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봉 칼럼] 한국교회 침체에서 벗어날 길이 있다

십자가복음의 유업 8

여주봉 목사(포도나무교회)

등록일:2018-08-16 11: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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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사야 하반부에 나오는 신약의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유업에 대해서 몇 달 전부터 살펴보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유업을 지금 한국교회에 제시하고 계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 유업은 십자가의 복음에 주어진 유업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철저하게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세워질 때, 그 유업들이 그 교회 가운데 차고 넘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신약의 교회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즉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고전 3:11).

나는 신약교회의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 속에는 예수님이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
 ▲여주봉 목사 ⓒ데일리굿뉴스
함과 구원함이 되시는 삶 뿐 아니라(고전 1:30), 예수님을 아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와 목적이 되는 삶이 포함되어 있다고 확신한다(고전 2:2). 사실 고린도전서 1:30과 2:2은 서로 분리될 수 없이 같이 간다. 그래서 지금까지 예수님이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시는 삶을 살펴보았고, 이번부터 예수님을 아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와 목적이 되는 삶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우리 신앙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이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을 단 한 마디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1서 1:3).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과거에 살펴본 적이 있다.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즉 하나님을 아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신앙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우리의 모든 것으로 하나님(예수님)을 알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신앙의 기초이고, 그것이 교회의 기초이다.

더 나아가, 고린도전서 3:11 속에 고린도전서 2:2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 단순히 예수님의 십자가에 관한 몇 가지 이론이나 진리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었다는 사실을 보아도 명백하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인격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었다.   

고린도전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은 그가 전한 메시지를 복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17절). 그는 이어서 그 복음을 십자가의 도라고 부르고(18절), 나중에는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2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3-24). 사도 요한도 그가 전한 복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1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요1서 1:1-2).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인격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복음의 능력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관한 몇 가지 사실들을 듣고, 그것들에 대해 지적으로 동의한다고 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의 조명으로 만나게 되면, 그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복음이 인격체라는 사실은 고린도전서 2:2에서도 잘 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에서부터 계속 그가 복음을 전한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 1:17).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 1:23).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고전 2:1).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2:2에서 그는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전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했어야 옳다. 그래야 앞뒤가 물 흐르듯이 잘 연결된다. 그런데 그는 “전하지 아니하기로”라는 말 대신에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복음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정말 핵심적인 말이다. 복음은 인격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아는 만큼 그분을 전할 수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자신이 먼저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알기를 그토록 추구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 만큼 우리 삶에서 그 복음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 예수님을 안다는 말의 의미는 전에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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