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언론 보도가 연일 쏟아지면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조현병 포비아'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등 조현병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시선이 만연하다. 이렇듯 사회적인 불안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조현병 환자에 대한 지속적인 치료 시스템은 허술한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현병 환자의 강력범죄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치료 사각지대에 방치된 정신질환자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사진제공=연합뉴스)

"또 조현병"?…조현병 범죄 잇따라 발생
 
지난 25일 인천에서 50대 조현병 환자가 지나가던 행인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1명이 중상을 입었다. 5일 뒤 경기 광명시에서는 60대 조현병 환자가 아파트 주변 산책로에서 이웃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역시 피의자가 우울증 전력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강력범죄에 심신미약 감경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청원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실제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의 범죄가 해마다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2년 5천여 건이었던 정신질환자의 범죄는 2016년 8천여 건으로, 약 1.5배 이상 증가했다.
 
현을 고르다는 의미의 조현병은 한때 정신분열증이라 불리던 질환이다. 마치 조율되지 않은 현악기의 현처럼 뇌의 신경구조에 이상이 생겨, 조현병 환자는 망상, 환청 등 광범위한 이상 증상을 보인다. 발병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한국사회에서 조현병에 대한 공론화가 일어나게 된 건 지난 2016년 서울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한 여대생이 살해된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이 계기가 됐다. 피고인 김모씨는 당시 조현병 등 심신미약 상태인 점이 고려돼 징역 30년의 형이 확정됐다.
 
이후에도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강력범죄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이들의 예측하기 힘든 폭력적인 행동과 범죄에 대해 '조현병 포비아'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관리 사각지대' 놓인 조현병 환자…법·제도 개선 필요
 
전문가들은 조현병 환자에 대한 자극적인 언론보도와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 찍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전체 강력 범죄 중 조현병 환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0.04%에 불과한데도 언론에 보도된 일부 사례로 일반화하는 것은 오류라는 것.
 
전남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김성완 교수는 "정신질환은 신체질환과 마찬가지로 조기 발견해 치료하면 회복할 수 있다"며 "치료를 받지 않았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 조기 발견해 적절히 치료하면 문제가 없다. 치료 기관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실제 조현병은 약을 잘 복용하면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지만 약을 복용하지 않는 순간 움직이는 시한폭탄으로 돌변하게 되는 병으로 불린다. 전문가들은 최근 벌어지는 조현병 환자의 강력 범죄는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지 않는 등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아 벌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르면 자해, 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에 한해 강제입원과 치료가 가능하다"며 "그런데 법에 규정된 입원 치료와 진료 체계가 현실과는 동떨어져, 반드시 입원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가 퇴원해 지역사회에 거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지난해 5월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하면서 보호의무자 2명의 동의와 전문의 2명의 판단이 있을 경우에만 보호입원이 가능하도록 정신질환자의 입원 요건을 강화했다.

이에 대한조현병학회 한 관계자는 "입원치료가 필요하더라도 까다로운 조항에 묶여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며 "입원하지 않더라도 외래 치료가 가능하도록 해야 하지만 인력과 시스템 부족으로 치료·관리 시스템이 부실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그렇다면 조현병 환자에 대해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있을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최근 조현병 환자가 낮에는 지역사회나 병원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밤에는 집으로 귀가하는 방식이 자리잡고 있다. 환자가 사회생활과 재활치료를 병행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보건서비스가 이뤄지는 것이다.
 
또 20년 전부터 외래치료 명령제도를 시행하며, 다른 사람을 해친 전력이 있는 고위험군 정신질환자의 경우 정신과 전공의 등 전문 인력이 집으로 찾아가 상담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김성완 교수는 "의료비나 사회적 부담 등에 있어 정신질환은 암과 비슷할 만큼 비중 있는 질병인데도 이에 대한 국가 예산은 성인병이나 암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며 "조기발견과 조기집중치료, 퇴원 후 지역사회 거주와 재활을 위한 서비스가 확대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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