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는 인간이 깔아놓은 직선의 길. 과정이 아닌 결과(목적지)를 향해 가장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곳이다. 인간은 이 땅 구석구석에 도로를 깔아 사람과 재화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나른다. 그래서 도로는 굽지 않고 ‘곧다'. 곧은길이 가장 빠르기 때문이다. 곧은길은 오직 ‘자동차’를 위한 길. 속도와 효율을 위해 존재하는 무자비한 길 ‘도로’를 건너다 오늘도 수많은 생명들이 하릴없이 죽어간다. 숨을 쉬고 심장이 뛰던 생명들이 도로위에서 먼지가 된다. 이들에게 도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천적’이다.
 
 ▲속도와 효율을 위해 존재하는 무자비한 길 ‘도로’를 건너다 오늘도 수많은 생명들이 하릴없이 죽어간다. 이들에게 도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천적’이다. 사진=영화 <어느날 그 길에서> 중 한 장면

 
로드킬 개체 수 5년 새 3배

도로에서 희생되는 야생동물 수가 5년 새 3배로 늘어나는 등 로드킬 사고가 급증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로드킬 건수는 2012년 5,534건에서 지난해 1만 7,320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매일 48마리의 야생동물이 도로 위에서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로드킬은 2012년 2,360건에서 지난해 1,884건으로 다소 줄었지만, 일반국도의 로드킬 건수는 2012년 3,174건에서 지난해 1만 5,436건으로 크게 늘었다. 공식 집계에 잡히지 않는 지방도와 국도에서 발생한 로드킬까지 감안하면 실제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종별로는 고라니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지난해에만 1만 1,443마리가 로드킬을 당했다. 그 뒤로 고양이가 3,066마리, 너구리 1,040마리, 개 787마리로 적지 않은 수가 도로 위에서 희생됐다. 멸종위기종인 천연기념물 삵도 7마리나 피해를 입었다. 이만하면 종을 불문하고 ‘도로’가 가장 큰 천적인 셈이다.

로드킬은 야생동물이 많이 이동하는 시기인 초여름(5~7월)과 가을(9~10월)에 집중된다. 국토교통부가 2012~2016년 일반국도에서 발생한 로드킬 발생 건수를 월별로 분류한 결과, 5월이 7,914건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6월 6,034건, 10월 3,948건, 11월 3,567건 등의 순이었다.

도로에 뛰어든 동물은 자동차로 인해 다치거나 목숨을 잃지만,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 역시 동물로 인해 위험에 빠지게 된다. 고속도로의 경우, 로드킬로 인한 인명 사고가 2012년에만 14건이 발생해 2명이 사망하고 27명이 다쳤다. 2008년 10월에는 충남 홍성군의 도로에서 산악회원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갑자기 나타난 야생동물을 피하려다 전복돼 승객 한 명이 숨지고, 24명이 중경상을 입기도 했다.

환경부와 국토교통부는 "도로에서 발생하는 야생동물 사고를 줄이기 위해 ‘동물 찻길 사고(로드킬) 조사 및 관리 지침’을 제정하고 6월 28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로드킬 예방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희생되는 야생동물의 수가 증가 추세를 보일 뿐만 아니라 운전자의 안전에도 위협이 된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정부는 새로 마련한 지침을 통해 환경부·국토부 등에서 각각 수행한 로드킬 사고 조사를 도로관리기관으로 통합하고 동물 찻길 사고 집중 발생 구간 사전예보 등 동물 찻길 사고 예방을 위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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