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에는 항상 '사람'이 있어요"

<친밀함> 출간 '사람살리는교회' 라준석 목사

조준만(jojunman@goodtv.co.kr)

등록일:2018-08-26 20: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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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새순교회’를 섬기다 한국으로 돌아와 ‘사람살리는교회’를 섬기고 있는 라준석 목사. 한국에 어떻게 다시 오게 됐는지 묻는 질문에 “거창한 비전을 받은 건 아녜요”라고 너털웃음을 짓는다. '조국교회를 살리려고', '이 땅의 부흥을 위해서' 같은 말로 포장할 법도 한데 그는 시종 밝은 미소를 지으며 떠나온 교회에 대한 미안함, 새롭게 섬기는 교회에 대한 꿈을 이야기했다. 몰아가지 않고, 다그치지 않고 즐거움이 있는 공동체. 그가 바라는 교회의 모습이다. 왜 제일 큰 교회. 성장하는 교회가 아니라 웃음과 즐거움이 있는 공동체를 지향할까? 그가 만나고 경험한 하나님이 다그치지 않고 친밀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생각은 최근 펴낸 <친밀함>에 잘 나타나 있다. 사람살리는교회에서 라준석 목사를 만나 책 <친밀함>에 대해 묻고 듣는 시간을 가졌다.  
 
 ▲<친밀함>을 펴낸 라준석 목사 ⓒ위클리굿뉴스

 
-세상은 하나님에 대한 편견이 가득합니다. 어떻게 하면 ‘친밀’하신 하나님을 세상 가운데 전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하나님은 따뜻하시고 친밀하신 분이시죠. 그런데 논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을 무섭게 생각하거나 딱딱하게 생각해요. 왜일까? 그 원인은 그들이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을 보고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요한복음 13장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하나님의 친밀함을 전하는 것은 우리의 행동이고 삶이라고 생각해요. 믿는 우리가 서로 친밀하게 삶을 살고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세상 가운데 보여주면 저들이 믿는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구나 느끼지 않을까요?”
 
-그런데 주변을 보면 하나님과만 친한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들을 보면 하나님이 궁금해지지 않더라고요.
“쇼윈도 부부와 같은 거죠. 다른 이에게 보여질 때는 친한 척을 하지만 막상 둘만 있을 때는 안 친한 부부. 하나님과만 친한 사람은 결국 하나님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하나님과 친하다면 하나님 마음을 보게 되죠. 하나님 마음에는 항상 ‘사람’이 있어요.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해보니 하나님은 정말 많이 참으시고 세심하게 살피시고 다 공급하시고 예비하시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있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 없이 하나님과만 친한 사람들은 다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내가 상상한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말이죠. 우리의 삶은 사람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삶이어야 합니다.”
 
-함께 울고 우는 삶. 그런데 오늘날 교회 공동체는 깨어짐과 실패를 잘 품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실패가 곧 신앙의 부족, 개인의 허물 때문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아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공을 원하실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탁월성’이라고 생각해요. 이 탁월성은 세상이 말하는 최고와는 달라요. 내가 선 자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탁월성이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요구하시지 않으시죠. 하나님 자체가 능력이시니까요. 하나님은 능력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를 보십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때마다 내 능력보다 나의 태도를 보십니다. 그래서 시련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모두가 날 잊은 것 같고, 내가 선 자리가 낯선 시간들이 반드시 우리 인생을 찾아옵니다. 그때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에요.”
 
-요즘 세상을 보면 친밀함이 없음을 봅니다. 세대와 성별, 정치적 노선, 경제적 수준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이 나뉘고 갈려 있어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어떻게 차이를 인정하고 품을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제가 내린 답은 ‘좋아’해야 차이도 인정하고 또 넉넉하게 품을 수 있다는 겁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질투하기 보다는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저 사람은 하네? ‘대단해’라고 칭찬해주고 좋아해주면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진리 안에서 잘못된 것이 있다면 옮고 그름에 대해서 권면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스타일’의 차이는 넉넉하게 즐거워해 주면 어떨까요. 누군가를 판단하기보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깨어진 이 땅을 회복하고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을 얻는 길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이런 목회자와 함께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했다. 교회가 그리고 목사가 이렇게 따뜻해도 되는 걸까? 성실한 제자가 아니어도, '예수면 다다'를 외치지 않아도 '괜찮구나'라는 걸 느꼈다. 아주 오랜만에 뭔가 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위로를 받았다. 언제쯤 무서운 하나님, 부자 하나님을 넘어 '우리를 두 팔 벌려 맞으시는 따뜻한 하나님'을 향해 아이처럼 안길 수 있을까?
(위클리굿뉴스 8월 19일, 37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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