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신앙의 관계

 
▲정재영 교수 ⓒ데일리굿뉴스
계몽주의 이래로 인간의 이성을 중시해 온 인류의 역사는 믿음보다는 관찰과 실험에 기초한 과학적 사고를 발전시키며 사회를 종교로부터 독립시켜나갔다. 흔히 종교는 ‘믿음’에서 출발하지만 과학은 ‘의심’에서 출발한다고 표현되듯이, 종교와 과학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달려왔다. 여기서 ‘의심’한다는 것은 사람을 의심한다는 것이 아니라 뉴튼이 사과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의심했듯이, 당연시되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합리성에 기반하기보다는 비합리적인 것조차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종교는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학과 신앙은 서로 양립할 수 없으며 이 둘은 일종의 제로 섬(zero-sum) 관계로 생각해 왔다. 신앙인들은 과학적으로 또는 합리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과학적인 사고를 하거나 과학적인 설명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종교 신앙을 갖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성경 말씀은 많은 초자연적이고 비과학적인 현상을 많이 다루고 있기 때문에 과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믿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에 과학과 신앙 사이의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은 이 둘이 결코 상반되는 것이 아니며 얼마든지 병존 가능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한국교회탐구센터>에서 한국 개신교인들이 과학과 신앙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으로는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론과 과학에서 말하는 진화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고자 의식 조사를 실시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작년에 한 장관 후보자가 창조과학을 신봉하는 것으로 알려져 우리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면서 개신교인들 사이에 창조와 진화에 대한 오랜 논쟁이 다시 관심을 끌게 된 상황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창조론과 진화론
 
조사 결과를 보면,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기록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과학적으로도 틀림없는 사실이다’와 ‘신학적 교훈이 핵심이므로 과학적으로 따지는 것은 부적절하다’가 각각 42.0%, 41.2%로 높게 나타났으며,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 기록된 설화/신화이다’는 12.0%로 적게 나왔다. 성경 말씀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은 이것이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과학적으로도 옳다고 보는 반면에, 성경 말씀 중에 과학에서 말하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고 신학적인 메시지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따지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조사 결과, 현실에서도 이 두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성경을 단순히 설화나 신화로 보는 입장은 소수를 차지하였다.
 
천지 창조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처음에 모든 생물을 각기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고 보는 일반적인 창조론의 입장과 하나님이 처음에 생명체를 창조하신 이후에 진화의 방법을 사용해서 오늘날의 생물 종류가 되게 하셨다는 유신 진화론 또는 진화적 창조론의 입장이 있다. 그리고 무신론적 입장에서는 하나님 없이 우연히 생명체가 만들어져서 현재의 생물 종류로 진화되었다고 본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이 모든 생물을 각기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창조론이 64.5%로 가장 높았으며, ‘하나님의 섭리 하에 현재의 생물 종류로 진화되었다’는 진화적 창조론이 16.9%, ‘하나님 없이 현재의 생물 종류로 진화되었다’는 무신 진화론이 11.5%로 나타났다. 최근에 진화적 창조론에 대한 입장이 알려지면서 진화론과 창조론의 양립 가능성에 대해 인식하게 되고 기존의 창조론이 과학적인 근거와 맞지 않는다는 데서 추론된 진화적 창조론이 일종의 합리적인 대안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이번 조사에서 진화적 창조론이 무신 진화론보다 높게 나온 것은 이러한 경향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사실 진화론은 과학적인 발견에 따라 만들어진 이론이고 진화론 자체가 무신론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공통 조상에서 진화해서 오늘날의 종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진화론의 요지이고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진화론에서도 설명하지 못한다. 곧 진화론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생명의 다양성에 대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진화론 자체는 무신론을 지지하지도 않고 유신론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진화론을 근거로 무신론을 주장하는 것이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무신 진화론자들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창조론자들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진화의 방법을 사용해서 창조하셨다고 믿는 사람들은 기독교인들도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창조냐 진화냐’는 꽤 오래된 논쟁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진화론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진화론의 입장에 선다고 해서 창조론을 반드시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진화론 자체가 무신론을 입증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오히려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로 바꾸는 것이 적절하다. 과학적 설명은 그 자체로 중립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유신론적인 입장에서 보느냐 무신론적인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서로 다르게 활용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해석’이다. 그 자체로 중립적인 진화론을 비롯한 과학적인 사실을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할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부재로 설명할 것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합리적인 신앙
 
우리는 성경 내용이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합리적이라는 것은 ‘이치에 맞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이치에 맞고 납득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에서는 많은 개신교인들이 성경의 내용에 대해 의심이 들거나 과학적인 사실과 맞지 않는다고 느낄 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탐구하기 보다는 쉽게 포기하거나 한 쪽의 편을 드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쉽게 결론에 이르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회피하거나 빨리 결론을 내림으로써 마음속의 불편함을 제거하고 싶은 심리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빨리 결론을 내리는 것은 잘못된 결론으로 인도될 수도 있으므로 신중하게 탐구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이와 관련하여, 어떤 현상을 객관성 있게 설명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약화되거나 신앙이 약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병에 걸렸을 때 기도에만 의지하지 않고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는다고 해서 신앙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주위에서 보면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이며 권위자로 인정받는 사람조차도 신앙에 대해서는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또 그러한 사람이 이른바 ‘신앙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신앙은 의심이 아니라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이지만, ‘덮어놓고’ 믿기보다는 이성으로 따지며 ‘깊이 상고’하는 태도로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결코 신앙에 반(反)하는 것이 아님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신앙관에 대해서 존중해주는 태도이다. 현재 한국 개신교인들이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깊이 사고하지 않고 너무 쉽게 결론을 내리고 이것을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진화론 역시 마찬가지이다. 진화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서 진화론은 무조건 틀렸다는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신앙이 없다고 단죄한다. 우리는 다양한 생각과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 공동체는 획일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 속에서 합의를 추구해 가는 것이다. 한국 교회가 다양한 생각을 가진 개인들을 존중하고 포용하며 서로 간에 소통할 수 있는 진정한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저작권자 © 데일리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