽은 응답자가 24.9%로 가장 많았다. '가정폭력 관련 법 및 지원 서비스 홍보'는 15.5%로 그 뒤를 이었다. 가정폭력이 더 이상 창피하고 부끄러운 가정사가 아닌 심각한 범죄라는 인식과 시선이 가정폭력의 근절과 예방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라는 의미다.
 
오는 5월 8일은 '어버이 날'이다. 그리고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보라데이'이기도 하다. 매월 8일로 지정된 보라데이는 가정폭력 및 아동학대 예방과 피해자 조기 발견을 위해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시선으로 '함께 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 가정폭력의 인식에 대한 작은 변화의 흐름이 보인다. 하지만 사회의 인식과 시스템 등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가정폭력은 개인과 개별 가정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사회구성원 전체가 이 문제를 심각한 범죄로 '다시 보는(look again)'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위클리굿뉴스 5월 6일, 24호 기사)

저작권자 © 데일리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