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의 고통을 어느 누가 짐작할 수 있을 까. 『스물두 살 태훈이』의 저자이자 자폐아 아들을 둔 박상미 작가는 그 고통의 무게를 유쾌한 시선으로 승화시킨다. 감내하기 어려운 슬픔에서 성숙한 방어기제인 재치나 유머의 단계로 접어들기까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쳤을지 감히 단정조차 할 수 없다. 모든 걸 이겨 낸 뒤 드디어 찾은 세상을 관통하는 '따뜻한 시선'은 삭막한 현실을 사는 우리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지난달 24일 인천 부평구 주안장로교회에서 <스물두 살 태훈이> 박상미 작가를 만나 모자의 울고 웃기는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데일리굿뉴스


태훈이와의 동행"이 또한 주어진 삶이죠"
 
"태훈이와의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특히 아이와의 외출은 아이를 업은 채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도 같았다. 오늘은 부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나가기 전에 큰 결심을 하곤 했다."(82쪽)
 
남들 모두가 맞는 평범한 일상도 '장애'라는 이름 앞엔 곧 특수함으로 둔갑돼 버렸다. 이들 모자에게 일상이 전쟁터가 된 순간, 박상미 작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픈 고비의 순간을 맞았다.        
 
"이미 모든 것을 초연하게 받아들인 부모들이 부러울 정도였어요. '전 어떻게 해야 되죠' '이 고통이 미치겠어요!' 라며 하나님께 계속해서 발악했죠. 그러다 보니 결국엔 '어떻게 죽을까'라는 최악의 생각까지 가게 되는 거에요. 그때는 아이가 정상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집착이 마음을 옭아맨 요인이 됐다는 것을 몰랐을 때였죠."     
 
전쟁터에 끌려 나온 억울한 마음으로 평생을 살 수는 없었다. 박상미 작가는 삶에 대한 원망 대신 집착을 버리고 오롯이 삶을 받아들이기로 결단했다. 아들의 장애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자 의미 있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모든 상황과 사실을 받아들인 다는 것. 사실은 말이 쉽지 너무 어렵죠. 그러나 이 또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태훈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발견했죠. '얘는 정말 약하지. 인격적으로나 영적으로 섬길 대상이구나' 작은 자를 섬기신 하나님의 삶이 내 삶 가운데 임함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순간의 행복 쫓다보면…반드시 좋은 날도 옵니다"


모든 것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자, 태훈 씨를 향한 시선도 달라졌다. '서로 사랑에 빠졌다' '귀여워 죽겠다'라는 말이 시종일관 나올 정도로 긍정적인 마음이 넘쳐났다. 화가를 꿈꾸던 그는 사는 것에 바빠 그림 그리는 것을 잊고 살다가 아들로 인해 다시 그림도 그리게 됐다.
 
"서로 사랑에 빠져야 될 것 같아요. 아이 자체를 존중해주고 타인의 삶과 비교하려는 태도를 없애려는 게 중요하죠. 결국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아이에게 영향이 가거든요. 지긋이 바라보면 예쁜 부분이 있어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눈높이를 맞추되 때로는 한 템포 물러서서 바라볼 필요성도 있죠."
  
그는 태훈 씨를 바라보면서 발견한 일상의 기쁨을 그림일기로 남기기 시작했다. 엉뚱한 태훈 씨의 어록과 함께 삶 속에서 찾은 소소한 순간이 기록으로 쌓여 특별한 삶으로의 변화를 이끌었다. 고통스럽기만 했던 예전의 삶이 어느덧 모자에게 '유쾌함'과 '소중함'으로 점철된 일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하루하루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행복에 대한 기준이 다르니까 결국 어디에 기준을 두냐에 따라 삶의 방향도 결정되죠. 하루만이라도 '행복을 위해 즐겨야겠다'는 마음이 큰 변화를 이끌었어요. 긍정적이고 늘 밝은 저희의 모습을 보고 요즘엔 주변사람들도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줍니다."
 
이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게 아닐 터다. 삶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고자 치열하게 노력한 데서 빗어진 결과나 다름없다. 그러나 박상미 작가는 끝까지 이 과정들을 말로 옮기지 않았다. 책 속에서도 오로지 유머러스 한 감각만이 살아 움직일 뿐이다.
 
어쩌면 이것은 박상미 작가가 전하고픈 메시지이자 모두에게 건네는 위로 자체일지 모른다. '나보다 힘든 이들이 수두룩할 것'이라며 수줍음마저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삶을 긍정하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 지 온전히 전해졌다.
 
"지금 세상엔 힘든 사람들로 넘쳐 나잖아요. 절망까지 거의 다 가기도 하고. 조금만 더 견뎌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무작정 인내하란 말은 아닙니다. 그저 방향을 조금 바꿔보라는 말을 건네고 싶어요. 결국 우리는 각자의 역할이 있고 자기 이치에 맞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소중하게 받아들여 보는 거에요. 그러면 분명 행복에 더욱 가까워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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