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성도의 등장

 
▲정재영 교수 ⓒ데일리굿뉴스
한국 교계에서는 언제부터인가 ‘가나안 성도’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하였다. 어떤 이는 십 수년 전부터 이 말을 쓰기 시작하였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이십년 전에 신학교 다닐 때에도 이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한다. 기록에 의하면 1970년대에 함석헌 선생이 ?씨알?지에 의미는 다르지만 이러한 표현을 쓴 것으로 나타나 이미 40년 전부터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나안 성도’란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은 가지고 있지만 현재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찾아 다녔듯이 ‘새로운’ 교회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가나안’이라는 말을 거꾸로 읽으면 ‘안나가’인 것과 같이 교회를 나가지 않는 또는 의도적으로 ‘기성’ 교회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필자는 이 현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종교사회학의 관점으로 이 현상을 분석하였고, 그 결과를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 가나안 성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IVP, 2015)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가나안 성도의 실체를 확인하고 그 규모를 확인하였으며 이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이 없이 교회를 띄엄띄엄 다녔던 사람들이 아니라 10년 이상 교회를 다녔고, 중직자를 포함하여 직분자들이 있었으며 교회를 다닐 당시에 절반가량이 구원의 확신이 있었다고 응답했으며 90% 가량이 교회 활동에 비교적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으로 나타나 흔히 말하는 선데이 크리스천과 같은 ‘명목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교회를 옮긴 경험을 보면, 45.7%가 교회를 옮긴 경험이 없고, 여러 교회를 옮겨 다녔다는 응답은 6.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이들이 교회 쇼핑족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아래에서는 ‘한목협’으로 줄여 씀) 조사 결과에 의하면 한국의 개신교인들이 평균 2.7회 교회를 옮겼다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오히려 교회 이동 경험이 적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한 교회에서 오랫동안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으며 또한 현재도 떠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교회에 큰 도전이 되고 있다.

늘어나는 가나안 성도

문제는 가나안 성도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의 연구에서는 2014년에 <한목협>에서 조사한 결과에서 10.5%가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것을 바탕으로 대략 100만 명에 가까운 가나안 성도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에 대해서 다소 과장된 것이 아니냐는 반론도 있었지만, 한편에서는 떠난 사람이 100만 명이라면 떠날 사람도 100만 명은 되는 것 같다는 반응도 있었다. 지금은 이러한 예상이 현실이 되었다. 지난 2017년 <한목협> 조사 결과에서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가나안 성도는 23.3%로 파악되었다.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 중에 가장 높은 비율이다. 2015년 인구센서스에서 파악된 개신교 인구가 9,676천명에 대입하면 가나안 성도는 2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것은 연령별, 계층별로 다를 것으로 추정되는데 특히 종교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젊은 층에서 가나안 성도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책임을 맡고 있는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설 <21세기교회연구소>와 <한국교회탐구센터>가 공동으로 조사한 ‘평신도의 교회선택과 만족도’ 조사에서는 20대의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만족도가 전체 연령대에서 가장 낮았고 이에 따라 교회를 떠날 의향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는 교회를 떠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에게 교회를 떠난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어보았는데, 절반을 겨우 넘긴 55.0%만이 계속 다니고 싶다고 응답하였고, 28.0%는 떠날 생각이 다소 있다고 응답하였으며 4.8%는 떠날 생각이 매우 많다고 응답하여 현재 교인들의 3분의 1이 교회를 떠날 의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특히 20대에서 계속 다닐 의향은 40.6%에 불과(떠날 의향은 42.1%)하였는데, <학원복음화협의회>에서 2017년에 조사한 ‘대학생 의식 조사’ 결과에서는 대학생 기독교인 중 28.3%가 가나안 성도로 파악되어 이것이 입증된 셈이었다. 마찬가지로 블루칼라에서도 교회를 계속 다닐 의향은 40.2%에 불과하였고, 절반을 넘는 50.2%가 교회를 떠날 생각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경제수준하고도 상관관계가 있었는데, 상류층과 중간층에 해당하는 교인들은 60% 이상이 교회를 계속 다니고 싶다고 응답했으나 하류층에서는 44.4%만이 계속 다닐 의향이 있었고, 38.6%가 떠날 의향을 나타내었다. 이 역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사회적으로 높게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의 주류로 활동하고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주변부에 머물며 교회를 떠날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통계 결과이다.

교회를 떠난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는 61.3%만이 다른 교회에 나갈 것이라고 응답하였고, 22.1%는 개신교인으로 있지만 교회에 출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하였다. 그리고 5.3%는 다른 종교로 갈 것이라고 응답하였다. 따라서 개교회 단위로 생각하면 각 교회는 33% 정도의 교인이 떠날 가능성이 있는데, 그 중의 61% 가량만 다른 교회에 출석하고 그 중의 22%(전체 교인의 6% 정도)는 비교인 일명 가나안 성도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것은 가나안 성도의 수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임을 보여주는 통계 결과이다. 그리고 이렇게 가나안 성도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의 신앙생활이나 목회 방식이 이들에게 설득력을 갖지 못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가나안 현상을 교훈 삼아야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가나안 성도들의 현재 상태는 교회를 떠난 지 평균 10년 가까이 되어가고, 그들 중에 상당수는 지금도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어 정체성이 뚜렷한 기독교인임에도 신앙 모임에는 대부분 참석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중 3분의 2는 교회에 다시 나가고 싶은 의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교회는 세심한 전략을 세워야할 것이다. 이를 위해, 떠나는 이유에 따라서 가나안 성도들을 유형별로 분류해 보면, 세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첫째는 뚜렷하게 기성 교회에 불만을 가지고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다. 둘째는 특정 교회에 대한 불만보다는 교회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원해서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다. 마지막 유형은 특별한 의식 없이 이사와 같은 환경의 변화나 개인적인 이유로 교회를 안 나가게 된 일종의 ‘귀차니스트’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유형들을 감안하여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잠정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방안은 이러하다. 마지막 유형에 속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대안보다는 일반적인 전도 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면 될 것이다. 두 번째 유형에 속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이들을 교회로 돌아오게 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이들이 당장 기존 교회로 돌아오지는 않더라도 이들 스스로 신앙 모임을 함으로써 신앙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몇 년 전에 한국을 방문한 필립 얀시는 가나안 성도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교회 문제 때문에 “그렇게 떠난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불에서 꺼낸 숯은 차가워지게 마련이다. 성숙한 기독교인이 교회 안에 계속 남아 개혁과 새 생명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오늘날 유럽교회가 그렇듯 텅 빈 유물로 전락할 것이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따라서 이러한 유형의 가나안 성도들을 교회로 데려오기를 애쓰기보다 이들이 스스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들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도 있다.

기성 교회에서 더 주목하게 되는 것은 첫 번째 유형에 속한 사람들일 것이다. 이 유형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방안은 무엇보다도 기성 교회가 갱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들의 불만이 이기적인 차원이나 개인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에 대한 진지한 문제 제기라면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것이 결국 얀시가 경고한 바이기도 하다. 한국 교회가 유럽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고 생명력 있는 공동체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한국 교회의 현실에 대한 개혁 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특히 첫째 유형과 둘째 유형은 개념상으로는 분리되지만 현실에서는 서로 중첩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기성 교회에 대한 불만이 교회라는 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 교회에 대한 갱신 노력이 두 번째 유형에 속한 사람들을 교회로 돌아오게 하기는 어렵다고 해도 이 유형에 속한 사람들의 증가를 방지하거나 약화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가나안 성도를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가나안 성도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신앙생활이나 교회생활이 이들의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가나안 성도들은 과거의 성도들과 달리 맹목적인 충성을 하지 않고 교회가 공동체라 하더라도 획일적인 전체주의가 아니라 협의와 조정을 통해 공동체를 이루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이렇게 다양해지고 높아진 성도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스스로 공동체임을 표방하지만 그 공동체의 성격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가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 교회가 다양한 생각을 가진 개인들을 존중하고 포용하며 서로 간에 소통할 수 있는 공동체성을 회복함으로써 탈현대 시대에도 종교적 의미를 담지할 수 있는 진정한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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