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흩어져 지내던 온 가족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은 자신의 뿌리를 찾아 한국을 방문한 해외입양인들에게도 뜻깊은 날이다. 경복궁 인근 고즈넉한 주택가에 위치한 해외입양인 게스트하우스 '뿌리의집'은 매년 명절마다 모국을 찾은 해외입양인들과 한자리에 모여 명절 음식을 나누는 잔치를 마련한다. 15년째 입양인과 미혼모들의 회복을 돕고 있는 뿌리의집을 찾아가봤다.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에 위치한 해외입양인 게스트하우스 '뿌리의집'에서는 매년 명절마다 80여 명의 해외입양인과 자원봉사자들이 모인다.

"입양 문제, 가부장제와 서구우월주의 등 복잡하게 얽혀 있어"

도심지를 조금 벗어나 한적한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택가. 이곳에 15년 전 자리잡은 해외입양인 게스트하우스 '뿌리의집'은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싱그러운 녹음이 가득한 정원이 펼쳐지는 가정집이다. 따뜻한 환대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곳은, 어릴 때 해외로 입양됐다가 성인이 되어 다시 모국을 찾은 해외입양인들이 머물다 가는 포근한 한국의 집이다.

평소에는 여남은 명의 해외입양인들이 소소하게 뿌리의집을 찾지만, 한국 최대 명절인 설날과 추석이 다가오면 뿌리의집도 한껏 분주해진다. 전 세계 각국에서 온 해외입양인 70여 명과 자원봉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잔치 준비에 여념이 없다.

추석을 앞두고 뿌리의집을 찾았다. 원장 김도현 목사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와중, 해외 입양인 몇몇이 거실에 내려와 자유롭게 시리얼과 빵, 커피 등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김도현 목사는 해마다 300여 명의 해외입양인들이 뿌리의집을 찾으며 보통 10박 일정으로 지낸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해외입양 역사를 설명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김 목사는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양자를 입양하는 문화가 존재했다"면서 "가문을 위한 목적이 아닌, 순수하게 아이에게 따뜻한 가정을 제공하고자 한 입양은 6.25 한국전쟁을 계기로 시작된 해외입양"이라고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7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요보호 아동은 4,121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약 400명이 해외로, 460여명이 국내 가정으로 입양됐다. 해외 입양아 수는 해마다 규모가 줄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아동을 해외로 입양보낸 나라로 꼽힌다.

김도현 목사는 "현재 전 세계 각국에 흩어진 해외입양인은 20만 명 가량으로 추정된다"며 "이 중 친부모를 찾으려 나서는 사람은 10만여 명, 성인이 된 이후 실제 한국을 찾아오는 입양인들은 매년 3천여 명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뿌리의집을 통해 해외입양인들과 미혼모들의 회복을 돕는 김도현 목사.

"입양 활성화에 앞서 미혼모들이 직접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먼저"

뿌리의집은 미혼모들과 한국을 방문한 해외입양인들의 만남을 수년째 주선하고 있다. 김도현 목사는 "우리나라는 입양인에게만 관심을 가질 뿐, 양육을 포기한 엄마들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며 "하지만 입양 문제에 있어서 엄마와 아이 모두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외로 입양되는 아동의 90% 가량은 미혼모 자녀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혼모들이 아이에 대한 양육을 포기하게 되는 배경에는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인 어려움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김도현 목사는 "미혼모들은 경제적·사회적 약자인 자신이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변호사, 의사 등 부잣집에서 아이가 자라는 것이 아이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며 "이처럼 입양 문제에는 가부장제와 서구우월주의 등이 얽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입양 문제를 깊이 파고들수록 엄마와 아이를 비자발적으로 분리시키는 힘들이 존재하고, 복음 속에 숨은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어떻게 이것을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혼모와 해외 입양인들의 그룹 카운슬링을 생각하게 된 것도 그 연장선상이었다.

김 목사는 "미혼모들과 입양인들은 서로를 궁금해하고 만나고 싶어 한다"면서 "비록 서로가 진짜 친부모, 친자식은 아니지만, 원하지 않게 겪게 된 이별에 대해 어떤 처지에서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됐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특히 미혼모들의 생각이 변화하는 것이 눈에 띈다고.

그는 "미혼모들이 처음에는 아이를 입양보내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다가, 입양인들을 만난 뒤로는 아이를 낳았다는 진실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무엇보다 미혼모들이 아이를 양육하기를 원한다면 양육할 수 있도록 기회와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먼저이고, 그럼에도 아이를 못 키우겠다고 하면 입양을 돕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뿌리의집은 2011년부터 매년 5월 11일 ‘입양의 날’에 ‘싱글맘의 날’ 행사를 열고 있다. 김도현 목사는 정부가 입양 활성화에 나서기에 앞서 어려운 현실에 처한 미혼모들이 편견에 시달리지 않고 직접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친생가족 중심의 아동양육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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