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12월 20일 대구 덕원중학교 2학년 권 모 군이 3월부터 서 모 군과 우모 군 등 다수의 같은 반 학우들로부터 상습적 괴롭힘(물고문, 구타, 금품 갈취 등)을 당했다는 유서를 남긴 후 자신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학교폭력과 관련한 대책으로 시행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폭력예방의 당초 취지와는 달리 교육현장의 법정화가 우려되고 있다(사진은 지난해 8월 27일 전북 전주 한 중학교 학교폭력 피해 학생이 투신한 것과 관련 가해 학생들에 대한 학폭위가 열린 당시 학부모 등이 학교폭력을 엄중하게 처벌할 것을 촉구하는 시위 모습). ⓒ연합뉴스

일명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으로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보여 주는 사건의 하나다. 매년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부모들은 자녀가 학교폭력에 시달리지 않을지 노심초사한다.

일부 학교폭력의 경우 ‘때린 놈은 다릴 못 뻗고 자도 맞은 놈은 다릴 뻗고 잔다’는 속담이 무색할 정도다. 가해학생은 기세가 등등한 반면 피해학생은 육체적·정신적 충격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정부는 학교폭력과 관련 ‘단순·경미한 학교폭력은 당사자가 화해했을 시 학교장이 자율적으로 해결한다’는 취지 아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만든 현행 학교폭력예방법과, 학교폭력 피해가 신고될 때 열리는 ‘학폭위’가 오히려 배움의 전당인 학교를 멍들게 하고 있다.

교육현장 관계자들에 의하면 단 한 차례의 사소한 말다툼으로도 학폭위가 열리고 처벌이 이뤄진다. 일단 학폭위가 열리면 교사와 학생은 배움과 가르침에 집중하기보다 학폭위에 대부분의 시간을 빼앗긴다.

또 부모들도 서로 간에 끝없는 소송전으로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피해 학생과 학부모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한다.

지난 2003년에 신설된 학폭위는 초기에는 거의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2012년 3월 학폭위가 강화된 이후 2013년에 1만 7,749건이 열렸고 지난해에는 3만 993건으로 4년 만에 1.7배로 늘었다.

특히 학교 관리자들은 학교폭력에 관한 업무를 담임교사나 학폭위 책임교사에게 맡긴다. 이 경우 당장 아이들 진술서를 받는데 몇 시간이 걸린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사실관계를 작성하라고 하지만 바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학교폭력과 연루된 두 아이가 써 온 서면의 경우 ‘같은 사안을 놓고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서로 다른 내용이기 일쑤다. 결국 교사는 사안에 대해 하나하나 물어가며 다시 작성을 하는 사례가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경찰 역할을 하게 된다. 일선 경찰과의 차이점이라면 수사권이 없다는 점뿐이다. 거기에다 교사는 진술확보를 위해 학생에게 따져 묻거나 훈계조로 한 말도 강압조사, 학생인권침해라는 명목 아래 곤혹을 치르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 때문에 교사의 보직 가운데 ‘학생활지도부장’은 학폭위로 인한 소송 위험으로 교사들 기피 1순위다.

한 교사는 “학폭위는 사법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면서 “교사가 경찰·검찰 역할은 물론, 변호사와 판사 역할도 하고, 나중에는 심지어 교내봉사 및 사회봉사 업무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하소연한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학폭위를 통해 처분을 받은 학생은 가장 가벼운 ‘서면사과’의 조치를 받아도 학교생활기록부에 남게 되고 입시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학생부 기재를 막으려는 가해 학생 부모들의 변호사를 동원한 소송 등 법적 절차에 나서면 피해학생의 보호는 뒷전이 된다.

물론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관계 회복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이 가벼운 학교폭력은 학폭위를 거치지 않고 교사와 학교장이 처리할 수 있도록 교육부에 제안해 그 결과가 주목된다.
(41호 9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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