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재무부가 최근 북한과 거래한 제3국 개인·기업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이례적으로 명문화하면서 대북 제재의 고삐를 더욱 바짝 당겼다. 중국과 러시아가 지난달 유엔총회에서 대북제재 완화 요구를 본격화한 데 대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망을 재정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 재무부는 북한과 무기·사치품을 거래했다는 이유로 터키 기업 1곳과 터키인 2명, 북한 외교관에 대한 독자제재를 발표하면서 466건에 대해 세컨더리 제재 주의' 문구를 표시했다.(사진제공=연합뉴스)

첫 '세컨더리 보이콧' 명문화…김정은·고려항공 등 466건 대상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은 지난 4일 '세컨더리 제제 주의'라는 문구가 추가된 대북 제재 리스트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총 466건의 개인·기업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물론 고려항공과 북한의 8개 은행 등이었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개인 및 기업과 거래를 한 제3국 기업과 기관을 미국법에 따라 제재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북한 제재에서 세컨더리 보이콧을 명문화한 건 처음이다.
 
이에 따라 한국 등 제3국의 기업과 개인이 김 위원장 등 466건의 개인 및 기관과 어떤 식으로든 교역 및 거래하면 미국 내 자산이 압류되고 미국 기업, 은행과 거래금지 조치를 당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도린 에델만 제재 전문 변호사는 RFA와의 인터뷰에서 "이란과 러시아에 사용하던 '제3자 제재'를 북한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미국 정부의 경고"라며 "북한과 거래하는 은행 등을 적발해 미국 금융권과의 거래를 전면 중단시키고 달러화 사용 금지 조치를 내리면 해당 은행들은 파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세컨더리 제재를 적용했던 대표적인 대상은 이란이었다. 이란이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 단행한 이 조치로 당시 ABN암로와 ING, 바클레이, 스탠다드차타드 등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각각 1억 달러가 넘는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결국 이 조치로 이란은 석유 수출길이 막혔고, 결국 이란의 핵포기 선언 및 핵협상 타결로 이어졌다.

북한 입에서 “고통스럽다”는 비명이 나왔던 방코델타아시아(BDA) 제재도 마찬가지다. 이 은행 계좌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2500만 달러의 북한 돈이 있었는데, 미국이 북한과 거래했다며 은행 자체를 제재했다. BDA는 결국 파산했다.

"美, 남북 경협 과속 분위기 경계하는 것"

세컨더리 보이콧이라 불리는 제3자 처벌 조항은 미국의 독자적인 대북 제제로,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전원합의가 이뤄져야 하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와 달리 대통령의 행정명령만으로 집행이 가능하다.

제재 리스트에 오르는 대상이 광범위하고 그 파장과 위력이 큰 만큼, 역대 미 행정부는 대북 제재에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하지 않았다. 북한의 주교역국인 중국과 무역 전쟁을 각오해야 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2005년부터 2016년까지 11년간 모두 6개의 대북 제재 관련 행정명령을 발표했지만 세컨더리 보이콧 규정은 넣지 않았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세컨더리 제재를 단행할 태세다. 미국은 지난해 9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한 이후 7번째인 ‘행정명령 13810’에 세컨더리 제재 근거가 되는 규정을 포함시켰고, 올해 10월 4일엔 466개 대북제재 대상에 ‘세컨더리 제재 위험’을 명시했다.
 
앞서 미 재무부는 지난달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신한은행 등 7개 국내 시중은행들에 직접 대북제재 준수를 요청한 바 있는데, 이를 두고 한국 은행들에 대한 '사전 경고'라는 해석이 나온다.

존 볼턴 NSC 보좌관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2차 미·북 정상회담 시점과 관련해 "두어 달 안에 이뤄질 것"이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외교를) 낙관하고 밀어붙이고 있지만, 북한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지는 않고, 이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짐 매티스 국방부 장관 역시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비핵화를 조건으로 제재 완화의 필요성을 잇달아 제기하고 있어, 대북제재를 두고 한미 간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문 정부의 대북제재 완화 움직임에 대해 공식적으로 항의 의사를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2일 미 워싱턴 주미대사관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이 "한국이 너무 과속하고 있다. 대북제재 강화해야 한다고 항의를 들은 바가 없느냐"고 묻자 조윤제 주미대사는 "미 측이 그런 의견을 표명한 바는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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