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종교를 대하는 관점은 어떠할까. 북한과의 교류가 끊어진 상황에서 북한의 소식을 알 수 있는 경로는 많지 않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언론매체를 토대로 그들의 종교에 관한 인식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끈다. 북한의 조선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종교기사는 아이러니하게도 남한의 종교단체 소식이었다.
 
 ▲'로동신문'에 실린 16년간의 종교기사를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다뤄진 주제는 남한 종교단체들의 소식이었다.

16년간 종교기사 428건…한상렬 목사 최다 언급 
 
북한교회연구원 유관지 원장은 월간지 ‘기독교사상’ 최근호에 북한 '로동신문'에 실린 16년간(2002-2017)의 종교기사를 분석한 자료를 게재했다.
 
이에 따르면 가장 많이 다뤄진 주제는 북한의 종교소식이 아닌 남한 종교단체들의 소식이며, 그 태반이 종교인 또는 종교단체가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거나 성명을 발표했다는 내용들이다. 이런 기사는 전체 종교 관련 기사 428건 가운데 4분의 1정도인 106건을 차지한다.    
 
예컨대 2002년 초에는 '민족의 량심으로 부쉬(부시) 징벌에 떨쳐 나서자 종교인들과 대학생들 주장'(2월 21일) 등의 제목을 달고, 남한의 종교인들이 미국을 맹렬히 반대한다는 기사를 여러 번 실었다.
 
그 해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고가 일어나 이에 항의하는 시위도 많았는데, 당시 '로동신문'은 이와 관련한 남한 종교계의 동향을 자세하고 강렬한 어휘를 빌어 보도했다.
 
또 해당 기간에 자주 언급된 인물 역시 남측 종교인사인 한상렬 목사였다. 그는 2010년 6월 당국의 허가 없이 방북해 70일간 북한에 머물면서 여러 활동을 한 인물로, 신문은 이 기간 동안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보도했다. 그가 평양을 떠난 후에도 남한에서 재판을 받은 일과 그 밖에 그와 관련된 일들을 기사화한 건수도 총 30건에 달한다.
 
반면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위원장을 지낸 강영섭 목사의 경우, 이름이 등장하는 빈도가 매우 낮다. 강영섭 목사는 조그련 위원장 외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 등 여러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주요 직책을 맡은 인사였음에도 '로동신문'은 2012년 그의 사망사실 조차 보도하지 않을 정도였다.
 
결국 대중선전선동 이용…南 분열조장 사건 키워

 
분석한 관련 기사와 그 내용으로 보아 다양한 유추가 가능하다. 먼저 '로동신문'의 해당 성격을 보면, 북한의 종교기사가 왜 남한 종교단체들에 편중돼 있는지를 추정해 볼 수 있다.
 
로동신문은 1945년 창간된 이래 지금까지 북한을 대표하는 매체로 부동의 위치를 지켜왔다. 유 원장은 신문에 대해, "북한의 중심 통치기구인 로동당의 입장을 대변하고 북한의 이익을 위한 매체이며, 북한의 용어를 빌면 '대중 선전선동'의 가장 강력한 도구이자 무기"라고 규정했다.
 
즉 매체 특성상 '대중 선전선동'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건이나 한상열 목사 모두 반미정서와 친북인사 등 당시 남한 사회의 분열을 조장한 사건에 해당한다. 결국 이 같은 사건을 키워 북한 선전에 활용했음을 추측 가능케 한다.
 
이와 별개로 또 다른 문제는 2010년대 들어 북한의 종교 관련 기사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전에는 매년 30~50건 정도의 종교 관련 기사가 실렸다면, 2017년만 해도 5건에 그치는 등 극감했다.
 
이는 이전엔 종교가 선전, 선동 등에 활발히 활용됐다면, 현재는 북한 내에서 이러한 경향마저 현저히 줄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제는 조그련을 비롯해 북한의 교회, 그리고 종교 자체가 북한 내에서 관심 밖의 일이 되면서 언급조차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대해 유관지 원장은 "편집방침 또는 선전선동 방향의 변화, 종교정책의 변화 등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추정해보지만, 정확한 이유는 파악되지 않는다"며 "다만 종교에 대한 북한의 공식적인 태도는 우호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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