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봉 칼럼] 한국교회 침체에서 벗어날 길이 있다

십자가복음의 유업 9

여주봉 목사(포도나무교회)

등록일:2018-09-12 10:3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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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사야 하반부에 나오는 신약의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유업에 대해서 몇 달 전부터 살펴보고 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유업을 지금 한국교회에 제시(offer)하고 계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유업은 십자가의 복음에 주어진 유업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철저하게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세워질 때, 그 유업들이 그 교회 가운데 차고 넘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신약의 교회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즉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고전 3:11). 나는 신약교회의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 속에는 예수님이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시는 삶 뿐 아니라(고전 1:30), 예수님을 아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와 목적이 되는 삶이 포함되어 있다고 확신한다(고전 2:2). 나는 지난  달부터 예수님을 아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와 목적이 되는 삶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여주봉 목사 ⓒ데일리굿뉴스


고린도전서 1:30과 2:2은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간다. 즉, 예수님이 우리의 의로움이 되시는 삶과 예수님을 아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와 목적이 되는 삶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빌립보서 3장에서도 그 점을 잘 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신앙은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삶이라고 말하고 난 뒤 이렇게 말한다. “7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7-12).  

우리가 전에 살펴본 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의지하는 삶을 살려면 성령님의 조명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자신을 “계시”(조명)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알기 위해 달려가야 한다. 그 때 성령의 조명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미 이루신 승리를 선명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위에 믿음으로 섬으로써 그 승리를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적으로 경험할 것이다.  

사실 종교개혁자들이 말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온 의였다.  (그것이 정확하게 성경이 말하는 바다.) 그러나 오늘날 너무나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말하면서, 소위 개혁주의 신앙을 말하면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소홀히 한다. 그 결과, 그들의 삶 속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교리와 이론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 능력은 거의 소멸된 상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정확하게 로이드 존스 목사가 그의 책 말한 『부흥』(생명의 말씀사)에서 죽은 정통주의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그는 그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항목에 들어 있는 제일 되고 가장 우선적인 문제거리는 인격 자신과 옳은 관계를 맺으려 하기보다는 그 인격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정통적이지 못한 사람들의 문제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에 관한 교리에 있어서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지적하는 잘못은 교리, 참된 교리, 인격에 관한 참된 교리를 인격이 서야할 자리에 세우는 무서운 위험입니다. 그것은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적인 사람들, 정통적인 사람들이 흔히 걸려 넘어지는 매우 흔한 함정입니다. 정통적이면서도 죽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여러분이 교리에서만 머물고, 어떤 정의를 하는 데서만 머물고, 교리의 목적은 그 교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리는 다만 그 인격을 알게 하고 이해하게 하고 그 인격과 교제하게 우리를 인도해 주는 구실을 합니다.”(『부흥』, 80쪽). 그러면서 그는 그 죽은 정통주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실질상 죽은 정통은 이단만큼 나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죽은 정통은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같은 책, 81쪽). 그는 그 책 다른 곳에서 하나님에 관한 성경적인 지식을 컵에 그리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나온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을 우유에 비유했는데, 죽은 정통주의는 마치 목이 마르고 영양실조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에게 금으로 된 아름다운 컵, 그러나 비어 있는 컵을 갖다 주는 것과 같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이다. 복음의 능력은 교리, 그것이 아무리 옳은 교리라 할지라도, 교리 자체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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